2008년 12월 30일 화요일
-광주광역시 대인시장에서 행해지는 예술프로젝트에 주목하다
최윤정 ● 미학/ 미술비평
지난 2008광주비엔날레에서 주 전시가 아닌 보조 전 형식으로 진행된 ‘복덕방 프로젝트’의 파장은 오히려 주 전시보다 더욱 주목을 받는 성과로 이어졌다. ‘복덕방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물적교환의 장소이자, 또한 정보교류의 역할을 했던 ‘복덕방’에서 모티브를 딴 것이다. 이것이 예술프로젝트로 진행되었을 때, 그 주요 핵심은 다음과 같다. 예술가의 창작노동이 자폐적인 작업실 구조가 아닌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 그들과 감정적인 교류를 하면서 정적인 가치로서 그 교환가능성을 실현해 보일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고, 중앙에 비해 지역 예술이 그렇듯, 도시 속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 도심공동화와 현대적인 시설의 대형마트들이 곳곳에 생기면서 점차 그 활력을 잃어가는 ‘재래시장’이 이 프로젝트의 실행에 있어 장소성(site-specific)이라는 중요한 근거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7회에 걸친 국제적인 비엔날레 행사가 개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광주 지역예술계는 큰 탄력을 받지 못했다고 평가된다. 한편 최근 시장 상인들의 협력과 지역예술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인하여 ‘복덕방 프로젝트’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국제적인 행사에만 골몰하던 광주시 역시도 이 프로젝트의 가능태를 살피면서 적극적인 지원책을 펼 예정이다.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서 대인시장은 입구 쪽 회센터를 제외하고 한 낮에도 손님이 거의 드나들지 않았고, 눈에 띌 정도로 많은 빈 점포들은 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욱 배가시켰다. 대형마트와의 경쟁력을 갖기 위해 각종 현대화사업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는 전혀 없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였다. 뭔가 대안을 찾고 있던 시장 상인들에게, 빈 점포를 예술가의 작업실로 혹은 전시실로 바꿔보고자 하는 프로젝트 팀의 아이디어는 어찌 보면 대단한 활력소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적극적인 시장 상인들의 호응 하에 예술가들이 시장 곳곳을 점유하며 채워나가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다. 특히 그래피티 작가 구헌주가 빈 점포 셔터에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장미란’이 셔터를 여는 장면을 스프레이로 완성한 작업은, 이미 복덕방 프로젝트가 오픈하기도 전 인터넷 곳곳을 장식하는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비엔날레가 끝난 후, 복덕방 프로젝트는 관의 지원을 받고 또한 ‘매개공간 미나里’ 라는 지역 대안공간의 프로그램으로 다시금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때부터는 그 파장 속에서 미술인 뿐 아니라 VJ, 공연가, 문학인, 지역 대안언론, NGO단체들까지도 문화활동의 실험장으로서 대인시장을 바라보고 이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재밌는 것은 많은 지역민들이 오가고, 또한 타 지역에서 방문한 관심있는 사람들과 혹은 이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하고자 하는 타지역 관계자들이 연이어 오가면서, 국밥집 외에는 다양한 먹거리가 없었던 대인시장에 저렴한 분식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시장 사람들의 작은 바자회로 간혹 비정기적으로 열렸던 ‘풍물시장’이 지금은 하루도 쉬지 않는 ‘벼룩시장’으로 점차 그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그 누구도 그것이 지역에 또한 타 지역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대단히 회의적이었고, 또한 지역에서의 예술 활동이기에 주목받을 리 없다고 비난하기조차 하는 일들이 아주 빈번했다. 그러나 ‘문화예술을 통한 재래시장 활성화’ 정책에 맞물려 그것이 성공한 사례가 거의 드문 탓에 지금 대인시장은 개발정책으로만 일관하는 현 정세에 예술과 문화의 숨결이 그보다 더한 가치를 생성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은 상징적 장소가 되었다. 예술가는 시장 상인들과 언제서 부터인가 이웃이 되었고, 시장 상인들은 멀게만 느껴졌던 예술을 자신의 일터에서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를 향유하고 또한 예술활동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하기도 한다. 필자 역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현장예술 활동에 대한 무수한 가능성들을 바라보게 된다. 또한 어느 지역을 가나 그 지역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을 방문하고는 한다. 간혹 그리도 커보였던 안성 중앙시장과 바로 집 앞에서 치러지는 5일장의 최근 모습을 떠올리면서 애잔함을 느낄 때가 있다. 더욱이 안성 역시도 최근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생기면서 재래시장이 장사가 잘 안 될 것이라든지, 혹은 장사가 안 되서 걱정이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을 때도 있다. 서울과 근접해서인지, 혹은 예술대의 역할 때문인지 안성에는 예술가의 작업실이 많은 편이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예술은 항상 문제적 지점에서 힘을 발휘한다. 그것이 사회적인 것이든 경제적인 것이든 오히려 불안한 시기나 혹은 부조리한 현상에서 예술은 항상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그에 걸맞는 공적인 기여를 한다. 비단 전통적인 문화의 장이나 축제 등으로 ‘문화예술의 도시’를 언급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문화예술’이라는 용어가 더욱 적합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해 사려하는 범위가 훨씬 더 넓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광주의 ‘대인시장’ 사례를 안성 지역민들 및 관계자, 예술가 역시도 보다 관심있게 지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008년 10월 16일 목요일
평론- 마문호 / ‘몸짓-표정’이 지닌 보편적인 ‘열망’
최윤정 ● 미학 • 미술비평
얼굴에 새겨진 주름은 그가 살아왔던 세월의 경험과 비례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주름은 그가 고통스런 삶을 살았건, 평온한 삶을 살았건 그가 밟아 온 자취들에 대한 표정이다. 이미 그 쓸모를 겪은 물건 역시도 그것이 사용되었던 흔적 하나하나를 주름으로 고스란히 남긴다. 그 주름은 세상살이의 흔적이자, 그 물건 혹은 그 사람의 평생을 빗대는 ‘은유’일지도 모른다. 은유는 그렇기에 분명 추상일 수 없다. 그것은 분명한 실체를 표면 안과 밖으로 가장 원초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자 ‘속’이다. 설명이 소극적이고, 일방적인 전달과 상대의 무식을 전제로 한다면, 은유는 심적으로 개입하는, 이미 누구든지 인지할 수 있었던 ‘사실’에 가깝다. 원리적으로 그것이 이성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감성에 있다 할지라도, 그리하여 시적인 미화로 여겨진다 하여도, 은유는 차라리 이성의 한계를 끌어안으면서 이성의 계기를 확장하는 표현으로 보는 게 옳다. 작가 마문호의 형상은 그 ‘주름’이라는 은유를 ‘땀’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익명성’의 몸짓 형상으로 그려내면서 개별이 지닌 보편의 표정을 담아낸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현실이다. 서사와 구상의 형식을 빌어 형상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가 형상으로서 재건하고자 하는 ‘현실’은 일차적인 비유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번 2008 개인전을 비롯하여 광주비엔날레 제안 ‘복덕방 프로젝트’ 참여작을 관통하는 그의 주제는 바로 ‘열망’이다. 개인이 지닌 열망, 예술가가 지닌 열망, 시장이라는 장소성이 지닌 열망, 시장사람들의 열망. 그가 말하고 싶은 열망은 단순한 바람의 차원이 아니라, 삶의 무수한 흔들림 속에서 겪는 상처를 봉합하고 치유하고자 하는 것 혹은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한 무의식이 지닌 우리네 열망이다.
예술가로서 그가 ‘민중미술’에서 ‘민주미술’을 외치기까지, 추상적인 형상과 원시적인 색면에서 차별적인 재료와 구상에 대한 ‘바느질 드로잉’을 행하기까지, 그의 사유는 예술과 현실적인 삶이 유착될 수 없다는 것에 놓여 있다. 그가 늘 외치는 명제는 예술은 허구요, 예술을 행하는 자에게 있어서 현실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결코 예술이 표명될 수 없음을, 또한 역으로 예술을 표명하는데 있어서 현실적 삶이 과연 유관할 수 있는가를 ‘대놓고’ 보이는 것이다. 간단하게 예술가에게 삶은 예술보다 우선시 될 수 없다. 이는 우선 리얼리즘 기반 속에서 예술이 삶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일종의 도구로 여겼던 것에 대한 비판이자, 더불어 여전히 그와 관련한 어떠한 실천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과연 그것이 진정 자신이 마주한 솔직한 현실이었는가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결국 예술은 현실적 삶보다 가치적으로 진정 현실에 대해 우위에 있다. 그렇기에 그에게 예술은 허구다. 그가 처한 현실은 보편적으로 예술의 자율성을 담보하기에는 거리가 먼, 오히려 예술행위를 저해하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다소 냉소적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작업관은 결국 예술가로서 자신과 자신의 환경을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된 바다.
과거 그의 작업은 인물을 묘사함으로써 거둬지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환경에서 그가 선택한 주제는 이제 현실적 삶의 양태로 그려지는 표정들이다. 그것은 풍경일 수도 있고 또한 살아가는 모습일 수도 있다. 그는 이를 ‘살이’라 표현한다. 이 ‘살이’는 자기 감정이 보편 속에서 드러나는 추상적인 ‘표정’이다. 이는 기존에 리얼리즘이 행했던 사회 참여적이어야 하고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야 했던 그야말로 협소한 구조에 대해서 그 의미 층위를 확장한 계기로 평가된다. 그렇기에 그것은 보다 솔직하다. 현실은 언제나 여기저기에 있었고, 지금도 그저 마주할 뿐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살이’이다.
여기서 그가 마주한 ‘현실’과 그가 선택한 주제는 단순히 의미로서만이 아니라 그가 선택한 재료에도 일관되게 고스란히 반영된다. 어찌 보면 그의 작품에 있어서 재료는 그의 명제를 타당하게 하는 가장 훌륭한 틀이다. 동시에 그의 작업에 대한 ‘알리바이’다. 기존에 유화를 통해 동일선 상에서 작업을 진행했던 그는, 이제는 이미 그 생을 다한 폐비닐 위에 바느질로 새기는 행위를 통해서 상처의 접합, 재생을 시도한다. 이는 동시에 쓰레기일 법한 재료들이 작품으로 그럴싸하게 보여 지게끔 하는 일종의 교란이기도 하다. 이는 형식을 통해서 꼬집어 보이는 예술의 허구이다. 낯익고 불편한 재료들을 통해서 권위적인 예술에 대해 입을 봉하라는 방식이다. 이 같은 요소는 간혹 미적으로 빠져들 수 있는 작품 감상을 의도적으로 저해하는 장치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그늘, 놀다/에서 그는 아무 손질도 하지 않은 폐타이어와 그가 즐겨듣는 록음악을 한편에 설치하여 다소 어수선한 전시장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였다.
그의 바느질 드로잉은 촘촘하게 잘 짜인 앞면과 달리 뒷면은 불완전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에게 있어 바느질이 무녀의 제의와 같이 삶의 상처를 봉합하고 치유하는 과정이라면, 그 뒷면은 외상의 흔적으로서의 은유이다. 끝마무리로서 길게 늘여진 실밥과, 앞면과는 달리 흐릿한 형상들, 구체적이지 않은 형상들은 자연히 삶 속에서 떠안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서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고 혹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무의식이 간직한 상처이다. 포대에서 감아올린 실마저, 실이 만들어낸 형상이 멀리서 희미한 주름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선택된 폐비닐의 색상조차도 그것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개인과 사회의 숨은 열망들을 두드린다. 그래서 이러한 형상의 이미지들은 다소 보편적이고 서사적이다.
한편 이와 더불어 작품에 사용되는 텍스트는 이미지들이 갖는 서사성을 뭉개는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그가 사용하는 텍스트는 어떤 경우에서는 작품자체에 대한 의미라기보다는 하나의 도안이자 디자인이다. 그 의미에 현혹되어 그 자체 일차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매우 곤란하다. /치워라, 그늘/에 새겨진 FTA와 그 주변에 새겨진 각종 형상들은 그야말로 FTA가 진행되건 아니건 간에 현실은 늘 동일했고 어떤 경우이건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저 무덤덤하게 귀찮다며 ‘치워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일등광주/는 그 의미와 더불어 문화적 범주가 지녀왔던 권위적인 총체성을 계속된 동어반복으로 오히려 일/등/광/주라는 기표 자체로 물화시켜 버린다. 오히려 자부심을 상징하는 거대 의미로 쓰인 텍스트가 불품 없어지는 순간이다. 이는 결국 일등광주라는 의미에 대한 조소이자 의미자체를 낯설게 하는 효과이다.
삶에 대한 은유, 상처와 봉합, 버려진 것과 재생, 예술과 현실, 실재와 허구에 대한 문제는 조각난 것들, 그것이 물건이건 혹은 사람이건 혹은 사회이건 간에 그것들이 지닌 ‘열망’ 속에 모아진다. 작품에서 ‘열망’은 몸짓 형상이 보이는 표정에 따라 또한 떠오른다. 물론 우리는 자신이 지닌 ‘열망’을 평생 모를 수도 있고,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 그 무엇도 진실이 아닐 수 있다. 그것은 파여서 보이는 주름이 아니라 떠오르는 표정이자, 순간에 발견되는 것일 수 있다. 예술로서 의미를 발견하고 동시에 이를 헛된 것으로서 부정하게끔 하면서 만들어 내는 일체감은 분명 그가 선택한 형식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그것은 예술가로서 자기 일상 속에서 우러나온 방법론이면서 동시에 그만의 적합한 예술이 되었다. 덧붙여 우리가 ‘열망’을 간직하건 아니건, 발견하건 못하건 간에 삶은 언제나 ‘열망’과 함께 하였고, 그것은 어쩌면 ‘일상’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Ma Mun-ho / A universal aspiration which a ‘gesture-look’ owns.
Choi Yoon Jung ● Aesthetics • Artcritic
People say, wrinkles in a face forms in proportion to experiences of one's time. So a wrinkle is a look that means a trace which one exists in a painful life or not. The things that breath its last, also remains on its own wrinkles as a trace that have been used. The wrinkle may be not only a trace of a way to live, but also a metaphor that is compared with things or one's whole life. So definitely a metaphor cannot be abstract. It is a means and 'the inner part' that exposes a clear substance inside and outside the surface. Assuming that an explanation is passive and a one-sided communication and also relies on the other's ignorance, a metaphor is close to 'a fact' intervening mentally, which everybody could have been aware. In principle, though it is located on a sensitivity as a weak part in rationality and though we regard it as a poetic beautification, it needs to understand that a metaphor extends the moment of rationality with drawing a limitation. The artist Ma Mun-ho's shape represents a metaphor 'wrinkle' through the form 'stitch'. Expressing gesture-shapes of 'anonymousness', he paints a universal look which individual has. It is the real for him. He presents his own shape with a narrative and concreteness but his own 'the real' which he rebuilds, gets over a superficial understanding. Including 2008 solo exhibition, participating artwork in Gwangju Biennale position paper 'bokdukbang project', his theme is the very an 'aspiration' that is taken by individuals, artists, and a site-specific of market, market people. His aspiration is not a simple desire, but that it seams hurts which one suffers in one's countless unrest, and recovers them. Moreover it is something to be in a unconsciousness that cannot be discovered.
Until He emphasizes the 'minju(democracy)-art' from 'minjung art' as an artist and changes abstract shapes and primitive colored scene into embroidery-drawing with the different materials and concreteness, he thinks that art cannot adhere to a real life. So his proposition is that art is just a fabrication, because art never profess that it can make an art creator's real life affluent and conversely it may be exposed 'without a hitch', whether art activity is connected with the real life or not. Shortly for artist, the real life cannot be prior to art. This is a criticism for what realism have considered art as an instrument reflecting human life. And also this is a reflection for a certain practice connecting with a sense of justice. As expected, it is about what the real is. At last, the art value is superior to the real. So to him, art is just a fabrication. His real life may be far from guaranteeing art autonomy, and it may prevent art activity. In this way, his outlook on artwork as a partly cynical artist has begun since he was aware of himself in the real.
In the past, his work was a look obtained that he described a figure. But Now the theme chosen from his environment, is a look drawn by an aspect of life. It may be a landscape or picture to make a living. For this, his expression is a 'living'. This 'living' means that it reveals one's own emotion as an abstract look in universality. It is appraised as a moment to extend the stratum of meaning against confined structures of the realistic requests that must be a social activity and must describe a concrete expression for society. For that reason, the notion of 'living' is franker than realism. Because the real always have been here and there and everyone only confront the real in their daily life. This is the very 'living'.
On the other hand, his 'the real' and the chosen theme are reflected in not only the meaning but also the material consistently. The material is the best frame that makes his proposition adequate, and have become an good 'alibi'. Having been taken the notion of 'living' into consideration, he had drawn on canvas with oil-painting. But now his canvas is changed into abandoned vinyl which have been used, he tries to return its life as seaming shapes on it. This is a sort of disturbance which the trash seems to be an artwork. Correctly to him, it is an art fabrication indicated by his own form. So this element is connected with an instrument that sometimes prevents the aesthetic feelings. Having installed a bald tire and rock music he likes-/Shadow, playing/, in some degree he leads an exhibit hall to be a noisy atmosphere.
His embroidery-drawing exposes an incompleteness of the backside as it is, contrary to the well organized front side. If the embroidery is a process to seam hurts and to recover them - such a shaman's rite, the back side is a metaphor as a trace to an external wound. In a substantial sense, the hanged ravelings as the last touches, and dim shapes contrary to the front side, unclear shapes are equal to the hurts which we cannot help taking all upon ourselves, and possessed by unconsciousness or we never want to remember. Even though the thread is drawn by a used sack and the abandoned vinyl-with its own color- chosen for seeming a dim wrinkle, acting in a body, the materials all touch the hidden aspiration of individual and society. So this images of his shapes are somewhat universal and narrative.
Together with this, on the other hand his text works upon crushing narratives in image. So to speak, the text doesn't say the meaning of artwork itself, but it is only a pattern and a design. It is difficult that we would understand the text as a superficial meaning. In /Get out of here, shadow/, FTA as a text has no connect with the real FTA, that is, whether the real FTA will go on or not, the real is always identified at all times. So as a meaning of living on, the real life just says like this, 'go away' with an annoyed look. And in /the first rank, Gwangju/, with its superficial meaning, through a steady tautology, the text put an authoritative totality which cultural category maintains, to shame. So a meaning of text only has been materialized as a signifier. Finally, this is a laugh for the meaning of 'the first rank, Gwangju', it makes an effect which the meaning itself is become unfamiliar.
A metaphor for life, the hurts and seaming them, the abandoned and revival, art and the real, reality and fabrication, whether it is things or human or society, they all come together in 'aspiration'. 'Aspiration' rises to the surface following a look which gesture-shape shows. Undoubtedly we cannot be aware of our own 'aspiration' or we can think that we know it absolutely. But both views may not be true. The wrinkle of life is not dug, but risen as a look. And it may discover in a moment after all. Coming from the repeating operation that finds meaning for art, or at the same time denying art as a unbelievable thing, a sense of unity is undoubtedly originated from the form which he choose. Springing up in his daily life, his method is his own art. In addition to keeping 'aspiration' in one’s heart or not, and discovering 'aspiration' or not, our lives always get together with aspiration. So to speak, I am supposed that 'aspiration' may be equal to one's everyday. (translated by cHOiyoOnC)
2008년 10월 1일 수요일
송창 - 표면으로 나와 내면을 유희하는 풍경
최윤정 ● 미학‧미술비평
1.
/이른 새벽/, /아침/ /한낮/과 /오후/, 그를 발견한 풍경들, 또한 그를 따라 지나가는 주변의 자연 풍광들. 길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이리저리 공명하는 기체를 따라 가다가 또 가다가 멈춘 세상에는 늘 그곳에 있었다고 하는 늙은 거목이 서있다. 항상 그 자리에 정지되어있지만, 어느덧 시간은 거목을 중심으로 하여 지나간다. 시선으로 건드리고 또한 의식적으로 미화시키고 예찬하며 자칫 머뭇거릴 수 있는 작가의 발걸음을 그저 자연스럽게 지나가라고 말하는 거목이다.
그는 여행을 즐긴다 한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에는 길이 펼쳐져 있는데, 그것은 흐드러지게 핀 꽃과 풀과 물의 길이다. 한때 그에게 여행은 역사적 의식을 반영하는 현장을 발견하고 사생하는 의지였다. 그러나 이제 그가 바라보는 풍경들은 반드시 우리가 염두에 둘 수 있었던 서사적 장으로서가 아니라, 그 서사가 펼쳐지고 있었던 혹은 보편의 것이 아닌 개인의 기억이 펼쳐지는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닌 모든 것이 펼쳐지는 곳이다. 풍경에 대한 그의 입장이 이와 같이 전이되고 펼쳐질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분단현실이라는 민족의 문제와 역사가 우리가 접하고 있는 주변 환경 곳곳에 이끼처럼 스며들어 있다거나 그로 인해 단 한번도 무관한 적이 없었다는 반성적인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꿰뚫듯 응시해 탐구하고 찾아내야만 하는 진실들은 어찌 보면 계속해서 내 주변의 풍경들 속에 찾을 수 있거나 혹은 없을 수 있겠지만, 자연으로서는 항상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자면 자연과 사물의 물성이 역사적으로 대유되는 흔적들은 그리하여 그에게 다소 억지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를 가지고 그의 과거 작품에서 극명히 보여 왔던 역사의식이 희석되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언제나 배경이었고, 비유였던 풍경들이 이제야 비로소 그 자체로 주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분명 명확하다. 소재에 대한 해석과 의미부여, 풍경에 부여한 그의 목적성이 이제는 자아성찰의 계기와 여행, 풍광 자체로의 감응으로 전이되는 시점이고 그렇다 한다면, 이제야 비로소 그에게는 사생 길에 마주하던 ‘풍경’들을 그 자체로 대면해볼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2.
그가 민중미술 작가로서 초기에 주목했던 ‘풍경’은 직접적인 역사적 장소로서였다. 임진강, 휴전선, 철원 노동당사 및 철책선 근방 등 구체적으로 지시되는 그의 풍경은 역사적 서사에 대한 비유적인 주제이자, 일종의 다큐멘트에 가깝다. 이후 그는 이러한 방향을 유지한 채로 장소만큼이나, 소재적인 접근으로 ‘풍경’에 대한 해석을 확대한다. 이때 주목할만한 소재가 바로 ‘소나무’ 였는데, 이는 장소가 그리고 장소성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소재가 기억하는 역사적인 사건에서 비롯한다. 작가는 그저 어린 시절 단순히 집 주변 환경으로만 알고 있었던 울창한 소나무숲이 알고 보니 이념적 대립 속에서 당시 그 동네에 살았던 사람들이 밤낮으로 불려나가 고초를 겪었던 사건의 현장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는 그가 분단현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에 대한 개념을 보다 외연적으로 확대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소재적으로 ‘소나무’는 그에게 어찌보면 ‘휴전선’을 대체하는 중요한 상징이 된다. 더불어 같은 시기 이러한 변화와 맞물려 그의 작업 형식도 큰 변화를 갖게 된다. 그는 회화라는 그의 손에 가장 익숙하였던 요소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재료와 매체에 대한 접근을 통해 형식적인 실험들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설치적인 조형요소,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 사진, 더불어 그가 선택한 입체적인 재료를 통해 질감을 강화시키고 이에 회화적인 분위기를 덧입히는 식이다. 소재적인 접근이 ‘소나무’라는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전환되는 시점에서 새로운 형식들을 입히고 개발했던 것은 그야말로 역사적인 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로서 형식 실험을 통한 다양한 표현을 욕망했던 것에 따른 결과였다. 다소 격할 정도로 기울였던 이 같은 그의 노력이 작업적 경향에 있어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다음 작업 시기로 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 이유도 분명 여기에서 연유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다. 이 시기 회화 중에서 /기억하는 자의 곤혹스러움/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4m가 넘는 대형 화폭에 펼쳐진 이 작품에는 현재 한강과 그 주변 모습을 담은 풍경이 펼쳐져 있고, 이에 6‧25때 끊어졌던 제 1 한강교가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어두운 그림자처럼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현재의 강폭을 가로지르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그가 의도한 ‘소나무’의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그의 공간개념을 여실히 보여준다. 과거의 내용을 분위기로 드러내는 방식이기 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전혀 다른 시간의 기억을 공간 속에 접합한 방식이다. 이는 현재에서 ‘낯선 기억’이 ‘구체적이고 익숙한’ 기억의 현장과 삐걱대며 조우하는 현장이다. 여기서 마주할 수 있는 체험은 역사적인 기록도 아니요, 그저 사연 어린 슬픈 유령이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한편 최근작 /여명_수종사에서/는 해뜰 무렵 수종사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얕게 떠 있는 구름의 결, 새벽 녘 하나 둘씩 켜지는 불빛들은 역시 4m가 넘는 대형 화폭으로 이어진다. 새벽의 향기와 아직 해는 뜨지 않았으나, 잔 불빛들이 모여 곧바로 이어질 아침의 생동을 가늠케 하는 장면은 자연의 기운과 우리네 일상이 동시적인 시공간 안에서 어우러지고 있음을 또한 늘 그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새벽의 공기는 스며들어 잠을 깨우는 차가운 기운이고 어슴푸레하지만 분명 부드러운 푸르른 빛깔이다. 그것은 ‘구체적이고 익숙한’ 우리의 시간이자,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내 주변의 환경이다.
그가 마주하고 있는 ‘풍경’과, 마찬가지로 현재 그의 작업은 자연이 그러했듯 다시금 전형적인 회화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또한 주목할 것은 여기에는 역사적 주제를 말하는 장소, 역사적 서사를 기억하는 소재적 접근이 제거되고 배경적 역할로서만 충실하던 ‘풍경’이 그 자체로 주제로서 화면에 전면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현재 그의 작업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 회화 자체로서의 회화, 회화적 표현기법에 대한 진중한 고민, 드로잉 연구 등이다. 그에게 항상 주제를 환기시킬 수 있게 해오거나 의도가 강조되어 배경적 역할로만 충실했던 ‘풍경’은 이제 그가 작가로서 객관적인 자신에 대한 연구를 꾀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이입체가 된다. 그에게 항상 의도와 목적의 배경으로서 관심적인 상징이 되었던 풍경은 이제는 정작 무관심적이고 그 자체로 관조적인 시점 속에서 그려진다. 이러한 요소는 그의 기법적인 요소에 힘입어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3.
이번 작업을 포함하여 그의 회화를 논할 때 주목할 만한 키워드는 바로 ‘확산’이다. 유기적인 응집체가 하나하나 파열된 상태로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퍼져나가는 형국은 촉각과 시각으로서만 알 수 있었던 물성이 기체로 전환되어 후각으로까지 파장되는 순간으로 이어진다. 그는 의도적으로 이전 작업에 비해서도 더욱 형상을 무너뜨리고 있다. 형상은 서사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형상’이 강조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은 주제를 표면적으로 벗겨놓거나, 극단적으로는 사실적인 표현에 집중하여 그 이면의 효과를 놓치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가 형상을 억제함으로서 얻은 효과는 구체적인 장소와 시각적인 외형을 촉각적이고 후각적인 ‘공기 흐름’으로 전이시켰다는 점과 이를 통해서 객관적 장소에 대해 주관적인 느낌을 강조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그는 이를 ‘냄새’라 표현한다. 이러한 ‘확산’은 화면의 테두리를 오히려 확장시키는 느낌을 일으키기도 한다. 퍼져나가는 냄새는 비단 캔버스 틀 속에 갇혀져 있을 것만 같지는 않다. 이러한 효과를 갖는 이유는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역동성에 연유하는데 이는 형상의 제거, 상황에 따른 질감 표현, 시공간을 고려한 화면 구성, 색 표현에 기인한 것이다. 이것들은 하나로 맞물려 있다. 예를 들어, /솔내음/에서 보자면 소나무일 법한 추상적인 형상 위로 강하게 어지러져 있는 두터운 마띠에르의 노란 작은 덩어리들이 무질서하게 팽창하며 시각적으로 후각적 심상을 유발시킨다. 그것은 송화가루의 날림이다. 한편 /이포나루/에서 작가는 역으로 강한 물살의 움직임을 보이기 위해 얇은 붓질을 시도하였다. 돌리고 던지고 흩뿌리면서 물살의 특징을 가미한 것이다. 이 작품은 화면의 좌측 상단에서 우측 하단으로 흐르는 대각선 구성이다. 대각선 구도가 갖는 역동성과 질감 조절을 통한 물살의 표현으로 말미암아 화면은 또한 주변으로 확장된다. 말하자면 그에게 /물안개/는 기체의 형상이기에 두텁고 거친 마띠에르를 통해 확산을 꾀한다. 더불어 /들불/은 무서울 정도로 번져가는 타오름의 역동성을 얇은 붓질로 휘둘러 버린다. 확산과 움직임은 그가 자신의 기법을 통해 성취한 ‘풍경’에 대한 고유한 기법이다. 기법적 장치를 통해 그의 작품은 일차적으로 감각적인 체험을 유도한다. 더불어 주제 면에서 이번 그의 풍경을 조망할 필요가 있다. 오솔길과 크게 확대한 자연의 사물들, 너른 들판에 펼쳐진 길로서만이 아닌 소복이 숲으로 쌓여 가지 사이로 짐짓 그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 빛이 내리 쬐는 작은 오솔길-/11월/과 강한 색감으로 크게 확대하여 표현한 꽃들-/붉은 꽃/, /맨드라미/은 이제 그가 거대 서사적 지대뿐만 아니라 ‘산책’을 연상시키는 자기 사유의 장 역시도 한 주제로서 위치짓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나가면서 발견하는 자연의 산물들은 항상 전체의 일부로서 드러내던 기존의 방식에서, 보다 작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4.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_ 윤동주의 자화상 中에서
이후 그의 작업이 철저하게 자기 사유와 성찰을 주제로 하여 사색의 공간으로서 풍경을 담아낼 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항상 주요했던 풍경이 너른 들판과 거대한 강 지류에 대한 조망이었다면, 현재 그의 풍경은 작은 사물에 대한 관찰과 혼자서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며 무작정 떠오르는 단상들을 사색으로 엮어가는 단계도 엿보이기 때문이다. 사색을 유도하는 자연의 시간, /석양/과 /달빛/ 그리고 /이른 아침/은 그의 정신적 유희를 그대로 반영하는 작품들이다. 특히 /석양/에서는 확대된 사물들이 드러난다. 이는 결코 좁아지는 풍경이 아니다. 까치가 내려앉은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해질 무렵의 빛은 그것이 투과하는 대부분의 사물들의 실체를 현저한 대비로 강조하기도 한다. 도시에서 해질 무렵의 빌딩이 붉은 하늘과 대비되어 더 어둡게 표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빛을 통한 이면의 진실은 해질 무렵 더욱 강조된다. 달빛을 경험해 본 순간에 사물이 적당히 감춰지면서 살짝 드러내 보여 지는 것도 마찬가지의 심상을 자아낸다. 이러한 심상들은 자연히 개별의 감상과 사유를 이끌어낼 수밖에 없다. 또한 그렇기에 더욱이 관찰하는 사물이 확대되는 착시를 경험하는 순간도 있다.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느낄 수 있는 고유한 체험까지도 소급하는 ‘풍경’은 그렇기에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색으로까지 확장을 꾀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 그 속에서의 경험은 그야말로 개별적인 감정 이입체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자연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되는 것이다. 오히려 풍경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여 한편 이를 외적으로 소외시켜왔던 것에서 이제는 역으로 풍경에 자신을 대입해보는 즈음으로 그 입지를 전환한 것은 의미 부여에 대한 배제라기보다는 역으로 자연과 자신의 세계를 보다 긴밀하게 접합하여 확장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마땅할 것이다.
이제 일반 타당하고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 그것이 개별에게 수용되는 입장에서 또한 개별적 가치에 근거해서 자연이 그에게 다가온 것이라 말할 수 있다면 자연은 심상의 공간으로서 보다 구체적으로 그에게 세상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어쩌면 우리의 풍경은 늘 그러했던 방식의 또 다른 세상을 의미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인물보다 풍경이 와 닿았던 것은, 구체적인 사건보다 사건에 대한 기억이 더 중요했던 것은, 그리고 배경적 요소가 점점 표면으로 드러나게 되었던 것은 이념을 이념에 그치게 하지 않고 의지를 호기로 여기지 않으며 이제야 적정한 심적 거리를 통해 자연을 재 조망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작가로서 세상을 살아가고 또한 작업에 대한 태도를 다시금 점검하고 이후 단계를 가늠해보는 시기까지 그에게 풍경은 언제나 의미를 지닌 유기체였고, 어느덧 의식하지 않은 순간에 차츰차츰 이미 그의 세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Song Chang
Choi Yoon Jung ● Aesthetics ‧ Art critic
1.
/early in the morning/, /morning/, /at noon/, /afternoon/ the landscape that found him, and scenery that near him passed by. He doesn't know where the road connects. He just goes along with the air floating here and there. He keeps going and going, and then in a place that he stop to let his eye's rest, the very big tree stands by him. It always may have been there before our awareness. It looks like stopping, but time passed through the old tree at all times. It whispers 'leave me intact so go your way' to the artist's step with touching by eyes, consciously idealizing nature and praising be to nature.
He enjoys traveling. So there are roads in his artworks, roads are routes for flowers in full bloom, and also the grass and water. Once his travel was a will that sketched and sought a historical context. Now his landscape is not only a historical narrative that one keep in mind, but also just place that may be universal or individual memories. And it may or may not be nothing(/everthing), landscape exists everywhere. On the other hand, the reason why he changed his own viewpoint of landscape, results from self-reflection. It is that historical narrative(called 'divided land' in korean actuality) can be found everywhere, like covered with moss. So historical narrative never can have no connection with our lives. It's very natural. Perhaps the truth that we must seek, may be found or it may not in our environment. But the truth as nature always exists there. From this point of view, the trace that liken property of nature and things to historical moment, may be unreasonable to him
But in my opinion, it cannot define his historical sense as an ambiguous attitude. It is very clear the reason why landscape as a background and a metaphor of a history. landscape has become a theme by itself. The focus of landscape have turned (from interpretation and significance about a subject matter and intention for nature) to nature itself. It means a self-reflective moment, a travel, an inspiration from a deep impression on scenery. For this reason, to him, It needs to stand face to face of landscape that meets on his way to sketch.
2.
As Minjung artist, the early days 'landscape' to attract his attention was directly historical site. Like Imjin-river, the armistice line, the civilian passage restriction line, the office of labor party in Cholwon and so on, his landscapes entered very concrete phase. This was not only a metaphor of historical context, but also close to a kind of documents. Then, kept entertaining that idea, he expanded an interpretation of landscape as an approachment to a subject matter. At this time the remarkable subject matter was a 'pine tree'. It originated from a historical affair as memories of place and site-specific subject matter. When he was a young boy, there was pine tree forest near his house. the forest is an environment just around him. But he realized that the densely wooded pine tree forest is the actual spot of ideological opposition. Inhabitants had suffered every day and night then. It provided a moment that he made an attempt to the extension of his thought about the spot shown divided-land. So 'pine tree' became an essential symbol that replaced 'the armistice line'. With this variation, his form of artwork also had full of variety at this period. He tried a formal experiment-not only painting as his accustomed form, but also approaching to various material and media. So to say, it is to try an installation-effect, to deal with documentary photograph, and to strengthen his matiere, to duplicate 'painting-atmosphere' with his selected three-dimensional material. The approach to a subject matter didn't only have made new form. It didn't only mean that it had been capable of the more effective expression for a historical theme, but he also had a keen desire for various expression by formal experiment as an artist. Somewhat of his excited effort might advance his work, for this reason, he could not help taking long time to begin a new creation. In this period, we need to remark a painting, /Embrrassment within living memory/ over 4m width. It was expressed han-river and landscapes around han-river. on this painting, Broken 'the first bridge of hangang' during the korean war(6‧25) was painted by silk-screen technique. It seems to be a dark shadow, reflected in those days and crossed the present han-river. Basically showing his ideas about space, this had something in common with 'pine tree'. It is not that he express the past as 'atmosphere'. Instead, he united memories of quite different time into space. This is the actual spot where 'an unfamiliar memory' came across 'a concrete familiar memory'. Getting experience from this work, are not historical document. Just I want to say the feeling is that I have met a ghost having much to regret.
On the other hand, in recent work /Dawn-Sujong temple/ is a panorama that he watched in sujong tample at dawn. The Silent clouds floats shallowly, the light gradually increases. They all set in 4m width painting. Before the dawn, the tiny lights are connected by vividness in the morning. This scene harmonize the vitality of nature with our daily life, and shows it always have existed. The air at dawn is cold vitality that awakened us from a sleep, and faint but absolutely soft and bluish. That's a 'concrete and familiar' time for us, the very environment comes across my mind.
Like the meaning of his landscape, now his work have returned to a typical painting. In this, remarkable point is that he has divided places and a subject matter from historical theme and affairs. So landscape, such as a background, stands out in bold relief as theme itself. Now his work is about nature as it is, painting as it is, serious consideration for painting technique, and research for drawing and so forth. Now Landscape which always called his attention to theme or took a background role inserting artist's intention, have turned to an empathy 'for himself' that seek an objective ego as an artist. And at one time, the landscape which was concerned with his purpose, but now it is unconcerned with his purpose and intention, so obviously drawn itself in a state of contemplation. This facts carry conviction under the influence of his painting-technique.
3.
Including this work, when we argue his painting, the remarkable keyword is the very 'diffusion'. Complete organism bursts into particle, and diffuses throughout all directs. Before then, we only have known a property of matter as the sense of touch and sight but by 'diffusion' changing gas, our senses are extended to the sense of smell. Intentionally he has broken his shapes-figure. A shape is close to a narrative. As a general rule, some dangers occurred when one lays a stress on shape. They are arisen from making theme naked on surface, extremely we can find concentrating only a reality of shape, so then cannot help losing the inside truth. Restraining shape, he get some effects. He has changed a concrete site and visual appearance into 'air-flow'. And having stressed subjective emotion for objective site, he have made an unique 'atmosphere'- his expression is "smell". Because of 'diffusion' effect, we can experience as the outline of canvas is prolonged. The diffusing smell may not be locked in a frame of canvas. Because of 'vitality' in his work, this is due to a removed shape, matiere on the lines of conditions, the composition of canvas allowing for time and space. These are harmonized well. For instance, in /smell of pine tree/, Expressed so thick on the abstract shape that seems to be pine tree, the yellow matiere expands so much confusedly, at the same time visually it comes about the sense of smell as a mental image. That is flight of pine pollen.
On the other hand, in /ipo ferry/, compared to this, he try to make a thin brush stroke because of showing the strong current of water. Throwing, spinning and sprinkling his brush, he adds the character for a strong current of water. And this work, he draws the diagonal line from the left top of canvas to the right lower end. The diagonal composition gives an energetic moment-vitality, and expression for the current is as a result of the control in matiere. From this, the canvas is also expanded around. That is, /rain-fog/ is the shape of gas, so its matiere is thick. And /pare and burn/ has a energetic shape spreading quickly. He twist his blush round one´s little finger. Diffusion and vitality as his own technique are as same as 'landscape' obtained by his own view. Through his technical equipment, first of all his work leads to sensory experience. And in a theme of his artwork, we need to take a view of his landscape. A lane and expanded things of nature, not only the road in a huge field, but also in /november/, a lane that is full of forest, that show us the sunlight among the branches informed the time. the very stong colored /a red flower/, /cockscomb/ are now shown that he placed his 'walk' as his own specualtion. Discoveries of nature on his way to walk attract his attention, in a different way comparing with the past viewpoint being as extremely small parts of totality called nature.
4.
"In a well, moonlight is bright, a cloud floats, the sky expands, the blue wind blows ,fall lies. And a man remains." _ In 'self-portrait', by Yoon Dong ju
After this work may be absorbed in his own thought and self-reflection, through a landscape dealing with a space for speculation. If his view was attached to a wide-yard and huge tributaries, presently observing small things and taking a walk, he weaves fragmentary thoughts flashed into his mind recklessly as a step to speculation in his landscape. The time of nature leads ones to speculate. /sunset/ /moonlight/ /early in the morning/ reflect his mental play. especially in /sunset/, expanded things reveal. This never means narrow landscape. Among the branches which magpies alight, the light of the setting sun emphasizes substances of things by a striking contrast. At sunset the contrast between the light of the setting sun and urban buildings helps the urban building getting dark. So at sunset, the hidden truth comes out by the light of nature. Equally by moonlight, confidentially veiled things reveal softly. It evokes one's a mental image. This mental images naturally cannot help but lead to individual impressions and thoughts.
Such being the case, we can experience an optical illusion as enlarged observing targets. Along the passage of time, Landscape that gathers one's own experience is not reduction but extension up to speculation. Certainly as a meditation for individual empathy. Experiences in time and space, provide us with more aggressive attitude to interprete nature. Landscape given historical meaning, suffered external alienation. Now he imports himself into landscape, but it isn't equal to remove the historical meanings, on the contrary he expands nature and his own world through closely connecting.
Now If we could say 'nature comes to him' -nature that based on individually accepted position or individual value opposed to general and reasonable value-, in the concrete, nature as mental images would give a chance to obtain more world to him. Our landscape also might have been an another world as it was. For him, The reason why landscape reaches his mind than figure, why memories of affairs are more important than concrete affairs, and why background gets shown on surface little by little is because he does not want that ideology stays just ideology, does not consider a will as a erroneous daring. By the reasonable psychical distance, He can take calmness to have a distant view of nature. He lives as an artist, and also inspects his attitude of work over and over, until he estimates the time of the next step. For him landscape has been always an organism, unnoticed It may have been his whole world.
2008년 7월 15일 화요일
아트인시티2008, 3차 세미나 발제문
의미규정- ‘공공’은 구체적인 표현이어야 한다.
공공미술 활동은 예술가로 하여금 실제 작업실 및 전시장을 벗어나 외부에서 예술활동을 펼칠 수 있는 한 장을 이끈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활동 범위로서 ‘공공’의 규준과 개념적으로 ‘공공’에 대한 의미에 대해 명확한 규준이 무엇일까 고민해보게 된다.
개념적인 측면에 맞물려 논해보자면, 과연 공공미술을 추진하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해 고려할 필요가 있다. 총체적으로 예술계의 구성인자와 향유층 및 재정적인 요건들과 맞물려, 그것이 혹여나 사회 복지 차원의 투자이든 예술활동에 대한 지지이든 그 비용적 루트가 국가로부터 혹은 기업으로부터 즉 제도이자 권력으로부터 받는 한, 유감스럽게도 공공미술의 주체는 활동가와 예술가-혹은 주민까지 포함하자면-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히 순진한 것이다.
1년 단위의 성과로서 우리는 공공미술의 효과와 예술가의 사회참여를 논할 수 없다. 소외지역들을 찾아 전국적으로 골고루 공공미술 사업을 진행한다할 때, 공공미술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지 않은 지역의 경우 공공미술에 대한 공유된 인식기반 없이 사업기간에 쫓겨 대충 진행되는 사례도 분명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권의 재정에 기반함에도 불구하고 대안적인 미술활동, 공공미술에 대한 타당성과 뚜렷한 목적성을 주장할 수 있으려면 ‘공공’이나 ‘지역 형평성’에 대한 다른 시각들을 모색할 필요가 있겠다 싶다. 이것은 반드시 그럴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서이다,
필자가 초반부터 공공미술에 대해 다소 냉소적 규정을 하게 되는 이유는 그것이 갖는 의의에 동참할 수 없다는 의미는 분명 아니다. 공공미술 논의가 진행된 이래로, 정치적인 입장 및 개인적인 성향을 미루어 보면, 공공미술 활동이야 말로 예술을 통한 사회주의의 실현에 가깝지 않을까하는 생각들을 해본 적이 있다.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예술가는 작업실에 처박혀 있지 않고, 세상으로 나와 곧바로 사람들을 마주한다. 예쁘게 전시장을 꾸며놓고 사람들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작업과정을 날 것으로 드러내면서 고스란히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예술, 그것은 돈이 없어도 우아하게 치장하지 않아도 향유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된다. 하다못해 부담갖지 않고 그냥 지나쳐도 된다. 그렇기에 소외지역을 찾아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술과 일상이 숨을 나눌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공공미술 활동 전 과정들을 나는 분명 동의한다. 그러나 결국 ‘공공’은 ‘제도’를 수반한다. 공공미술 역시 그 지원의 핵이나 선정규준 등에서 이를 도외시할 수는 없다.
이 같은 생각들이 강렬한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제도로서 공공미술을 장려하고 이를 진행하게끔 국가에서 돕는 것은 비단 이에 끊임없이 문제 제기해온 활동가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훌륭하고 적합한’ 기획을 실현할 수 있게끔 돕는 것, ‘가난한’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게끔 장려하고,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예술의 문제로 끌어오는 것, 또한 비슷한 문제로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작업실 혹은 생활공간을 주는 창작스튜디오 등 이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예술계의 상황들이 계속해서 작업하기 좋은 환경들을 이끌어주고 있음을 반증한다. 그러나 실상 여기서 놓치고 있는 바는 제도나 권력이 장려하는 것 속에서 정작 그 수혜를 받게 되는 사람들의 태도는 오히려 제도나 권력이 꿈꾸는 것만도 못하게 흐르는 경우가 있다. 공모전이 주된 경력이 될 수 없는 현실에서 공공미술의 의의에 동의하거나 깨닫기도 전에 작업은 마무리가 되고, 정작 훨씬 좋은 작업실을 가진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굵직한 경력으로 제공되는 창작스튜디오 등 이 모든 상황들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와 비판이 오가지 않는다면, 오히려 활동가들은 제도와 권력의 태도보다 뒤쳐질 것이다.
언제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진정성을 확고히 담은 개별의 ‘태도’이다. 그럴듯하게 포장할 필요 없이 차라리 자신이 지니고 있는 방향과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다. 솔직하지 못한 태도는 제대로 평가받아야 하는 잘못에 대한 ‘합리화’라는 빌미와 계몽적인 생각을 개입시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공공미술이라면 더욱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예술에 대한 의지나 공유된 인식기반이 없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작가의 자발성 & 기획에 대한 모색
현실적으로 제도나 권력이 마련한 틀 속에서 공공미술 활동이 어떤 의의를 갖추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우선적인 ‘자발성’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말하자면 사업공고가 나면 내용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의미 있는 생산지점에 있는 독자적인 시각으로 일종의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공공미술에 있어서 작업적인 부분의 한 의의가 ‘과정’이라면 짧은 사업 기간 속에서 이를 소화하기는 힘들다. 또한 ‘과정’이 중요시된다면 사후 관리 및 지속성의 측면에 대해서 미리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겉보기에 성공적으로 진행된 사례라 하더라도 실상 현장 관리 차원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반짝하고 버려두는 것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의 모습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과 비용적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에 대해 감수하거나 부끄러워 할 수 있는 지점까지 발견할 심적 여지를 갖느냐 갖지 않느냐의 문제는 사업의 성과를 판가름하는 진면목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작가의 자발성은 공공미술에 대한 개별적이고 개념적인 인식 기반을 수반한 상태에서 끌어지는 것이며, 기획 역시도 이에 대한 청사진과 그 반향들을 고려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그것은 일회성이어서는 안 되며 비록 현실적으로 물리적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을 지언 정, 인식적으로는 국부적이고 지속적인 담론작업 및 이에 확산을 통해 사업에 대한 타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기획’으로 공공미술 사업이 집중되는 현시점에서 ‘공공’의 의미는 참여자와 일꾼들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소외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의미는 좋으나 계속해서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공공미술 기획에 대한 태도와 도덕성이 투철하지 않은 경우 그나마 민주적이어야 하는 활동 자체가 대개는 ‘코디네이터’ 혹은 ‘참여작가’라는 명시 하나로 ‘착취’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결국 기획자의 이름 하나로 프로젝트가 판가름되는 상황들은 분명 뼈저리게 고민하고 이에 대한 개선의 여지를 솔직하게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루트의 발견_참여자와 ‘공공’에 대한 의미 재성찰
‘사회적 기업’ 사업은 분명 지역의 예술활동을 장려하고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일조한 측면들이 있다. 이를 통해서 문화적 의지를 가진 젊은이들이 인건비 혹은 작업비 조로 생활에 큰 무리가 가지 않게끔 활동할 수 있는 여지 역시 충분히 마련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실상 사회적 기업이라는 것은 또 다른 조직체를 구성하는 것이기에 하다못해 분배문제에 있어 전적으로 기획자에게 맡기기 보다는 ‘기업’이라고 했을 때는 분명 전문인을 투입하는 것이 적절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여지없이 여기서도 ‘착취’문제는 고스란히 드러났다. 오히려 문화예술기획인이 되고 싶어하던 젊은이들에게 그것은 상처로 자리하거나 혹은 문화예술계에 대한 혐오를 낳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는 여지는 실상 안하느니 못하다라는 불신을 가져왔을 뿐이다. 제도 속에서 공공미술의 문제도 실상 이러한 제반상황에 대한 고려를 피할 길은 없다. 이 논의는 분명 관련 전문인이 투입되어야 한다 혹은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라 기획자의 책임문제가 더 확장될 수밖에 없기에 기획자 선정문제 혹은 기획과정에 있어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지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 말이다.
공공미술은 작가들로 하여금 작업만이 아닌 그 너머의 것과 활동 측면에서 기획의 몫을 고민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작업실과 전시장의 테두리를 넘어서서, 작업할 수 있는 환경 여건이 외부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끔 한 것이다. 그렇기에 형식적으로 이러한 청사진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젝트들이 여러 지역에 할당되고 진행되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더불어 그 무엇보다도 여기서는 앞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함께 수반되고 논의되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한다는 의지가 우선된다.
광주비엔날레 소식지 기고문
The Mission of ‘Minari’
‘매개공간 미나里(이하 매미)’는 지난 2008년 5월 25일 대인시장 맞은 편 한 낡은 창고에서 개관을 하였다. 매미는 2년여 시간 동안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완성되었는데, 창고의 기본 골조를 살린 상태에서 개축하는 과정을 비롯하여 그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문제로 긴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지만, 전적으로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지역 미술인들이 자발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토대를 갖추었기에 나름 탄탄한 의식적 기반이 쌓여온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예술인들의 노동력 그것은 흙바닥에 슬레이트만 남아있던 공간을 현재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게 한 원천으로서 그 힘의 내부에는 지역 미술계 쇄신에 대한 그들의 바람과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이 집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논의 초기에서부터 이 같은 대안적인 공간에 대한 요구는 보다 긍정적인 의미로, 지역예술이 활성화될 수 있는 여지가 작금의 지역예술인들 사이의 벽들이 허물어지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일차적으로 담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군다나 사심이 개입할 수 없는 공간이자 ‘사랑방’ 개념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왔고, 현재는 이에서 더 구체적으로 예술인들의 작업에 일조할 수 있는 질적으로 만족스런 프로그램을 위한 기획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가 한창이다. 그리하여 기획의 자율성은 첫 개관전부터 기존의 형식을 ‘아이디어’로 정의해볼 수 있는 새로운 방식들을 찾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를 구하고자 하는 내부 세미나와 운영위원들의 활발한 모임은 대단히 빈번히 진행되었으며, 이것이 공간의 진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근간으로 지금까지도 역할하고 있다. 매미가 계속해서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게끔, 생겨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고민하고 공유해야 한다는 원칙은 매미의 뿌리가 지역예술의 ‘자생성’을 토대로 하고 있음을 전적으로 반영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자생성’에 대한 요구는 또한 그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운영에 있어서의 논점들을 구하는데 한 뿌리가 되어, 지역의 많은 예술인들이 혹은 예술관계자들이 공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이끌 수 있는 부분으로 ‘후원’체제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적 요소를 모색하는 데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실질적인 자구책이자 동시에 ‘매미’가 애초에 목적해오던 ‘사랑방’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하는 채찍질로서도 충분히 의의가 있다. 더불어 매미가 예술계에 잔잔하고 즐거운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공간이고자 하는 목표에서 많은 분들이 지지해준다면 그것만큼 매미의 진정성을 유지시킬 수 있는 힘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공간은 단순히 실험적 작업을 독려하고 새로운 전시를 시도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기존의 대안적인 공간의 역할에서, 한층 더 나아가 ‘매개적인’ 역할로서 새로운 문화예술공간을 지향한다. 각 장르간 예술, 예술과 생활의 접점, 현장예술과 전시장, 담론과 예술행위 사이에 대한 조화를 꾀하고자 하는 임무를 보자면, 매미의 역할은 ‘대안공간’이라는 용어의 무게를 벗고 그 개념을 안은 채로 ‘매개하는’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리라고 본다.
MIssion.. very possible!!
매미에 오면 새로운 대담형태의 ‘~만 말’ 토크쇼를 관람할 수 있다. 이는 이슈가 되는 주제나 혹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무겁지 않은 형식으로 끌어내어 보는 자리이다. 매미 공간 안에 조명과 빔프로젝터로 꾸며진 작은 잔잔한 무대에서는 다소 시끄러운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이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에 대한 용이한 접근을 모색해보는 시도이다.
지역에서 행하지 않았던 가능한 형식의 전시들을 지속적으로 계발하고 구성하고 있다. 이는 단지 ‘보여주기’를 넘어서 보여주기까지의 과정들을 문맥으로 잡는 전시형태를 구현하는 것이다. 과정들을 선보일 수 있는 전시는 분기별로 나누어 내용을 쌓는 호흡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미나리는 미술 대안공간을 넘어서서, 다양한 장르를 매개하고 소개한다. 지역의 예술활동이나 어떤 비젼을 제시할 수 있는 형태의 프로그램이 구현될 것이다. 음악인의 잼콘서트나, 타 장르간 소통을 주제로 하는 형식의 매개프로그램들이 구성되고 있으며, 이는 주제적으로 또한 형식적으로 새로운 계발을 꾀해보는 실험프로그램으로서 ‘워크숍’에서 시작하여, ‘협업결과물’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과정들을 선보인다.
매주 마지막 주 주말에는 ‘매미(買美)시장’이 진행된다. 매미시장 그 모태는 ‘아트마켓’의 형식에서 출발하지만, 매미에서 진행되는 아트마켓은 일종의 ‘아트 퍼포먼스’로 볼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야외에서 열리는 프로그램 연장선으로 ‘아트쇼’ 프로그램들이 대폭 추가되었다. 금번 7월 26일(토)에 열리는 매미시장은 앞서 2차례 진행된 매미시장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여름밤&다문화&예술&놀이’ 맥락에서 이뤄진다. 또한 공간 안에서는 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업을 PR하고 직거래를 통해 새로운 교환과정을 매개하는 전시가 동시에 펼쳐질 예정이다. 더불어 진작부터 계획 중이었던 ‘예술인 포트폴리오 아카이브’ 설비가 이 시기를 시작점으로 구축될 예정이다.
2008년 7월 9일 수요일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기고글
매미와 함께 ‘Let's play!’
최 윤 정 ● 매개공간 미나里 큐레이터
‘논다’를 청유형으로 바꾼 ‘놀자’, 것도 ‘우리 모두 함께’ 즐겁게 ‘놉시다’. 매개공간 미나리를 소개하는 데 있어서 ‘놀자’라는 표현만큼 쉽게 읽히고 잘 어울리는 것도 없겠다 싶다.
공간을 방문한 많은 분들이 오만가지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면 ‘기대에 넘친’, ‘정말 뭔가를 모르는’, 혹은 ‘의구심을 잔뜩 안은’ 표정들을 지니고 공간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는 한다. 그 수많은 표정들을 지니고 질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묻는 말은 이렇다. “매개공간 미나里가 뭐여요?” 그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뭐하는 곳이에요?” 그나마 공간에 대한 성격을 가시적으로나마 전시공간이라고 판단하신 분들께서는 더 나아가 “제가 조만간 전시할 공간을 찾는데...”등으로 다음 의견들을 묻고는 한다. ‘공간을 대여해주는 것이냐’, ‘공짜로 전시할 수 있는 곳이냐’ 등등. 여하간 그 어느 질문을 듣더라도 답변은 결국 공간이 생겨난 배경에서부터 그래서 이 공간이 자임하고자 하는 부분들을 설파한 후, 관련 프로그램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다.
‘매개공간 미나里’는 축약하여 공식적으로는 ‘매미’, 영문으로는 발음대로 ‘Memispace’로 불린다. 보통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과 유성음의 발음이 긴한 산뜻함을 주는 관계로 ‘미나리’로도 많이 불리고 있다. 매개공간은 기존의 대안공간이 미술관 및 화랑에서 전시할 수 없었던 작가들에게 공간을 제공해주는 의미를 넘어서서, 미술만이 아닌 공연 및 타예술 장르를 접목시키고 예술인들 사이의 교류를 꾀하려는 의미에서 지어진 명칭이다. 또한 장소적으로 재래시장 쪽에 위치하게끔 한 이유 역시도 매개공간의 역할이 생활과 예술이 보다 친밀해질 수 있게끔 서로 연결하고자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또한 여기서 ‘里’는 곳곳에 매미의 바람처럼 많은 문화적 공간과 인프라가, 또한 향유자들이 늘어 예술로 행복해지는 장소, 지점, 곳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나름의 공간 주소임을 함축한다.
‘놀자’는 너무 가벼운 단어로 오인 받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우리가 얼마나 ‘못’ 놀고 사는가를 언제나 다시금 돌이켜 보게끔 한다. 어디 그 뿐인가. 아마도 이 표현 속에는 ‘제발 같이’ 혹은 ‘가능한 부디 같이’라는 의미로 현 지역의 예술계에 정작 필요한 호소도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이를 매개공간 미나里가 대외적으로 제안하고자 하는 문맥들을 전부 포함하는 단어로 우기려는 이상, 다음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이 매미 공간을 소개하는 데에 유효할 것이다.
매미가 ‘함께 놀자’ 하는 이유가 뭘까?
5월 25일 개관한 이래, 매미 프로그램 진행의 빈도수는 꽤 높은 편이었다. 작가들의 자발적인 공간해석을 주제로 하여 1부의 영역표시전과 총 3부 형식으로 마련한 릴레이전은 다소 빠른 호흡으로 열흘마다 교체되면서 현재까지 공간을 채워왔다. 그리고 예술인들 사이의 담화를 위한 ‘만말토크쇼’가 주제를 바꿔가면서 현재까지 총 3회가 진행되어왔다. 그리고 물적교환의 장소로서의 재래시장이라기보다는 감정의 교류, 정보교환의 장소로서의 맥락을 강조하며 지역예술계에 즐거운 바람을 불어넣어보자 기획된 ‘매미시장’이 현재까지 2회 진행되었다. 개관전이 종료되는 7월3일을 기점으로 하여 매미는 현재까지 진행된 각 프로그램들을 평가하면서 부분 수정 보완의 절차를 거쳐 보다 탄탄한 프로그램 일정을 잡을 예정이다.
개관한지 한 달을 조금 넘은 이때에 왜 이렇게까지 숨 가쁘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실상 매미식구들에게도 하나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강박관념으로 인한 것인지, 혹은 사명감인지, 그 어느 경우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는 분명히 곱씹어볼 차례인 것이다.
이곳은 지역 안에서 대안적인 공간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해온 지역 예술인들이 힘을 합쳐 꾸려진 자생적인 공간인 것만큼은 분명 확실하다. 현재까지도 그 일원들이 운영위원으로 역할하면서 계속해서 공간의 정체성과 건강함을 담보할 수 있는 조건으로 ‘자생성’을 꼽고 있다. 아마도 공간 운영위원의 모임 회수가 대단히 빈번한 것은 이제 생겨났고 건강하게 자라야 할 매미가 계속해서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게끔 여러 문제들을 고민하고 공유해야 한다는 인식적 합의가 있으므로 가능할 것이다. 논의 초기에서부터 이 같은 대안적인 공간의 필요성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지역예술이 보다 활성화될 수 있는 여지가 작금의 지역예술인들 사이의 벽들을 허무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군다나 사심이 개입할 수 없는 공간이자 ‘사랑방’ 개념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왔고, 현재는 이를 안고 구체적으로는 예술인들의 작업에도 일조할 수 있는 질적으로 만족스런 프로그램들을 기획하는 공간으로 보다 구체적인 실행방안에 들어선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역할할 수 있는 몇 가지들을 실행하고 수정하면서 완성시켜가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고, 더불어 행여나 기획에 파묻혀 이 공간이 지닌 애초의 바람이었던 ‘사랑방’ 역할을 놓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자 그 무엇보다 중요한 공간의 한 기준이 된다.
뭐하고 놀지?
500명 가까이 되는 분들이 다녀가신 첫 번째 매미시장에서 그 뒷정리는 보통일이 아니었다. 쓰레기를 치우고 정리하는 가운데, 한 동네 어르신이 봉지를 들고 쓰레기 줍는 것을 도와주신 일에서 감동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는 그 한 분이 여러 분들로 확산될 수 있게끔 그들에게 다가가는 프로그램 계발에도 게을리 하지 말자는 결의도 매미의 한 축이 되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공간에 들르시지는 않았지만, 매미가 다양한 형식으로 공간의 정체성을 대변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꾸준히 긴 호흡으로 펼쳐보이는 장소라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인식되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생산되는 많은 것들은 고스란히 참여자들과 더 나아가 지역 예술계가 건강하게 설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밑거름으로 역할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간 내에서 이뤄지는 기획 프로그램들 외에 매미시장은 하나의 거대한 퍼포먼스로 한달에 한번씩 진행되는 행사로 지속시켜갈 예정이다.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꾸려지면서 이에 동조하는 많은 분들이 또한 직접 좌판을 열고 참여할 수 있는 아트마켓 부분, 더불어 앞으로 전문성을 가지면서 예술인들이 자신의 작업을 알릴 수 있는 자리도 될 수 있고 소박한 잔치의 모양을 갖추어 흥겹게 놀 수 있는 자리도 될 수 있으며, 더운 날 그나마 선선한 밤에 작가들의 슬라이드 쇼나 영화제 등을 경험할 수 있는 무대 프로그램은 적어도 매달 바람 쐬고 싶을 때, 삶에 다른 활력을 주고 싶을 때 그 누구나 부담스럽지 않게 들러 즐길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야외에서 작가들의 작품을 구경하고 또한 즐거운 마음으로 구입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은 이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매미 공간 내부는 창고로 쓰여졌던 과거 기억들을 군데군데 담아놓은 장소이다. 기존의 화이트 큐브가 아닌, 그렇기에 그 누구나 재밌다고 여겨질 수 있는 매미공간은 또한 기존에 무거우나 형식적이고 가벼운 얘기들만이 속출했던 모습을 벗어나 가벼운 형식 안에서 깊고 솔직한 얘기가 오갈 수 있게끔 하는 프로그램 계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것이 ‘만말토크쇼’이건, 각 주제를 잡은 ‘교육워크숍’이건 이를 관람하고 비판적으로 조언해줄 수 있는 창구는 그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다. 매미의 운영방식과 더불어 자율적인 기획들이 애초부터 이러한 맥락들을 짚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매미는 그 누구에게라도 ‘우리 함께 놀자’고 손을 내밀 것이다. 그 손을 ‘좀 잡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좀 전 다소 강한 단어로 언급한 ‘강박관념’이나 ‘사명감’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분명 형태상 초조한 마음이지만, 더불어 동시에 친구를 사귀고자 할 때의 마음가짐과 근원적으로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2008년 6월 7일 토요일
월간 퍼블릭 아트, 광주시립미술관 ‘봄날은 간다’ 展리뷰
서사적 구성이 획득한, ‘현재’에 대한 내적인 개입
● 매개공간 미나里(이하 ‘매미’) 큐레이터 최윤정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지난 3월부터 진행 중인 ‘봄날은 간다’는 잔잔한 파문처럼 일상적 피곤함으로 인해 그저 파묻힐 수밖에 없었을 한 속내를 표면으로 잔잔히 비추는 전시였다. 아마도 갓 입학한 대학 신입생들과 정신없게 떠들면서 지나가는 사춘기 소녀들을 보며 간혹은 문득 ‘참 좋은 나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의 내 생애 어느 한 시절을 회상하는 일이 종종 있기에, 누군가의 어느 한 봄날에 대해 관조적인 시선을 대면하도록 하는 이 전시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 같은 효과는 전시의 ‘서사적 구성’에서 기인한 바가 더욱 크다. 그것은 공유되지 않는 텍스트로 전시의 맥락을 강요하기보다는, 픽션 형식으로 한 상황을 설정하며 시작된다. 중년의 한 남성이 데자뷰처럼 경험하는, 과거가 현재에 중첩되는 순간, 그 순간을 매개하는 것은 바로 그 시절 안에 존재하는 그의 곁을 지나가던 여고생들이었다.
이러한 서사적 기획의도와 마주한 시 한편을 읽고 전시장에 들어서면 봄이라기보다는 온 계절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이 일반적인 구성으로 공간을 채우고 있다. 그 길을 따라 두 번째 전시관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좀 달라진다. 파편화된 여성 신체가 물 속에 잠긴 듯한 혹은 지하에서 지상으로 솟는 듯한 작업이 정면에 마주한다. 그리고 괴물의 모습을 통해 중년이 지난 자기감정을 대변한 작업이 그 스케일과 괴이함으로 인해 시각적으로 대단히 강하게 다가온다. 정말 괴물이었을까? 자신의 신체 각 부분 재조합을 통해 작가는 ‘에일리언’같은 괴물을 만들어내었다. 그것이 행여나 보편적인 사유라면, 그 즈음 정말 우리는 자신을 괴물이라고 느끼게 될까? 이제 더 이상 구겨진 편지와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휘날리는 풍경은 이제 단순히 ‘봄’이란 것이 그저 ‘생동’, ‘시작’이 아닌 시간의 흐름과 시절의 무색함까지 다분히 내포하고 있음을 해석해 보게끔 한다. 그것은 애처로운 심상이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그곳에서 난 언젠가 힘없이 우울해 마지않던 한 중년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야말로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 했던가, 2관 전시는 이같이 대단히 역설적인 구성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제 애처로운 마음을 지니고 조용한 발걸음으로 숲의 오솔길을 따라 깊숙한 숲 속을 걷듯이 마지막 전시장에 들어가면, 이내 곧 상황은 달라진다. 가정에서 일상을 살고 있는 그녀들이 ‘결국 이런 거였어’ 라며 입을 열기 시작하는 것이다. 불편한 상황들, 너무나도 익숙한 광경이기에 그래서 더욱 불편했던 것들. 그것은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중년여성의 모습이다. 정신없이 살아온 세월 이제야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을 무렵 자기 존재에 무력해지는 바로 그 시점, 그야말로 ‘미치고 팔딱 뛰는’ 순간이라면 이해가 될까?
격정의 감정이입이 끝나기도 전에, 황당하게도 생명의 원천으로서 여성 본연의 가치와 여성성,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작업이 눈에 들어온다. 이 격정의 감정은 바로 현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드물게 있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인생을 관조할 것, 자기 내면의 파편들을 치유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현재의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진행 중이다. 그것이 괴물이건, 미친년이건 행여나 구겨진 무엇이건 간에 진실은 바로 그것이다. 오색 비가 흩뿌려지는 배경 속에 위치한 ‘유년기 흑백 졸업사진’은 관조하라는 강요를 오히려 더욱 강한 색감을 통해 시각적으로 상쇄시켜주고 있었다. 뭉클한, 결국 그 한때를 연상하고 그리워하는 격앙을 만들어주며 이제 나가려는 관객들의 발을 잠시 붙들어 놓는 것이다. 이 외에도 전시의 서사적 구성에서 어느 한 봄날에 대한 느낌과 성찰에 대한 시각적 맥락을 이어주는 작품들이 즐비했기에 전시는 나름의 문맥을 전달하는데 효과적이었다. 이 전시는 분명 지나간 봄날, 어느 한 때 대단히 푸르렀던 날에 대한 기억을 통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현재의 한 부분들을 더욱 감정적으로 극대화시키거나 혹은 ‘관조적’ 장치를 통해 합리화해도 좋다는 허가를 내려주고 있다. 그 서사, 바로 그 시나리오는 인간이 ‘애잔함’, ‘비애’, ‘그리움’의 감정을 느끼는 이상, 보편적으로 마땅히 경험하게 되는 일의 일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5월 27일 화요일
매개공간 미나里 개관기념전/// 자/발/적/ 영역표시 릴레이展-'滿새(사이)'
자/발/적/ 영역표시 릴레이展-'滿새(사이)'
기획의도
많은 사연이 오갔던 공간, '매개공간 미나里'가 드디어 개관한다. 이 공간을 이제 본격적으로 활용하기에 앞서 다양한 전시기능을 갖춘 공간으로서 어떤 공간해석들이 가능한지를 작가들의 작품배치에 대한 ‘욕망’과 결부시켜 진행할 예정이다. 그리하여 정제된 일반 갤러리에서의 배치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활용이 가능한 배치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영역표시’를 주요 모토로 한 전시가 진행된다. 참여작가들은 작품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이후 작품을 놓고 싶은 위치에 영역을 표시한다. 이 표시는 서로가 겹칠 수도 있고, 다른 작가가 보지 못한 것을 새로이 발견한다는 측면에서 작가들에게 공간에 대한 ‘희열’을 맛보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전시는 작품제작으로 일관해왔던 작가적 역할 뿐만이 아닌, 직접적으로 공간에 대한 그들의 '욕망’을 ‘날 것’으로 표현하게 되는 장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서 전시공간으로서의 ‘매미’의 활용이 다소 거칠더라도, 그것이 ‘영역표시’의 이미지로 시각화되는 한 축을 마련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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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는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 층에서 고려하였다. 각각이 한 지역의 꼭지점이 될 수 있는 활동력을 보여주는 작가들로서, 작업의 이유가 명확한 신생 젊은 작가 및 공간이 지향하는 풍경을 작업적 내용으로 지니고 있거나, 재료 및 기법 상에서 공간에 유효한 설치작업들, 지역 예술계 커뮤니티에 대한 나름의 비판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는 작가 층으로 하여 성별로 3인씩 섭외하였다.
5월 마지막 주 오픈 5일간은 작가들이 진행한 영역표시를 그대로 전시한다. 이후 각 열흘간 총 3회에 걸쳐 2인전 형식으로 로테이션되면서, 작가가 자신이 표시한 영역 위에 작품을 가져다 놓는 방식으로 약 30일간 전시가 진행된다. 이때 자신이 영역표시한 곳 외에 작품을 두게 되는 경우를 고려할 수 있는데, 이 경우 기획자는 ‘영역표시’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패널티로써 일종의 표식을 취한다. 이 표식을 통해 기획자와 작가의 공간점유 및 해석에 대한 욕망의 한 단면이 시각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 속에는 또한 작가와 기획자 간 협업체계로 진행한다는 맥락에서 작가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을 부여하되, 전체적인 윤곽을 잡고 있는 자로서 기획자의 몫과 책임을 상정해보고자 하는 의도도 분명 포함된다 .
滿새(사이)' 전시제목에 대한 사연
자/발/적 영역표시 릴레이展-'滿새(사이)' (이하 ‘만새전’) 은 작가의 자발적인 영역표시와 2인전 릴레이 방식으로 진행되는 전시형식을 직접적으로 알려준다.
만새는 전시의 내용이다.
‘滿’은 공간이 채워진다는 의미로 많은 이들이 와서 담소할 수 있는 장소로서 ‘온기’가 차오르는 것을 연상할 수도 있고, 공간에 작업들이 채워진다는 의미를 안고 있다.
‘새’는 ‘사이’의 준말로서 ‘빈공간 곳곳’을 의미하기도 하고 공간이 추구해야 할 한 축, 지역미술계의 반목과 갈등을 포섭하는 ‘복덕방’내지는 ‘사랑방’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의지를 순화한 표현이자, 따뜻한 관계 설정의 단어로서 설정된 것이다. 또한 ‘滿새’는 ‘만세!’의 발음유희로 ‘매개공간 미나里’에 대한 격려를 요청하는 자축의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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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말’토크의 의미'~만 말'은 ‘~’ 속에 어떤 단어나 상황을 넣던지 간에 유머러스한 한정이 통용될 수 있는 일종의 문법체계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워크숍 및 포럼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대중화된 방식의 익숙한 대담 형태인 토크쇼의 형식과 연동되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형식을 차용하여 진행자의 몫에 따라 참여작가와의 일반적이면서도 일반적이지 않은 대화들을 이끌어 갈 예정이다. 이는 영상으로 촬영되어 매미홈페이지에 삽입된다. 더불어 토크쇼가 끝난 뒤에는 모자란 내용들을 보충하거나 교류를 위한 공간에서 진행할 수 있는 초/간/단 다과-‘매미’bar with '生'파티가 준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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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 소개
이호동은 조선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1회의 개인전을 포함하여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주요작업으로는 ‘청소12 퍼포먼스’(2002) 및 ‘마음 속에 내가 울고 있어요’(2002), ‘소+묘 퍼포먼스’(2003)와 ‘1+상’(2003) 등의 퍼포먼스를 진행하였고, 스톤앤워터 ‘웰컴 투 작업실’(2003)에 참여하였다. 현재 북아트 연구소 및 Group fusion의 멤버로 활동 중이다.
장호현은 조선대 미대에서 판화미디어를 전공하였다. 최근 ‘무자년 기획전-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신세계갤러리,2008)을 포함하여, 영아트페어&옥션전(롯데화랑), '아이콘-landscape+전’(롯데화랑,2007), ‘아이콘-거시기씨 오르가즘양을 꼬셔봐!’(지산갤러리,2006) 외 중흥동 프로젝트(2006 아트인시티)에 아이콘 그룹으로 참여하였다. 현재도 프로젝트 그룹 아이콘 멤버로 활동 중이다. .
조광석은 조선대 미대에서 조소를 전공하였다. 2회의 개인전을 포함하여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는데, 주요단체전으로는 청년작가초대전 ‘48의 보행’(옥과미술관,2008)을 비롯하여, 환경미술제 ‘에코토피아를 향하여’(옥과미술관/롯데갤러리,2005), ‘생로병사’(광주시립미술관 분관,2005), ‘즐거운 상상-조광석, 양문기 2인전’(롯데갤러리,2004), ‘안빈낙도’(옥과미술관,2004), ‘광주청년미술작가’(옥과미술관, 2003) 등이 있다. 현재 백학회와 광주청년작가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 임남진은 조선대 미대에서 회화를 전공하였다. 개인전을 비롯하여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으며, 주요 단체전으로는 ‘온고이지신展-‘잃어버린 퍼즐을 찾기’(대전시립미술관,2007),‘투영-한국현대미술’(대만국립미술관,2006),‘코리아통일미술전’(광주시립미술관,2006) 및 ‘화가의 지갑’(2005), ‘광주-아홉 개의 창(窓)’ (5?18문화회관, 2005), ‘우리시대 탱화 2인전’(2000), ‘JALLA전’(일본동경미술관,2000) 등이 있다. 대한민국불교미술대전(1998) 및 제 4회 신세계미술제(2001)에서 수상하였다. 현재 전국민족 미술인연합, 광주 민미협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광주시립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2008)로 활동하고 있다.
. .정운학은 목포대와 프랑크푸르트 국립미술대학을 졸업하였다. 독일에서 4차례의 개인전을 가졌고,국내에서 2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봄날은 간다’(광주시립미술관,2008) 및 ‘광주미술 현황과 전망전’(서울 인사아트센터, 광주 신세계갤러리),‘광주시립미술관 창작스튜디오전’(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분관), ‘국제현대미술 광주아트비젼’(광주시립미술관), ‘중국송장문화예술축제Art Linking-북경’, ‘즐거운 그림나라’(광주시립미술관 어린이갤러리), ‘용봉제를 바라보다’(구 도청), ‘중흥동공공미술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광주신세계 미술상(2002)을 수상하였고, 광주시립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2006-2007)로 활동하였다.
. 주라영은 전남대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하고, 인도 산티니케탄 Visva-Bharati에서 조소와 벽화를 전공하였다. 2회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는데, 주요단체전으로는 ‘미술과 놀이’(예술의 전당, 2007)을 비롯하여 포천아시아비엔날레 특별전(2007), 제 2회 광주비엔날레 조각파트 공공미술프로젝트(1997) 그 외에도 개관 10주년 기념전-상상력발전소’(울산 현대예술관, 2008) 등에 참여하였다. 현재 광주미협 및 남도조각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전남대와 광주여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자/발/적 영역표시 릴레이展 ‘滿새(사이)’ 일정
5월 25일(일)~5월 29일(목) 자발적 영역표시 공간해석전
5월 31일(토)~6월 9일 (월) 제/대/로 영역점유 릴레이전 1부- 이호동 & 장호현
6월 12일(목)~6월 21일(토) 제/대/로 영역점유 릴레이전 2부- 임남진 & 조광석
6월 24일(화)~7월 3일 (목) 제/대/로 영역점유 릴레이전 3부- 정운학 & 주라영
~만 말 토크’ 안내 매 '~만 말' 토크는 저녁 7시에 진행되며, 끝난 직후 ‘매미’bar with '生' 파티가 진행된다. 금번 만말토크의 주제는 ‘무슨 작업??’이다. 개관전의 모토가 ‘공간에 대한 해석’이기에 그로부터 작가와 개별 작품에 대해서 소외되거나 놓칠 수 있는 부분들을 중심으로 하여 자리를 마련한다.
6월 7일 (토) 이호동과 장호현 -이하 이장 ‘만말’
6월 14일(토) 임남진과 조광석 -이하 임조 ‘만말’
6월 24일(화) 정운학과 주라영 -이하 정주 ‘만말’
(pm 7:00~8:30 ~만 말 토크 / pm 8:30~ ‘매미’bar with '生' 파티)
2008년 5월 11일 일요일
창작스튜디오와 오픈스튜디오 논의에 대한 토론문
‘섬세한 기획’은 ‘창작’이라는 문화적 행위에 대한 순수한 입장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문화란 생동이다. 생동은 스며듦과 발현의 경계로부터 나타나는 삶의 유영이다. 삶이라는 것은 각각의 주체를 지니고 있으며, 이 주체는 바로 살아가는, ‘문화’라는 자연스런 흐름을 구성하는 우리네 인생들이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문화란 행여나 주입되더라도 주체적인 수용방식을 통해 자생성의 근원을 제공할 수도 있고, 그 자체가 자생적인 토대 속에서 생겨나기도 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나는 문화라는 큰 틀을 고민하면서 지금의 창작촌 논의에 대한 우려 내지는 다른 시각을 덧붙여보고자 한다.
폐교 활용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각 공립 미술관련 기관 및 지자체의 창작스튜디오 설립은 현재 최고조로 붐을 이룬 듯 보인다. 실상 미술계 쪽에서 창작스튜디오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작가들이 스스로를 프로모션해야 하는 시대적인 흐름과 맞물려 각종 미술대전이 지녀왔던 권위를 대체하고 있고, 미술계 외곽에서는 그것이 이미지 쇄신 및 문화산업의 문맥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한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는 창작촌을 건립하거나 참여하거나 혹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확언하는 분들께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이를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증적인 답변이 있는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하는 이유가 스스로에게 합당한가’, ‘오픈스튜디오의 목적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붐은 언젠가는 꺼질 수밖에 없다. 기관주도형으로 창작스튜디오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 전문가도 그리고 일정한 프로그램도 없고 또한 외적인 형식을 갖추어 놓은 것 외에 창작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과 이해를 견지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붐이라면 지속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관행적인 풍토로 정착되어 파행을 이끌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목표를 위해 도구적으로 창작스튜디오에 접근하는 경우, 이는 당연히 창작활동에 대한 몰이해에서 출발하는 한계로 인해 실질적으로 작가들에게 분명 제공해야 할 부분들을 놓칠 수밖에 없다.
물론 나의 접근은 일편 ‘우려’의 시각에 한한다. 왠지 창작촌의 논의와 오픈스튜디오의 논의를 지켜보다 보면 접근 자체가 상당히 순진하고 그 중심에 ‘작가’와 ‘창작’에 대한 고민이 놓여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또한 작가들에게서도 그것이 미술대전 수상 못잖은 쓸만한 경력 한 줄로서 소용되는 것에 만족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낄 때가 있다. 창작촌의 임무와 오픈스튜디오의 적절한 방향성이 순수하게 창작기반에 관련한 고민들로서 인식적인 합의 부문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는 그 시작이야 어떻든 간에 자생적으로 생성되고 일궈진다. 그렇기에 문화적 행위인 ‘창작’ 역시도 창작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자생적인 터전에서 일구어졌을 때 행위 자체가 그리고 행위 주체 스스로가 이에 대한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2008년 5월 25일 개관을 앞두고 있는 매미(매개공간 미나리)는 기본 골조를 살린 상태에서 창고 건물을 개조하여 마련되었다. 완성되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지만 공사는 전적으로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지역 미술인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을 기반으로 진행되어 왔다. 매미는 지역의 보수적인 경계 및 한계를 뛰어넘고 예술가들 스스로가 자신이 원하는 보다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역할들을 진행할 것이다. 더불어 애초의 태생 자체가 작가들의 자발적인 측면과 우여곡절을 겪은 자생적인 생성의 기간을 거쳐 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요소들을 정체성으로 담아낼 수 있는 기획 프로그램들이 공간을 채워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다시 말해 그 시작은 공간 태생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이미 출발한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비단 창작스튜디오, 레지던스 프로그램 및 오픈스튜디오 등의 기획들에 있어서 애초의 시작 논의에서부터 예술가의 ‘창작’ 행위를 끌어내고 담론화할 수 있는 중심을 공간 및 프로그램의 특성 및 정체성으로 유도해야 하고, 이를 중심으로 하여 작가들 스스로 ‘자발성’을 중심으로 하여 ‘창작’을 도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저변 의식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