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적 구성이 획득한, ‘현재’에 대한 내적인 개입
● 매개공간 미나里(이하 ‘매미’) 큐레이터 최윤정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지난 3월부터 진행 중인 ‘봄날은 간다’는 잔잔한 파문처럼 일상적 피곤함으로 인해 그저 파묻힐 수밖에 없었을 한 속내를 표면으로 잔잔히 비추는 전시였다. 아마도 갓 입학한 대학 신입생들과 정신없게 떠들면서 지나가는 사춘기 소녀들을 보며 간혹은 문득 ‘참 좋은 나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의 내 생애 어느 한 시절을 회상하는 일이 종종 있기에, 누군가의 어느 한 봄날에 대해 관조적인 시선을 대면하도록 하는 이 전시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 같은 효과는 전시의 ‘서사적 구성’에서 기인한 바가 더욱 크다. 그것은 공유되지 않는 텍스트로 전시의 맥락을 강요하기보다는, 픽션 형식으로 한 상황을 설정하며 시작된다. 중년의 한 남성이 데자뷰처럼 경험하는, 과거가 현재에 중첩되는 순간, 그 순간을 매개하는 것은 바로 그 시절 안에 존재하는 그의 곁을 지나가던 여고생들이었다.
이러한 서사적 기획의도와 마주한 시 한편을 읽고 전시장에 들어서면 봄이라기보다는 온 계절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이 일반적인 구성으로 공간을 채우고 있다. 그 길을 따라 두 번째 전시관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좀 달라진다. 파편화된 여성 신체가 물 속에 잠긴 듯한 혹은 지하에서 지상으로 솟는 듯한 작업이 정면에 마주한다. 그리고 괴물의 모습을 통해 중년이 지난 자기감정을 대변한 작업이 그 스케일과 괴이함으로 인해 시각적으로 대단히 강하게 다가온다. 정말 괴물이었을까? 자신의 신체 각 부분 재조합을 통해 작가는 ‘에일리언’같은 괴물을 만들어내었다. 그것이 행여나 보편적인 사유라면, 그 즈음 정말 우리는 자신을 괴물이라고 느끼게 될까? 이제 더 이상 구겨진 편지와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휘날리는 풍경은 이제 단순히 ‘봄’이란 것이 그저 ‘생동’, ‘시작’이 아닌 시간의 흐름과 시절의 무색함까지 다분히 내포하고 있음을 해석해 보게끔 한다. 그것은 애처로운 심상이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그곳에서 난 언젠가 힘없이 우울해 마지않던 한 중년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야말로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 했던가, 2관 전시는 이같이 대단히 역설적인 구성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제 애처로운 마음을 지니고 조용한 발걸음으로 숲의 오솔길을 따라 깊숙한 숲 속을 걷듯이 마지막 전시장에 들어가면, 이내 곧 상황은 달라진다. 가정에서 일상을 살고 있는 그녀들이 ‘결국 이런 거였어’ 라며 입을 열기 시작하는 것이다. 불편한 상황들, 너무나도 익숙한 광경이기에 그래서 더욱 불편했던 것들. 그것은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중년여성의 모습이다. 정신없이 살아온 세월 이제야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을 무렵 자기 존재에 무력해지는 바로 그 시점, 그야말로 ‘미치고 팔딱 뛰는’ 순간이라면 이해가 될까?
격정의 감정이입이 끝나기도 전에, 황당하게도 생명의 원천으로서 여성 본연의 가치와 여성성,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작업이 눈에 들어온다. 이 격정의 감정은 바로 현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드물게 있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인생을 관조할 것, 자기 내면의 파편들을 치유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현재의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진행 중이다. 그것이 괴물이건, 미친년이건 행여나 구겨진 무엇이건 간에 진실은 바로 그것이다. 오색 비가 흩뿌려지는 배경 속에 위치한 ‘유년기 흑백 졸업사진’은 관조하라는 강요를 오히려 더욱 강한 색감을 통해 시각적으로 상쇄시켜주고 있었다. 뭉클한, 결국 그 한때를 연상하고 그리워하는 격앙을 만들어주며 이제 나가려는 관객들의 발을 잠시 붙들어 놓는 것이다. 이 외에도 전시의 서사적 구성에서 어느 한 봄날에 대한 느낌과 성찰에 대한 시각적 맥락을 이어주는 작품들이 즐비했기에 전시는 나름의 문맥을 전달하는데 효과적이었다. 이 전시는 분명 지나간 봄날, 어느 한 때 대단히 푸르렀던 날에 대한 기억을 통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현재의 한 부분들을 더욱 감정적으로 극대화시키거나 혹은 ‘관조적’ 장치를 통해 합리화해도 좋다는 허가를 내려주고 있다. 그 서사, 바로 그 시나리오는 인간이 ‘애잔함’, ‘비애’, ‘그리움’의 감정을 느끼는 이상, 보편적으로 마땅히 경험하게 되는 일의 일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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