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15일 화요일

아트인시티2008, 3차 세미나 발제문

루트로서의 공공미술, 참여에 대한 재성찰

글 ● 최윤정


의미규정- ‘공공’은 구체적인 표현이어야 한다.

공공미술 활동은 예술가로 하여금 실제 작업실 및 전시장을 벗어나 외부에서 예술활동을 펼칠 수 있는 한 장을 이끈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활동 범위로서 ‘공공’의 규준과 개념적으로 ‘공공’에 대한 의미에 대해 명확한 규준이 무엇일까 고민해보게 된다.
개념적인 측면에 맞물려 논해보자면, 과연 공공미술을 추진하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해 고려할 필요가 있다. 총체적으로 예술계의 구성인자와 향유층 및 재정적인 요건들과 맞물려, 그것이 혹여나 사회 복지 차원의 투자이든 예술활동에 대한 지지이든 그 비용적 루트가 국가로부터 혹은 기업으로부터 즉 제도이자 권력으로부터 받는 한, 유감스럽게도 공공미술의 주체는 활동가와 예술가-혹은 주민까지 포함하자면-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히 순진한 것이다.
1년 단위의 성과로서 우리는 공공미술의 효과와 예술가의 사회참여를 논할 수 없다. 소외지역들을 찾아 전국적으로 골고루 공공미술 사업을 진행한다할 때, 공공미술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지 않은 지역의 경우 공공미술에 대한 공유된 인식기반 없이 사업기간에 쫓겨 대충 진행되는 사례도 분명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권의 재정에 기반함에도 불구하고 대안적인 미술활동, 공공미술에 대한 타당성과 뚜렷한 목적성을 주장할 수 있으려면 ‘공공’이나 ‘지역 형평성’에 대한 다른 시각들을 모색할 필요가 있겠다 싶다. 이것은 반드시 그럴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서이다,
필자가 초반부터 공공미술에 대해 다소 냉소적 규정을 하게 되는 이유는 그것이 갖는 의의에 동참할 수 없다는 의미는 분명 아니다. 공공미술 논의가 진행된 이래로, 정치적인 입장 및 개인적인 성향을 미루어 보면, 공공미술 활동이야 말로 예술을 통한 사회주의의 실현에 가깝지 않을까하는 생각들을 해본 적이 있다.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예술가는 작업실에 처박혀 있지 않고, 세상으로 나와 곧바로 사람들을 마주한다. 예쁘게 전시장을 꾸며놓고 사람들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작업과정을 날 것으로 드러내면서 고스란히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예술, 그것은 돈이 없어도 우아하게 치장하지 않아도 향유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된다. 하다못해 부담갖지 않고 그냥 지나쳐도 된다. 그렇기에 소외지역을 찾아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술과 일상이 숨을 나눌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공공미술 활동 전 과정들을 나는 분명 동의한다. 그러나 결국 ‘공공’은 ‘제도’를 수반한다. 공공미술 역시 그 지원의 핵이나 선정규준 등에서 이를 도외시할 수는 없다.
이 같은 생각들이 강렬한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제도로서 공공미술을 장려하고 이를 진행하게끔 국가에서 돕는 것은 비단 이에 끊임없이 문제 제기해온 활동가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훌륭하고 적합한’ 기획을 실현할 수 있게끔 돕는 것, ‘가난한’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게끔 장려하고,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예술의 문제로 끌어오는 것, 또한 비슷한 문제로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작업실 혹은 생활공간을 주는 창작스튜디오 등 이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예술계의 상황들이 계속해서 작업하기 좋은 환경들을 이끌어주고 있음을 반증한다. 그러나 실상 여기서 놓치고 있는 바는 제도나 권력이 장려하는 것 속에서 정작 그 수혜를 받게 되는 사람들의 태도는 오히려 제도나 권력이 꿈꾸는 것만도 못하게 흐르는 경우가 있다. 공모전이 주된 경력이 될 수 없는 현실에서 공공미술의 의의에 동의하거나 깨닫기도 전에 작업은 마무리가 되고, 정작 훨씬 좋은 작업실을 가진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굵직한 경력으로 제공되는 창작스튜디오 등 이 모든 상황들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와 비판이 오가지 않는다면, 오히려 활동가들은 제도와 권력의 태도보다 뒤쳐질 것이다.
언제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진정성을 확고히 담은 개별의 ‘태도’이다. 그럴듯하게 포장할 필요 없이 차라리 자신이 지니고 있는 방향과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다. 솔직하지 못한 태도는 제대로 평가받아야 하는 잘못에 대한 ‘합리화’라는 빌미와 계몽적인 생각을 개입시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공공미술이라면 더욱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예술에 대한 의지나 공유된 인식기반이 없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작가의 자발성 & 기획에 대한 모색

현실적으로 제도나 권력이 마련한 틀 속에서 공공미술 활동이 어떤 의의를 갖추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우선적인 ‘자발성’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말하자면 사업공고가 나면 내용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의미 있는 생산지점에 있는 독자적인 시각으로 일종의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공공미술에 있어서 작업적인 부분의 한 의의가 ‘과정’이라면 짧은 사업 기간 속에서 이를 소화하기는 힘들다. 또한 ‘과정’이 중요시된다면 사후 관리 및 지속성의 측면에 대해서 미리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겉보기에 성공적으로 진행된 사례라 하더라도 실상 현장 관리 차원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반짝하고 버려두는 것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의 모습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과 비용적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에 대해 감수하거나 부끄러워 할 수 있는 지점까지 발견할 심적 여지를 갖느냐 갖지 않느냐의 문제는 사업의 성과를 판가름하는 진면목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작가의 자발성은 공공미술에 대한 개별적이고 개념적인 인식 기반을 수반한 상태에서 끌어지는 것이며, 기획 역시도 이에 대한 청사진과 그 반향들을 고려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그것은 일회성이어서는 안 되며 비록 현실적으로 물리적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을 지언 정, 인식적으로는 국부적이고 지속적인 담론작업 및 이에 확산을 통해 사업에 대한 타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기획’으로 공공미술 사업이 집중되는 현시점에서 ‘공공’의 의미는 참여자와 일꾼들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소외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의미는 좋으나 계속해서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공공미술 기획에 대한 태도와 도덕성이 투철하지 않은 경우 그나마 민주적이어야 하는 활동 자체가 대개는 ‘코디네이터’ 혹은 ‘참여작가’라는 명시 하나로 ‘착취’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결국 기획자의 이름 하나로 프로젝트가 판가름되는 상황들은 분명 뼈저리게 고민하고 이에 대한 개선의 여지를 솔직하게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루트의 발견_참여자와 ‘공공’에 대한 의미 재성찰

‘사회적 기업’ 사업은 분명 지역의 예술활동을 장려하고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일조한 측면들이 있다. 이를 통해서 문화적 의지를 가진 젊은이들이 인건비 혹은 작업비 조로 생활에 큰 무리가 가지 않게끔 활동할 수 있는 여지 역시 충분히 마련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실상 사회적 기업이라는 것은 또 다른 조직체를 구성하는 것이기에 하다못해 분배문제에 있어 전적으로 기획자에게 맡기기 보다는 ‘기업’이라고 했을 때는 분명 전문인을 투입하는 것이 적절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여지없이 여기서도 ‘착취’문제는 고스란히 드러났다. 오히려 문화예술기획인이 되고 싶어하던 젊은이들에게 그것은 상처로 자리하거나 혹은 문화예술계에 대한 혐오를 낳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는 여지는 실상 안하느니 못하다라는 불신을 가져왔을 뿐이다. 제도 속에서 공공미술의 문제도 실상 이러한 제반상황에 대한 고려를 피할 길은 없다. 이 논의는 분명 관련 전문인이 투입되어야 한다 혹은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라 기획자의 책임문제가 더 확장될 수밖에 없기에 기획자 선정문제 혹은 기획과정에 있어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지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 말이다.
공공미술은 작가들로 하여금 작업만이 아닌 그 너머의 것과 활동 측면에서 기획의 몫을 고민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작업실과 전시장의 테두리를 넘어서서, 작업할 수 있는 환경 여건이 외부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끔 한 것이다. 그렇기에 형식적으로 이러한 청사진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젝트들이 여러 지역에 할당되고 진행되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더불어 그 무엇보다도 여기서는 앞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함께 수반되고 논의되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한다는 의지가 우선된다.

광주비엔날레 소식지 기고문

예술에 대한 대안적-매개적 역할을 자임하는 공간_매개공간 미나里를 소개합니다

The Mission of ‘Minari’

글 ● 최윤정

‘매개공간 미나里(이하 매미)’는 지난 2008년 5월 25일 대인시장 맞은 편 한 낡은 창고에서 개관을 하였다. 매미는 2년여 시간 동안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완성되었는데, 창고의 기본 골조를 살린 상태에서 개축하는 과정을 비롯하여 그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문제로 긴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지만, 전적으로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지역 미술인들이 자발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토대를 갖추었기에 나름 탄탄한 의식적 기반이 쌓여온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예술인들의 노동력 그것은 흙바닥에 슬레이트만 남아있던 공간을 현재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게 한 원천으로서 그 힘의 내부에는 지역 미술계 쇄신에 대한 그들의 바람과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이 집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논의 초기에서부터 이 같은 대안적인 공간에 대한 요구는 보다 긍정적인 의미로, 지역예술이 활성화될 수 있는 여지가 작금의 지역예술인들 사이의 벽들이 허물어지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일차적으로 담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군다나 사심이 개입할 수 없는 공간이자 ‘사랑방’ 개념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왔고, 현재는 이에서 더 구체적으로 예술인들의 작업에 일조할 수 있는 질적으로 만족스런 프로그램을 위한 기획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가 한창이다. 그리하여 기획의 자율성은 첫 개관전부터 기존의 형식을 ‘아이디어’로 정의해볼 수 있는 새로운 방식들을 찾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를 구하고자 하는 내부 세미나와 운영위원들의 활발한 모임은 대단히 빈번히 진행되었으며, 이것이 공간의 진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근간으로 지금까지도 역할하고 있다. 매미가 계속해서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게끔, 생겨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고민하고 공유해야 한다는 원칙은 매미의 뿌리가 지역예술의 ‘자생성’을 토대로 하고 있음을 전적으로 반영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자생성’에 대한 요구는 또한 그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운영에 있어서의 논점들을 구하는데 한 뿌리가 되어, 지역의 많은 예술인들이 혹은 예술관계자들이 공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이끌 수 있는 부분으로 ‘후원’체제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적 요소를 모색하는 데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실질적인 자구책이자 동시에 ‘매미’가 애초에 목적해오던 ‘사랑방’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하는 채찍질로서도 충분히 의의가 있다. 더불어 매미가 예술계에 잔잔하고 즐거운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공간이고자 하는 목표에서 많은 분들이 지지해준다면 그것만큼 매미의 진정성을 유지시킬 수 있는 힘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공간은 단순히 실험적 작업을 독려하고 새로운 전시를 시도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기존의 대안적인 공간의 역할에서, 한층 더 나아가 ‘매개적인’ 역할로서 새로운 문화예술공간을 지향한다. 각 장르간 예술, 예술과 생활의 접점, 현장예술과 전시장, 담론과 예술행위 사이에 대한 조화를 꾀하고자 하는 임무를 보자면, 매미의 역할은 ‘대안공간’이라는 용어의 무게를 벗고 그 개념을 안은 채로 ‘매개하는’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리라고 본다.

MIssion.. very possible!!

매미에 오면 새로운 대담형태의 ‘~만 말’ 토크쇼를 관람할 수 있다. 이는 이슈가 되는 주제나 혹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무겁지 않은 형식으로 끌어내어 보는 자리이다. 매미 공간 안에 조명과 빔프로젝터로 꾸며진 작은 잔잔한 무대에서는 다소 시끄러운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이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에 대한 용이한 접근을 모색해보는 시도이다.
지역에서 행하지 않았던 가능한 형식의 전시들을 지속적으로 계발하고 구성하고 있다. 이는 단지 ‘보여주기’를 넘어서 보여주기까지의 과정들을 문맥으로 잡는 전시형태를 구현하는 것이다. 과정들을 선보일 수 있는 전시는 분기별로 나누어 내용을 쌓는 호흡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미나리는 미술 대안공간을 넘어서서, 다양한 장르를 매개하고 소개한다. 지역의 예술활동이나 어떤 비젼을 제시할 수 있는 형태의 프로그램이 구현될 것이다. 음악인의 잼콘서트나, 타 장르간 소통을 주제로 하는 형식의 매개프로그램들이 구성되고 있으며, 이는 주제적으로 또한 형식적으로 새로운 계발을 꾀해보는 실험프로그램으로서 ‘워크숍’에서 시작하여, ‘협업결과물’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과정들을 선보인다.
매주 마지막 주 주말에는 ‘매미(買美)시장’이 진행된다. 매미시장 그 모태는 ‘아트마켓’의 형식에서 출발하지만, 매미에서 진행되는 아트마켓은 일종의 ‘아트 퍼포먼스’로 볼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야외에서 열리는 프로그램 연장선으로 ‘아트쇼’ 프로그램들이 대폭 추가되었다. 금번 7월 26일(토)에 열리는 매미시장은 앞서 2차례 진행된 매미시장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여름밤&다문화&예술&놀이’ 맥락에서 이뤄진다. 또한 공간 안에서는 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업을 PR하고 직거래를 통해 새로운 교환과정을 매개하는 전시가 동시에 펼쳐질 예정이다. 더불어 진작부터 계획 중이었던 ‘예술인 포트폴리오 아카이브’ 설비가 이 시기를 시작점으로 구축될 예정이다.

2008년 7월 9일 수요일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기고글


매미와 함께 ‘Let's play!’

최 윤 정 ● 매개공간 미나里 큐레이터


‘논다’를 청유형으로 바꾼 ‘놀자’, 것도 ‘우리 모두 함께’ 즐겁게 ‘놉시다’. 매개공간 미나리를 소개하는 데 있어서 ‘놀자’라는 표현만큼 쉽게 읽히고 잘 어울리는 것도 없겠다 싶다.
공간을 방문한 많은 분들이 오만가지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면 ‘기대에 넘친’, ‘정말 뭔가를 모르는’, 혹은 ‘의구심을 잔뜩 안은’ 표정들을 지니고 공간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는 한다. 그 수많은 표정들을 지니고 질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묻는 말은 이렇다. “매개공간 미나里가 뭐여요?” 그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뭐하는 곳이에요?” 그나마 공간에 대한 성격을 가시적으로나마 전시공간이라고 판단하신 분들께서는 더 나아가 “제가 조만간 전시할 공간을 찾는데...”등으로 다음 의견들을 묻고는 한다. ‘공간을 대여해주는 것이냐’, ‘공짜로 전시할 수 있는 곳이냐’ 등등. 여하간 그 어느 질문을 듣더라도 답변은 결국 공간이 생겨난 배경에서부터 그래서 이 공간이 자임하고자 하는 부분들을 설파한 후, 관련 프로그램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다.
‘매개공간 미나里’는 축약하여 공식적으로는 ‘매미’, 영문으로는 발음대로 ‘Memispace’로 불린다. 보통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과 유성음의 발음이 긴한 산뜻함을 주는 관계로 ‘미나리’로도 많이 불리고 있다. 매개공간은 기존의 대안공간이 미술관 및 화랑에서 전시할 수 없었던 작가들에게 공간을 제공해주는 의미를 넘어서서, 미술만이 아닌 공연 및 타예술 장르를 접목시키고 예술인들 사이의 교류를 꾀하려는 의미에서 지어진 명칭이다. 또한 장소적으로 재래시장 쪽에 위치하게끔 한 이유 역시도 매개공간의 역할이 생활과 예술이 보다 친밀해질 수 있게끔 서로 연결하고자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또한 여기서 ‘里’는 곳곳에 매미의 바람처럼 많은 문화적 공간과 인프라가, 또한 향유자들이 늘어 예술로 행복해지는 장소, 지점, 곳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나름의 공간 주소임을 함축한다.
‘놀자’는 너무 가벼운 단어로 오인 받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우리가 얼마나 ‘못’ 놀고 사는가를 언제나 다시금 돌이켜 보게끔 한다. 어디 그 뿐인가. 아마도 이 표현 속에는 ‘제발 같이’ 혹은 ‘가능한 부디 같이’라는 의미로 현 지역의 예술계에 정작 필요한 호소도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이를 매개공간 미나里가 대외적으로 제안하고자 하는 문맥들을 전부 포함하는 단어로 우기려는 이상, 다음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이 매미 공간을 소개하는 데에 유효할 것이다.


매미가 ‘함께 놀자’ 하는 이유가 뭘까?

5월 25일 개관한 이래, 매미 프로그램 진행의 빈도수는 꽤 높은 편이었다. 작가들의 자발적인 공간해석을 주제로 하여 1부의 영역표시전과 총 3부 형식으로 마련한 릴레이전은 다소 빠른 호흡으로 열흘마다 교체되면서 현재까지 공간을 채워왔다. 그리고 예술인들 사이의 담화를 위한 ‘만말토크쇼’가 주제를 바꿔가면서 현재까지 총 3회가 진행되어왔다. 그리고 물적교환의 장소로서의 재래시장이라기보다는 감정의 교류, 정보교환의 장소로서의 맥락을 강조하며 지역예술계에 즐거운 바람을 불어넣어보자 기획된 ‘매미시장’이 현재까지 2회 진행되었다. 개관전이 종료되는 7월3일을 기점으로 하여 매미는 현재까지 진행된 각 프로그램들을 평가하면서 부분 수정 보완의 절차를 거쳐 보다 탄탄한 프로그램 일정을 잡을 예정이다.
개관한지 한 달을 조금 넘은 이때에 왜 이렇게까지 숨 가쁘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실상 매미식구들에게도 하나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강박관념으로 인한 것인지, 혹은 사명감인지, 그 어느 경우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는 분명히 곱씹어볼 차례인 것이다.
이곳은 지역 안에서 대안적인 공간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해온 지역 예술인들이 힘을 합쳐 꾸려진 자생적인 공간인 것만큼은 분명 확실하다. 현재까지도 그 일원들이 운영위원으로 역할하면서 계속해서 공간의 정체성과 건강함을 담보할 수 있는 조건으로 ‘자생성’을 꼽고 있다. 아마도 공간 운영위원의 모임 회수가 대단히 빈번한 것은 이제 생겨났고 건강하게 자라야 할 매미가 계속해서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게끔 여러 문제들을 고민하고 공유해야 한다는 인식적 합의가 있으므로 가능할 것이다. 논의 초기에서부터 이 같은 대안적인 공간의 필요성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지역예술이 보다 활성화될 수 있는 여지가 작금의 지역예술인들 사이의 벽들을 허무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군다나 사심이 개입할 수 없는 공간이자 ‘사랑방’ 개념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왔고, 현재는 이를 안고 구체적으로는 예술인들의 작업에도 일조할 수 있는 질적으로 만족스런 프로그램들을 기획하는 공간으로 보다 구체적인 실행방안에 들어선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역할할 수 있는 몇 가지들을 실행하고 수정하면서 완성시켜가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고, 더불어 행여나 기획에 파묻혀 이 공간이 지닌 애초의 바람이었던 ‘사랑방’ 역할을 놓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자 그 무엇보다 중요한 공간의 한 기준이 된다.


뭐하고 놀지?

500명 가까이 되는 분들이 다녀가신 첫 번째 매미시장에서 그 뒷정리는 보통일이 아니었다. 쓰레기를 치우고 정리하는 가운데, 한 동네 어르신이 봉지를 들고 쓰레기 줍는 것을 도와주신 일에서 감동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는 그 한 분이 여러 분들로 확산될 수 있게끔 그들에게 다가가는 프로그램 계발에도 게을리 하지 말자는 결의도 매미의 한 축이 되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공간에 들르시지는 않았지만, 매미가 다양한 형식으로 공간의 정체성을 대변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꾸준히 긴 호흡으로 펼쳐보이는 장소라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인식되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생산되는 많은 것들은 고스란히 참여자들과 더 나아가 지역 예술계가 건강하게 설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밑거름으로 역할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간 내에서 이뤄지는 기획 프로그램들 외에 매미시장은 하나의 거대한 퍼포먼스로 한달에 한번씩 진행되는 행사로 지속시켜갈 예정이다.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꾸려지면서 이에 동조하는 많은 분들이 또한 직접 좌판을 열고 참여할 수 있는 아트마켓 부분, 더불어 앞으로 전문성을 가지면서 예술인들이 자신의 작업을 알릴 수 있는 자리도 될 수 있고 소박한 잔치의 모양을 갖추어 흥겹게 놀 수 있는 자리도 될 수 있으며, 더운 날 그나마 선선한 밤에 작가들의 슬라이드 쇼나 영화제 등을 경험할 수 있는 무대 프로그램은 적어도 매달 바람 쐬고 싶을 때, 삶에 다른 활력을 주고 싶을 때 그 누구나 부담스럽지 않게 들러 즐길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야외에서 작가들의 작품을 구경하고 또한 즐거운 마음으로 구입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은 이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매미 공간 내부는 창고로 쓰여졌던 과거 기억들을 군데군데 담아놓은 장소이다. 기존의 화이트 큐브가 아닌, 그렇기에 그 누구나 재밌다고 여겨질 수 있는 매미공간은 또한 기존에 무거우나 형식적이고 가벼운 얘기들만이 속출했던 모습을 벗어나 가벼운 형식 안에서 깊고 솔직한 얘기가 오갈 수 있게끔 하는 프로그램 계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것이 ‘만말토크쇼’이건, 각 주제를 잡은 ‘교육워크숍’이건 이를 관람하고 비판적으로 조언해줄 수 있는 창구는 그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다. 매미의 운영방식과 더불어 자율적인 기획들이 애초부터 이러한 맥락들을 짚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매미는 그 누구에게라도 ‘우리 함께 놀자’고 손을 내밀 것이다. 그 손을 ‘좀 잡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좀 전 다소 강한 단어로 언급한 ‘강박관념’이나 ‘사명감’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분명 형태상 초조한 마음이지만, 더불어 동시에 친구를 사귀고자 할 때의 마음가짐과 근원적으로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2008년 6월 7일 토요일

월간 퍼블릭 아트, 광주시립미술관 ‘봄날은 간다’ 展리뷰


서사적 구성이 획득한, ‘현재’에 대한 내적인 개입

● 매개공간 미나里(이하 ‘매미’) 큐레이터 최윤정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지난 3월부터 진행 중인 ‘봄날은 간다’는 잔잔한 파문처럼 일상적 피곤함으로 인해 그저 파묻힐 수밖에 없었을 한 속내를 표면으로 잔잔히 비추는 전시였다. 아마도 갓 입학한 대학 신입생들과 정신없게 떠들면서 지나가는 사춘기 소녀들을 보며 간혹은 문득 ‘참 좋은 나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의 내 생애 어느 한 시절을 회상하는 일이 종종 있기에, 누군가의 어느 한 봄날에 대해 관조적인 시선을 대면하도록 하는 이 전시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 같은 효과는 전시의 ‘서사적 구성’에서 기인한 바가 더욱 크다. 그것은 공유되지 않는 텍스트로 전시의 맥락을 강요하기보다는, 픽션 형식으로 한 상황을 설정하며 시작된다. 중년의 한 남성이 데자뷰처럼 경험하는, 과거가 현재에 중첩되는 순간, 그 순간을 매개하는 것은 바로 그 시절 안에 존재하는 그의 곁을 지나가던 여고생들이었다.
이러한 서사적 기획의도와 마주한 시 한편을 읽고 전시장에 들어서면 봄이라기보다는 온 계절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이 일반적인 구성으로 공간을 채우고 있다. 그 길을 따라 두 번째 전시관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좀 달라진다. 파편화된 여성 신체가 물 속에 잠긴 듯한 혹은 지하에서 지상으로 솟는 듯한 작업이 정면에 마주한다. 그리고 괴물의 모습을 통해 중년이 지난 자기감정을 대변한 작업이 그 스케일과 괴이함으로 인해 시각적으로 대단히 강하게 다가온다. 정말 괴물이었을까? 자신의 신체 각 부분 재조합을 통해 작가는 ‘에일리언’같은 괴물을 만들어내었다. 그것이 행여나 보편적인 사유라면, 그 즈음 정말 우리는 자신을 괴물이라고 느끼게 될까? 이제 더 이상 구겨진 편지와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휘날리는 풍경은 이제 단순히 ‘봄’이란 것이 그저 ‘생동’, ‘시작’이 아닌 시간의 흐름과 시절의 무색함까지 다분히 내포하고 있음을 해석해 보게끔 한다. 그것은 애처로운 심상이다.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그곳에서 난 언젠가 힘없이 우울해 마지않던 한 중년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야말로 ‘찬란한 슬픔의 봄’이라 했던가, 2관 전시는 이같이 대단히 역설적인 구성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제 애처로운 마음을 지니고 조용한 발걸음으로 숲의 오솔길을 따라 깊숙한 숲 속을 걷듯이 마지막 전시장에 들어가면, 이내 곧 상황은 달라진다. 가정에서 일상을 살고 있는 그녀들이 ‘결국 이런 거였어’ 라며 입을 열기 시작하는 것이다. 불편한 상황들, 너무나도 익숙한 광경이기에 그래서 더욱 불편했던 것들. 그것은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중년여성의 모습이다. 정신없이 살아온 세월 이제야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을 무렵 자기 존재에 무력해지는 바로 그 시점, 그야말로 ‘미치고 팔딱 뛰는’ 순간이라면 이해가 될까?
격정의 감정이입이 끝나기도 전에, 황당하게도 생명의 원천으로서 여성 본연의 가치와 여성성,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작업이 눈에 들어온다. 이 격정의 감정은 바로 현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드물게 있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인생을 관조할 것, 자기 내면의 파편들을 치유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현재의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진행 중이다. 그것이 괴물이건, 미친년이건 행여나 구겨진 무엇이건 간에 진실은 바로 그것이다. 오색 비가 흩뿌려지는 배경 속에 위치한 ‘유년기 흑백 졸업사진’은 관조하라는 강요를 오히려 더욱 강한 색감을 통해 시각적으로 상쇄시켜주고 있었다. 뭉클한, 결국 그 한때를 연상하고 그리워하는 격앙을 만들어주며 이제 나가려는 관객들의 발을 잠시 붙들어 놓는 것이다. 이 외에도 전시의 서사적 구성에서 어느 한 봄날에 대한 느낌과 성찰에 대한 시각적 맥락을 이어주는 작품들이 즐비했기에 전시는 나름의 문맥을 전달하는데 효과적이었다. 이 전시는 분명 지나간 봄날, 어느 한 때 대단히 푸르렀던 날에 대한 기억을 통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현재의 한 부분들을 더욱 감정적으로 극대화시키거나 혹은 ‘관조적’ 장치를 통해 합리화해도 좋다는 허가를 내려주고 있다. 그 서사, 바로 그 시나리오는 인간이 ‘애잔함’, ‘비애’, ‘그리움’의 감정을 느끼는 이상, 보편적으로 마땅히 경험하게 되는 일의 일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5월 27일 화요일

매개공간 미나里 개관기념전/// 자/발/적/ 영역표시 릴레이展-'滿새(사이)'

매개공간 미나里 개관기념전

자/발/적/ 영역표시 릴레이展-'滿새(사이)'


기획의도
매미큐레이터 최윤정



많은 사연이 오갔던 공간, '매개공간 미나里'가 드디어 개관한다. 이 공간을 이제 본격적으로 활용하기에 앞서 다양한 전시기능을 갖춘 공간으로서 어떤 공간해석들이 가능한지를 작가들의 작품배치에 대한 ‘욕망’과 결부시켜 진행할 예정이다. 그리하여 정제된 일반 갤러리에서의 배치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활용이 가능한 배치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영역표시’를 주요 모토로 한 전시가 진행된다. 참여작가들은 작품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이후 작품을 놓고 싶은 위치에 영역을 표시한다. 이 표시는 서로가 겹칠 수도 있고, 다른 작가가 보지 못한 것을 새로이 발견한다는 측면에서 작가들에게 공간에 대한 ‘희열’을 맛보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전시는 작품제작으로 일관해왔던 작가적 역할 뿐만이 아닌, 직접적으로 공간에 대한 그들의 '욕망’을 ‘날 것’으로 표현하게 되는 장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서 전시공간으로서의 ‘매미’의 활용이 다소 거칠더라도, 그것이 ‘영역표시’의 이미지로 시각화되는 한 축을 마련해 보고자 한다.
.
참여작가는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 층에서 고려하였다. 각각이 한 지역의 꼭지점이 될 수 있는 활동력을 보여주는 작가들로서, 작업의 이유가 명확한 신생 젊은 작가 및 공간이 지향하는 풍경을 작업적 내용으로 지니고 있거나, 재료 및 기법 상에서 공간에 유효한 설치작업들, 지역 예술계 커뮤니티에 대한 나름의 비판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는 작가 층으로 하여 성별로 3인씩 섭외하였다.

5월 마지막 주 오픈 5일간은 작가들이 진행한 영역표시를 그대로 전시한다. 이후 각 열흘간 총 3회에 걸쳐 2인전 형식으로 로테이션되면서, 작가가 자신이 표시한 영역 위에 작품을 가져다 놓는 방식으로 약 30일간 전시가 진행된다. 이때 자신이 영역표시한 곳 외에 작품을 두게 되는 경우를 고려할 수 있는데, 이 경우 기획자는 ‘영역표시’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패널티로써 일종의 표식을 취한다. 이 표식을 통해 기획자와 작가의 공간점유 및 해석에 대한 욕망의 한 단면이 시각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 속에는 또한 작가와 기획자 간 협업체계로 진행한다는 맥락에서 작가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을 부여하되, 전체적인 윤곽을 잡고 있는 자로서 기획자의 몫과 책임을 상정해보고자 하는 의도도 분명 포함된다 .


滿새(사이)' 전시제목에 대한 사연

자/발/적 영역표시 릴레이展-'滿새(사이)' (이하 ‘만새전’) 은 작가의 자발적인 영역표시와 2인전 릴레이 방식으로 진행되는 전시형식을 직접적으로 알려준다.
만새는 전시의 내용이다.
‘滿’은 공간이 채워진다는 의미로 많은 이들이 와서 담소할 수 있는 장소로서 ‘온기’가 차오르는 것을 연상할 수도 있고, 공간에 작업들이 채워진다는 의미를 안고 있다.
‘새’는 ‘사이’의 준말로서 ‘빈공간 곳곳’을 의미하기도 하고 공간이 추구해야 할 한 축, 지역미술계의 반목과 갈등을 포섭하는 ‘복덕방’내지는 ‘사랑방’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의지를 순화한 표현이자, 따뜻한 관계 설정의 단어로서 설정된 것이다. 또한 ‘滿새’는 ‘만세!’의 발음유희로 ‘매개공간 미나里’에 대한 격려를 요청하는 자축의 의미이기도 하다.
. .
~만 말’토크의 의미'~만 말'은 ‘~’ 속에 어떤 단어나 상황을 넣던지 간에 유머러스한 한정이 통용될 수 있는 일종의 문법체계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워크숍 및 포럼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대중화된 방식의 익숙한 대담 형태인 토크쇼의 형식과 연동되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형식을 차용하여 진행자의 몫에 따라 참여작가와의 일반적이면서도 일반적이지 않은 대화들을 이끌어 갈 예정이다. 이는 영상으로 촬영되어 매미홈페이지에 삽입된다. 더불어 토크쇼가 끝난 뒤에는 모자란 내용들을 보충하거나 교류를 위한 공간에서 진행할 수 있는 초/간/단 다과-‘매미’bar with '生'파티가 준비될 것이다.
.

참여작가 소개

이호동은 조선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1회의 개인전을 포함하여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주요작업으로는 ‘청소12 퍼포먼스’(2002) 및 ‘마음 속에 내가 울고 있어요’(2002), ‘소+묘 퍼포먼스’(2003)와 ‘1+상’(2003) 등의 퍼포먼스를 진행하였고, 스톤앤워터 ‘웰컴 투 작업실’(2003)에 참여하였다. 현재 북아트 연구소 및 Group fusion의 멤버로 활동 중이다.

장호현은 조선대 미대에서 판화미디어를 전공하였다. 최근 ‘무자년 기획전-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신세계갤러리,2008)을 포함하여, 영아트페어&옥션전(롯데화랑), '아이콘-landscape+전’(롯데화랑,2007), ‘아이콘-거시기씨 오르가즘양을 꼬셔봐!’(지산갤러리,2006) 외 중흥동 프로젝트(2006 아트인시티)에 아이콘 그룹으로 참여하였다. 현재도 프로젝트 그룹 아이콘 멤버로 활동 중이다. .

조광석은 조선대 미대에서 조소를 전공하였다. 2회의 개인전을 포함하여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는데, 주요단체전으로는 청년작가초대전 ‘48의 보행’(옥과미술관,2008)을 비롯하여, 환경미술제 ‘에코토피아를 향하여’(옥과미술관/롯데갤러리,2005), ‘생로병사’(광주시립미술관 분관,2005), ‘즐거운 상상-조광석, 양문기 2인전’(롯데갤러리,2004), ‘안빈낙도’(옥과미술관,2004), ‘광주청년미술작가’(옥과미술관, 2003) 등이 있다. 현재 백학회와 광주청년작가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 임남진은 조선대 미대에서 회화를 전공하였다. 개인전을 비롯하여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으며, 주요 단체전으로는 ‘온고이지신展-‘잃어버린 퍼즐을 찾기’(대전시립미술관,2007),‘투영-한국현대미술’(대만국립미술관,2006),‘코리아통일미술전’(광주시립미술관,2006) 및 ‘화가의 지갑’(2005), ‘광주-아홉 개의 창(窓)’ (5?18문화회관, 2005), ‘우리시대 탱화 2인전’(2000), ‘JALLA전’(일본동경미술관,2000) 등이 있다. 대한민국불교미술대전(1998) 및 제 4회 신세계미술제(2001)에서 수상하였다. 현재 전국민족 미술인연합, 광주 민미협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광주시립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2008)로 활동하고 있다.
. .정운학은 목포대와 프랑크푸르트 국립미술대학을 졸업하였다. 독일에서 4차례의 개인전을 가졌고,국내에서 2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봄날은 간다’(광주시립미술관,2008) 및 ‘광주미술 현황과 전망전’(서울 인사아트센터, 광주 신세계갤러리),‘광주시립미술관 창작스튜디오전’(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분관), ‘국제현대미술 광주아트비젼’(광주시립미술관), ‘중국송장문화예술축제Art Linking-북경’, ‘즐거운 그림나라’(광주시립미술관 어린이갤러리), ‘용봉제를 바라보다’(구 도청), ‘중흥동공공미술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광주신세계 미술상(2002)을 수상하였고, 광주시립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2006-2007)로 활동하였다.
. 주라영은 전남대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하고, 인도 산티니케탄 Visva-Bharati에서 조소와 벽화를 전공하였다. 2회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는데, 주요단체전으로는 ‘미술과 놀이’(예술의 전당, 2007)을 비롯하여 포천아시아비엔날레 특별전(2007), 제 2회 광주비엔날레 조각파트 공공미술프로젝트(1997) 그 외에도 개관 10주년 기념전-상상력발전소’(울산 현대예술관, 2008) 등에 참여하였다. 현재 광주미협 및 남도조각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전남대와 광주여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자/발/적 영역표시 릴레이展 ‘滿새(사이)’ 일정

5월 25일(일)~5월 29일(목) 자발적 영역표시 공간해석전
5월 31일(토)~6월 9일 (월) 제/대/로 영역점유 릴레이전 1부- 이호동 & 장호현
6월 12일(목)~6월 21일(토) 제/대/로 영역점유 릴레이전 2부- 임남진 & 조광석
6월 24일(화)~7월 3일 (목) 제/대/로 영역점유 릴레이전 3부- 정운학 & 주라영

~만 말 토크’ 안내 매 '~만 말' 토크는 저녁 7시에 진행되며, 끝난 직후 ‘매미’bar with '生' 파티가 진행된다. 금번 만말토크의 주제는 ‘무슨 작업??’이다. 개관전의 모토가 ‘공간에 대한 해석’이기에 그로부터 작가와 개별 작품에 대해서 소외되거나 놓칠 수 있는 부분들을 중심으로 하여 자리를 마련한다.
6월 7일 (토) 이호동과 장호현 -이하 이장 ‘만말’
6월 14일(토) 임남진과 조광석 -이하 임조 ‘만말’
6월 24일(화) 정운학과 주라영 -이하 정주 ‘만말’
(pm 7:00~8:30 ~만 말 토크 / pm 8:30~ ‘매미’bar with '生' 파티)

2008년 5월 11일 일요일

창작스튜디오와 오픈스튜디오 논의에 대한 토론문

광주 전남 문화연대 토론 참여글


매개공간 미나里(이하 '매미') 큐레이터 최윤정


‘섬세한 기획’은 ‘창작’이라는 문화적 행위에 대한 순수한 입장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문화란 생동이다. 생동은 스며듦과 발현의 경계로부터 나타나는 삶의 유영이다. 삶이라는 것은 각각의 주체를 지니고 있으며, 이 주체는 바로 살아가는, ‘문화’라는 자연스런 흐름을 구성하는 우리네 인생들이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문화란 행여나 주입되더라도 주체적인 수용방식을 통해 자생성의 근원을 제공할 수도 있고, 그 자체가 자생적인 토대 속에서 생겨나기도 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나는 문화라는 큰 틀을 고민하면서 지금의 창작촌 논의에 대한 우려 내지는 다른 시각을 덧붙여보고자 한다.
폐교 활용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각 공립 미술관련 기관 및 지자체의 창작스튜디오 설립은 현재 최고조로 붐을 이룬 듯 보인다. 실상 미술계 쪽에서 창작스튜디오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작가들이 스스로를 프로모션해야 하는 시대적인 흐름과 맞물려 각종 미술대전이 지녀왔던 권위를 대체하고 있고, 미술계 외곽에서는 그것이 이미지 쇄신 및 문화산업의 문맥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한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는 창작촌을 건립하거나 참여하거나 혹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확언하는 분들께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이를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증적인 답변이 있는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하는 이유가 스스로에게 합당한가’, ‘오픈스튜디오의 목적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붐은 언젠가는 꺼질 수밖에 없다. 기관주도형으로 창작스튜디오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 전문가도 그리고 일정한 프로그램도 없고 또한 외적인 형식을 갖추어 놓은 것 외에 창작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과 이해를 견지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붐이라면 지속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관행적인 풍토로 정착되어 파행을 이끌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목표를 위해 도구적으로 창작스튜디오에 접근하는 경우, 이는 당연히 창작활동에 대한 몰이해에서 출발하는 한계로 인해 실질적으로 작가들에게 분명 제공해야 할 부분들을 놓칠 수밖에 없다.
물론 나의 접근은 일편 ‘우려’의 시각에 한한다. 왠지 창작촌의 논의와 오픈스튜디오의 논의를 지켜보다 보면 접근 자체가 상당히 순진하고 그 중심에 ‘작가’와 ‘창작’에 대한 고민이 놓여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또한 작가들에게서도 그것이 미술대전 수상 못잖은 쓸만한 경력 한 줄로서 소용되는 것에 만족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낄 때가 있다. 창작촌의 임무와 오픈스튜디오의 적절한 방향성이 순수하게 창작기반에 관련한 고민들로서 인식적인 합의 부문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는 그 시작이야 어떻든 간에 자생적으로 생성되고 일궈진다. 그렇기에 문화적 행위인 ‘창작’ 역시도 창작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자생적인 터전에서 일구어졌을 때 행위 자체가 그리고 행위 주체 스스로가 이에 대한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2008년 5월 25일 개관을 앞두고 있는 매미(매개공간 미나리)는 기본 골조를 살린 상태에서 창고 건물을 개조하여 마련되었다. 완성되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지만 공사는 전적으로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지역 미술인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을 기반으로 진행되어 왔다. 매미는 지역의 보수적인 경계 및 한계를 뛰어넘고 예술가들 스스로가 자신이 원하는 보다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역할들을 진행할 것이다. 더불어 애초의 태생 자체가 작가들의 자발적인 측면과 우여곡절을 겪은 자생적인 생성의 기간을 거쳐 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요소들을 정체성으로 담아낼 수 있는 기획 프로그램들이 공간을 채워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다시 말해 그 시작은 공간 태생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이미 출발한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비단 창작스튜디오, 레지던스 프로그램 및 오픈스튜디오 등의 기획들에 있어서 애초의 시작 논의에서부터 예술가의 ‘창작’ 행위를 끌어내고 담론화할 수 있는 중심을 공간 및 프로그램의 특성 및 정체성으로 유도해야 하고, 이를 중심으로 하여 작가들 스스로 ‘자발성’을 중심으로 하여 ‘창작’을 도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저변 의식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2007년 11월 5일 월요일

기고_지역과 예술활동

기고_지역과 예술활동

#1. 평택 대추리에서 이뤄진 현장예술 활동


최윤정 ● 미학, 미술프로젝트

현재 나는 지난 몇 년 간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로 발표되었던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에서 벌어진 현장 예술에 대한 기록들을 점검하고 이를 자료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평택은 안성에서 그리 멀지 않다. 안성에서 출발하여 평택 대추리까지는 채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이 사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 그러나 이 익숙한 사실은 실상 나에게는 대단히 낯선 느낌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평상시 나는 그와 같은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시골 동네에서 어느 순간 투쟁의 격전지이자, 대한민국의 섬이 되어버린 동네... 그저 평화롭게만 조용히만 살아오던 순박한 농부들이 외부적 압력에 의해 그야말로 투사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그 현장이 내 고향 근처, 것도 바로 코앞에 있었다는 사실은 이 이슈에 대해 묘한 심리적 거리감을 갖게 하는 요인이기도 했다.
세상이 이 동네에 주목하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정치적으로 한반도의 상황을 비유하는 미군기지 확장과 인권탄압, 그곳은 현대사에 기록되어야 할 투쟁과 반목의 현장으로서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이 동네가 주목받는 중요한 요소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예술인의 자발적 참여가 이루어졌으며, 예술의 사회적 참여와 치유적 역할에 대한 담론들을 생산하는 하나의 산실이 되어 왔다는 것이 바로 그 점이다. 특히 평화를 위한 이 모든 싸움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문화예술 활동이었다. 이는 가수 정태춘에 의해 힘입은 바가 컸다. 그곳은 그가 태어나 자란 곳이자, 그의 서정을 키워 온 공간이었다. 그를 중심으로 하여,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인들과 류연복 외 미술작가들이 모여 지속적으로 ‘들이 운다’ 문화제를 개최하고, 작품 활동을 진행하면서 이 ‘섬’은 외부로 알려질 수 있는 든든한 길을 얻게 되었다. 당시 언론보도는 마치 80년대 무고한 시민이 ‘간첩’으로 둔갑하는 것만큼이나 심각한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언론 및 진보 단체 언론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옳은, 정당한 보도를 내지 않았다. 활발한 현장예술 활동을 통해서 외부로의 끈을 잡고자 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더불어 그곳에서 이루어진 예술활동은 주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했다. 무려 3년 여 간의 대추초등학교 촛불시위 자리에는 늘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참여하였고, 또한 곧 폐허가 될지도 모르는 동네는 언제서부턴가 벽시와 벽화들로 채워져 화려하고 아름다운, 희망의 염원을 담은 색채들을 두르게 되었다. 또한 각종 설치 미술 작품들은 마을 곳곳에서 주민들에게 무언의 희망을 보내주었다. 여기서 미술은 80년대 도구화된 사례들처럼 주민들을 선동하기 위해 다가간 것이 아니었으며,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에게 그 힘든 순간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그야말로 그들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행위로 승화되었다. 그리하여 투쟁의 현장, 그 와중에 ‘평화예술동산’도 조성되었다. 그곳에 설치된 작품들 몇몇은 지역 문화재로 지정받기도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공권력의 예술 활동에 대한 몰이해와 몰상식한 파괴행위들로 인해 무참히 손상을 입게 되었다. 이는 오히려 외부에 대추리 도두리의 참상을 더욱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현장예술에 대한 몰이해 속에서 문화예술계는 한 목소리로 이를 규탄하고 각종 토론회를 통해서 현장예술의 가치와 의의에 대한 논의를 촉진시켰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들은 지역의 예술활동에 대한 중요성과 그에 대한 이해를 일반인들에게 전할 수 있었던 중요한 기점으로 평가된다. 굳이 안성이나 평택에 살지 않더라도 수많은 예술인들은 현대 사회의 모순적 장면을 밝혀줄 그 ‘문맥’을 쫓아 대추리로 속속 모여들었으며, 개인의 작업으로 공동의 작업으로 대추리는 어느 순간 예술인들이 가장 활발하게 자기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 대추리 주민의 대부분은 카톨릭 신자였고 그들의 아픈 삶에서 문정현 신부(평화유랑단 ‘평화바람’ 단장)가 정신적 지주가 되어 늘 그들의 곁을 지켜왔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대추리에서 활발히 활동해왔던 작가들은 안성에 작업실을 두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곳은 안성의 여느 시골풍경과 비슷하다. 그러나 그리 멀지 않은 공간에서 전혀 다른 삶들이 펼쳐져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가? 그 삶들이 외부로 노출되기 전까지 그들이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우리가 이에 할 수 있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서두에 밝힌 나의 ‘묘한 심리적 거리감의 근거’는 바로 이에 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