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공들이는 과정은 주제 연구
스스로 당위를 설정하고 기획에 대한 주제를 연구하고 그것을 전시로 구현하기까지,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주제를 연구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생산되는 자료들이며 논의들이 소중한 탓에 기획에서 전시 형식을 늘 고심하는 편이다. 지난 13년간의 활동을 통해 지역성과 장소성, 구체적인 현실의 삶과 역사적 추이,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내용들을 주된 작업으로 꾸준히 실현해볼 수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성매매집결지 100년 역사에 관해 연속된 작업으로 [<자갈마당시각예술아카이브_발화, 문장의 외부에 선 행위자들(2016)>(대구여성인권센터 주관, 대구)과 <나의, 국가, Arbeit Macht Frei(2018)>(한국여성인권진흥원 주관, 서울)]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특히 올해는 자갈마당이 폐쇄 조치되고 곧 철거를 앞둠에 따라 사라지는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다시금 현장을 답사하고 있다. 답사의 기록들은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들의 인터뷰, 역사 자료 등과 함께 한 권의 책으로 출판할 계획인데, 이는 기획자에게 남겨진 책무이자 과제라고 하겠다.대구에서의 작업은 <자갈마당_기억변신프로젝트>라는 기록 사업의 일환으로 마련되었다. 대구여성인권센터는 자갈마당 역사와 관련한 자료 수집은 물론 성매매 경험 당사자 여성들에 대한 현장 지원과 구술 기록을 틈틈이 진행해 왔다. 참여 예술가들은 단체의 기록물과 현장 워크숍을 통해서 장소성에 대한 각자의 시선을 구현하는 작품을 창작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장소를 기록하는 방식’을 활동가의 측면과 예술가의 시각에서 창출하는 도정이었다. 또한,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순차적인 단계를 밟으며 내용을 축적해 가는 ‘과정형’ 프로젝트로 제안되었다. 진행 과정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2016년 봄까지 작가 구성을 마친 후(내가 결합한 시점은 2015년 겨울이었다), 2016년 여름 연구 과정(워크숍, 답사, 세미나, 개별 연구)을 거쳐 작업 계획을 발표했다. 작업 계획은 결과물 자체이기보다는 자갈마당에 대한 관점을 생성해 가는 과정으로 설계되었고, 여러 차례의 수정 과정을 거쳐 그해 11월 전시로 구현되었다. 전시 기간에는 토크쇼가 진행되기도 했는데, 지자체 관계 부서 공무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여 프로젝트의 맥락과 예술인 협업이 지닌 의의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됐다. 자갈마당 폐쇄 조례안이 통과되어 2017년에는 자갈마당 인근에 현장상담소가 개설되어 당사자 여성들의 탈성매매와 주거지원을 돕기 시작했다. 현장상담소에는 자갈마당의 역사를 소개하는 상설 전시관과 장소성(자갈마당, 역사, 인권, 여성)을 특화로 한 대안공간 ‘기억공간1906’을 조성하여, 참여 작가들의 후속 작업을 연속적으로 소개하였다.
서울에서의 작업은 성매매 추방 주간의 한 사업으로 구상되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을 구심점 삼아 전국의 성매매 집결지를 중심으로 한 활동가 단체들이 결합해 각 지역의 상황들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근현대사 자료들은 물론 장소를 특정화하는 사물들을 채집하고 목록화하기 시작했다. 각지의 사건과 사고는 물론이거니와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국가의 정책적 개입들을 담은 자료들을 통해 전시 기획의 핵심이었던 성매매집결지 100년 연대기가 완성되었다. 전시 연구를 위해 관련 자료들을 분석하고 연구하다가 1969년 윤락 여성 1천 명 수용 시설이었던, 서울시립 행복원 기공식 사진을 발견했다. 플래카드에 적힌 문구들을 보며, 나는 문득 아우슈비츠를 떠올렸다. 성매매 금지와 관리라는 모순된 정책 속에 성매매 집결지의 역사가 한눈에 읽혔다. 국가의 신기루 같은 약속, 허무한 죽음들, 나아지지 않는 상황들. 전시 제목은 그래서 <나의, 국가, Arbeit Macht Frei>가 되었다. 이 전시에는 성매매 집결지를 기록해 온 예술가들의 창작물, 단체들의 활동 기록, 각종 유물 자료들이 소개되었다. 한국의 성매매 집결지는 1876년 개항 이후 일본인 거류지에서 ‘유곽’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조선 전체로 확산된 공통의 역사를 갖고 있다. 따라서 전국 성매매 집결지들의 상황을 보면, 그 태생은 물론이거니와 변화나 발전(?) 과정에서도 서로 비슷한 추이를 보인다. 성매매 집결지 폐쇄에 대한 지자체들의 논의에서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의 발로’는 당위를 꾸며주는 하나의 수식일 뿐, 결국은 자본 및 재개발 추진과 연동한다. 그로 인해 그 장소에서 벌어졌던 비인도적인 행태들과 인권에 대한 성찰은커녕, 성매매 집결지 자체가 애초부터 없었던 곳처럼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 단체들이 우려하는 지점이었다.
발굴, 조율, 그리고 아카이브
전시 기획은 성매매 집결지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과 사회 구조적인 접근을 주요 방향으로 삼았다. 성매매 집결지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들이 있다. 그러나 ‘필요악’이라거나, ‘성노동’이라는 용어를 통해 개별 주체의 ‘선택’이란 관점에서 논구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뿐더러, 성매매 집결지의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협업 과정에서는 현장에서의 접근과 판단은 활동가들의 조언을 따르면서, 장면과 사유의 지점들을 발굴하고 찾아내는 몫은 예술가에게 있다는 것을 확실히 했다. 전시 기획뿐 아니라 각자의 자율성을 조율하는 역할도 기획자로서 긴요했던 부분이다. 덧붙여 나는 예술가들이 이 주제를 통해 스스로 작업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길 바랐다. 서로에게 긍정적인 모델을 창출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전시 구현은 ‘아카이브전’의 맥락을 띠었다. 나는 단순한 자료전을 아카이브전이라고 하지 않는다. 아카이브는 ‘자료화, 목록화’, ‘맥락적 덩어리’로서의 개념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만들어 낸 전시들에 ‘아카이브’라는 용어를 꾸준히 사용해 왔다. 물론, 모든 전시에 적용한 것은 아니다. 전시 주제가 역사나 실재하는 장소성 등 대상이 명확한 경우, 워크숍 등 진행 과정에 독립적인 연구 과제가 담겨 있을 때, 전시물의 자격에 있어 자료가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작품과 동등한 중요도로 다뤄질 때, 또한 전체가 주제를 향해서 하나의 맥락적인 구조물로 짜일 때 ‘아카이브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그것은 일회적이지 않고 단계적인 지층을 만들어가는 작업을 수반하기에 리서치 과정과 연구, 기획의 당위를 설정해 가는 데 있어 유효한 전시 형식으로 내 기획의 한 특징으로 자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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