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27일 화요일

매개공간 미나里 개관기념전/// 자/발/적/ 영역표시 릴레이展-'滿새(사이)'

매개공간 미나里 개관기념전

자/발/적/ 영역표시 릴레이展-'滿새(사이)'


기획의도
매미큐레이터 최윤정



많은 사연이 오갔던 공간, '매개공간 미나里'가 드디어 개관한다. 이 공간을 이제 본격적으로 활용하기에 앞서 다양한 전시기능을 갖춘 공간으로서 어떤 공간해석들이 가능한지를 작가들의 작품배치에 대한 ‘욕망’과 결부시켜 진행할 예정이다. 그리하여 정제된 일반 갤러리에서의 배치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활용이 가능한 배치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영역표시’를 주요 모토로 한 전시가 진행된다. 참여작가들은 작품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이후 작품을 놓고 싶은 위치에 영역을 표시한다. 이 표시는 서로가 겹칠 수도 있고, 다른 작가가 보지 못한 것을 새로이 발견한다는 측면에서 작가들에게 공간에 대한 ‘희열’을 맛보게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전시는 작품제작으로 일관해왔던 작가적 역할 뿐만이 아닌, 직접적으로 공간에 대한 그들의 '욕망’을 ‘날 것’으로 표현하게 되는 장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서 전시공간으로서의 ‘매미’의 활용이 다소 거칠더라도, 그것이 ‘영역표시’의 이미지로 시각화되는 한 축을 마련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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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는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 층에서 고려하였다. 각각이 한 지역의 꼭지점이 될 수 있는 활동력을 보여주는 작가들로서, 작업의 이유가 명확한 신생 젊은 작가 및 공간이 지향하는 풍경을 작업적 내용으로 지니고 있거나, 재료 및 기법 상에서 공간에 유효한 설치작업들, 지역 예술계 커뮤니티에 대한 나름의 비판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는 작가 층으로 하여 성별로 3인씩 섭외하였다.

5월 마지막 주 오픈 5일간은 작가들이 진행한 영역표시를 그대로 전시한다. 이후 각 열흘간 총 3회에 걸쳐 2인전 형식으로 로테이션되면서, 작가가 자신이 표시한 영역 위에 작품을 가져다 놓는 방식으로 약 30일간 전시가 진행된다. 이때 자신이 영역표시한 곳 외에 작품을 두게 되는 경우를 고려할 수 있는데, 이 경우 기획자는 ‘영역표시’를 준수하지 않았다는 패널티로써 일종의 표식을 취한다. 이 표식을 통해 기획자와 작가의 공간점유 및 해석에 대한 욕망의 한 단면이 시각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 속에는 또한 작가와 기획자 간 협업체계로 진행한다는 맥락에서 작가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을 부여하되, 전체적인 윤곽을 잡고 있는 자로서 기획자의 몫과 책임을 상정해보고자 하는 의도도 분명 포함된다 .


滿새(사이)' 전시제목에 대한 사연

자/발/적 영역표시 릴레이展-'滿새(사이)' (이하 ‘만새전’) 은 작가의 자발적인 영역표시와 2인전 릴레이 방식으로 진행되는 전시형식을 직접적으로 알려준다.
만새는 전시의 내용이다.
‘滿’은 공간이 채워진다는 의미로 많은 이들이 와서 담소할 수 있는 장소로서 ‘온기’가 차오르는 것을 연상할 수도 있고, 공간에 작업들이 채워진다는 의미를 안고 있다.
‘새’는 ‘사이’의 준말로서 ‘빈공간 곳곳’을 의미하기도 하고 공간이 추구해야 할 한 축, 지역미술계의 반목과 갈등을 포섭하는 ‘복덕방’내지는 ‘사랑방’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의지를 순화한 표현이자, 따뜻한 관계 설정의 단어로서 설정된 것이다. 또한 ‘滿새’는 ‘만세!’의 발음유희로 ‘매개공간 미나里’에 대한 격려를 요청하는 자축의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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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말’토크의 의미'~만 말'은 ‘~’ 속에 어떤 단어나 상황을 넣던지 간에 유머러스한 한정이 통용될 수 있는 일종의 문법체계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워크숍 및 포럼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대중화된 방식의 익숙한 대담 형태인 토크쇼의 형식과 연동되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형식을 차용하여 진행자의 몫에 따라 참여작가와의 일반적이면서도 일반적이지 않은 대화들을 이끌어 갈 예정이다. 이는 영상으로 촬영되어 매미홈페이지에 삽입된다. 더불어 토크쇼가 끝난 뒤에는 모자란 내용들을 보충하거나 교류를 위한 공간에서 진행할 수 있는 초/간/단 다과-‘매미’bar with '生'파티가 준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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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 소개

이호동은 조선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1회의 개인전을 포함하여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주요작업으로는 ‘청소12 퍼포먼스’(2002) 및 ‘마음 속에 내가 울고 있어요’(2002), ‘소+묘 퍼포먼스’(2003)와 ‘1+상’(2003) 등의 퍼포먼스를 진행하였고, 스톤앤워터 ‘웰컴 투 작업실’(2003)에 참여하였다. 현재 북아트 연구소 및 Group fusion의 멤버로 활동 중이다.

장호현은 조선대 미대에서 판화미디어를 전공하였다. 최근 ‘무자년 기획전-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신세계갤러리,2008)을 포함하여, 영아트페어&옥션전(롯데화랑), '아이콘-landscape+전’(롯데화랑,2007), ‘아이콘-거시기씨 오르가즘양을 꼬셔봐!’(지산갤러리,2006) 외 중흥동 프로젝트(2006 아트인시티)에 아이콘 그룹으로 참여하였다. 현재도 프로젝트 그룹 아이콘 멤버로 활동 중이다. .

조광석은 조선대 미대에서 조소를 전공하였다. 2회의 개인전을 포함하여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는데, 주요단체전으로는 청년작가초대전 ‘48의 보행’(옥과미술관,2008)을 비롯하여, 환경미술제 ‘에코토피아를 향하여’(옥과미술관/롯데갤러리,2005), ‘생로병사’(광주시립미술관 분관,2005), ‘즐거운 상상-조광석, 양문기 2인전’(롯데갤러리,2004), ‘안빈낙도’(옥과미술관,2004), ‘광주청년미술작가’(옥과미술관, 2003) 등이 있다. 현재 백학회와 광주청년작가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 임남진은 조선대 미대에서 회화를 전공하였다. 개인전을 비롯하여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으며, 주요 단체전으로는 ‘온고이지신展-‘잃어버린 퍼즐을 찾기’(대전시립미술관,2007),‘투영-한국현대미술’(대만국립미술관,2006),‘코리아통일미술전’(광주시립미술관,2006) 및 ‘화가의 지갑’(2005), ‘광주-아홉 개의 창(窓)’ (5?18문화회관, 2005), ‘우리시대 탱화 2인전’(2000), ‘JALLA전’(일본동경미술관,2000) 등이 있다. 대한민국불교미술대전(1998) 및 제 4회 신세계미술제(2001)에서 수상하였다. 현재 전국민족 미술인연합, 광주 민미협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광주시립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2008)로 활동하고 있다.
. .정운학은 목포대와 프랑크푸르트 국립미술대학을 졸업하였다. 독일에서 4차례의 개인전을 가졌고,국내에서 2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했고, 봄날은 간다’(광주시립미술관,2008) 및 ‘광주미술 현황과 전망전’(서울 인사아트센터, 광주 신세계갤러리),‘광주시립미술관 창작스튜디오전’(광주시립미술관 금남로분관), ‘국제현대미술 광주아트비젼’(광주시립미술관), ‘중국송장문화예술축제Art Linking-북경’, ‘즐거운 그림나라’(광주시립미술관 어린이갤러리), ‘용봉제를 바라보다’(구 도청), ‘중흥동공공미술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광주신세계 미술상(2002)을 수상하였고, 광주시립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2006-2007)로 활동하였다.
. 주라영은 전남대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하고, 인도 산티니케탄 Visva-Bharati에서 조소와 벽화를 전공하였다. 2회의 개인전을 비롯하여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는데, 주요단체전으로는 ‘미술과 놀이’(예술의 전당, 2007)을 비롯하여 포천아시아비엔날레 특별전(2007), 제 2회 광주비엔날레 조각파트 공공미술프로젝트(1997) 그 외에도 개관 10주년 기념전-상상력발전소’(울산 현대예술관, 2008) 등에 참여하였다. 현재 광주미협 및 남도조각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전남대와 광주여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자/발/적 영역표시 릴레이展 ‘滿새(사이)’ 일정

5월 25일(일)~5월 29일(목) 자발적 영역표시 공간해석전
5월 31일(토)~6월 9일 (월) 제/대/로 영역점유 릴레이전 1부- 이호동 & 장호현
6월 12일(목)~6월 21일(토) 제/대/로 영역점유 릴레이전 2부- 임남진 & 조광석
6월 24일(화)~7월 3일 (목) 제/대/로 영역점유 릴레이전 3부- 정운학 & 주라영

~만 말 토크’ 안내 매 '~만 말' 토크는 저녁 7시에 진행되며, 끝난 직후 ‘매미’bar with '生' 파티가 진행된다. 금번 만말토크의 주제는 ‘무슨 작업??’이다. 개관전의 모토가 ‘공간에 대한 해석’이기에 그로부터 작가와 개별 작품에 대해서 소외되거나 놓칠 수 있는 부분들을 중심으로 하여 자리를 마련한다.
6월 7일 (토) 이호동과 장호현 -이하 이장 ‘만말’
6월 14일(토) 임남진과 조광석 -이하 임조 ‘만말’
6월 24일(화) 정운학과 주라영 -이하 정주 ‘만말’
(pm 7:00~8:30 ~만 말 토크 / pm 8:30~ ‘매미’bar with '生' 파티)

2008년 5월 11일 일요일

창작스튜디오와 오픈스튜디오 논의에 대한 토론문

광주 전남 문화연대 토론 참여글


매개공간 미나里(이하 '매미') 큐레이터 최윤정


‘섬세한 기획’은 ‘창작’이라는 문화적 행위에 대한 순수한 입장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문화란 생동이다. 생동은 스며듦과 발현의 경계로부터 나타나는 삶의 유영이다. 삶이라는 것은 각각의 주체를 지니고 있으며, 이 주체는 바로 살아가는, ‘문화’라는 자연스런 흐름을 구성하는 우리네 인생들이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문화란 행여나 주입되더라도 주체적인 수용방식을 통해 자생성의 근원을 제공할 수도 있고, 그 자체가 자생적인 토대 속에서 생겨나기도 한다. 이 같은 맥락에서 나는 문화라는 큰 틀을 고민하면서 지금의 창작촌 논의에 대한 우려 내지는 다른 시각을 덧붙여보고자 한다.
폐교 활용에 대한 논의에서부터 각 공립 미술관련 기관 및 지자체의 창작스튜디오 설립은 현재 최고조로 붐을 이룬 듯 보인다. 실상 미술계 쪽에서 창작스튜디오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작가들이 스스로를 프로모션해야 하는 시대적인 흐름과 맞물려 각종 미술대전이 지녀왔던 권위를 대체하고 있고, 미술계 외곽에서는 그것이 이미지 쇄신 및 문화산업의 문맥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한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는 창작촌을 건립하거나 참여하거나 혹은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확언하는 분들께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이를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증적인 답변이 있는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하는 이유가 스스로에게 합당한가’, ‘오픈스튜디오의 목적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붐은 언젠가는 꺼질 수밖에 없다. 기관주도형으로 창작스튜디오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 전문가도 그리고 일정한 프로그램도 없고 또한 외적인 형식을 갖추어 놓은 것 외에 창작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과 이해를 견지하지 않는 상태에서의 붐이라면 지속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관행적인 풍토로 정착되어 파행을 이끌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목표를 위해 도구적으로 창작스튜디오에 접근하는 경우, 이는 당연히 창작활동에 대한 몰이해에서 출발하는 한계로 인해 실질적으로 작가들에게 분명 제공해야 할 부분들을 놓칠 수밖에 없다.
물론 나의 접근은 일편 ‘우려’의 시각에 한한다. 왠지 창작촌의 논의와 오픈스튜디오의 논의를 지켜보다 보면 접근 자체가 상당히 순진하고 그 중심에 ‘작가’와 ‘창작’에 대한 고민이 놓여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또한 작가들에게서도 그것이 미술대전 수상 못잖은 쓸만한 경력 한 줄로서 소용되는 것에 만족하는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낄 때가 있다. 창작촌의 임무와 오픈스튜디오의 적절한 방향성이 순수하게 창작기반에 관련한 고민들로서 인식적인 합의 부문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는 그 시작이야 어떻든 간에 자생적으로 생성되고 일궈진다. 그렇기에 문화적 행위인 ‘창작’ 역시도 창작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자생적인 터전에서 일구어졌을 때 행위 자체가 그리고 행위 주체 스스로가 이에 대한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2008년 5월 25일 개관을 앞두고 있는 매미(매개공간 미나리)는 기본 골조를 살린 상태에서 창고 건물을 개조하여 마련되었다. 완성되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지만 공사는 전적으로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지역 미술인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을 기반으로 진행되어 왔다. 매미는 지역의 보수적인 경계 및 한계를 뛰어넘고 예술가들 스스로가 자신이 원하는 보다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역할들을 진행할 것이다. 더불어 애초의 태생 자체가 작가들의 자발적인 측면과 우여곡절을 겪은 자생적인 생성의 기간을 거쳐 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요소들을 정체성으로 담아낼 수 있는 기획 프로그램들이 공간을 채워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다시 말해 그 시작은 공간 태생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이미 출발한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비단 창작스튜디오, 레지던스 프로그램 및 오픈스튜디오 등의 기획들에 있어서 애초의 시작 논의에서부터 예술가의 ‘창작’ 행위를 끌어내고 담론화할 수 있는 중심을 공간 및 프로그램의 특성 및 정체성으로 유도해야 하고, 이를 중심으로 하여 작가들 스스로 ‘자발성’을 중심으로 하여 ‘창작’을 도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저변 의식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2007년 11월 5일 월요일

기고_지역과 예술활동

기고_지역과 예술활동

#1. 평택 대추리에서 이뤄진 현장예술 활동


최윤정 ● 미학, 미술프로젝트

현재 나는 지난 몇 년 간 미군기지 이전 예정지로 발표되었던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에서 벌어진 현장 예술에 대한 기록들을 점검하고 이를 자료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평택은 안성에서 그리 멀지 않다. 안성에서 출발하여 평택 대추리까지는 채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이 사실,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 그러나 이 익숙한 사실은 실상 나에게는 대단히 낯선 느낌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충격이었다. 평상시 나는 그와 같은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시골 동네에서 어느 순간 투쟁의 격전지이자, 대한민국의 섬이 되어버린 동네... 그저 평화롭게만 조용히만 살아오던 순박한 농부들이 외부적 압력에 의해 그야말로 투사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그 현장이 내 고향 근처, 것도 바로 코앞에 있었다는 사실은 이 이슈에 대해 묘한 심리적 거리감을 갖게 하는 요인이기도 했다.
세상이 이 동네에 주목하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정치적으로 한반도의 상황을 비유하는 미군기지 확장과 인권탄압, 그곳은 현대사에 기록되어야 할 투쟁과 반목의 현장으로서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이와 동시에 이 동네가 주목받는 중요한 요소를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예술인의 자발적 참여가 이루어졌으며, 예술의 사회적 참여와 치유적 역할에 대한 담론들을 생산하는 하나의 산실이 되어 왔다는 것이 바로 그 점이다. 특히 평화를 위한 이 모든 싸움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문화예술 활동이었다. 이는 가수 정태춘에 의해 힘입은 바가 컸다. 그곳은 그가 태어나 자란 곳이자, 그의 서정을 키워 온 공간이었다. 그를 중심으로 하여,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인들과 류연복 외 미술작가들이 모여 지속적으로 ‘들이 운다’ 문화제를 개최하고, 작품 활동을 진행하면서 이 ‘섬’은 외부로 알려질 수 있는 든든한 길을 얻게 되었다. 당시 언론보도는 마치 80년대 무고한 시민이 ‘간첩’으로 둔갑하는 것만큼이나 심각한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언론 및 진보 단체 언론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옳은, 정당한 보도를 내지 않았다. 활발한 현장예술 활동을 통해서 외부로의 끈을 잡고자 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더불어 그곳에서 이루어진 예술활동은 주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했다. 무려 3년 여 간의 대추초등학교 촛불시위 자리에는 늘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참여하였고, 또한 곧 폐허가 될지도 모르는 동네는 언제서부턴가 벽시와 벽화들로 채워져 화려하고 아름다운, 희망의 염원을 담은 색채들을 두르게 되었다. 또한 각종 설치 미술 작품들은 마을 곳곳에서 주민들에게 무언의 희망을 보내주었다. 여기서 미술은 80년대 도구화된 사례들처럼 주민들을 선동하기 위해 다가간 것이 아니었으며,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에게 그 힘든 순간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그야말로 그들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행위로 승화되었다. 그리하여 투쟁의 현장, 그 와중에 ‘평화예술동산’도 조성되었다. 그곳에 설치된 작품들 몇몇은 지역 문화재로 지정받기도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공권력의 예술 활동에 대한 몰이해와 몰상식한 파괴행위들로 인해 무참히 손상을 입게 되었다. 이는 오히려 외부에 대추리 도두리의 참상을 더욱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현장예술에 대한 몰이해 속에서 문화예술계는 한 목소리로 이를 규탄하고 각종 토론회를 통해서 현장예술의 가치와 의의에 대한 논의를 촉진시켰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들은 지역의 예술활동에 대한 중요성과 그에 대한 이해를 일반인들에게 전할 수 있었던 중요한 기점으로 평가된다. 굳이 안성이나 평택에 살지 않더라도 수많은 예술인들은 현대 사회의 모순적 장면을 밝혀줄 그 ‘문맥’을 쫓아 대추리로 속속 모여들었으며, 개인의 작업으로 공동의 작업으로 대추리는 어느 순간 예술인들이 가장 활발하게 자기 작업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자료를 조사하다 보니, 대추리 주민의 대부분은 카톨릭 신자였고 그들의 아픈 삶에서 문정현 신부(평화유랑단 ‘평화바람’ 단장)가 정신적 지주가 되어 늘 그들의 곁을 지켜왔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대추리에서 활발히 활동해왔던 작가들은 안성에 작업실을 두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곳은 안성의 여느 시골풍경과 비슷하다. 그러나 그리 멀지 않은 공간에서 전혀 다른 삶들이 펼쳐져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가? 그 삶들이 외부로 노출되기 전까지 그들이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우리가 이에 할 수 있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서두에 밝힌 나의 ‘묘한 심리적 거리감의 근거’는 바로 이에 준한다.

2007년 8월 4일 토요일


'복음과 상황' 문화섹션 기고글


초국적 ‘블록버스터’展 _한국의 미술계 현안 속에서 바라보다

최윤정(미학_미술비평_문화기획집단 ‘오다’ 시각예술분과 책임연구원)
대가의 향취는 여하간 좋다.
많은 이들이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 그 관심을 부여하는 동기가 되어주는 첫 경험은 서양 대가들의 회화작품을 마주하는 경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종종 해보았다. 한정된 평면 속에서 어우러지는 미묘한 색채들의 연회, 화면의 구성은 감상자들로 하여금 산악의 능선을 향유하듯 숙연한 감정까지 일으키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대가들의 비극적이고 낭만적인 삶은 세인의 로맨티시즘을 자극하기도 한다.
최근 외국의 유수 미술관을 방문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러한 감상에 젖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많은 대가들의 작품이 일정한 기획으로 구성되어 국내 미술관 곳곳에 전시되는 사례들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먹고 사는 데에만 급급했던 시기를 넘어 문화와 여가를 향유하는 것이 삶의 한 지표가 된 사회적 분위기를 일정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저 그것이 현대인들의 건조한 일상을 촉촉이 적실 수만 있다면 혹은 이로써 예술에 대해 보다 많은 이들이 연정을 품을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비록 동시대는 아닐지언정, 과거를 담은 그 화려한 색채들 속에서 느껴볼 수 있을 숭고함과 애틋함이란 결코 전시장 안에서만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언해보면서...
근대적 감성, 현대 속에서 ‘블록버스터’로 살아남다
최근 한국 미술계의 주요 화두는 바로 ‘블록버스터 전시’이다. 블록버스터라 하면 자연히 막대한 자본과 스타를 내세운 미국 헐리우드 영화를 떠올리게 되는 법인데, 미술 전시에 '블록버스터'가 수식어로 붙은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빛의 화가 모네전’, 덕수궁 미술관의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전’, 그리고 한가람 미술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오르세 미술관전’ 등은 2000년대 들면서부터 국내에서 진행되어 온 대형전시들의 면면을 보여준다. 소위 ‘블록버스터 전시’들로서 이들이 부담해야 할 작품의 보험료는 가히 천문학적 수준이다. 이러한 비용들을 모두 감수하고 들여와야 한다는 점에서 ‘블록버스터’ 전시는 분명 위험성이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미술사 속에서 명망 있는 예술가의 작품들을 들여온다는 점을 홍보에 충분히 활용하여 나름 만족스런 흥행성적을 올리고 있다. 실질적으로 이와 같은 전시는 예술을 향유하고자 하는 많은 이들이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세계를 만유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회이며, 그렇기에 지속적으로 호응이 늘어나는 추세는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요소에서 우리는 보다 대중성을 향해가는 ‘블록버스터’ 전시가 갖는 유의미함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 갈수록 급증하는 이 같은 전시들에 대한 관심이 지금 현재 동시대적 문맥 속에서 펼쳐지는 국내 작품과 전시에 대한 관심으로 곧바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재고해볼 여지가 있다. 오히려 이로 인해 국내 미술계 발전에 있어 저해가 된다는 우려도 곳곳에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우리는 ‘블록버스터’ 전시가 국내 미술계에 끼친 혹은 끼칠 공과에 대해 살피지 아니할 수 없다.

‘장’의 문제_ 미술관이 지니는 공공성의 의미와 큐레이터의 역할
작품의 규모와 대가들의 작품에 적합한 실내 환경을 고려했을 때, 이 같은 전시는 시설이 잘 갖추어진 미술관을 요구한다. 이는 주로 국공립 미술관이나 이에 못잖은 몇몇 사립미술관 등이다. 이 장소들의 사회적 의미를 살펴보면, 본래 미술관은 공공의 예술향유와 문화적 교양을 교육하는 산실로서 자리한다. 즉 그 기본 토대에는 늘 ‘공공성’이라는 테제가 전제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임무에 있어서 미술관은 작가를 등용하는 산실로서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굴해내고 이를 보존 혹은 전시를 함으로써 이에 대한 미술사적 의의를 구축해내야 한다. 우리가 큐레이터를 미술관의 꽃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들이 바로 이같은 미술관의 임무를 주체적으로 수행해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 보자. 실제 ‘블록버스터’전시는 적당히 포장되고 위엄이 있어 보이는 ‘미술관’이라는 장소에서 이뤄지지만, 그 속에서 미술관 큐레이터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보통 관련 기획사 측에서 이미 하나의 전시형태로 갖춰진 외국의 대형전시를 수입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미술관이 담당해내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저 장소 대관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블록버스터’ 전시는 이를 수입한 자만 있을 뿐, 정확히 말해서 이를 발군의 큐레이터쉽으로 기획한 자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러한 추세로 간다면 국내에서 모범적 사례가 될 만한 전시를 기획하고 이를 해외에 소개할 수 있는 수준으로 도약한다는 것은 점점 더 요원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많은 지적들에서 살필 수 있듯이 ‘블록버스터’ 전시가 과연 질적으로 높은가에 대해 명확히 발언할 필요를 느낀다. 몇 년 전 서양미술 몇 백년의 역사를 훑는다는 한 ‘블록버스터’ 전시에서 큐비즘을 소개하는 구간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이를 시각적으로 여실히 비춰줄 만한 모범이 전무했던, 그야말로 해프닝이 아닐 수 없었다. 큐비즘의 대가인 피카소가 와 있는데, 어찌하여 큐비즘을 상기시키는 작품은 달랑 한 가지도 없을 수 있단 말인가? 그저 그가 무명시절 그린 몇 점의 습작 스케치가 전부였을 뿐이었다. 미술사적 맥락이 전시의 가장 중요한 골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시 텍스트와 작품은 따로 노는 사태를 빚은 것이다. 그 속에 과연 큐레이터쉽이란 것이 있었는가 말이다.
계속해서 미술관이 이러한 ‘블록버스터’ 대관업무에 치중하게 된다면, 국내 작가들이 전시할 공간은 그만큼 줄 수밖에 없고, 훌륭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당연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술관과 상업화랑의 역할은 분명 다르다. 그러나 이에 종사하는 전문직종의 명칭이 모두 ‘큐레이터’로 뭉뚱그려 언급되는 것은 늘 이상하다. 전문성을 담아내는 그 명칭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이유,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그 중심에서 모범이 되어야 할 미술관이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확고히 해내지 못한 탓도 크리라고 본다. 그 나름의 사정이야 어찌되었든 여기에는 소위 ‘블록버스터’ 전시 유치에만 급급해 보이는 미술관에 대한 일종의 애석한 심정이 깃들어 있음을 알아주길 바란다. 최근 국내 국공립미술관들은 재정적으로 독립할 것을 재촉당하고 있고, 이에 따라 점차 법인화로 그 형태가 전환되어갈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바 있다. 그 같은 방향으로 변모해가는 것은 물론 장점도 분명 있겠지만, ‘돈이 되는 전시’에 편승하지 않았던 미술관들조차도 ‘블록버스터’ 위주로 프로그램을 재편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게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미술관의 현실을 꼬집고 비판하는 장소로서 ‘대안공간’의 필요성이 더욱 배가되거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자 하는 작가들의 피어린 노력들로 인해 새로운 대안체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해본다. 뭐든 어려운 현실에서 이를 악물던 때를 무/책/임/하/게 곱씹어 보자면 말이다.■ cHOiyoONC

2007년 7월 25일 수요일

월간미술 기고문

'아트북' 섹션

[미학], 김진엽 하선규 엮음, 책세상


길을 지나다 보면 ‘xx에스테틱’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이는 언제서부턴가 피부과나 성형외과 혹은 미용 관련 상호를 대표하는 전형이 되었다. ‘에스테틱(aesthetic)’, ‘미적인’이나 ‘심미적인’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로 인해 얻게 되는 무수한 오해들, 아마도 미학전공자들의 대부분은 ‘미학’이라는 학명에 대해 한번쯤은 의구심을 품어봤을 것이라 예상한다. 말하자면 ‘미술사학’처럼 전공 교과가 확연히 그 이름 속에서 드러나는 학명과는 달리, ‘미학’은 상당히 모호하고 어떤 환상까지도 조장할 수 있는 미묘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이를 반영하는 종류의 질문을 받기도 하여 이로 인해 당혹스러울 때도 생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진정 곤혹스러운 경험이라 한다면 ‘미학이 도대체 무엇입니까’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이 질문에 대해 오해의 소지 없이 제대로 된 답변을 제공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순간 잔뜩 긴장한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우리 일상 속에서 ‘미학’은 아주 빈번하게 어떤 개념이나 사건의 극적임을 강조하는 수식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같은 사용이 일반화된 이래로 어디든지 갖다 붙여도 꽤 폼나는 문구를 형성하는 탓에, 많은 이들이 이 학명을 다소 낭만적이고 신비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미학을 일종의 취미로서 대하고자 하는 경우와 학문으로서 대하고자 할 때 그 사이의 괴리감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미학은 독일어 'Ästhetik', 영어‘aesthetics'에 대한 우리 말 번역이다. 원래 그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인 aisthanesthai(지각하다)와 aisthētica(지각적인 대상)에 기초하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유’에 대비해 ‘감각적 지각, 감성의 영역’을 지칭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그 명명이 필요했던 때는 바로 18세기 낭만주의 무렵으로, 이 시기는 이성의 대립 쌍으로 여겨졌던 감성과 상상, 예술적인 영감들이 이성이 보증할 수 없는 주관성의 진리에 다가갈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기에 학문적 연구과제로도 중요하게 다뤄지게 되고 이후 근대철학의 중심 교과로서 자리 잡는 것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미학은 “감성적 인식에 관한 학”의 의미로서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그 이래로 이는 ‘예술철학’, ‘미와 예술에 관한 이론’을 지칭하는 교과로 쓰여 왔다. 물론 그 기원을 살피는 것만으로 ‘미학’에 대한 물음을 해소할 수는 없다. 생각해보면 감성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서,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넘어서야만 했던 데카르트적 이성은 다시금 그 수식어인 “명석하고 판명한”을 통해서 “명석하지만 혼연한”의 대구를 형성하고 이를 연구하는 방법론으로 채택되었다. 따라서 이것만 놓고 보았을 때는 ‘미학’을 스스로 규정해보고 다가서기란 쉽지 않다. 물론 ‘감성’적인 주제와 논리적인 방법론의 결합이라는 형식은 그것이 그나마 누구에게나 설득력 있는 ‘학’으로 성립하기 위해서 단연 필연적이다. 하지만 그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개인의 일상적 경험에서 비롯된 상태가 ‘감성’의 영역에 포함되는 것이며, 그렇기에 그 모든 주관적인 체험들은 미학의 목적 속에서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미학이 지닌 문제의식은 진정한 의미의 휴머니즘적 요소를 구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학’에 대한 관심은 주관적인 선호에 그치지 않고 그 방법론과 더불어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 기초가 되어줄 수 있는 ‘미학사’와 ‘미학 개론’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미학이 서구에 기초해 있고 국내 미학의 역사가 짧다보니, 참고할 수 있는 대부분의 서적들은 원서나 혹은 몇 권의 번역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출간된『미학』(김진엽·하선규 엮음, 책세상)은 대단히 고무적인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책은 1970년대 이후 국내 미학계 학술지에 실린 연구논문들 중 ‘미학의 역사와 구조’를 통찰할 수 있도록, 편집자적인 관점에서 국내 미학자들의 논문을 선별하여 구성한 보기 드문 ‘미학 논문선집’이다. 재밌는 것은, 이 책을 읽다 보면 왜 제목을 그리 엄하게 지었는지에 대해 충분히 간파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앞서 ‘미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그 학문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극명하고 친절한 이해를 담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러 오해적 소지를 낳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모든 오해들에 대해 분명하게 대처하는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총 4부로 이뤄진 구성은 독자로 하여금 국내에서 연구되는 서양 미학의 범주를 확연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이어지는 고중세미학, ‘미학’이 학으로 규정되는 시기의 근대미학, 근대사회에 대한 반성과 이를 통한 이론적 관점으로서 새롭게 미학을 해석하고자 했던 현대유럽미학, 마지막으로 다양한 학문적 범주와 결합하여 미학의 다원주의를 꾀하는 현대영미미학 등 이상 네 범주는 국내 서양 미학 연구 분과들로 상정된다. 각 부는 각자의 범주에서 이해의 방향을 일러주는 서문을 포함한다. 그리고 보충자료 및 면밀한 연구에 필요할 수 있는 관련서들을 각 부 마지막 부분에 소개하면서 주제에 대한 독서의 방향을 지시해준다. 이 같은 요소는 이 책이 개론서로서도 활용할 수 있는 근거를 충분히 갖게 하며, 그럼으로써 독자가 좀 더 효율적으로 세부적인 것에 다가갈 수 있게끔 하고 있다.
이 책을 구성하는 논문들은 각 시기별 중요한 세부 논의들을 반영한다. 말하자면 2부는 미적경험과 예술 등 개별적이고 감각적인 것이 고유한 가치로 인정되면서, 이것이 또한 동시에 보편성을 띤다고 보았던 근대미학의 주요논의들을 끌어낸다. ‘감성적 인식의 학’으로서 ‘미학’을 명명한 바움가르텐에서부터, 개별 주관의 경험으로서 ‘취미’를 강조하고 개별성과 보편성이 합일되는 지점 즉 “상상력과 오성의 유희”로 표현되었던 ‘반성적 판단력’을 강조했던 칸트나 예술을 ‘이념의 감각적인 현현’으로 추켜세웠던 헤겔, 그리고 주관의 경험으로서 ‘무관심적인 관조’로 ‘미적인 태도’를 이끈 쇼펜하우어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은 근대 미학의 중심적인 테제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따라서 각 논문의 주제를 보면, 그 시기 주요한 미학적 주제들이 무엇인가를 파악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어렵지 않게 시기별 주요 개념들과 역사적 문맥을 동시적으로 통찰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이 책에서 미학의 연구 범주와 개별 주제들에 대한 세부적인 이해를 꾀할 수 있으며, 각각이 부담 없는 분량의 소논문 형식이기에, 이에 따라 관심 있는 주제들 위주로 발췌하며 읽을 수 있다. 또한 기존의 미학관련서적에 비해 다양하고 새로운 주제들이 소개되고 있어 최근의 연구 경향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미학’이라는 거대 이름 속에서 서양 미학에만 한정하여 논문집을 구성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편집자도 분명 그 한계로 밝히고 있는데, 어떤 경우이든 동양미학의 연구범주와 내용들은 서양미학에 비해 숙고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앞으로 이 같은 논문선집이 그 초석이 되어 이를 통해 미학연구에 대한 다양한 소개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최윤정(미학, 미술비평)

2007년 7월 19일 목요일

U-MiRRor's HUmoUroUs 展 손승화 작가_Critic

손승화의 작업은 개인적인 모티브가 강하게 배어있으면서 동시에 대단히 관계적이다. 우리가 세상에 많은 작품들을 문학적으로 비유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의 작품은 분명 ‘수필’이다. 주로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 거기에서 특히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 '몸소 실천해보이기 힘든 것들' 혹은 늘상 누구고 귀찮아했을 수 있었던 부분들을 과장하지 않고 자신의 숨에 맞추어 한 장면 한 장면 이어 나간다. 그의 가장 커다란 관심사는 자기 일상 속에서 작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자기 진정성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본 전시에 소개될 미디어 퍼포먼스인 <부모님께>와 <효도 프로젝트>는 이러한 맥락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졸업에 임박한 작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부모님, 작가는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리기 위해 혹은 설득하기 위해서 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가 생존의 문턱에서 스스로 작가로서의 삶을 택한 이상, 부모님께 이를 표명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란색, 그 색의 페인트를 뒤집어쓰고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며 자기의지를 확인하고 부르짖는 일뿐이다.
“부모님 사랑합니다! 저.. 계속 작/업/하/고 싶어요”
애잔하면서도 익살스런 감정을 이끌어낸 이 작품은 이제 본격적으로 ‘효도프로젝트’로 발전한다. 그것은 자신이 선택한 직업 즉 작가라는 본업에 충실하여 부모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실천을 해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부모님께는 세상에서 더 없는 기쁨을 선사하는 순간이자, 작가에게는 부모님에 대한 끈끈한 애정을 아로새기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의 기록은 소소하나 마음이 충만해지는 행복이며, 부모님이 사시는 바로 그 곳, 그들의 일상을 감싸고 보호하고 있는 그 장소 벽에 예쁜 ‘바다’를 그려 넣는 일이다. 그리고 나서 작가는 이윽고 자신의 드로잉을 스스로가 재현한 바다에 투영한다. 한 마리의 복어를 연상케 하는 이 마지막 장면은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에게 부모님이 뿌듯해 마지않아 주고 받을 지도 모를 몇 마디의 말들을 상상하게 한다.
이 벽화작업의 관전 포인트라 한다면, 마침 그 길을 지나가는 동네 어르신들과 꼬마 아이들이 보이는 관심이며 그들이 우연적으로 작업에 참여하기도 하는 모습에 있다. 그야말로 뜬금 없지만 낯설지 않은 그리고 유쾌하면서 동시에 잔잔하기까지 한, 언젠가 해 보일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늘 서먹했던 우리들의 일상. 손승화는 그것을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하나의 실천으로 치러낸다. 것도 대단히 능청스럽게 한편 아주 사랑스럽게... ■ cHOiYOonC

2007년 4월 13일 부터 29일까지 아르코 미술관에서 진행된 '유미러스유머러스전' 도록에 실린 비평글

U-MiRRor's HUmoUroUs 展 오수형 작가_Critic

오수형은 단순한 이미지들을 복잡하게 배열하는 형식으로 결코 가볍지 않은 우리네 삶을 풀어낸다. 삶은 혼돈과 고통을 껴안은 끊임없는 투쟁이며, 그렇기에 살아간다는 것 자체는 매우 고역스런 일이기도 하다. 섬세하고 빽빽하게 채워진 그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이같은 작품 제작 과정이 그의 작품 주제와 더불어 작가에게도 분명 고되고 힘든 작업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면류관>은 비슷한 생김새의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싸우듯, 혹은 서로를 부여잡거나 껴안은 듯이 작은 육신들 사이의 응집을 예수의 수난을 상징하는 거대한 ‘면류관’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경쟁의 테두리 속에서 아둥바둥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 연작으로 <하늘 위 천장>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또한 이를 위해 남을 짓누르고 끌어내리는 그러나 결국 아무리 발버둥쳐봐도 ‘천장’이라는 한계를 만날 수 밖에 없는 허무한 상황을 묘사한다. 인간이 넘을 수 없는 한계, 그러한 한계가 있다면 과연 어디까지 오르는 것이 옳은지 혹은 오른다는 것 자체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 수 있을지 작가는 작품을 통해 되묻고 우리는 이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극복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 자기 개성과 능력 없이 타인을 모략하고 온갖 권모술수로 자기 자리를 지켜나가는 종류의 인간 군상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의 묘사는 대단히 원초적인 동작들을 통해서 시각적으로 강하게 보여진다. 인간의 집착이란 결국 그 끝이 있고 그 속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간 군상의 형상 속에 담는 것이다.
작가는 위의 두 연작과 더불어 그보다는 좀더 유연하게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를 끌어간다. 5,200장의 핸드 드로잉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은 수많은 상징과 메타포들로 이루어졌으며, 각각의 장면들은 대단히 빠르고 역동적으로 구성된다. 이 작품은 삶의 이유가 순식간에 죽음의 원인으로 이어지는 우리 인생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인생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고민하게끔 한다. 인간이 일생 동안 끊임없이 추구하고 지켜나가고자 하는 것이 어쩌면 ‘똥’에 불과할 수 있다는 다소 엉뚱한 아이디어에서 우리는 ‘인생무상’이라는 삶의 허망함을 목도할 수 있지만, 그것이 그다지 우울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한 발 물러서서 생각해 보게끔 만드는 이유는 이 작품의 포인트라 할 수 있는 귀엽고 재미있는 캐릭터적 소재들, 그것들을 통해 과중한 문제를 유화시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 chOiYOoNC

2007년 4월13일에서 29일 아르코미술관 CTP연계전'유미러스유머러스展' 의 도록에 실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