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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김진엽 하선규 엮음, 책세상
길을 지나다 보면 ‘xx에스테틱’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이는 언제서부턴가 피부과나 성형외과 혹은 미용 관련 상호를 대표하는 전형이 되었다. ‘에스테틱(aesthetic)’, ‘미적인’이나 ‘심미적인’으로 번역되는 이 단어로 인해 얻게 되는 무수한 오해들, 아마도 미학전공자들의 대부분은 ‘미학’이라는 학명에 대해 한번쯤은 의구심을 품어봤을 것이라 예상한다. 말하자면 ‘미술사학’처럼 전공 교과가 확연히 그 이름 속에서 드러나는 학명과는 달리, ‘미학’은 상당히 모호하고 어떤 환상까지도 조장할 수 있는 미묘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이를 반영하는 종류의 질문을 받기도 하여 이로 인해 당혹스러울 때도 생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진정 곤혹스러운 경험이라 한다면 ‘미학이 도대체 무엇입니까’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이 질문에 대해 오해의 소지 없이 제대로 된 답변을 제공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순간 잔뜩 긴장한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다.
우리 일상 속에서 ‘미학’은 아주 빈번하게 어떤 개념이나 사건의 극적임을 강조하는 수식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같은 사용이 일반화된 이래로 어디든지 갖다 붙여도 꽤 폼나는 문구를 형성하는 탓에, 많은 이들이 이 학명을 다소 낭만적이고 신비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미학을 일종의 취미로서 대하고자 하는 경우와 학문으로서 대하고자 할 때 그 사이의 괴리감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미학은 독일어 'Ästhetik', 영어‘aesthetics'에 대한 우리 말 번역이다. 원래 그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인 aisthanesthai(지각하다)와 aisthētica(지각적인 대상)에 기초하여,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유’에 대비해 ‘감각적 지각, 감성의 영역’을 지칭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그 명명이 필요했던 때는 바로 18세기 낭만주의 무렵으로, 이 시기는 이성의 대립 쌍으로 여겨졌던 감성과 상상, 예술적인 영감들이 이성이 보증할 수 없는 주관성의 진리에 다가갈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기에 학문적 연구과제로도 중요하게 다뤄지게 되고 이후 근대철학의 중심 교과로서 자리 잡는 것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미학은 “감성적 인식에 관한 학”의 의미로서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그 이래로 이는 ‘예술철학’, ‘미와 예술에 관한 이론’을 지칭하는 교과로 쓰여 왔다. 물론 그 기원을 살피는 것만으로 ‘미학’에 대한 물음을 해소할 수는 없다. 생각해보면 감성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서, 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넘어서야만 했던 데카르트적 이성은 다시금 그 수식어인 “명석하고 판명한”을 통해서 “명석하지만 혼연한”의 대구를 형성하고 이를 연구하는 방법론으로 채택되었다. 따라서 이것만 놓고 보았을 때는 ‘미학’을 스스로 규정해보고 다가서기란 쉽지 않다. 물론 ‘감성’적인 주제와 논리적인 방법론의 결합이라는 형식은 그것이 그나마 누구에게나 설득력 있는 ‘학’으로 성립하기 위해서 단연 필연적이다. 하지만 그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개인의 일상적 경험에서 비롯된 상태가 ‘감성’의 영역에 포함되는 것이며, 그렇기에 그 모든 주관적인 체험들은 미학의 목적 속에서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미학이 지닌 문제의식은 진정한 의미의 휴머니즘적 요소를 구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학’에 대한 관심은 주관적인 선호에 그치지 않고 그 방법론과 더불어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 기초가 되어줄 수 있는 ‘미학사’와 ‘미학 개론’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미학이 서구에 기초해 있고 국내 미학의 역사가 짧다보니, 참고할 수 있는 대부분의 서적들은 원서나 혹은 몇 권의 번역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출간된『미학』(김진엽·하선규 엮음, 책세상)은 대단히 고무적인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책은 1970년대 이후 국내 미학계 학술지에 실린 연구논문들 중 ‘미학의 역사와 구조’를 통찰할 수 있도록, 편집자적인 관점에서 국내 미학자들의 논문을 선별하여 구성한 보기 드문 ‘미학 논문선집’이다. 재밌는 것은, 이 책을 읽다 보면 왜 제목을 그리 엄하게 지었는지에 대해 충분히 간파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앞서 ‘미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그 학문을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극명하고 친절한 이해를 담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러 오해적 소지를 낳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모든 오해들에 대해 분명하게 대처하는 자세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총 4부로 이뤄진 구성은 독자로 하여금 국내에서 연구되는 서양 미학의 범주를 확연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로부터 이어지는 고중세미학, ‘미학’이 학으로 규정되는 시기의 근대미학, 근대사회에 대한 반성과 이를 통한 이론적 관점으로서 새롭게 미학을 해석하고자 했던 현대유럽미학, 마지막으로 다양한 학문적 범주와 결합하여 미학의 다원주의를 꾀하는 현대영미미학 등 이상 네 범주는 국내 서양 미학 연구 분과들로 상정된다. 각 부는 각자의 범주에서 이해의 방향을 일러주는 서문을 포함한다. 그리고 보충자료 및 면밀한 연구에 필요할 수 있는 관련서들을 각 부 마지막 부분에 소개하면서 주제에 대한 독서의 방향을 지시해준다. 이 같은 요소는 이 책이 개론서로서도 활용할 수 있는 근거를 충분히 갖게 하며, 그럼으로써 독자가 좀 더 효율적으로 세부적인 것에 다가갈 수 있게끔 하고 있다.
이 책을 구성하는 논문들은 각 시기별 중요한 세부 논의들을 반영한다. 말하자면 2부는 미적경험과 예술 등 개별적이고 감각적인 것이 고유한 가치로 인정되면서, 이것이 또한 동시에 보편성을 띤다고 보았던 근대미학의 주요논의들을 끌어낸다. ‘감성적 인식의 학’으로서 ‘미학’을 명명한 바움가르텐에서부터, 개별 주관의 경험으로서 ‘취미’를 강조하고 개별성과 보편성이 합일되는 지점 즉 “상상력과 오성의 유희”로 표현되었던 ‘반성적 판단력’을 강조했던 칸트나 예술을 ‘이념의 감각적인 현현’으로 추켜세웠던 헤겔, 그리고 주관의 경험으로서 ‘무관심적인 관조’로 ‘미적인 태도’를 이끈 쇼펜하우어에 이르기까지 그 내용은 근대 미학의 중심적인 테제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따라서 각 논문의 주제를 보면, 그 시기 주요한 미학적 주제들이 무엇인가를 파악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어렵지 않게 시기별 주요 개념들과 역사적 문맥을 동시적으로 통찰할 수 있게 된다.
이로써 우리는 이 책에서 미학의 연구 범주와 개별 주제들에 대한 세부적인 이해를 꾀할 수 있으며, 각각이 부담 없는 분량의 소논문 형식이기에, 이에 따라 관심 있는 주제들 위주로 발췌하며 읽을 수 있다. 또한 기존의 미학관련서적에 비해 다양하고 새로운 주제들이 소개되고 있어 최근의 연구 경향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미학’이라는 거대 이름 속에서 서양 미학에만 한정하여 논문집을 구성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은 편집자도 분명 그 한계로 밝히고 있는데, 어떤 경우이든 동양미학의 연구범주와 내용들은 서양미학에 비해 숙고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앞으로 이 같은 논문선집이 그 초석이 되어 이를 통해 미학연구에 대한 다양한 소개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최윤정(미학, 미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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