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12일 일요일

예술경영웹진_칼럼기고(2009.5.14)

No. 28 (2009.5.14)


[칼럼] 반성의 망,
현장예술활동


최윤정 _ 매개공간 미나里 큐레이터


지난 2008년 광주비엔날레의 ‘복덕방프로젝트’ 이후,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현장예술활동 맥락에서 광주 미술계가 얻은 소기의 성과는 대단했다. 우선 지역 미술인들이 자부심을 느낌과 동시에 참여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 그리고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이들이 도모한 기획이라는 것 등 지역이 지닌 저력과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였다.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에 대해 보자면, 작년 ‘복덕방 프로젝트’부터 호흡을 맞춰왔던 스태프진이 서서히 안정된 체계를 잡아가고 있고 현장이다 보니 작가들과 시민,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나타날 수 있었던 미묘한 불협화음조차도 그 대처하는 방식에 있어서 분명 세련미를 갖추어가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무래도 다소 이 역설적인 표현인 ‘세련미’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장에서의 원활한 활동이란 비단 기획팀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합의과정과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사업적인 부문, 사무적인 태도를 벗어나 인간적이고 자연스런 교류를 통한 상호 이해가 필요하다. 이 모든 점을 감안하였을 때, 이에 가장 훌륭한 매개로서 ‘무등산 막걸리’에 그 영광을 돌리고 싶다.
그러나 아무리 ‘세련미’를 발휘해도 채워질 수 없는 요소들이 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이 프로젝트 지원구조, 즉 국비 지원의 한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회계 시스템 자체가 현금사용을 금지하고 신용카드로서 진행되는 점에서 이는 재래시장과 어울리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실제 사업자등록을 하고 카드 결제가 가능한 점포는 몇 되지 않는다. 이미 시장 상인들은 이 프로젝트가 국비를 지원받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장사를 하시는 분들로서 기대하는 바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시장 안에서 소비자로서 기능하는 것, 또 한 가지는 이 프로젝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시장을 방문하고 더불어 자연스럽게 장을 봐 갈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는 않다. 대인시장은 애초부터 상권을 잃어가고 있었고 또한 상품종류가 다양하지 않으며 한편으로 주변 다른 재래시장에 비해 물건 가격이 비싸다는 인식이 있어왔다. 시장 내부에서도 자구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성과를 마냥 기대하기는 힘들다. 시장 내의 빈 점포들을 중심으로 하여 예술 활동을 펼친다고 했을 때, 시장상인들이 이례적으로 아무런 텃세 없이 적극적으로 지지해줄 수 있었던 이유는 빈 점포가 채워지는 것에 대한 호응도 있었겠지만, 한편 이러한 기대감이 끼치는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인식과 더불어 프로젝트팀은 이번 프로젝트가 일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자 시장이라는 공간에서 진행되는 예술 활동이라는 점, 현장과의 대화를 꾀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수반해야 한다는 의식을 공고히 지니고 있다. 더불어 국비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만큼, 사회 환원적인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는 부분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그로부터 나름 다른 방식으로 시장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가능한 아이디어를 생성하고 이를 시에 제안서를 내고 한참 협의를 꾀하고 있는 중이다. 더불어 참여하는 예술가들과의 이야깃거리를 거론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일반 레지던스 프로그램과는 달리 작가들이 한 구역에 밀집해 있지 않고 시장 곳곳에 마련된 작업실에 퍼져 있기에 관리에서 다소 힘에 부치는 측면이 있다. 다행히 이 부분은 격주마다 진행되는 '모작' 프로그램을 통해서('모작'은 작가의 프리젠테이션과 더불어 반상회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협의점을 마련해가고 있고, 또한 이는 중요한 소식을 전달하는 공식적인 창구로서 기능적인 부분이 생성되고 있다. 더불어 각종 건의 사항 및 논란들에 대해 서로 토론하며 방법을 함께 모색하고 있다. 이에 자연스럽게 공동체적인 의식도 생기고, 서로에 대한 유대감도 가족적인 분위기에 준하여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는 시점이다.그들 자체가 장소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시장에 들어왔고, 모두가 개별적인 자아가 강함에도 불구하고 시장 사람들에게 녹아들고자 많은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언제나 감사할 따름이다. 10인 남짓한 프로젝트 기획팀은 항상 점심밥을 같이 만들어 먹는다. 처음에는 비용때문이었지만 현재는 그것이 유대감 강화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보는 편이다. 이에 최근에는 작가 공용주방에서 매일 점심을 준비하고 작가분들도 함께 식사를 하면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주고받기까지 한다. 여기에는 소위 뒷담화라 불리는 ‘남걱정’도 유머러스하게 포함된다. 모두 현장에서 벌어지는 우연적인 사건들을 겪기에 그것이 다소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고 싸움까지도 불사했던 심각한 상황이었다 할지라도, 재미있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두들 서로 공유하게 되는 일종의 모험담처럼 되어간다. 웃으며 이야기 나누고 서로 놀리고 삐지다가 언제 그랬냐는 등 금방 풀리는 것이다.
배우는 바가 크다. 더불어 현장에 대한 애착도 강해진다. 이것은 일로서만 쌓을 수 있는 애착이 아닌 것임은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혹자가 말하듯 '머리에서 가슴으로' 기획의 일머리를 바꿔나가는 것, 현장은 이를 몸소 체험하게 해주었다.



--------------------------------------------------
필자소개 최윤정은 비평도 쓰고, 기획도 하는 사람이다. 홍익대 국문학과와 서울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했다. 대추리 현장예술 아카이브 프로젝트(2007), 대구시립미술관의 프리오프닝 전시 ‘아트인대구’(2007), 2008년 광주비엔날레 ‘복덕방 프로젝트’의 전시 코디네이터로 활동했으며 현재 미나里의 큐레이터로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프로그램 팀장을 맡고 있다.

BleuDot Asia 2009 Plan

블루닷 아시아 2009 기획의도


최윤정 큐레이터
Choi yoonJung ● BluDot Asia 2009 Curator


The ambition of BlueDot Asia 2009 : Create the wholesome Bluechip!

‘소더비’는 세계 미술시장의 권력과 권위를 상징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더불어 곳곳에 파생되어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블루칩’은 현대적인 작가와 상품성을 보증하는 일종의 백지수표로 자리 잡았다. 어떻게 하면 ‘블루칩’ 반열에 들 수 있으며, ‘소더비’ 무대에 나서볼 수 있는 것일까? 이 생각은 단지 목적적일 뿐인가, 아님 그 자체로 목적이 되었는가.
신선한 발음의 블루칩은 그로 명명된 예술가의 권위를 위한 고유어가 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신선하지 않다. 또한 그렇다고 수치상 ‘젊은 나이’의 작가가 결합했다는 이유로 신선하다 항변한다면 그 또한 블루칩을 개념적으로 정의하는 요지는 아닌 것 같다.
‘블루칩’의 재정립, 블루닷아시아2009의 주요 목적 중 하나이다. 그것은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섹터화된 정서와 구역을 지양하는 속에서 반성적인 ‘정체성’을 통해 구현해내는 것이다. 그 속에서 진정성을 갖추고, ‘세계-예술’과 동일한 특질이 아닌 등/위/의 특질로서 각 ‘구역’의 저력을 생성해내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적 개념과 더불어 이를 개념화하기 위한 질적인 문맥을 관통하는 구는 바로 ‘다질성(多質性)에 근거한 파(波)’1)이다. 그것은 ‘섞이면서 미끄러지고, 확산되면서 규정되지 않은 장을 생성하는 힘’이다. 그래서 블루닷아시아2009는 단순히 유행적인 것, 세계적이고 중앙에 집중되어 있던-마치 암세포처럼- 요소들을 개념적으로 지양하고자 한다. 무한한 내재성의 망 속에서 존재하고 있던 각 저력들이 드러나는 현장으로서 ‘블루닷아시아’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더불어 아트페어가 작가들을 상업적으로 구조화시키고, 그들의 창작 작업을 몰락시킬 수 있는 일부의 여지들을 그 단점으로 아슬아슬하게 안아왔다면, 오히려 역구조로 새로운 창작을 선보이고 도모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바를 전시개념의 강화와 진솔함의 깊이를 통해 실재화하는 것이다. 이는 실질적으로 예술가들을 대상화시키지 않고, 보다 그들을 드러내면서 지속적으로 프로모션하는 노력들이 사명감으로 수반되어야만 ‘블루닷아시아’가 성장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블루닷 아시아 2009_미학적 철학적 개념의 강화

블루닷아시아2009의 첫 문을 여는 전시, '커튼콜' : 자취를 발견하다'(1F)에서는 미술계 기성작가들의 탄탄하고 완성도 높은 작업들이 소개된다. 약 40인의 국내외 작가(한국, 중국, 인도, 태국, 인도네시아, 일본, 터키)가 참여하며,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사유와 함께 우리 삶에 대한 ‘자취’, ‘흔적’, ‘재발견’의 개념을 지니고 총 3막으로 구성된다. 1막 시작도 끝도 없는 간주곡, 2막_ 역설 : 생의 모호한 연속성, 3막 : 과장된 이야기_ 실재하는 동화는 참여작가들의 작품 의미와 더불어 그것이 지니는 형식적 특성들을 토대로 하여 구분되었다. 그리하여 "하나의 점이 선을 이루고 결을 이루고 면을 이루듯이 끝과 끝의 경계가 없는 것, 점의 흔적으로서 나의 세계를 발견하는 바로 그것"2)으로서 내용이 구성된다.
‘작은 나라, 갑작스런 밀도의 아름다움’(2F)은 '다양성'과 '지역성'이라는 말 대신에 등위의 '질'개념으로서 '다질성(多質性)'을 직접적으로 시각화하는 전시로서, 5개 대안공간이 참여한다. 광주(매개공간 미나里), 대전(반지하), 부산(오픈스페이스 배), 서울(대안공간 풀), 청주(HIVE)는 작가발굴 및 의미 있는 전시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공간이자, 'local'이라는 확고한 정체성을 안고, 열띤 활동을 펼치는 곳들이다. 이에 5개 공간의 활동을 소개하고, 더불어 5개의 기획전을 통해서 각 공간의 특색을 시각적으로 대변하는 40여 인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프로젝트 전시 : 시도'는 블루닷 아시아 2009의 감초 역할을 할 젊고 신선한 요소, 아트마켓 등의 이벤트를 강화한다. 1부는 국내외 젊은 작가들이 참여하는 '라이징스타 스페셜'이고, 2부는 아트마켓 컨셉으로 진행되는, 무명씨 전 '심리적 주목 99인의 100만원'과 스트리트 아트와 상품의 접목을 시도한 'Street Culture the Focus' 로 구성된다.

블루닷아시아 2009는 분명 젊은 아트페어이다. 이전 형식을 지양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형식을 개발하며, 작가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도 '작품성'과 더불어 '태도'에 대한 비평적인 시선을 분명 견지한다. 여기에는 세대 구분 없이 모두가 주인공이 된다. 젊은 아트페어란 비단 그것이 갖는 철학적 지평에서 논해져야 한다. 또한 작품성과 상업성 그 어느 한 곳에 기울어지지 않는 것은 이것이 분명 '기획전'이라는 특성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것이든 기획전의 묘미를 말할 때, 기획자로서 전시 개념 구성에서 정작 중요하게 살펴야 하는 것은 기획 이전에 감상자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감상자가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감상자는 자신에 대한 감상자가 되며, 예술가는 자신의 창작물을 감상자에게 줌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미처 자기 안에서 볼 수 없었을 지도 모르는 것을 알아차리게 도울 수 있다. 감상자가 작품 자체의 의미를 자기 안에서 인정하는 일은 바로 진실과 대면하는 순간이다.'3)


--------------------------------------------
1)들뢰즈와 가타리는 『천개의 고원』에서 '리좀(Rhizome)'을 빌어 고유의 철학적 사유를 드러낼 때, 그 하나의 원리로서 '다질성(多質性)'을 말했다. 나무가 중심을 전제하며 항상 계보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리좀은 땅밑줄기로서 각각의 모든 줄기가 다른 모든 줄기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자, 중심도 없고 주변도 없는 다양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이는 또한 블루닷 아시아 2009를 관통하는 기획의 핵심이기도 하다.
2)1층 전시 2막과 3막 사이, 전시 내용 중에서 발췌
3)"... 독자는 독서하는 순간 자기 자신에 대한 고유한 독자가 된다. 작가의 작품은 일종의 광학기구에 불과하다. 작가는 이 기구를 독자에게 줌으로써, 이 책이 없었다면 아마도 자기 자신 안에서 볼 수 없었을 것을, 알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 독자가 책이 말하는 것을 자기 자신 안에서 인정하는 일은 바로 진실과 대면하는 것이다..." _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http://www.bluedot.asia/




BlueDot Asia 2009 Plan

Choi yoonJung ● BluDot Asia 2009 Curator



The Ambition of BlueDot Asia 2009 : Create the Wholesome Bluechip!

Today ‘Sotheby' is a symbol of the power and the authority in the international market for art. Another widespread word 'Bluechip' is used in the market of art as an expression that refers to contemporary artists who guarantee the marketability of their works. How does an artist become a 'bluechip', or hold the stage of 'Sotheby'? Is this a question of a additional purpose or of the ultimate purpose of artists?

'Bluechip', once sounding fresh, has become a proper name for the authority of an artist who has been named it. However this word does not sound fresh anymore. If someone insists that it is still fresh because many 'young' artists win this title, he fails to grasp the conceptual definition of 'bluechip.'

Redefinition of 'bluechip' is one of the main purposes of BlueDot Asia 2009. It is achieved through reflecting 'identity' regardless of generations, without partitioning regions and their sentiment. In this process, it comes to find its genuine property and generate the potential energy of each 'region' not with a same feature as but with an equivalent quality to 'international art'.

With this attitude, 'the wave based on the heterogeneity(or multi-quality)'1) is the phrase that conceptualizes BlueDot Asia 2009 in the qualitative context. It is 'the power that generates the field blending, sliding, spreading and indefinable.' So BlueDot Asia 2009 conceptually denies cancerous elements, trendy, international and centralized. The identity of 'BlueDot Asia' is the field revealing the potential energy that has existed in the network of the unlimited immanence.

Art fairs have been criticized for having artists commercially structuralized and ruining their creativity. However 'BlueDot Asia' is differentiated by giving a chance to show creative works of artists, encouraging their creativity, intensifying the concept of exhibition, and deepening the candidness. We think BlueDot Asia can grow only when we take it our mission to make the artists public and continuously promote them without objectifying them.

BlueDot Asia 2009_Intensifying Aesthetic and Philosophical Concept

On the first floor of the exhibition of BlueDot Asia 2009, 'Curtain Call : Finding Trace', highly complete and excellent works of established artists are introduced. This exhibition, in which about 40 artists from various Asian countries (Korea, China, India, Thailand, Indonesia, Japan, Turkey) participate, is composed of three acts that literarily and philosophically express the concept of 'finding traces of our life.' Three acts, Act I, An Interlude no beginning and no end, Act II, Paradox: a vague continuity of life, Act III, Exaggerated story_A real fairy tale, are composed of the works of art classified according to their meaning and formal characteristics. Finally, it comes to mean 'the thing with no boundary from end to end as dot becomes line, texture, and then surface, and finding my world as trace of dot.'2)

'A Small Country: The beauty of a sudden density' (2F) is an exhibition that directly visualizes 'multi-quality', a concept of equal quality, instead of 'multiplicity' and 'locality', in which 5 alternative spaces, Ganju(Memispace), Daejeon(Banjiha), Busan(Openspace Bae), Seoul(alternative space Pool), Cheongju(HIVE), participate. They have been working actively with the firm identity 'local', while finding capable artists and planning significant exhibition. Here, we introduce the activity of these five spaces through 5 group exhibitions and works of 40 artists who visually represent the characteristics of each space.

'Project Exhibition: An attempt' (3F) intensifies events, such as the young and fresh elements, the art market and so on. Section I is 'Rising Sart Special' in which domestic and foreign young artists participate, and Section II is composed of anonymous exhibition ''Psychological attention : 1,000,000 won of 99 members' with the concept of art market and 'Street Culture the Focus' combining street art and goods.
Certainly BlueDot Asia 2009 is a young art fair. We deny old formats, keep developing new ones, and, moreover, don't forget to hold critical perspective on the artistic value of works and attitude. In this art fair, everyone becomes a hero regardless of age. The young art fair should be discussed on its philosophical ground. It inclines to neither artistic value nor marketability of the works of art because of its feature of curatorial exhibition. When I should mention a beauty of curatorial exhibition, it is important for me, as a curator, to hold the following attitude in spectator's shoes. 'On facing a work of art, a spectator becomes a spectator of herself. And an artist can help a spectator notice what is inside of herself who might not see it without the creature of the artist. When a spectator finds the meaning of the work inside of herself, she faces the truth.'3)

-----------------------------------------------------------
1) Deleuze and Guattari mentioned 'heterogeneity' as a principle in Mille Plateaux when they express their own philosophical thought with the borrowing concept 'Rhizome.' While a tree presupposes the center and is always hierarchically structured, a rhizome is a horizontal stem of a plant whose each stem is connected with every other stem and becomes a symbol of a manifold with neigher center nor peripheral. This concept represents a central plan of BlueDot Asia 2009.
2) Quoted from the text between Act I and Act II on the first floor.
3)'... On reading, a reader becomes a reader of himself. A work of the writer is a sort of optical instrument. The writer, giving this instrument to a reader, help him notice what is inside of himself who might not notice it without the book. When a reader acknowledges what the book puts within himself, he faces the truth...' Marcel Proust

2009년 3월 31일 화요일

`광주 미술의 젊은 시선’ _광주드림 공동기획

`광주 미술의 젊은 시선’ 공동 기획에 부쳐
젊은 그대들이여 잠깨어~오라 광주가 들썩이게
광주드림
기사 게재일 : 2009-03-25



“저 푸른 벌판으로 달려가자. 젊음의 태양을 마시자.
보석처럼 찬란한 무지개가 살고 있는 저 언덕너머. 내일의 희망이 우리를 부른다[...]”
_문득 어린 시절 뜻도 모르고 불렀던 김수철의 노래 中에서

최윤정 ● 매개공간 미나里 큐레이터

광주드림과의 이번 기획은 매개공간 미나里(이하 ‘매미’)가 설정하고 있는,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및 그 역할에서 중차대하게 바라보고 있는 일이다. 매미에서 진행하고 있는 예술인 아카이브가 포트폴리오 뿐만 아니라, 보다 차별적이고 창의적으로 예술가에 대한 면밀한 접근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예술인에 대한 인터뷰(연구) 및 그로부터 생성된 각종 자료들로부터 기인할 바가 클 것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광주드림이 지역작가들에 대한 정기적인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를 문화란에서 다뤄보고자 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 자리에서 공동기획으로 내용을 만들어보자 의기투합하였던 것은, 이는 적어도 관성적인 ‘소개란’ 이라든지 같은 급으로 ‘스타만들기’에 무게 중심을 두기보다는, 대중으로 접근되는 ‘예술향유층 확대’와 ‘예술창작활동에 대한 독려’를 그 기본 골조로 하기 때문이었고, 또한 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작가를 다뤄보고 더불어 인간적인 접근 역시도 시도할 수 있는 ‘인터뷰’라는 형식이 그에 적절하다는 판단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더 나아가 이는 그 컨셉에서 광주 미술계 새로운 세대나 경향을 분석하고 분류하는 등 새로운 세대를 위한 광주 미술사 초안 기록에 있어서도 중요한 재료로 역할할 것이다.
매개공간 미나里는 예술가를 만나고 관련한 프로그램을 계발하며 또한 진행함으로써 예술에 접근하는 방식을 가시화 해내는 공간이다. 그러기 위해서 프로그래머는 대상(자)에 대한 재빠른 파악과 이해, 긴밀한 접촉, 적극적인 대시를 잘 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 대상(자)를 우선적으로 의식적으로라도 고려하지 않는다면, 또한 진행 전체를 바라보지 못한다면 그/그녀는 순식간에 대상화되어버리고 그저 시간이 우선시되어 머리로만 진정성을 나불대는-물론 그나마 진정성을 외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보는 편이지만- 부적절한 상황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말은 비록 ‘아니’라 할지언정, 과연 그 가슴은 ‘답답하다’ 지저귀고 있고, 유수처럼 흐르는 말을 하고 있는 주체는 결국 그 말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새삼스레 이 같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전체를 관망하고 틀을 규정지어야 하는 큐레이터로서 역할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진행을 맡는 구조를 되살렸을 때, 이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큐레이터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공동기획 전반을 살피면서 또한 더불어 진행할 토크쇼(공동기획에 해당하는 토크쇼 분량에 맞춤) 내용에 대한 논의를 함께 거친 후, ‘인터뷰어’(광주드림 문화부 기자 이광재)를 토크쇼 진행자로서 세울 예정이다. 이는 전체를 관망하면서, 진행자가 수시로 던지는 보다 직접적인 질문들,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핵심사항들, 우연히 발견될 수 있는 정말 의외의 것들을 기록하고 관찰함으로써 ‘~만 말’토크를 단순 이벤트성 기획이 아닌, 질적으로 계속해서 거듭나는 공간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주 짙게 개입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공동기획의 방향과 실행이 그 목적을 상실하지 않고 꾸준히 진행된다면, 주변 상황으로 인해 자신의 마음이나 환경이 자초한 음지 아닌 음지에서 활동했던 예술가들이 하나 둘씩 자극을 받아 다른 예술가의 창작에 관심을 보이면서, 자기 창작활동에 있어서도 보다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리라고 본다. 직접적으로 바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한동안 광주가 이 공동기획으로 인해 뜨겁게 수군거리기도 하고 들썩이기도 하였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리고 또한 이 공동기획이 자신의 꿈과 함께 정말 자고 있을지 모를 ‘젊은 그대’들에게, 그대들의 젊음은 ‘사랑스럽고 태양같다’며 ‘잠깨어~오라’ 하는 뜨겁고 달콤한 대시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

2009년 3월 11일 수요일

START!! 대인예술시장 레지던스 프로그램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의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할 입주자가 모두 선정되었고,
3월 9일은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각 작업실 및 공동시설들을 둘러보고 프로젝트에 대해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자리로 이어졌다. 그 가운데 나도 있었다.


반응과 반작용, 수긍과 긍정 사이에서

입주자들의 면면을 관찰하면서 설레기도 하고 참으로 묘한 경험을 하였다.
그것은 나의 모든 감각과 체험이 일년전 한 기억으로 연동되는 시점이었다.
내가 처음 광주에 왔을때, 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갈망하고 있던 것을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그렇게 발견했을때 그날 난 전혀 잠을 이룰 수도, 자고 싶지도 않았다. 운명까지 운운하는 것은 다소 유치하기는 하지만, 땀 한줄기가 뒷목을 타고 내려와 귀중하지 않은 맥락의 과도한 고민이 자연스레 주변으로 발산되었던 그러한 차원의 경험. 그것은 이후 내 마음 그릇의 크기로 인하여 버티기 힘들었을 지도 모를 많은 일들을 끌어안으려 애를 쓴다거나 혹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벗겨내 버리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것은 항상 내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이번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면서 내가 그러했듯,
일년 전 당시 공간을 소개하면서 나의 반응을 살피시던 선생님의 유독 긴장되어 보였던 표정이 떠오른다.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 표정의 이유를 좀 알 것 같다. 나는 그저 행복했으므로 긴장된 표정을 당연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 그저 행복했던 마음은 다소의 우려나 육체적으로 겪는 고초로 인한 정체모를 마음이 되었다가도, 일반적으로 부정적일 수 있는 그 정체모를 마음이 한편으론 오히려 막연히 행복했던 기분을 들뜨지 않게끔 강제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던 것 같다. 그 선생님의 긴장된 표정, 그것이 언제쯤 풀리셨을까? 풀리기는 한 것일까?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살짝 그 마음이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아무래도 책임의 무게로부터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나도 책임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입주자들의 상반된 반응을 살피며

우선 예쁘게 잘 다듬어져 있는 것보다는 일부러 날 것을 보여주자 하였다.
날 것을 보고 입주자들이 어떤 고심을 하게 될 것인지, 숨기지 말고 보여주자 하였다.
그것이 나는 다소 우려가 되기도 하였지만, 우리 프로젝트는 애초 겉멋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 역시 그러자고 수긍하였다.

그 예전 나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은 그들의 반응 속에서 나는 정말 긴장하고 있었고 솔직히 말하건데, 살짝 겁도 났다. 그러나 물론 아/주 살짝이다.
결국 날 것을 보고 수긍하지 못한 자는 정중히 작별인사를 했고, 애매한 반응을 보인 자는 그래도 한번 해보자 의기를 다졌고, 날 것이 좋아 신난다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어느 반응 하나하나 평가적으로 다뤄질 수는 없다. 그러나 모호하게 한 가지 아쉬운 마음이 한켠에 들었다.
지금이 무슨 개척시대도 아니지만, 이미 그 모든 것이 가능하고 할 수 있는 하드웨어가 갖춰진 세상에서, 그것이 정말 당연한 세상에서 우리는 그 역의 방법으로 그것이 지닐 수 있는 고유한 가치를 찾고자 애를 쓰고 있다. 일반의 시선에서 그것은 어떻게 보일까? 다만 이것은 각자가 선택한 방법론이자, 그저 생활의 방식으로 채택한 것이지, 고귀한 노스텔지어의 꿈을 향한 돈키호테의 놀음 정도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자연스러운 또 하나의 방식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난 개인적으로 억울한게 참 많은 모양이다. 난 허파에 바람들어간 적도 없고, 간이 부어있지도 않다. 허황된 꿈, 그런 꿈을 기대할 수는 있는 것인지 이에 관해 나는 항시 부정적이다.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그 누구라도 그러하듯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가져야만 하는 그러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는 한 사람일 뿐이다. 삼각형이라는 것은 나름의 어떠한 균형을 전제했을때 가능하다. 이에는 직각삼각형도 있고, 정삼각형도 있고... 그저 난 나에게 '좋은 것'에 약간의 비중을 더욱 두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약간의 푸념이 필요하다.


자기 희생과 극도의 자아도취 사이에서

무언가 차려진 상에 수저를 놓기보다, 없는 상부터 만들어가는 것은 당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자신이 갖는 애정도와 만족감이 자기 수저에만 그치지 않고, 수저가 올라오기까지 그 모든 전과정을 경험하고 만들어가는 것에서 파생되는 그 모든 감각과 사고를 수반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서 이는 그만큼의 자기 희생을 수반할 수밖에 없으므로, 우리에게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자기 희생을 감내하고 얻은 일은 그만큼 자신의 속을 단단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아직 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젊어서 고생 사서도 한다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이해가 안되는 말이라고 주장한지가 몇년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문제는 '자기 희생' 그 정체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이다. 단순한 정의감, 사회적 책무, 남들의 평가... 어설픈 나이에 지금 현재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나에게 가능한 자기희생이란 나의 '자존감'이 중심이 되어 그것이 '그러한 바'라고 판단하는 것들을 행했을때 의미를 갖는 것일 게다. 내가 말하는 '자존감'이란 내가 나로서 살고 싶은 마음, 자기 성찰적이고 반성적인 지점을 제공할 수 있는 여력, 내 존재에 해가 되는 것을 본능적으로 꺼리는 것등을 포함한다. 결국 모든 것은 나다. 필요 이상으로 사회적일 필요도 없고, 필요이상으로 사회를 꺼려할 필요도 없다. 생각도 없는 사물에 대해 자기 잘못을 전가해버리는 몹쓸 짓들, 결국 그 모든 잘못과 고민과 해악은 나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항상 자기 자존감과 자아도취 사이를 헷갈리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다. 그것은 바로 나다.

지하철 2호선에서 3호선을 갈아타는 사이 정면 벽에 쓰여있는 시구를 보고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나의 천적은 나였던 거다 -시인 조병화"


문득 일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갑작스레 떠오른 생각들이다.
그 일년동안 난 참으로 많은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참 재미있다. 어떤 사건이나 일을 계기로 과거를 떠올리고 전혀 다른 시간에서 이를 곰곰히 정리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 그러나 한편으로 그래서 더더욱 아쉽다. 왜 진작에 알지 못하는지 말이다.

2008년 12월 30일 화요일

문화적 숨쉬기를 통한 지역예술과 재래시장의 상생

-광주광역시 대인시장에서 행해지는 예술프로젝트에 주목하다

최윤정 ● 미학/ 미술비평


지난 2008광주비엔날레에서 주 전시가 아닌 보조 전 형식으로 진행된 ‘복덕방 프로젝트’의 파장은 오히려 주 전시보다 더욱 주목을 받는 성과로 이어졌다. ‘복덕방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물적교환의 장소이자, 또한 정보교류의 역할을 했던 ‘복덕방’에서 모티브를 딴 것이다. 이것이 예술프로젝트로 진행되었을 때, 그 주요 핵심은 다음과 같다. 예술가의 창작노동이 자폐적인 작업실 구조가 아닌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 그들과 감정적인 교류를 하면서 정적인 가치로서 그 교환가능성을 실현해 보일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고, 중앙에 비해 지역 예술이 그렇듯, 도시 속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 도심공동화와 현대적인 시설의 대형마트들이 곳곳에 생기면서 점차 그 활력을 잃어가는 ‘재래시장’이 이 프로젝트의 실행에 있어 장소성(site-specific)이라는 중요한 근거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7회에 걸친 국제적인 비엔날레 행사가 개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광주 지역예술계는 큰 탄력을 받지 못했다고 평가된다. 한편 최근 시장 상인들의 협력과 지역예술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인하여 ‘복덕방 프로젝트’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국제적인 행사에만 골몰하던 광주시 역시도 이 프로젝트의 가능태를 살피면서 적극적인 지원책을 펼 예정이다.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서 대인시장은 입구 쪽 회센터를 제외하고 한 낮에도 손님이 거의 드나들지 않았고, 눈에 띌 정도로 많은 빈 점포들은 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욱 배가시켰다. 대형마트와의 경쟁력을 갖기 위해 각종 현대화사업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는 전혀 없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였다. 뭔가 대안을 찾고 있던 시장 상인들에게, 빈 점포를 예술가의 작업실로 혹은 전시실로 바꿔보고자 하는 프로젝트 팀의 아이디어는 어찌 보면 대단한 활력소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적극적인 시장 상인들의 호응 하에 예술가들이 시장 곳곳을 점유하며 채워나가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다. 특히 그래피티 작가 구헌주가 빈 점포 셔터에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장미란’이 셔터를 여는 장면을 스프레이로 완성한 작업은, 이미 복덕방 프로젝트가 오픈하기도 전 인터넷 곳곳을 장식하는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비엔날레가 끝난 후, 복덕방 프로젝트는 관의 지원을 받고 또한 ‘매개공간 미나里’ 라는 지역 대안공간의 프로그램으로 다시금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때부터는 그 파장 속에서 미술인 뿐 아니라 VJ, 공연가, 문학인, 지역 대안언론, NGO단체들까지도 문화활동의 실험장으로서 대인시장을 바라보고 이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재밌는 것은 많은 지역민들이 오가고, 또한 타 지역에서 방문한 관심있는 사람들과 혹은 이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하고자 하는 타지역 관계자들이 연이어 오가면서, 국밥집 외에는 다양한 먹거리가 없었던 대인시장에 저렴한 분식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시장 사람들의 작은 바자회로 간혹 비정기적으로 열렸던 ‘풍물시장’이 지금은 하루도 쉬지 않는 ‘벼룩시장’으로 점차 그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그 누구도 그것이 지역에 또한 타 지역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대단히 회의적이었고, 또한 지역에서의 예술 활동이기에 주목받을 리 없다고 비난하기조차 하는 일들이 아주 빈번했다. 그러나 ‘문화예술을 통한 재래시장 활성화’ 정책에 맞물려 그것이 성공한 사례가 거의 드문 탓에 지금 대인시장은 개발정책으로만 일관하는 현 정세에 예술과 문화의 숨결이 그보다 더한 가치를 생성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은 상징적 장소가 되었다. 예술가는 시장 상인들과 언제서 부터인가 이웃이 되었고, 시장 상인들은 멀게만 느껴졌던 예술을 자신의 일터에서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를 향유하고 또한 예술활동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하기도 한다. 필자 역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현장예술 활동에 대한 무수한 가능성들을 바라보게 된다. 또한 어느 지역을 가나 그 지역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을 방문하고는 한다. 간혹 그리도 커보였던 안성 중앙시장과 바로 집 앞에서 치러지는 5일장의 최근 모습을 떠올리면서 애잔함을 느낄 때가 있다. 더욱이 안성 역시도 최근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생기면서 재래시장이 장사가 잘 안 될 것이라든지, 혹은 장사가 안 되서 걱정이라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을 때도 있다. 서울과 근접해서인지, 혹은 예술대의 역할 때문인지 안성에는 예술가의 작업실이 많은 편이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예술은 항상 문제적 지점에서 힘을 발휘한다. 그것이 사회적인 것이든 경제적인 것이든 오히려 불안한 시기나 혹은 부조리한 현상에서 예술은 항상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그에 걸맞는 공적인 기여를 한다. 비단 전통적인 문화의 장이나 축제 등으로 ‘문화예술의 도시’를 언급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문화예술’이라는 용어가 더욱 적합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해 사려하는 범위가 훨씬 더 넓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광주의 ‘대인시장’ 사례를 안성 지역민들 및 관계자, 예술가 역시도 보다 관심있게 지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2008년 10월 16일 목요일

평론- 마문호 / ‘몸짓-표정’이 지닌 보편적인 ‘열망’

마문호 / ‘몸짓-표정’이 지닌 보편적인 ‘열망’


최윤정 ● 미학 • 미술비평


얼굴에 새겨진 주름은 그가 살아왔던 세월의 경험과 비례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주름은 그가 고통스런 삶을 살았건, 평온한 삶을 살았건 그가 밟아 온 자취들에 대한 표정이다. 이미 그 쓸모를 겪은 물건 역시도 그것이 사용되었던 흔적 하나하나를 주름으로 고스란히 남긴다. 그 주름은 세상살이의 흔적이자, 그 물건 혹은 그 사람의 평생을 빗대는 ‘은유’일지도 모른다. 은유는 그렇기에 분명 추상일 수 없다. 그것은 분명한 실체를 표면 안과 밖으로 가장 원초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자 ‘속’이다. 설명이 소극적이고, 일방적인 전달과 상대의 무식을 전제로 한다면, 은유는 심적으로 개입하는, 이미 누구든지 인지할 수 있었던 ‘사실’에 가깝다. 원리적으로 그것이 이성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감성에 있다 할지라도, 그리하여 시적인 미화로 여겨진다 하여도, 은유는 차라리 이성의 한계를 끌어안으면서 이성의 계기를 확장하는 표현으로 보는 게 옳다. 작가 마문호의 형상은 그 ‘주름’이라는 은유를 ‘땀’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익명성’의 몸짓 형상으로 그려내면서 개별이 지닌 보편의 표정을 담아낸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현실이다. 서사와 구상의 형식을 빌어 형상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가 형상으로서 재건하고자 하는 ‘현실’은 일차적인 비유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번 2008 개인전을 비롯하여 광주비엔날레 제안 ‘복덕방 프로젝트’ 참여작을 관통하는 그의 주제는 바로 ‘열망’이다. 개인이 지닌 열망, 예술가가 지닌 열망, 시장이라는 장소성이 지닌 열망, 시장사람들의 열망. 그가 말하고 싶은 열망은 단순한 바람의 차원이 아니라, 삶의 무수한 흔들림 속에서 겪는 상처를 봉합하고 치유하고자 하는 것 혹은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한 무의식이 지닌 우리네 열망이다.
예술가로서 그가 ‘민중미술’에서 ‘민주미술’을 외치기까지, 추상적인 형상과 원시적인 색면에서 차별적인 재료와 구상에 대한 ‘바느질 드로잉’을 행하기까지, 그의 사유는 예술과 현실적인 삶이 유착될 수 없다는 것에 놓여 있다. 그가 늘 외치는 명제는 예술은 허구요, 예술을 행하는 자에게 있어서 현실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결코 예술이 표명될 수 없음을, 또한 역으로 예술을 표명하는데 있어서 현실적 삶이 과연 유관할 수 있는가를 ‘대놓고’ 보이는 것이다. 간단하게 예술가에게 삶은 예술보다 우선시 될 수 없다. 이는 우선 리얼리즘 기반 속에서 예술이 삶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일종의 도구로 여겼던 것에 대한 비판이자, 더불어 여전히 그와 관련한 어떠한 실천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과연 그것이 진정 자신이 마주한 솔직한 현실이었는가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결국 예술은 현실적 삶보다 가치적으로 진정 현실에 대해 우위에 있다. 그렇기에 그에게 예술은 허구다. 그가 처한 현실은 보편적으로 예술의 자율성을 담보하기에는 거리가 먼, 오히려 예술행위를 저해하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다소 냉소적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작업관은 결국 예술가로서 자신과 자신의 환경을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된 바다.
과거 그의 작업은 인물을 묘사함으로써 거둬지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환경에서 그가 선택한 주제는 이제 현실적 삶의 양태로 그려지는 표정들이다. 그것은 풍경일 수도 있고 또한 살아가는 모습일 수도 있다. 그는 이를 ‘살이’라 표현한다. 이 ‘살이’는 자기 감정이 보편 속에서 드러나는 추상적인 ‘표정’이다. 이는 기존에 리얼리즘이 행했던 사회 참여적이어야 하고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야 했던 그야말로 협소한 구조에 대해서 그 의미 층위를 확장한 계기로 평가된다. 그렇기에 그것은 보다 솔직하다. 현실은 언제나 여기저기에 있었고, 지금도 그저 마주할 뿐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살이’이다.
여기서 그가 마주한 ‘현실’과 그가 선택한 주제는 단순히 의미로서만이 아니라 그가 선택한 재료에도 일관되게 고스란히 반영된다. 어찌 보면 그의 작품에 있어서 재료는 그의 명제를 타당하게 하는 가장 훌륭한 틀이다. 동시에 그의 작업에 대한 ‘알리바이’다. 기존에 유화를 통해 동일선 상에서 작업을 진행했던 그는, 이제는 이미 그 생을 다한 폐비닐 위에 바느질로 새기는 행위를 통해서 상처의 접합, 재생을 시도한다. 이는 동시에 쓰레기일 법한 재료들이 작품으로 그럴싸하게 보여 지게끔 하는 일종의 교란이기도 하다. 이는 형식을 통해서 꼬집어 보이는 예술의 허구이다. 낯익고 불편한 재료들을 통해서 권위적인 예술에 대해 입을 봉하라는 방식이다. 이 같은 요소는 간혹 미적으로 빠져들 수 있는 작품 감상을 의도적으로 저해하는 장치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그늘, 놀다/에서 그는 아무 손질도 하지 않은 폐타이어와 그가 즐겨듣는 록음악을 한편에 설치하여 다소 어수선한 전시장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였다.
그의 바느질 드로잉은 촘촘하게 잘 짜인 앞면과 달리 뒷면은 불완전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에게 있어 바느질이 무녀의 제의와 같이 삶의 상처를 봉합하고 치유하는 과정이라면, 그 뒷면은 외상의 흔적으로서의 은유이다. 끝마무리로서 길게 늘여진 실밥과, 앞면과는 달리 흐릿한 형상들, 구체적이지 않은 형상들은 자연히 삶 속에서 떠안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서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고 혹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무의식이 간직한 상처이다. 포대에서 감아올린 실마저, 실이 만들어낸 형상이 멀리서 희미한 주름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선택된 폐비닐의 색상조차도 그것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개인과 사회의 숨은 열망들을 두드린다. 그래서 이러한 형상의 이미지들은 다소 보편적이고 서사적이다.
한편 이와 더불어 작품에 사용되는 텍스트는 이미지들이 갖는 서사성을 뭉개는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그가 사용하는 텍스트는 어떤 경우에서는 작품자체에 대한 의미라기보다는 하나의 도안이자 디자인이다. 그 의미에 현혹되어 그 자체 일차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매우 곤란하다. /치워라, 그늘/에 새겨진 FTA와 그 주변에 새겨진 각종 형상들은 그야말로 FTA가 진행되건 아니건 간에 현실은 늘 동일했고 어떤 경우이건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저 무덤덤하게 귀찮다며 ‘치워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일등광주/는 그 의미와 더불어 문화적 범주가 지녀왔던 권위적인 총체성을 계속된 동어반복으로 오히려 일/등/광/주라는 기표 자체로 물화시켜 버린다. 오히려 자부심을 상징하는 거대 의미로 쓰인 텍스트가 불품 없어지는 순간이다. 이는 결국 일등광주라는 의미에 대한 조소이자 의미자체를 낯설게 하는 효과이다.
삶에 대한 은유, 상처와 봉합, 버려진 것과 재생, 예술과 현실, 실재와 허구에 대한 문제는 조각난 것들, 그것이 물건이건 혹은 사람이건 혹은 사회이건 간에 그것들이 지닌 ‘열망’ 속에 모아진다. 작품에서 ‘열망’은 몸짓 형상이 보이는 표정에 따라 또한 떠오른다. 물론 우리는 자신이 지닌 ‘열망’을 평생 모를 수도 있고,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 그 무엇도 진실이 아닐 수 있다. 그것은 파여서 보이는 주름이 아니라 떠오르는 표정이자, 순간에 발견되는 것일 수 있다. 예술로서 의미를 발견하고 동시에 이를 헛된 것으로서 부정하게끔 하면서 만들어 내는 일체감은 분명 그가 선택한 형식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그것은 예술가로서 자기 일상 속에서 우러나온 방법론이면서 동시에 그만의 적합한 예술이 되었다. 덧붙여 우리가 ‘열망’을 간직하건 아니건, 발견하건 못하건 간에 삶은 언제나 ‘열망’과 함께 하였고, 그것은 어쩌면 ‘일상’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Ma Mun-ho / A universal aspiration which a ‘gesture-look’ owns.


Choi Yoon Jung ● Aesthetics • Artcritic

People say, wrinkles in a face forms in proportion to experiences of one's time. So a wrinkle is a look that means a trace which one exists in a painful life or not. The things that breath its last, also remains on its own wrinkles as a trace that have been used. The wrinkle may be not only a trace of a way to live, but also a metaphor that is compared with things or one's whole life. So definitely a metaphor cannot be abstract. It is a means and 'the inner part' that exposes a clear substance inside and outside the surface. Assuming that an explanation is passive and a one-sided communication and also relies on the other's ignorance, a metaphor is close to 'a fact' intervening mentally, which everybody could have been aware. In principle, though it is located on a sensitivity as a weak part in rationality and though we regard it as a poetic beautification, it needs to understand that a metaphor extends the moment of rationality with drawing a limitation. The artist Ma Mun-ho's shape represents a metaphor 'wrinkle' through the form 'stitch'. Expressing gesture-shapes of 'anonymousness', he paints a universal look which individual has. It is the real for him. He presents his own shape with a narrative and concreteness but his own 'the real' which he rebuilds, gets over a superficial understanding. Including 2008 solo exhibition, participating artwork in Gwangju Biennale position paper 'bokdukbang project', his theme is the very an 'aspiration' that is taken by individuals, artists, and a site-specific of market, market people. His aspiration is not a simple desire, but that it seams hurts which one suffers in one's countless unrest, and recovers them. Moreover it is something to be in a unconsciousness that cannot be discovered.
Until He emphasizes the 'minju(democracy)-art' from 'minjung art' as an artist and changes abstract shapes and primitive colored scene into embroidery-drawing with the different materials and concreteness, he thinks that art cannot adhere to a real life. So his proposition is that art is just a fabrication, because art never profess that it can make an art creator's real life affluent and conversely it may be exposed 'without a hitch', whether art activity is connected with the real life or not. Shortly for artist, the real life cannot be prior to art. This is a criticism for what realism have considered art as an instrument reflecting human life. And also this is a reflection for a certain practice connecting with a sense of justice. As expected, it is about what the real is. At last, the art value is superior to the real. So to him, art is just a fabrication. His real life may be far from guaranteeing art autonomy, and it may prevent art activity. In this way, his outlook on artwork as a partly cynical artist has begun since he was aware of himself in the real.
In the past, his work was a look obtained that he described a figure. But Now the theme chosen from his environment, is a look drawn by an aspect of life. It may be a landscape or picture to make a living. For this, his expression is a 'living'. This 'living' means that it reveals one's own emotion as an abstract look in universality. It is appraised as a moment to extend the stratum of meaning against confined structures of the realistic requests that must be a social activity and must describe a concrete expression for society. For that reason, the notion of 'living' is franker than realism. Because the real always have been here and there and everyone only confront the real in their daily life. This is the very 'living'.
On the other hand, his 'the real' and the chosen theme are reflected in not only the meaning but also the material consistently. The material is the best frame that makes his proposition adequate, and have become an good 'alibi'. Having been taken the notion of 'living' into consideration, he had drawn on canvas with oil-painting. But now his canvas is changed into abandoned vinyl which have been used, he tries to return its life as seaming shapes on it. This is a sort of disturbance which the trash seems to be an artwork. Correctly to him, it is an art fabrication indicated by his own form. So this element is connected with an instrument that sometimes prevents the aesthetic feelings. Having installed a bald tire and rock music he likes-/Shadow, playing/, in some degree he leads an exhibit hall to be a noisy atmosphere.
His embroidery-drawing exposes an incompleteness of the backside as it is, contrary to the well organized front side. If the embroidery is a process to seam hurts and to recover them - such a shaman's rite, the back side is a metaphor as a trace to an external wound. In a substantial sense, the hanged ravelings as the last touches, and dim shapes contrary to the front side, unclear shapes are equal to the hurts which we cannot help taking all upon ourselves, and possessed by unconsciousness or we never want to remember. Even though the thread is drawn by a used sack and the abandoned vinyl-with its own color- chosen for seeming a dim wrinkle, acting in a body, the materials all touch the hidden aspiration of individual and society. So this images of his shapes are somewhat universal and narrative.
Together with this, on the other hand his text works upon crushing narratives in image. So to speak, the text doesn't say the meaning of artwork itself, but it is only a pattern and a design. It is difficult that we would understand the text as a superficial meaning. In /Get out of here, shadow/, FTA as a text has no connect with the real FTA, that is, whether the real FTA will go on or not, the real is always identified at all times. So as a meaning of living on, the real life just says like this, 'go away' with an annoyed look. And in /the first rank, Gwangju/, with its superficial meaning, through a steady tautology, the text put an authoritative totality which cultural category maintains, to shame. So a meaning of text only has been materialized as a signifier. Finally, this is a laugh for the meaning of 'the first rank, Gwangju', it makes an effect which the meaning itself is become unfamiliar.
A metaphor for life, the hurts and seaming them, the abandoned and revival, art and the real, reality and fabrication, whether it is things or human or society, they all come together in 'aspiration'. 'Aspiration' rises to the surface following a look which gesture-shape shows. Undoubtedly we cannot be aware of our own 'aspiration' or we can think that we know it absolutely. But both views may not be true. The wrinkle of life is not dug, but risen as a look. And it may discover in a moment after all. Coming from the repeating operation that finds meaning for art, or at the same time denying art as a unbelievable thing, a sense of unity is undoubtedly originated from the form which he choose. Springing up in his daily life, his method is his own art. In addition to keeping 'aspiration' in one’s heart or not, and discovering 'aspiration' or not, our lives always get together with aspiration. So to speak, I am supposed that 'aspiration' may be equal to one's everyday.
(translated by cHOiyoOnC)

2008년 10월 1일 수요일


송창 - 표면으로 나와 내면을 유희하는 풍경

최윤정 ● 미학‧미술비평


1.

/이른 새벽/, /아침/ /한낮/과 /오후/, 그를 발견한 풍경들, 또한 그를 따라 지나가는 주변의 자연 풍광들. 길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이리저리 공명하는 기체를 따라 가다가 또 가다가 멈춘 세상에는 늘 그곳에 있었다고 하는 늙은 거목이 서있다. 항상 그 자리에 정지되어있지만, 어느덧 시간은 거목을 중심으로 하여 지나간다. 시선으로 건드리고 또한 의식적으로 미화시키고 예찬하며 자칫 머뭇거릴 수 있는 작가의 발걸음을 그저 자연스럽게 지나가라고 말하는 거목이다.
그는 여행을 즐긴다 한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에는 길이 펼쳐져 있는데, 그것은 흐드러지게 핀 꽃과 풀과 물의 길이다. 한때 그에게 여행은 역사적 의식을 반영하는 현장을 발견하고 사생하는 의지였다. 그러나 이제 그가 바라보는 풍경들은 반드시 우리가 염두에 둘 수 있었던 서사적 장으로서가 아니라, 그 서사가 펼쳐지고 있었던 혹은 보편의 것이 아닌 개인의 기억이 펼쳐지는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닌 모든 것이 펼쳐지는 곳이다. 풍경에 대한 그의 입장이 이와 같이 전이되고 펼쳐질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분단현실이라는 민족의 문제와 역사가 우리가 접하고 있는 주변 환경 곳곳에 이끼처럼 스며들어 있다거나 그로 인해 단 한번도 무관한 적이 없었다는 반성적인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꿰뚫듯 응시해 탐구하고 찾아내야만 하는 진실들은 어찌 보면 계속해서 내 주변의 풍경들 속에 찾을 수 있거나 혹은 없을 수 있겠지만, 자연으로서는 항상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자면 자연과 사물의 물성이 역사적으로 대유되는 흔적들은 그리하여 그에게 다소 억지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를 가지고 그의 과거 작품에서 극명히 보여 왔던 역사의식이 희석되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언제나 배경이었고, 비유였던 풍경들이 이제야 비로소 그 자체로 주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분명 명확하다. 소재에 대한 해석과 의미부여, 풍경에 부여한 그의 목적성이 이제는 자아성찰의 계기와 여행, 풍광 자체로의 감응으로 전이되는 시점이고 그렇다 한다면, 이제야 비로소 그에게는 사생 길에 마주하던 ‘풍경’들을 그 자체로 대면해볼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2.

그가 민중미술 작가로서 초기에 주목했던 ‘풍경’은 직접적인 역사적 장소로서였다. 임진강, 휴전선, 철원 노동당사 및 철책선 근방 등 구체적으로 지시되는 그의 풍경은 역사적 서사에 대한 비유적인 주제이자, 일종의 다큐멘트에 가깝다. 이후 그는 이러한 방향을 유지한 채로 장소만큼이나, 소재적인 접근으로 ‘풍경’에 대한 해석을 확대한다. 이때 주목할만한 소재가 바로 ‘소나무’ 였는데, 이는 장소가 그리고 장소성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소재가 기억하는 역사적인 사건에서 비롯한다. 작가는 그저 어린 시절 단순히 집 주변 환경으로만 알고 있었던 울창한 소나무숲이 알고 보니 이념적 대립 속에서 당시 그 동네에 살았던 사람들이 밤낮으로 불려나가 고초를 겪었던 사건의 현장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는 그가 분단현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에 대한 개념을 보다 외연적으로 확대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소재적으로 ‘소나무’는 그에게 어찌보면 ‘휴전선’을 대체하는 중요한 상징이 된다. 더불어 같은 시기 이러한 변화와 맞물려 그의 작업 형식도 큰 변화를 갖게 된다. 그는 회화라는 그의 손에 가장 익숙하였던 요소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재료와 매체에 대한 접근을 통해 형식적인 실험들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설치적인 조형요소,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 사진, 더불어 그가 선택한 입체적인 재료를 통해 질감을 강화시키고 이에 회화적인 분위기를 덧입히는 식이다. 소재적인 접근이 ‘소나무’라는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전환되는 시점에서 새로운 형식들을 입히고 개발했던 것은 그야말로 역사적인 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로서 형식 실험을 통한 다양한 표현을 욕망했던 것에 따른 결과였다. 다소 격할 정도로 기울였던 이 같은 그의 노력이 작업적 경향에 있어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다음 작업 시기로 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 이유도 분명 여기에서 연유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다. 이 시기 회화 중에서 /기억하는 자의 곤혹스러움/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4m가 넘는 대형 화폭에 펼쳐진 이 작품에는 현재 한강과 그 주변 모습을 담은 풍경이 펼쳐져 있고, 이에 6‧25때 끊어졌던 제 1 한강교가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어두운 그림자처럼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현재의 강폭을 가로지르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그가 의도한 ‘소나무’의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그의 공간개념을 여실히 보여준다. 과거의 내용을 분위기로 드러내는 방식이기 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전혀 다른 시간의 기억을 공간 속에 접합한 방식이다. 이는 현재에서 ‘낯선 기억’이 ‘구체적이고 익숙한’ 기억의 현장과 삐걱대며 조우하는 현장이다. 여기서 마주할 수 있는 체험은 역사적인 기록도 아니요, 그저 사연 어린 슬픈 유령이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한편 최근작 /여명_수종사에서/는 해뜰 무렵 수종사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얕게 떠 있는 구름의 결, 새벽 녘 하나 둘씩 켜지는 불빛들은 역시 4m가 넘는 대형 화폭으로 이어진다. 새벽의 향기와 아직 해는 뜨지 않았으나, 잔 불빛들이 모여 곧바로 이어질 아침의 생동을 가늠케 하는 장면은 자연의 기운과 우리네 일상이 동시적인 시공간 안에서 어우러지고 있음을 또한 늘 그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새벽의 공기는 스며들어 잠을 깨우는 차가운 기운이고 어슴푸레하지만 분명 부드러운 푸르른 빛깔이다. 그것은 ‘구체적이고 익숙한’ 우리의 시간이자,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내 주변의 환경이다.
그가 마주하고 있는 ‘풍경’과, 마찬가지로 현재 그의 작업은 자연이 그러했듯 다시금 전형적인 회화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또한 주목할 것은 여기에는 역사적 주제를 말하는 장소, 역사적 서사를 기억하는 소재적 접근이 제거되고 배경적 역할로서만 충실하던 ‘풍경’이 그 자체로 주제로서 화면에 전면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현재 그의 작업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 회화 자체로서의 회화, 회화적 표현기법에 대한 진중한 고민, 드로잉 연구 등이다. 그에게 항상 주제를 환기시킬 수 있게 해오거나 의도가 강조되어 배경적 역할로만 충실했던 ‘풍경’은 이제 그가 작가로서 객관적인 자신에 대한 연구를 꾀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이입체가 된다. 그에게 항상 의도와 목적의 배경으로서 관심적인 상징이 되었던 풍경은 이제는 정작 무관심적이고 그 자체로 관조적인 시점 속에서 그려진다. 이러한 요소는 그의 기법적인 요소에 힘입어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3.

이번 작업을 포함하여 그의 회화를 논할 때 주목할 만한 키워드는 바로 ‘확산’이다. 유기적인 응집체가 하나하나 파열된 상태로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퍼져나가는 형국은 촉각과 시각으로서만 알 수 있었던 물성이 기체로 전환되어 후각으로까지 파장되는 순간으로 이어진다. 그는 의도적으로 이전 작업에 비해서도 더욱 형상을 무너뜨리고 있다. 형상은 서사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형상’이 강조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은 주제를 표면적으로 벗겨놓거나, 극단적으로는 사실적인 표현에 집중하여 그 이면의 효과를 놓치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가 형상을 억제함으로서 얻은 효과는 구체적인 장소와 시각적인 외형을 촉각적이고 후각적인 ‘공기 흐름’으로 전이시켰다는 점과 이를 통해서 객관적 장소에 대해 주관적인 느낌을 강조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그는 이를 ‘냄새’라 표현한다. 이러한 ‘확산’은 화면의 테두리를 오히려 확장시키는 느낌을 일으키기도 한다. 퍼져나가는 냄새는 비단 캔버스 틀 속에 갇혀져 있을 것만 같지는 않다. 이러한 효과를 갖는 이유는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역동성에 연유하는데 이는 형상의 제거, 상황에 따른 질감 표현, 시공간을 고려한 화면 구성, 색 표현에 기인한 것이다. 이것들은 하나로 맞물려 있다. 예를 들어, /솔내음/에서 보자면 소나무일 법한 추상적인 형상 위로 강하게 어지러져 있는 두터운 마띠에르의 노란 작은 덩어리들이 무질서하게 팽창하며 시각적으로 후각적 심상을 유발시킨다. 그것은 송화가루의 날림이다. 한편 /이포나루/에서 작가는 역으로 강한 물살의 움직임을 보이기 위해 얇은 붓질을 시도하였다. 돌리고 던지고 흩뿌리면서 물살의 특징을 가미한 것이다. 이 작품은 화면의 좌측 상단에서 우측 하단으로 흐르는 대각선 구성이다. 대각선 구도가 갖는 역동성과 질감 조절을 통한 물살의 표현으로 말미암아 화면은 또한 주변으로 확장된다. 말하자면 그에게 /물안개/는 기체의 형상이기에 두텁고 거친 마띠에르를 통해 확산을 꾀한다. 더불어 /들불/은 무서울 정도로 번져가는 타오름의 역동성을 얇은 붓질로 휘둘러 버린다. 확산과 움직임은 그가 자신의 기법을 통해 성취한 ‘풍경’에 대한 고유한 기법이다. 기법적 장치를 통해 그의 작품은 일차적으로 감각적인 체험을 유도한다. 더불어 주제 면에서 이번 그의 풍경을 조망할 필요가 있다. 오솔길과 크게 확대한 자연의 사물들, 너른 들판에 펼쳐진 길로서만이 아닌 소복이 숲으로 쌓여 가지 사이로 짐짓 그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 빛이 내리 쬐는 작은 오솔길-/11월/과 강한 색감으로 크게 확대하여 표현한 꽃들-/붉은 꽃/, /맨드라미/은 이제 그가 거대 서사적 지대뿐만 아니라 ‘산책’을 연상시키는 자기 사유의 장 역시도 한 주제로서 위치짓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나가면서 발견하는 자연의 산물들은 항상 전체의 일부로서 드러내던 기존의 방식에서, 보다 작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4.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_ 윤동주의 자화상 中에서

이후 그의 작업이 철저하게 자기 사유와 성찰을 주제로 하여 사색의 공간으로서 풍경을 담아낼 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항상 주요했던 풍경이 너른 들판과 거대한 강 지류에 대한 조망이었다면, 현재 그의 풍경은 작은 사물에 대한 관찰과 혼자서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며 무작정 떠오르는 단상들을 사색으로 엮어가는 단계도 엿보이기 때문이다. 사색을 유도하는 자연의 시간, /석양/과 /달빛/ 그리고 /이른 아침/은 그의 정신적 유희를 그대로 반영하는 작품들이다. 특히 /석양/에서는 확대된 사물들이 드러난다. 이는 결코 좁아지는 풍경이 아니다. 까치가 내려앉은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해질 무렵의 빛은 그것이 투과하는 대부분의 사물들의 실체를 현저한 대비로 강조하기도 한다. 도시에서 해질 무렵의 빌딩이 붉은 하늘과 대비되어 더 어둡게 표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빛을 통한 이면의 진실은 해질 무렵 더욱 강조된다. 달빛을 경험해 본 순간에 사물이 적당히 감춰지면서 살짝 드러내 보여 지는 것도 마찬가지의 심상을 자아낸다. 이러한 심상들은 자연히 개별의 감상과 사유를 이끌어낼 수밖에 없다. 또한 그렇기에 더욱이 관찰하는 사물이 확대되는 착시를 경험하는 순간도 있다.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느낄 수 있는 고유한 체험까지도 소급하는 ‘풍경’은 그렇기에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색으로까지 확장을 꾀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 그 속에서의 경험은 그야말로 개별적인 감정 이입체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자연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되는 것이다. 오히려 풍경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여 한편 이를 외적으로 소외시켜왔던 것에서 이제는 역으로 풍경에 자신을 대입해보는 즈음으로 그 입지를 전환한 것은 의미 부여에 대한 배제라기보다는 역으로 자연과 자신의 세계를 보다 긴밀하게 접합하여 확장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마땅할 것이다.
이제 일반 타당하고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 그것이 개별에게 수용되는 입장에서 또한 개별적 가치에 근거해서 자연이 그에게 다가온 것이라 말할 수 있다면 자연은 심상의 공간으로서 보다 구체적으로 그에게 세상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어쩌면 우리의 풍경은 늘 그러했던 방식의 또 다른 세상을 의미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인물보다 풍경이 와 닿았던 것은, 구체적인 사건보다 사건에 대한 기억이 더 중요했던 것은, 그리고 배경적 요소가 점점 표면으로 드러나게 되었던 것은 이념을 이념에 그치게 하지 않고 의지를 호기로 여기지 않으며 이제야 적정한 심적 거리를 통해 자연을 재 조망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작가로서 세상을 살아가고 또한 작업에 대한 태도를 다시금 점검하고 이후 단계를 가늠해보는 시기까지 그에게 풍경은 언제나 의미를 지닌 유기체였고, 어느덧 의식하지 않은 순간에 차츰차츰 이미 그의 세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Song Chang
- The landscape to get shown on the surface and to play his own inside

Choi Yoon Jung ● Aesthetics ‧ Art critic


1.

/early in the morning/, /morning/, /at noon/, /afternoon/ the landscape that found him, and scenery that near him passed by. He doesn't know where the road connects. He just goes along with the air floating here and there. He keeps going and going, and then in a place that he stop to let his eye's rest, the very big tree stands by him. It always may have been there before our awareness. It looks like stopping, but time passed through the old tree at all times. It whispers 'leave me intact so go your way' to the artist's step with touching by eyes, consciously idealizing nature and praising be to nature.
He enjoys traveling. So there are roads in his artworks, roads are routes for flowers in full bloom, and also the grass and water. Once his travel was a will that sketched and sought a historical context. Now his landscape is not only a historical narrative that one keep in mind, but also just place that may be universal or individual memories. And it may or may not be nothing(/everthing), landscape exists everywhere. On the other hand, the reason why he changed his own viewpoint of landscape, results from self-reflection. It is that historical narrative(called 'divided land' in korean actuality) can be found everywhere, like covered with moss. So historical narrative never can have no connection with our lives. It's very natural. Perhaps the truth that we must seek, may be found or it may not in our environment. But the truth as nature always exists there. From this point of view, the trace that liken property of nature and things to historical moment, may be unreasonable to him
But in my opinion, it cannot define his historical sense as an ambiguous attitude. It is very clear the reason why landscape as a background and a metaphor of a history. landscape has become a theme by itself. The focus of landscape have turned (from interpretation and significance about a subject matter and intention for nature) to nature itself. It means a self-reflective moment, a travel, an inspiration from a deep impression on scenery. For this reason, to him, It needs to stand face to face of landscape that meets on his way to sketch.


2.

As Minjung artist, the early days 'landscape' to attract his attention was directly historical site. Like Imjin-river, the armistice line, the civilian passage restriction line, the office of labor party in Cholwon and so on, his landscapes entered very concrete phase. This was not only a metaphor of historical context, but also close to a kind of documents. Then, kept entertaining that idea, he expanded an interpretation of landscape as an approachment to a subject matter. At this time the remarkable subject matter was a 'pine tree'. It originated from a historical affair as memories of place and site-specific subject matter. When he was a young boy, there was pine tree forest near his house. the forest is an environment just around him. But he realized that the densely wooded pine tree forest is the actual spot of ideological opposition. Inhabitants had suffered every day and night then. It provided a moment that he made an attempt to the extension of his thought about the spot shown divided-land. So 'pine tree' became an essential symbol that replaced 'the armistice line'. With this variation, his form of artwork also had full of variety at this period. He tried a formal experiment-not only painting as his accustomed form, but also approaching to various material and media. So to say, it is to try an installation-effect, to deal with documentary photograph, and to strengthen his matiere, to duplicate 'painting-atmosphere' with his selected three-dimensional material. The approach to a subject matter didn't only have made new form. It didn't only mean that it had been capable of the more effective expression for a historical theme, but he also had a keen desire for various expression by formal experiment as an artist. Somewhat of his excited effort might advance his work, for this reason, he could not help taking long time to begin a new creation. In this period, we need to remark a painting, /Embrrassment within living memory/ over 4m width. It was expressed han-river and landscapes around han-river. on this painting, Broken 'the first bridge of hangang' during the korean war(6‧25) was painted by silk-screen technique. It seems to be a dark shadow, reflected in those days and crossed the present han-river. Basically showing his ideas about space, this had something in common with 'pine tree'. It is not that he express the past as 'atmosphere'. Instead, he united memories of quite different time into space. This is the actual spot where 'an unfamiliar memory' came across 'a concrete familiar memory'. Getting experience from this work, are not historical document. Just I want to say the feeling is that I have met a ghost having much to regret.
On the other hand, in recent work /Dawn-Sujong temple/ is a panorama that he watched in sujong tample at dawn. The Silent clouds floats shallowly, the light gradually increases. They all set in 4m width painting. Before the dawn, the tiny lights are connected by vividness in the morning. This scene harmonize the vitality of nature with our daily life, and shows it always have existed. The air at dawn is cold vitality that awakened us from a sleep, and faint but absolutely soft and bluish. That's a 'concrete and familiar' time for us, the very environment comes across my mind.
Like the meaning of his landscape, now his work have returned to a typical painting. In this, remarkable point is that he has divided places and a subject matter from historical theme and affairs. So landscape, such as a background, stands out in bold relief as theme itself. Now his work is about nature as it is, painting as it is, serious consideration for painting technique, and research for drawing and so forth. Now Landscape which always called his attention to theme or took a background role inserting artist's intention, have turned to an empathy 'for himself' that seek an objective ego as an artist. And at one time, the landscape which was concerned with his purpose, but now it is unconcerned with his purpose and intention, so obviously drawn itself in a state of contemplation. This facts carry conviction under the influence of his painting-technique.


3.

Including this work, when we argue his painting, the remarkable keyword is the very 'diffusion'. Complete organism bursts into particle, and diffuses throughout all directs. Before then, we only have known a property of matter as the sense of touch and sight but by 'diffusion' changing gas, our senses are extended to the sense of smell. Intentionally he has broken his shapes-figure. A shape is close to a narrative. As a general rule, some dangers occurred when one lays a stress on shape. They are arisen from making theme naked on surface, extremely we can find concentrating only a reality of shape, so then cannot help losing the inside truth. Restraining shape, he get some effects. He has changed a concrete site and visual appearance into 'air-flow'. And having stressed subjective emotion for objective site, he have made an unique 'atmosphere'- his expression is "smell". Because of 'diffusion' effect, we can experience as the outline of canvas is prolonged. The diffusing smell may not be locked in a frame of canvas. Because of 'vitality' in his work, this is due to a removed shape, matiere on the lines of conditions, the composition of canvas allowing for time and space. These are harmonized well. For instance, in /smell of pine tree/, Expressed so thick on the abstract shape that seems to be pine tree, the yellow matiere expands so much confusedly, at the same time visually it comes about the sense of smell as a mental image. That is flight of pine pollen.
On the other hand, in /ipo ferry/, compared to this, he try to make a thin brush stroke because of showing the strong current of water. Throwing, spinning and sprinkling his brush, he adds the character for a strong current of water. And this work, he draws the diagonal line from the left top of canvas to the right lower end. The diagonal composition gives an energetic moment-vitality, and expression for the current is as a result of the control in matiere. From this, the canvas is also expanded around. That is, /rain-fog/ is the shape of gas, so its matiere is thick. And /pare and burn/ has a energetic shape spreading quickly. He twist his blush round one´s little finger. Diffusion and vitality as his own technique are as same as 'landscape' obtained by his own view. Through his technical equipment, first of all his work leads to sensory experience. And in a theme of his artwork, we need to take a view of his landscape. A lane and expanded things of nature, not only the road in a huge field, but also in /november/, a lane that is full of forest, that show us the sunlight among the branches informed the time. the very stong colored /a red flower/, /cockscomb/ are now shown that he placed his 'walk' as his own specualtion. Discoveries of nature on his way to walk attract his attention, in a different way comparing with the past viewpoint being as extremely small parts of totality called nature.


4.

"In a well, moonlight is bright, a cloud floats, the sky expands, the blue wind blows ,fall lies. And a man remains." _ In 'self-portrait', by Yoon Dong ju

After this work may be absorbed in his own thought and self-reflection, through a landscape dealing with a space for speculation. If his view was attached to a wide-yard and huge tributaries, presently observing small things and taking a walk, he weaves fragmentary thoughts flashed into his mind recklessly as a step to speculation in his landscape. The time of nature leads ones to speculate. /sunset/ /moonlight/ /early in the morning/ reflect his mental play. especially in /sunset/, expanded things reveal. This never means narrow landscape. Among the branches which magpies alight, the light of the setting sun emphasizes substances of things by a striking contrast. At sunset the contrast between the light of the setting sun and urban buildings helps the urban building getting dark. So at sunset, the hidden truth comes out by the light of nature. Equally by moonlight, confidentially veiled things reveal softly. It evokes one's a mental image. This mental images naturally cannot help but lead to individual impressions and thoughts.
Such being the case, we can experience an optical illusion as enlarged observing targets. Along the passage of time, Landscape that gathers one's own experience is not reduction but extension up to speculation. Certainly as a meditation for individual empathy. Experiences in time and space, provide us with more aggressive attitude to interprete nature. Landscape given historical meaning, suffered external alienation. Now he imports himself into landscape, but it isn't equal to remove the historical meanings, on the contrary he expands nature and his own world through closely connecting.
Now If we could say 'nature comes to him' -nature that based on individually accepted position or individual value opposed to general and reasonable value-, in the concrete, nature as mental images would give a chance to obtain more world to him. Our landscape also might have been an another world as it was. For him, The reason why landscape reaches his mind than figure, why memories of affairs are more important than concrete affairs, and why background gets shown on surface little by little is because he does not want that ideology stays just ideology, does not consider a will as a erroneous daring. By the reasonable psychical distance, He can take calmness to have a distant view of nature. He lives as an artist, and also inspects his attitude of work over and over, until he estimates the time of the next step. For him landscape has been always an organism, unnoticed It may have been his whole world.
(tranlated by cHoiyOO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