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일 월요일

지리산프로젝트2015우주산책 기획의도

지리산프로젝트2015우주산책
 
희망의 존립근거, 우주산책
 
최윤정 지리산프로젝트 큐레이터
 
희망,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 ‘아직 의식되지 않은 것’, 그러나 언제고 이루어질 수 있음을 몸소 실천하며 의식하고자 하는 것. 그렇기에 희망은 본질적으로 과거의 시간이 아닌 미래의 시간으로 향한다. ‘더 나아짐’, ‘새로움에 대한 창조적 욕구와 역동성은 희망이 존립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현재의 성찰은 희망의 원리를 쫓기에.’
 
경남권 지리산프로젝트의 본부라고 볼 수 있는, 풍현마을/산청 성심원은 반세기 역사를 갖춘 한센인들의 삶을 그대로 품고 있는 마을이자, 프란치스꼬 수도회가 관리하는 복지시설이다. 지금의 아름다운 성심원 풍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호강, 성심교가 생기기 전까지 세상과 한센인들을 분리하는 일종의 자연 경계선이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고무보트에서 시작하여 철로 만든 배 하나에 의지하여 세상과 접촉하였다. 소록도와 달리 풍현마을은 애초부터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마을,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지니고 삶을 일구고자 하였던 그들의 희망이 빚어낸 마을공동체이다. 한센인 어르신들의 청년시절, 그들은 수도회와 함께 가정집을 건축하였고, 마을의 커뮤니티공간(대강당, 대성당) 등을 만들어가면서 마을의 형태를 구축했다. 근래 이 중 일부는 사용하지 않는 오랜 빈 공간으로 남아있었고, 이 공간들 중 일부는 <지리산프로젝트2014:우주예술집>을 통해 문화예술창작의 산실로 새롭게 거듭났다. 성심원에서 제공한 대강당과 구 가정사 건물은 예술가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창작을 하고, 지속적으로 프로젝트 구상을 할 수 있게끔 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우주산책, 산책의 본연은 우연한 만남과 그 속에서의 교감에 있다. 때로 그것은 의식의 향방과 실천을 유도하는 사유의 장을 제공해주기도 하고, 현실 일상과의 순간적인 괴리를 꾀하여 관조적인 심리상태를 이끌기도 한다. 이는 지리산둘레길이 그간 성찰의 길로서 제안되었던 바와, 지리산프로젝트가 또한 사람과 마을과 지역을 마주하며 고민해왔던, ‘우주예술개념구축에도 그 의미를 보태고 있다.
 
<지리산프로젝트2015:우주산책>은 전시 뿐 아니라, 특화프로그램 지프달모우주예술캠핑콘서트를 함께 개최함으로써 지리산을 경험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 둘레길 걷기, 자연에서의 캠핑, 어쿠스틱 콘서트 등을 함께 선보였다. 이에 참여예술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참여도 두드러졌으며, 일반인들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구축하는데 있어서도 뚜렷한 가능성들을 엿볼 수 있었다. 한편 전시는 각 권역별 거점 및 둘레길 일부에서 펼쳐졌는데, 경남권 전시의 테마는 <희망의 원리>이다. 이 전시에는 각 특화프로그램 활동과 예술가들의 창작활동, 그리고 성심원의 역사 및 마을 사람들의 활동들을 영상 도큐멘트를 통해 보여주었으며, 또한 우주/산책’, ‘희망’, ‘지리산’, ‘자연’, ‘한센인마을’, ‘둘레길에 대한 예술가들의 다채로운 시선들을 담은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구헌주가 선보인 2014년 성심원을 상징하는 철선과 범우주적 관점에서 생명의 위계란 가치없음을 주제로 한 자화상 그래피티 등은 그가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낯선 장소의 누군가와 소통하는 실험에서 구상되었다. 2015년 구헌주는 이로부터 더 나아가 성심원의 사물, 이곳을 산책하면서 주운 작은 돌덩어리들을 보고 우주의 운석들을 떠올렸다. 그리하여 이를 크게 확장하거나 반전한 이미지로 공중에 떠있는 듯한 우주돌을 그리고, 경호마을 둘레길 구간으로 이어지는 길에 위치한 긴 벽면에 맞추어, ‘지구풍경하늘과 산 그리고 강(4대강 녹조)을 표현하였다. 오치근은 딸과 함께 지리산둘레길을 걸으며 함께 그렸던 그림들을 2014년 하동 에코하우스에서 원화로 전시하였고, 이어 2015년에는 이 원화이미지와 지리산의 자연이 품고있을 법한 동화 속 이미지들을 가지고, 딱지를 연상케하는 스티커를 제작하여 전시장에 방문한 사람들 누구나 가져갈 수 있도록 하였다. 이대범2014년 낯선 환경에 처한 예술가의 입장에서 관계맺기를 주제로 하여 그곳에서 발견된 것들을 기록하고, 예술가의 옷과 한센인 어르신들의 옷가지를 엮은 발을 만들었다. 이것들은 하나같이 장소와 관계에 녹아드는 과정이 대단히 중요시 되었던 작업이었다. 2015년에는 1945년부터 1999년 즉 새천년이 오기 직전까지 주요 일간신문 1면에 실린 새해 첫 이미지들을 수집하여 상영하였다. 이는 막연히 희망 자체에 대한 것이기 보다, 시대별로 어떤 이미지를 새해, 희망적임의 대표표상으로 삼았는지 관찰할 수 있으며, 각 시대가 추구하는 가치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작업이었다. 이범용2014년 스튜디오에서 발견한 제비, 어린시절 보았지만 잊고 지냈던 신화와도 같은 존재를 통하여 그가 생각하는 자연의 이미지를 형상화하였다. 2015년 그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자기구도적인 관점에서 이 장소에서의 창작의 의미에 대해 스스로 묻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황금빛입니다는 그의 수행적 노동을 보여주는 평면작업과 후속작업에 임하는 태도와 소회를 담담한 필체로 적어낸 글로 구성된다. 후속작업으로 그는 성심원의 납골당과 한센인들이 생각하는 천국의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정용국은 한센인 어르신들의 구술사를 기반으로 했던 기념벽 작업 첫번째사람’(2014)이후, 2015년에는 둘레길 어천마을 구간에 두번째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직접 제작한 의자를 설치하였다. 한센인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고자 하였던 첫번째 사람’, 그리고 성찰적인 자아 를 지칭하는 두번째사람을 통해서,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잠시나마 가던 걸음을 멈추고 의자에 앉아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풍광을 바라보며 산책의 의미를 사유할 것을 주문하였다. 2창수2014안녕’(둘레길 산청구간)에 이어 2015년 둘레길(하동 양이터재)에 작품을 선보였는데, 그는 누군가가 “God sent his son”이라고 낙서한 바위에, 잘못 불시착하여 사고를 당해 죽은 외계인의 슬픈 전설을 담았다. ‘우주사고는 하동 양이터재에 위치하며, 지리산둘레길 구간 중 다소 지루한 구간으로 일컫는 곳이기도 한데, 이곳에 그만의 진한 위트가 녹아들었다. 또한 이곳에 지리산을 찾은 명사들이 남긴 글귀들을 새겨넣은 성신석조각회의 돌조각작업이 함께 놓여져 있어, 지치는 발걸음 생각하면서 쉬어갈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허태원은 한센인 중증환자들이 요양하는 시설에 위치한, 중앙정원에 2014년부터 주민들과 함께 하는 장소특정적 꽃심기 정원의 정원을 조성하였다. 꽃을 심고 있는 작가의 활동을 보면서 주민들이 함께 돕고 참여하며 만든 정원이다. 두 개의 원은 하나의 원이 되고, 그 안에 놓인 꽃들은 심지어 작은 숲을 이루는 듯 하여 새로운 이야기가 꿈틀하고 생동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2014년 작업의 흔적으로 살아남은 식물들은 2015년 새로이 심겨진 식물들과 함께 어우러져 정원의 풍성함을 더할 수 있었다.
 
 
김신일마음을 형상으로 한 문자조각에 빛을 접목한 조형작업을 선보였다. 마음의 작용과 여전히 지리산에 서려있는 한국근현대사의 아픔이나 우리 사회에 상존하는 이념 갈등은 무관하지 않다는 입장에서, 그의 작업은 어지러움을 일으키는 마음의 작용으로서가 아닌, 순수한 고요함 마음 그 자체를 직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황인모는 자연과 인간이 사는 마을 그리고 길을 주제로 하여 인간의 숨결이 깃든 풍광을 촬영한 산책연작을 보여주었다. 거대한 자연 풍광 속에 인공적인 도로의 한 단면, 흐르는 강 저편에 위치한 집, 산에 둘러싸인 경작지 등. 그 자연 속에 인간의 삶이 지속되어왔음을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나규환, 세월호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천일기도 장소가 마련된 성심원 은행나무 앞에,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을 담은 아버지의 눈물조각을 설치하였다. 아버지 그가 흘린 슬픔과 고통의 눈물은,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있는 그의 전신을 휘감은 파도가 되었다. 김경화와 소빈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예술창작을 통한 치유와 예술교육을 겸하여 주민참여의 작업들을 이끌어 내었는데, 김경화는 못 그릴수록 아름다운 그림, 기복신앙을 담고 있는 민화를 매개로 주민참여작업을 이끌었다. 여기서 나온 그림들은 우주공소망상자로 공동창작의 산물들은 작가의 손을 거쳐 설치작업으로 완성된다. 또한 야외 잔디밭(교육회관 앞)에 도시의 황량함을 상징하는 재료, 시멘트로 만들어진 고양이와 비둘기 일군들은 굿모닝이라는 제목으로 자연과 공생하듯 설치되었다. 소빈소풍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센인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노래교실을 운영하고, 한지로 보고 싶은 사람에 대한 인형을 만들면서, 그 인형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이것은 어르신들의 흥을 돋우면서 밝은 분위기를 내고, 이윽고 공감과 이해를 통해 마음치유를 꾀하고자 한 작업이었다. 한편 이광기는 예술가들이건 방문객들이건 일종의 힐링을 제공하고 새로운 창작을 도모할 수 있다는 이곳역시도 현실의 무게는 존재한다는 위트를 담아 카드결제일’, ‘타임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그리고 야외에는 축대에 의해 휘어져 자란 나무를 두고 설전을 벌였던 경험을 두고서, 그 과정에 대한 작가의 소회를 담아 작품 세상은 생각보다 이유가 많다를 축대에 새겨 넣었다.
예술가의 작업 외에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창작작업이 활발했던 것은 작년 활동으로부터 비롯된 공훈이라고 자부해본다. 정덕문(성심원 시설관리팀장)의 주도하에, 2015년 봄부터 마을입구 나무집 2층에는 미술교실이 운영되고 있다. 또한 주민들이 함께 나른 경호강의 돌들은 희망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의 희망의 돌탑으로 재탄생하였다.
모든 것을 막론하고 주민들의 자발적인 창작활동에서 비롯한 감동은 나에게는 잊지 못할 대사건이다. ‘예술은 사회를 어떻게 더 나은 가치로 이끌 수 있는가에 대한 나의 중심 화두를 그들을 통해 직접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에서 예술창작을 통해 새롭게 생동하는 기운을 엿볼 수 있었고, 그들의 생동하는 기운은 다시금 현장에 임하는 나에게 강한 질타와 자극을 주었다. 마주침과 충돌에서 촉발될 수 있는 상호 생산적인 자극’, 또한 예술가들의 적극적인 탐구에 의한 새로운 작업들의 탄생. 어쩌면 한때 예술가들이며 마을주민들을 수혜자로만 여겼던 나의 생각이 틀렸음도 간파하였다. 나는 이것을 희망의 원리라고 부른다. 마을주민들이 예술가들에게 자극받았던 때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현장에 임하는 희망의 원리를 예술가들과 마을주민들의 활동에서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화두가 그리고 지리산프로젝트의 화두가 이후로도 현재의 깊은 성찰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이유, 희망은 그렇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 10일 목요일

경남예술창작센터 레지던시 참여작가 이진우 작가 평문, <보편성 위에서 노니는, 주관적 감응을 찌르는 형식실험>


보편성 위에서 노니는, 주관적 감응을 찌르는 형식실험
_이진우 작가 평문
 
최윤정독립큐레이터/미학미술비평
 
100개의 파트들이 모여 전체를 일구고, 이미 익숙한 혹은 알고 있는 주제들로 선별되어 집결한 부분들의 집합이 또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다. 전체가 모였다가 흩어지고 다시금 부분이 재조합되어 풀어내는 감응의 세계.
 
서사는 이렇게 구성된 하나의이미지 속에 불확실한 해석의 여지 속으로 파묻힌다. 인간에게 외적형식에 대한 지각은 이해의 내적 감각을 자극하지만, 다만 이해의 영역은 객관적인 것으로서가 아닌 주관적인 집중으로 각자의 특유한 해석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조합을 통한 이미지 생산은 곧 감상자 개별의 감정들을 끄집어내는 것에 복무한다.
그리하여 작가 이진우에게서 그가 생산한 고유의 이미지에 대한 테제는 그가 인물을 사건을 또한 구체적인 형상들을 추상화하는 형식에 맞닿아 있으며, 개별의 작품들을 접합하고 흩뜨리고 다시금 재조합하는 평면설치를 통해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 해석의 의미에 주목하게끔 한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장치로서, 작가는 본인의 의도에 부합하는 전체로서 부분으로서의 조합형식을 생산하기 위해서 누구에게나 우선 바라보기에 익숙한 사이즈의 캔버스_하나의 셀색점 역할을 하는 데에 통일감을 줄 수 있는_ 를 직접 제작한다. 그리고 사물형태에 대한 일차적인 인지로서 ’, ‘세모’, ‘네모등의 차가운 도상들과 정서의 표현으로서 붓질을 일차적 해석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는 매개로 활용한다. 보기에 이진우 작가는 우선적으로 보편성이라는 견지에서 자신의 형식을 탐구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스케치의 대상이 그렇고, 매개적 장치로서의 도상들이 그렇고, 또한 색채를 담아내는 캔버스가 그렇다. 인체에 대한 드로잉에서 출발하여 인물의 표정이나 분위기에 집중한 인물화 그리고 사건의 한 장면에 대한 스케치로 이어져 온 그의 작업은 구체적 형상 내지는 서사성을 그대로 두는 방식이 아니라 도리어 그가 선택한 매개적 도상들_도형, 붓질_을 통해 해석의 여지를 지우는작업으로 귀결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인물, 사건 등은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거대서사나 역사적 상징과는 무관하게 자신의 감정 및 순간적인 소회와 환경에 대한 분위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할 뿐이다. 그리고 여기서 관람자는 해석의 불확실성을 통해 도리어 다양한 심미적 해석을 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쥐어낸 주체가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작가의 창작에 대한 문맥을 가늠하고 작품의 주제를 추출할 수 있다.
 
불확실성’, 그의 작업은 실재를 담은 사진을 참조하여 이를 스케치하고 페인팅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다시금 강조하자면 일차적으로 하나의 인물화나 사건기록 같은 그림이다. 그러나 여기에 이미지의 일부를 덮어버리거나 생채기를 내듯이 인물의 표정을 가늠할 수 없도록, 붓질이 혼미하고 거칠게 표현되기도 하고, 보편인지가 가능한 도형들이 인물의 표정을 막고 있다. 붓질의 분위기나 차가운 디자인으로서 도형들은 지우고 가리고 관람자의 시선에 상처를 내는 장치이지만, 한편 이면에 대한 해석의 영역으로 이끄는, 무엇이든 하나의 해석으로 귀결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순전한이미지로 변모시키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그의 작업 중 한 시대 전혀 다른 노선을 지닌 두 인물, 그들의 닮은 부분적인 형상들을 조합하여 마치 한 인물인 듯 표현한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역사성과 시대적 고통 속에서 마주한 두 대결자를 합해놓음으로써 해석에 대한 관람자의 심리적 방황을 불러 일으킨다. 그것은 인지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행위로부터 그리고 형상으로서 이미지 자체에서 느껴지는 괴리감과 모호함에 대한 것이다. 그러한 심리적 방황 자체, 그것이 불확실성에 내재하는 혹은 불확실성을 생성하는 핵심이지 않겠는가? 다시금 그의 작업은 보편적 견지의 서사성과 상징성을 그 끝에서 장치를 통해 교란시키는, 교란의 상황에서 불거지는 주관의 느낌과 이를 통해 서사가 아닌 시각이미지 자체로서의 분위기에 집중하게 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그것이 작가가 진술한, “순간순간 마다 다르게 읽힐 수 있는 열린 해석”, “그저 전체로서 부분으로서의 이미지이며 작품의 문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니겠는가.
심미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가 이해가치에 종속된 사물, 그것이 지닌 형식에 머무르는 경우 일반적으로 관심적인 집중의 상태에 돌입한다. 이 경우 자신의 관심이나 이해의 영역에서 이미 잘 알고 있는 혹은 경험하여 알고 있는 무언가에 집중을 하면서 해석을 꾀하게 된다._배고픈 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접시에 빵을 놓아 선사한다. 과연 그의 집중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접시로 향할까 아니면 빵으로 향할까_ 관심적인 집중이란 결국 세계를 둘러싼 진실과 정수를 도외시한, 자기 발 끝에 놓인 표면을 훑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장치를 통해서, 시급히 만족해야 하는 이해가 필요하지 않고 그 어떤 관심적인 집중도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상황이 전제된다면, ‘무관심적이고 심미적인상태로의 접근이 용이할 수 있다. 심미적 감응을 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형식실험, 자신의 순간적인 감정을 담았던 그 작품들이 또한 타인에게 그들의 고유한 감정으로 전이되도록 하는, 전체가 혹은 부분이 함께 유영하고 때로는 교란되면서 생성하는 무차별적 정감의 장, 그의 주제의식은 이렇게 전개된다.
 

경남예술창작센터 레지던시 참여작가 박진영 작가 평문, <몸짓, 숨의 흔적으로서의 삶을 공감하는 자>


몸짓, 숨의 흔적으로서의 삶을 공감하는 자
-박진영 작가 평문
 
최윤정독립큐레이터/미학미술비평
 
인간의 기본정서에는 쾌락과 고통, 슬픔과 분노 등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유기체로부터 장소와 환경 그리고 태도로 집결되는 영향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바다. 하나의 유기체로서 공동체에 대해 생각해보자. 공동체는 그들이 살고 있는 장소와 시간, 그리고 역사적 문맥에 의거, 공통의 기억을 공유하는 바탕 위에서 생성된다. 이 기억은 언제고 그것이 뿜어내는 감정과 정서를 통해 또한 함께 겪어졌음을 공감하는 형태이며, 그들 삶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방식이기도 하다. 나와 너, 우리와 그들, 너를 이해하는 방식, 나를 규정하는 방식. 때로는 그리하여 스스로의 정체성이 자신이 처한 공동체의 기억감정 속에서 어떠한 식으로든 발견되고 발현되기도 하는 것이다. 관계 안으로 낯선 자의 침투. 그것은 때로는 공격적인 충격에 의한 이격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불편부당한 충격으로부터 다시금 자신의 위치를 성찰하고 내가 겪지 못한 그들의 흔적을 공유하고 삶을 공감하는 과정속에서 도리어 낯선 자의 태도적 문맥을 형성하기도 한다.
 
안무가로서 무용수로서 박진영은 비디오댄스를 통해 한 공동체의 삶에 침투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그가 침투한 방식은 그들과 함께 시간보내기’.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_다만 그 시간 동안만이라도_ 그들의 삶을 공유하고 그가 무엇을 하고자 하던지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자 하는 태도적 과정을 의미한다. 여기서 결과물은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소통하고자 하고, 소통의 내용들을 어떻게 작품 속에서 성실히 선보일 수 있는지 그 모든 바탕 위에 그에게는 그가 꾀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참여와 소통의 문맥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을의 어린이들부터 노년기에 접어든 여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어떠한 주제를 성급히 끄집어내는 오류를 저어한다. 또한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은 정감들을 통해 공동체에 대한 존중과 관심을 표현하는 그의 태도는 그가 예술가로서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 그 자체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이미지생산자로서 그는_그의 특유의 안무가적 특징과 무용을 통한 몸짓표현을 고려하자면_ 사람, 공간 등 낯선 자와의 소통과 호흡이 중요한, 그렇기에 무엇보다도 과정이 돋보이는 작업에 탁월한 연출력을 발휘해왔다. 그에게 몸짓은 자신이 처해있는 시간과 공간과의 호흡, 들숨과 날숨의 기묘한 조화, 온전히 공감하고, 스스로를 주체로 설정하기보다 하나의 구성물임을 표명하고, 그리하여 스며들고 뿜어내는 아지랑이의 형국으로서의 자신이다. 작업과정에 있어서 안무, 시각적 연출, 사운드, 촬영 등은 전문가들과의 협업으로 이끌고 있는데, 이 단면은 무대예술에 대한 작가의 이해도와 직접적으로 맞닿는 부분으로 작품의 질적인 측면을 담보하고 있다. 그렇기에 비디오댄스작업은 그 자체로 그를 표상하는 대표적인 유형으로 자리할 수 있다. 에스토니아와 숨도에서 진행했던 그의 작업들은 _공간을 사유하고 호흡하는 과정을 시간적 추이에 맞물려 몸짓과 기운 그리고 사운드로 채워나가며 공간자체 그리고 관람자들과 하나의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가는_이미지생산자로서의 실험적 시도로 읽혀진다. 거기에 비디오댄스영역은 이전 작업들과 동일선상에 있으면서도 그가 늘 고민해왔던 공감과 공유에 기초하는 참여의 문맥을 심화시키면서, 예술가로서 자신을 인지하고 창작에 대한 태도적 진정성을 다져가는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다.
 
타인, 공동체에 대한 시선. 그 속에서 그는 관찰자이자 연구자로서의 예술가가 아닌, 도리어 그 속에 함몰되어 자신을 발견한다. 그들에게 익숙한 편안한 혹은 어떤 사연이 있는 공간에 함께 처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대한 그들의 사유를 나눈다. 어서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들, 그리고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어르신들. 작가는 그 안에서 시간의 경계선에 서있는 자신_두려움과 겁을 지닌_을 발견한다. 또한 지역의 기후에 따른 생산물의 차이가 존재한다 할지라도 어디에 가나 낯선 자들은 그곳에서 타 지역과의 유사성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에게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한 시간동안, 마을공동체에게 특유의 정서를 선사하는 공간들, 추억이 깃들고 아픔이 있었고 일상적인 동선이면서도 새로이 발견될 수 있는 동선을 추출하는 일은 작가의 주된 관심 중 하나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작가는 그 동선들과 공간들을 조망하면서 비디오를 통해 또한 시간과 그 공간들을 기록한다. 그 속에서 마을의 현재는 협업한 작품_그 당시, 그 시간, 그 공간의 소리를 기록한/사이먼_을 통해 표현이 되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들이 지닌 시간성/미래와 온통 기억과 흔적으로 점철되는 이야기를 품은 어르신들이 상징하는 과거라는 시간성. 그렇게 시공간은 몸짓이라는 생의 표현과 한데 어우러지고 함께 했던 시간을 상징하는 계절감을 통해 부각된다. 여기서 작가는 기본적으로 참여자들과 공감의 시간을 보내고 자연적인 흥의 춤사위를 이끌어내면서 본인은 아주 작게, 아지랑이처럼 속삭이는 최소한의 개입으로서 춤사위와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낯선 공간에서 시간의 경계에 놓인 자신을 발견하는 것. 타인의 삶을 공유하면서 조력자로서 자신을 설정하는 행위. 그렇기에 작가에게 이 작업은 마을의 새로운 기억감정을 생성하는 것 뿐 아니라, 결과물조차도 그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소명으로 자리하였다.
예술가로서 여성으로서 그리고 누군가에 대한 타인으로서 그 나름의 소통하는 자로서의 자신으로부터 경계인으로서 자아를 발견하고, 그 과정 속에서 마주하는 낯선 공동체의 기억감정을 공유하고자 애쓰는 일. 그들의 지금과 여기, 앞으로의 시간과 과거의 흔적들을 몸짓을 통해 잇는 매개자로서 박진영은 앞으로도 비디오댄스를 통해 참여에 대한 예술가의 태도적 문맥과 진정성에 계속해서 물음을 던질 것이다. 이것은 창작에 대한 주제의식이 예술가의 소명,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여지를 또한 충분히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