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짓, 숨의 흔적으로서의 삶을 공감하는 자
-박진영 작가 평문
최윤정●독립큐레이터/미학‧미술비평
인간의 기본정서에는 쾌락과 고통, 슬픔과 분노 등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서로 다른 유기체로부터 장소와 환경 그리고 태도로 집결되는 영향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바다. 하나의 유기체로서 공동체에 대해 생각해보자. 공동체는 그들이 살고 있는 장소와 시간, 그리고 역사적 문맥에 의거, 공통의 기억을 공유하는 바탕 위에서 생성된다. 이 기억은 언제고 그것이 뿜어내는 감정과 정서를 통해 또한 함께 겪어졌음을 공감하는 형태이며, 그들 삶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방식이기도 하다. 나와 너, 우리와 그들, 너를 이해하는 방식, 나를 규정하는 방식. 때로는 그리하여 스스로의 정체성이 자신이 처한 공동체의 기억감정 속에서 어떠한 식으로든 발견되고 발현되기도 하는 것이다. 관계 안으로 낯선 자의 침투. 그것은 때로는 공격적인 충격에 의한 이격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불편부당한 충격으로부터 다시금 자신의 위치를 성찰하고 내가 겪지 못한 그들의 흔적을 공유하고 삶을 공감하는 ‘과정’속에서 도리어 낯선 자의 태도적 문맥을 형성하기도 한다.
안무가로서 무용수로서 박진영은 ‘비디오댄스’를 통해 한 공동체의 삶에 침투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그가 침투한 방식은 ‘그들과 함께 시간보내기’.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_다만 그 시간 동안만이라도_ 그들의 삶을 공유하고 그가 무엇을 하고자 하던지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자 하는 태도적 과정을 의미한다. 여기서 결과물은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소통하고자 하고, 소통의 내용들을 어떻게 작품 속에서 성실히 선보일 수 있는지 그 모든 바탕 위에 그에게는 그가 꾀하고자 하는 이상적인 ‘참여와 소통’의 문맥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마을의 어린이들부터 노년기에 접어든 여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어떠한 주제를 성급히 끄집어내는 오류를 저어한다. 또한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은 정감들을 통해 ‘공동체’에 대한 존중과 관심을 표현하는 그의 태도는 그가 예술가로서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 그 자체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이미지생산자로서 그는_그의 특유의 안무가적 특징과 무용을 통한 몸짓표현을 고려하자면_ 사람, 공간 등 낯선 자와의 소통과 호흡이 중요한, 그렇기에 무엇보다도 과정이 돋보이는 작업에 탁월한 연출력을 발휘해왔다. 그에게 몸짓은 자신이 처해있는 시간과 공간과의 호흡, 들숨과 날숨의 기묘한 조화, 온전히 공감하고, 스스로를 주체로 설정하기보다 하나의 구성물임을 표명하고, 그리하여 스며들고 뿜어내는 아지랑이의 형국으로서의 자신이다. 작업과정에 있어서 안무, 시각적 연출, 사운드, 촬영 등은 전문가들과의 협업으로 이끌고 있는데, 이 단면은 무대예술에 대한 작가의 이해도와 직접적으로 맞닿는 부분으로 작품의 질적인 측면을 담보하고 있다. 그렇기에 ‘비디오댄스’작업은 그 자체로 그를 표상하는 대표적인 유형으로 자리할 수 있다. 에스토니아와 숨도에서 진행했던 그의 작업들은 _공간을 사유하고 호흡하는 과정을 시간적 추이에 맞물려 몸짓과 기운 그리고 사운드로 채워나가며 공간자체 그리고 관람자들과 하나의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가는_이미지생산자로서의 실험적 시도로 읽혀진다. 거기에 ‘비디오댄스’ 영역은 이전 작업들과 동일선상에 있으면서도 그가 늘 고민해왔던 공감과 공유에 기초하는 ‘참여’의 문맥을 심화시키면서, 예술가로서 자신을 인지하고 창작에 대한 태도적 진정성을 다져가는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다.
타인, 공동체에 대한 시선. 그 속에서 그는 관찰자이자 연구자로서의 예술가가 아닌, 도리어 그 속에 함몰되어 ‘자신’을 발견한다. 그들에게 익숙한 편안한 혹은 어떤 사연이 있는 공간에 함께 처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대한 그들의 사유를 나눈다. 어서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들, 그리고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어르신들. 작가는 그 안에서 시간의 경계선에 서있는 자신_두려움과 겁을 지닌_을 발견한다. 또한 지역의 기후에 따른 생산물의 차이가 존재한다 할지라도 어디에 가나 낯선 자들은 그곳에서 타 지역과의 유사성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에게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한 시간동안, 마을공동체에게 특유의 정서를 선사하는 공간들, 추억이 깃들고 아픔이 있었고 일상적인 동선이면서도 새로이 발견될 수 있는 동선을 추출하는 일은 작가의 주된 관심 중 하나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작가는 그 동선들과 공간들을 조망하면서 비디오를 통해 또한 시간과 그 공간들을 기록한다. 그 속에서 마을의 현재는 협업한 작품_그 당시, 그 시간, 그 공간의 소리를 기록한/사이먼_을 통해 표현이 되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들이 지닌 시간성/미래와 온통 기억과 흔적으로 점철되는 이야기를 품은 어르신들이 상징하는 과거라는 시간성. 그렇게 시공간은 몸짓이라는 생의 표현과 한데 어우러지고 함께 했던 시간을 상징하는 계절감을 통해 부각된다. 여기서 작가는 기본적으로 참여자들과 공감의 시간을 보내고 자연적인 흥의 춤사위를 이끌어내면서 본인은 아주 작게, 아지랑이처럼 속삭이는 최소한의 개입으로서 춤사위와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낯선 공간에서 시간의 경계에 놓인 자신을 발견하는 것. 타인의 삶을 공유하면서 조력자로서 자신을 설정하는 행위. 그렇기에 작가에게 이 작업은 마을의 새로운 기억감정을 생성하는 것 뿐 아니라, 결과물조차도 그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소명으로 자리하였다.
예술가로서 여성으로서 그리고 누군가에 대한 타인으로서 그 나름의 소통하는 자로서의 자신으로부터 ‘경계인으로서 자아’를 발견하고, 그 과정 속에서 마주하는 낯선 공동체의 기억감정을 공유하고자 애쓰는 일. 그들의 지금과 여기, 앞으로의 시간과 과거의 흔적들을 몸짓을 통해 잇는 매개자로서 박진영은 앞으로도 ‘비디오댄스’를 통해 ‘참여’에 대한 예술가의 태도적 문맥과 진정성에 계속해서 물음을 던질 것이다. 이것은 창작에 대한 주제의식이 예술가의 소명,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여지를 또한 충분히 남기고 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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