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3일 월요일

경남예술창작센터 10기 입주작가 한진 작업 비평

반응, 울림

최윤정 ● 독립큐레이터·미술비평


삶이 반응하는 지점들, 정온한 기억을 깨우치는 중추로서의 수동적인 감각들. 어느덧 아물거리는 기억들, 생의 반응들로서 순간적이고 격정적인 경험들이 묻혀있는 몸으로부터 기억이 감각이 움트는 바로 그 지점들, 일상적인 패턴들 속에서 시공간을 헤집어 호흡하는 몸의 집중을, 정신의 향방을 이끄는 그 무엇을 발견하는 일. 

마치 어두운 밤 가느다란 한 줄기의 빛이나 세상 전부의 소리와도 같은 작은 부석거림이 온 신체의 반응을 이끌어내듯이, 작가의 작업은 인지를 향한 혹은 인지의 상황에 대한 심리적인 소란을 불러일으키고도 고요하게 또는 파장처럼 지속적으로 울리는 허밍처럼 ‘들린다’. 기억의 질감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작업은, 재료의 용법에서도 이 감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문지르고 지우고 기억을 더듬어가며 즉흥적인 느낌을 표현하거나(연필을 가루로 만들어 문지르거나 떠오르는 단상들을 지우개로 지우면서 형상을 찾아가는 작업), 그의 유화에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물성이 주는, 풀어져 균질화된 신경다발과도 같은 표면들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그에게는 애도해야 하는 많은 기억들이 잔상으로 온몸에 흩뿌려져 있다. 그것은 그리움이거나, 과거의 시간을 머금은 흔적들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사라지는 것은 없다. 그것은 한갓 관념으로 각각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세포에 저장된 기억들이다. 다만 일상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자연히 끄집어내려는 시도에서 작가의 작업은, 신체의 특정감각을 건드리는 지점들을 발굴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 그 지점들이 연결되는 선상에 작가 자신의 실존이 위치하는 상황들을, 습윤된 기억을 끌어내면서 자신의 감각체험들의 움직임에 호흡하는 것으로 마주하고 있다.   


작가가 자신의 기억이나 감각을 깨우는 시작은 ‘소리’와 ‘흔적’이다. 그는 기억을 소환하는 혹은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식에서 ‘소리(음, 목소리, 노이즈)’에 주목한다. 소리의 감각은 그 소리가 위치했을 법한 혹은 그 소리를 경험했을 법한 장소의 이미지와 결합되기도 한다,  장소는 수많은 문맥들을 가지고 있다. 그가 누군가와 나누었던 대화, 당시의 햇살과 온도, 그리고 당시의 기분. 모든 장소는 그렇기에 보기에 재현되는 대상이기 보다 상징적인 환경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가 이곳에 입주하면서 주목했던 경남권의 한 도시, 가까운 이가 과거에 살았건, 그의 과거 삶이 층간으로 자리할 그 장소를 좀 더 가까이에서 마주하고자 하였다. 그곳에서 감각한 모든 것들은 아마도 시간을 두고 자신의 정서를 담은 답가로 읊어질 것이다. 작가에게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낡은 벽’은 시간의 겹들이 만들어낸 오래된 이끼와 때, 뭉쳐진 먼지 등의 것들을 통해 시간의 흐름 내지는 어느 기억이었을지도 모르는 잊혀졌던 무엇을 일깨우는 정서적 장소가 되기도 한다. 낡은 벽의 표면을 다시금 문지르고 지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떠오르는 형상은 마치 잔상처럼 몸의 행위에 접속되고 이는 자기 신체의 반응들을, 그것이 감정이건 물리적 반응의 종류이건, 인지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이 과정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이면들을 가시화하는 것, 시각예술이 할 수 있는 본연의 철학적 국면이다. 인지하지 못했던 지점들이 예술가들의 수많은 해석을 통해서 발견될 수 있는데, 각자의 해석들 속에서 작가는 세상에 처한 자기에 대한 성찰적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순전히 자신의 감각을 통해서 구현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구축하는 표면들에 집중하고 있는 실천이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도정으로 이끄는 것이 아닐는지. 이러한 객관화 과정에서 그는 ‘인지하지 못했던 지점’을 발견하고 탐구하는 것에 몰입하는데, 이는 공간적 설치 과정에서도 흥미로운 지점을 보여준 바 있다. 지나가면 안 될 것 같이 좁은 통로, 그 통로를 마주하면서 갈등하는 관객. 일종의 몸짓을 요구하는 연극적인 요소들이 공간적 설치에서 적용된 바가 있었다. 그것은 움직임이라는 신체의 활동을 통해 무엇을 감각하게 할 것인지, 왠지 감각적으로 부조리한 상황들을 설정함으로써 불편한 요소들을 만들어내고 행위를 이끄는 것. 그 불편한 요소들에 또한 사람들을 대면하게 하는 것. 지난 그의 전시에서 자신의 작품을 공간에 설치하는 의도로 설정했던 바이기도 하다.   


인터뷰 중에 나는 그가 선호하는 음악을 물었다. 나 또한 작가의 일상적 감각에 접근해보고 싶은, 말하자면 접근을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 타인의 감각에 접속하는, 반응할 나의 특정감각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한 탓이다. 그가 몇몇 작품에 제목을 붙이는 방식 문득 작품을 보며 그가 생각하는 소리, 그가 또한 바라보는 것이 제목의 의미이기보다는 후음과도 같은 소리의 뉘앙스로 이뤄지다는 것. 그의 작업이 함의하는 소리를 상상하고 표면이 주는 시각성을 동시에 추적해나가는 것의 의미, 문득 이성의 뇌리에 멈춘 경직된 비평적 시선을 공감각적으로 풀어헤칠 수 있는 계기로, 그렇게 접근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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