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3일 월요일

경남예술창작센터 10기 입주작가 오지연 작업 비평


행위와 해체, 경계를 포괄하는 호흡 

최윤정 ● 독립큐레이터, 미술비평

작가의 작업은 긴 호흡을 필요로 한다. 한 작업의 완성태는 그 과정에서의 완성태이고 그 이후 이어지는 과정을 향한 토대가 된다. 그리고 이내 종국에는 파손 내지는 자기파괴의 상황으로 풀어헤쳐지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주로 부드럽고 유연한 소재에 관심이 있어 작업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장갑에 주목하게 되었고, 목장갑을 자르고 이어 붙여 다시금 조합해가면서 ‘감정세포’를 만들어왔다. 여기서 ‘감정세포’는 일종의 정서적 원형으로 상징되고, 물리적 원형의 유기체적 최소 단위의 형태를 상상하게 한다. 새로운 생을 탄생시키기 위한 죽음, 세포자살에 대한 이야기가 이에 덧입혀지는데, 이는 앞서 말한 ‘자기파괴’로서의 작품 해체행위를 의미하며, 다음의 생/창작을 위해 자발적인 죽음을 택하는 상황을 지시한다. 말하자면 작가의 전 작업들이 과정들을 통해 순환적이고 유기적으로 얽혀있음을 반증하는 상징적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나의 감정은 완성되지 않기에 나의 작품은 변모한다. 
 나의 감정은 변화하기에 나의 작품은 완성되지 않는다“ 






‘감정세포’는 그의 몸의 일부, 혹은 그의 행위에 동참하는 또 하나의 몸이자 개체이다. 그것이  중심에 놓이면서 작가는 자신이 관계맺는 환경과 또한 그 환경 안에 젖어들고 소멸하는 작업 을 통해서 죽음과 생성의 과정이 결국은 다르지 않은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보기에 생채기를 내는 듯한 작업은 무엇인가를 상기시키는 것과도 같은데, 여기서 ‘생채기’란 놓여져 있는 환경 자체일 수도 있고, 예리한 칼날의 쑤심과도 같은 고통의 순간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고난과 고통을 수반한다 할지라도, 어쩌면 상기하지 못했던 것들을 추출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는 점에서 생채기에 대해 ‘평가적인’ 의미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마치 죽음과 생성이라는 것이 반대이건 혹은 같건 간에 의미적으로 대립되어 있기보다, 서로 맞붙어 서로의 의미를 구체적으로/한정적으로 부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어느 것에도 닿아있지 않은 것이 없다’는 메시지가 유효한 것이다.  

특히 그가 이번에 주목한 환경은 바로 창작센터 안에 있는 무덤가처럼 생긴 작은 인공 언덕이다. 그는 이 장소를 중심으로 지난 몇 개월간 과정적인 작업들을 수행해왔다. 

감정세포들이 이 작은 언덕의 능선을 타고 바닥 곳곳에 이어져 있으며, 이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서 언덕에 오르면 좁다란 길을 따라 한 발 한 발 내디뎌야 한다. 걷다보면 길에 놓여져 있는 감정세포들이 밟히기도 한다. 살을 밟는 듯한, 생명에 생채기를 내는 듯한 불편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리고 작가는 한 달 간 하얀 면드레스를 언덕 아래 땅 속에 묻어놓았다. 한 달 동안 이 드레스는 흙의 생명과 호흡하고 삭기도 하는 자연의 해체 과정을 거쳤다. 흙물이 잔뜩 베이고 군데군데 찢기기도 한 형상이었다. 작가는 이를 다만 불편한 과정이 아니라, 자연이 되고 풍경이 되는 작업의 일환으로 여겼으며, 그간 자신에 의해 파기되고 해체되었던 작품들이 관계를 맺는, 즉 자연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작업을 해체하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이번 퍼포먼스 영상은 바로 땅 속에 묻어 자연의 해체를 유도했던 하얀 드레스를 입고 언덕 주변을 걷고 배회하고 그 위에 눕는 등의 행위들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하나의 정령처럼 언덕 주변에 사건을 만들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무용해 보이기까지 하는 제스추어, 이러한 몸의 표현은 작품과 작가 자신이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그리고 자신의 세계와 외부 세계가 정확히 분리될 수도 없음을, 경계를 경계로 여기지 않는 그가 추구하는 창작의 전제이자 태도였던 것이다. 바로 ‘어느 것에도 닿아있지 않은 것이 없었음’은 자신의 몸과 함께 변화하는 유기체들을 전제함으로써 보여주었고, 그의 작업은 그렇기에 행위는 물론이거니와 시간과 그 소요된 과정만큼의 진한 몰입을 전제로 한다. 몰입된 감정들이 힘겹게 느껴졌다. 환경 및 스스로의 몰입에 처한 감정선을 유지하고, 이를 표현하며 행위하고, 또한 해체하기까지 심지어 끊기거나 그치거나 완성될 수 없는 감정의 시간들을 이토록 감당하는 예술가의 모습이란. ●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