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일 일요일

전시서문 <지리산프로젝트2014:우주예술집>

<지리산프로젝트2014:우주예술집> 서문


생명과 기억의 시간 _ 풍현마을/산청 성심원
 
 
최윤정 지리산프로젝트 큐레이터
 
 
지난 328일 프로젝트 발대식에 이어 작가들을 맞이할 준비과정을 거쳐 5월 말부터 지리산프로젝트2014:우주예술집 참여 작가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작가들은 한달간 본인이 놓여있는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을 마치고, 발견한 주제를 통해 작업계획을 구상하여 기획단과 최종 논의를 거쳐 확정하고 진행하였다. 이 준비과정은 대단히 중요한데, 지리산둘레길 산청 구간 및 작업실이 위치한 한센인 요양시설 성심원이라는 장소성에 집중하면서 주제 및 소재를 발견해가는 지난한 과정을 포함하였고, 이 부분은 기존 레지던스 프로그램과는 차별화되는 부분으로 자연히 설정될 수 있었다. 즉 장소에 대한 이해 없이 막연한 내용으로 작업계획을 수립하여 현장에서 헤매게 되는 물리적정신적 소모를 최소화하면서도 지리산프로젝트의 목적과 지향점을 몸소 체득하는 시간을 제공하고자 한 것이었다. 물론 그조차도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다.
지리산프로젝트에 접근하는 큐레이터로서의 입장도 참여작가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이곳에 몸담아 작가들과 활동하는 시기, 왜 지리산프로젝트가 이 시기에 유효하며, 내 일상과는 낯선 이곳에서 과연 스스로 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제 명분을 찾아가는 과정이 긴하였고, 명분이란 이해와 실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세워진다고 보는 입장이었기에, 우선은 인지이고 그 다음은 신념이며 실천신념의 확고함 속에서 작동하는 소명적 과정을 스스로 선택하였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물론 이곳의 삶을 알면 알아갈수록, 지리산의 일부라도 점차 이해하게 될수록 실상 두려움은 커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지리산이 품고 있는 자체 생명력과 거대 담론들, 성심원을 에워싼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마주하며 그 흔적이나마 쥐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도의 긴장감에서 비롯된 두려움으로 볼 수 있다. ‘약속이 의에 가깝다면 그 말을 실천할 수 있고, 공손함이 예에 가깝다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는 태도적 측면에서 다만 할 수 있는 바를 실천하고자 애쓰는 것만이 길지 않은 시간 이곳을 마주하는 기획단의 진정성이었다고 생각한다.
보통 지리산을 두고 빨치산 아들과 토벌대 아들을 둔 어머니에 비유하고는 한다. 단순히 이곳이 정치적 가치판단의 장이나 은둔거사의 활동지 정도로 읽힐 수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몇 개의 도시에 걸쳐 있으며, 사람들의 삶을 품어내는 어머니의 산’, 그리하여 삶이 그러하다면서도 다시금 반성적이고 실천적인 영감을 안겨주는 곳이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옛길, 지리산둘레길 조차도 단순한 트랙킹이 아닌 성찰, 삶에 대한 존중을 담아내는 철학적 지표를 담고 있다. 그렇기에 현실에서 동떨어진 자연 혹은 명상적 삶이기 보다 삶을 마주하라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내 떠오르는 명제였다. 이상향을 쫓아 지리산에 들어온 남명 조식선생조차도 폭포의 흐르는 물을 마주하면서,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서 관조의 대상으로서 폭포가 아닌, 인간세상으로 나아가는 물의 흐름을 생각하며 도리어 현실로의 시선을 거둘 수 없음을 이내 깨달은 곳도 바로 지리산이 아니던가.
 


산청자락 풍현마을, 한센인들의 마을_성심원에서의 활동
 
생명은 태초 원핵세포에서부터 겪어왔던 과거의 기억들이 분류되어 그 기억들을 후대에 물리는, 자기조직을 위한 생존 기억지도를 지니고 있다. 이 기억지도는 생존을 위하는 결과로서 구성단위와 요소에 작용하여 그 본성상 생명의 실체에 직접 관여한다고 볼 수 있다. 유기체가 지닌 수 만년의 역사를 포함하며 모든 존재들이 개별적으로 가지고 있는 힘을 내부로 결속할 수 있도록 하는 즉 자기 명료화의 기계적인 근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생명들이 자기 명료화의 근거를 배경으로 생을 영속하기 위한 활동을 게시함은 자신 내부에서만이 아닌 타생명과의 관계하는 바에서 연속성을 갖는다. 상호보완을 숙명으로 하는 에너지의 교환이며, 그 에너지가 흐르는 목적성은 결국은 관계하는 개체 간 추구하는 유의미적 공동선에 닿아있다. 인간의 마을공동체는 어떠한가. 그것은 역사를 공유하며 또한 그로부터 마을 고유의 문화적 태도를 결정짓는다. 마을의 태생과 더불어 그와 비롯된 온갖 사건들을 함께 기억하고 그로부터 어떠한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었는지가 이 마을공동체를 구성하는 지표로서 중요한 관건일 수 있다.
오랜 기억감정을 통해서 생에 대한 본능과 살고자 하는 의지,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위해 한센인들이 일구어온 이곳 산청 풍현마을 역시 같은 선상에서 공동체의 삶을 실현시킨 곳이다. 여기서 2014년 지리산프로젝트가 왜 산청 이곳 성심원에서 펼쳐져야 하는가 혹은 펼쳐질 수 있었는가에 대한 명분이 자리한다. ‘삶을 마주하라는 지표의 출발점. 풍현마을은 단순히 한센병을 앓고 있지 않은 사람들과의 유리된 장소를 찾아 구축된 그저 기능적 장소일 뿐인 곳이 아니며, 갈등과 편견의 역사에 맞서야 했던 무수한 사건들이 남긴 기억감정의 장이다. 거기에는 마을 고유의 기억지도를 구성하면서 동시에 평범한 삶을 살고자 하였던 그들의 바람과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현재의 삶이 펼쳐지는 문맥이 서려있다.
 
한센인 어르신의 수가 줄어들고, 또한 과거 시설의 노후화에 따른 새로운 시설 신축 등이 이뤄지면서 마을 곳곳에는 오랜 기간 동안 온기가 스미지 않았던 공간들이 창고화되어 일부 남아있었다. 작업실로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주제를 발견하면서 사색을 꾀하기에는 적절하였으며, 한센인들의 일상적인 삶이 묻어있던 장소이기에 의미가 컸다. 기획단은 이러한 유휴공간을 예술의 기운 속에서 소생하는 쓰임으로 고민을 지속하였다. 또한 문화소외지인 한 마을에 들어와 예술을 하겠다며 갑작스레 공간을 사용하고 서로 간 낯선 지점에서 어떤 감정의 교환이 일어날 수 있는지 상상하는 것은 대단히 가슴이 설레는 일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문화적 충돌일 수도 있고 삶을 이해하는 각자의 시선을 존중받기 위한 소통을 위한 창구를 구축하는 지점이기도 하였다. 성심원에서 흔쾌히 사용을 허락한 공간은 총 3개의 건물로, 남성독신사인 프란치스꼬의 집(2, 12개의 방), 과거 가정사로 쓰였던 아녜스의 집’(4가구, 8개의 방, 4개의 공용공간) 그리고 대강당(전시관)이다. 참여작가들은 5월부터 10월 초까지 약 5개월간의 창작활동을 진행하였고 이후 전시가 종료된 시점에도 기존 작업을 심화시키기 위한 전단계로서, 지리산둘레길에 대한 예술창작 실천 방향을 두고 여전히 일부 작가들이 남아 창작을 고민하거나, 새로운 작가가 입주하여 지리산프로젝트를 이해하기 위한 동계활동을 또한 이어나가고 있다.
 
이번 지리산프로젝트 산청 성심원 파트의 전시 우주예술시론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업성향은 크게 세 방향으로 나뉘었다. 1.태초의 자연으로서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2. 인류학적 모멘트로 마을사람들의 구술을 통해 인간에 대한 존중과 성찰을 자아내기도 하고 3.낯선 이방인으로서 관계를 맺는 방법과 태도를 담은 작업 등이 그것이다. 1은 잊고 지냈던, 그리하여 자연의 생명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경외감과 도시와는 다른 시간을 갖는 풍경들에 대한 소고였고, 2.인간본연에 대한 성찰적 작업은 특히나 도시문명에서 살아왔던 참여자들에게 일반 시골도 아닌 한센인 마을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관심을 또한 그들의 거리설정의 온 기준을 한센인들의 역사와 사건, 성심원의 역사등에 맞추는 움직임이었고 3은 낯선 곳에서의 독백과도 같이 프로젝트 참여자로서 창작을 위한 의미를 주조하기 보다는 조심스레 진술, 기록, 행위 등을 통해 마을과 예술가 간의 관계맺기를 시도해 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어머니로서의 자연 등 지리산이 게워낸 흔적들을 토대로 발견된 제비를 주제로 설치작품을 구상한 이범용, 자본사회에 걸맞지 않는 예술가의 삶을 비애적으로 표출하는 매개를 통해 성찰의 길로서 지리산둘레길을 유람하는 퍼포먼스 영상을 담은 김대홍, 그리고 거대자연과 삶이 펼쳐진 곳에서의 강렬한 소음들 그 속에서 생명의 위태로운 떨림을 간직한 작은 사물들에 대한 감성을 포착한 이브 에티엔느 소놀레. 그리고 지리산둘레길로 나아가 방문객들이 작가가 전하는 안부를 우연히 발견할 수 있도록 입체글씨를 새긴 2창수 작가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그리고 한센인들의 인터뷰 기록 속에서 병으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부정되어 온, 자신에 대한 생의 강한 열망을 시사하듯 유독 1인칭의 표현들을 사용해왔던 구술자료를 토대로 그들의 삶을 기념비적 기록물로서 거대한 벽에 빛의 퍼포먼스로 재기록한 정용국, 성심원 한센인들의 삶과 성심원 프란치스칸 구도자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다큐영화로의 구상을 꾀한 인진미는 한센인 삶을 재조명하고자 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의 산책, 관계맺기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한 소규모 프로젝트는 이대범을 중심으로 한 라운드어바웃(하정현, 안동일, 노승표, 정덕현, 이채원, 정윤혜)을 통해 진행되었다. 그들은 성심원에서 흐르는 시간과 특정 장소, 특정 사물들을 발견해내고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일정 주어진 미션에 따라 기록하는 작업들을 선보였다. 또한 마무리를 하면서 남긴 메세지 여전히 낯설다는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충분히 관계적 의미를 행할 수 없었다는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한 마을을 다루는 창작이라는 것이 작가에게는 자기성찰적으로 다가옴을 시사하는 부분이기에 여운이 크게 남는 부분이다. 또한 구헌주는 낯선 장소이지만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서로의 감정 교환을 꾀하는 두 편의 그래피티 작업을 선보였다. 마임이스트 이정훈은 지리산의 근현대사와 구도자/순교자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구상하고 시나리오 구상 및 몸짓을 직접 시연하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입주작가 뿐만 아니라, 초대작가들을 두어 지리산프로젝트 주제에 대한 수식적 범위를 기획전시를 통해 보다 넓히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세 명의 작가가 전시에 함께 참여하였는데, 지리산의 역사와 신화 그리고 인간의 강렬한 핏줄기를 연상하게 하는 지리산의 맥을 담은 풍경을 다룬 서용선, 인문학적 삶의 기운이 깃든 지리산의 풍광을 그려낸 이호신, 태초 세상의 탄생을 주제로 하여 우주와 삶의 신비를 다룬 모하 안 등 이 세 작가의 작업은 지리산을 통할하는 삶과 역사, 대자연의 빛깔과 근원을 중추적으로 잡아주는 역할을 하였다.
 



 성심원 참여작가들과의 연속된 대화 속에서 이곳 지리산 산청 한센인마을을 마주하면서 개별이 겪은 성찰적인 요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계속된 환경적 변화와 적응문제에서 다행히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극심한 변화지점에 서있을 때 라는 인간이 나 자체를 어떻게 객관화하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해야한다고 강제하는 일인데, 그것은 스스로 괴롭힘을 선택하고 해법을 찾으며 변화적 위치에 직면한 상황에 대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명분을 스스로들 찾고자하는 과정이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낯선 환경에 처하고 문제적 상황에 직면했을 때 제 위치를 제대로 잡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비롯된, 언제나 그랬듯 모든 일에 대한 선행작업으로서 작가들에게는 적지 않은 정신적 몸살을 선사하지 않았을까 판단해본다. 우리가 왜, 여기서, 지금 그것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는 비단 기획단 뿐만 아니라 참여작가들에게도 동일한 과정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프로젝트의 가시적인 성패보다도 기획단은 참여작가(입주자)에 대해 자발적인 창작이 선사하는, 긍정적인 고통을 끌어낼 수 있는 방식을 함께 고민하고자 하였고, 실현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조력하는 대등한 논의자로의 위치를 고수하고자 애썼다. 성심원에서 창작의 분위기 및 작가들 간의 자연스러운 협업은 궁합상으로도 적절히 조화로운 편이었다. 모두들 기획단이 제시하는 담론의 수준이나 그들이 발견한 주제에 대해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다. 더불어 대도시에 비하여 문화예술소외지로서 작품을 마주할 마을주민들에게 창작의 의미, 창작의 고통 및 과정,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의 잉여가 아닌 인간본연의 생명활동으로서 창작을 수행하는, 창작 자체에 대한 값진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는 태도적 무장이 모두에게 중요했던 한 해였다. 작가 개별이 연속적으로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부분은 추후 지리산프로젝트의 참여자로서 함께 함으로써, 지리산프로젝트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닌 긴 호흡으로서 창작의 진정성까지 함께 구축해나가는 단단한 우주예술집으로서 비젼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2014년 11월 24일 월요일

PublicArt 12월 Review CHA, Jong-Rye


뿔과 주름, '이면'과의 소통을 여는 생명나무의 결  
<차종례 전>


글 ● 최윤정, 지리산프로젝트 큐레이터


특수한 사건 그리고 개별의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것들이 결합하여 일구어낸 거대한 휘몰이 속에는 원초적 생명에너지의 서사를 담은 듯한 형상들이 만판 펼쳐진다. 아래에서 솟아나는 형상이기도 하고 위에서 떨어져 파문을 만들어낸 듯한 파동의 형상이자 주름들이다. 비록 드러나 있지는 않되, 현상을 주조하고 있는 근원적인 힘, 에너지의 응축이 점으로부터 원뿔을 형성함으로서 외부로 도발할 수 있게끔 해온, 내면의 원천을 상상하도록 만드는 작품들이다. 합판을 덧대어 깎아내린 조형방법에 의거, 각 형상들은 평행으로 그어진 일정한 무늬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실재료의 물성에만 그치지 않고, 그것이 생성된 집요한 응축의 장면과 시간성의 단면으로 수렴된다. "우주는 농축된 에너지로 출발했고, 매 순간 스스로를 새롭게 재창조했다. 우주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을 변신하는 이 힘은 한계가 없어 보이며 실재에 뿌리박혀 있는 고갈되지 않는 다산성을 보여준다. 이 전체 그림을 관찰할 때 우리는 충만한 새로움을 창조하려는 존재의 집요함을 발견한다."(우주이야기, 토마스 베리 ․ 브라이언 스윔)        

작가는 자신에게 가장 익숙하고 따뜻한 질감의 재료를 가지고, '드러나기, 드러내기' 연작들을 구상하면서, 작품의 의도 및 내용에 대해 긴한 설명을 남기는 대신에 자신의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상상적 세계를 확대할 수 있는 매개가 되었으면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히고 있다. 작가는 특유의 뿔형태의 도상은 솟아나는 듯한 형상으로, 작업해온 온형상들을 통해 기존에 있지 않았던 이형적 세계 내지는 생명에 대한 소우주를 떠올려 볼 수 있도록 하면서, 유기적 입체 특유의 아우라를 만들어내었다. 각기의 방향으로 솟아있는 나무의 (원)뿔들은 무한정하게 확산되는 듯한 한정되지 않은, 생명이 지닌 내적 에너지의 분출과 파동을 극적으로 끌어올린다. 오랜 이야기 속 신묘한 기운을 지닌 '뿔'의 신화에 대한 서사가 스미는 듯한 표면들이며, 심지어 단일 유기체로서의 원핵세포가 분열하여 증식하는 생명력의 흐름이 느껴지는 장면들이다. 모나게 혹은 둥글게 분출한 도상의 반복적 재현과 나무결을 포함한 파동의 구성방식은 마치 충분히 무질서한 가운데에서도 나름의 질서가 자생적으로 구축되고, 전체로서 하나가 거대한 유기적 생명의 기운을 만들어내어-자연의 소리에서 빚어지는 화음, 운동으로 생성되는 고리와 띠 그리고 항구적 순환성으로 연동되는 등- 해석의 층위를 더욱 다양하게 접근해볼 수 있도록 하였다.

더불어 파동의 도상들 즉 형태의 파동이든 소리의 파동이든, 사물의 세계에서 두개 이상의 파동이 만날 때 빚어지는 모습은 현상적으로 다양한 형태들을 통해 규격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생명의 세계 안에서 이는 다만 어떤 만남으로 고착되거나 기억 속에 머무는 '상기'로서 감성적인 영향관계의 파문으로 일렁이는 바. 어쩌면 이 작품들은 특유의 도상과 형식들이 누군가와의 정서적인 파문 영향관계 속에서 '상기'의 방식으로 의미를 주조하고 재생산할 수 있게끔, 즉 '보는 자'가 의미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소통구를 배려한 셈이다.

과거 오랜 신화 속에서 짐승의 뿔은 신비로운 힘, 권위 그리고 질서를 떠올리게 하는 '생명나무'의 개념으로서, 고대 신라 금관조차도 사슴의 그것을 모방하여 고안된 것이라 하였다. 뿔은 여전히 유효할 만한 신화적 세계의 생명체 속에 원형적이고 우주적인 힘으로서 설정되어 있다.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이면'이란 그렇기에 현재하는-현상하는 총체로서의 차종례의 작품은 그것이 발생하게 한 내면구조- 작가 자신의 내적기운과 문맥 혹은 재료의 물성과 매개적 장비에 의거한 창작방식의 각 이유들을 포함하면서도 현실의 표면으로 드러나지는 않은 원초적인 에너지와 원형적 사고로서의 서사에 주목하게 하는, 합리적인 논구를 통해 설명될 수 없는 사물의 본성으로서 내적충동과 자연계의 영원하고 완전한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서사들에까지도 관조할 수 있도록 한다. 마치 조화로운 음들 사이의 수적인 비율체계를 고민함과 동시에 그 음들이 선사하는 '듣는 자'의 충동적 정서의 장면을 '이면'에 대한 이야기와 동일시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시방ART 11/12월호 기고문 : Come what may_지표, 큐레이터쉽






 Come what may; 지표, 큐레이터쉽

최윤정* ●지리산프로젝트 큐레이터



학습 및 입문시기 1년, 광주에서 만 3년, 대구에서 만 3년, 그리고 지금 지리산에서 새로운 1년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는 10년을 족히 내다보는 8년차 큐레이터로서 활동한 나의 이력은 내가 보아도 참으로 다채롭다. 물리적으로는 서울, 전라도(광주)와 경상도(대구)를 거치고, 활동상으로는 대안공간, 현장프로젝트 그리고 미술관에서의 업무를 축적해온 시간들이다.  
누군가 그랬다. ‘첫 시작을 무엇으로 했는지가 관건이다.’ 시작의 문맥이 현재의 활동상황들을 유추할 수 있게 하고 그만의 색깔을 만들어간다는 의미라고 이해한다. 이 때문인지 지나온 시간들과 현재 마주하는 시간 그리고 앞으로 대면해야 할 시간과 상황들에 대한 ‘반추와 예측’의 작용은 경험축적과 맞물려 구체적으로 나의 결을 만들어주고 있다.

계속된 환경적 변화와 적응문제에서 다행히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극심한 변화지점에 서있을 때 ‘나’라는 인간이 나 자체를 어떻게 객관화하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해야한다고 강제하는 일인데, 그것은 스스로 괴롭힘을 선택하고 해법을 찾으며 변화적 위치에 직면한 상황에 대한 명분을 찾아가는 도정으로 이해하면 된다. 아마도 낯선 환경에 처하고 문제적 상황에 직면했을 때 제 위치를 제대로 잡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비롯된, 언제나 그랬듯 모든 일에 대한 선행작업이 된다. 내가 왜, 여기서, 지금 그것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는 이 과정 속에서 결정된다. 이 결정은 주변의 조언과 염려를 포함하면서도 결국은 내가 마주하고 내가 선택해야 하는 것이며, 결국은 ‘홀로-판단’하는 과정으로서, 그 모든 낯선 상황에 처해왔던 나에게는 늘 유효한, 존립근거의 토대가 되어 준, 생산적인 괴롭힘이다. 그것은 나에게 이 직업에 복무하는 자세와 역할에 대한 ‘명분’을 제공해왔다. 


이제 지리산에 놓여졌다. 

조금 편하게 이야기해볼까? 그 어느 산보다도 많은 매력을 가진 산이다. 근현대 한국역사의 단면으로 이야기 되었던 이 산은 그 속까지 들여다 보자면, 단순한 산이 아닌 ‘문화’이자 그 자체 인문적인 산이다. 신라 최치원의 흔적 및 그에 대한 설화1)가 지리산권 곳곳에 있으며, 남명 조식선생의 활동처이기도 하다. 오랜 상고시절부터 지식인은 물론이고, 신화 및 옛이야기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연구자들에게도 매력적인 장소임은 분명하다. 또한 지금의 ‘지리산둘레길’은 지리산권의 마을과 마을을 잇는 옛길을 현대인들의 자기반성적 성찰의 계기를 던져주는 철학적 사유의 길로서 제안된 곳이다. 이와 함께 지리산은 가치상실의 시대에 다시금 ‘생명과 평화’의 담론으로 우리 자신 그리고 주변과 타자에 대한 존중과 가치회복을 인식하는 장으로서 역할하면서, 멈춰있지 않고 지속적으로 시대에 유효한 반성적인 주제를 꾸준히 제시하고 있다. 2)

이와 같은 내용들을 인지하기 전까지 내가 아는 지리산은 고작 ‘지리산, 너 지리산이여’의 노래와 멜로디가 전부였다. 웅장하고 장엄하나 한이 서린 근현대사의 한 장면으로서의 남쪽에 위치한 산. 해서 대학생이 되면 반드시 등반해야 하는 산 정도라는 의식 외에, 나에게는 그저 막연하게 위치한 먼 장소일 뿐이었지만, 지금은 나의 일상이 펼쳐지는 장소가 되어있다. 고생스럽게 산 정상을 오르는 일들에 대해서 안타깝게도 나의 게으름과 미약한 발목은 단 한번도 성취감을 안겨준 적이 없었다. 말인즉 나는 등산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다. 내가 유일하게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다’뿐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세월이다.

오랜 인연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선배에게 이끌려, 보다 강하게 말하면 그야말로 ‘코가 꿰어’ 놀러온 것뿐이라고 착각한 장소다. 2014년 한해는 감사할 일들이 많아 보은으로 생각하며 한해를 보내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맡았다. 물론 그때까지도 아직은 ‘홀로-판단’을 배제한 체 시작한 바다. 그러나 날이 더해갈수록-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이곳은 나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는 곳이었다. 물론 나는 그것을 긍정적인 두려움이라 칭한다. 무수한 이야기들과 연구과제들이 이미 실천되고 있는 곳, 실천의 주체들인 이곳 사람들의 생활은 굳이 내 스스로 강제하지 않아도 이 프로젝트가 단순한 이벤트로서 아름다운 보은의 마음으로서만 접근할 수 없음을, 그 이상을 고민해야 한다는 당위와 두려움을 안겨준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는 강박과도 같았으며, 애초의 최윤정이라는 인간은 당연히 스스로를 괴롭히면서 위치를 잡아가는 인간형이므로 이 수순은 어찌보면 당연해보이기도 하지만, 그 두려움의 실체란 지리산권에 임하는 윤리적인 태도에까지 미치는 부담이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나의 자리

생각보다 알게 모르게 많은 훈련이 되어있었고 나름의 노하우들이 축적될 수 있었던 여덟 해이다. 커뮤니티에 대한 이해는 물론, 미술관계자가 아닌 사람들과 소통해야만 하는 과제 그리고 소통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등은 광주가 나에게 겪고 극복하라 요구하였던 과거의 시련에 맞닿아 있었고, 유휴공간에 대한 단순한 예술공간으로서의 조성이 아닌 ‘뮤지움’으로의 비전까지 고민하며 작가와 작품을 다루는 태도와 문맥은 큐레이터쉽으로서 대구가 나에게 투척해왔던 바다. 3)

성패와 상관없이, 참여작가(입주자)에 대해 자발적인 창작이 선사하는 고통을 끌어낼 수 있는 방식을 더욱 고민하고자 하였고, ‘군림자’, ‘선무당’으로서의 무책임한 강요이기보다는, 실현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조력하는 대등한 ‘논의자’로의 위치를 고수하고자 하였다. 창작의 분위기 및 작가들 간의 자연스러운 협업이 ‘궁합’ 상으로도 적절히 조화로운 편이었다.

전시는 입주작가 뿐만 아니라, 초대작가들을 두어, 주제에 대한 수식적 범위를 보다 넓히고자 하였다. 그리고 작품의 선정에서부터 운반 및 관리 등이 주먹구구가 아닌 시스템 상으로 정착시켜야 할, 뮤지움의 이상이 이에 깃들어야 함을 놓치지 않고자, 또한 그 규범을 지키고자 애먹는 시간들이었다. 왜냐하면 첫째 작품감상은 물론, 뮤지움이라는 환경이 문화적으로 익숙한 지역이 아니고, 둘째 그렇다면 작품의 의미, 창작의 고통 및 과정,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의 잉여가 아닌 인간본연의 생명활동으로서 창작을 수행하는, 창작에 대한 값진 의미를 그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특수한 장소와 상황에 놓여질 수 있음을 감안하여, 기획을 둘러싼 주변지형 문화와 사람들의 특색 등을 파악하는 일은 큐레이터가 우선적으로 프로그램 기획 이상으로 고려해야 할 지점으로 내게는 이에 대한 확고함이 있다. 다시금, 작가와 작품을 대하는 큐레이터의 태도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결국은 본보기가 된다. 여기서 나는 본보기의 핵심-큐레이터의 소임을 작가와 작품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등의 외적 행위에 두려는 바가 아니다. 큐레이터 개인의 내적 시선에서조차도-다시금 잉여가 아니라 생명활동으로서, 예술창작에 대한 확고한 시선을 관점화해야만 그것이 자연스럽게 외적 행위에 배어나온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바다. 우선은 ‘인지’이고 그 다음은 ‘신념’이며 ‘실천’은 ‘신념’의 확고함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태도는 그렇게 비추어진다.  

그렇기에 내가 지리산에 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 어디에 있다는 사실도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내가 그곳에 왜 있고, 거기서 무엇을 하고, 그것을 왜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스스로 이유를 찾아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왜 ‘나’라는 사람이 그곳에 머물렀는지, 그에 대한 궤적이란 비단 활동적 결과 및 껍데기 안에서만 이야기될 수 없는 바. 안으로 향해있고, 자각을 통해 외화되는 것, 그것이 소명을 구체화하고, 막연한 두려움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용기와 진정성의 근간을 잡아주는 것은 아닐는지. 어쩌면 그것이 전부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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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 귀결은 ‘최치원은 지리산의 신선이 되었다’로 마무리됨
2)  심지어 지난 9월부터 산청의 성심원과 남원의 실상사를 중심으로 ‘세월호 천일기도단’이 마련되었다. 생명 존중 및 가치에 대한 시대적 모순을 그대로 안고 있는 ‘세월호 사건’을, 그 희생자들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불어 지리산종교연대(불교,원불교,기독교,천주교) 역시 이와 함께하여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회를 각 종단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3)  지리산프로젝트는 사단법인 숲길의 주최로 지리산둘레길과 연관하여 지리산을 에워싼 5개 도시에서 펼쳐지는 예술프로젝트이다. 2014년 프로젝트는 우선 산청의 성심원과 남원의 실상사 그리고 하동의 삼화에코하우스 3개 도시에서 펼쳐졌고 2015년부터 5개 도시 확대를 준비하고 있다. 
   여기서 나의 파트는 산청의 성심원이다. 성심원은 작은형제회 프란치스꼬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한센인 복지시설’이며, 이미 하나의 마을로서 역할하고 있는 작지 않은 공동체이다. 한센인 어르신들의 수가 줄면서 비워진 공간과 또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대강당 등을 활용하여 예술인 창작스튜디오 및 전시장을 조성‧운영하고, 전시장은 향후 ‘지리산뮤지움’으로 등록할 것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공연, 전시, 학술행사 등을 조직하여 가치회복의 과제 및 지리산 생명평화의 철학적 담론을 구체화하는 예술프로그램을 성심원의 역사 및 커뮤니티 특성에 맞추어 기획 시행하고 있다.   
   

* 저자는 대구미술관 프레오픈 전시 ‘아트인대구’, 그리고 ‘대추리현장예술아카이브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시작하여, 광주의 첫 대안공간 매개공간미나리 큐레이터이자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대인예술시장프로젝트(첫해 조직팀,2009) 레지던스 팀장을 맡았다. 대구미술관 전시팀장(전시2팀)으로 3년간 근무 후 현재 지리산프로젝트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2014년 6월 16일 월요일

장병언 첫 개인전 평문 2014.6


소요逍遙하는 까닭

'장공, 생각을 움직이니 눈앞에 다가오는 형상을 마주할 수 있었더냐' 
최공, 2014년 6월 축사

글 ● 최윤정(지리산프로젝트 큐레이터/미술비평)


그의 자아는 옹고집이다. 아마도 이번 개인전에서 부각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은 동시대 젊은 예술가들의 행보 속에서, 그만의 특징으로 점유할 수 있는 바, 고전적 정신에 대한 동경이자 그것을 형상화하고자 준법을 연마하고 수행하는 과정을 작품을 통해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똑같게 모사하는 바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이를 현대미술논의에서 말하는 차용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구석이 있다. 그는 중국 산수화 대가들의 주요 작품을 '스스로 모사한다고 말한다.(작가는 이렇게만 말한다.)' 여기까지 보자면, 장병언 작가의 작업과정을 상세히 모르는 상태에서 때로 누군가는 그의 작품을 오해하고 옛것을 따라했다는 형식에만 그쳐 고루하게 보는 등 판단적 우를 범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겠다. 

그의 작업이 가지는 참신함을 발견하려면, 우선 그가 말하는 '모사'의 의미에 접근하는 단초가 필요하고 그것은 그의 작업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모사' 자체로서의 진정성 그리고 또한 그것이 의미상 변경되고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바다. 옛사람으로 태어났다면 힘들게라도 무수한 과정을 겪으며 원본을 쫒아 곁에 두고 혹은 장시간 작업하는 모사의 방법을 쓸 수 있겠지만, 지금에서 찾고자 하는 원본이란 박물관에 미술관에 고이 모셔져 있기에 곁에 두고 작업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허나 차라리 단순한 형식 모사에서 작가의 정신과 태도에까지 확장되고 무엇인가를 덧붙여 표현할 수 있는 여지가 이 때문에 역으로 열려있다고 볼 수 있다. 모사하고자 하는 작품의 최상도의 이미지를 수소문하여 가장 뛰어난 화질로 뽑은 종이를 들고 그것을 원본삼아(?) '모사'한다. 그의 고전은 따라서 완전하지 않다. 그렇기에 도리어 그 준법을 더욱 부각하고자 혹은 스스로의 성향에 맞추어 작가 특유의 고집스러우면서도 자유로운 정신에 의거, '모사'를 꾀할 수 있었던 바다. 대가들의 준법을 모두 익히겠다는 각오로부터 꾸준하게 오랜 기간 동안 스스로 '모사'를 이야기 하면서. 작가는 여기에 고전을 마주하는 무게감과 긴장감을 순간적으로 녹여버리는 유머러스한 자신의 도상을 덧붙였다. 그것은 고전에 대한 작가의 태도적 오마주이자, 그 세계에서 노니는 자신의 모습이다. 작가는 평소 산을 좋아하여 마음이 동하면 열 일 제치고 떠날 수 있도록 문 곁에 항시 등산용 모든 장비가 탑재된 가방을 준비해둔다 한다. 그냥 떠난다. 그의 성향은 온전히 독자적인 행동방식에 기반한다. 따라서 그의 옹고집은 절대적 힘에 의해 자신을 다른 것으로 화하게끔 하는 것이 아닌 그저 순전한 자아로서의 작가로 정립하도록 하는, 수월한 재료와 반짝 아이디어로 충분히 무장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자꾸만 인간적인 태도적인 궁금증을 유발하는 또 다른 참신함을 낳는 것이다.  

인간이 지닌 본질적 성향이란 자연의 언어를 이해하고, 보다 다양한 것에서 기쁨을 느끼고자 하는, 이를 다양한 언어로 해석하거나 혹은 그 언어에 대답하고자 하는 모든 충동을 수반한다. 또한 모든 예술의 뿌리는 다양성 뒤에 숨겨진 거대한 통일성, 모든 존재자들의 근원과 피조물들 배후에 있는 창조자 혹은 에너지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세계의 시원에 관한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관심에서 비롯된다고 본다면,  그에게 이러한 관심은 고전 산수화가들의 준법과 철학을 온몸으로 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범관이 마치 비가 내리는 듯 점을 찍어, 산수를 유람하면서 직접 바라본 바들을 자신의 순전한 세계의 반영으로 표현하고자, 우점준을 사용했듯이 그리고 이당이 날카로운 것으로 찍어낸 듯한 기법으로 소부벽준을 활용하여 그만의 철학을 담은 산수를 표현했듯이, 또한 곽희가 자연을 소요하면서 자연을 총체적으로 담아내는 자기만의 시선을 리드미컬하게 연결한 삼원법으로 산수의 기를 보여주었듯이, 작가 장병언에게 고전 스승들이 전한 준법은 단순한 기법이라기 보다는 본인이 도달하고 싶은 작가로서의 이상향, 삶과 예술의 경지를 실험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학습도구였다. 또한 이 고전스승들은 속세의 경험을 단순히 은둔자이기 보다, 준법을 통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규율, 즉 실천적 규범으로서 이를 제시하였다. 그들의 산수화가, 보통 산수화에 대해 무지한 현대인이 오해하는, 속세를 벗어나 은둔자의 삶을 지향한 혹은 현실정치와 무관한 자율성만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그들의 산수화에는 속세의 거친 삶의 모습과 수행으로서 절대정신에 도달하고자 하는 삶 그리고 그 너머의 자연(신)의 본질과 원리에 도달하려는 세계가 담겨져 있다. 여기에는 합일의 경지에서 각자의 철학적 태도와 예술가로서의 특성적 면모도 함께 녹아있는 것이다. 다시금 산수화에 깃든 도교적인 이상향이란 별도의 것이 아니라, 그 구도와 준법에서 이미 현실을 동시에 반영하고자 하는 의지와 평행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바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곽희의 조춘도, 이당의 만학송풍도, 범관의 계산행려도, 안견의 몽유도원도 등을 모사한 <遊조춘도>, <遊만학송풍도>, <遊계산행려도>, <遊몽유도원도> 등을 선보인다. 이 작품제목들도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데 유머러스하면서도 중요한 지점이 된다. 말하자면 고전 스승의 그림들을 지속적으로 모사하면서 스스로의 준법들을 습하고 스승들이 자연과 세계를 소요하며 거두어낸 화폭에 스스로를 던져 본인이 그들의 작품에서 '소요해왔음 혹은 여전히도 유효함'을 보여준다. 그것을 그리며 익히며 행복을 느끼고 그들의 정신과 세계에 대한 철학을 체득하면서 깨닫는 그만의 감응적 세계. 한편, 시간이며 물리적 공간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는 무법자와 같은 개인성과 창작적 태도에서 장병언이라는 작가는 또한 자신의 속세적인 삶에서도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되 인간사회 자연의 규율에도 어긋나지 않는 아주 특이한 젊은 예술가이다. 저 고전 스승들이 다만 준법을 익히기 위한 도구적 스승들이 아니었음을 반증하는 부분이며, 또한 저 준법들이 기술로서의 화법이기 보다, 삶의 철학과 규율을 녹아낸 정신적 기법이라는 측면을 반증하는 부분이다. <끝>

  
후기:
작가와 나의 인연은 3년전 대구에서 시작되었다.  30대 중반의 전업작가 또래 작가들이 그 사이 개성 넘치는 그들만의 참신함들을 소개하고 있을 때, 장병언 작가는 그야말로 고전 산수화의 세계와 흠뻑 일체가 되었고 대학교육이 신통치 않음을 감히 '스스로' 깨닫고, 곧이어 '스스로' 스승을 정하여 그를 찾아 '사사받는' 형식을 과감히 '신선하게' 실천하고 있었다. 어떤 생각을 품고 살며, 그의 삶에는 어떤 층위들이 있는지 인간 자체가 궁금해지는, 신묘한 측면이 있는 작가이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참신하다.  

2013년 11월 12일 화요일

월간미술(2013.11) Review : 염성순, 감옥에서 보낸 한철展(2013.10.8-10.27)



그대가 선택한 고통의 궤적_ 염성순, ‘감옥에서 보낸 한철’展
(2013.10.8-10.27, Project Bgallery)
 

나는 본다. 한 여자를 39x 54.5 종이 펜 아크릴릭 2011

“그대 고통은 그대 오성(悟性)을 싸고 있는 껍질을 깨는 것. 마치 과일이 부숴져야만 그 핵이 태양을 볼 수 있듯이, 그대 역시 고통을 이해해야 하리라”(<예언자>, 칼릴지브란) 고통은 삶의 열락을 위한 키워드였다. 고통은 어떤 욕망이든지간에 나에 의해 선택된 그것이자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기 위한 파괴의 과정을 도모한다. 고로 그 근원은 ‘나’의 실체에 기인하고, 깊은 어둠에서도 빛의 작은 한 줄기를 발견하고자 하는 의지에 관련한다. ‘고통’이란 따라서 그냥 ‘고통스러운’의 의미이기 보다, ‘~에 대한 인지를 위해서’ 내지는 ‘~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에 닿아있다.
염성순 작가의 ‘감옥에서 보낸 한철’[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에서 따옴]은 크게 두 가지의 연작으로 소개된다.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서>, <여성시리즈>가 그것인데, 이 둘은 ‘감옥에서 보낸 한철’에 대한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동시에, 현재를 통할하는 삶의 궤적을 보여준다.
그만한 솔직함이 있을까. “(...)화가들은 그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어서 그릴 것이다. 정반대의 화가종족들도 있을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내 납덩어리는 여전히 납덩어리인 채로 내 속에 남아있다”<‘작가의 노트’에서 발췌> 창작은 세계에 대한 욕망을 투척하고 이를 발산하는 과정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역으로 ‘발산’자체는 창작과 동일하지 않다. 그저 기계적인 ‘발산’도 가능한 것이므로, 다만 “납덩어리”가 예술가가 지녀야할 비극 내지는 소명이라면, 그것을 끄집어내기 위해 예술가는 스스로 고통을 선택해야 한다.
멀리서,혹은 가까이에서 (7) 78x54.5 종이 펜 아크릴릭 2011
그리하여 창작을 위한 발산의 공간이자 예술가로서 구체적인 삶이 펼쳐지는 물리적 장소 ‘아틀리에’가 작가에게는 ‘감옥’일 수 있고, 욕망을 구체적인 것으로 잉태하기 위한 ‘고통의 시간성’은 ‘한철’로 압축된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서>연작은 나의 바깥 세계가 지닌 욕망의 근거와 세계의 끈적한 욕망의 기운이 다시금 나에게로 회귀하는, 그것이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서 인지하게 되는 무형의 흐름을 이야기 한다. 유기체적인 확산, 세포의 증식, 초고도 압축의 상황,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긴장감을 지닌 화면은 그 만으로 작가가 발산하고자 하는 그의 고통이다. <여성시리즈>는 그 안에서 ‘나는 본다, 한 아픈 여자를’, ‘나는 본다, 한 여신을’ 등으로 색감의 높은 밀도와 함께 여성성을 범주화한 타이틀을 사용하여 마치 시의 운율을 만들어내듯이 연속적이고 강렬한 심상을 뿜어낸다.
염성순 작가는 글쓰기와 작시(作詩)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언어가 논리적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문학이 되면 때로는 음률로 화하여 음악이 되기도 하고, 심상으로서 감각으로 전이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 때문에 그의 회화는 음률이자 심상을 도상화한 마치 한편의 문학작품과도 같다. ■ 최윤정 / 대구미술관 큐레이터

2013년 4월 24일 수요일

월간미술 5월 Review : LEE Myung-Mi

이명미 : '넓은 들이여 내려앉을 마음 없이 우는 종다리' *


대구를 기반으로 70년대 대구현대미술제 운동의 주축으로 활동하였던 작가 이명미가 분도갤러리의 초대로 개인전 ‘Game’을 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약 20여점의 작품이 소개되었는데, 작가는 화려한 색채와 단순화시킨 도상들을 주요 조형어법으로 삼고, 초등학교 앞 작은 문구점에나 있을법한 장난감 피규어와 입체스티커를 특유의 재료로 활용하고 있었다.

처음 독해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녀의 작업에 대해 장난스럽고 한없이 밝고, 또한 질풍노도의 소녀가 겪는 감성을 담아낸 듯하다고 여길 법하다. 일차적인 독해로서 타당하다.

“젊은이의 감성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는데 어느덧 거울을 보면 한 노파가 서있더라.”(작가) 담담하지만 자조적인 회한이 묻어나온다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세월은 지나치지만 정신만큼은 젊어야 한다”(작가)며 우연한 자리에서 ‘스스로 철없음’에 대해 유머러스하게 논하는 작가를 보고 작가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묘한 해학성의 근거를 엿본 듯 했다. 세상을 살아가며 겪는 온갖 희로애락의 순간은 ‘사건’으로서 현재의 삶을 반추할 수 있는 고리가 된다. 다시 말해 감정을 수반하는 모든 사건은 개인에게 내면화되어 삶의 당위와 현재의 문맥을 주조해낸다.

멀찌감치 작품을 보면 그저 화려한 색채와 단순화된 여인의 조형이 있다.  <사랑해_캔버스 위에 아크릴, 혼합매체_194x130cm_2012>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세상이 온통 여러 번 덧칠이 된 핑크색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성의 한쪽 눈에는 눈동자 대신 ‘saw’(텍스트)라는 단어가 다른 한쪽은 ‘king’(텍스트)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 또한 얼굴에는 하트무늬 스티커가 ‘사랑해’를 연발하며 사랑에 빠진 여성의 표정을 'very much'(텍스트) 만들어 내고 있다. 그저 터져나오는 심정을 주체하지 못하지만 무채색 스트로크로 무관심하게 그어진 여인의 눈코입이 역으로 이를 발산하지 못하는 듯한 갑갑함으로 장면을 마무리한다.
<떠나자_캔버스 위에 아크릴, 혼합매체_194x130cm_2012>는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차용한다. 입체스티커가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자 떠나자’의 노랫가사를 구성하고, 가장 간략한 형체로 비행기며 배며 자동차가 작품 하단에 배치되어 있다. 또한 만화캐릭터를 담은 입체 스티커들이 한 구석에서 마치 지점에 도달한 여행자인 양 스토리를 생산하고 있다. 햇살의 잔상과도 같은 다채로운 색의 점들이 자유로운 청춘의 심경을 사방팔방으로 흩뿌리며 만들어내는 장면은 대단히 감각적이며 유희적이다.
빈 의자가 무관심적으로 덩그러니 한 구석에 놓인 <너와같다면_캔버스 위에 아크릴, 혼합매체_200x200cm_2011>은 텍스트의 배치가 전면을 장악한다. 다양한 형태의 입체스티커가 점이 되어 하나의 글자를 생산한다. 각 스티커마다의 이미지와 조형성이 강한 탓에 어쩌면 입체스티커라는 하나의 (사건적)개체마다 의미나 심경이 별도로 표현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기능적인 표음문자가 하나하나 이어붙이는 작가의 행위에 의해 그 자체 심정적인 표의문자로 변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그저 조형성이라고만 여기더라도 이 또한 그저 스티커인 것만은 아니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와 색채감으로 충만한
<보고싶다_캔버스 위에 아크릴, 바느질_181.3 x 227.3_2012>는 추상적인 표면성을 보여준다. 텍스트들은 스미듯 색면 뒤에서 불룩 솟아오고, 도상이라기보다는 스트로크에 가까운 이미지들이 화면의 어지러움을 가중시킨다. ‘목련꽃그늘아래...편지읽노라...보고싶다..’

감각적 가시성은 참된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베일에 가깝다. 각종 모티브가 뒤범벅이 된 듯 온 감각을 자극하는 이명미의 작품들은 심리적 거리로서 통속성과 예술성의 경계를 지워버렸다. 한편 무심히 펼쳐내고 드러내놓고 있는 듯하면서도 세부를 직시하게 하고, 동시에 장면에 대해 집중하게 하는 내러티브적 이끌림이 놓여있다.


* 마츠오 바쇼오(1644-1694) 의 하이쿠 :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르고 잠시 나무에 앉았다가 다시금 하늘을 향해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봄날의 종달새를 노래함

2012년 10월 27일 토요일

월간미술11월 Review : LEE Kyo-Jun


<이교준>, 리안갤러리, 2012.9.5~10.13

글 ● 최윤정/대구미술관 큐레이터

회화의 내러티브를 제거하고 대상을 인식하는 '선과 면'의 단위성에 근거하여 독자적인 예술의지를 표해 왔던 작가 이교준, 그의 이번 개인전에 발표된 작품들은 세 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다. 우선 각 부분은 그가 90년대부터 치열하게 고민해왔던 표현에 대한 의지와 문맥적으로 일맥상통하며, 그저 신작발표이기보다 관람자를 향해서 작가 이교준을 관통할 수 있도록, 기하학적으로 그의 예술세계를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그것들은 그의 현재에 나란히 보폭을 맞추면서도 이후 그의 평면과 입체가 어떤 입장과 방향으로 진전되어 갈지를 보여주는 지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의 전시작품 세 종류 중 한 측면은 색면과 색선으로 분할되고, 화면을 구성하는 여러 개의 사각 틀들이 그 배열방식에서 거두어낸, 시각적 착시로서 일종의 투시적인 운동성을 유발하고 있다. 이는 각 사각틀이 교차가 아닌 순차적으로 혹은 등차적으로 배열되면서 전면과 후면, 상하좌우의 가녀린 떨림을 감각하게끔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측면은 차가운 금속소재의 매체를 캔버스나 밑색의 용도로 활용하여 모노톤의 색채와 경계긋기에 기인한 무채색의 선이 자아내는 소품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측면은 입체물로서 사각의 일정한 틀 안에 면과 선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경계면-색면-을 강화함으로써 시야의 각도에 따라 분할된 형태를 달리 관찰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우선 금속소재를 사용한 소품은 작가 이교준이 지닌 오랜 고집의 역사에 대한 단초를 시각적으로 단호하게 보여주는 상징이자, 신작에 대한 '명제' 내지는 '공리'로서 역할하고 있었다. 작가 이교준을 독해하는, 그를 관통하는 '공리'를 함의하면서도, 그가 말하고자 한 '인식에 대한 제물음'을 통할하는 시작점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보다 시각적으로 교란하듯 긴장을 일으키는 근작들, 즉 현재의 작가를 증명하는 나머지 두 종류의 작업들은 공리에 따라 문맥적으로 정당하였고 또한 더 나아갈 수 있는 자기반성성까지도 획득해내었다.
인식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의 표현의지는 엄정히 그어진 선을 통해 경계를 설정해내고 그로부터 '면'을 발생시킨다. 이는 그 자체로 개체로서 '부분'이자 '단위형성' 단계와 동일하다. 우리는 이차원이든 삼차원이든 부피를 가진 사물들을 인식할 때 점,선,면의 기초단위 구성을 인식하며 그로부터 전체의 형태를 수용한다. 인간의 정신이 만들어낸 모든 문화적 요소들-그 무엇이든지 간에-에 대한 진실에 접근하고자 혹은 그로부터 각 개체가 자기인식을 꾀하며 자신에 대해 제삼자로 서는 일, 예술은 그 매개이자 진실에 접근하는 행위로서 세상에 대한 인식 자체를 내재한다. 작가 이교준에게서 그의 작업은 사물 자체를 인식하기 위한-형태적 본질을 포함하여- 일종의 방법론이자 제안이며, 또한 그만의 표현과 의지 자체로 인 것으로 여겨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