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4일 월요일

PublicArt 12월 Review CHA, Jong-Rye


뿔과 주름, '이면'과의 소통을 여는 생명나무의 결  
<차종례 전>


글 ● 최윤정, 지리산프로젝트 큐레이터


특수한 사건 그리고 개별의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것들이 결합하여 일구어낸 거대한 휘몰이 속에는 원초적 생명에너지의 서사를 담은 듯한 형상들이 만판 펼쳐진다. 아래에서 솟아나는 형상이기도 하고 위에서 떨어져 파문을 만들어낸 듯한 파동의 형상이자 주름들이다. 비록 드러나 있지는 않되, 현상을 주조하고 있는 근원적인 힘, 에너지의 응축이 점으로부터 원뿔을 형성함으로서 외부로 도발할 수 있게끔 해온, 내면의 원천을 상상하도록 만드는 작품들이다. 합판을 덧대어 깎아내린 조형방법에 의거, 각 형상들은 평행으로 그어진 일정한 무늬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실재료의 물성에만 그치지 않고, 그것이 생성된 집요한 응축의 장면과 시간성의 단면으로 수렴된다. "우주는 농축된 에너지로 출발했고, 매 순간 스스로를 새롭게 재창조했다. 우주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을 변신하는 이 힘은 한계가 없어 보이며 실재에 뿌리박혀 있는 고갈되지 않는 다산성을 보여준다. 이 전체 그림을 관찰할 때 우리는 충만한 새로움을 창조하려는 존재의 집요함을 발견한다."(우주이야기, 토마스 베리 ․ 브라이언 스윔)        

작가는 자신에게 가장 익숙하고 따뜻한 질감의 재료를 가지고, '드러나기, 드러내기' 연작들을 구상하면서, 작품의 의도 및 내용에 대해 긴한 설명을 남기는 대신에 자신의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상상적 세계를 확대할 수 있는 매개가 되었으면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히고 있다. 작가는 특유의 뿔형태의 도상은 솟아나는 듯한 형상으로, 작업해온 온형상들을 통해 기존에 있지 않았던 이형적 세계 내지는 생명에 대한 소우주를 떠올려 볼 수 있도록 하면서, 유기적 입체 특유의 아우라를 만들어내었다. 각기의 방향으로 솟아있는 나무의 (원)뿔들은 무한정하게 확산되는 듯한 한정되지 않은, 생명이 지닌 내적 에너지의 분출과 파동을 극적으로 끌어올린다. 오랜 이야기 속 신묘한 기운을 지닌 '뿔'의 신화에 대한 서사가 스미는 듯한 표면들이며, 심지어 단일 유기체로서의 원핵세포가 분열하여 증식하는 생명력의 흐름이 느껴지는 장면들이다. 모나게 혹은 둥글게 분출한 도상의 반복적 재현과 나무결을 포함한 파동의 구성방식은 마치 충분히 무질서한 가운데에서도 나름의 질서가 자생적으로 구축되고, 전체로서 하나가 거대한 유기적 생명의 기운을 만들어내어-자연의 소리에서 빚어지는 화음, 운동으로 생성되는 고리와 띠 그리고 항구적 순환성으로 연동되는 등- 해석의 층위를 더욱 다양하게 접근해볼 수 있도록 하였다.

더불어 파동의 도상들 즉 형태의 파동이든 소리의 파동이든, 사물의 세계에서 두개 이상의 파동이 만날 때 빚어지는 모습은 현상적으로 다양한 형태들을 통해 규격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생명의 세계 안에서 이는 다만 어떤 만남으로 고착되거나 기억 속에 머무는 '상기'로서 감성적인 영향관계의 파문으로 일렁이는 바. 어쩌면 이 작품들은 특유의 도상과 형식들이 누군가와의 정서적인 파문 영향관계 속에서 '상기'의 방식으로 의미를 주조하고 재생산할 수 있게끔, 즉 '보는 자'가 의미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소통구를 배려한 셈이다.

과거 오랜 신화 속에서 짐승의 뿔은 신비로운 힘, 권위 그리고 질서를 떠올리게 하는 '생명나무'의 개념으로서, 고대 신라 금관조차도 사슴의 그것을 모방하여 고안된 것이라 하였다. 뿔은 여전히 유효할 만한 신화적 세계의 생명체 속에 원형적이고 우주적인 힘으로서 설정되어 있다.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이면'이란 그렇기에 현재하는-현상하는 총체로서의 차종례의 작품은 그것이 발생하게 한 내면구조- 작가 자신의 내적기운과 문맥 혹은 재료의 물성과 매개적 장비에 의거한 창작방식의 각 이유들을 포함하면서도 현실의 표면으로 드러나지는 않은 원초적인 에너지와 원형적 사고로서의 서사에 주목하게 하는, 합리적인 논구를 통해 설명될 수 없는 사물의 본성으로서 내적충동과 자연계의 영원하고 완전한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서사들에까지도 관조할 수 있도록 한다. 마치 조화로운 음들 사이의 수적인 비율체계를 고민함과 동시에 그 음들이 선사하는 '듣는 자'의 충동적 정서의 장면을 '이면'에 대한 이야기와 동일시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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