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일 일요일

전시서문 <지리산프로젝트2014:우주예술집>

<지리산프로젝트2014:우주예술집> 서문


생명과 기억의 시간 _ 풍현마을/산청 성심원
 
 
최윤정 지리산프로젝트 큐레이터
 
 
지난 328일 프로젝트 발대식에 이어 작가들을 맞이할 준비과정을 거쳐 5월 말부터 지리산프로젝트2014:우주예술집 참여 작가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작가들은 한달간 본인이 놓여있는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을 마치고, 발견한 주제를 통해 작업계획을 구상하여 기획단과 최종 논의를 거쳐 확정하고 진행하였다. 이 준비과정은 대단히 중요한데, 지리산둘레길 산청 구간 및 작업실이 위치한 한센인 요양시설 성심원이라는 장소성에 집중하면서 주제 및 소재를 발견해가는 지난한 과정을 포함하였고, 이 부분은 기존 레지던스 프로그램과는 차별화되는 부분으로 자연히 설정될 수 있었다. 즉 장소에 대한 이해 없이 막연한 내용으로 작업계획을 수립하여 현장에서 헤매게 되는 물리적정신적 소모를 최소화하면서도 지리산프로젝트의 목적과 지향점을 몸소 체득하는 시간을 제공하고자 한 것이었다. 물론 그조차도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다.
지리산프로젝트에 접근하는 큐레이터로서의 입장도 참여작가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이곳에 몸담아 작가들과 활동하는 시기, 왜 지리산프로젝트가 이 시기에 유효하며, 내 일상과는 낯선 이곳에서 과연 스스로 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제 명분을 찾아가는 과정이 긴하였고, 명분이란 이해와 실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세워진다고 보는 입장이었기에, 우선은 인지이고 그 다음은 신념이며 실천신념의 확고함 속에서 작동하는 소명적 과정을 스스로 선택하였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물론 이곳의 삶을 알면 알아갈수록, 지리산의 일부라도 점차 이해하게 될수록 실상 두려움은 커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지리산이 품고 있는 자체 생명력과 거대 담론들, 성심원을 에워싼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마주하며 그 흔적이나마 쥐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도의 긴장감에서 비롯된 두려움으로 볼 수 있다. ‘약속이 의에 가깝다면 그 말을 실천할 수 있고, 공손함이 예에 가깝다면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는 태도적 측면에서 다만 할 수 있는 바를 실천하고자 애쓰는 것만이 길지 않은 시간 이곳을 마주하는 기획단의 진정성이었다고 생각한다.
보통 지리산을 두고 빨치산 아들과 토벌대 아들을 둔 어머니에 비유하고는 한다. 단순히 이곳이 정치적 가치판단의 장이나 은둔거사의 활동지 정도로 읽힐 수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몇 개의 도시에 걸쳐 있으며, 사람들의 삶을 품어내는 어머니의 산’, 그리하여 삶이 그러하다면서도 다시금 반성적이고 실천적인 영감을 안겨주는 곳이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옛길, 지리산둘레길 조차도 단순한 트랙킹이 아닌 성찰, 삶에 대한 존중을 담아내는 철학적 지표를 담고 있다. 그렇기에 현실에서 동떨어진 자연 혹은 명상적 삶이기 보다 삶을 마주하라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내내 떠오르는 명제였다. 이상향을 쫓아 지리산에 들어온 남명 조식선생조차도 폭포의 흐르는 물을 마주하면서,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서 관조의 대상으로서 폭포가 아닌, 인간세상으로 나아가는 물의 흐름을 생각하며 도리어 현실로의 시선을 거둘 수 없음을 이내 깨달은 곳도 바로 지리산이 아니던가.
 


산청자락 풍현마을, 한센인들의 마을_성심원에서의 활동
 
생명은 태초 원핵세포에서부터 겪어왔던 과거의 기억들이 분류되어 그 기억들을 후대에 물리는, 자기조직을 위한 생존 기억지도를 지니고 있다. 이 기억지도는 생존을 위하는 결과로서 구성단위와 요소에 작용하여 그 본성상 생명의 실체에 직접 관여한다고 볼 수 있다. 유기체가 지닌 수 만년의 역사를 포함하며 모든 존재들이 개별적으로 가지고 있는 힘을 내부로 결속할 수 있도록 하는 즉 자기 명료화의 기계적인 근거이기도 하다. 이러한 생명들이 자기 명료화의 근거를 배경으로 생을 영속하기 위한 활동을 게시함은 자신 내부에서만이 아닌 타생명과의 관계하는 바에서 연속성을 갖는다. 상호보완을 숙명으로 하는 에너지의 교환이며, 그 에너지가 흐르는 목적성은 결국은 관계하는 개체 간 추구하는 유의미적 공동선에 닿아있다. 인간의 마을공동체는 어떠한가. 그것은 역사를 공유하며 또한 그로부터 마을 고유의 문화적 태도를 결정짓는다. 마을의 태생과 더불어 그와 비롯된 온갖 사건들을 함께 기억하고 그로부터 어떠한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었는지가 이 마을공동체를 구성하는 지표로서 중요한 관건일 수 있다.
오랜 기억감정을 통해서 생에 대한 본능과 살고자 하는 의지,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위해 한센인들이 일구어온 이곳 산청 풍현마을 역시 같은 선상에서 공동체의 삶을 실현시킨 곳이다. 여기서 2014년 지리산프로젝트가 왜 산청 이곳 성심원에서 펼쳐져야 하는가 혹은 펼쳐질 수 있었는가에 대한 명분이 자리한다. ‘삶을 마주하라는 지표의 출발점. 풍현마을은 단순히 한센병을 앓고 있지 않은 사람들과의 유리된 장소를 찾아 구축된 그저 기능적 장소일 뿐인 곳이 아니며, 갈등과 편견의 역사에 맞서야 했던 무수한 사건들이 남긴 기억감정의 장이다. 거기에는 마을 고유의 기억지도를 구성하면서 동시에 평범한 삶을 살고자 하였던 그들의 바람과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현재의 삶이 펼쳐지는 문맥이 서려있다.
 
한센인 어르신의 수가 줄어들고, 또한 과거 시설의 노후화에 따른 새로운 시설 신축 등이 이뤄지면서 마을 곳곳에는 오랜 기간 동안 온기가 스미지 않았던 공간들이 창고화되어 일부 남아있었다. 작업실로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주제를 발견하면서 사색을 꾀하기에는 적절하였으며, 한센인들의 일상적인 삶이 묻어있던 장소이기에 의미가 컸다. 기획단은 이러한 유휴공간을 예술의 기운 속에서 소생하는 쓰임으로 고민을 지속하였다. 또한 문화소외지인 한 마을에 들어와 예술을 하겠다며 갑작스레 공간을 사용하고 서로 간 낯선 지점에서 어떤 감정의 교환이 일어날 수 있는지 상상하는 것은 대단히 가슴이 설레는 일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문화적 충돌일 수도 있고 삶을 이해하는 각자의 시선을 존중받기 위한 소통을 위한 창구를 구축하는 지점이기도 하였다. 성심원에서 흔쾌히 사용을 허락한 공간은 총 3개의 건물로, 남성독신사인 프란치스꼬의 집(2, 12개의 방), 과거 가정사로 쓰였던 아녜스의 집’(4가구, 8개의 방, 4개의 공용공간) 그리고 대강당(전시관)이다. 참여작가들은 5월부터 10월 초까지 약 5개월간의 창작활동을 진행하였고 이후 전시가 종료된 시점에도 기존 작업을 심화시키기 위한 전단계로서, 지리산둘레길에 대한 예술창작 실천 방향을 두고 여전히 일부 작가들이 남아 창작을 고민하거나, 새로운 작가가 입주하여 지리산프로젝트를 이해하기 위한 동계활동을 또한 이어나가고 있다.
 
이번 지리산프로젝트 산청 성심원 파트의 전시 우주예술시론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업성향은 크게 세 방향으로 나뉘었다. 1.태초의 자연으로서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2. 인류학적 모멘트로 마을사람들의 구술을 통해 인간에 대한 존중과 성찰을 자아내기도 하고 3.낯선 이방인으로서 관계를 맺는 방법과 태도를 담은 작업 등이 그것이다. 1은 잊고 지냈던, 그리하여 자연의 생명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경외감과 도시와는 다른 시간을 갖는 풍경들에 대한 소고였고, 2.인간본연에 대한 성찰적 작업은 특히나 도시문명에서 살아왔던 참여자들에게 일반 시골도 아닌 한센인 마을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관심을 또한 그들의 거리설정의 온 기준을 한센인들의 역사와 사건, 성심원의 역사등에 맞추는 움직임이었고 3은 낯선 곳에서의 독백과도 같이 프로젝트 참여자로서 창작을 위한 의미를 주조하기 보다는 조심스레 진술, 기록, 행위 등을 통해 마을과 예술가 간의 관계맺기를 시도해 보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어머니로서의 자연 등 지리산이 게워낸 흔적들을 토대로 발견된 제비를 주제로 설치작품을 구상한 이범용, 자본사회에 걸맞지 않는 예술가의 삶을 비애적으로 표출하는 매개를 통해 성찰의 길로서 지리산둘레길을 유람하는 퍼포먼스 영상을 담은 김대홍, 그리고 거대자연과 삶이 펼쳐진 곳에서의 강렬한 소음들 그 속에서 생명의 위태로운 떨림을 간직한 작은 사물들에 대한 감성을 포착한 이브 에티엔느 소놀레. 그리고 지리산둘레길로 나아가 방문객들이 작가가 전하는 안부를 우연히 발견할 수 있도록 입체글씨를 새긴 2창수 작가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그리고 한센인들의 인터뷰 기록 속에서 병으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부정되어 온, 자신에 대한 생의 강한 열망을 시사하듯 유독 1인칭의 표현들을 사용해왔던 구술자료를 토대로 그들의 삶을 기념비적 기록물로서 거대한 벽에 빛의 퍼포먼스로 재기록한 정용국, 성심원 한센인들의 삶과 성심원 프란치스칸 구도자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다큐영화로의 구상을 꾀한 인진미는 한센인 삶을 재조명하고자 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의 산책, 관계맺기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한 소규모 프로젝트는 이대범을 중심으로 한 라운드어바웃(하정현, 안동일, 노승표, 정덕현, 이채원, 정윤혜)을 통해 진행되었다. 그들은 성심원에서 흐르는 시간과 특정 장소, 특정 사물들을 발견해내고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일정 주어진 미션에 따라 기록하는 작업들을 선보였다. 또한 마무리를 하면서 남긴 메세지 여전히 낯설다는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충분히 관계적 의미를 행할 수 없었다는 의미를 담아내고 있다. 한 마을을 다루는 창작이라는 것이 작가에게는 자기성찰적으로 다가옴을 시사하는 부분이기에 여운이 크게 남는 부분이다. 또한 구헌주는 낯선 장소이지만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표현함으로써 서로의 감정 교환을 꾀하는 두 편의 그래피티 작업을 선보였다. 마임이스트 이정훈은 지리산의 근현대사와 구도자/순교자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구상하고 시나리오 구상 및 몸짓을 직접 시연하기도 하였다.
이와 더불어 입주작가 뿐만 아니라, 초대작가들을 두어 지리산프로젝트 주제에 대한 수식적 범위를 기획전시를 통해 보다 넓히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세 명의 작가가 전시에 함께 참여하였는데, 지리산의 역사와 신화 그리고 인간의 강렬한 핏줄기를 연상하게 하는 지리산의 맥을 담은 풍경을 다룬 서용선, 인문학적 삶의 기운이 깃든 지리산의 풍광을 그려낸 이호신, 태초 세상의 탄생을 주제로 하여 우주와 삶의 신비를 다룬 모하 안 등 이 세 작가의 작업은 지리산을 통할하는 삶과 역사, 대자연의 빛깔과 근원을 중추적으로 잡아주는 역할을 하였다.
 



 성심원 참여작가들과의 연속된 대화 속에서 이곳 지리산 산청 한센인마을을 마주하면서 개별이 겪은 성찰적인 요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계속된 환경적 변화와 적응문제에서 다행히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극심한 변화지점에 서있을 때 라는 인간이 나 자체를 어떻게 객관화하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해야한다고 강제하는 일인데, 그것은 스스로 괴롭힘을 선택하고 해법을 찾으며 변화적 위치에 직면한 상황에 대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명분을 스스로들 찾고자하는 과정이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낯선 환경에 처하고 문제적 상황에 직면했을 때 제 위치를 제대로 잡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비롯된, 언제나 그랬듯 모든 일에 대한 선행작업으로서 작가들에게는 적지 않은 정신적 몸살을 선사하지 않았을까 판단해본다. 우리가 왜, 여기서, 지금 그것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는 비단 기획단 뿐만 아니라 참여작가들에게도 동일한 과정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프로젝트의 가시적인 성패보다도 기획단은 참여작가(입주자)에 대해 자발적인 창작이 선사하는, 긍정적인 고통을 끌어낼 수 있는 방식을 함께 고민하고자 하였고, 실현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조력하는 대등한 논의자로의 위치를 고수하고자 애썼다. 성심원에서 창작의 분위기 및 작가들 간의 자연스러운 협업은 궁합상으로도 적절히 조화로운 편이었다. 모두들 기획단이 제시하는 담론의 수준이나 그들이 발견한 주제에 대해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다. 더불어 대도시에 비하여 문화예술소외지로서 작품을 마주할 마을주민들에게 창작의 의미, 창작의 고통 및 과정,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의 잉여가 아닌 인간본연의 생명활동으로서 창작을 수행하는, 창작 자체에 대한 값진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는 태도적 무장이 모두에게 중요했던 한 해였다. 작가 개별이 연속적으로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부분은 추후 지리산프로젝트의 참여자로서 함께 함으로써, 지리산프로젝트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닌 긴 호흡으로서 창작의 진정성까지 함께 구축해나가는 단단한 우주예술집으로서 비젼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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