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8일 화요일

행간, 정서, 표면의 조도 : 정용국의 ‘첫 번째 사람’

행간, 정서, 표면의 조도 : 정용국의 첫 번째 사람
(상업화랑_을지로143/ 기간 8.23-9.21)

최윤정 독립큐레이터/미술비평



첫 번째 사람의 각 단계들

어두운 공간, 벽으로부터 스미어 나오듯 글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글자들은 서서히 선명해지고 최절정에 이른 한 순간에, 하얀 빛이 온 공간을 채우면서 허망하게 모든 글자는 사라져버린다. 그가 한센인의 삶을 연구하며 작업화 한, ‘첫 번째 사람의 첫 작업이었다. ‘첫 번째 사람1인칭 ‘The first person’을 직역한 것으로, 주체로 끌어올리고자 한 행간의 의미를 부여한 제목이었다. 이 작업은 2014지리산프로젝트의 주요장소였던 산청 성심원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적 서사 속에서 사회적으로 존재 자체가 말살되어야 했던 한센인들의 삶에 주목한 결과였다. 그는 한센인의 역사를 공부하는 가운데, 그들의 구술자료에서 유독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의 인칭 표현을 지나치지 않았고, 애달프고도 강력한 그들 스스로의 존재증명일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의 인칭이 유독 강조된 문장들을 발췌하여 편집하기에 이르렀다. 그 문장들은 높이 7미터에 너비 8미터의 벽면에 세로글씨로 빼곡히 채워졌으며, 이는 그들이 살아왔던 삶을 공감해가는 과정을 그 스스로 직접 몸을 들여 수행적으로 풀어낸, 그 자신의 윤리와 태도를 구축하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자신이 주목한 구술의 행간을 벽면에 기록하면서 작품에 더해진 빛의 연출은 시대적 억압과 편견을 시각화하는 것이자 작가의 총체적인 해석을 호흡으로 리듬으로 직관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가 된다.

첫 번째 사람의 두 번째 작업은 2016스코어전’(대구미술관)에서 소개되었다. 70년대 여성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동일방직 인천공장. 사측의 이익을 대변하는 남성중심 조직으로 구성된 어용노조에 저항하여 한국 최초로 여성이 중심이 된 노조를 설립한 사실을 배경으로, 당시 노조활동에 참여했던 한 여성노동자의 구술을 다룬 작업이었다. 이것은 노조탄압이라는 권력의 폭정과 더불어 노동현장에서의 여성노동자를 인지하게 된 사건이자, ‘현장에 즉한 여성운동에 대해 관심을 촉발시킨, 한국 현대사 산업화 과정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장면이다. 정부와 회사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비인권적인 탄압으로 일관하였고, 여성노조원을 빨갱이와 동일시하는 언론의 여론몰이가 자행되는 와중에도 저항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그들은 근대화·산업화의 신기루 속에서 동등한 노동조건을 갖지 못했던 그저 평범한여성들이다. 작가는 그들의 저항을 특별한 사람들의 특이한 사건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은 이 땅을 살아낸 누이이자 이웃이고 동료이다. 작가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해 산업화의 신화가 자행했던 탄압들을, 한 여성노동자의 구술을 통해 벽면에 빼곡히 채워 넣었다. 또한 사회적 구조가 평범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통제하는지 또한 그들을 빨갱이로 몰았던 시대의 폭력적 시선을 빛으로 연출하여 두 번째 작업을 완성하였다.

아마도 이즈음부터 구술작업에 대한 그의 실험과 연구는 더욱 본격화되어 갔다. 그는 2016자갈마당기억변신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눈 먼 사랑이라는 작업을 발표하였다. 이 작업은 성매매경험당사자의 구술이 지닌 행간을 읽어냄으로써 그들이 처한 환경적 요인들(갇혀있거나 통제당하는), 스스로 자기 몸의 주체가 될 수 없었던 상황들에서 유추해가는 과정이었다. 구술은 역사적인 사료로서 기록작업의 일환으로 채록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성매매경험당사자 여성들의 구술은 특정사건이나 시간, 공간 등 구체적인 용어로 특정되지 않는 편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그들의 삶, 상황적인 조건들이었다. 그것은 집결지 100년의 시간을 상징하는 듯한 목소리와도 같았다. 그들의 구술작업 속에서 작가는 그나마 구체적으로 보였던 단어들조차 지워나갔고, 그렇게 편집된 문장들을 가지고 소리내어 낭독하도록 하였다. 나 역시도 직접 소리내어 읽어보라는 작가의 제안에 모호하게 구성된 문장들을 읽다가, 이상한 감정에 부딪히는 경험을 하였다. 그것은 구체적인 단어를 모두 삭제한, 대명사나 조사, 말을 흐리는 어간 등으로 이뤄진 문장이었으되, 들은 적도 아직 읽어본 적도 없는 그들의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눈앞에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그 구술작업을 진행하였던 한 연구자는 그 문장들을 소리내어 읽다가 그 이야기의 주인공까지 가늠하며, 복잡한 심경을 표현하였다. 구체적인 지칭으로서 명사, 감정의 수식으로서의 형용사, 그리고 행위로서의 동사 등 문장을 이루는 핵심요소들이 빠져있는 그가 재구조화한 문장들이 그토록 구체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들, 행간을 잇는 요소들로만 이어진 듯한 그 문장들이 그토록 기대하지도 못했던 정서를 촉발시키는 그 원인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다만 그것을 소리내어 읽는 행위 가운데 삶의 비애감이 느껴졌고, 웅얼거리는 소리는 리듬이 되어 이 비애감의 진폭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그것은 그들의 감정이 깃든 언어습관, 어투를 보여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2018첫 번째 사람

작가는 탄핵정국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태극기 집회를 이루는 극우세력의 첨병이 된 노인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현대사의 모든 장면들과 교차하면서 삶을 끌어왔을 평범한 노인들이다. 그렇기에 성장과 안보를 지지한다는 것이 그들의 삶에서는 더욱 맥락적일 수 있다. 작가가 구술작업으로 주목했던 것은 최현숙의 할배의 탄생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두 노인은 특별할 것 없는, 가난하고도 평범하게 살아온 70대 남성노인이며, 특정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기 보다는 노인세대에 대한 통시적 시선으로 접근한 구술생애사 책이다.
정용국 작가는 세 번째 첫 번째 사람작업을 위해 직접 저자 최현숙을 찾아가 인터뷰하면서 구술작업에 대한 상황적 맥락과 실제 남성노인의 육성을 담은 녹취자료들을 구하였다. 마찬가지로 곱씹으면서 그들의 삶을 반복하여 읽고 듣는 방식으로 이번 개인전의 주제들을 맥락화해 갔다. 그 중 그가 다룬 남성노인은 평생 건설현장에서 목수로 일했던 노인이다. “결혼도 못했고, 돈도 없고, 평생 노가다나 했고, 그런 건 창피한 거잖아요. 누구도 제대로 된 사람으로 안보지요...” 이 노인은 남성적임의 가치관 속에서 특유의 왜소한 체구로 인해 자격지심을 간직하고 살아온 삶을 증언한다. 남자답고 싶어 군대에 자원했고, 베트남 전쟁에까지 몸소 참전한다. 그의 삶은 전쟁, 유신독재 등 한국 사회의 모든 굴곡점과 궤를 나란히 하며 펼쳐진다. 작가는 노인의 구술을 총 15,480자로 편집하였고, 이를 벽면에 새겼다. 실수로 양잿물을 마신 어머니를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였던 불행했던 유년시절부터 몸이 왜소하여 여자도 없고 남성적이지 못했다는 자격지심이 작동해온 그의 삶들이 벽면을 따라 이어진다. 그의 삶 중에서 그가 가장 긍정적으로 반응하였던 목수로서의 삶은 가장 마지막 동선에 배치된다. 노인의 생애사는 한국 현대사의 주요장면들의 서사들을 잇고 있다. 나즈막하게 읊조리는 노인의 육성이 공간에 더해지고, 한국현대사의 굴곡을 상징하듯 입구에서부터 미러지에 새겨진 태극기 문양이 실체 없는 빛을 반사하며 잔물결을 만들어낸다. 이번 작업은 특히나 빛의 움직임이 연출하는 장면들을 더욱 극적으로 구성하였다. 암흑 속에서 빛점들이 유영한다. 문득문득 흔적처럼 유령처럼 비춰지는 글씨들, 이윽고 벽면에 새겨진 글씨들이 선명하게 보일 무렵, 붉은 빛이 은연중 공간을 잠식하고 만다. 그리고는 이내 서서히 밝아지는 하얀 빛을 통해 공간은 마치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던 양, 그저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공간으로 전이되어 있다. 빛의 움직임들은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노인의 육성과 더불어 계속해서 반복되면서 직접적인 감각으로 살에 스며드는 듯한, 한편의 분위기로 형상화된 서사로 구축된다

형광물감으로 새겨진 글씨를 비추는 푸른조명은 스며들고 배어나오는 글자의 움직임을 만들고, ‘붉은조명은 작가에게 사회적 편견 내지 경고, 한국현대사 속에서 행해진 무차별적인 억압기제들 그리고 저항의 시선 등을 담은 다층적인 해석구도를 포함하는 빛이다. 또한 하얀 조명은 일종의 소격효과로서 몰입을 차단하고 다시금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일상으로 되돌리는, 일종의 공감하지 못한 사유이자 존재하지 않음(무화)을 상징한다. 하지만 결국 하얀 빛은 매섭게 차단하여 빛의 서사적 흐름을 끊되, 그로인해 더욱 여운을 강조하는 역설의 빛이 되고만다.




작가는 자신의 구술작업을 느낌의 윤리라고 표현한다. 실제 그가 접한 구술작업의 대상들은 한국 근현대사 안에서 삶을 이어온 사람들이자, 주류 사회의 담론과 편견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느낌의 윤리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존재들이 읊조리는 목소리에 주목하였고, 그들의 삶을 연구와 수행적인 과정들을 통해서 다층적으로 이해해가는 실천과정이었다. 그렇기에 느낌의 윤리라는 표현은 예술가가 역사에 대한 성찰 및 타인의 삶을 주제로 한 내용을 창작의 방법론으로 다루는 온 태도를 지칭하는 표현인 것으로 나는 그렇게 해석하고 있다. 평소 그가 화가로서 지속적으로 해왔던 회화적 실험은 대체로 명증적이었다. 재료자체에 골몰한 것이 작업의 주제가 되거나, 형상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깊게 침잠하거나, 반복적인 요소들이 구성하는 덩어리 자체에 대한 관심을 심화시켜가는 것으로서, 회화 존재의 알레고리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각 요소에 접근해가는 예민함, 집중하여 요소들을 잇고 구성하나 드러나지 않은 메타포 등을 시각화하고자 표현의 방법론을 찾아온 탐색과정은 그의 회화를 특징화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2014년 이래로 구술을 특정화한 그의 작업들에서 단어와 문장을 분석하고 그 특유의 시선을 집중과 시선을 통해 맥락화하여 행간을 구성하는 과정들이 그의 회화작업과 무척이나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외부로부터 그에게 다가온 주제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느낌의 윤리란 예술가로서 그간 매체에 접근해온 그의 탐구적 태도 근간에 놓여있던, 늘 있어왔던 것이다. 그것은 작가 정용국을 향한 접속어였다

2018년 7월 28일 토요일

장소를 증명해낸다는 것, 상황으로의 전개

장소를 증명해낸다는 것, 상황으로의 전개

<두려운 밤 시간에 너는 나를> 전리해展 / JEONRIHAE / 全梨晐 /2018.7.10~7.28 / 공간극

글■ 최윤정 독립큐레이터








작가와 인연을 맺었던 것은 2016년 진행했던 자갈마당_기억 변신프로젝트를 통해서였다. 이는 아파트 건립에 따른 재개발 여론에 힘입어 비인도적인 행태들이나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가 성찰되지 않고 있음을 직시한 것으로, 그저 환영처럼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자갈마당'(대구 소재)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는 취지로 기획된 프로젝트(대구 여성인권센터 주관)이다. 
자갈마당이 형성되었던 일제 강점기 시기, 이곳의 이름은 '야에가키초(팔중원정)였다. 이는 일본 [수진전]에 실린 신화 속에 나오는 지명으로, 천조 대신(일본 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신)에게 12명의 왕비가 있었는데, 초고대왕이 신궁에 쳐들어가서 여왕 히미코를 굴복시키고 천조 대신의 왕비 8명을 후비로 삼아 그들을 가둔 곳이 이즈모의 '야에가키'라는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해방 이후 이곳은 '도원동'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도원동은 과거 복사꽃이 만발했던 동네 혹은 성매매 여성을 '도화'라 일컬어 즉 '몸 파는 여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가리킨다고도 한다. 그러나 속칭 '자갈마당'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과거 대구천이 흐르는 저습지여서 그곳을 메우느라 자갈을 깔았던 것에서 유래한다. 또한, 포주들이 의도적으로 자갈을 깔아놓아 유녀들의 이탈을 막고자 자갈을 깔았다고도 전해진다. 유곽을 벗어나기 위해 밤에 몰래 도망치려 해도 자갈 밟는 소리에 의해 이내 다시 들킬 수밖에 없었다는 비극적 이야기다. 

작가가 자갈마당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기 시작했던 것은 아마도 2015년 대구예술발전소에 입주하면서부터였다. 대구예술발전소에 머물면서 주변 지역을 리서치하였다. 인근에는 설계도만 있으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북성로 공구상가가 분포되어 있고, 낮에는 주차장이지만 밤이 되면 불고기와 우동을 파는 가게로 변신하는 대형포장마차가 또한 가깝다. 과거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의 근대 건축물 원형을 관찰할 수 있는 옛 건물들이 상존한다. 그리고 일본인들의 신사가 있었던 달성공원이 또한 인근에 있는데, 이곳은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동물원은 물론이거니와 노쇠한 말이 꽃마차를 끄는, 뭐랄까 다소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드는 곳이기도 하다. 대구예술발전소의 뒤편에는 고종이 지나갔다는 길과 함께 오랜 수창초등학교가 있고, 그 앞 편에는 초등학교에서 200여 미터조차 떨어져 있지는 않은 거리에 성매매 집결지 '자갈마당'이 있다. 이 일대가 신사(공원), 학교, 유곽 등으로 이어지는 과거 일본 거류민 지역을 위한 계획도시로서의 보편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주마등처럼 변이되는 도시/개발 속에서 불연속적인 단층들을 만들어내면서 허물어질 듯 낡은 시간을 품고 있는 주변부로 시선을 향해 왔던 작가 전리해에게, 이곳은 강렬한 호기심을 일으키는 장소였을 것이고, 이에 그가 그냥 지나쳤을 리는 만무했을 것이다. 이윽고 그는 2015년 「태연한 기울기」를 통해 이 장소들로부터 사유한 시선들을 전달하였고, 자갈마당에 대한 첫 작업을 선보이기에 이르렀다. 「언니: 헛도는 삶」(2015) 와 「유리방인터뷰」(2015)가 대표적인데, 「언니:헛도는 삶」은 장소에 접근하기 힘듦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얼마나 그 주변을 배회했을지 짐작케 하는 자갈마당에 대한 이미지들이, 성행 중인 자갈마당의 밤 시간을 기록한다. 지난 100년간 도시 한 복판에 존재하나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의 이중적 잣대와 욕망의 구조 속에서 경계를 이뤄온, 유리된 섬이다, 이는 영상에서 때로는 90도로 기울어진 각도로 전이되는 장면으로 작가의 시선을 추측하게 한다. 영상 이미지와 더불어 성매매 경험당사자 여성의 한탄을 담은 듯한 판소리가 이어진다. "백 년의 역사라오, 욕이란 욕은 다 먹고... 그래도 살아남아 이곳이 지켜지는 데는 이유가 있소" 판소리의 내용은 한 성매매 당사자 여성의 목소리로 자신의 매춘을 사회의 필요악이라 하면서도, "그래, 나 창녀다, 다리 벌려 몸을 파는 년이다" 화를 내기도 하고, 종국에는 자포자기하듯 "악쓰고 몸부림쳐도...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읊조리기도 한다. 또한, 소설가와의 협업 작업인 「유리방인터뷰」(2015)는 한 기자가 집결지 폐쇄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는 한 성매매 경험당사자 여성을 인터뷰하는 설정이다. 여성은 어쩌면 성매매에 대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시각으로 그네들의 삶을 이미 편견적으로 규정해놓았을지도 모르는 청자(기자)에게, 성매매는 스스로의 선택이자 노동일 뿐, 다른 노동자들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항변한다. 성매매방지특별법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사람들의 위선을 탓하기도 하고 점점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신세 한탄으로 이어지다가 이내 급작스러운 질문을 던진다. "다 들어보니까 오빠야 생각은 어떤데?" (이 작업은 전리해의 협업연작으로 1화는 성매매 당사자 여성의 이야기, 2화는 성구매자의 상황을 다룬, 2016년 발표한 「숏타임콜렉터」로 이어지기도 한다.) 위 두 작업은 적정의 시간을 편성하여 몰입을 유도하는 서사작업이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한편 성매매 경험당사자 여성을 피해자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경우, 위 두 작업에 대한 불편함이 더 커질지도 모른다. 성매매를 성노동으로 바꿔 부르거나 합법화의 단계에서 노동으로 인정을 해야 할 것인지. 왜냐하면 각 작업에 등장하는 두 성매매 경험당사자 여성들이 표면적으로 그리 주장하고 있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비단 성매매를 비롯하여 사회적인 이슈와 연관된 주제는 언제나 감상자로 하여금 윤리적인 고민에 봉착하게 만든다. 그러나 한편 그것들이 직접적인 서사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봐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오히려 한쪽으로 상황을 몰아가는 '표면화' 작업에 의거, 항변/화냄/합리화/자포자기/비꼼으로 연잇는, 두 화자의 일관되지 않은 감정선이 그것이다. 마치 그 표면 아래, '일관되지 않은'의 진실은 무엇일지 떠올리게 하는 것, 어쩌면 작가는 이 '상황'에 닿게끔 하는 효과적인 장치로서 이 작업을 의도했던 것이 아닐까.

2016년과 2017년은 그가 성매매 당사자 여성들을 직접 마주하기도 하고, 업소의 내부를 기록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주어졌던 시간이었다. 그가 2년간 기록해온 「자갈마당」(2016-2017)은 일상이 아닌 듯이 아득하고 아련한 사연을 떠올리게 하는 구도나, 스틸라이프로서 이미지로 구현되어 있다. 오랜 건축물의 구조, 특유의 조명으로 인해 주변부와의 경계가 오묘한 밤 풍경, 꽃무늬 벽지, 침대, 몇 개의 슬리퍼, 가운 및 각종 물건이 있다. 물결치듯 똬리 튼 커튼, 긴 복도를 따라 마주 보는 방문이 즐비하다. 쌓여있는 탄산음료 위에 클래식한 여인의 나부는 여신처럼 신비로울 지경이다. 각각의 사진들은 자갈마당의 민낯에 대해 구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었던, 성매매 당사자 여성을 구출하는 긴박한 현장이거나 의료 등 구호 활동의 현장에서 비롯된,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는 경험들을 아우르는 현장에서 촬영된 것들이다. 모호한 심경을 자아내는 장소에 대한 특유의 정적인 표현은 그의 작업 속에서 일관되게 관찰되는 부분이다. 급속한 변화 속에서 사라짐을 예측할 수 있는 장소, 장소가 품고 있는 흔적/단상들은 그만의 스틸라이프로 정지된 시간 속에서 영원히 존재하는 듯 보인다. 마치 비현실적 프레임을 구축하여 감응을 편중되게 배치하려는 의도처럼. 그것은 잔잔하면서도 극적이고 안온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하다. 이러한 양가적인 정서로 말미암아 미묘한 생각이 잊히지 않는다. 그것들은 장소를 증명해낸다. 이번 개인전 「두려운 밤 시간에 너는 나를」(2018)을 통해 이은 그의 자갈마당을 에워싼 3년간의 작업은 연구자나 활동가에 의해서만 다뤄질 법한 사회적 이슈를 작가 자신의 고유한 창작 영역으로 이끌어온 과정들을 보여주고 있다. 특정장소 및 장면을 포착한 사진들을 통해 특유의 표현을 가늠하게 하였음은 물론, 대주제(자갈마당) 안에서 소주제(성매매경험당사자)로 접근하는 맥락은 서사로 잇는 협업작업을 통해 에둘러 현시하면서도 감상자를 몰입시키면서 사유지점들을 끄집어낸다. 복잡한 사유지점을 건드리는 서사와 장소를 증명해내는 이미지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전시의 호흡을 만들어내었다. 

 작가는 3년여의 시간 동안 꾸준히 장소를 리서치하며 스스로에게 다가온 혹은 습윤 되었음 직한 내용을 수집해왔다. 무엇보다도 그 장소에 대한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면서 현재의 추이까지 관심을 잇고 있으며, 그가 그렇게 힘주어 움직였던 순간들이 나에게는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 또한, 그의 창작과정 속에서 언제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장소를 에워싸고 특정한 '상황'에 마주하고, 그로부터 주제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엿볼 수 있는 그의 태도였다. 습관적으로 산책을 통해 우연한 마주침을 꾀하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장면들을 추출해내었다. 또한, 그의 관심이 묻어있는 장소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고, 발견한 장소에 대해 리서치하는 과정은 그의 강단과 호기심 가득한 성향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득 그 과정에서 어떤 의문이 생기면 그 의문을 해결할 때까지 파고드는 집요함으로 상황에 몰입하는 것이다. 보자면 '상황'은 대면을 통해 사건이 벌어지는 현재성에 맞닿아 있는 것이고, 그에게 '산책'은 관ㄷ찰자로서 사건/타자와의 거리를 조율하게 하는 호흡을 내어주고 있다. 그간 그가 다뤄온 주변부의 이야기들은 '산책'을 통해 시선의 머무름을 견지한 것이고, 지난 시간의 꾸준한 머무름으로 '자갈마당'이라는 장소에 개입하는 그의 실천은 '상황'과 창작으로 몰입한 결과로서 이번 전시를 통해 그 진정성을 가늠해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그저 환영과도 같았던 심란하고 혼란하게 자리한 그 무엇이, 감각에 새겨질 때까지 자신을 내몰 듯이. 그리하여 흔적으로나마 자리했던 환영은 작가 전리해에 의해 '발견된 흔적'으로 구체화하고, 이내 상황 속에 놓여 현재를,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할 힘을 얻었다. 


2018년 6월 10일 일요일

아름다운 폭로 : 여성주의미술과 행동주의

아름다운 폭로 : 여성주의미술과 행동주의
 
최윤정독립큐레이터/미술비평
 
-미투가 견인한 그 무엇-
미투운동(#ME TOO)은 권력에 의한 성폭력에 접근한다.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 공감과 연대를 확장하는, 21세기 환경에 적합한 저항방식이자 투쟁의 한 방법으로 자리잡았다. 전지구적 연대는 물론 상호작용을 통해 그 폭발력을 현재도 계속 입증하는 중이다. 여성과 남성, 그리고 강자와 약자,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 그리고 배제에 맞서 사회 내 만연한 강간문화를 뿌리뽑자는 이 운동은 기존의 질서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되는,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사회적 관계에 있어 철저히 합리적이고 평등적인 구도를 재편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력히 투척하고 있다. 결국은 안전하게 일상을 살아가고 안전하고 평등하게 일하기를 원하는, 힘과 권력에 의한 성범죄를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다는 마땅한 주장이므로 그 명분에 이견을 내기는 쉽지 않다.
 
예술계에서도 미투운동은 의미있는 양상을 띄고 있다. 특히나 천재성이나 예술성이 그 방패가 될 수 없다는 인식 역시도 이번 미투운동을 통해 모두가 학습한 결과이다. 그간 좁은 예술계 안에서 남성권력/남성성이 중심이 된 카르텔 속에서 힘없는 개인들이란 여성 및 소수자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제 그들이 차츰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고, 그 목소리에 다시 한번 용기를 내는 사람들이 답하고 발언하는 연쇄과정 속에서 변화의 희망도 보았다. 물론 이에 대처하는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해서는 아직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이제 시작이고, 우리는 어찌되었든 걸음을 떼었다는 인식적인 공감이 꾸준한 연대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관찰된다. 심지어 SNS를 통해 빠르게 접속되고 유포되고 흔적으로 기록되는 탓에, 시간이 좀 지나면 잊혀질 만한 단순한문제로 여길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사회적 처벌요구로 이어지는 양상은 가히 미투운동이 혁명의 수순과 다르지 않음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미투는 일상생활 전반에서 어떤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 그 변화에 대한 육중한 책임감을 지우고 있는 것이다. 2년전 트위터상에서 펼쳐졌던 예술계__성폭력에 비해 미투운동은 확실히 보다 확장성이 높고, 정치사회적인 이슈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어쩌면 미투운동을 통해 모두에게 육중한 무게로 다가온 생각들이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작업으로서 동시대 창작 주제로 다뤄질 수 있음을 대놓고 예측해보기도 한다.
 
-여성주의미술의 행동주의 계보학-
여성주의미술의 행동주의로서 게릴라걸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행사에 와서 우리 주장에 동의하지만, 사실 우리는 그들을 변화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을 페미니즘에 동의하게 만들거나 페미니즘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페미니즘을 바로잡아 설명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유머가 사람들에게 문제의식을 일으키는 데 대단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 왔다. 풍자는 정말로 위대한 저항의 형태다.”


게릴라걸즈는 1980년대부터 뉴욕을 중심으로 익명으로 활동해온 페미니스트그룹으로 미술관 화장실 벽은 물론, 잡지, 옥외광고판, 버스광고판을 활용하여 제도권 미술에서 여성 및 소수자 차별에 대한 문제를 각종 선전물을 통해 풍자해왔다.
여성은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들어가려면 옷을 벗어야만 하는가? -현대화가 중 여성화가는 5% 미만, 그러나 누드화의 85%는 여성이라는 직설적인 문구는 고릴라 가면을 쓰고 누드로 비스듬하게 누운 오달리스크작품을 패러디한 이미지에 삽입되어 1989년 뉴욕 시내버스 외벽광고로 소개되었다. 여성작가들이 받는 미술계에서의 부당한 대우와 허접한 위치를 고발하고 이를 사람들에게 인지시키는 작업이었다. 그 외에도 게릴라걸즈는 소수자 및 인종차별에 대해서 또한 미해결된 성범죄의 실상 등을 통해서 이 세계가 얼마나 남성우월주의와 백인우월주의 그리고 유럽중심주의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폭로하였다. 통계화된 수치와 그 기록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강력한 문구의 효과는 대단했다. 전시와 영화제 등 세계의 주요 메이져급 예술행사를 타겟으로 삼았으며. 광고 및 선전의 형식을 띤 작업은 당시 예술계의 현실을 직시하도록 이끄는 장치가 된 셈이었다.
 
“Your body is a battleground(너의 몸은 전쟁터다)” 대단히 유명한 문구로, 이 문구는 페미니즘 운동 등 저항의 영역에서 꾸준히 차용하고 있다. 1989년 바바라크루거의 작업으로서, 여성들의 몸에 이 글귀를 새겨고 이를 촬영하여 포스터 형식으로 만든 것이다. 이는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 낙태죄 폐지를 위한 선전물이기도 하였다. 타인의 신체를 바라보는 주류 사회의 시선과 태도, 역할에 따른 금기 등 우리 몸을 통제하는 지배적인 규칙에 저항하는, 현재까지도 꾸준히 차용되면서 페미니즘의 일갈을 강한 인상으로 남기는, 상징적인 작업이다. 몸을 둘러싼 전투, 그렇가면 내 몸을 통제하는 것은 누구인가몸은 (누구에게) 어떻게 보여지는가.’ 이 질문은 주류문화가 몸에 대해 취하는 태도를 가늠케 한다. 다시 말해 몸은 내가 결정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당하는 것이었다. 폭력과 억압, 불의, 사회적 시선과 그로부터 몰려오는 스트레스가 주는 우리 개개의 현실적 경험은 현대미술 안에서 종종 파편화된 신체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거세한 그 무엇을 향한 저항이자 거부의 시각적 대응물이다.
 
전통적인 휴머니즘에서 보자면, ‘인간으로서 보편적 주체에는 여성이나 소수자가 포함되지 않는다. 세계대전이며 68혁명이며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도 페미니즘은 곧바로 중요한 담론으로 거론되지 못했다. 야만으로부터 휴머니즘을 회복한 듯한 시점에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는 늘 은폐되어 왔다. 페미니즘은 그간 은폐를 통해 무시되어 온 성평등’, ‘주체 다양성의 부재를 문제로 직시하여 정치·사회·문화 전반을 젠더 관점에 따라 재구성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그것은 오히려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을 확장시키는 것일 뿐 아니라, 승리의 역사 곳곳에서 가려져 왔던 지점들을 학문적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 중요하게 자리매김을 하도록 , 재조명을 위한 기반을 제공하였다.
동시대 미술현장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로서 필자 역시 최근 미투운동에 대해 관심이 높다. ‘여성정체성으로 페미니즘 시각을 고수하고자 평소 노력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미투운동과 연관한 사회적 의제가 미술의 영역에서, 예술언어로 다뤄질 수 있는 방법론을 깊이 고심하는 중이다. 그간 한국에서 여성주의미술이라 일컬어왔던 작업들 외에도, 사회적인 의제에 직면하여 다양하고 촘촘한 지층들을 선보여줄 창작물들을 그리고 행동주의 여성주의미술로 읽을 수 있는 창작물들을 또한 기다리는 중이다.
 
-세 전시-
이와 같은 사회적 배경에서 여성’, ‘여성주의’, ‘여성주의미술을 주제로 한 전시들이 최근 국공립미술관을 중심으로 하여 유사한 기간에 진행되었다. <금하는 것을 금하라>(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2.27~6.24 /조덕현, 박영숙, 손정은, 윤정미, 장지아, 정은영, 주황, 흑표범), <우리시대 여성작가들>(포항시립미술관, 3.8~5.27./김은주, 문혜경, 서옥순, 이정옥 정은주, 차계남), <부드러운 권력>(청주시립미술관, 3.15~5.6/김주연, 김희라, 윤지선, 임은수, 정정엽, 조영주)이 그것이다.
<금하는 것을 금하라>는 여성으로서의 금기에 저항했던 신여성 나혜석(수원출신) 타계 70주년에 맞추어 기획된 전시이다. 한국근현대사 질곡의 역사를 살아왔던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던 조덕현의 프렐류드는 나혜석이 자기 인생에서 큰 영향을 미쳤던 사건을 표현한 작업이다. 이어 미친년시리즈화폐개혁연작을 소개한 한국 여성주의미술 1세대 작가인 박영숙은 물론, 어린 시절부터 학습되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시각화한 윤정미, 전통적인 성역할을 거부하는 여성국극을 다룬 정은영 그리고 금기에 대해서 다룬 손정은, 장지아 등의 작업들이 소개되었다. <부드러운 권력>은 여성들의 중층적인 정체성에 대해 주목한다. 정정엽은 1세대 여성주의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로서 곡물이 지닌 생장의 힘을 여성의 힘으로 대유해왔다. 그리고 조영주의 비디오댄스에서 아줌마로 통칭되는 익명의 여성들은 거주하는 장소에서 군무를 춘다. 같지만 고유한 춤사위를 통해 한 명 한 명이 개별 삶의 기념비가 된다. 김주연은 인간의 삶과 죽음, 생태적 순환성,생명과 육체에 대한 식물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위 두 전시가 한국 여성주의미술 연구를 기반으로 하여, ‘성역할, 금기, 정체성등 주제가 명확하고 내적인 억압기제들을 발화하고 배열하는 형식이었다면, <우리시대 여성작가들>의 경우는 지역적 특수성, 유사한 세대(연령대), 작품에서 드러나는 개별의 여성성에 대한 것이다. 말하자면 지역의 남성편향적 구도 속에서 꾸준히 작업해 온 여성작가들을 통해 지역 여성주의미술의 특징을 맥락화하고자 한 시도로 보인다.
 
학습되어 공고해진 고정관념에 파열음을 내는 방식에서 여성은 어떻게 정의되는가는 모두에게 그 단초를 찾아가는 중요한 질문이 된다. 특히나 이 질문은 여성이 스스로를 타자화하며 나는 나를 여성으로 자각하고 있는가의 물음으로, 그리고 그로부터 나는 (내 삶에서/환경에서/시선에서/관계에서) 자유로운가를 부연으로, ‘여성이라는 구체적인 삶 속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으로서 여성/소수자를 위치짓는 양상들이 소위 여성주의로 불리는 작가들의 작업을 관통하고 있다. 생각보다 미투운동의 정국이 미치는 파급력이 높다. 세 곳의 국공립미술관은 비슷한 시기에 각자의 전시를 통해 여성주의미술을 다루었다. 미투의 동시대성을 입증한 셈이다. 머잖은 후일 여성주의미술을 기반으로 행동주의의 단계로도 진입하는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이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어 발표될 그 날을 또한 고대한다.

2017년 12월 3일 일요일

장소를 마주한, 예술가의 기록

* 본고는 문화공간 양 '2017 거로보관소'에 수록된 글입니다. 

장소를 마주한, 예술가의 기록 


최윤정 ● 독립큐레이터

시작하는 말

본고는 대구 중구 도원동에 위치한 성매매집결지 ‘자갈마당’을 기록하는 사업으로 추진되었던 <자갈마당_기억변신프로젝트2016>의 사례를 기반으로 하여, 예술가들의 창작과 기록에 대한 문제를 다뤄보고자 한다. 
주관단체인 대구여성인권센터는 성매매당사자 여성들의 구술작업을 시작하면서 자갈마당을 둘러싼 각종 자료들을 수집하고 이를 목록화·편집하여 <자갈마당 100년의 역사> 아카이브를 구축하였다. 예술가들은 전시 <자갈마당 시각예술아카이브_발화, 문장의 외부에 선 행위자들>을 통해 장소성에 대한 각자의 연구를 하나의 과정물로서 작업화하였다. 현재(2017.11월 기준)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장소에 대한 기록의 의미를 활동가의 측면에서 또한 예술가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도정에 놓여있으며, 서로의 입장에서 기록들을 어떤 방식으로 남겨야 하는지 또한 그것이 향후 장소와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는/닿아야 하는 영향관계에 대해서도 심화시키는 방안을 주 과제로 삼고 있다. 즉 한 번의 이벤트적 요소로 끝내기보다는 과정적으로 축적되는, 순차적인 단계가 필요하다는 공통의 의견이 있었고, 그것이 이 프로젝트가 지닌 진정성의 국면을 형성해간다는 점에 대해서는 서로간 이견이 없었다. 

프로젝트 안에서 예술가들의 활동에 대한 진행 과정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2016년 봄까지 작가구성을 마친 후(내가 결합한 시점은 2015년 겨울이었다), 2016년 여름 연구과정(워크숍, 답사 등 스터디 및 개별연구)을 거쳐 작업계획을 발표하게 된다. 작업계획은 결과물 자체이기 보다는 자갈마당에 대한 관점을 생성해가는 과정으로 설계되었으며, 11월에는 이를 토대로 한 전시로 작업들을 소개하였다. 그와 동시에 이 프로젝트의 맥락과 예술인 협업이 지닌 의의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가 진행되었다. 2017년은 2016년의 활동과 함께 2017년까지 이어진 후속작업들을 총망라한 출판물을 제작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출판물은 참여작가 중 사진작업을 하는 3인의 작가들의 시선에서 기록한 ‘자갈마당 사진집’과 참여예술인들의 활동을 맥락화한 ‘인터뷰집’으로 구성된다. 현재 자갈마당 인근에 현장상담소(대구여성인권센터 주관)가 개설되었고, 그 안에 자갈마당의 역사를 소개하는 상설전시관과 장소성(자갈마당, 역사, 인권, 여성)을 특화로 한 대안공간 ‘기억공간1906’이 조성되어있다. 이곳이 현재 근거지가 되어 2016년에 소개한 작품들은 물론 2017년에도 후속으로 창작된 작업들이 연속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현재 지난 9월을 시작으로 총 2차에 걸친 전시가 개최되었으며, 올해 마지막으로 열리는 3차 전시는 사진집에 대한 전시로서, 출판물 발간 일정에 맞추어 개최될 예정이다.       


기록 그리고 기획의 당위

2016년 처음 내가 마주한, 자갈마당이 위치한 도원동 일대는 고층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금은 이미 다 지어져, 세대별 입주 중인 것으로 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성매매 집결지는 ‘유곽’이라는 이름으로 1876년 개항이후 일본인 거류지에서 시작하여 조선 전체로 확산된 공통의 역사를 갖는다. 따라서 전국의 성매매집결지들의 상황을 보자면, 그 태생은 물론이거니와 변화나 발전(?)과정에서도 서로 비슷한 추이를 보이고 있다. 최근 전국적으로 성매매집결지 폐쇄에 대한 지자체들의 논의가 한창이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피자면,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의 발로’는 당위를 꾸며주는 하나의 수식일 뿐이고, 결국은 자본과 재개발이다. 그로인해 그 장소에서 벌어졌던 비인도적인 행태들이나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는 성찰되지 않고 있으며, 애초부터 없었던 곳인 양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 관련단체들이 우려하는 문제적 지점이다. 그간 약 20년 가까이 대구여성인권센터는 성매매집결지인 ‘자갈마당’에 대한 문제에 집중해왔고, 정책 제안 발언은 물론 기록물 자료수집 등 연구작업도 꾸준히 진행해왔다. 그들의 문제의식은 성매매집결지의 폐쇄는 마땅한 일이나, 당사자 여성들의 생존에 대한 아무런 구체적인 대책도 없이(타 집결지로의 유입), 또한 인권유린의 현장으로서 역사에 대한 성찰도 없이 ‘재개발’의 명목으로 마구잡이로 장소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것에 대한 우려에 있었다.

이에 몇 년 전부터 지역연구가들과 자갈마당이 사라지기 전에 그곳을 기록해야 한다는 논의들을 진행해왔고, <자갈마당_기억변신프로젝트2016>은 그 과정에서 방법론으로서 구상된 것이었다. 자갈마당이 사라지기 전에 그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고 남겨야 한다는 간절함은 또한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확대해야 한다는 당위로 이어졌다. 장면을 포착하는 시선의 문제에서 출발하여 경직되지 않고 다양한 사유의 지점들을 열어두는, 강요하는 캠페인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스며들고 공진하는 활동으로서, 그렇게 이 프로젝트에 예술이 결합되었다. 처음 이 프로젝트에 대한 제안을 받았을 때, 몇 차례 거절을 하였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거운 주제도 주제이거니와 시민단체와의 협업에 대한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선의에 가려 예술가들의 창작이 도구로 전락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탈성매매당사자 여성들의 토크콘서트 관람을 계기로 프로젝트 합류의 명분을 찾은 후, 그때부터 나는 각자의 자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율함과 동시에 예술가들 역시도 이를 통해 본인의 창작작업이 확장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는 발판을 조성하는 일을 주 과제 중 하나로 삼게 되었다. 동시대 사회적 의제란 시민단체의 활동이나 예술가들의 창작모티브에 있어서 공통적일 수 있다. 또한 그간은 어느 한 쪽으로 쏠리는 것이 문제였으므로, 협업의 시스템을 실험하여 모범적인 선례를 구축하는 것도 기획자로서 기여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비교적 짧은 전시기간임에도 많은 호응이 있었다. 다수의 관람객들은 물론 이해당사자들(공무원, 정책관계자, 전국활동가 등)이 오갔으며, 주제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화제성을 띄면서 그간 사회란에만 수록되어 온 ‘자갈마당’ 관련 기사들은 일간지 문화란이나 칼럼등에 소개가 되었고 또한 예술잡지에도 소개되었다. 올해 연초에는 지자체에서 ‘자갈마당 폐쇄조례’가 통과되면서 성매매당사자 여성들에 대한 생계 및 자활을 돕기 위한 지원대책도 함께 마련되었다. 대구여성인권센터가 이를 실행할 주체가 되어, 만들어진 장소가 전시장도 함께 조성된 ‘현장상담소’이다.

이 프로젝트가 내부적으로 호응을 얻었던 이유 중 하나는 예술가와 활동가의 역할에 대해, 각서로의 자율성을 인정했다는 점에 있다. 예술가가 활동가가 될 수는 없다. 또한 활동가는 예술가처럼 해서는 안 된다. 한편 현장에 닿게 되는 접촉면도 예술가/활동가는 가능하지만 예술활동가/예술가는 가능하지 않은 경우들이 많았다. 각자가 ‘따로 또 같이’ 손이 닿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협력하며 협업한 지점이 이 프로젝트 시스템 상의 의의를 만들어주었다. 한편 일부에서 예술가가 현장에서 성매매당사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고 그들을 주체로 하는 작업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적을 받기도 하였다. 그 지적은 물론 타당하다. 그러나 당사자들 접근 문제는 ‘낙인’이라는 폭력적 시선이 내재화된 그들의 두려움을 건드려야 하는 일이었고, 당사자들을 주체로 한다고 여기는 다수의 작업들은 보기에 ‘대상화’라는 윤리적 문제를 수반하거나 착한 공공미술, 캠페인같은 작업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큐레이터로서 나의 생각이었다. 나와 예술가들의 태도적 윤리성은 ‘잘 모르면서 아는 척은 하지말자’였다. 그리하여 협업의 형태에서 현장에서의 접근과 판단은 활동가들의 조언을 따르면서, 장면과 사유의 지점들을 발굴하고 찾아내는 몫은 우리에게 있음을 서로 주지하였다. 이것이 이 프로젝트 안에서 내가 생각하는 ‘자율성’이자 나의 태도적 기획윤리였다. 그리고 내용적으로는 예술가들이 이 주제를 자기 작업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는 계기에 주목하여 작업을 조율하였다. 사회적 의제에 작가들이 접근하는/실천하는 방법론에 대해 활동가적 당위에 얽매이기보다는, 철학의 시각적 대응물로서 미술에, 이미지생산자로서 예술가적 사유에 보다 집중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장소를 마주한 예술, 창작에서의 기록의 의미
(이수영, 정용국, 이범용을 중심으로)

자갈마당이 형성되었던 일제 강점기 시기, 이곳의 이름은 ‘야에가키초(팔중원정)였다. 이는 일본 [수진전]에 실린 신화 속에 나오는 지명으로, 천조대신(일본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신)에게 12명의 왕비가 있었는데, 초고대왕이 신궁에 쳐들어가서 여왕 히미코를 굴복시키고 천조대신의 왕비 8명을 후비로 삼아 그들을 가둔 곳이 이즈모의 ’야에가키‘라는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해방 이후 이곳은 ’도원동‘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도원동은 과거 복사꽃이 만발했던 동네 혹은 성매매 여성을 ‘도화’라 일컬어 즉 ‘몸 파는 여인들’이 모여사는 동네를 가리킨다고도 한다. 그러나 속칭 ‘자갈마당’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과거 대구천이 흐르는 저습지여서 그곳을 메우느라 자갈을 깔았던 것에서 유래한다. 유곽을 벗어나기 위해 밤에 몰래 도망치려해도 자갈 밟는 소리로 이내 들켜버렸다고 한다. 그것은 또한 포주들이 깔아놓은 자갈로 인한 것이었다. 아마도 그 자갈은 ‘빚’을 또한 상징하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도무지 자력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야에가키초’.  
“그 아비되는 자가 이십원을 받고 대구 유곽에 팔아먹은 것이었다. 그 소문이 퍼지자, 그 처녀 가족은 그 동리에서 못 살고 멀리 이사를 갔는데, 그 후로는 물론 피차에 한번 만나 보지도 못하였다(...) 처녀는 일본사람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었다. 궐녀는 이십원 몸값을 십년을 두고 갚았건만 그래도 빚이 육십원이나 남았는데, 몸에 몹쓸 병이 들어 나이 늙어져서 산 송장이 되니까, 주인되는 자가 특별히 빚을 탕감해주고 작년 가을에서야 놓아준 것이었다” _현진건 ‘고향’(1926)  

<자갈마당_기억변신프로젝트2016>에는 총 13인팀의 예술가들(김태권, 박진영, 전리해, 윤동희, 임은경, 이범용, 정용국, 정유진, 빈중심, 황인모, 오석근, 이수영, 사월의눈)이 참여하였다. 그 중 이수영, 정용국, 이범용을 중심으로 예술가들의 창작행위로서 ‘기록’의 의미를 다각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 작가 이수영의 경우 ‘스토리텔링 창작, 픽션의 수집물과 행위의 기록들’

자갈마당을 시각예술의 방법으로 ‘기록하는’ 방식에 있어서, 작가 이수영의 작업은 주목할 만하다. 활동가들과 예술가들이 자갈마당 및 그 인근 답사는 물론 각종 역사자료 및 현장사건에 대한 내용들을 함께 공부하는 워크숍 과정에서, 자갈마당이 고향이었던 한 일본인 오카다 다카유키의 이야기도 있었다.  

“오카다상은 식민자 3세이다. 그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1919년 즈음 대구에 정착했고 영화관을 운영하다가 후에 과수원을 하게 된다. 할머니는 현재의 팔중원정(야에가키초_자갈마당의 옛이름)에서 게이샤 유곽 ‘대강메’를 운영했다. 사창가의 게이샤집에서 태어난 그가 100년 가까이 변함없이 성매매가 이뤄지는 이곳을 보며 어떤 심정이었을까?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_권상구, 시간과 공간 연구소

오카다는 1934년에 야에가키초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태어나 살았던 집은 게이샤 유곽이었고, 그의 가족은 2층을 살림집으로 삼았다. 해방기 때 그의 가족은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일본으로 쫓겨난다. 그는 식민지 조선 ‘자갈마당’이 고향이었던 일본인, 70대의 노인이 되어 지난 2007년 고향인 대구, 자갈마당을 찾았다. 

작가 이수영은 이 일화에서 자갈마당의 100년 역사에 대한 작업의 단초를 찾았다. 보다 미시사적 접근으로 자갈마당을 에워싼 이야기는 성매매 뿐 아니라, 이곳이 고향이었던 포주집안의 한 일본인의 유년시절 기억으로부터 소환되는 것이다. 작가는 어떤 사연인지 알 수 없는 자갈마당을 떠도는 게이샤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지어내었다. 스스로 게이샤 복장을 하고 정확히 밤 12시에 자갈마당 주변을 배회하는 퍼포먼스를 하였다. 이 작업은 퍼포먼스 영상에 등장하는 게이샤 귀신을 통해 사람들에게 그 사연을, 자갈마당의 역사를 상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작업이었다. 이와 동시에 그는 한 남성 배우를 섭외하여 자신이 직접 작성한 시나리오에 맞춰 그가 ‘오카다 다카유키’를 연기하게끔 하였다. 이는 실제 전시 오픈 당일, 이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오카다 다카유키가 일본에서 대구에 찾아와 전시를 관람한다는 설정이었다. 당시 관람객들은 그가 연극배우인지 모르고, 그가 전하는 자갈마당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자갈마당에서의 추억이며 에피소드를 묻는 질문에 그는 어떤 여인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여인이 귀신이 되어 동네를 떠돌아다닌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는 말을 끝으로 퍼포먼스는 종료된다. 작가는 이를 작업의 물꼬를 트는 하나의 과정으로 삼고, 이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하여 게이샤 귀신의 정체를 밝히는 설정으로 자갈마당의 이야기들을 풀어가는 ‘포럼’을 연속적으로 만들어 갈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서 내용적으로 식민지 조선의 유곽지대가 고향이었던 일본인들에 대한 자료수집을 위해 그리고 오카다 다카유키를 직접 인터뷰하겠다는 각오로 참가지원을 통해 일본의 도쿄원더사이트(아티스트레지던시)에 국제레지던시 입주작가로 선정되어 3개월동안 작업을 펼칠 수 있었다. ‘오카다 다카유키’를 찾아나선 그의 여정을 내내  가로지르는 것은, 어쩌면 자갈마당에 대한 문맥에서 또한 잊혀진, 식민지 조선이 고향이었던 일본인을 통해 역사적 비애와 순환적인 구조를 들추고 인류학적인 지평에서 입체적으로 자갈마당을 조명하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물론 그는 ‘오카다 다카유키’를 만나지는 못했다. 아흔이 가까운 그의 생사는 물론이거니와, 흔적을 찾기에 3개월의 시간은 다소 짧았던 듯 하다. 그러나 작가는 그를 찾아나가는 추적과정들을 기록하고 발견된 자료들을 수집하는 등 결코 무의미하지 않은 연구기간을 가졌다. 한국에 돌아와 그는 집중된 고민들을 토대로 자갈마당을 떠도는 게이샤 귀신의 정체를 밝히는 픽션 형식의 포럼을 2017년 10월 말 수유공간너머에서 퍼포먼스로 펼쳐내었다.   









-작가 정용국의 경우 ‘기억감정의 구조들, 편집되어 재-기록된 구술’ 

작가 정용국은 대구여성인권센터의 ‘성매매경험당사자 여성들의 구술작업’에 주목하였다. 실제 구술내용은 당사자의 허락 없이는 외부에 공개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작가의 작업 및 연구의도를 공감한 후, 대구여성인권센터의 조율을 통해 한정된 5인의 구술자료가 그에게 제공되었다. 그가 이 구술작업들을 연구하면서 주목한 지점은 당사자 여성들의 말하기 방식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어떤 모호함’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보기에 그것은 외부와 단절된 채로, 자기 신체의 노동환경을 스스로가 제어할 수 없는 상황들을 반영하는 듯 했다. 보통 구술 자료들을 읽다보면 구체적인 정황이나 근거들에 대한 진술들을 찾을 수 있기에 의문을 푸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를 기대했던 5인의 구술 작업 속에서는 그가 원했던 구체적인 내용들을 찾을 수 없을뿐더러 이게 뭘까 하는 궁금증만 오랜 시간 증폭되었고, 그로부터 그는 드러난 내용 이면에 말하기 방식과 단어의 표현 그리고 말의 간극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와 심리를 바라볼 수 있었다.   
시공간에 갇혀져 있고, 행위나 움직임까지 통제를 받는다. 자신을 바라보는 낙인 등 외부의 시선은 또한 스스로를 가두게 하는 심리적 감옥에 다름 아니다. 문득 그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 하였을 때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구는 사랑하는 대상을 만지고 감각하고 교감하고 싶다는 마음일진데, 당사자 여성들에게 그 원초적 감각이 소거되었을지도 모를, 그렇기에 읽으면 읽을수록 말하기 방식 및 단어들에서 그들 삶의 이면을 회복해주고 싶은 마음이 다가왔다고 전했다. 단순히 기록으로서의 서사를 이해하는 측면이 아닌 그것이 곧바로 정서로 감각으로 직접 전해져오는 경험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 구술작업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말의 ‘간극’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그녀들의 모호한 말하기 방식을 더 극단화하여 이내 구술에서 구체적인 단어들을 지우고 지우는 작업들을 반복하였다. 그러자 보기에 전혀 알 수도 없는 대명사와 조사, 관계사 등만 나열된 것으로 보이는 문장들이 만들어졌다. 이 편집되어 재기록된 글은 도무지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글을 소리내어 읽는 순간, 소리로 전달되는 그 하나하나 모호한 단어들에서 이야기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실제 그 구술작업을 진행했던 한 활동가는 아무런 정보 없이 작가로부터 받은 편집된 문장들을 소리내어 읽다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것이 누구의 이야기인지 반 정도 읽어내리는 도중에 알아차렸다. 그 간극 속을 메우는 단상들이 머릿속에 차올라 곧바로 감정적 동요를 일으켰다. 나 역시 소리내어 읽어보았었다. 읽는 도중  장면들이 떠올라, 목뒤가 쭈삣 서는 듯한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5인의 구술작업은 감정을 배제한 제삼자가 덤덤히 읽어내리는 소리를 통해서 5개의 사운드 작업으로 완성되었다. 올해 그는 5개의 구술작업 중 한 탈성매매당사자 여성의 협조를 받아, 그가 재편집한 그녀의 이야기를 그녀의 목소리로 담아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실제 구술자료 연구를 통한 그의 작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는 2014년에 경남 산청 한센인마을인 성심원에서 ‘첫 번째 사람’이라는 작업을 진행한 바가 있었다. 구술자료들을 읽고 분석하는 연구과정에서 그는 사회적으로 잊혀지기를 강요해왔던 그들의 역사를 발견했다. 도리어 그들이 ‘나는’, ‘내가’ 등 자신을 강조하는 표현들이 유독 많았음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무엇이었을까를 계속 고민하였다. 이내 1인칭의 문장들(특히 들어주기를, 무엇인가 강조하는)을 뽑아 구술자료를 재기록하였다. 이 기록들은 너비 12미터에 높이 8미터의 벽면에 세로 쓰기 방식으로 빼곡히 채워졌다. 또한 형광페인트로 한 글자 한 글자 수행하듯이 흰 벽돌 벽면에 새겨진 글자는 공간에 설치된 블랙라이트의 조도가 서서히 밝아짐에 따라 점차 선명해지는, 선명도가 가장 높은 순간에 갑자기 형광등이 켜지면서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는, 은폐되고 차별받았던 시대의 폭력성을 긁어내듯이 보여주는 기념비적 작업이었다.  






- 작가 이범용의 경우, 장소에 습윤되어 성찰을 이끄는 자기진술들

작가 이범용은 장소를 구성하고 있는 문화와 사람들- 공동체적 공통감, 민속, 풍습, 그 안에서의 개별 삶의 양태-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여기서 장소의 객관적인 역사란 그가 사람들을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표지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말인 즉 그는 자신에게 낯선 장면들에 대해서는 온 몸을 습윤시켜 그로부터 자신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당위를 찾아가는 과정을 작업 이전에 필수적으로 행해왔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작업계획을 상의해야 하는 시기에, 그는 그 장소에 자신이 머물러 봐야겠다는 짧은 선언을 남겼다. 그가 선택한 곳은 자갈마당 인근 북성로 주변의 작은 쪽방 여관이었다. 이곳은 60대 이상 연령대가 높은 성매매당사자 여성들이 활동하는 지역으로, 자갈마당의 100년의 역사 속에서 부속물처럼 생긴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여관업과 성매매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사람들의 삶을 마주하고 싶었다. 대화라도 나눌 수 있다면 직접 구술작업을 행해도 좋겠다는 것과 그 내용을 토대로 사생작업을 행해보고 싶다는, 도무지 어떤 과정물이, 결과물이 나올지 예측하기 힘들었다. 보호차원에서 몇 차례 말려보기도 했지만, 작가는 그렇게 허름한 쪽방에 약 보름간 기거하기 시작하였다. 매개나 대화의 채널을 만들기 위해 그는 스스로 군고구마 장수를 자처하여 매일 인근 큰 거리에 나가 일정한 시간동안 고구마를 팔고, 팔고남은 고구마는 여관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나중에는 그가 어디에서 고구마를 파는지 그 내용을 알고, 친절한 청년을 만나 수다를 나누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별의 별 에피소드가 많았다. 물론 여기까지는 무리없이 계획대로 잘 가는 듯 했다. 그러나 어느덧 상황은 급작스럽게 악화일로로 치닫게 되었다. 그가 애초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이것은 나에게는 대단히 흥미로운 지점이다. 자신이 지닌 편견과 마주한 것이다.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자 했던 의도는 자기 내부를 바라보게 되는 성찰로 이어졌다. 쪽방의 빨간 등을 형광등으로 바꾸면 그냥 사람이 사는 오랜 시골 방같은 모습일 뿐이다. 다들 일상을 이야기하고 비오는 날에는 함께 전도 부쳐먹고, 밤늦게 들어오는 고구마 장수의 방 앞에 홍시를 놓아주는 동네 어른들이다. 그는 이 사실들, 그때의 감정들과 자신의 상황들을 글로 이미지로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신이 고구마장수가 아니라, 예술가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고백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실은 예측하고 있었다. 신학생 아니면 예술가, 결이 너무 다른 사람인지라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크게 놀라거나 화내는 반응도 없었고 무덤덤했다고 한다. 작가는 자신이 기거하던 쪽방에 새 이불과 등을 설치해주고, 자신이 사용했던 낡은 이불과 형광등(빨간등과 흰등이 함께 있는)을 교환하였다. 그가 수집한 자료들은 그가 자기의 편견과 싸운 현장에서의 인식지점들이 변화하도록 하는 매개로서 상징적이었다. 장소를 마주하며 도리어 자신과 대면한 사건, 그 사건들을 기록하고 장소에 대한 자기 편견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이불 등 행위의 수집물들을 ‘자기고백’의 증거들로 남긴 설치작업으로 이어졌다. 실제 이 작업은 관람객의 공감 및 반응이 대단히 높았다. 그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편견적 시선들은 어찌보면 우리 모두에게 내재해있는 무엇일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가는 말

현재도 업소들이 운영되고 있는 자갈마당과 직접적인 피부접촉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은 ‘감각’의 수용을 전제로 하는 예술가들에게는 참으로 고난스러운 지점이었지만, 대구여성인권센터의 코디네이션을 통한 접근 등 일종의 ‘거리두기’를 통해 상황에 대해 차갑게 접근하는 방향은 도리어 특정집단 혹은 사회에 대한 예민한 독해지점을 발견하는데 유효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에 예술가들을 개별의 주된 시선이 향하는 지점들-생태, 사회, 구조 등-을 발견할 수 있는 ‘연구자’이자 ‘기록자’로서 본 과정들을 각자가 창작의 의제에 연결하며 이어나갔다고 볼 수도 있다. 그것은 작가들이 스스로 발견한 일종의 ‘문장들’에 대한 접근과정이었다. 

자갈마당에 대한 담론에 육체적인 형체를 부여하는 예술가들의 발화, 시각예술의 방법론을 통한 아카이브는 그렇기에 순전한 자료전의 형식과는 다른 문맥을 갖는다. 고민의 과정들이 담겨질 작품들은 비유하자면 완결된 문장이기보다 비문장이고, 서사 속에서 드문드문 나열된 단어들 혹은 음운일지도 모른다. 
“... 단어, 구문, 관용구의 단편들이 스쳐갔으며 아무런 문장도 구성되지 않았다....매우 문화적인 동시에 야만적인 그 같은 언어는 무엇보다도 어휘적이고 산발적이었다. 그런 언어가 뚜렷한 흐름과 명확한 불연속성을 통해 나의 내부에 구축되었다. 이 비문장은 문장에 도달할 수 없는 문장 이전에 존재했을 어떤 것이 결코 아니었다....문장의 외부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_롤랑 바르트 [텍스트의 즐거움] 


하나의 고민들이 응집된 각 덩어리로서 ‘비문장’인 작품들은 그렇기에 특수한 국면에서 형성된 창작물이자 그 자체 특징적이고 체화된 기록물이기도 하다. 문장의 목적적 시선에서 비롯된 선적인 경직성을 해방시킨 (문장의 외부에 선) 예술가들의 활동, 하나하나가 자갈마당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시각예술아카이브로서의 단계적인 지층을 만들어가는 작업인 것으로 나는 그렇게 여기고 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