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30일 토요일
2011년 7월 28일 목요일
2011.5.26~2012.4.1, Daegu Art Museum
“망(忘)은 단순히 망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 일체의 사념 내지는 판단의식과 같은 주체의 인식작용을 거부하고 나아가 자기존재까지도 자각하지 않기에 이르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간상의 대소나 시간상의 장단 같은 분별 의식까지도 초월하는 경지이다. 이는 단순히 자기존재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진실과 실상을 보는 데 필요한 일종의 방법, 무아와 무심의 경지에 드는 과정에 필요한 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6
1 셸링,『조형미술과 자연의 관계』, 심철민 역, 책세상, 2002, 62
2011년 7월 17일 일요일
광주발전연구원 기고(논문집9호) : 문맥적 사유_창조적 뒤집기
'문맥적 사유 | 창조적 뒤집기'
구도심 유휴공간 재생과 창조도시를 위한 기본 토대 제언
최윤정 ● 미학・미술비평/큐레이터
I. 유휴공간 활용에 대한 사례적 접근
문화예술활동을 기본으로 한 도심 재생의 활력은 일차적으로 '유휴공간' 자체에 대한 재생 목적과, 프로그램을 위한 필연성을 목적으로 '유휴공간'을 활용하게 되는 사례로 나눠볼 수 있다. 주로 전자는 국립기관 주도하에 진행된 사례들로서 문화예술 복지 및 도시환경 이미지에 준거한 접근이며, 후자는 자생적인 필요에 의해 프로그램 기획 거점공간으로서 접근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1. 기관 주도 : 근대적 공간의 창작스튜디오化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근대적 공간(학교, 공장, 전통수공업, 전통기반 생산시설)이 그 사용처를 잃고 비어있는 골칫덩이로 전락하였지만,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문화', '예술' 활동이 그에 대한 일반적인 관심을 넘어 소용적인 측면에서 재생의 활력을 가져올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면서, 기관주도형의 문화공간화 사례가 전국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90년대 후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도로 충청도와 인천 등 폐교가 '미술창작소'로 조성되면서 시각예술인들에게 공간지원을 한 것과 더불어 이를 기점으로 1998년부터 2004년까지 폐교를 활용한 창작스튜디오(약 30여군데)가 조성되었다. 더불어 인근 지역 주민들의 문화예술 커뮤니티에 기여할 수 있는 생활 친화적 복합문화공간 사업 및 소외지역 공공미술 사업(아트인시티 2006~2007)이 환경개선을 주제로 연이어 이어졌다.
최근 몇 년 사이 대전창작센터(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2008), 인천시 아트플랫폼(근대 개항기 일본우선주식회사, 2009), 경기창작센터(경기도립직업전문학교, 2009)등 소용처가 사라진 근대건물들이 기관주도로 리모델링되어 창작스튜디오로 거듭나고 있다. 서울권 내에서 보자면 서울연극센터(혜화동사무소, 2008), 남산창작센터(남산실내체육관, 2009), 서교예술실험센터(서교동사무소, 2009), 신당창작아케이드(황학동 지하상가, 2009), 연희문학창작촌(시사편찬위원회, 2009),금천예술공장(독산동 인쇄공장, 2009), 문래예술공장(문래동 철공소, 2010)가 기관주도형으로 지어지면서, 창작스튜디오가 유휴공간 활용에 대한 대안으로서 공고해지는 듯하다. 현재 대구문화창조발전소(연초제조창), 포천 폐 채석장을 이용한 문화예술교육센터 건립, 군산, 신안, 안산, 목포 등에 이르기까지 근대 건물 리모델링을 통한 창작센터, 전시공간에 대한 건립계획은 그야말로 창작스튜디오 및 문화공간의 범 전국시대를 상상하게 한다.
2. 민간 주도 : 프로그램 접근을 통한 자생적인 발화
실제 폐교를 활용하여 창작센터로 역할하게 했던 시기에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실질적으로 운영난과 접근성의 애매모호함, 전문운영인력이 부재하고 이에 따라 창작센터로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만한 기본적인 요건이 실질적으로 따라주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 혹은 예술가 단체 스스로 작업실 환경 구성 및 예술공동체로서 폐교를 우선적으로 활용하게 된 경우에 그들의 의지와 자생성은 폐교 창작스튜디오를 이끄는 주요한 힘으로 작용하였다. 이곳들은 90년대에서부터 꾸준히 공간을 점유하고 유지하면서 스튜디오로서만이 아닌, 지역 공공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담당을 톡톡히 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유사하게 광주 인근 담양예술인촌이나 무안예술인촌 등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더불어 자생성 및 전문 프로그램 기획 및 토대 마련에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곳은 바로 각 지역의 '대안공간들'이다. 예술가 모임 및 대안적인 전시기획, 작가발굴 및 예술활동에 대한 담론생산을 목적으로 각 지역 대안공간들이 도심권에 자생적으로 생겨나되,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싼 지역, 유휴공간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가치 없는' 위기에 빠져있던 공간들을 문화공간화 시켰던 요소들도 자연스레 구도심 활성화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각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90년대 후반 서울의 루프, 풀, 사루비아 다방을 중심으로 대안공간의 역할로서 보편화된 전시지원 및 신진작가 발굴 견지에서 활동해왔고, 부산의 '오픈스페이스 배(OpenSpace Bae)'는 배 과수원 한복판에 위치하며 해외레지던스 프로그램 및 해외교류 공연을 유치하고 있다. 부산의 '대안공간 반디'는 광안리 해수욕장 오래된 목욕탕을 개조한 곳으로, 작가 발굴 외 예술의 의제를 담는 'BeArt' 비평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인천 스페이스빔은 지역 커뮤니티 및 지역 마을 연구와 아카이브에 기반을 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안양 석수시장 프로젝트(스톤앤워터)는 전국 최초로 전통시장의 유휴공간을 문화예술 활동에 자생적으로 활용한 사례로 공공미술 프로젝트 및 스튜디오 시스템을 특화하고 있다.
여기에 현재 지역 커뮤니티 아트 내지는 다원예술 및 혼성장르를 지향하는 매개공간으로서 '3세대'라 불리는 대안공간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다문화의 상징으로 자리하는 안산 원곡동에 위치한 'Community Space LITMUS'는 이주노동자들과의 소통, 예술활동을 통한 교육 및 해외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공간이 위치한 '동네'의 장소적인 특성을 살려 운영되고 있다. 광주에는 과거 물류창고를 활용한 '매개공간 미나리(MEMISPACE)'가 있다. 전통시장의 인접성 및 장소성을 통하여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지역의 자폐적이고 권위적일 수 있는 예술창작 현장을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현장예술활동으로 변모시킨 사례이며, 비평과 담론,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특화하고 있다. 또한 유사한 시기 부산에 마련된 '아지트(AGIT)'는 거리예술가들의 활동단체인 '재미난 복수'를 기점으로 하여 서브컬쳐로서 'Street Art' 및 인디문화 창작자들의 거점장소로 활용됨과 동시에, 거리예술 활성화를 위한 각종 워크숍 활동들을 특기로 한다. 그리고 다원예술매개공간 톡톡은 청주복합문화체험장 내, 아시아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특화로 하고 있는 'HIVE CAMP'의 안덕벌 주민 소통 및 교육프로그램 진행을 위한 창구로서 자리한다.
또한 서울의 '오프도시(OFF∘C)'는 미디어 아티스트 단체인 'Underground ArtChannel'의 오프라인 공간이면서 각종 퍼포먼스 및 전문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인 미디어 스크리닝 쇼를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삼아 지역 간 교류 활동에 힘을 쓰고 있다. 또한 관련해서 최근 돈키호테(순천), 알렙(목포), 미테(광주) 등 신생공간들이 지역성 및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여 생겨났는데, 전반적으로 이들은 자생적인 환경구축과 지역의 예술활동을 넘어, 지역간 네트워크 및 작가교류, 지역성과 장소성에 대한 고민을 토대로 자체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해외 사례_ 유휴공간 활용과 자생적 활로>
1) 일본 오사카 코노하나(仳花)
오사카 변두리에 위치하며, 건물 바로 옆으로 바다가 있다. 과거 물류창고로 활용되었던 야트막한 함석 건물에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대안공간들이 오롯이 위치하고 있는데, 임대료부터 시작해서 살인적인 물가에 시달리는 오사카 예술가들에게 이곳은 전시장소를 위한 새로운 대안, 부담 없는 임대료, 예술가 스스로 공간을 변형해도 되는 정도로 자율성이 확보된 곳으로 최근 간사이 지역 젊은 예술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돌고 있는 장소이다. (2010)
2) 태국 방콕 '짜투착 시장'
태국 방콕의 짜투착 시장은 나름 알려져 있는 곳이다. 예술가들이, 자생적인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목적으로 오후 6시까지만 운영되는 낮시장인 '짜투착 시장'에, 마치 점포처럼 개인 갤러리 및 스튜디오를 두고 소비자와 직거래로 운영되는 시스템이며, 실제 작품의 가격이 상당히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젊은 실험예술가에서부터 원로 예술가들까지 층이 다양하며, 주변 개인 갤러리를 에워싸고 수공예 아트마켓이 동시에 펼쳐진다. 더불어 더위를 피해 쉬러 나온 각 점포 예술가들은 각자 야외에 모여 기타며, 영상작업, 퍼포먼스와 같은 일련의 예술행위에도 상당히 자유로워 보인다(2010)
II. 광주, 구도심 유휴공간 재생
개념적으로 각 사례를 통해 유휴공간 활용에 대한 기관주도/민간주도의 기본틀을 정리하였다. 그렇다면, 광주의 경우 어떠한 사례들이 이에 해당하며, 그 공과는 어떠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경우에는 유휴공간 활용 뿐만이 아닌 창작스튜디오에 대한 논의도 포함하고자 한다. 유휴공간 활용 및 구도심 활성화에 대한 문맥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공간으로서 '하드웨어' 조성과 구도심 활성화 내지는 유휴공간 재생의 담론을 담고 있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도록 한다.
1) 창작스튜디오로서의 공간 활용 : '하드웨어'
광주에서 공간을 기점으로 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사례는 여럿 찾아보기 힘들다. 우선 국공립 기관으로서 지속적으로 미래를 담보하며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례가 '광주시립미술관'이 주요하며, 따라서 이에 대해 지역 대내외적으로 중요하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더불어 2008년 설립된 '매개공간 미나리'의 경우, 대인시장 내 유휴공간 3층 건물을 임대하여 '매미창작소(MEMI Creation Center)'를 조성하고 올해부터 운영하고 있다. 기타 아시아문화전당권 사업을 비롯하여 광주 문화특구 조성지에서 창작스튜디오에 대한 건립 논의가 한창이며, 이에 따라 향후 광주시에 유휴공간 활용 및 재건립을 통한 창작스튜디오가 지속적으로 생겨날 것으로 기대한다.
우선 이 단락에서는 역사적으로 가장 유서가 깊은 광주시립미술관의 창작스튜디오에 대해 살펴보자. 지난 1997년 광주시립미술관은 중외공원내 팔각정을 창작스튜디오로 조성했고, 양산동 낡은 근로자 아파트 일부를 활용하여 미술창작스튜디오를 추가적으로 2004년부터 운영해오고 있다. 또한 지금은 서울 인사동에 전시관을 열어 참여작가들에게 개인전을 지원하고 있고, 북경에도 창작스튜디오를 조성하여 광주작가들을 파견하고 프로모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시기적으로 전국적인 수준으로 보아도 상당히 일찌기 창작스튜디오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했다고 판단할 수 있고 이에 따라 공간조성에 박차를 가해왔다는 부분에서 지역 자체에서 자부심을 가질만한 요소는 충분하다고 판단한다. 최근 국내외 네트워크를 통해서 작가 프리젠테이션 및 강연프로그램도 기획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프로그램 질적인 차원에서도 점점 업그레이드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하드웨어적인 확장은 눈에 띄나, 실질적으로 창작활동에 매진하게끔 하는 창작스튜디오에서 그 현장의 어려움을 서포트할 수 있는 관리체계 및 직접적으로 공간을 관리하고 작가들과 소통할 수 있는 코디네이터 및 매니저가 없다는 점이 흠이다. 이에 대한 부재는 현재 광주시립미술관의 창작스튜디오의 발전과 사후 관리 및 명성에서 어려움을 발생시키는 지점이 될 것이다. 현장관리 인력에 대한 편성이 절실한 상황으로 읽혀진다.
실질적으로 유휴공간을 활용하고 이에 대한 리모델링을 원활히 계획적으로 할 수 있는 바는 국공립 기관의 역할이 크다. 자본의 지속성과 하드웨어의 안정적 확보가 그것이다. 지금 광주에는 생각보다 꽤 많은 레지던스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다. 단, 관의 사업을 받아 민간 기관 및 단체에서 프로그램을 꾸리고 있는데, 여기서 한계는 프로그램으로서는 지속할 수 있되, 기관의 지원이 없으면 항시 운영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불안정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안정적인 공간유지는 당연 힘들다. 이에 애초부터 일회적인 프로그램으로 기획을 한다거나 혹은 지속적인 프로그램에 대한 비전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후년 사업에서 또한 도맡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기 힘들기 때문에 애초의 뜻을 의기 있게 펼친다는 것이 실상 쉽지만은 않다. 여기에는 좀더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2) 소프트웨어의 실재
창작스튜디오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근간으로 한다. 광주에서 이뤄지는 레지던스 프로그램들을 놓고 분석해 보았다. 대상은 지역작가를 기반으로 하여 국내작가와 해외작가들이 참여하는 형식이며, 개인 작품 창작활동과 작가 프리젠테이션, 오픈스튜디오 및 결과보고전이 그 주요 골자로 있다. 광주시립미술관의 경우 여기에 북경을 투어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며, 대부분 남도지역의 풍부한 문화를 직접 체험하고 답사하는 투어프로그램이 여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또한 일부 해외작가들이 왔을 경우, 매칭프로그램으로 지역작가와의 네트워크를 매개하기도 한다. 여기서도 지속성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실제로 민간단체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광주시의 국제교류 차원 내지는 창작기반 조성을 통해 한정된 기간 내에서 한정된 비용으로 진행해야 하고 관리자들은 대부분 서류처리에 바빠 현장을 돌본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한 한계가, 각 단체 및 기관에서 이를 염두하고 시작해야 하겠지만, 경험적으로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또한 여전히 각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일회적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앞서 언급했듯 분명 상존하기에, 그래서인지 프로그램 상에서 특별히 차별성이 보이지 않아 못내 아쉽다.
전문기획자의 부재로 인해, 기본 골격을 쫓는다 하더라도, 보다 면밀히 갖춰져야 하는 프로그램 편성에 대해 예민한 날을 세우지 못하는 역량적 한계가 또한 분명 존재한다. 예술가들은 공모전의 명성을 대체하는 경력으로서 끊임없이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찾고 있는 현실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 주관처에는 프로그램에 대한 차별성과 깊이를 끌어내고자 하는 전문가가 부재하다. 어떤 기대로 예술가들을 맞이하고자 하는가? 우선적으로 전문가와 관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행여나 일회적으로 진행할 수 밖에 없는 운명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대한 분명한 목적성이 있어야 한다. 예술가는 그 목적성을 검토하고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임해야 할 것이며, 그러한 요소들이 사례로서 점검되고 기록되고 네트워킹 되어야 이후 계속되어 확산될 창작스튜디오 건립에 대한 방향성을 논하는 담론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아시아문화특화지구 사업으로 편성되어 있는 구도심 예술의 거리나 대인시장은 각자의 차별성을 지닌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예술의 거리 '2010아트로드프로젝트'의 경우, 독립예술 및 공연을 기반으로 한 '아트살롱 PLUG'내에서 일반인 대상 워크숍 교육(밴드, 필름, 출판, 연극 등)을 진행할 수 있는 기준으로 예술가를 선정하여 시각예술로만 편중되어 있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타장르 창작활동 독려 및 시민대상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10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의 경우 시장에서의 미션을 수행할 수 있는 조건으로 예술가들을 모집하여 운영 중인 것으로 안다. 그리고 '아트스페이스 미테'의 경우는 지역의 젊은 작가 네트워크 및 아시아 작가들의 네트워크를 엮는 '교류/교환 전시'를 기반으로 한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매개공간 미나리의 경우 광주전남권 작가를 작업계획서에 따라 선발하고, '디아스포라'를 기조로 하여 일본과 카자흐스탄 교포 및 현지 작가들을 상호교류가 지속가능한 단체를 직접 접촉하고 섭외하면서 2010PAAD를 구성하였다. 또한 협업미션으로 시장 내에서 '정원'을 주제로 한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각기 한계는 있으되, 차별적인 지점에서 특성화하고자 하는 여러 시도들에 대해 주목할 부분이 분명 있다. 또한 이를 기본적으로 도심의 유휴공간을 활용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주요사례들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와 같은 부분들을 일차적인 고민의 전제로 끌어안으면서, 그렇다면 광주에서 구도심 재생에 있어서 '유휴공간 활용'과 '문화예술활동 내지는 창작스튜디오' 조성에 대해 가장 주목받았던 사례였던 2008/2009 대인시장에 대해서 살피기로 한다.
3) '소프트웨어'의 역할 : '태도'와 '하드웨어'
_ 2008/2009 대인시장 현장예술프로젝트 중심으로
지난 2008광주비엔날레에서 주 전시가 아닌 보조전 형식으로 진행된 '복덕방 프로젝트(2008 광주비엔날레 제안전)'의 파장은 오히려 주 전시보다 더욱 주목받는 성과로 이어졌다. '복덕방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물적교환의 장소이자, 또한 정보교류의 역할을 했던 '복덕방'에서 모티브를 딴 것이다. 이것이 예술프로젝트로 진행되었을 때, 그 주요 핵심은 다음과 같다. 예술가의 창작노동이 자폐적인 작업실 구조가 아닌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서 그들과 감정적인 교류를 하면서 정적인 가치로서 그 교환가능성을 실현해 보일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고, 중앙에 비해 지역 예술이 그렇듯, 도심공동화와 현대적인 시설의 대형마트들이 곳곳에 생기면서 점차 그 활력을 잃어가는 '재래시장'이, 이 프로젝트의 실행에 있어 장소성(site-specific)이라는 중요한 근거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수회에 걸친 국제적인 비엔날레 행사가 개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광주 지역예술계는 큰 탄력을 받지 못했다고 공공연히 평가되는 사례를 듣게 된다. 한편 시장 상인들의 협력과 지역예술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인하여 '복덕방 프로젝트'가 한편 성공을 거두면서 국제적인 행사 치르기에만 골몰하던 광주광역시 역시도 이 프로젝트의 가능태를 살피면서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프로젝트 초기 단계에서 대인시장은 입구 쪽 회센터를 제외하고 한 낮에도 손님이 거의 드나들지 않았고, 눈에 띌 정도로 많은 빈 점포들은 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욱 배가시켰다. 대형마트와의 경쟁력을 갖기 위해 각종 현대화사업을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는 전혀 없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뭔가 대안을 찾고 있던 시장 상인들에게, 빈 점포를 예술가의 작업실로 혹은 전시실로 바꿔보고자 하는 프로젝트 팀의 아이디어는 어찌 보면 대단한 활력소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시장 상인들의 호응 하에 예술가들이 시장 곳곳을 점유하며 채워나가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다.
비엔날레가 끝난 후 복덕방 프로젝트는, 관의 지원을 받고 또한 '매개공간 미나里' 가 시행처가 되어 다시금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2009 대인시장 공방거리 조성사업)'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때부터는 그 파장 속에서 미술인 뿐 아니라 VJ, 공연가, 문학인, 지역 대안언론, NGO단체들까지도 문화활동의 실험장으로서 대인시장을 바라보고 이에 함께 참여하였다. 재밌는 것은 많은 지역민들이 오가고, 또한 타 지역에서 방문한 관심 있는 사람들과 혹은 이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하고자 하는 타 지역 관계자들이 연이어 오가면서, 국밥집 외에는 딱히 먹거리가 없었던 대인시장에 저렴한 분식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시장 사람들의 작은 바자회로 간혹 비정기적으로 열렸던 '풍물시장'이 지금은 하루도 쉬지 않는 '벼룩시장_장깡'으로 점차 그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그 누구도 그것이 지역에 또한 타 지역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대단히 회의적이었고, 또한 지역에서의 예술 활동이기에 주목받을 리 없다고, '어려움'에 대해서도 격려가 아닌 비난이 우선이었던 일부 풍조는 너무나도 일반적이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문화예술을 통한 재래시장 활성화' 정책에 맞물려 그것이 성공한 사례가 드문 탓에 대인시장은 개발정책으로만 일관하는 현 정세에 예술과 문화의 숨결이 그보다 더한 가치를 생성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은 상징적 장소가 되었다. 예술가는 시장 상인들과 언제서 부터인가 이웃이 되었고, 시장 상인들은 멀게만 느껴졌던 예술을 자신의 일터에서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를 향유하고 또한 예술활동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표현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현장예술 활동에 대한 무수한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점검하는 시기를 경험할 수 있었다.
2009년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가 '대인시장 공방거리 조성사업'이라는 기관의 취지와 매개공간 미나리가 전통시장에서 예술가 활동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지점에서 이 프로젝트가 진행된 이후로 40여개의 빈 점포는 현재 예술가의 자율입주의 형태로 지금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전통시장 활성화의 문맥과 예술인 창작활동의 자폐적인 환경 극복 및 공동체적 예술가촌이 형성된 것은 분명 2009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의 성과라고 보여질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기관의 지원으로 진행된 사업이었던 탓에 2010년에는 사업팀이 바뀌어 프로그램 문맥이 전면 수정되었다. 애초 2009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 팀이 지속적으로 꾸리고자 했던 실험이 연계맥락을 잃게 된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매개공간 미나리의 창작스튜디오 및 프로그램들이 대인시장과 함께 하기에 여전히 그 실험은, 물론 계속 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이 같은 과정에서 체득하게 된 바는 최종 목적을 향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속성이 기관과의 공조 및 신뢰를 통해서 함께 지속될 수 있는 지에 대한 일종의 회의감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 소프트웨어를 지닌 프로젝트 사업팀과 하드웨어의 안정적인 확보를 담보할 수 있는 기관과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금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다소 객관적인 견지에서 유휴공간 재생에 대한 소프트웨어와 창조도시에 대한 입장을 3부에서 정리해보기로 한다.
II. 태도와 인식의 합의
1. 최종 목적에 대한 '충분조건'
특질1. 자발성 & 자생성
특질2. 장소성 & 역사성
특질3. 기관공조 & 안정성
Turning Point1. 특질1+특질2 : 기획의 근거문맥 제시
Turning Point2. 특질1+특질3 : 실험적・차별적 프로그램 지원
Turning Point3. 특질2+특질3 : 구도심 유휴공간 선택과 선점
4 Goal. 특질1+특질2+특질3 : 문화예술을 통한 도심재생과 활성화
특질1은 자기 활동에 있어 근본적인 고민과 문맥, 그리고 이미 실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비젼과 진정성을 지닌 전문가 및 단체를 말한다. 이는 기획의 지속성을 향한 '태도와 의지'를 표명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것이 일회적이고 이벤트적으로 흐를 수 있는 여지를 애초에 지양한다. 특질2는 유휴공간이 문화공간화될 때 유휴공간 자체의 흔적과 역사를 지속시켜 이를 문화자원화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이는 비어있는 공간에 대한 단순한 임대와는 차원이 다르다. 왜 이곳에서 그것을 하고자 하는지, 왜 이곳이 그 활동에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아카이빙 활동을 접목할 수 있는 지점에서 뜻해야 하는 바다. 특질3은 공적인 공조와 협조체계를 통해 사업의 혹은 공간의 비젼을 지속할 수 있는 안정성에 대한 부분이다.
따라서 특질1(자발성&장소성)과 특질2(장소성&역사성)가 만들어내는 터닝포인트는 '기획의 진정성과 탄탄함'이다. 이것은 가장 기본적으로 소프트웨어의 질을 결정한다. 특질1(자발성&장소성)과 특질3(기관공조&안정성)의 터닝포인트는 '애초에 실현하고자 하였던 프로그램'의 질적인 고양에 대한 기대와 그 지속성을 담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특질2(장소성&역사성)와 특질3(기관공조&안정성)의 터닝포인트는 구도심 유휴공간의 문맥과 선택(임대)을 통해 지역성을 살리면서 타지역과 차별적인 지점을 형성하는 것으로, 공간에 대한 창조적인 재생을 가능케 하는 '하드웨어 조성' 전제 요건이 된다. 마지막으로 특질1(자발성&장소성)과 특질2(장소성&역사성), 특질3(기관공조&안정성)은 문화예술활동 및 창작스튜디오에 대한 그 모든 사항에 관련하여, 구도심 유휴공간이 새로운 창조공간으로서 재디자인되고, 구도심 활성화를 이루고자 하는 우리의 최종목적지가 된다. 이러한 내적 전제가 있어야만 구도심 활성화에 대한 이상적인 근간이 마련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내용적으로 '비평'과 '인문학적 담론 및 상상', '아카이빙'에 대한 연구가 동시에 수반되어야 하며, 외형적으로는 우선적으로 전문 관리 인력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공간 임대와 운영에 대한 안정성을 확보해낼 필요가 있다.
2. 최종목적에 대한 '필요조건'
- 창조도시 : 문화개발주의 지양과 클러스터를 통한 네트워크 강화
'문화중심도시' 광주가 '창조도시'로서 역할을 자임해갈 것이라는 의지 하에는, 지역의 활동가들의 네트워크 및 이에 대한 정보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 네트워크는 속빈 강정으로 하드웨어만 넓힐 위험이 있는 기관주도의 대안 없는 '문화개발주의'에 제동을 걸면서, 실질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자문역할을 할 수 있다. 시각예술 외에도 광주에는 나름의 역량이 있는 각 장르 단체들의 왕성한 활동이 있음을 시시때때 확인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동일한 장르끼리의 공고한 결집체에서 새로운 무엇, 창조적인 내용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터라, 그 내용들은 충돌과 재배치 그리고 혼성을 통하고, 동시에 자신이 서있는 위치를 다시금 인식할 수 있을 때 발생하는 것이라 늘 확신하고 있다. 따라서 그 시작으로 문화예술 네트워크를 클러스터 개념에서 재편해보려는 연구와 시도가 필수적이다.
- 유휴공간 활용 : '휴머니즘적 도시계획'
또한 '창조도시'를 표방하고 유휴공간의 활용이 중요한 테제 중 하나라면 거기에는 반드시 인문학적인 감성이 깃들어져 있어야 한다. 이는 공간의 역사와 도시구상의 근원적인 문맥을 인문학적 뿌리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단순히 해외 사례에서 '창조도시'를 표방하는 지역 현장의 겉만 훑거나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례에서도 '사연'에 감동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 사연 안에서 우리는 인간을 발견하고 유기적인 생태계로서의 도시를 발견할 수 있다. 도시의 역사와 문맥과 사연은 그 속에 자연물인 인간의 특성과 그들의 욕구와 요구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 도시계획은 단순개발이 아니라 문맥 속에 놓여져야 하며, 더불어 그 문맥 속에는 '창조도시'를 비젼으로 하는 도시가 보다 창/조/적/인 행정을 통해 문화예술 활동 및 사업, 도시계획에 대한 유연함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함의한다.
- 대상지 : '익숙한 우리 동네'
땅값이 비싸서, 혹은 비어있는 공터 자체에 대한 접근으로 지난 시기 만들어진 대부분의 문화예술공간은 항시 일반인들에 대한 개방성 및 접근성이 떨어졌다. 그러나 이제 기회를 맞이한 것 같다. 새것이 좋았던 그때에 비해, 지금의 테제는 일상 동네에 비어있는, 혹은 과거의 영광이 있었으되 귀신처럼 남아있는 안타까운 공간들, 어린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익숙한 동네에 대한 접근이다. 우선적으로 사람들에게 공간적 위치가 인식이 되어있고 익숙한 부분이 있기에, 더욱이 커뮤니티 문화예술 활동 및 사람들에게 자존감과 여유를 줄 수 있는 문화예술 활동 참여의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도심 유휴공간의 재생이 항시 매력적인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IV. 결론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그러나 '보이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가치에 대해서, 본고는 특히 강조한다. 물론 <표1>은 대단히 이상적인 논지이며, 실무적으로 그 뜻을 지속하기 쉽지 않지만, '개발'과 '창조', 자세하게는 '단순 근대적 발상의 개발주의'와 '창조적 접근을 통한 도시개발'의 차이를 만약 우리가 인정할 수 있다면, 우리가 감당해내야 하는 것이 단순히 '머리'와 '일'로써 도모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또한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언제나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찾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 차별적인 목적성을 감지해야만 광주가 창조도시로서의 '터닝포인트'를 아무려면 제대로 겪을 수 있으리라 판단한다.
더불어 본고는 유휴공간의 논의는 하드웨어에서 시작하여 그 활용도를 논할 것이 아니라, 다각도로 논의 이전에 대해서 기초문답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시개발의 태제에 '태도적 면밀한 접근'과의 팽팽한 긴장이 있어야만 '창조' 개념을 보다 바람직하게 구체적으로 입장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긴장감은 현재의 보편적인 일상과 역사적인/장소적인 특수성 사이에서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문화적 촉매제에 다름 아니며, 이는 기존 성공한 몇 가지 사례들 속에서 입증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또한 하드웨어에 있어서도 관리기반 내지는 자본구조, 안정성에 대한 논의가 동시에 필수적이다. 이는 어찌보면 애초의 진정성을 지켜낼 수 있는 수단이자, 현학적인 담론근거를 실천성 속에서 내비치고, 대중적인 지지기반과 더불어 문화계 지형 일대에 시각적인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이는 동시에 한 도시의 이미지와 브랜드 정착을 위한 핵심 개념으로서, 그 기능을 섭렵할 수 있다.
태도적 진정성은 '랜드마크화' 되어야 한다. '랜드마크화'는 다양한 영역을 포섭하지만, 특히 하드웨어가 정신사에 미치는 것 뿐 아니라, 유휴공간의 활용에 대해서 그것이 지닌 다양한 이야기와 시민주체가 납득하고 참여할 수 있는, 혹은 교육적이고 전문화된 담론이 내재화된 프로그램이 하드웨어를 어떻게 특징지어 가는지에 대한 부분도, 보자면 유휴공간 활용에 대한 명분을 공고히 할 수 있기에 대단히 중요하다. 이에 대해서 지금 현재 광주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연계할 수 있는 지점은 구체적이고 목적이 뚜렷한 프로그램이다. ■
<참고자료>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 : What is the real?], 최윤정, 2010_경기창작센터 포럼발제문
[창조적 도시 : 국내외 움직임과 사례, 추진기법], 오민근 2009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화공간화 정책], 송시경, 2010
[더 새로운 실크로드를 향하여-아시아문화허브로 가는 길], 홍익대 산학협력단, 2010
2010Gwangju Biennale(BeArt Article)
비아트 기고
2010 광주비엔날레 '만인보' 독해
글 ● 최윤정
Intro. '만인보' 고은 작가가 노벨상 수상후보자 등극
훌륭한 역사와 지력을 지닌 '만인보'의 탄생비화와 더불어 우리나라 고은시인의 노벨상 수상 후보자 소식이 비엔날레를 달구고 있다. 현대미술의 총화, 동시대와 미래적 예술의 향연인 '비엔날레'와, 제목과 문맥적 상징으로 차용하였던 문학작품 '만인보' 사이에 끈끈한 관계가 이후 비엔날레의 세계적 명성을 다시금 공고히 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했다고 외곽(?) 주변이 유난히도 시끄럽다.
의미와 의도와 시도와 정의 사이에서 여하간 비엔날레라는 미술권력과 노벨상이라는 상징권력이 2010광주비엔날레 '만인보'를 기억할 수 있는 하나의 기반을 공고히 할 수도 있을 테지만, 그저 그냥 그러한 사실에 모두가 의연하고 세련되게 대처하길 기대할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이 전시가 광주비엔날레를 보다 위치적으로 유의미적으로 전문적으로 존속해갈 수 있도록 순수한 전시자체로, 열정적이고 젊은 총감독과 뜻을 함께 한 주변 관계자의 의기와 노고, 사연들에서 좀 더 중요하게 읽혀졌으면 하는 미래적인 바람인 것이다.
#1. 발견한 의제
'개인의 일대기가 사진매체로 하나의 역사로 기억되고, 개인을 담은 사진은 이미지 자체로서 역사화 되었다. [예징루, 퉁빙쉐가 발견한 앨범]'
어느 한때 나의 기억을 담고 있는 사진들에서 묘한 기운을 느낄 때마다 현재까지 나의 일대기를 정리하게 되고, 혹은 기억도 안 나고 다소 낯선 경우에 사진은 이미 나의 기억감정과 무관한 그 자체로 자리하여 애초의 사연을 숨긴다. 한 인간의 순수 개인적 일대기를 간직한 사진들이 이미 당사자와 별도로 그 자체 이미지의 역사가 되어 그것이 생성된 이유와는 무관한 존재근거를 갖기도 한다. 바로 그 경험이었다. 관심적인 이미지에 대해서 그것이 지닌 스토리에 우리는 분명 주목을 하지만, 그것이 컬렉션으로 예술작품의 현장에 놓여진 순간 보편적인 견지에서 형식과 내용에 주목하게 되는 것, 이때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미지의 역사化'에 대한 문제였다. 2010광주비엔날레에 있어 '만인보'의 일차적인 의미와 '이미지의 역사化'에 대한 내용이 이번 전시를 읽는, 본 리뷰의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2. 의제_ '만인보'
이번 2010 광주비엔날레 '만인보'는 다시금 "사람과 이미지간의 관계와 이미지 자체에 대한 인간의 욕망", 관계적 역사에 대한 기록의 대서사시를 상징한 제목으로 차용된 것으로 안다. 특히 올해 5.18 30주년을 맞이하여 '광주'라는 역사적 도시의 성격을 아시아 및 제 3세계의 정치, 사회, 문화사를 엮는 일종의 아카이브적인 요소로 보편적인 대중들이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는 요소들을 잘 감지해냈기에 타이틀이 그다지 무색해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만인보' 작품의 문맥과 상징을 떠나서도 그것이 전시의 타이틀로 사용되었을 때, 이미 2010광주비엔날레의 작품들 경향에 대해서 감상자들에게 일차적인 이해도가 마련되었다고 본다. 그것은 아마도 내용에 대해서인데, 우선 의미 있게 바라본 몇 군의 작품들을 거론하고자 한다. '캄보디아 투올 슬랭 사진 컬렉션' 및 '테디베어 아카이브', '코트야드 컬렉션', '신로 오타케의 스크랩북' 등 예술작품을 바라보는 개별화된 이미지 담론으로서 라기 보다는 스펙터클한 기억감정 내지는 심적 과부하로 그 규모에 감탄하게 되었다는 말이 더욱 적절해보인다. 이 경우 대중적인 호감 및 감상에 있어 기본 전시문맥을 잃지 않고 갈 수 있는 매개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의미있게 본 작품은 우웬광의 수백 시간에 걸친 농부들의 일상을 각자 촬영하게 하고, 이를 1인의 시간으로 개별설치하며 동시에 참여자 전체의 일상적 시간이 한 공간에 배치된, '우리마을'이다. 이 작품은 주관적 촬영자에 의한 자기 삶의 기록이라는 의미에서 아카이빙의 기존 '대상화'전략에 대해서 '주관과 참여', '자기기록'이라는 새로운 문맥을 담는다. 마치 김지혜<대추리 심리적 기억지도>의 또 다른 영상적 표현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특히 애착이 많이 갔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한스 피터-펠트만의 9.11테러에 대한 9.12일자 세계 신문언론의 1면 헤드라인 기사 아카이빙도 눈에 띄었는데, 무역센터의 상징성과 일방적 국수세계대전 시도의 기폭제가 되었던 9.11이 갖는 스펙터클한 역사에 대한 공동 기억을 일차적으로 끌어올리되, 그 어느 국가도 그것이 1면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묘한 감정을 느끼게 했던 작품이다. 마치 베이징 올림픽 때문에 '티벳의 자유'가 묻히고, 월드컵으로 인해 묻혔던 '수많은 아픔들'이 외면되었던 기억이 왜 이때 괜시리 떠올랐는가 말이다. 그만큼 미국의 존재감과 전쟁에 대한 기대 혹은 공포에 대한 보편적인 시선들을 담아내고는 있으되, 개인적으로 무수한 사건들이 유령처럼 전세계 9.12일자 신문 1면 주위를 떠돌아다녔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무너지는 무역센터 사진 곁에 기사규모를 달리한 각국의 사건사고들에 대해서 나의 시선은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작품들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막시밀리오니 감독이 지닌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그 지평에 대해 감탄을 마지하지 않았다. 극히 이것은 기획자로서 막시밀리오니 개인에 대해 갖는 호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그 중 또 하나는 협업 큐레이터 없이 총감독 재량으로 본 전시를 이끌었다고 하는 점, 특히 이점은 기존 비엔날레 전시들이 시선과 동선에 대해서 '통솔'에 실패했다고 보는 관점에서 그리고 전시연출에서 항상 감상자를 대상화시켰던 난해함에 대해서 상당 극복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수많은 작품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고 적당한 동선으로 관찰할 수 있었던, 그리고 수많은 텍스트가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구성으로 인해 어렵지만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형식적인 묘미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이 전시를 둘러싸고 "평이하다, 대중적이다, 몸을 너무 사렸다, 특성적이지 못하다" 라는 일견 판단들 속에는 기존의 비엔날레 전시의 형식적 구성이 난해했던 사실에 익숙한 바, 바로 전시연출방식의 편안함에 기인한 바도 심리적으로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한다.
#3. 의제_ '이미지의 역사화'
'이미지의 역사화'에서 '이미지의 역사', '이미지사'가 본 글의 주요 테제로 읽혀질 것이다. 실제 이번 전시연출의 형식적부분의 일관성에 대해서 나는 분명 칭찬을 마지하지 않았지만, 미시적인 접근에서, 즉 전시된 작품과 내용적 깊이에 대해서 일부 나는 여전히 내 의견을 확정하지 못했다.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가들과 지금 동시대미술에서 중요한 위치로 다가가는 작가들, 신진작가들의 구성이 편향되지 않고 골고루 배치되었던 부분에서 총감독의 광주비엔날레를 대하는 또 다른 시선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일관된 주제 안에서 펼쳐지는 전시인 만큼 작품과 주제의 밀착도도 대단히 성실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왠지 시선의 깊이가 대단히 '서구적'이고, 다소 '고루한' 부분이 있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여기서 말하는 아시아성과 제3세계의 사회사 및 이미지에 대한 담론들은 객관화하기에 충분할 만큼 익숙한 부분들이었다. 말하자면, 내용적으로 이 전시가 추구하는 담론들에 대해서 어떤 부분에서는 대단히 강한 정도로 '그래서? 지금 여기, 이곳에서 바라보는 중요한 쟁점과 이슈, 현재도 일관되게 지속되는 폭력의 장면들, 움직임들'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섬세한 기획에서 다소 탈장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무언가(강자와 약자, 관계, 권력과 민중, 봉기와 혁명의 역사, 아시아와 제3세계 투쟁의 역사, 죽음)에 대한 오마주'로서의 기록 아카이브로 읽혀지는 부분이 크고, 다소 서구적 시선에서 바라본, 심하게는 '오리엔탈리즘'적 기술로서, 마치 '디아스포라'와 '노마디즘'이 같은 자리에서 일차적인 형식에서 공통된 입장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 같은 오류를 느끼기도 했으니 말이다. 서사는 있으되 사연이 없고, 역사는 있으되 개인이 보이지 않았으며, 작가에 대한 소개가 충실했으되 작품은 그에 따라가 주지 못한 경우도 간혹 발견할 수 있었다.
만일 억측이라면, 나는 최병수 작가의 '한열이를 살려내라' 설치물에서 안타까움을 표출할 수 밖에 없는데, 물론 최병수 작가에게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그를 저항적 예술가로서 자리매김하게끔 하는 역할을 하였지만, 당시 민주화운동 문맥 뿐 아니라 그 이후 그가 계속해서 현대 사회 모순에 기반한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면, 그에게서 꺼낼 수 있는 재 2의, 제 3의 '한열이를 살려내라'에 대한 의제는 또 다른 부분에서 상당했을 것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 최병수에 대한 동시대적 유사 면모 내지는 그가 해석하는 현대 사회 모순에 대해서 접근할 수 있는 기회는 본 기획 틀 안에 전달되지 못했으며, 5.18 전시관에 적합할만한 설치물로, 결국 나에게는 그렇게 읽혀질 수 밖에 없었다.
전체 5관에 시립미술관, 국립민속박물관에 이르는 거대 전시인 만큼 어려움은 짐작하나, 작가 개개인의 작업이 전시주제에 대해 섬세하게 접근하였더라면 '이미지의 역사화'이건, '만인보'에 대한 디테일이 보다 지금 현실과 접목되어 펼쳐질 수 있었을 것이란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안타까움도 그만큼 컸다.
2008광주비엔날레의 전시연출 및 내용들이 다소 산발적이고 과다했다면, 2010광주비엔날레는 그 해석범위가 분명 대단히 정제되어있다. 그리고 스펙터클한 과거사에 대한 기록에 초점이 맞춰져 대중에게는 호응이 높았으되, 전문가 및 관심자 집단들에게는 평이했다는 인상을 지우기는 힘들어 보인다. 기록은 있으되, 동시대성과 연결되는 '무엇', '오마주'로서 그리고 '설명적인' 아카이빙이기 보다는 이에 대해 '들춰냄', '전복, 엿보기' 등 '이미지'가 지닌 특성들로 직관적으로 간파할 수 있는 메타포가 컬렉션형 작업에서 부재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Outro. 이미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한 소/격/효/과_ 그 과제로서 '예민함'의 결합
"이미지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미지들이 어떻게 조작되어 어떻게 유통되는가? 이미지와 미디어를 통한 자아의 구성.. 수많은 사진들로 가득찬 이번 전시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이미지 생산 기계가 되려는 시도를 한다" <보도자료 내용 중에서>
"삶은 연속되는 사진영상_수잔손탁" <보도자료 내용 중에서>
작품에 대해서 개별예술가들의 시선은 작품창작 및 인식적인 자극을 줄 수 있는 요소가 부족했다고 말한다. 특히 사진작업이 많이 구성되어 있어서 지루했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애초에 기획자가 밝힌 의도에서 이미 그 근거들이 충분히 소개되었기에 기획의도 면에서 그의 생각이 자신의 전시에 잘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전체를 통찰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가 주요하게 선택한 예술형식은 분명 존중되어야 한다.
한편 전시를 바라보면서 나는 '비엔날레'가 무엇인지 다시금 지루한 질문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보여야 하는가' 말이다. '비엔날레'가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경향과 진취적인 측면을 소개하고 미술이 할 수 있는,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시대를 읽는 전초기지로서 역할해야 한다는 것이 일차적인 명제라면, 이번 2010광주비엔날레 '만인보'가 일차적 의미의 비엔날레 본령과 일치하였는가 세심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유명한 현대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직접 보고 익히 알고 있지만, 새로운 것으로서 기대했던 작품이기보다는 그것은 국립미술관 전시로서 기대해볼 만한 것들이었다. 물론 그 내용이 이미지 자체의 담론과 대중적 이미지, 역사와 5.18 30주년에 맞이하는 비엔날레로서 내용을 숙고하여 마련되었을 것이라는 배경에는 총감독의 성실한 기획을 존중하지만, 다만 거대 전시이기에 전시주제를 탐구하는데 있어서, 몇 가지 사실들 즉 아시아, 제3세계/ 장소성, 휴머니즘/ 역사/ 권력/ 죽음의 이미지에 대한 인용과 해석, 예술형식을 펼치는 부분에 대해서 예민함이 좀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보도자료와 기획의도에서 언급된 "삶은 연속되는 사진영상_수잔손탁"의 인용에 대해서도, 도리어 나는 스펙터클한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관음증에 대해 사진영상이, 슬픔을 모방하는 '연민'의 시각으로 도리어 역사적 책임에 대한 이성적인 경계를 흐리고 오히려 또 다른 의미의 폭력적인 방임을 야기한다했던 수잔 손탁의 의견이 이 인용 속에 포함되었더라면 어떠했을까 고민하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