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15일 수요일


Concept을 이끌기 위한 고민의 과정들,
一卽多 多卽一, 공동존재의 운명에서 어떻게 자기-통치를 이뤄낼 것인가
 
 
최윤정
독립큐레이터/
성과아카이브팀 퍼실리테이터_2016예술인파견지원사업
 
 
*이 글은 예술인복지재단의 2016예술인파견지원사업에  '성과아카이브팀'  편집책자에 수록된 글입니다. 2016사업을 바라보는 성과지표에 근거하여,  성과아카이브 전시주제 및 구성 연구를 위해 정리한 내용입니다.
 
이 사업은 예술인들에게 일상적인 창작 환경에 비견하여, ‘관계-자본-요청이라는 주어진 조건에서 행해지는 일종의 미션을 던져준다. 미션이라는 용어가 정확하다. 개별의 도전하는혹은 인내하는양상에서 펼쳐지나, 기본 협업을 전제로 해야만 하는 결과물의 방향이 어느정도 사전에 협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개인과 잘 조합이 되는 지의 여부는 차후 잘 적응하거나 혹은 문제로 발생하는 상황들에 의거하여 확인할 수밖에 없다.
나의 고민은 예술가 개인이 해오던 작업 및 경력에 대비하여, 낯선 환경에서 협의된 가치의 팀미션을 수행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로 읽힐 수 있는지 다각도의 시선에서 짚는 것에서 출발한다. 성과아카이브팀은 그간 미션 수행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에 대한 관찰을 활동의 핵심으로 두고 이에 모니터링이며, 인터뷰 등을 진행해왔다. 매끄럽지 못한 상황들이 낳는 어려움들, 이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정책적인 사안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고, 갈등에 대한 협의기구 -정당한(권한이 개입되는) 조직/위원회-의 필요성을 해결의 방책으로 공감하기도 하였다.
 
합리적인 소통과 대화의 창구는 시스템의 결합으로서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퍼실리테이터의 역할 안에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당위가 있지만,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뒤섞여, 경직된 조직의 기관이나 기업과의 협업으로 서로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이 명제가 참으로 어마무시하지 않은지. 다만 그 역할에 대한 책임으로 한정짓기에는 현장은 너무도 우연적이다. 무엇이 갑자기 문제화되어 튀어나올는지 언제든 방어와 조율을 할 수 있는 채비가 되어 있어야 하지만, 몰입하는 시간적물리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교적 작은 규모나 유연한 조직, 혹은 예술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는 곳들은 보다 수월하지 않을까도 싶지만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우연들은 비단 협업의 문제에서만 발생하란 법도 없다. 또한 이 경우는 새로운 가치창출새로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다소 모호한 지점을 갖는다.
 
함께 예술하기(협업) / 예술적으로 변화하기(가치창출) / 예술가의 성장하기(예술가의 역량강화) / 어려움을 이겨내기(위기극복) / 더 오래 자주 만나기(지속성)
 
협업은 일종의 (사업의) 미션으로 설계되어 있는 것이고, 가치창출은 사업의 목적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기관기업 및 예술가 모두에게 사업참여에 따른 변화의 몫을 전제로 한다. 예술가의 역량강화는 위 다섯 가지 논점 중에서 성과아카이브팀이 집중해왔던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보인다. 어찌보면 낯선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경우의 상황들에 대해 그 위기를 극복하는 것과 협업구조 내에서 성취된 프로젝트 지속성에 대한 논의는 예술가의 역량강화의 측면에 충분히 내용적으로 포함될 수 있는 항목으로 읽힌다. 굳이 창작의 순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현장에서의 위기극복과 관계에 대한 지속성을 누가 이끌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주체의 문제를 또한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적 실천이란 여타의 조직적인 실천과는 달리 대단히 개별적이며 다양성과 자유, 비평/비판을 전제로 하기에 이 사업의 전제로서 협업구조란 무엇보다도 창작활동의 범주 속에서 인식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보다 유연한 구조를 위해서다. 기관기업의 우선적인 전제는 우선 예술가들을 주눅들게 만들 것이며, 예술가들이 도구적으로 소용되는 상황에 처하여도 그것이 마땅히 옳지 않다 수정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에 우선적으로 예술가들의 제안에 의한 능동적인 활동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장치 고안이 필요하며, 짜여지는 과정에서는 세부적인 터치가 필요한 경우 어떤 식으로든 멘토의 존재에 기댈 수 있도록 초기 프로젝트 구축 과정에서부터 세밀한 기술이 필요하다. 정리해보자면, 협업의 주체가 이미 자본-미션-장소를 선점하는 탓에 기관기업-예술가간 소통을 동등하게 취급할 수 있다고 설정하는 것은 너무도 개인 윤리에 기대는 순진함이고, 시스템은 그리하여 예술가 실천의 방법론과 예술가 주체의 활동으로서 고안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또한 멘토기능은 예술가 주체로 프로젝트가 조직되고 실현될 수 있게 하는데 적절히 방향을 노련하게 이끌어주거나 기관기업간 관계적 윤리를 상호인지시키기 위함이다.
 
수많은 현장경험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예술가 주체가 비단 치기어린 것이 아니며, 창작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자체가 되었을 때 주변 관람자 혹은 참여자들이 입는 수혜는 그들의 필요에 의해 예술이 소용되고 동원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바라보고 스며들고 따라하고 함께 하고, 마지막으로 예술이 그들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상존하게 되는 것. 자생성과 자발성과 능동성 등 자긍심의 모든 수식어들이 이 창작활동에 관여하게 되며, 다시 말하자면 모든 현장의 활동들은 예술가가(창작자체가) 주체가 되었을 때만이 모두가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그것은 기대하던 것 이상의 효과를 발휘할 것이며, 굳이 5가지로 사업의 성과에 대해 논하지 않더라도 마땅한 울림을 일으킬 수 있다. 어쩌면 미션으로 전제한 협업이 단지 6개월의 이벤트에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자간 그 이후를 고민하고 상상하도록 그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전제도 우선 그것이다. 따라서 이 과정들을 제안하고 생산하고 분석하는 틀로서 또한 예술인복지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고찰까지도 접목할 수 있다면, 예술가들의 활동에 대한 2016성과아카이브의 주방향은 예술가의 역량강화를 그 중심에 놓지 않을 수 없다.
 
큰 목표로서는 예술가들의 활동이, 결합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참여기관 및 예술가 활동에 대한 인식의 지점을 파견에서 창작주체로서 바꾸는 일, 그리고 예술가 개인에게는 자기 창작과정에서 관계를 통해 공동존재로서 협업지점을 통해 작업의 계기를 확대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단순히 물리적인 생계 기반에 영향을 미치는 복지의 의미를 넘은, ‘예술인 복지의 의미를 스스로 고민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 그리고 공동존재로서의 협업 활동이 개인의 존중을 기반으로 한 관계성의 영역에서 유효하며, 이것이 예술가 활동의 영역 확장 내지는 확보에 대한 요소와 직결한다는 점을 설득하는 것.
 
아래는 위의 고민의 과정을 거친, 거친(tough) 개념어들이다.
 
一卽多 多卽一: 존재론_‘공동존재/ 실천목표 : ‘자기통치
 
공동존재로서의 나, 관계의 통치 혹은 자기-통치에 대한 전제로서 공통으로 인식할 수 있는 一卽多 多卽一 일즉다 다즉일은 물론 불교의 존재론적 세계관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지만, 여기 열명의 사람이 있다면 나를 제외한 열명이 아니라 나를 구현한 열명이고, 나 또한 그 열명을 구현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즉 단순히 개인이 모여 사회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사회(전체)를 표현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쓰여질 수 있는 말이다. 세계 속에 처한 자신의 역할을 감지해내고, 자기에게 놓인 관계망 그 언저리에서 끊임없이 세계 속에 자신을 표현하거나 자기 존재의 메시지를 투척하는 존재들. 그 메시지란 때로 관계를 해체하거나 파괴하고 그와 동시에 또한 새로운 요구에 의한 구축과 생성으로 세계를 이어나간다. 여기서 내가 사용하는 자기는 오로지 개인을 지칭하기 보다, 전체 혹은 관계적인 문맥을 표현하는 개인의 의미이다. 세계 속에서 자신을 구현하고 표현하는 일, 관계적인 문맥 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성찰하는 일 이 모두는 예술가 자신이 자기-통치의 실천을 꾀하는 방식으로 읽힐 수 있다. 그것이 과정을 지향하고 끊임없이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을 요구하고 또한 갑작스런 확장의 단계에서 자신을 주춤하게 만들더라도, 이 모두는 스스로 자각하고 조직하는 주체로서 예술가들이 자기-통치의 기술을 습득해가는 과정이다.
 
一卽多 多卽一, 공동존재의 운명에서 예술가는 어떻게 자기-통치를 이뤄낼 것인가
이는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의 근간에서부터 운영방식의 시작에서부터 이끌고 가야 하는 당위로서 제안해보는 바이며, 또한 이를 전시(프로그램)개념으로 하여 예술인들의 2016년 활동을 기록하고 점검하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각한 시민’, ‘조직하는 시민’, ‘정치와 권리의 주체등 복지에 대한 개념을 (비용지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사업의 당위성과 참여자의 인식적 범위 안으로 설득할 수 있는 그러한 아카이브 전시여야 한다.
 
 
이러한 문맥을 가지고, 기획될 프로그램들이 어떤 구조를 지니고 구성되어야 할 것인지 아래와 같이 간단히 정리해보았다. 말하자면 일종의 제안인 셈이다.
 
< 원소스 생산 >
성과아카이브팀 활동의 시작과 함께 본 프로그램을 구성하기 위한 공동리서치가 시작된다. 리서치는 예술가가 성장하는 역량강화의 문맥 속에서 그 활동들이 읽히는 다양한 지점들을 특성별로 해석하고 이 내용을 합의하고 공유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전시의 목적과 명확한 타겟을 설정하는 데에 합리적으로 도달할 수 있다. 또한 이는 이번 성과아카이브팀들이 실제 진행을 해왔던 것으로서 각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연계하고 실행하는 가장 기초적인 자료생산과 방향성 설정을 의미한다.
< 프로그램 구성 및 기획의 방향 >
전시
30일간, 5개팀(참여예술가 30인 정도), 주제별 팀 설치작업
라운드테이블
1차 라운드테이블
2차 라운드테이블
3차 라운드테이블
4차 라운드테이블
잡마켓
1~2일간, 퍼포먼스를 결합한 축제의 컨셉
 
1. 전시프로그램 : ‘예술인의 역량강화를 중심으로 하여 협업과 가치창출, 위기극복과 지속성에 대한 파트별 주제를 통해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의 향방과 정책에 대한 담론을 생산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여지를 예술가주체가 제안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각 주제에 대한 1차적인 해석과 선언의 방식 혹은 단순한 활동기록이기보다는, 예술가 더 나아가 대중의 공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예술_전문기획의 영역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 전시팀 구성
1) 2016년도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의 향방과 각 기관별 예술가들의 활동을 리서치해온 성과아카이브팀안에서 5개의 주제(함께 예술하기(협업) / 예술적으로 변화하기(가치창출) / 예술가의 성장하기(예술가의 역량강화) / 어려움을 이겨내기(위기극복) / 더 오래 자주 만나기(지속성))를 기반으로 5개의 팀을 구성한다.
 
2) 5개의 팀은 예술인파견지원사업에 참여했던 예술가들을 각 팀당 3~5인으로 구성하고, 방향성과 조율을 위해 성과아카이브팀의 일원이 팀리더를 맡는 방식이다. 팀리더는 각 주제별 해석을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예술가들을 섭외하고 그들과 주제에 대해 심화작업을 거치면서 1개의 주제당 다양한 장르가 섞인 팀설치작을 구성한다. 시각예술, 공연예술, 출판 등이 혼합된 총 5개의 설치작이 신작으로 발표되는 형식이다. 이에 총괄기획자는 각 팀별 작품 개개에 대한 간섭보다는 주제별 조율과 가능한 실현방식을 지속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개방된 큐레이팅을 통해 5개 팀이 집중하는 담론들이 다양하게 혼합되어 구현할 수 있도록 조절하는 협의자의 역할을 지향한다.
 
2. 라운드테이블
전시기간을 한달 정도로 잡았을 때 4회 안으로 각 주제별 담화의 자리가 마련된다. 이는 또한 추상화된 원론을 펼치는 장이기 보다, 실제 문제가 되었던 지점 내지는 사례발굴을 통한 담화의 자리이며, 녹취 등 기록작업을 통해서 출판물을 생산한다. 이 작업은 전시프로그램의 담론을 현장의 실천적 영역에서 읽힐 수 있도록 하는 기능도 갖는다. 덧붙여 이 한 달의 라운드테이블 기간은 잡마켓만으로 현장의 상황들을 가늠할 수 없는 예술가들에게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의 취지와 예술가들의 활동이 갖는 연속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며, 동시에 예술가, 재단, 기업 및 기관에 대한 멘토링으로 연결되는 맥락을 가짐으로써 2016년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출발로 연계하는 지점이 될 것이다.
3. 협업과 연계_야외 잡마켓
참여기관 및 기업이 참여하는 잡마켓이 전시오픈과 동시에 야외에서 1~2일간 이벤트로 펼쳐진다. 단순히 소개부스가 아니라, 퍼포먼스를 결합하여 기관 및 기업의 색깔과 활동의 방향성들이 참여를 원하는 예술가들의 관심을 환기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여기에서부터 미션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활동을 요청하고 설득하는 컨셉이어야 한다. 서로의 위치를 동등하게 설정하면서도, 예술인의 활동이 도구화되지 않아야 한다는 고민 속에서 기획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예술가들과의 협업 즉 예술가의 활동이 주축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잡마켓의 구인구직을 위한 기계적인 행사이기 보다, 그 시작에서부터 함께 하자는 축제의 장으로서 변모할 필요가 있다. 예술인복지재단 중심으로 기획을 하되, 초기 기획의 맥락에서부터 예술가 집단 혹은 성과아카이브 전시구성과 함께 논의하는 면밀한 케어가 필요하다.
위 세 가지 프로그램은 공동존재 안에서 예술가들은 어떻게 자기-통치를 이루어낼 수 있는가를 주제로 하며, ‘예술인복지의 방향성과 그 의미를 예술가들이 주축이 되어 실현하는 입체적인 프레임으로 제시한다. 복지란 수혜를 입는 것이라는 수동적인 프레임에서 상생경로의 확장을 발언한다는 것. 상상만 해도 참으로 모////지 않은가. 예술가가 할 수 있는 바는 직접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기 보다는 세상을 바꾸는 프레임을 드러내는 것이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제안하는 매개자들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는데 기여할 수 있는 것이라 늘 염두에 두는 바, 할 수 있는 바가 많지 않은 것 같기도 혹은 그 모든 것 같기도 한 이 모호한 예술의 영역이야 말로 일즉다 다즉일을 구현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2016년 7월 31일 일요일

월간 퍼블릭아트 2016.8/ Utterance. 쓰면 쓸수록 이토록 불편한 글(큐레이터Fee에 대한 단상)


큐레이터피에 대한 단상,
쓰면 쓸수록 이토록 불편한 글
최 윤 정


*이 글은 원문으로서, 퍼블릭아트(2016.8월호)에는  전체 분량의 3/5정도 축약된 분량으로 게재되었습니다.

 

일을 시작한지 엊그제 같은데 얼추 가늠을 해보니 벌써 큐레이터 10년차에 접어들고 있다. 그간 대안공간의 큐레이터로, 현장프로젝트의 기획자로, 국공립미술관의 전시팀장으로 기획의 영역에서 행정관리영역까지 여러 경험들을 축적해온 시간들이다. 현재 나는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고, 그 시간도 벌써 3년차에 접어든다.
최근 평소 일을 선택하는데 있어 내가 어디에 주안점을 두는지, 왜 그것이 나에게 주요했는지 곱씹어보는 버릇이 생겼다. 이는 3년차 독립큐레이터로서 잘 가고 있나에 대한 불안을 조정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최근 선택해서 읽는 자료나 큐레이팅 연구 방향은 일을 위한다기 보다 일에 임하는 명분으로 독립큐레이터로서 만들어가야 할 특색 혹은 나다움을 찾기 위한 지난한 노력에 밀착해 있다.
일에 임하는 태도를 논할 때, 유독 생계형이란 단어를 빈번히 사용하는 편인데, 이 말은 이 글을 풀어나가는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시작이 되었다. 평소 나는 이렇게 주장해왔다. “이 일은 생계형으로 해서는 안 된다이 말은 혹자에게는 일종의 지적 허세를 보여주는 단면으로 읽힐 수도 있고 혹은 진정 현실적인 문제를 실감한 깨달음으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이번 <‘큐레이터 피에 대한 단상>을 주제로 한 글을 편집부로부터 청탁을 받았을 때, 이미 내 삶과 무관하지 않은 이 내용을 어떤 화두로 열어야 할 것인지 고심이 컸다. 또한 쓰다보니 비판적 거리설정을 하기에 상당히 힘들었던 부분도 있다. 할 말은 많지만, 명확히 의미가 전달되어야 하니 가능한 개인의 사연이기보다 큐레이터피를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에서 이를 바라보고자 애썼음을 우선 밝힌다
   
 
1. 우리는 //작 예술인이에요.
 
2014년 공장미술제 이후 젊은 예술인들의 용기있는 발언으로 시각예술인 표준계약서에 대한 논의가 진척되었다. 이후 2015년까지 정책을 위한 공청회들이 열렸고, 관련연구자료들이 줄이어 나왔다. 그 결과 이 내용이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으로 공정한 계약문화 정착을 위한 표준계약서에 반영되었다. 2016년은 국가 및 지자체 예술지원사업들로부터 시작하여 표준계약서사용을 명시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술계 일원으로서, 그간 고질적인 문제들을 인지하고 예술가들이 주체가 되어 공론의 장이 펼쳐지고 이것이 정책으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고무할 만한 일이다. 한편 그것이 현장에서 얼마나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어려움은 다시한번 논구할 필요가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넉넉하지 않은 예산 속에서 펼쳐낼 수 있는 범위가 좁아졌다 한탄하는 점은 납득하기 힘들다.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은 현저히 다르며, 넉넉하지 않은 예산 속에서 누군가의 희생으로 도모하는 큰 일이 과연 누구를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는게 우선이 아닐런지. 적어도 인식적으로나 태도적으로 시각예술 표준계약서를 설계하게 된 맥락들은 시각예술계 구조 안에서 시사하는 바가 분명 있다.
최근 나 역시도 기획을 맡은 프로젝트에서 참여예술가에 대한 처우와 활동범위들을 고민하는 가운데, 표준계약서의 내용들을 숙지하고 있다. 예산확보의 문제에서부터 쉽지 않은 일이기에 사용의 범위를 고심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큐레이터와 작가간의 위치가 역할 상으로 대등하기 보다는 실행과정에서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그에 비해 상대적 약자의 권리는 명시화되어야 하고 이를 고려해야만 한다. 이것은 문제 발생시 양자를 보호하고 합////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편이다.
그렇다면 큐레이터의 경우를 볼까. 자기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독립큐레이터의 경우도 고충은 있다.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기관이며 단체로부터 제약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그 제약은 기관의 특성에서 인정될 수 있는 범위가 있는가 하면, 부당한 경우 제대로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 구조적으로 큐레이터의 노동을 선의의 예술활동으로서만 바라보는 관점에 서 발생하는 문제들도 간과할 수는 없다. 문제는 언제든 발생한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하면 독립큐레이터는 스스로의 역량으로 해결해나가야 한다. 즉 제도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 이 역시 독립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문제 발생시 합리적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편이 절실함을 깨달은 터이다.
시각예술인 표준계약서상에서 큐레이터에 대한 처우 및 내용을 담은 항목들을 찾아보았다. 없다. 참담하다. 그 참담함의 실체를 파보기 위해서 표준계약서 연구에 대한 몇 가지 논문들을 찾아보다가 큐레이터의 직업군이 어떻게 분류되어 있는지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했다. ‘시각예술종사자에서 직업군이 창작예술인비창작예술인으로 나뉘어진다. 표준계약서는 우선적으로 창작예술인을 기준으로 하여 설계되었다. 큐레이터는 비창작예술인에 속한다. ‘비창작예술인이 어떻게 한 단어로 조합될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어찌됐든 그렇다면 나는 공////로 비창작예술인으로 분류되어 있는 것이다.
큐레이터의 생산물, 전시도 엄연히 큐레이터의 연구 창작물이다. 작품이 최소한도의 공적인 근거와 보호를 꾀할 수 있는 저작권을 갖듯이, 큐레이터의 생산물 역시도 개인의 윤리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보호될 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전시는 동시대미술 혹은 미술사의 다양한 시선으로 주제와 컨셉 자체를 독점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여기서의 핵심은 제도적으로 비창작이 아닌 창작물로서 인정될 수 있는 대안적 요소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고, 이는 비창작예술인으로 개념규정된 큐레이터를 직종으로 삼은 당사자 모두가 감당해내야 할 생존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2. 힘이 있는 혹은 없는
 
표준계약서가 주제는 아니지만, 큐레이터의 활동을 바라보는 정책을 포함한 각계의 시선에 대해 논하려다 보니 자꾸 말이 길어진다. 내용상에서 사례비로 구분되어 있는 항목에 다행히 기획비가 있다. 그런데 문맥을 살펴보면 이 기획비란 큐레이터피의 명목이 아니라, 작가가 작품을 창작하는데 있어서 작가의 기획적 요소가 필요한 경우의 항목으로 읽혀진다. 기본적으로 표준계약서의 문맥이 기획자와 예술인 간의 위계적 구조, 착취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시작되었고 이를 조율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편으로 고안된 것임을 물론 알고 있지만, 아티스트에 대한 처우와 큐레이터에 대한 처우가 다르게 논해져야 할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별개인 것이 아니라, 함께 공론화될 지점은 있다. 아다시피 모든 큐레이터가 힘이 있지 않다. 그리고 여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큐레이터 사회 안에서도 위계는 설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또한 문제는 그 위계 아래에 놓인 큐레이터들의 처우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는데, 워낙에 학연과 지연 등으로 네트워킹되는 좁은 사회이기 때문에 소문과 평가는 빠르게 전파된다. 일종의 쑥덕공론이 지배할 수 있는 사회다. 힘있는 큐레이터는 쑥덕공론과 상관없이 활동을 이어가지만, 아직 힘을 키우지 못한 큐레이터는 이를 혼자서 감당해내야 한다. 아니면 일종의 라인업을 형성해야 한다. 몇 해 전 속한 기관의 기관장의 폭정에 대해 문제를 삼을 때, 무수한 연락을 받았다. 걱정하는 이야기들도 있고, 겁주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겁주는 이야기의 핵심은 어느 미술관이나 모두 마찬가지이며, 네가 그런다고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너의 활동에 제약만 생길 뿐이다물론 이에 겁먹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피하지 않고 마주했던 것이 지금까지도 당당히 활동하는 원동력은 된다. 이후 쑥덕공론의 영향을 받지 않기로 스스로 결정하고 별탈 없이 그리 살아가고 있다. 이때는 다행히 큐레이터협회가 큐레이터의 처우 및 권익보호를 목적으로 함께 문제제기를 했었기에 개인의 입장으로 휘둘리지 않아도 되는 아주 행운스러운상황이 마련되었지만, 행운은 흔치 않은 상황에 쓸 수 있는 단어라는 점 그것이 문제다. 문제시되는 지점을 스스로 드러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혹은 큐레이터는 일의 특성상 작가들에 비해 어려움을 토로할 수 없는 존재들인 것도 사실이다.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큐레이터피에 대해 공론화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낀다. 각자는 비용을 어떻게 산정하고 어떤 기준으로 받고 있는지 인터뷰 조사를 시도했는데, 답변은 있었으되 지면을 통한 언급은 대부분 거절한 경우였다. 다만 큐레이터피에 대한 인식이 단순한 인건비의 개념으로서만 다가갈 것이 아님을 인지할 필요는 있다는 의견들은 공통적이었다. 한편 큐레이터피 자체는 큐레이터로서 각자의 위치(몸값)를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것이 공개되었을 때 표준화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 굳이 이 직종이 아니더라도 프리랜서의 삶을 택한 사람들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으로 보인다.
    
3. ‘큐레이터피를 명명하라 / 개념설계의 현실
 
그나마 공사립기관 등에서 게스트의 신분으로 한시적인 기획을 맡는 경우, 기관 자체 내부기준에 의거하여 해당 독립큐레이터의 경력과 연륜, 외부 평가 등을 고려한 큐레이터피가 책정된다. 이 내부기준은 기관별로 각기 다른데, 보통 예산의 10% 범위 내를 기준으로 하되, 게스트큐레이터와의 협상에 의거하여 조정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확보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기준에 의거하여 지출되는 지는 관찰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큐레이터피논의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은 스스로 예산을 확보하여(기금, 펀딩 등) 활동하는 독립큐레이터의 경우에 있다. 우선 가장 정당한 과정을 통해 공적인 영역 안에서 비용을 확보할 수 있는 경우는 각종 문화재단 등의 지원사업기금인데, 보통 큐레이터피/기획비는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기획비이기 보다, 사업관리자 인건비로 여겨진다. 또한 이 인건비는 전체 사업예산의 20%범위를 넘지 않는 선에서 운영비와 함께 설계하도록 되어있다. 또한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보조인력은 필요하다. 결국 인건비는 그 안에서도 다시 재분배되며,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이는 큐레이터피로서 인정되는 사항이 아니다. 누군가는 그나마 책정되어 있으면 다행이지 않느냐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없는 것보다는 낫다. 그러나 예산항목의 규정 및 개념설계에서부터 이 일에 대한 인정기반을 전제로 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있는 것이다.
 
# 장면1 : 지역의 한 문화재단에서 전시프로젝트를 위한 사업비를 지원받은 적이 있었다. 여기서 보통 우리가 보기에 큐레이터피는 매월 지급되는 인건비에 포함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는데, 여기서 방점은 단순노무비 인건비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출퇴근 여부가 그들에게는 중요했다. 그 사업에 참여한 타 단체들과의 SNS소통망을 만들어 매일매일의 활동을 보고하라는 웃지못할 일이 있었으며, 보고할게 없으면 날씨사진이라도 찍어서 올리라는 연락을 받았다. 또한 사업 중 두 차례 정도 주말을 이용해서 잠행을 나오는데, 말은 어떤 활동이 펼쳐지고 있는지 격려차 방문이라 하지만, 일종의 감시체계에 가까웠다. 나로서는 지원사업에 대한 기관의 이러한 태도가 납득이 되지 않았고, 이후 결과물로 보자며 무리한 간섭에는 응하지 않았다. 애초 사업계획안대로 모든 일을 변경 없이 수행하였으며 잘 마무리하였기에 이후 가타부타 말나올 여지는 없었다.
 
#장면2 : 미술관 재직시절 아마도 2012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맡았던 업무 중의 하나는 아티스트피와 게스트큐레이터피 기준을 연구하고 지급방안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당시 몇몇 국공립미술관들의 사례들을 찾고, 해외 사례들을 연구하였는데, 우선 해외사례는 국내에 적용하기에 아직은 행정의 인식 상에서 선례로 인정받기 힘든 것이었고, 국내 사례는 미술계는 비록 아티스트피’, ‘큐레이터피라고 언급하더라도 행정적 처리 안에서 합리적으로 그것을 명명할 수 있는 근거 자체가 없었다. 그리하여 원고료, 세미나사례비, 회의비 등으로 쪼개어 나누어 지급하는 것이 당시의 최선이었는데, 이의 문제적 핵심은 큐레이터피에 대한 인정구조가 정책적으로 전혀 뒷받침되어있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예술가들도 마찬가지, 설치작업에 한하여 용역계약(비용은 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개념상에서 하도급의 취급을 당하는 구조)의 항목으로 협의된 재료비와 아티스트피와 활동비 등을 지급할 수는 있었으되, ‘용역계약이라는 부분에서 형용할 수 없는 문턱을 느꼈다. 큐레이터피와 아티스트피를 바라보는 이 두 경우는 행정이 예술을 어떻게 인지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시기 아티스트피와 큐레이터피 사례들에 대해 집중하면서 문화예술계를 바라보는 관점들, 정책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미술계가 전부인 양 지내고 있지만, 거대 구조 안에서 미술계는 생각보다 상당히 작은 위치를 점할 뿐이라는 것도, 염두에 두지도 않는 그 구조 안에서 무엇인가를 바꾸려면 이건 거의 혁명같은 마음가짐으로 임하지 않으면 불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이 무렵즈음이었다. 결국 아티스트피, 큐레이터피로 정당하게 명명하기 위해서는 미술관 내규는 물론 지자체의 문화정책에 대한 조례까지 움직여야 한다는 게 당시의 중간결론이었고, 결국 이 일은 곧바로 실행할 수 있는 몇가지 지출방법을 찾고는, 추후 제대로 된 명목으로 지급하기 위해서 어떤 개선방식들이 필요한지 방법()을 제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생각해보니 당시 국공립미술관에서 공통적으로 방법을 찾고 있었던 사례들이 있었고, 알음알음 정보를 공유하는 정도로 관계자들 사이 의견을 나누었지만, 그 근본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방법을 함께 논하는 공론장은 없었다. (*표준계약서 관련 아티스트피에 대한 공론장에서 일부 국공립미술관의 진척된 사항과 이를 행하는 방법이 발표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문득 그 지출방식도 분명한 명명에 의거하여 진행되었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 기관에서 행하는 계약의 특수한 상황들은 공개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합리적인 구조와 공공성의 가치를 기해야 할 예술관련 국공립기관 조차도 기본은 현실에서의 합당한 인정이 아니라, ‘예술노동을 숭고한 예술창작의 범위 안에서만 대상화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닐런지. 이 지점은 또한 예술노동을 하릴없는 백수로 바라보는 관점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이럴거라면 차라리 이슬만 먹고 화장실도 안가는 요정이 되고 싶다. 예술이라는 이름하에 현실을 언급하는 것이 왜 없어보이는 일이 되어버렸나.
 
4. 생계형이어서는 안되느냐 하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일병이 너무 많아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의미를 알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누군가는 상병이 되고 또한 누군가는 병장이든 장교가 되어 일병과 이등병의 균일한 역할을 챙겨야 하는데, 일병이 너무 많은 탓에 모두가 일병의 역할을 하니, 누군가 견인하고 또한 누군가 마련한 텃밭에 씨를 뿌릴 수 있는 환경이 급감하는 것이다. 그것만큼 일의 질은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전히 관련업계 사람들을 만나면 깜짝 놀라는 것이 내가 10년전 받았던 급여(100만원으로 출발했다)만큼도 못받는 후배들이 즐비하다는 점이다. 또 내 나이 또래집단 사이에서 굳이 우리가 같이 일병이 되지 말고, 후배에게 판을 깔아주는 시스템을 정책적으로 고민하는 게 보다 윤리적이지 않겠나, 경쟁에 뛰어들기에는 일병이 너무 많아이런 이야기는 수도 없이 한다. 무려 10년전 2007년 김달진미술연구소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시각예술인 실태조사 및 분석을 위한 비창작예술인 관련 조사에 의하면 평균연령 45, 기혼자, 가족부양 기준으로 월평균 220만원 정도의 수입을 갖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시에도 가족을 건사하기에 그리고 그 연배가 대기업 과장 부장 나이라고 생각하면 비교하기도 힘든 금액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활동하면서 주변을 보면 그 상황이 얼마나 나아졌을까 싶다. 큐레이터로서 의미심장한 담론을 품은 콘텐츠도 생활의 안정이 기반이 되야 가능한 게 아닐까. 큐레이터피도 큐레이터의 기본소득과 연관하여 현실적으로 공론화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최근 한 지역의 중요한 전시를 맡은 감독이 받는 사례비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상상이상으로 많아서가 아니라, 어떻게 큐레이터팀을 두고서 그 비용으로 운영을 하는지 어쩌면 함께 하는 큐레이터들은 제대로 비용을 받기는 하는 것일까 혹은 그 전시에 참여한 경력만으로 그야말로 퉁친것일까’, 혹은 별도의 비용이 책정되어있는 것일까 여러 의문이 들었다. 미술계 굵직한 분이며, 어른 위치에 있다. 하지만 당신의 기획이, 활동이 개인으로서만 읽히기보다 후배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한다. 오해였으면 좋겠지만 사실이라면 보다 정당한 비용을 받지 못한 당신의 처사는 후배들의 활동을 더 좁힐 뿐이다. 누구보다도 행정을 이기거나 협상의 위치에서 유리할 수 있는 힘은 있지 않았는가. 그런 점에서 내 눈에는 일병을 넘어서지 못하신 것으로.
 
처음 시작할 때는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했고, 이후에는 이 직종 자체가 계속해서 연구를 하면서 담론을 만들어가는 개인의 삶에서 의미있는 것이라 생각하여 만족하며 지냈다. 나아가서는 나의 특성과 프로젝트를 연결하는 특화지점을 찾아내면서 나만의 무엇을 발견해가는 직종에 대한 만족감이 컸다. 점차 내가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분과 그에 따르는 책임은 일을 선택하는 데 있어 핵심이 되어갔다. 그러나 이 명분은 최대한 나다움을 이야기 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종종 의미와 선의를 강조하는 사업 등에서 도무지 거절할 수 없는 당위가 되어 발목을 잡히기도 했던 터라, 최근에는 이에 대한 복잡한 생각이 많다. 또 일부 이 업계의 윤리적인 폐해들이 큐레이터 직종을 생계형으로 가져갔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이 아닐까 생각을 해왔다. 큐레이터라는 직종이 만족도는 단연 높지만, 그만큼의 현실적 보상이 따르지는 않는다. 말은 수정되야 한다. 직업적 만족도가 높다는 말은 현실적 보상도 함께 갔을 때 가능한 말이다. 그렇다면 큐레이터는 직종으로 여길 수 없다. 차라리 취향, 정체성, 소명 등의 모호한 가치개념으로 환원해야 할 이름인 것이다. 현재도 나는 현실의 생계가 곤궁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다른 일거리들을 보충하고 있다. 다들 어떻게 먹고 사는지, 모든 독립큐레이터가 자기 연구지점에서 만족스런 부업을 행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한 하나의 기획을 실현하기 위해서 예산확보에서부터 전 단계를 만들어 가는 일은 하나의 일만 해서는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다. 지금 현재 나 역시도 하나의 프로젝트를 출발함에 있어, 3개의 프로젝트가 각기 연동되어 있다. 그로부터 프로젝트에 즉한 활동비를 마련하고, 모자란 생활비는 부업을 통해 채워간다. 독립큐레이터로서 활동은 그래서 백수 과로가 딱 맞다. 그리고 이 활동을 건강하게 존속하기 위해서는_이제는 다른 곳을 볼 여지도 없다. 나는 10년차 큐레이터인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일을 하고 있는 내가 좋다_ 이 일이 나의 생계의 100%를 채울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아마도 내가 생계형이라는 단어를 빈번히 사용하는 맥락은 생계형일 수없는 이 현실을 깨달은 탓이기도 하다. 물론 이 현실을 인정한다는 말이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바꾸고자 애쓸 것이다. 나는 후배들에게 일병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