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9일 수요일

월간미술 5월 전시리뷰_플라스틱데이즈

Review, '플라스틱데이즈', 포항시립미술관




최윤정 ● 대구미술관 큐레이터



상고에서부터 역사를 채취하고 실증하는 매개는 도구였고, 시대문맥을 상징해온 키워드는 도구를 구성하는 재료였다. 플라스틱은 단순히 ‘인공적인’, ‘소비적인’ 재료를 넘어서, 사회·문화적 형태를 포괄하는 우리 사회 이데올로기를 대변하고, 우리 신체 일부로서 인간을 압도하는 시대적 상징이 되었다. 인간이 주조한 모든 것들은 자연의 ‘오염’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인류역사에서 각 시대 도구물들이 차치해온 가치영역을 고려해본다면, 도기나 스틸에 대한 현 우리의 태도처럼, ‘플라스틱’ 역시도 회고적이면서 가치적인 상징이 부여되지 말란 법도 없다. 그것은 ‘실제의 삶의 빈곤, 굴종, 부정을 남김없이 노정하고 표출하는’, ‘인간과 인간간의 분리와 소외의 표현으로서’ 시대권력의 스펙터클을 구성한다.

<플라스틱 데이즈>는 예술창작에 소요되는 ‘플라스틱’이 지닌 재료적 특성에서 출발하여, 현대사회 가치적 문맥을 확장해 나아가는 시도이다. 또한 재료가 주는 일상적 친근함이 관람객들로 하여 작품에 마주하는 부담을 현저히 덜어주는데, 역설적으로 육중한 주제는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기도 한다. 각 작품의 경향들을 보자면, 현대 플라스틱 오브제의 색채감-빗자루나 테이프 등-을 활용한 작업(이기일, 김형관), 아크릴 착화감 등 플라스틱 속성-가벼움-을 심화한 작업(강덕봉, 유재홍), 재료의 상징적 의미차용과 시대문맥을 그린 작업(홍경택, 황인기, 변대용), 문화적 양식과 삶의 표현-인생의 질곡, 신화, 문화를 상징하는 장식문양, 시대풍경-(노상균, 김건주, 김현숙, 박상희, 두민, 심승욱)이 펼쳐진다. 그리고 구축적 구성과 기호의 트위스팅이 배합된 작업(신종식, 장준석, 김봉태, 이슬기, 한경우)이 함께 이목을 이끈다. 마지막 전시실에서 '북극곰! 귀엽다'며 연신 고함을 치는 어떤 아이가 주목한 작품, 그것은 어린이를 위한 공간에 있음직한 반짝이고 예쁜 파스텔톤의 조형물(변대용)이었다. 이는 재료에 대한 제문제와 사회적 이슈를 슬쩍 결합시키는 전략으로, 얼음이 갈라져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한 비참한 곰을 반들반들 아주 귀엽게도 묘사했다. 이번 <플라스틱데이즈>가 기획의 차별성을 구한다면 이에서 한 가지 줄기를 끄집어낼 필요가 있다. 다시금 친근한 매체란 도리어 은근한 소격효과를 불러오며, 극과 극은 통하는 법으로, 이 전시는 어느 때고 건드릴 수 있는 친근한 재료에 대한 ‘가벼운’ 태도와 우리가 밀착해있는 세상에 대한 무겁고 ‘불편한 진실’을 담은 내용들을 마주하게끔 이끈다.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 후보들이 해맞이 공원에 나들이 온 겸, 미술관을 찾는다한다. 취향에 있어 대중적인 부분도 중요하므로 <플라스틱 데이즈>는 이를 적절히 반영하였고, 한편 동시대 이슈와 제반 의미들을 재료적 상징을 통해 감각될 수 있도록 하는 전시였다.

2012년 4월 11일 수요일

민성民性, 2012.3.6~2012.7.29, Daegu Art Museum

한국적 표현주의
Korean Archetype, 민성民性

최윤정 대구미술관 큐레이터








Intro

대구미술관의 철학적 지향성과 비전을 선보이는 주제전의 일환으로 마련된 ‘민성民性’은, 2011년 개관주제전 ‘기가차다’, ‘삶과 풍토’1)와 마찬가지로, 한국현대미술이 갖는 차별적인 지점을 연구하고 그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미학적 의의를 제시한다. ‘기가차다’는 한국현대미술의 향방을 고유의 정신사적인 측면과 연관시켜 제시하였고, ‘삶과 풍토’는 우리의 물리적·환경적 조건에서 비롯되는 삶의 특수성으로서 한국현대미술의 경향성을 선보였다. 이에 ‘민성’은 민족의 시원(始原)적인 요소, 원형(原形)적 측면에서 발현되는 한국인의 서정과 의지를 우리 미술의 원초적 서사로서 담아낸다.

‘민성’은 ‘한국적 표현주의’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이다. '한국적 표현주의'라 불릴만한 연구를 제시하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하나는 작품 소재와 주제_기법과 형태_시대성과의 연관 등 작품을 둘러싼 외화(外華)적 측면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한 측면은 예술가의 내적인 창작인(創作因)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국성'의 단면을 표현론적 관점2)에 연결한 지점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4인의 작가-박생광(1904-1985), 서용선(1951), 김종학(1937), 황창배(1947-2001)의 경우, 그들의 세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화업이 한국미술에서 첨예한 대립각을 마주해야 했던 70, 80년대에 태동하거나 그 시기 진가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들을 묶을 수 있는 동시대성을 발견할 수 있으며, 또한 그들이 자기 발언으로서 택한 창작의 기법과 소재들이 시대적인 요청과 창작 모색과정에 있어 한민족의 잠재된 서정을 깨우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유사한 측면을 논해볼 수 있다. 그 속에는 개별의 삶이 겪는 열락이나 역경, 불현듯한 깨달음, 지적인 성찰 등 의식/무의식이 생산해내는 '생의 문제'가 또한 결부되어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요소들이 어떠한 과정과 방식으로 작품에 표현되어 전달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본 전시의 목적이다.
한국적 표현주의를 일컫는 조어(造語)로서의 민성, ‘민民’은 인간 생의 형태와 원초적 의지를 포괄하는 삶의 형形을 뜻하고 ‘성性’은 면면이 이어져오면서도 현재화되어 표현되는 우리의 ‘성정’이나 ‘기질’과도 같은 것이다. 이를 합친 ‘민성’은 일차적으로 '무의식이 작용하는 비합리적인 활동'으로서 내면에서 발현되는 ‘욕구․의지’에 우선 기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표현론 내지는 표현주의가 차지하는 수많은 가지들 중 하나의 영역에 통섭될 수 있는 요소가 되며, 또한 한국인/한국성이 공유하는 삶의 형形-문화적 원형과 역사에 대한 기억, 특유의 풍토에서 비롯되는 경험 등-으로 축적되어온, 우리 고유의 서정성을 함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서정성이란 (예술)의지와 (예술)충동을 추인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 기층의식이 주조해낸 '공감정서'가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 ‘민성’은 원형적 증거로서 신화나 설화와 같은 옛이야기, 영성(靈性)으로서 구체적인 삶에 직접적으로 배어있는 민속적 양식, 그리고 역사성과 기억감정을 민족적으로 공유하는 단면들을 다룬다. 그리고 세상과 대결하면서 결연히 생을 유지해온 민초적인 힘의 의지를 비유하는 개별 실존을 다룬다.
이에 따라 연구집으로서 본 도록에서는, 우리의 심층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구비문학, 특히 ‘설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민성’의 의미를 추적하고3), 개별의지이자 예술가의 내적인 창작 동인을 설명하는 표현주의적 관점의 미학4)을 함께 실었다. 마지막으로 ‘민성’의 기획에 대한 전 연구단계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꾀하기 위해 그 시작과 과정에서 소요된 이야기들을 인터뷰5)를 통해 담아내었다.

민성 작가 4인
1970년대와 1980년대 이탈리아 나폴리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신표현주의 경향인, ‘트랜스아방가르드’6)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역사나 철학, 문학과 신화 등으로부터 창작에 대한 영감을 얻고자 한 것은, 다시금 회화 자체의 표현성을 회복하고자 한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공감과 자부심을 기반으로 '자기다움'을 좇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자 함이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를 휩쓸었던 모더니즘적 개념미술과 아르테포베라(Arte Povera)가 남긴 창작의 획일성은 도리어 자기 심층에서 울리는 소리를 더욱 그리워하고 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적 요인을 제공하였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민성 작가 4인은 시대적으로 한국의 70년대 모더니즘적 개념미술, 80년대 민중미술Minjung(民衆)Art이라는 양대 산맥과 나란한 행보를 보였다고 말할 수 없다. 단언하건데, 자기 내부로부터 충분히 발효되지 않은 형식을 무반성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단순한 트렌드적 차용일 뿐이지, 본연의 창작욕구에 대한 해답이 될 수는 없는 탓이다. 다시금, 선택의 여지가 없는 획일적 경향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때조차도, 그들은 당대 타락이라 규정지었던 구상적 회화를 버리지 않았고, 또한 사회혁명을 목표로 한 정치적 회화를 마주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스스로도 혼란한 시기, 그들은 도리어 '의지적 행보'를 선보인다. 자신이 해오던 바에서 시대를 읽고 자신에게 걸맞는 도상을 담아내었다. 그리고 직접적인 발화(發話)를 억제하면서도, 강렬하고 인상적인 색/구성을 통해 심층적 의식을 강화함으로써 우리 안에 응축된 ‘민성’을 끌어내고자 하였다. 박생광은 '민족성'과 ‘불교·무속’에 대한 재발견을 통해서, 서용선은 '역사적 서사'와 '현대사회'에 대한 냉엄한 시선 그리고 비정한 자기 초상을 통해서, 김종학은 '전통적 민예미'와 '그의 감정'을 자연에 이입하면서, 마지막으로 황창배는 '전통성'과 ‘현대성’을 쥐고서 형통한, 실험을 통해서 이와 같은 면모를 선보여 왔다.

박생광(1904-1985)채색화를 일본풍의 그림과 동일하게 인식했던 시기가 있다. 당시 동양화단은 사의寫意의 명제로서 자연과 문인적 화풍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채색화보다도 수묵이나 수묵담채가 더 값어치 있게 인식되던 시기였다. 박생광이 일본에서 교육을 받아왔기에 그의 채색화는 곧바로 일본풍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하였고, 또한 한편 그는 일본화단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작품의 수준도 인정받았던 바, 이 같은 오명을 부지불식간에 소거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작가 박생광에게 이는 반드시 극복해야만 할 소명인 것으로 여겨졌다. 몇 시기의 창작 모색 단계7)에서 살피자면, 진주시절을 거쳐 상경하였던 1960년대는, 그가 '한국적인 회화'를 주창하면서, 민족적인 소재로부터 영감을 찾고자 애썼던 시기다. 그리고 1970년대에 이르러 박생광은 '고희'의 나이를 넘겨 드디어 '일본적인 채색화'의 수식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그가 한민족의 기층문화로서 맘속에 품었던 불교적 소재와 민속적인 내용들이 그만의 진채기법을 통해 생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기법은 '그냥' 형식으로서만 읽을 수 없다. 그가 민족적인 주제로서 천착한 요소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칼집이자 권법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박생광의 진채기법은 그 자체가 이미 그의 표현의지와 동일하며, 한국의 기층문화에서 면면이 이어져오는 전통회화-그것은 불화이기도 했고 무속화이기도 했다-로서 바로 그가 욕구한 '한국적인 회화'의 주춧돌이었다.
“따지고 보면 한국회화사의 주류는 결코 채색거부의 그림만도 아니었다. 심한 경우는 난하게 여겨질 정도로 색채들을 강렬하게 구사하곤 했다. 민족미술의 머리 부분을 글자 그대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우리는 잊을 수 없다. 그 무덤 속에 간직되어 있는 빼어난 채색화들은 한화(韓畵)의 원류로서 값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소중한 보배가 아닐 수 없다. 이의 전통은 고려시대 불교회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8) 그의 관심은 오랜 기간 불교에 있었다.9) 그는 또한 불교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실제로도 불화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예의 영향을 통해서 그가 만들어낸 진채기법이란 화선지 위에 주홍빛 아교채색으로 굵직굵직한 윤곽을 만들어내고→그 위에 주홍빛의 윤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교먹물을 흩뿌리며→ 그 다음 윤곽선 사이사이를 채색으로 메워가는 방식이었다. 진채기법은 색을 켜켜이 쌓아올리는 과정이자, 민화적인 다채로움을 고루 갖추고 있기에, 그의 조형세계가 우리 토착문화, 기층문화에서 비롯하는 원형적 요소와 밀착해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샤먼 김금화10)와의 만남에 대한 에피소드는 이를 더욱 보강하는데, 민속적인 주제는 물론이고 자신의 무속시리즈에 대한 영감까지 그로부터 구체화하면서 한국의 샤먼에 대해 관심을 갖고, 특히 중요한 굿이라면 행해지는 어디든 찾아가 그 장면을 스케치로 남기기도 하였다. 평생에 소원하던 인도성지순례(82)는 그의 전성기를 예고하는 듯한 영감을 그에게 안겨주었다. 이후 타계할 때까지 완숙기에 접어든 무속, 불교적 소재 외에도 한민족의 역사 속에 자리한 저항적 인물(전봉준)과 핍박의 상징(명성황후)으로 대표되는 '한'의 역사시리즈를 남기게 된다. “나의 작품을 유파적으로 분류하면 북종화에 속한다(사실적인 채색화). 그러나 文부(중국)의 북종화와는 달리 이번 인도여행에서 나의 작품세계는 더욱 더 力을 얻게 되었다. 인도의 신들, 예를 들면 피와 생명을 탐식하는 피의 여신! 그들의 칼라를 보고 더 힘을 얻었다. 한국의 불교! 무당의 그것처럼! 신의 영감을 또는 우리 고려불화의 그 증화적(繒畵的)인 생명력을 현대적인 나의 힘으로 작품화하는데 있다(1983)” 결국 그가 정립한 ‘그대로 화풍’은 민족적 감성이나 우리의 옛 것 그리고 기층문화에 대한 내적인 이끌림을 쥐고서, 한국인의 정신적인 미감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적층되어 온, 온전한 그의 힘이었다.

서용선(1951)“세월이 흐르면 인간의 뇌리에서 역사의 아픔은 지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아픔을 낳게 한 인간의 부조리와 불합리한 행위는 진실 그 본연의 모습으로 남기 마련이다. 그것은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역사의 객관적인 사실로, 개인의 마음 속에 본능적인 감성의 느낌으로 자리 잡기 마련이다. 그동안 단종의 비극적인 죽음은 역사와 함께 의도적으로 은폐 혹은 왜곡되어왔다. 그 역사는 지금까지도 정치·사회·경제의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사건에 얽힌 피해자와 가해자, 나아가 그들의 자손들에게 여러 사회적·심리적 문제들을 파생시켜 왔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다”11) 아카데믹한 회화와의 결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서용선은 역사를 주제로 한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그의 역사화는 70,80년대 시대상과 마주하여, 군부독재의 비합리적인 권력 쟁취와 그것이 우리 삶에 개입하는 모순성을 사유하면서 느낀, 작가의 도덕적인 회의감에서 비롯한다. 이것은 서용선이 왜 ‘계유정난과 단종폐위에 대한 역사화’를 긴 시간동안 그려왔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데, 그에게 단종폐위와 관련한 세조의 이야기는, 권력쟁취에 대한 명분과 폭압에 대한 당대 사회적 분위기를 비유하였다. “역사는 근대 시기 이래로 세계가 탈주술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전문성의 권위를 부여받고 국민국가의 공인을 받으며 서술역사로서 변모하였고, 이러한 공식역사가 사회를 주도해왔다. 역사는 집합기억들을 병합시켜 공식기억을 주조하거나 아니면 대항기억을 억압 혹은 주변화시켜 결국에는 망각의 늪으로 밀어넣기도 하는 권력의 역사였다.”12)
작가의 역사적 심안을 통해 드러나는 권력에 대한 이야기는 힘의 작용과 반작용이 만들어내는 팽팽한 긴장감을 상기시키듯 원색적인 색감과 필치로 화면 가득히 묘사된다. 그의 역사화는 그렇기에 사회상을 반영하는 역사적인 사건을 묘사하면서도, 그 역사에 얽혀있는 ‘인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80년대 현실참여적 회화가 지닌 이데올로기적 요소라든지, 사회주의 공산국가에서 선보이는 기록화와는 판이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는 역사화 작업과 동시대 세태 풍경을 지속적인 연작으로 선보여 왔다. 그리고 한민족의 ‘한’이 서린 한국전쟁시리즈나 설화시리즈가 또한 동일한 문맥에서 소개되어 왔다. 그가 역사 속에서 발굴한 주제들은 지금 현재에도 세계의 도시들 한 복판에 처해진 인간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13) 또한 그 비참한 역사를 되풀이해가는 과정은 그가 세태풍경에서 묘사한 의지가 없어 보이는 현대인들의 단상, 익명성과 군중의 우매함에 대한 날카로운 자성을 투척해온 것이다.
그는 과거 역사적 서사가 지니는 시간적 층위들을 한 화면에 중첩시킨다. 그리하여 역사적 기억을 깨우면서, 동시에 우리 기저에 있던 집단적 비애감들을 자극시킨다. 내부환경과 자극적인 외부환경에서 살아남고자 악착같이 자신을 유지하려 하거나 혹은 가혹하게 적응해야만 하는 상황들에 마주하는 것. 또한 그가 선사하는 인간/군상은 무의지적이며, 비극적이다. 사회에 대한 도덕적 회의감을 작품의 비애감으로 표출한 서용선은 자기초상에 있어 굴욕적으로 엎드린 형상이거나 혹은 비장하거나 몹시 화가 난 듯한 격한 표정을 분출하기도 한다.
주제에 대한 자료를 체득하고 관찰하는 과정에서, 그는 직접 답사를 하여 작업노트를 남긴다. 장소와 자신의 온도를 맞추어가면서 ‘그곳’이 함의하고 있는 서사와 사연들에 골몰하는 바를 기록하였고, 그로부터 생성된 감정들을 또한 스케치로 정리하였다.14) 그 과정에서 그는 “‘사건’보다도 그 사건 속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인간’의 ‘마음’에 매료되고 있었고(...) ‘사건’을 더듬어 가면서 그 ‘역사의 구조를 그리고, 그 점에서 노산군(단종)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그러나 실제 작품으로부터 내가 느끼는 것은 오히려 비극의 속에 놓여진 노산군(단종)의 ‘마음’인 것이다.”15) 시대정신은 물론이고, 인간에 관계한 다양한 층위들_현재화된 역사이자, 군중, 사람, 마음-을 쏟아 붓는 서용선에게는, 보편적인 도덕에 대한 성찰적 물음이 있고, 휴머니즘에 기반하여 역사적 비극을 공감화하면서 우리의 기억감정을 추출해내는 힘이 있다.

김종학(1937)
김종학의 화업은 젊은 시절 동료들과 더불어 서구 모더니즘을 수용한 악튀엘Actuel의 동인활동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서구적 모델을 습득하고자 열심히 따랐지만, 그 이상의 내용적인 깊이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단순히 형식만을 좇는 동어반복에서 결국 그는 탈주를 희망하였다. 우선적으로 서구적 형식과 경향을 수용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그는 결국 창작과 창작에 대한 태도를 회의하고, 그로부터 비롯된 심한 내적 갈등을 겪게 되었다. 이는 예술가로서의 생生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또한 우연적으로 찾아온 개인적인 요소들로 인해 한 인간으로서 그가 겪은 심적인 고통은, 도리어 심연에 놓여 있던 그의 솔직함과 순수한 창작에의 의지를 움트게 하는 촉매였을 수도 있다. 살아내고자 찾아간 설악산은 이러한 그의 의지와 서정이 표현적으로 펼쳐질 수 있었던 자연의 화판이었다.
구상회화로의 변이16)에 있어서 그에게 ‘민예民藝적인 것’에 대한 서사는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작품이 순수한 자연을 그리고 있고, 그것이 그의 심정을 감정이입하는 매개로 지칭된다 할지라도, 그의 작품이 갖는 표현적인 측면은 작가의 민예미에 대한 심취와도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름없는 옛 장인이 선사하는 비례미와 조형적인 짜임새는 현대미술감각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다. 김종학은 이때 목기수집가가 되었다. 목기만큼이나 그는 전통 수예품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서, 화가로서의 색채감각에 대한 영감을 민화적인 요소에서 발견하기도 하였다. “전통시대에 밝은 색채감을 실현한 대표적 현물이 바로 베갯모, 주머니, 수저집 같은 우리 민예자수품의 수화(繡畵)였다. 수화의 바탕색인 적색, 흑색, 보라색, 청색 등은 김종학 그림의 바탕색으로 나타난다. 이 바탕색을 근거로 소망 또는 기복의 전래 상징이던 꽃과 새가 모티브로 등장한다 (...) 색깔의 배색에서도 우리가 전통적으로 원색의 진한 맛깔과 보색의 묘미를 능히 동원하고 구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김종학에게는 더없는 원군이 되었다. 청록빛 나무와 풀로 뒤덮힌 들판에 빨간 꽃이 등장하는 김종학의 그림에서 자주 만날 수 있듯이, 보색을 배색하면 선명한 인상을 준다. 눈 망막 색신경이 어떤 색의 자극을 받으면 보색관계의 상대 색에 대한 감수성을 높여주는 기능 때문이다.”17) 그뿐이 아니다. 그리하여 그의 화면은 색의 현란함과 균질화된 조형과 그로인한 평면성에서 거두어지는 ‘기운생동’의 화기가 만연하다. 이같은 기운생동의 표현은 비단 민예풍의 기법적 측면을 넘어서, 작가의 ‘살이’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세속과 떨어져 1970년대 후반 설악산으로 들어간 작가는 그저 봄에는 봄을 여름에는 여름을 가을에는 가을을 겨울에는 겨울을 그리고자 하는 자연인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것은 목가적인 자연회귀가 아닌, 그의 예술의지가 의욕하여 자기만의 화두를 쫓아 나선 고뇌의 도정이었다. “흰 눈이 내려서 그런지 그렇게 깜깜한 밤이 아니구나. 아빠는 지금 이 시간이 제일 행복하단다. 무엇을 창조한다는 것은 창조의 길을 가는 사람만이 갖는 특권이다. 물론 외롭고 고달프고 때로는 겁도 나지만, 오직 자기 홀로 서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아니 길이 없는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재미는, 다른 사람들은 모를거야”18) 그의 작품에는 들풀의 생명력과 꼬물거리는 넝쿨들의 향연, 자연이 선사하는 이름모를 색채들이 꽃을 통해 발화한다. 일필휘지 혹은 휘젓고 짓이긴, 무작위적인 그의 붓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그는 섬광처럼 스쳐가는 화재畵材를 뇌리에 입력하여 에스키스해 둔다. 그리고 불현 듯 캔버스에 옮기는 과정에서 그의 분방한 정서가 화면에 나타난다. 그의 잠재적 조형의식과 그가 좋아하는 한국적 원시성이라 할 수 있는 민예적 감흥이 녹아내려 천진난만하고 동심적인 환상으로 나아가는 사이, 그만의 독특한 천진고박天眞古한 세계가 무르익는다”19)

황창배(1947-2001)한국화단의 '실험정신'으로 논구되는 황창배는 80년대 중반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만들어 내는데20), 수묵과 담채를 이용한 ‘선염’과 뿌리기 행위를 통해서 그는 우연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들이 화면에 잔영처럼 떠오르게 하였다. 그리고 그 우연적인 이미지들 속에서 즉흥적으로 유추된 형상을 추출해낸다. 유추된 형상은 작가가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감성에 따라 나무가 되기도 하고, 여인(여신)이 되기도 하고 어머니의 자궁에서 쉬는 듯한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은 때로는 기도하는 모습이기도 하며, 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형태이던지, 또한 중력이 없는 듯 부유하고 있거나, 어딘가에 서린 채로 그 존재를 반짝이는 자연의 영들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황창배는 일반이 가져봄직한 작품 주제나 형식에 대한 철두철미한 서사를 준비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기대고 있었던 바는, 원초적인 표현의지와 추상적인 잔영으로 차오른 이미지들이 선사한 상상력이다. 우리의 눈과 의식이 무관심적으로 스치는 수많은 이미지들과 의미들에 대해서 한번쯤 의구심을 품어 본다면, 우리 눈이 눈에 보이는 데로만 사물을 인지하기보다 상황과 심리, 관심에 따라 의지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해볼 수 있다. 황창배의 '설화시리즈(일명 숨은그림찾기)', ‘색면추상 시리즈’는 이에 대한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는 아마도 "모든 예술 실천 분야에서 한국성(Koreaness)을 구하"려는 그의 강건한 의식과 "이에 경시되고 있던 민화가 독창성과 혼으로 넘치고 있음을 깨닫는"21) 과정에서 한국인의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으로 상징되는 설화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켜 그의 표현적인 감성에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동양화와 서양화 구분이 무색함을, 표현할 수 있는 범주에 대한 불합리한 ‘한정’으로 여기는 것 이상으로, "양차대전 사이 36년 동안 일본의 한국통치 때 부과된 예술학교 학과과정의 잔재인 동양화와 서양화 간의 부조리한 분리를 거부하는"22) 의지적 시선을 우리는 그의 작업에서 읽을 수 있다. 주제에 대한 목표나 지향점이 없다는 것은 그렇기에 단순한 자유분방함이 아니다. ‘무미無美’가 미가 아닌 것이 아니라 미의 ‘보이지 않는 진리’를 천명하는 것처럼, 작품 내용에 즉한 설명 외에도 그가 창작에 임한 ‘무법無法’의 태도와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주제의식으로서 동시대성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당대 평단에서는 그의 즉흥적이고 뛰어난 감각이 조선시대 민화가 지닌 ‘순수하고 기교 없는’ 정신을 현대적으로 해석해냈다고 평가하였다.23) 황창배는 형식에서만이 아니라, '주제가 있거나 혹은 없거나(untitled)', 설명적 의도 혹은 모던적 세련미와 관계한 기존 주제의식이 전제하고 있는 기준들을 전복시키고, 전통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현대적 가치를 기준으로 제시하는 획기적인 발상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과정은 ‘설화시리즈’나 ‘색면추상’에서만이 아니라 그의 전 작업을 통할하여 우리가 왜 그를 ‘파격과 일탈의 화가’라고 부르는지 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Outro

독한 삶이 던지는 필연적인 과정에서 우리는 그것이 묻는 질문에 연속적으로 답하는 형식으로 현재를 살아간다. 그때그때의 의지와 판단은 현재를 놓고 과거의 기억으로 회귀하거나, 판단의 합리화를 위하여 미래를 끌어들이기도 한다. 우리가 세계에 처해있는 모습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 가지 시간을 의식 속에서 조합하면서, 이에 대해 회귀하거나 혹은 성찰하려는 되새김질뿐이다. 그것은 참으로 공평하다. 그 어느 것도 확답할 수 없으며, 그 어떤 판단도 확신할 수 없는 근본적인 비극성을 모두에게 전제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기억과 구전되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마찬가지로 보편적이면서도 공감적인 형태의 감성인 비극성을 발견한다. 아마도 더욱 극적으로,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고리를 지닌 사람들. 그들이 삶의 답을 구하고자 수행하는 여정 속에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이에 관계하며 자신의 가치를 정립해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이는 흡사 민성작가 4인이 창작 전 단계에서 고뇌하였던 외화적인 요인들을 비유하는 듯도 하다. 그들 모두에게 일치하는 하나의 표식으로서, 망각을 발견으로 암담함을 개척으로 승화시키는 ‘의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의지란 다양한 양태로 生생/세계에 빛을 추동하게끔 하는 동력인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성을 통틀어 자기 존립 근거를 조직하려는 원초적인 힘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술가에게 의지란 예술가의 존립근거를 조직하려는 원초적인 힘이고, 예술가의 존립근거란 생이 근원적으로 던지는 비극성에서 출발하여 예술 표현과 창작에 대한 동시대성을 자체적으로 구축하는 도정에 놓여진다. 박생광과 서용선, 김종학과 황창배의 동시대성은 ‘한국적인’의 시대적 요청과 ‘표현’이라는 개별 의지로 거두어낸 ‘민성’ 속에서 그 의의를 다시금 재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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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가차다’(Qi is full 2011.5.26-)는 1·2전시실을 통해 ‘의를 그리다(Drawing Yi)’, ‘적을 보다(Seeing ji)’ 두 섹션으로 구성된 대구미술관의 첫 주제전으로서 인문학적 지향성과 정신사적 문맥이라는 사변적 측면에서 한국의 현대미술이 지닌 철학을 논하였고, ‘삶과 풍토’(Life, Nature, Human 2011.10.-2)는 1·2전시실을 통해 ‘삶’, ‘풍토’의 섹션으로 나뉘어, 토양과 삶의 형태를 비추는 물리적 측면에서 현대미술의 창작론을 보여주었다.

2) "한국적 표현주의라 할 만한 이들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표현적 감각, 그리고 그 밑바탕에 깔린 작업의식은 예술이 근원적으로 갖는 어떤 잠재성이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무엇이 이런 양식으로 나아가게 했는가라는 점이다. 미술에 관한 어떤 논리나 조류보다 내면의 심적인 동기가 문제이다." 김수현「한국 표현주의 화가의 창작미학」, 본 도록에 수록

3) 「민성은 어디에 있는가? 설화가 말하는 민 혹은 인간의 얼굴」, 조현설, 본 도록에 수록

4) 「한국 표현주의 화가의 창작미학」, 김수현, 본 도록에 수록

5) Interview, 피디어스 김용대님과의 대담, 본 도록에 수록

6) 아킬레 보니토 올리바(Achille Bonito Oliva)에 의해 명명된 ‘트랜스아방가르드 Transavantgarde’의 대표적인 작가는 산드로키아(Sandro Chia), 엔초쿠키(Enzo Cucchi), 프란체스코 클레멘트(Francesco Clemente) 밈모 팔라디노(Mimmo Paladino) 등이다. 이들의 작업은 강렬한 색채와 신비한 분위기, 신화, 타 문화의 영향을 통한 상상적 이미지, 전통적인 도상 차용 등의 특징을 보이고, 20세기초 표현주의와 전통적 구상회화를 절충한 형식적 특징을 띤다.

7) 최병식은 박생광의 회화시기를 5단계로 나누어 보고 있다. 제 1기(1920-1945)는 학습시기, 일본유학 및 활동시기, 제 2기(1945-1974)는 모색시기, 모국으로의 귀국과 고향 진주에서의 활동, 67년 상경 후 한국적인 회화의 필요성을 주창하였고 이때 한국의 문양, 문창살, 단청 등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제 3기(1974-1977)는 2기의 작업을 심화해가면서 일본화풍을 정리하는 시기였고, ‘그대로풍’이 정립되고 그 만의 진채기법이 전개되는 제 4기(1977-1982)를 맞이한다. 이때 불교적 성향, 무속적 소재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인도성지순례 및 프랑스 여행을 통해 창작적 정열을 다시금 가다듬게 된다, 이후 타계 전까지 약 3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그대로풍’은 절정기(제5기, 1982-1985)를 맞이하는데 무속, 불교시리즈는 물론 대형작업인 역사인물시리즈가 이때 소개된다.

8) ‘민족미술의 한 양상과 진로문제-박생광의 경우를 중심으로’의 3부, 미술비평가 윤범모, 1997
“고도의 세련된 미의식과 제작기술은 조선시대 내불외유(內佛外儒) 시대가 되면서 퇴색되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하지만 귀족예술이 아닌 민중의 그림으로 몇몇 십왕도(十王図)나 감로탱화(甘露탱화)같은 곳에서 명맥을 엿볼 수 있다. 이밖에 초상화나 속화(俗畵)같은 이른바 민화(民畵)같은 재미있는 장르 속에서 채색화의 찬란한 전통을 쉽게 확인할 수가 있다.”

9) ‘그대로 박생광 화백의 삶과 예술에 대한 회상’, 유홍준
“그러나 내가 아는 한 박생광 화백은 결코 불교에 심취한 분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우리 고유의 전통과 역사에 심취해있었다. 그것은 그가 역사화를 즐겨 그리고 십장생, 조선여인, 무당, 장승 등을 많이 그린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박생광에게 불교란 우리 역사의 일부로 인식되었을 뿐이다. 넓게는 동양의 사상으로서 불교였다.”

10) 중요무형문화재 제 82-나호 서해안 배연신굿 대동굿 무녀 분야 기능보유자

11) 14p 시선의 정치_서용선의 작품세계, 정영목, 학고재, 2011

12) p.176 철학, 문화콘텐츠를 말하다, 박상환, 도서출판 상,2011

13) 이인범, 일상적 ‘삶’으로 귀환하는 예술, 월간미술 2002년 6월 “1960,70년대 초를 방황했던 청년기, 작가수업, 1980년 서울의 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권력투쟁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희생자에 대한 개인적 혹은 공동체적 기억과 삶 체험들은 서용선의 다양한 작업의 밑바닥을 가로지른다. 그러나 그의 세상 체험이 그렇듯 그가 그려내고자 했던 ‘삶’ 역시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기 보다는 그것은 행복한 삶을 불가능하게 하고 저지하고 짓누르는 삶의 폭력성 또는 비극성이었다.”

14) “스케치를 다른 대작으로 옮길 때에 중요한 것은 있는 모습의 형상을 본뜬다기보다 직접 현장에서의 기록이 담긴 선을 다시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죠. 스케치의 재현이라기보다 하나하나 감성의 요소를 중시 여긴다고 할까요”, 김윤정, ‘이미지가 시야에 사로잡히다’ 미술세계, 2003년 7월

15) [사람이 사람으로 돌아갈 때_서용선의 시도], 치바 시게오(미술평론가), 2008

16) “김종학의 회화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 1960-78년에는 서구 모더니즘의 수용과 실험기이자, 그에 대대 회의를 갖는 시기이다. 1979-86년 사이는 변화의 모색기이다. 설악을 만나고 자연과 전통미에 회귀한 김종학 화풍의 형성기이다. 설악에 정착한 1987년부터 현재까지는 김종학 회화예술의 성숙기라 할 수 있겠다. 2006년부터는 상상화의 새 전개를 보이는 듯 하다” <봄에는 봄을 그리다>, 이태호

17) 김형국,「그림으로 환생한 민예품 사랑_김종학 화백의 경우」, 『김종학 회고전』, 국립현대미술관, 2011

18) 김종학, 딸에게 보낸 편지에서 발췌

19) 송영방,「김종학의 풍모와 그의 그림을 말한다」,『김종학, 김종학이 그린 설악의 사계』, 열화당, 2004

20) 황창배의 작품창작 추이는 다음 세단계로 나뉜다. 1980년대 '설화시리즈' 민화와 설화적 내용을 담았고,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색면추상시리즈' 색면의 강조를 통한 추상표현주의적 평면작업을 거쳐 1990년대 중반 이후 평면의 역동적인 표현과 그 형식의 자유로움이 그대로 묻어난, 그야말로 '무법無法의 완성' 시기이다.

21) 홍가이,「황창배 개인전 서문」, 1993, Boston FineArt Gallery
"이렇게 무엇이 독특하게 한국적인가를 찾는 과정에서 그는 영감의 기원을 중국에 두고서 공식적으로 인가된 정통 동양화의 전통을 따를 뿐인 동양화 유파와 결별을 고하였다(...) 모든 민화에 극명히 깃든 혼은 한국의 지배계급이 억압하려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서민의 심장과 영혼의 어두운 구석에서 타오르던 바로 이 대담하고 독창적인 혼이었다."

22) 홍가이, 위와 같은 글

23) "서민들의 삶의 양태가 축약되어 있는 민화야말로 한국이라는 지역성을 그림에 연결시켜 볼 수 있는 참다운 민족적 양식이라고 믿고 민화를 단순히 형식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민화가 지향하는 순수하고 기교가 없는 천진난만함에서 오는 정서나 감동을 보여주려 하였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불노초나 선인의 이미지, 그리고 남녀의 열락의 풍경은 모두 민화에 그 맥락이 닿아있다. 특히 유동하는 수묵과 색채의 얽힘과 녹아흐름은 민화의 현대적 변주를 다양하게 하고 있다." 최광진「황창배:새로운 한국화에의 집념」, 1994, 삼성미술관 도록

2012년 2월 11일 토요일

2011.12.6~2012.4.1, Daegu Art Museum

김수자의 <바늘여인>, 성소적 의식



최윤정 큐레이터, 대구미술관



I. 들어가며



이번 기획은 포섭되어 있던 고정관념을 유지하기보다, 벗어나고 빗겨가는 관점에서 새로운 배치를 진입시키는 실험으로 마련되었다. 애초 '예비수장고', 창고의 시각적 구조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룸은 '지하_빛의 차단', '날 것 그대로 노출된 콘크리트' 벽면과, '길의 속성_통로와 교차로'를 잇는 형식을 띤다. 첫 번째 <메이드인대구>1)가 전시공간으로서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면, 이번 전시는 공간자체가 지닌 특성을 기획으로 연결해보는 시도이다.
프로젝트룸은 애초 18개의 기둥만이 덩그러니 천장과 바닥을 잇고 있는 형태였다. 전시장으로서 기운을 심고자 각 기둥을 잇는 벽채를 완성하고 6개의 기둥을 인공적으로 더해 '통로_길', '교차로_중심'의 형태를 기본 골조로 한 공간조성이 진행되었다. 이 기본 형태는 전시공간으로서의 역할을 기초적으로 수행하면서도, 간접적인 빛이 전혀 들지 않기에 조명의 효과와 빛의 조도를 활용한 설치작품 및 연출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게 한다. '교차로_중심' 방향에서 보이는 각 면은 기본 너비가 6m가 넘는다. 이것은 또한 여러 각도에서 공간연출의 규준을 힘있게 제공하면서도, 공연과 퍼포먼스 그리고 필름 등 실험적이고 장르 통섭적인 기획을 모색할 수 있도록 돕는다.
따라서 프로젝트룸의 기획은 공간의 특성적인 형태와 더불어, 지역미술의 실험성을 발굴하고, 젊은 예술을 수용하며, 공간해석을 통한 다양한 장르를 연구의 핵으로 삼아 '무차별적인'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밀도 있는 공간해석 및 작품소개를 위해 초기부터 하나의 작품으로 구상된 '영상 시리즈'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구출신으로 세계 무대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는 작가 김수자(1957)를 초대하였고, 그가 프로젝트로서 선보여 왔던 영상작품들을 스터디하면서 그만의 색을 보이면서도 프로젝트룸 해석의 방향성과 유연하게 합치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첫 시작은 프로젝트룸의 '교차로형(십자형) 구조'에 대한 독해였으며, 지속되었던 논의 속에서, '통로형 구조'의 변형체로서 '대칭적인 미로' 구조를 상상하게 되었다. 하나의 프로젝트로 기획된 각 영상들은 기존 설치방식에 따라 구성되기보다, 의도한 동선 안에 위치한, 다양한 스크린 속에 놓여진다. 작품과 공간이 마치 하나의 설치작으로 일체화되어 공간의 의미가 보다 적극적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이번 기획에서 본 연구관점에 대한 핵심과 사유의 기준을 마련한 작품은 그녀의 대표작 <바늘여인>(2005)으로 이 작품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과 가난, 국제적 고립과 내전의 상징적인 현장을 무대로 한다.
6점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슬로우모션을 통해 시간을 연장하고 실제 인물 사이즈를 구현한 형태로 본래 하나의 벽면에 나란히 놓였다. 작가의 몸은, 시간의 축으로서 관객과 세상 간 매개로 작용하고 보는 이는 작가의 몸을 빌어 시간적 간극을 인지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는 각 도시별 지니는 갈등적 요소가 이러한 인지과정을 통해 유화되어 심리적으로 자연스럽게 풀어지게 하고 그 근간에 남게 되는 인류의 보편성과 본질의 문제를 성찰하게끔 유도한 것이다.
본 전시는 가능한 이를 놓치지 않고, 공간해석이 오히려 작품의 의미를 체험의 국면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그래서 공간이 지닌 '길' 구조가 감상의 물리적 거리를 설정하는 일차적인 역할을 하게 하고, 한 작품과 다음 작품을 이으며 걷는, 일종의 수행적 산책이 동선을 통해 유도된다. 이는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사색을 위한 심리적 거리distance를 과정적으로 의도한 것이며, 관찰과 몰입 그리고 작가의 몸을 매개로 인식할 수 있는 특유의 인지적 체험을 3종류의 여섯 화면을 통해서 보다 극적으로 이끌기 위함이다. 따라서 동선의 마지막에 놓인 작품까지 감상하고 난 뒤라면, 관객은 관람자 이상으로 전시자체에 '참여'한 주체이자, 작품에 대한 고유한 사색의 궤적을 가질 수 있다.
본 연구단계에서 필진의 구성 또한 본 기획의 핵심을 형성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한다. 우선 체계적 사유의 기획으로 김수자의 전 작업을 문맥화2)하고, 작가의 작업을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노마디즘'에 대해, 이에 적절한 적용과 해석3)을 꾀해본다. 그리고 '원형적' 사유에 대한 단초로서 성찰과 기억에 대한 관점4)을 보이고, 문화적 원형에 있어 동아시아의 샤먼사상과 유불도사상을 비교분석한 논문5)을 참조로 수록함으로써, 다각적으로 작가와 작품이 지닌 의의를 인문학적 시선으로 유도하기로 한다.

II. Connecting



보편적 공간에서 '대칭과 미혹의 공간‘으로




건축개념에서 널리 사용되는 '보편적인 공간universal space'은 이번 프로젝트 기획의 방향과 기준을 고민하는 시발점이 된다. 이는 어떠한 용도에도 적용할 수 있는, 공간의 단순성과 가변성이 공간 자체를 다양하게 시각화하는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게끔 하는 부분에서, 공간의 형식을 변형시킬 수 있는 의식적 기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는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던 구조, 자칫 '통로_길'구조가 '한정적'으로 작용할지도 모를 우려에서, 그 이상의 것 '미로구조'를 상상할 수 있게 하였다.6) 역으로 기본 골조가 지닌 탄탄함과 완고함 속에서 도리어 '보편적 공간'으로의 변모를 고려하고 '통로_길'의 의미를 '미로'로 과감히 변형함으로써, 고유의 인터페이스를 확장하고 진전시킨 것이다. 여기서 '미로구조'는 일반이 떠올리듯 '미궁', '길찾기'를 도모했다기보다, 형태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대칭성'의 양상과 '궤적'의 흐름으로서 동선연출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 각 퍼포먼스 영상이 막다른 골목마다 제각기 2.4m, 3.9m, 6.8m에 이르는 3종의 스크린에 대칭적으로 놓이고, 이번 전시작품이 또한 뿜어내는 분위기로 인해 관람자는 마치 영상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혹은 화면 속 작가와 한 방향을 바라보면서 그와 동일시되는, 미혹적인 착각을 추체험할 수도 있다. 이는 공간의 미로구조와 영상작품이 만들어내는 교묘한 일체 속에서 '미로'가 수행하는 역할들을 침투시켜보는 것이다.


바늘여인, 심정心情과 무화無化로서의 원형적 의식


바느질 행위와 천 작업, 보따리 작업을 통해 세상 속에 자신을 내던지며 유전적인 문화적 기억들을, 내적필연성으로부터 비롯된 성찰적 흐름으로 보여 왔던 작가 김수자는 이제는 자신과 사물을 포함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매진하면서 본연에 대한 자각과 세상 보편적 가치에 대한 사유를 행위화한다. 이때 매개체로서 작가의 '몸'은 관점과 관계에 대한 소실점이자, 수행의 형식을 시각화하는 공진을 이끌어낸다.
<바늘여인>(2005)은 네팔 파탄, 쿠바 하바나, 이스라엘 예루살렘, 예멘 사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중부아프리카 차드의 자메나를 배경으로 한다. <바늘여인>(1999-2001)은 군중들이 집결해있는 주요 메트로폴리스에서 작가가 '바늘'로서 자신의 '몸'을 인식하고 또한 스스로 '바늘여인'으로 명명하는 일종의 성소적 의식이었다. 이에 <바늘여인>(2005)은 세계의 이권과 분쟁, 해결되지 않는 모순적인 대립을 상징하는 장소에 접근하여 '관계'에 대한 문제제기를 보다 비교문화학적, 사회학적, 인문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더해준다.
차드(자메나)는 주체적․자율적인 사회성장 과정을 겪지 못했던 구조에서 30년 이상 이슬람계와 기독교로 나뉘어진 중앙정부의 내전으로 고통을 겪어온 국가이고, 네팔(파탄)은 문화적인 성소임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지도층의 사상적 갈등과 권력내분으로 인해 내전의 불안을 항시 떠안고 있는 곳이다. 예멘(사나)은 이슬람 근본주의(북예멘)와 분리주의(남예멘)의 첨예한 대립의 현장이며, 가난과 폭력으로 점철되는 도시 리오데자네이로(브라질)는 갱의 제국으로 불린 지 오래다. 그리고 불통과 이슬람 사회와의 극도의 대립을 보여주는 예루살렘(이스라엘), 포스트식민주의 이후 이데올로기와 그로부터 미국에 의해 주도된 국제사회 고립을 상징하는 쿠바(하바나). 이들은 여전히도 굳건한 제국주의적 폭력들이 부추겨왔던 화해할 수 없는 사회구조적 모순과 종교․사상적 차이를 차별적 입장으로 수용하여 영속적 반목의 긴장을 안고 있는 세상의 '모든 가난'이 만연한 실상들이다.
이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은 '심정적'이다. 그가 고통을 받아들이는 행위는 적대적, 이데올로기적 범주를 벗어나 고통에 처한 현실에 뛰어들어 고통을 증명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황자체에 대한 극적인 순간이나, 혹은 저널리즘과 같은 관점이 재현되지 않는다. 작가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펼쳐지는 그 현장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할 뿐이다. 마치 '유사죽음'과도 같은 현실 속에서 피폐해진 일상 안에서도, '살이'를 지속하는 사람들과, 인류를 위한 기념비와도 같이 ‘자신’을 매개로 하여 펼친 행위 자체는 그 어떤 이분화된 가치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이 모두를 다만 포옹하려는 바다. 이것은 광주학살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작업 (1995), 코소보 내전의 희생자들에게 헌정하는(1999),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희생된 흑인들의 이름을 기록설치한 (2002)에서 그가 의도하였던 핵심들을 관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곳'과 '그 자신'을 잇는 행위 속에서 그 곳이 지닌 기억들에 심정적으로 겨누는 것. 감싸 안는 행위, 화해의 희구, 그리고 영적인 치료를 통한 치유로 인간적 가치를 재생시키는 바.
떠남과 머무름의 형식들을 보여 왔던 기존 작업들은 작가가 자신의 문화적 기억들을 세상에 '처해짐'을 통해 성찰을 행하는 과정이었고, 이를 상징하는 보따리는 어느새 작가의 작품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노마디즘'이라는 수식어의 모체가 되었다. 그로부터 <바늘여인>(2005)은 "낯선 삶, 낯선 세계, 낯선 타자들을 향해 언제나 자신을 열어두고 그 낯선 존재들을 통해[...]자신 안에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내"7)고 있으며, 불안과 불신의 도시에 다가간 행위에 내재하는 목적들이란 노마디즘의 상식적 기제가 던지는 관계성의 근원을 구체화한다. 더불어 그 해석이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내는 타자성에서 비롯되어 주체를 규정해가는 과정에까지 연관된다면, 노마디즘은 작가의 태도적 측면에서 상술될 필요가 있다. 그 태도란 매개자로서 혹은 일종의 메신저로서 세상과 마주하며 스스로를 규정해가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더불어 작가의 태도적 문맥을 관통하는 '바늘'은 자아의 소멸을 꾀하고 더욱 극적으로 타자와의 일체감을 만들어내는 상징이 된다.
"바늘은 천을 꿰매는 자신의 매개역할을 하고 나면, 실자국만 남기고 자기 자신은 그 장소에서 사라집니다[...]저의 몸을 관객이 더 이상 의식하지 않게 되는 순간, 관객이 내 몸을 입고 그 자리에 서게 되는 것 역시 바늘의 속성과 다르지 않지요"_김수자
의인화된 바늘 즉 작가의 '몸'은 매개일 뿐, 의도하는 바 지워지는 대상이다. 이 경우 매개라는 것이 현상에 의지하는 존재적 한계를 함의하고 있고 그렇기에 그 자체만으로서는 아무런 필연성도 본질도 근거도 없어 보일 수 있겠지만8), 그것이 창작에서 태도적으로 문맥화된 요소라면, 우리는 여기서 지워지는 대상으로서 '작가의 몸'을 단순한 사라짐으로 읽을 수 없다. 그것은 '역할의 마무리'가 아닌 ‘역할의 이행’ 도정에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생명이 그 주어진 육체나 사회나 민족의 질서 속에 놓이면서 발하는 목소리, 존재하는 의식의 '순수 결정'이 어떤 형태를 취한 것이다.9)




그의 작업은 자신과 사물 간, 자신과 세계 간 즉 자기로부터 비롯된 '선zen'적인 깨달음에서 시작하여 그로부터 특수한 상황들 속에 자신을 내던져온 행위이다. 개체는 '공동존재'에 처해있는 자신을 인식함으로써 존재적 의미를 습득한다. 그렇기에 바늘여인 퍼포먼스는 일종의 세상 속에 처한 자기 명명의식과도 상통한다. 이 명명의식은 모든 가능성 속에서 한 가지 가능성을 선별하고 배치하는 필연적인 계기로서 상황을 인식하고 동시에 상황을 인식시키는 행위이며, 상처내기와 치유의 성질을 갖는 '바늘'의 속성으로 자기 역할의 당위를 밝혀내는 상징장치이다. 이것은 태도를 규정하는 의식의 이면을 고려하게 한다.
다시금 '관계'의 범주는 자신과 사물(바느질행위, 보따리), 인간과 인간<바늘여인>, 몸과 자연, 자연의 근원<지수화풍>으로까지 소급해간다. 이때 작가의 '의식'은 이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는 처음과 끝이고, '몸'은 처음과 끝 속에 항시 세계에 대한 바로미터로서 역할하는 '매개항'이 된다. 작가의 질문은 자신에 대한 인식에서 세계, 세계의 요소를 추적해 가는데, 이 과정은 "끝없이 도전하는 평면 앞에서, 자기존재의 모순 앞에서, 또한 독창성originality에 대한 강한 욕구 앞에서 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어떤 방법론을 찾"는10) 절박한 자기구원의 요청에서 필연적으로 조우한 일종의 '접신체험'으로 비유된다. 이 양상은 "이불을 꿰매는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나의 사고와, 감수성과 행위 이 모두가 일치하는 은밀하고도 놀라운 일체감을 체험했으며, 묻어두었던 그 숱한 기억들과 아픔, 삶의 애정까지도 그 안에 내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11) 초기 작업들과 <바늘여인> 첫 작업 단계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12) 또한 '바느질행위', '감싸는 행위(보따리)'의 현전을 거쳐 떠도는 행위로서 수행한, 전 작업의 시작점이다.
작업의 시작점이 되는 이러한 체험에서, 그에게는 절박함이 있었다. 모든 절박함은 상징적인 죽음으로도 치환된다. 적어도 살려는 의지가 인간의 본성이라면 그것이 욕망하는 바, 결핍과 불안을 치유하여 살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것은 고통을 안기는 일상과 현실을 넘어선, 삶의 의지가 기댈 수 있는 정신적인 근원을 본성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에게 정신적인 근원이란 신화적인 영감, 비일상화가 비추는 현실의 증거를 상기하게 하는 '문화원형'인 것으로 우리는 우리의 사고를 소급해볼 수도 있다. 작품의 오브제는 때로는 작가의 행위 이면에 놓인 ‘무엇’을, 즉 범주를 형성하는 문화적 기억이거나 혹은 보편이 납득할 수 있는 인류문화의 원형을 발언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물론 환경적 지리나 종種 혹은 세대와 같이 조건 지어진 특수성이 자리하지만, 그 특수성 안에서도 지성과 감성이 낳은 신화와 종교, 학문 그리고 사회형성, 갈등과 화해에 대한 전승되고 습득되어온 공통항들이 유전적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작가가 자연의 요소에까지 '관계'의 의미를 확장해 온 과정은, 바로 그 '공통항'에 존재하는 본성 혹은 순수 결정으로서 '살려는 의지'를 끄집어내기 위함이고, 그렇기에 분명 이 과정을 전제하는 의식은 문화기억에 대한 '원형적사고'와 '기억에 대한 성찰'들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고뇌와 상징적인 죽음이 갖는 절박함에는 '부활'의 계기가 더불어 필요하다. 이에 하나의 통과의례로서 '접신체험' 내지는 신묘한 '도의 깨달음'은 그 본연에 샤먼적인 요소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이탈함separation으로써 우리가 곧 알게 되겠지만, 비극적인 위대함과 아름다움에 모자라지 않게 깃들여 있는 정신의 위기spiritual crisis로써 자신의 새롭고 참된 삶을 시작"13)하는 자, 샤먼은 병을 치료하기도 하고 고행자로서의 행적을 남기기도 한다. 더불어 "영혼의 안내자, 사제, 신비가 노릇을 하는가 하면 시인 노릇"14)도 한다. 여기에 궁극적인 목표는 초자연적 존재와 인간을 매개하는데 있다.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예술가들/학자들은 분명 세계인식에 대한 메신저로서 역할해왔다. 고유한 정체성으로부터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연관을 발견하고 개념적인 사유에서 인지적 증폭을 통한 새로운 직관의 길을 열어주는 사람. 이들은 분명 세계를 통해 자기애와 자각을 꾀하고, 다시금 정신적으로 무장된 상태에서 세계로 향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세상에 처해짐이란 단순한 처함이 아니고 스스로가 선택한 처함이다. 더불어 자기 자각을 통해 행위의 필연성을 안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 우리가 요구하고 주목하는 예술가는 어쩌면 이러한 샤먼적 의의를 통해 우리의 세계를 확장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예술가로서 본질적으로 갖게 되는 자기 질문과 회의, 자신의 기억과 원형적인 사유를 통해 세상을 가로지르고 동시에 접합하는 행위자. 이것이 바로 같은 노정路程에 선, 작가 김수자에게서 우리가 샤먼적인 요소를 언급하는 수식이어야 한다.
작가는 항시 무채색의 옷을 입고 있다. 무채색은 무정부주의자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동양에서 말하는 모든 색의 근원으로 일컫는 현색玄色을 떠올리게 한다. 음양오행의 기반으로부터 초월적인 세계의 법칙을 매개한 샤먼의 역할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세계관에서 정신사적으로 내재되어 온 색채관은 '청, 적, 황, 백, 흑'의 오방정색五方正色으로 구성된다. 오방정색은 작가가 기존 작업에 주요했던 이불보나 보따리 페브릭들이 지닌 색채이기도 하며, 이 페브릭들은 전통적으로 우리의 생로병사와 함께 해왔던 '원형성'을 상징하는 오브제들이다. 작가의 오브제가 단순한 레디메이드ready-made가 아닌, 레디유즈드ready-used로서의 문화적 코드로 읽히는 이유는 바로 이에 준한다.15) 그런데 이 색채들이 하나로 모인 것이 바로 현색玄色이며, 현색은 "분별 이전의 혼돈의 세계"16)이자 '모든 색의 근원'으로 통한다. 그것은 도道의 동일한 이름이며 작가의 몸을 에워싼wrapping 채로 '모든 가난'을 마주하게 하는 또 다른 몸이기도 하다.17)




III. 나오며




"예술이란 물 자체, 즉 파악할 수 없는 것을 생산해야 한다. 하지만 예술은 사물을 자명한 것(감정적으로 동조할 수 있는 것)으로도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도 서술해서는 안 되며, 파악될 수는 있지만 아직 파악되지 못한 것으로 서술해야 한다."18)
<바늘여인>(2005)의 비디오에서, 작가는 자신을 노출시킴과 동시에 우리를 함께 노출시킨다. 이것은 작가를 관찰하면서 밀집한 무리들 속으로, 사람들의 행위를 시각적으로 새기면서 스스럼없이 동화되는 탓이다. 우리는 여기서 "세상 속에 펼쳐져 있는 그들이 지닌 개체성, 그들 존재"가 '관계' 속에서 일으키는 삶의 "스파크에 대한 단서"에 다가서는 각자의 사연에 대해 궁금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 연민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이것은 또한 우리에게 "타인의 삶이 펼쳐지는, 타지의 국가들에 실재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얼마나 이해를 하고 있는가"19)를 심정적으로 일으킴으로써, 단순히 세계 속에 다양한 경험체로서, 인류를 노출하고 있는 것만이 아닌 희생적 사건의 경험자들을 통해 관찰자로서, 그 속에 개별존재자로서, 우리 자신이 처한 무관심적 요소에 대해서도 노출하도록 혹은 사유하게끔 여지를 남긴다. 이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작가는 또한 화면에서 그가 "존재함is"에 대해 "나르시즘적 방식으로 집중될" 지도 모를 시선을 "피하고자"20) 관찰의 공간을 한정하고 이를 화면으로 연출하였다.
<바늘여인>(2005)은 본연의 인간성을 희구하고 문화적 차이를 포용하는 제의를, 서사를 제거한 극도의 단순한 행위로서 비출 뿐이다. 이는 마치 정제되지 않은 의식의 편린인 관념이 끼치는 작용과 유사하다. 그로부터 출발하여 우리는 동시대 인류가 껴안은 불편한 ‘일부’를 맞이하기 위한 인간의 윤리적 심리를, 시공간의 축을 투영한 작가의 몸을 통해서, 촉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이 먼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통을 우리 눈앞에 가져온다는 걸 알았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타인의 고통이 자신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21) 형국에서 그 다음 어떠한 방식으로 세상과 마주보며 자신을 구축해가는지, 작가의 '몸'은 일종의 타인을 사유로 이끄는 안테나이자 상처의 현장을 감싸 안는 성소적 매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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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구미술관 개관특별전3, 2011년 8월 10일~11월 20일

2) [김수자, 수직과 수평 체계 위에서의 사유], 2010, 서영희(홍익대학교 교수) : 본 글은 『미술평단』100호(미술평론가협회, 2011.3월 발간, pp53-64)에 수록된 내용을 편집한 원고이다.

3) [노마디즘:유목적인 삶과 예술의 성분들], 2011, 이진경(실명 박태호,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4) [문화기억과 문화원형 그리고 소통], 2011, 박상환(성균관대학교 교수) : 본 글은 「문화콘텐츠와 인문학의 소통가능성」,『인문과학』41호(성대 인문과학연구소, 2008)의 내용을 수정 발전시킨 것이다.

5) [동양문화 원형으로서의 샤머니즘], 2010, 양회석(전남대학교 교수)

6) "홈패인 공간은 영토화되고 지층화된 공간으로, 정주적 특성을 지니며, 고정되고 닫힌 경로를 따라 운동이 전개되는 한편, 생성(-되기)대신 진전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의미한다[...]매끈한 공간의 선이 방향적이며, 열려있다면, 홈패인 공간의 선은 차원적이며, 닫혀있다[...]반면에 매끈한 공간은 유목적, 이주적 공간으로, 속도와 운동, 생성의 공간이며, 선이 수치나 계량적 결정인이 아니라 벡터와 방향인으로, 점이 선과 궤적에 종속된다[...]정해진 방향과 경로가 없으며, 패치워크와 같이 중심이 없어 무정형으로 무한대로 연결 확장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건축과 시간속의 운동], 2009, Spacetime, 김원갑

7) [노마디즘:유목적인 삶과 예술의 성분들]에서 이진경은 단순히 이동의 궤적으로 노마디즘을 오해하기보다, 기존 주어진 배치에 이질적인 것이 범람하듯 스며들고, 이를 통해 '탈영토화'로서 삶이 재배치되는 면모를 보이는 관점이나 행위들이 보다 그 진위에 가깝다는 관점을 피력하고 있다.

8) p.125「자유와 비극_사르트르의 인간존재론」, 신오현, 문학과 지성사
"의식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자와 관계함으로써 즉 존재자를 어떤 존재자로 규정함으로써 비로소 존재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의 존재는 항상 스스로 존재하는 자로부터 빌어온 것이요, 그러하 한에서 항상 빌어온 존재를 자기의 존재와 동일시하기를 거부한다"

9) p.219「문학에 있어 전통계승의 문제」, 김윤식,《세대》, 1973

10) 1988년 개인전 작가노트 중에서

11) 위와 상동

12) "바늘여인(도쿄,1999), 그것은 본 시리즈의 첫 퍼포먼스였습니다. 적절한 때와 장소를 찾아 촬영팀과 도시를 걷고 있었죠.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나를 스쳐가는 시부야에서 난 (내 의지 밖으로) 멈춰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군중의 에너지들을 느끼면서 나는 내 몸에 초점을 맞추고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내 중심과 강하게 연결되는 느깜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나는 군중들과 나 사이 분리되어 구분되는 바를 깨달았습니다. 마치 섬광과도 같이 '도'를 깨닫는 순간과도 같았고, 그곳에 멈춰선 채 나는 카메라를 등지고 퍼포먼스를 촬영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Interview중 발췌, Olivia Maria Rubio, 2006

13) p.32「샤마니즘」, 미르치아 엘리아데, 이윤기 역, 까치글방

14) p.23 위와 상동

15) 첨언하자면, 그것이 단순한 '레디메이드'로서의 사물이기보다 한국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즉 문화적 기억을 공유하는 '레디유즈드'로서의 유산이기에 또한 그로부터 문화적 자각에 대한, 혹은 거리두기에 관련한, 온 '성찰'적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16) 현색(玄色)은 오방정색을 포괄하는 궁극적으로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 천지인일체(天地人一體)'를 상징한다. [한국인의 색채의식 연구], 박명원 <동양예술4호> p.297

17) "바늘여인 퍼포먼스 비디오에서 저의 몸을 관객이 더 이상 의식하지 않게 되는 순간, 관객이 내 몸을 뚫고 내가 보는 세상을 보게 되지요. 즉 내 몸이 관객들의 자기 성찰을 위한 미디엄이 되는 것이지요[...]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굴절없이 있는 그대로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고, 또한 철저하게 나 자신으로부터의 질문을 통해 진화해온 선문답 같은 작업이니까요. 동시에 내 몸이 시공간의 축(Axis) 역할을 하여 인류의 모습을 성찰하는 바로미터가 되었으면 해요. 군중 속에서 세상의 모든 사람을 만나 그들을 포옹하고 싶어요. 오늘을 살아가는 인류에 대한 연민이라고나 할까요" _ 김수자

18) [새로운 예술을 찾아서], 1998, 베르톨트 브레히트, 김창주 편역, 새길

19) [KimSooJa: Less is More], 2006, Olivia Maria Rubio

20) [Experiencing A Vacuum], 2005, Emanuela De Cecco

21) p.150「타인의 고통」, 2008, 수잔 손택, 이재원 역, 이후

2011년 10월 3일 월요일

기고 : '아트터미널', 나는 '게스트하우스'를 꿈꾼다.

'아트터미널', 나는 '게스트하우스'를 꿈꾼다.


최윤정(대구미술관 큐레이터)


광주에서의 지난 3년간의 활동들은 일종의 소프트웨어를 실험해보고자 했던 시도였다고 믿고 있다. 물론 그 성공여부에 대해서는 확언할 수는 없지만, 덕분에 지역활동가 및 예술가들에게 실험 공간 내지는 새로운 스튜디오를 상상할 수 있도록 기여했던 부분도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2009년 대인시장 공방거리 조성사업으로 진행되었었던 '2009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는 다소 자폐적으로 창작활동을 펼칠 수 밖에 없었던 예술가들에게 '공동체적' 개념을 부가한 스튜디오로서 가치를 상실해가는 빈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사업이 끝난 이후에도 약 40여군데 스튜디오가 자생적으로 예술가들의 주도로 유지되어오고 있었다. 현재는 물론 그 수가 많이 줄었다고 듣고는 있지만, 젊은 활동가들과 예술가들이 여전히 대안공간 및 스튜디오 형태로 대인시장에 남아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끝까지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언제나 그들을 응원하고 있다.

재미난 소식이 들려온다. 광주국군병원을 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한다는 내용이다. 가슴이 설레였다. 기존의 뻔하디 뻔한 상상만 답습하지 않기를 진정으로 희망하면서, 나는 이와 유관하게 나름 주제적인 방향으로 고민해왔던 내용을 단편적으로나마 이 글을 통해서 밝히고자 한다.


'아트플랫폼'에서 '아트터미널'로


그 누가 이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정의했건, 나는 아트플랫폼은 현대 예술활동들이 펼쳐지는 하나의 거점으로서 소프트웨어가 강하게 발산되는 공간개념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기존의 지역 특성적으로 펼쳐지는 대안공간들의 활동이며, 새로이 생기는 복합문화공간에 대한 내용이 이에 포함되는 것인데, 여기에는 공간의 즉자적인 특성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이 주요했다. 여전히 유효하고 의미있는 가치로서 '아트플랫폼'은 개념적으로 특히 기획자들에게 태도적 개념으로 수용되어야 하고, 지역 안에서 이에 맞는 예술가들을 수용하여 창작주체로서 소신껏 자신을 발산하는, 바로 공간을 특화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광주는 충분하다. 쿤스트할레를 비롯해, 몇몇 대안공간들, 광주시립미술관의 창작스튜디오, 네버마인드, 광주극장 등 복합문화와 각 장르별 예술활동이 심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하드웨어는 충분하다. 더불어 곧이어 생기는 아시아문화전당까지라면 외부 시선에서 바라본 광주는 이미 현대적인 예향의 도시로서 '아트플랫폼'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문제는 예산과 전문적 인력, 특히 기획자들이 스스로 전문성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고 이를 소프트웨어 강화를 통해서 드러내 보이는 것. 이에 더하여 각 소프트웨어를 접속할 수 있는 매개와 네트워크의 긴요함을 기획의 비전과 태도와 맞물려 동등한 줄기로서 다양성을 수혈받는 '예향'이라는 나무를 키워내려는 관계자간 노력이다.

그렇다면 광주에 없는 것, 머물 곳이 없다. 쉬어가고 만나고 정보를 교환하고 그 속에서 번뜩이며 창작적 계기를 모색할 수 있는 '잠시 머물 곳'이 유연하지 않다. '플랫폼'은 출발지이자 도착지로 정지적 개념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행위의 마무리에 가깝다. 그러나 '터미널'은 행위의 연속을 지시한다. 여정의 과정 속에 놓여있고 떠남에 대한 일차적인 접속구로서 충분히 그 의미를 연상해볼 수 있다. 국제적으로 이미 광주는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단순히 예향으로서가 아닌 세계 미술의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명소로 자리했다. 그 덕 좀 보자. 광주에서 머무르며 이곳을 관찰하고 창작활동을 펼쳐보이고 싶다고 말하는 외지인, 외국인들을 수없이 접했다. 그들은 다만, 운이 좋다면 이벤트성으로 무수히 난립하는 광주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일부 참여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지원의 타당함을 무마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활동이 질적으로 가치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한편 그들을 통해서 확장될 수 있는 네트워크와 정보교환의 계기는 기타 외 지역에 대한 예민함을 놓치지 않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항시 생각하였다. '아카이브의 구비문학화'라고 하면 이해가 좀 더 빠르지 않을까?

'터미널'을 고민하면서 더욱 실재적으로 나는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있다. 누구든 원하면 머무르고 싶은 기간만큼 머무를 수 있다. 더불어 그들의 예술작업에 대한 질적인 부분에 대해서 머리를 싸매고 고통스러워할 필요도 없다. 또한 지원받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경우에서(개인적으로 스스로 원하여 자비로 방문하는 경우, 그들의 창작욕은 더욱 커지고 그들을 손님으로 맞는 주체 역시도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관계의 합리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을 항시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쉬운 창작이 난입되는 사례들을 볼 수 있었다. 돈을 들이면서도 만만해보이는 것, 요구는 당연하고 책무는 가벼워지는 이 모순적인 상황들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게스트하우스+모범적인 레지던스 프로그램+공간 대여(스튜디오, 연습실)등의 차원으로 운영비를 소진하지 않고도 수익금을 재투자하여 전문인력을 배치함으로써 이후 소프트웨어에 대한 비전까지도 놓지 않는 묘미를 상상해보자. 작년 겨울 우연히 지인의 추천으로 '타이페이 아티스트 빌리지'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일부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창작자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타지 및 해외에서 오는 예술관계자들에게 게스트하우스로서 사전예약을 통해 저렴한 숙박을 제공한다. 대만에 대해서 연구할 때, 그 지역의 작가들에 대해 리서치할 때, 선택적인 '머무름'은 대단히 합목적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더불어 그곳은 대만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및 유럽권 등 예술가, 큐레이터, 비평가, 기자단, 연구자 등 자연스런 정보교류 및 소통이 가능한 곳으로 '자율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광주를 떠나있는 이 시점에도 나는 광주에 대해 여전히 관심이 많으며, 애정 어린 객관자의 시선으로 광주를 관찰하고 있다. 더불어 주변에서 많은 질문들을 받는다. 그 중 가장 사적이고도 대표적인 내용은 '가면 어디를 가봐야 하지? 어디에 머물 수 있지?' 곧바로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떠오르는 탓이다. 광주에 와서 비엔날레를 보고 왜 잠은 부산 가서 자야하는지, 전시를 본 여운을 곧바로 남해바다로 흘려보내야 하는 이 비굴한 현실에 대해서, 물론 일상잡담이지만, 잡담에서 시작해서 근본을 추적해가는 심각한 논쟁도 벌여본 바 허다하다. 이는 단순히 잠자리 문제가 아니다. '머물기를 원하는 사람들, 머물 곳이 없더라'가 보다 핵심이다. 더불어 '광주예술계는 어떠한가? 현지에서 정보는 어디서 어떻게 구할 수 있는가?' 알고 싶은데, 개인적인 루트가 아니라면 '알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대전창작센터 인근에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생겼다고 한다. 역할은 잘 모르겠으나 오면 거기서 자란다. 대구에도 예술가가 만든 것은 아니지만, 예술가들을 우대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생겼다. 광주에서 손님들이 오면 특별예우에 할인도 해주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광주에도 물론 아트스페이스 미테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물론 주로 미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의 숙소로 기능하지만 때로는 예약도 가능한 시스템인 듯 하다. 일종의 터미널 개념으로서 게스트하우스들끼리 네트워크하여 정보 공유 및 운영 프로그램을 마련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이 경우는 더욱 말랑말랑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상만 해도 재미난 이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외국 지인에게서 서울 금천예술공장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렀던 기억을 전해들은 적이 있다. 크게 친절하지도 않았고, 짧은 여정이라 큰 감흥이 남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서울에 가면 안전하게 머물고 작가연구도 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즐거운 내용이었다.

여러모로 공간운영에 대한 안정성과 지속성을 고려하자면, 기관개입은 필수라고 인정한다. 다만 문제는 인식의 합의와 창의적 사고에서 어긋나는 부분들이 많다는 것인데, 국군병원을 그냥 거대한 하드웨어만 첨가하는, 돈만 들인 허울로 만들지 않고, 초기 연구단계에서부터 뭔가 재미난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아이디어들을 담아내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에서, '광주에는 없는 공간'을 나는 '터미널' 개념을 기점으로 한 코드생성으로 고려해보자 제안하는 것이다. 그리고 혹여나 시에서 운영하고자 하는 복합문화공간 내지는 창작스튜디오 조성이 목적이라면, 나는 차라리 광주시립미술관의 현재 양산동 및 팔각정 창작스튜디오가 보다 활성화되어 전문화된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전형을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대내외적으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주장하고 싶다.

그 누구도 서로 모르고 다만 여행의 시작점에서 여정을 함께하는 '터미널'은 여행지 정보를 얻고 표를 사고 기차나 버스를 기다리는 설레임의 시작이다. 우후죽순 난립하며 의미도 인정받지 못하는 그야말로 '개나소나(?)' 레지던스/창작스튜디오'가 아닌 '오는 자 막지 않고 가는 자 붙잡지 않는' 자연스러운 네트워크의 현장, 게스트하우스를 형식으로 차용해보면 어떨까? 멀리서 '알 수 없는 선물 같은 컨텐츠'를 그득 머금고 오는 보물 같은 이들을 말 한마디 나눌 수 없는 모텔에 재우는 것도 손해라면 손해일 터.

2011년 8월 7일 일요일

주관의 Rule

객관이라는 것도 주관의 중용에 의해 설정된 일종의 Rule로서 볼 수 있다면, 쉽지 않다.
그래서 신이 있고, 학문이 있고, 멘토가 있고, 과제가 있고. 이를 중용의 기준으로 삼으면서 내 삶을 꾸리는 일.
모두 관계로부터 비롯되어, 그 관계를 질서짓고 정립하는 주관이 갖는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그렇다면 주관은 어디에서 비롯되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되는가.
주관이 뭔가를 문제삼으며 발화하는 시작점,
자각.. 그러나 자각은 주변의 사건과 관계에서 자극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면 본연, 본질, 그 자체에 대한 질문은 우리 주관 사유체계에서 과연 가당한 것이기는 한가?
다시금 철학이로구나... 태도로서의 중용과 사유로서의 단단한 주관이 택해야 할 무수한 선택들.
역시 다시금 철학이로구나.

2011년 7월 30일 토요일

Bio Art

연구 과제
- 장르
- 철학/윤리
- 현재

2011년 7월 28일 목요일

2011.5.26~2012.4.1, Daegu Art Museum

철학적 장소성으로서의 ‘허(虛)’

최윤정 큐레이터, 대구미술관



I. 들어가며

익숙하면서도 낯선 경향을 품어내는 곳

새로이 탄생하는 미술관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상징성을 특색있게 풀어낼 장소로서 대구미술관에는 어미홀이 있다. 이 장소에서 펼쳐질 기획의 방향과 미술관의 비젼들을 면밀히 고려하면서 명명된 어미홀은 22미터 높이에, 너비 15미터, 길이 42미터의 규모를 가지며, 3개 층에 이르는 미술관 각 공간 입구와, 전시장에서 전시장으로 이어지는 모든 동선을 관람시야로 품고 있다. 이것은 각 전시들이 뿜어내는 기운들과 관람객의 숨을 고르게 엮어내는 무형의 역할을 하면서 더불어 어미홀에서 펼쳐지는 전시를 각 시야에서 색다르게 관찰할 수 있다는 미적인 즐거움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그리하여 연간 1회 작가와의 협업으로 펼쳐질 어미홀 전시는 어미홀의 장소적 특색과 그것이 담당해야 할 역할을 기조로 하여, 예술가의 창작적인 영감을 고양시키고 실험적으로 공간에 도전할 수 있게끔 하는 일종의 창작 인큐베이팅 기획으로 그 방향을 잡고 있다. 이러한 기획은 미술관의 랜드마크적인 특성을 보다 강화하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대구미술관이 추구하는 비젼을 자연스럽게 공유할 수 있게끔 하여, 대구미술관의 질적인 역량을 프로모션하는 구체적인 안으로 역할할 것이다.

특화된 기획으로서 공간이 지향해야 할 색깔을 보다 분명히 한 뒤에, 품어내는 장소 내지는 도전과 생성, 모든 것의 흐름을 저장하고 그 흐름을 관리하는 협곡으로서 자연의 모체를 떠올리면서, 다목적홀은 '어미홀'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로비와 기획공간 사이에서 어미홀은 미술관의 얼굴과 전시홀로서의 기능을 모두 담당해야 한다. 숨을 조절하는 산책의 공간이자, 계곡을 흐르는 물과 그 물의 역동성으로 발생하는 수포의 유동성처럼 우연적인 부딪힘이 관객과 작품 사이에 일어나야 한다. 이것은 관객과 장소 사이에 일정하게 정해진 동선처리를 의도하는 것이 아니며, 공기의 흐름이 살갗에 닿아 느껴지는 일종의 감각적 조우로서 예술 감상을 돕는 또 다른 방식을 의미한다.

어미홀 개관특별전1의 첫 손님은 작가 이강소이다. 이강소는 한국 개념미술사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 '대구현대미술제'가 태동할 수 있었던 주축으로서 평가받는다. 그는 현재 경기도 안성 및 통영 등지에 작업실을 마련하여 나날이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미 원로작가의 축에 있으면서도 동어반복식의 작업형태를 보이지 않고, 창작을 위한 연구 및 관찰에 있어 젊은 열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작가 이강소, 그의 이번 신작은 '허(虛)-11-I-1' 이다.


II. 2011년 이강소의 첫 번째 설치작, '허(虛)-11-I-1'



1. Process

애초의 구상은 그가 1975년 파리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프로세스 작업과 연결되는 문맥을 찾는 것이었다. 어미홀의 규모 및 그것이 뿜어내는 강한 기운은 그 어느 작가라도 첫 시도라면 어려움을 토할 수 밖에 없다. 몇 가지 시도가 있었다. 지금의 설치 이전에 흙을 재료로 하여 작업의 초안이 짜여졌다. 그리고 이후에 이강소 작가가 몇 년 전부터 구상하고 있었던 목재를 이용한 조각설치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 중간에 선회하여 진행된 것이 바로 지금의 '허(虛)-11-I-1' 이었다. 해서 외부에 아직 공개되지 않은 신작을 설치하게 되었고, 또한 그 내용이 작가 이강소가 선호해왔던 장소/도시의 문맥, 그리고 일상을 관찰하는 그만의 세계관을 통합적으로 선보일 수 있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더불어 대구미술관의 장소적 문맥과도 자연히 연결되면서, 또한 미술관의 철학적인 지평과도 무관하지 않은 작업임이 분명하였다.

"예술이 싱그러운 원기에서 나오는 경우, 확실히 특성적인 것이 형성될 때에는 설사 감춰진 채라 하더라도 우미(優美)가 현재화되니, 영혼은 이미 양쪽에 걸쳐 앞서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생겨나는 작품들은 최초의 미완성이라 해도 이미 필연적인, 영원한 작품인 것입니다"1

어미홀 첫번째 전시였기 때문에, 기존 사례가 없었던 바는 공간해석에 대한 어려움을 실감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3차례의 변경과정을 거쳐 지금의 설치를 완료할 수 있었는데, 1차는 작가가 작업실에서 조각의 각 파트를 제작하고 그 규모와 형태를 자신이 직접 스케치한 도면을 토대로 하여 어미홀에서 조립 설치하는 것이었다. 2차는 미술관이 각 작품의 조립파트와 위치를 재조정하는 시도였다. 물성도 상당히 강하고 규모도 큰 작업이었지만, 어미홀의 특성으로 인해 작품이 좀 더 효과적으로 부각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했다. 이에 조립된 조각작품의 각 파트를 다시금 쪼개도 보고 틀어도 보면서 어미홀 바닥과 작품의 면면이 조화되는 방식을 구현하였다. 그러나 작가가 의도했던 스토리적인 요소가 다소 저해되었다는 의견에 따라 3차 재조정에 들어갔고 그제야 지금의 설치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는 작품에 대한 소감과 해석을 편향화시킬 수 있다는 고민으로 인해 오랜 기간 동안 작품의 명제를 '무제(untitled)'로 채택하거나 명제 자체에 그리 천착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어느 시기에서부터 작품에 '허'를 새기기 시작했는데, 이는 창작의 전 과정에서 얻어지는 우연적인 관계항과 그가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정립하고자 하는 세계관이 작품창작의 새로운 모티브로서 강력히 작용하고 있음을 표명한 것이라 보인다. 따라서 '허' 자체는 이강소가 창작의 계기뿐만 아니라, 그의 작가 인생을 펼쳐 보이는 태도 전반을 담아내는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2. 틈을 메우고 통(通)을 여는

지난 작업에서부터 일관되게 보여지는 것은 작업의 현장성이 그대로 작품에 노출된다는 점이었다. 이는 그의 작업에서 '프로세스'적인 요소가 강하게 살아있기 때문이었는데, 한편 이번 작업에서는 그것이 공간과의 조화를 꾀한 설치 작업임과 특히 관람자가 작품 안으로 들어와 그 사이를 채움으로써 '참여를 통해 작품의 의미를 완성한다'는 여지를 또 하나의 '프로세스'로 제안하고 있다. 이는 이강소의 작업적 특징이 또한 항시 주객간의 분리가 아닌 조화를 꿈꾸어왔고 이로부터 자기 세계에 걸 맞는 창작의 방향을 모색해왔기 때문이다.

"제가 생각하는 '허(虛)'는 세계가 끊임없이 변하고 흐르는 속에서 생성하고 소멸하고 변화하는 과정들, 즉 거기에서는 있을 수 있는 가/능/성 그런 의미를 담습니다. [...] 내가 할 수 있는 제안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때, 저는 거침없이 시험과 모험을 해봅니다. 그런데서 예상치 못한 것들이 실현될 때, 비로소 저는 살아있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이강소, 2011.4.3 인터뷰 내용 발췌

작가 이강소가 ‘허’라고 표현한 의미의 본래적 원형은 만물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포함하고 있는 거대한 철학적 공간, ‘태허’2에 가깝다. 장자는 만물의 생성과 소멸이 기의 모임과 흩어짐에서 비롯되며, 기가 흩어진 상태를 '허'라 하고 근원적인 허의 상태를 '태허'라 일컬었다.3 그것은 우주만물의 근원이자 모체로서, 마치 우주의 시원이면서 모든 가능성을 숨긴 것들이 혼재하는 공간인, 서구 고대 신화 속 카오스와도 상통한다. 철학적 공간 '태허'로서 '허'는 또한 내재인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기가 발하여 생동하는 모든 운동과 변화들은 '허'의 지점에서 가능하다. 다른 말로 '허'는 모든 사물이 생성하고 소멸할 수 있는 가능성을 끌어안은 장이 된다. 자연의 운행원리를 따르고 있는 모든 생명이나 사물들이, 이미 그들이 지닌 필연의 질서에 준해서, 일종의 ‘소우주’로 여겨질 수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이들은 이미 모두 '허'이지 않겠는가. '씨앗이 싹이 되고, 싹이 나무가 되고, 나무가 열매를 맺는' 이유는 자기 부정이나 초극이라는 단계적 해석이 아니라, 그 변화 자체를 가능케 하는 '애초의 힘_가능성'이 자기 안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이 힘은 단순히 변화 과정에서 비롯한 운동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원인과 결과에 대한 체계도 아니고, 소소한 것조차 가치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기에 위계적으로 해석할 수도 없다. 모든 것들에 마치 빛의 '파장'이나 소리의 '공명'처럼 골고루 배어있으면서, 조화롭게 만들고자 하는 긍정적인 자연의 힘인 것이다. 그로부터 기의 운동이 시작되고, 서로 상이한 기는 어느 시공간 안에서 두루 섞이면서 서로의 틈을 메운다.

"이 세상에는 확실하고, 절대적이고 영원한 것은 없다고 봅니다.[...]명백한 것처럼 보이는 현상들에 대해서 인간의 인식이 실재라고 믿는 것은 결국 환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강소, 2011.3.

자유자재로 흐르는 유동성과 변화를 추구하면서, 멈추고 고여 있는 자신을 경계하는 것. 그것은 작가 이강소가 일관되게 견지하고자 하였던 태도이다. 이것이 '허'라는 철학적 장소성과 개념적으로 만났을 때, 그의 작품과 작품이 놓인 장소는 서로 간 긴밀하게 각자의 기를 소통하고 조화를 거두어내어야 하는 소명을 띠게 된다. 이에 따라 일반이 감지할 수 있는 틈들이 보다 '허'로서 가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가지게 되며, 그 전제란 공간과의 무갈등에서 비롯되기에 이 작업에서 우리가 관조할 수 있는 바는 일견 집착이나 구애, 경직, 차별 따위의 내용과는 분명 판이하다.

집착을 전제로 하는 내용들과 달리, 그가 재료를 다루고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는 단계에서도 그의 인식적 태도 및 특징을 또한 간파할 수 있다. 크게 보자면 그의 이번 설치작품은 특정한 장소 안에서 일상의 가치와 계기들을 조명하는 것이다. 그는 재료의 쓰임새를 정하기 이전, 길게 함께 두고 호흡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도 인정하는 그의 습성이기도 한데, 그의 첫 개인전 <소멸>이라는 제목의 선술집 프로젝트에 쓰였던 오브제나, 허-11-I-1의 목재나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도구로서 취급되거나 이미 잊혀진 혹은 버려진 것들이 그와 호흡하는 동안, 작가 이강소의 색깔을 부여해주는 매개체로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의 직관은, 자신의 문맥과 재료의 쓰임새를 관련지어서 재료들이 생명적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하거나, 그들 고유의 가치를 발견하고자 하였던 예민한 관찰로부터 발한다. 여기에서부터, 그의 작업의 의미나 의의는 이미 창작의 전 단계에서 맺어지는 모든 관련에 준거하여 생성된다. 이 경우 특히 그것이 예술작품이라는 매개체처럼 ‘감응적인 상태’에 대한 것이라면 ‘직관'이 유효 적절히 그것의 진의 내지는 주제를 파악하는데 행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하늘을 안고, 바다를 품고, 한 모금 담배를 빤다 /하늘을 안고, 바다를 품고, 한 모금 물을 마신다 /누군가 앉았다 간 자리 우물가, 꽁초 토막...”4

직관이란 감각적인 것에 대한 사유와 이를 질서 짓고 교정하는 이성적 사유에서 한층 고차적으로 작동하는 순간적인 깨달음이다. ‘태허’와 같은 세계 본질 내지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체험하게 되는 모든 현상들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유일한 인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예술가의 직관’이란 말 자체는 상당히 타당하다. 작가 이강소의 직관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이나 늘 있어왔던 가치 내지는 일상 속에서 반짝이며 존재의 의미가 있다고 외치는, 소소한 것들이 지닌 가치들을 포착하면서 그만의 세계관을 의식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3. 시간성, 공간성

"늙어서 종말을 고하는 세계 위에, 창백한 하늘은 아마도 구름떼와 함께 떠나 버리려는 듯 하다. 석양의 해진 자줏빛 누더기들이 햇살과 물에 잠긴 지평선 근처의 잠자는 강 속에서 빛을 잃는다. 수목들은 권태로워하고, (길위의 먼지보다는 시간의 먼지로) 허옇게 바랜 잎새들 아래로/과거의 사물들을 보여주는 자의 천막집들이 떠오른다(...)"5
“망(忘)은 단순히 망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 일체의 사념 내지는 판단의식과 같은 주체의 인식작용을 거부하고 나아가 자기존재까지도 자각하지 않기에 이르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간상의 대소나 시간상의 장단 같은 분별 의식까지도 초월하는 경지이다. 이는 단순히 자기존재를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진실과 실상을 보는 데 필요한 일종의 방법, 무아와 무심의 경지에 드는 과정에 필요한 방법으로 이해해야 한다.”6

'허(虛)-11-I-1' 은 약 10여개 파트로 이루어져 있고, 각 형상은 "각기 다른 두개의 시간"7에 대한 서사를 띤다. 하나는 역사적인 장소 및 그 기운이 서려있을 옛 지주의 흔적으로 과거의 시간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이다. 긴 세월동안 함께 했을 먼지와 풍파가 마치 화석처럼 옛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퇴적하면서 결을 만들어 내었다. 과거 누군가의 손으로 깎이고 소중히 다듬어졌을 이 오브제들이 간직한, 시간의 이야기가 있다. 그것들은 과거에서 온 변사(辯士)들이다.

과거의 시간에 대해서 작가 이강소는 고도 '경주'에서 주요 모티브를 찾았다. 역사로서 분황사의 지주 흔적이 그랬고, 또한 괘능의 상석으로부터 그는 과거의 것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비례에 주목하였다. 이들은 그가 이번 작업에서 의도한 서사의 시작이었다.

마치 괘능의 상석 비례에 찬탄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또한 지금의 일상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구조물들에서 단순한 형태적 본질을 구현하고, 미래의 시간성을 상징하고자 일부 면을 숯처럼 산화시켜 인위적인 시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것은 단순히 형상에 시간성을 덧붙이기 위한 장치로서만 고안되지는 않는다. '태움'은 '태우는 행위'로서 목재의 소멸을 의도하며, 목재의 소멸은 새로운 형질인 '숯'을 탄생시킨다. 형질의 변환이 단순한 에너지 전이가 아니라, 이전 형질의 소멸(죽음)을 전제로 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형질이 또한 발할 수 있게끔 하는 것, 이것은 계속해서 그 다음의 형질을 낳고 또 다음의 형질을 낳는 자연의 법칙에 대한 순환적이고 원초적인 관계성을 떠오르게 한다.

"불은 공기의 죽음을 살고, 공기는 불의 죽음을 산다. 그리고 물은 흙의 죽음을 살고, 흙은 물의 죽음을 산다"8

이것이 그가 상정한 미래 시간성 속에서 다뤄지는 것이다. 이것은 일상적인 구조물 형태에 부여한, 미래가 지닌 서사이다. 다시금 '태우는 행위'가 인위적인 시간성을 만들어내려는 이유 이상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유기적인 관계성에 대한 사연에 복무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 행위는 서사에 대한 '문체'로서 여겨져야 한다. 이로써 '각기 다른 두 시간'은 과거의 서사와 현재의 것에 새겨진 미래에 대한 서사를 담아낸다.

물론 이 작업은 여기서만 그치지 않는다. 지금 현재와의 관련에 대한 소통여부가 본 설치 작업에서 제안된 또 하나의 프로세스라 앞서 언급한 바 있다. '현재'의 시간성은 아직 여백의 상태로 남아있다. 그것은 과거의 속삭임과 미래의 자각들이 이어지고 관련되는, 문맥을 형성하는 가능태로서 자리한다.

그것은 보는 자의 '지금'이다.

시간은 그 자체만으로서 보다는 공간과의 관련 속에 서 있다. 작품이 위치하는 영역, 그것이 놓인 ‘여기’에서 '지금'을 말하는 것이다.

시간성이 띠는 서사적인 요소가 작품적 의미를 구성한다면, 공간성은 '시간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허(虛)-11-I-1' 각 파트들의 통시적인 시간성을 잇는 결구가 상징적인 모뉴멘트로서 설치작의 시작과 끝에 위치하고 이를 기준으로 선적인 비례와 횡단 구성으로 과거와 미래의 형상들이 연결된다.

꽂힌 듯 세워진 형상, 바닥의 물성을 강화하듯 단단히 밀착해있는 판구조, 솟아나고 엎드린 결구들의 모습은 생경하게도 인간의 풍경과 닮아 있다. 더불어 바닥면과 밀착하여 오히려 이에 스며드는 것 같은 혹은 바닥이 형상으로 위로 솟은 것 같은, 지주 흔적으로서 무거운 세 개의 돌은 단순한 과거의 오브제라기보다 목재의 물성을 띠는 다른 작품들을 관찰하며 공간을 유영하는 유동성의 느낌마저 갖게 한다. 이것은 다른 작품들이 선적이고 비례적인 구성을 갖는데 반해서 흔들린 삼각 구도로서 적절한 긴장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설치작은 우연히도 전시공간인 어미홀의 바닥면을 더욱 부각시키면서 작품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 근거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3층에서 전경을 보자면, 동일한 물성과 바닥면과의 관계로 인해 작품은 입체가 아니라 평면적인 회화로 보여진다. 바닥면을 캔버스라고 유추한다면, 각 작품은 마치 이강소의 회화에서 접할 수 있었던 단순화된 기호인, 일필휘지의 형상들로 읽히는 것이다. 3층에서부터 2층으로, 다시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올수록 그것은 다시금 애초의 입체적 형상으로 돌아온다. 이는 미술관의 외부로부터 시간적 흐름에 따라 각기 다른 색빛과 명암을 선사하는 자연의 빛이, 각 결구들의 특징을 강화하고, 사이와 틈새를 노닐며 정연히 깎아 다듬은 각 작품의 면들과 나무의 결들을 감응적으로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금 3층으로 돌아가서 각 파트들의 시간성을 잇는 결구 역할을 하였던 모뉴멘트 사이 정 중앙이 비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결구 사이 빛으로 연결하는 길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의도와 더불어 빛으로 연결되는 길 자체가 어미홀과 작품 사이에서 발하는 ‘기의 소통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관람자는 마치 공간을 유영하는 기의 흐름처럼 작품 사이사이의 틈을 메워나갈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이 길을 마주했을 때, 하나의 소우주로서 관람자는 '지금, 현재'의 의미를 채우게 된다. 작품의 서사 속에서 우리의 현재가 놓이는 순간이다.

"무심(無心)은 물아일체화된 세계, 있는 그대로의 사물현상 속에 주체가 용해되어 주체와 객체를 둘로 갈라낼 수 없는 상태로 표현된다. 대상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림으로써 대상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알게 되는 경지, 사물의 원래 모습의 자족함을 긍정하여 내가 어느새 물의 본모습과 하나가 되는 경지, 사물 대상 속으로 뛰어 들어가 내면적으로 그것을 느끼고 스스로가 그것의 생명과 함께 하나가 되는 경지로 언술화 되는 것이다."9

그 순간에 대한 미적인 감응은 작품과 관람자, 공간과 관람자 사이의 호흡에서 비롯되는 바다. 그 호흡은 '허'에 대한 세계관이 기초가 되어, 어쩌면 작가를 포함한 그 누구도 모르던 사이, 공간과 작품 간에 기가 소통하고 발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자연히 필연적으로 얻어질 수밖에 없는 결과일지도 모른다. “상대성조차도 상대적이므로”10 , 고로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각기 내재된 가능성들이 이 같은 '관련' 속에서라면, 굳이 이를 두고 절대적인 계기를 포함하는 필연성을 언급하지 않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III. 나오며

이강소의 작품을 그간 '프로세스적'이라고 말했을 때는, 그것이 시각성 안에서 원초적으로 드러내는 요소에 준거하였다. 그러나 이번 '허(虛)-11-I-1'에서 말하는 프로세스는 관람자의 참여적 특질로서 작품 관조와 작품의 완성에 대한 관계에 대해 철학적 의미를 강화한 결과이다.

더불어 어미홀과의 관계에서 장소성 내지는 '공간해석적인' 요소를 유심히 고려하면서 진행되어야 했던 3차에 걸친 설치 과정들은, 창작과정의 일부로서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에 부가적으로 진행되는 도큐멘트전을 통해서 설치 전 과정들을 담아 선보이고자 한다.

'허'의 의미는 어미홀의 특성과도 꽤 상통한다. 모든 것을 생성하고 흐름을 관리하며 펼쳐내는 장으로서 어미홀은 이미 '태허'의 세계관에 가장 걸 맞는 장소가 되었다. 이후에도 또 다음 그 이후에도 ‘소멸과 생성’의 제문제가 ‘새로운 형질로서 또 다른 가능성’을 선사한다는 전제를 안고 어미홀은 정말 낯선 것, 혹은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온 시각들에 대해서, 날 것으로서의 순수한 숨을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할 것이다.

철학적 장소성인 ‘허’를 마주하며, 또렷한 ‘정신의 눈’으로 그 행방을 좇고자 많은 이들이, 그들이 연구자이건 예술가이건, 애쓸 것이다. 작가 이강소도 그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연구 및 작업 태도에서 이어지는 작품의 경향은, 자신으로부터가 아닌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세계와의 관련 속에서 펼쳐진다. 그것은 극명히 보이는 것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흐름 같은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감각만으로 확인할 수 없는 세계, 미세한 물리적 세계의 측면까지도 모두 그의 사정권 안에 든다. 그의 ‘허’는 채울 수 있다는 것 뿐 아니라, 비울 수 있다는 것까지 이미 ‘가능성’의 범위로 전제하고 있다. 역동성만이 에너지흐름인 것이 아니고 정적인 고요조차도 에너지 흐름의 한 형태이므로, 만일 기존 사유체계의 대립자들이 그의 ‘관련’ 속에 위치한다면, 무엇이 더 옳고 그르고, 무엇이 더 우위이고 열등한지를 평가적 가치로 환원할 수 있는 근거나 장치는 어디에도 없다. 이는 '허(虛)-11-I-1'이 10여개로 이뤄진 하나의 설치작품으로, 각 작품 간 그리고 작품과 관람자 간 겪게 되는 ‘조우’에 대한 문맥을 추적할 수 있게 한다.




1 셸링,『조형미술과 자연의 관계』, 심철민 역, 책세상, 2002, 62

3 장자, 「지북유」'태허즉기(太虛卽氣)'를 수용하면서, 서경덕은 '태허'가 기가 작용하기 이전 본질이고 기의 체(體)에 대한 선천이라 설명하였다. 더불어 기가 모이고 흩어짐으로써 일어나는 만물의 생성은 기의 용(用)이라 한다. "태허는 허하면서 허하지 않다. 허는 곧 기이다. 허는 끝이 없고 바깥이 없다. 이미 허라고 말하면 이것을 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를테면 허하고 정한 것은 기의 체요, 모이고 흩어지는 것은 기의 용(用)이다"

4 천상병,「크레이지 베가본드」2절 발췌, 43쪽. 시적 표현을 들어, 소소한 일상의 흔적을 ‘직관적으로’ 관찰하고 표현한 방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구로써 인용한 것이다. 1절 “오늘의 바람은 가고 내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잘 가거라 오늘은 너무 시시하다/ 뒷 시궁창 쥐새끼 소리같이 내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

5 '미래의 현상(Le phénomène futur)' 말라르메,『목신의 오후』, 김화영 역, 민음사, 2004, 67쪽

6 신은경,『풍류-동아시아 미학의 근원』,도서출판 보고사, 2006, 414쪽

7 김용대는 이강소의 작품에 대해 "작업을 하는 시간"과 "내용이 가진 시간"을 구분하면서 "각기 다른 두개의 시간"이 공존하는 미묘함에서 작품적 의의를 언급하고 있다. 본 글에서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내용이 가진 시간성의 관점으로 이 문구를 차용하였음을 밝힌다. 김용대, 「각기 다른 두 개의 시간」,2006

8 거스리,『희랍철학, 탈레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 박종현 역, 서광사, 2000, 67쪽 이 문맥은 헤라클레이토스가 피타고라스 학파 등 당대 연구자들이 자연을 영속과 불변성, 조화적 시각으로 설명했던 것에 대한 비판으로 자연의 법칙 자체가 '투쟁'을 본질로 한 '균형'이라는 부분에서 언급된 것이다. 이를 통해 자연의 질서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인 한, 또한 이 문구는 각 상관항 사이 좋고 나쁨에 대한 평가적인 가치에 대해 논할 수 없다는 하나의 근거로서 차용될 수 있다.

9 신은경,『풍류-동아시아 미학의 근원』, 도서출판 보고사, 2006, 413쪽

10 베르나르 베르베르,『쥐의 똥구멍을 꿰맨 여공』, 이세욱 역, 열린책들, 2009, 260쪽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따라서 상대성조차도 상대적이다. 따라서 상대적이지 않은 어떤 것이 존재한다. 그 어떤 것이 상대적이지 않다면, 그것은 당연히 절대적이다. 따라서...절대적인 것은 존재 한다"




Intention : 'Emptiness(虛)' as a Philosophical Placeness


Choi Yoon Jung, Curator of Daegu Art Museum


I. Intro

A Place embracing familiar and unfamiliar trends

There is a characteristic place to actualize the value and symbolic significance of a new born museum. We named this place, considering the direction of projects to be fulfilled and the Museum's vision, Umi Hall of which scale is 18m in height, 15m in width and 42m in length. From the hall, every entrance of the exhibition rooms of the three-story museum building and the traffic line connecting them come into the spectator's view. It plays an invisible role that harmonizes the energy emitted by the exhibition room and the vigor of spectators. In addition, it gives spectators an aesthetic pleasure to appreciate the exhibitions distinctively from various viewpoints.

Thus, on the basis of its characteristic structure and the role it ought to play, we plan to make the annual Umi Hall exhibition, in cooperation with artists, a sort of creation-incubator which will enable artists to raise their creative inspiration and experiment their challenges in this space. We expect this project to reinforce the Museum's character as a landmark and to make the vision of Daegu Art Museum be shared within and without Korea, thus playing a role to promote the qualitative power of Daegu Art Museum.

This multi-purpose hall was given the name, 'Umi Hall', which, having a distinctive color as a space for specialized project, reminds us of Mother Nature, a valley, holding and managing the flow of everything, including challenge and creation.

The Umi Hall has a dual role as lobby and exhibition space, thus it is important to demonstrate a balanced interplay between these two roles. The space is not only a place where spectators pace their breath in tranquility, but also a place where a fortuitous clash happens between the spectators and the works as bubbles are created from the flow and dynamism of valley waters. It does not mean to fix a uniform traffic line of spectators, but to help their appreciation of work of art as a sort of sensible encounter felt on their skin through the flow of air.

We invite the artist Lee Kang So as the first guest for the special opening exhibition in Umi Hall. Lee is a central figure in the history of conceptual art in Korea, having played a pivotal role in establishing 'Daegu Contemporary Art Exhibition'. He continues to work on new art forms in his studios situated in Anseong, Gyeonggi-do and Tongyeong, Gyeongsangnam-do. Though a veteran artist, Lee has never insisted on the repetition of his own style, but kept observing and investigating in order to invent new style, much like a young man with vigor. The title of his new work is 'Emptiness(虛)-11-I-1'

II. Year 2011, Lee Kang So's First Installation 'Emptiness(虛)-11-I-1'

1. Process

Lee's initial conception was to find a context that was in connection with the process work he had shown in Paris Biennale in 1975. However, the overwhelming scale and atmosphere of Umi Hall imposed some challenges to him, as it would to anyone. There were some trials and errors: before the current installation, he had conceived a draft of work using soil as his material. It soon came to our knowledge that he had been working on his carved-wood installation, leading us to change the initial plan. This work has not yet been opened to the public, and its theme, we believe, shows the context of place/city the artist has preferred and his own world view that values the quotidian. This very process resulted in the installation, 'Emptiness(虛)-11-I-1'.

"In the production of the distinctly characteristic, if it proceed from a fresh original energy, grace is already present, even though hidden, and in both the advent of the soul already determined. Works produced in this manner, even in their rudimentary imperfection, are necessary and eternal."1

For there was no previous instance of exhibition in Umi Hall, the first exhibition proved the difficulty of how the space were to be interpreted. This installation process has undergone three rounds of modification. The first round was to make each part of this installation in his studio and then to assemble these parts in Umi Hall on the basis of Lee's sketch of the size and form of the installation. The second round of change was to rearrange the assembling parts of each work and their positions. Though the work had strong material character and was huge in scale, a better way to highlight this work effectively through the character of Umi Hall had to be conceived. Disassembling and shifting around each part of the already assembled installation, a way to harmonize the floor of Umi Hall and every aspect of this work was realized. However, in accordance with the view that the narrative element that the artist intended was compromised, a third and final adjustment had to be made, thus finalizing the installation.

Lee has titled his work as "untitled' or cared little about the title itself, because he was concerned that feelings and interpretations of his work would be biased. However since sometime he began to title his work as 'emptiness(虛)', showing a strong creative motivational force of incidental relational terms obtained from the whole process of creation and his world view about which he has been mulling over and trying to establish. Therefore 'emptiness(虛)' itself is an important keyword holding not only Lee's occasion of creation but also all attitudes through which he shows his life.

2. Filling the Gap and Opening Communication

One consistently notices from his last works that they reveal the process of creation in virtue of Lee having left the element of 'process' in them. In this work, the fact that it is an installation concerned with its harmonization with space and that it invites its spectators into the work to fill the gap between them provides another element of process, that 'the meaning of work is completed through the participation.' This is due to the fact that he has been dreaming of a harmony between subject and object and searching for a method of creation that is proper to his world.

"'Emptiness(虛)' includes, I think, the process of creation, extinction and change in the constantly changing and flowing world, that is, the meaning of possibility could be there. [...] When I think it is possible to actualize my suggestion, I test and venture into it without hesitation. I get a real feeling that I am alive when something unexpected is actualized there." Lee Kang So, 2011.4.3 excerpt from Interview

When Lee uses the word 'emptiness(虛)', its original meaning is close to 'Great Void'2, a great philosophical space containing the process of creation and extinction of everything. Chuang-tzu said that the creation and extinction of everything is caused by the gathering and scattering of energy, and he called 'void' the state in which energy is scattered and 'Great Void' the original state of void.3 'Great Void' as the origin and the mother of everything in the universe is also compared to 'Chaos' in the ancient myth of the Western world, the origin of universe and a space where things hiding all potential are mingling.

'Emptiness(虛)' as a philosophical space of 'Great Void' also means immanence. The point of 'emptiness(虛)' makes possible every movement and change caused by the emerging of energy and its vibrancy. In other words, 'void' is a field embracing the possibility of creation and extinction of everything. If we suppose that every life and thing following the law of nature, according to the order of necessity they have, could be considered as a sort of 'microcosm', then aren't they all but 'void'? The reason that 'a seed becomes a bud, a bud a tree, and a tree bears fruits' is not a phase-by-phase interpretation like self-denial or overcoming, but that they have the 'original power-potential' within themselves which makes the change possible.

This power does not simply refer to a motility occurring in the process of change. In other words, it is not a system of cause and effect and it does not permit a hierarchical interpretation because it values any triviality. It is a positive power of nature that evenly saturates everything as 'wave' of light and 'resonance' of sound are, while bringing all into harmony. Movement of energy starts from it and opposite energies mingle with each other, filling up the gap of the other somewhere in space and time.

"I believe there is nothing certain and absolute in the world.[...]In the end, our epistemic belief that the evident phenomenon is real is not different from illusion." Lee Kang So, 2011. 3. excerpt from Interview in Anseong

Artist Lee Kang So maintains the attitude that pursues change and free-flowing mobility while guarding himself against inertia and stagnation. When this attitude meets 'emptiness(虛)' as a philosophical conception of space, his work and the place it occupies are commanded to exchange their energy and to achieve perfect harmony with each other. Therefore, the commonly perceptible gaps become a passage that acquires value as 'emptiness(虛)', and the content of this work we contemplate is completely different from restraints, attachment, rigidity and discrimination, because it presupposes the absence of the conflict with space.

Even from the stage of conceiving new work and handling material, one can detect Lee's epistemic tendency and characteristics, differing from content that presupposes attachment. Understood from a broader perspective, this work illuminates the value and occasion of the quotidian in a specific space. Lee takes much time to decide the usage of his material, for he needs the process of living and breathing with it - a habit to which he himself admits. The objet that he used in his first solo exhibition, the tavern project titled , and the wood used as the material for 'Emptiness(虛)-11-I-1' would have been treated as plain device or trash, but through the process of living and breathing with them, Lee endows them with significance as a medium conveying characteristics of the artist. Lee's intuition takes an active part both when he connects his context with the usage of material and confers upon them a value of life, and when he acutely observes them in order to find their own proper value. Every meaning and significance of his work emerges on the basis of all connections it holds prior to its creation. Especially when the medium is about the 'responsive state,' such as is a work of art, 'intuition' takes an effective part to grasp the real meaning and theme of it.

“Hugging the sky, embracing the sea, I take a suck at a cigaret

Hugging the sky, embracing the sea, I take a sip of water

Someone sat for a while beside the well then went on, leaving a cigaret butt behind...”4

Intuition is an instant realization that functions on a level that is higher than sentiment and rational thinking which arranges and corrects that sentiment. It is the only ability of recognition that is directly connected to the phenomenon we experience in relation to the essence of the world such as "Great Void' or things invisible. Therefore the expression 'intuition of artists' is quite appropriate. The intuition of Lee Kang So makes us recognize his world view, capturing values that are barely perceptible but have always existed, values found in trivial things that twinkle in the quotidian asserting their raison d'etre.

3. Timeness, Spaceness

"A pale sky, hovering over a world that is dying of its own decrepitude, is perhaps going to depart with the clouds: the shreds of worn-out purple sunsets fade in a river lying dormant on an horizon submerged in sunbeams and water. The trees are wearied and, beneath their whitened foliage (from the dust of time rather than from that of the roads), rises the tent of the Showman of things Past:(...)"5

“Wang(忘) doesn't simply mean forgetting [...] It means the state that denies the subject's activity of recognizing, such as private thinking and judgement, eventually heading toward the absence of self-awareness. It is thus a state that transcends the ability to recognize, an ability that distinguishes the size of space and the length of time. This does not mean one is not aware of one's self-existence, but it should be understood as a sort of method that is needed to see truth and reality, in the process of going to the state of No-Self and No-Mind.”6

'Emptiness(虛)-11-I-1' is comprised of 10 parts, and each form makes a narrative on "Two Different Timenesses7." One transfers the historic time and place into the old mainstay that retains the vestiges of the past. Over the span of time, dust and wind pile up old stories like a fossil. These objets hold a story of time carved and finished by someone who lived in the past. They are narrators from the past.

Lee Kang So found the motive of the past in the ancient city of 'Gyeongju'. He noticed the beautiful proportion in the vestige of the mainstay of the temple Bunwhang, a place of historicity, and also in the stone table of Georeung(one of the royal tombs). They are the beginning of the narratives he intended in this work.

Just as he admired the proportion of the stone table of ancient time, he created an artificial time with scorched surfaces like oxidized charcoal, in order to symbolize the temporality of the future and to materialize the simple formal essence in the structure commonly found in the everyday.

This is not contrived simply as a device to add temporality to a form. 'Scorching', as an 'act of scorching', intends for the extinction of wood, and the extinction of wood gives birth to a new character that is 'charcoal.' Transformation is not simply a transfer of energy, but reveals a circular and primitive relationship of natural law that constantly gives birth to the next character on the condition of the extinction (death) of the previous character.

"Fire lives the death of air, and air of fire; water lives the death of earth, earth that of water"8

It is treated in the temporality of the future which he assumed. This is a narrative of the future given to a commonplace structural form. Again, if 'scorching' is serving for an organic relationship among past, present and future, as well as reason for making artificial timeness, this act should be considered as a 'style' of narrative. In this way, "Two Different Timenesses" holds the narrative of the past and the narrative of the future inscribed on the thing of the present.

Of course, the significance of this work does not stop here. It was mentioned earlier that this work suggests another conception of 'process' as a sort of communication related with the present. The temporality of the 'present' remains empty. It stands as a site of potential creating a context where the whisper of the past and the awareness of the future are connected.

It is the 'now' of the seer.

Time does not stand in itself but in relation with space. This work speaks of the 'present' from the 'here' it occupies.

If the narrative element of temporality constitutes the meaning of the work, spatiality creates a 'landscape of time.' In 'Emptiness(虛)-11-I-1', the diachronic temporality of each part is connected by heads of the wood, a symbolic monument located in the beginning and the end of this installation. On this basis, forms of the past and the future are connected with linear proportion and crossing composition.

The form standing like a post, the plate structure reinforcing the physical properties of floor, the heads soaring and creeping, all oddly resemble landscape of mankind. In addition, the three heavy stones -- stones that are so glued to the floor that it rather looks as if they have seeped into the ground, or the ground have burgeoned into form -- are not only an objet of the past but also give a feeling of wafting through space. For its irregular triangular composition causes a proper tension against the linear and proportional composition of other parts of work.

Coincidently, this installation reinforces the property of the surface of the floor, adding another effect to the work itself in return. When viewed from the third floor, the installation looks like a flat painting because the floor and the installation share the same property. If the floor were a canvas, we could read this work as a simplified sign, a form created at a single brush stroke as found in the previous paintings of Lee Kang So. As the spectator descends from the third floor to the second, and subsequently to the first, the installment recovers its three dimensional form: natural light from the outside of the museum gives various colors and contrast as time flows, highlight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heads and responsively touches the carved surfaces and woodgrains of each part of the work.

Back to the third floor, we find that the center of the monument which played the part of the head connecting the timeness of each part is empty. This is due to Lee intending not to hinder the way between the heads connected with light and his conviction that this way itself is an opening for the interchange of energy emitted between Umi Hall and the work.

Spectators should fill up the gap between works like a flow of energy wafting in space. Upon suddenly encountering this way, the spectator as a microcosm realizes the meaning of the 'now, present.' It is the moment we are placed in the narrative of the work.

"No-Mind(無心) is explained as a world where the thing and I become one, the state in which subject and object become inseparable, as the subject is dissolved into the phenomenon of things as they are. It can be described as a state in which we understand ourselves by means of losing ourselves in the object, object and I become one by means of affirming the self-sufficiency of the original form of object, and we rush into the object, feel it internally, and unify its life by ourselves."9

The aesthetic response to the moment begins with the harmony between works and spectators, space and spectators. Perhaps this harmony, based on the world view on 'Emptiness(虛)', cannot but result from the process in which energy is transferred, emitted and accepted between space and work, unknown to anyone, even the artist himself. “Even relativity is relative”10 , and if all invisible immanent possibilities are in these 'relations,' then it is only apt to mention the necessity that includes the absolute occasion.

III. Outro

Lee's work has been defined as a 'process' on the basis of the element primitively emerging in its visibility. However, the 'process' mentioned with respect to the work 'Emptiness(虛)-11-I-1' results from reinforcing the philosophical meaning of the relation between the contemplation of work -- a participatory property of the spectator -- and the completion of the work.

In addition, the process of installation itself should be considered as part of the creative process: much caution was put into interpreting the spatiality of the work considering its relationship to Umi Hall. The entire process of the installation will be shown in the additional document exhibition.

The meaning of 'emptiness(虛)' corresponds to the characteristics of Umi Hall. Umi Hall, as a site where everything is created, its flow managed and developed, has already become the most fitting place proper to the world view of "Great Void." Embracing the premise that the problem of 'extinction and creation' offers 'another possibility as new property', Umi Hall will play a role as a medium transferring pure breath as rawness, in relation to the perspectives that are either truly unfamiliar, or ambivalently both familiar and unfamiliar.

As people come face to face with the philosophical space of 'emptiness(虛)', many -- whether they are scholars or artists--will strive to track this space with a clear 'eye of mind'. Lee Kang So is one of them. The tendency of his work influenced by his posture of research and work is unraveled not from himself but in the interconnection of the entire world affecting him. It could be something evidently visible or something like an invisible flow of energy. The world unidentifiable with the senses, microscopic aspects of physical world are also within his boundary. Lee's 'emptiness(虛)' presupposes as its range of possibilities not only of filling but also of emptying. Not only is dynamism a flow of energy, but stillness is also an aspect of the flow of energy, thus if we position opposite terms of the existing thought-system in his 'relation', there would be no grounds or device to reduce the superiority and inferiority of things into evaluative values. 'Emptiness(虛)-11-I-1', an installation work comprised of 10 parts, enables us to track the context of the encounter between works and that between works and the spectators.














































































10 Bernard Werber, L'Encyclopedie du savoir relatif et absolu, translated by Lee Se Ook, The Open Books, 2009, p. 260 "Everything is relative. Therefore even relativity is relative. Therefore there exists something not relative. If something is not relative, naturally it is absolute. Therefore there exist something absolute"

9 Shin Eun Kyeong, Pungryu: the Root of Aesthetics in East Asia, Publisher Bogosa, 2006, p. 413

8 Guthrie, The Greek Philosophers from Thales to Aristotle, 1960. p. 44




This sentence is mentioned in the context where Heraclitus criticizes the Pythagorean on that they explain the nature with respect to eternity, invariability and harmony and he insists law of nature is an attunement of opposite tensions. As far as maintaining the order and balance of nature, according to this text, we cannot evaluate the value of opposite terms.

7 Kim Yong Dae mentioned that the significance of Lee Kang So's work consists in the delicacy of coexisting "Two differenrt Timenesses", distinguishing "Time for working" from "Time of content." I borrow this phrase with respect to 'Time of content', distinguishing the past and the future. Kim Yong Dae, 「Two Different Timenesses」,2006

6 Shin Eun Kyeong, Pungryu: the Root of Aesthetics in East Asia, Publisher Bogosa,, 2006, p. 414

5 'Le phénomène futur' Mallarme, Afternoon of a Faun. Translated by Kim Wha Yeong, Min Eum,, 2004, p. 67

4 Chon Sang Pyong, "Crazy Vagabond", excerpt from 2nd stanza, With this poetic expression, we can easily understand the way he intuitively observes and expresses the traces of everyday life. 1st stanza “Today's wind is leaving tomorrow's wind is beginning to blow/ bye-bye. Today's been far too dull./Like baby rats mewling in a backyard cesspit tomorrow's wind is beginning to blow. ”

3 Chuang-tzu, "Knowledge Wandered North". Accepting "Great Void is energy", Seo Kyeong Duk explains "Great Void is the essece of operation of energy and origin of body of energy. Creation of everything, occurred by gathering and scattering of energy, is Working of energy. "Great Void is void but not void. Void is energy. Void has no end and no outside. If I say void, does it mean energy? That is, if something is void and stable, it is the body of energy, something gathering and scattering is the work of energy."

2 Kim Bok Yeong, "Emptiness, the boundary of the invisible thing", Art in Culture, Oct. 2000. Kim mentioned the philosophical aspects of Lee Kang So's works as showing "the thinking of Great Void" on the ground of the effect of emptiness and Karma as a proper origin of Korean contemporary art or cultural character.

1 Schelling, "On the Relation of the Plastic Arts to Nature", Translated by Shim Chul Min, Book World, 2002, p. 62

2 김복영은 이강소 작업의 철학적 면모에 대해서 '여백'의 효과 및 우리 현대미술의 고유한 유래로써 연기나 문화형질에 바탕을 둔 '태허의 사유'를 보여주는 것으로 언급한 바 있다. 김복영, 「여백,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아트인컬처』, 2000,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