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의 표면들로부터 게워내는 멜랑꼴리 : 정재호 개인전 <열섬> 리뷰
최윤정●독립큐레이터‧미술비평
도시밀집의 주거 상징물로 고안된 아파트. 일종의 도시탐사에 대한 도큐멘테이션으로 정재호는 아파트에 주목하면서 도시의 표면들을 기록하고 훑어왔다. 그것은 아마도 욕망에 대한 기이한 형태를 발굴하는 지점이기도 하였을 것이고, 근대국가의 철저한 고안물이자 압력과도 같은 상징물을 발견함으로써, 도리어 개별에 대한 익명성과 소외 그리고 동질성의 강요 등 주도적 틀에서 배제되어 왔던 삶의 다양한 형태와 문화적 파편들을 재조명하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는 입체적인 실재이자 시각적으로 현존하는 대상을 정면응시성에 기반해 균질화된 화면으로 그리면서 시공간의 서사를 어그러뜨리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이를 통해 현존하지 않을 것만 같은 백일몽이자 착시의 순간이 이미지 자체에 대한 추체험으로 접합되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그가 구성한 화면 속의 아파트는 구체적인 주거환경으로서 또는 개발시대의 기념비적 건축물 이상으로 그 의미를 확장한다고 볼 수 있겠다. 즉 그것은 구체적인 현존에 대한 반대급부인 ‘백일몽’을 통해서, 다양한 삶의 주체와 담론들이 교섭할 수 있는 상상적 사유의 영토를 주조하고 게워내도록 하는 인식의 문이자 표면이다.
이번 전시 <열섬>은 국토면적이 좁고 태반이 산이어서 해안가나 도심에 밀집되어 있는 홍콩의 오랜 초고층 건물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홍콩은 인구밀도가 높지만 역사적으로 도시확장이 어렵고, 그렇기에 고층‧고밀 주거의 특징을 띤다. 살아가는 모양새에서는 내부공간을 다시 세분화하여 임대하는 경우도 일반적이다. 습도가 높아 자연환기며 자연채광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중정이라든지 돌출된 형태의 베란다들이 또한 구조적으로 특이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야말로 이 건물들은 홍콩이라는 도시의 근대성과 개발에 대한 서사를 함의하면서도, 그 속에서 꾸려지는 삶의 형태에 대한 인류학적 지표를 탐색하고 가늠하는 기초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열섬 Heat Island>, 아다시피 일종의 자연스러운 공기흐름을 막는 인공적인 구조와 개발이 낳은 환경용어이다. 시원하고 안락한 내부는 뜨겁고 진득한 바람을 바깥으로 내뿜은 결과들이며, 그렇기에 안락함과 불쾌함은 존재적으로 하나의 것이다. 그것은 ‘열섬’이라는 인공적 기후 현상을 통해 감각되고 인지되는 사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이토록 필연적인 인과율이자 동시적인 발생을 보여주고 있는데, 분명 어떤 종류의 행복은 특정 종류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결과이고, 타자의 불편함이 전제되는 선에서 자신의 안락함에 대한 기대치를 만들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이다. 하물며 자본주의와 메가도시의 환경에서야 더 확고하지 않을까. 결국 이번 전시의 타이틀인 ‘열섬’은 환경용어로서 순전한 해석을 넘어 ‘나’와 ‘내가 아닌 것’ 사이의 대립과 반목, 출현과 교섭의 아우라를 함의하는 듯 하다. 문학적으로 주제에 접근하고자 하는 상징용어로서의 재규정, 왠지 시지프스처럼 디스토피아적인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사의 대목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도시의 멜랑꼴리와 염세적인 로맨티시즘의 정서를 자극하는 지점에 서 있기도 하다.
<열섬 Heat Island>, 아다시피 일종의 자연스러운 공기흐름을 막는 인공적인 구조와 개발이 낳은 환경용어이다. 시원하고 안락한 내부는 뜨겁고 진득한 바람을 바깥으로 내뿜은 결과들이며, 그렇기에 안락함과 불쾌함은 존재적으로 하나의 것이다. 그것은 ‘열섬’이라는 인공적 기후 현상을 통해 감각되고 인지되는 사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이토록 필연적인 인과율이자 동시적인 발생을 보여주고 있는데, 분명 어떤 종류의 행복은 특정 종류의 희생을 전제로 한 결과이고, 타자의 불편함이 전제되는 선에서 자신의 안락함에 대한 기대치를 만들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이다. 하물며 자본주의와 메가도시의 환경에서야 더 확고하지 않을까. 결국 이번 전시의 타이틀인 ‘열섬’은 환경용어로서 순전한 해석을 넘어 ‘나’와 ‘내가 아닌 것’ 사이의 대립과 반목, 출현과 교섭의 아우라를 함의하는 듯 하다. 문학적으로 주제에 접근하고자 하는 상징용어로서의 재규정, 왠지 시지프스처럼 디스토피아적인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인간사의 대목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도시의 멜랑꼴리와 염세적인 로맨티시즘의 정서를 자극하는 지점에 서 있기도 하다.
고층아파트를 묘사한 작업들은 정면응시성을 포함하여 측면구도 등 입체적인 구조- 함몰되고 쏠리고 몰입되는 등-를 통해서 역동성을 보여준다. 전체를 구조적으로 전망하는 속에서도 부분에 대한 묘사가 세밀하다. 마치 주거환경의 몰개성적인 구조 안에서, 그렇다고 모든 삶들이 동일할 수 없음을 증명하듯이. 또한 일부 작업들은 말하자면 돌출된 구조물들과 외부에 겹쳐져 복잡하게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 혈관/회로처럼 아파트 각 면들을 타고 이어지는 배기구 등을 확대하여 시선을 머무르게 한다. 기질과 풍토, 성향 등 삶의 현존과 다양성을 상징하듯 발견된 신체의 기관들이다.
장지에서 배어나오는 색채감은 오래된 건물이 지닌 시간의 중첩된 켜들이 남기는 흔적들처럼 마치 잔상과도 같은 질감들이자 멜랑꼴리한 도시의 색감들이다. 이번에 소개된 <폭청빌딩><럭키하우스> 등 대형작업들은 건물의 부분스케일을 정면/측면으로 균질화된 화면에 역동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삶을 통제하는 구조/규율과 욕망/굴레의 반복 등 까지도 상기하도록 몰입감을 제공하였다. 더불어 풍경 속에 놓인 인공물들(밤 풍경 속의 구조물, 독립된 건축물 등)은 거대서사로부터 떨어져, 크고 작은 사건이 벌어질 혹은 이미 벌어졌을 지도 모를 ‘삶의 미시사’를 담은 일상적 랜드마크인 것으로, 걷고 산책하고 머무르는 속에서 발견된 기억들을 문지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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