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18일 목요일

<기고문> 예술과 사회II. 타자로서의 정체성, 중심부를 향하는 소통의 예술


예술과 사회II. 타자로서의 정체성, 중심부를 향하는 소통의 예술
 
 
최윤정독립큐레이터/미학미술비평
 
 
#1 ‘길동이는 왜 집을 나갔나’ : 각성된 자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적서차별에 대한 시대적 사회규범에 처절히 저항하였던 홍길동, 그의 사회적 정체성은 서자였다.
소속된 사회에서 습///는 자기동일성이란 그 사회가 지향하는 쥬류가치로부터 형성된다. 사회는 존속을 위해 특정의 가치를 지향하고, 특정가치에 위배되는 삶이란 곧바로 이질적인 것, 바이러스와도 같은 부정적 전염으로 치부하기 마련이다. 홍길동이 지닌 사회적 정체성은 조선사회를 지탱해온 낡은 신분제질서로부터 기인한 것이었고, 이로부터 불편부당함을 느낀 홍길동은 자신의 상황을 직시하면서 순응을 거부하고 사회의 이탈자가 되어 자신이 실현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 세상으로 나아간다
 
#2. ‘우리 사회의 스테레오타입’ : 주류의 전략
여전히 2,3세대가 모여사는 가족이 중심에 있으며, 남녀간의 사랑이 큰 축을 갖고, 그 애정의 축에서 여성에 비해 신분적 우위에 있는 남성은 항상 가녀린 여성의 성공과 행복을 조력하고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자로 설정된다. 무식하고 막돼먹은 캐릭터는 지역방언을 아주 찰지게도 구사한다. 가족중심/이성애/남성중심/수도권표준어에 치중한 우리들이 즐겨보는 TV드라마들의 일반적인 공식이다. 여기에서는 비혼자나 1인 가족 내지는 동성애자의 사랑이나, 자기 삶의 주도권을 지닌 여성(보통 기센 여자, 악녀로만 묘사, 여자는 남자로 인하여 완성되는 존재여야 하므로)의 모습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3. ‘룰이 깨지면 죽는다’ : 혐오
흑백의 세계, 미국의 50~60년대가 추구하는 가치를 보여주는 드라마>플레전트빌<, 완벽한 가정이 있고, 완벽한 도덕이 있고, 삶의 규율과 인간의 생체주기마저도 완전무결한 곳. 플레전트빌은 주인공이 즐겨보는 옛 TV드라마이며, 현재의 불행을 잊게 해주는 완벽한 세상이다. 신비한 경험으로 드라마 속에 들어간 주인공 남녀에게서 플레전트빌의 삶은 기존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 정해진 틀 속에서 안주된 삶, 다른 생각이나 가치를 품어본 적도 없는 삶이었다. 그들의 등장은 자연히 흑백의 사회에 균열을 일으키고 가치와 욕구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사람들이 점차 컬러로 변해가면서, 흑백중심의 사회는 이를 마치 저주와도 같은 전염병으로 규정하고 흑백 주류사회 존속을 위해 이윽고 유색인 차별전략을 구사한다.
 
위 세 가지 씬은 확고한 주류가치에 대한 의문과 서로-가치를 인정하며 사회적 소통을 절감하게끔 하는 발견된 사례들이다. 여기서 소통의 시발점으로 우리는 주류사회의 타자()’-홍길동, 비혼자1인가족/동성애/여성/지방방언, 컬러로 변한 플레전트빌 주민들처럼-를 살펴야 한다. 여기서 타자는 그저 동정여론이나 패배주의, 열등감 따위에 매여있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주류사회가 표방하는 가치가 지닌 모순과 문제점에 근접할 수 있고, 자기 내부에서 겪는 사회적 문맥화로 모순의 핵심에 파고드는 송곳-정체성을 쥘 수 있는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타자는 일원적 강요나 체계적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자기 존재에 대한 각성이자 이를 구축하는 도정이기도 하며, 경직된 사회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역할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회적 관계, 주류사회의 가치에 의거한 타자()은 절대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시대적 요청 내지는 처해있는 상황에 의해 뒤바뀔 수 있다. 사회적이고 관계적이고 정치적인 개념으로서 그렇기에 한 사회를 제대로 읽고 비판적인 시각을 마련하는 키워드일 수 있다. 이와 같이 타자로서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예술은 동시대를 움직이는 중요한 방향성들을 또한 견인해왔다.
 
 
 
 
<복수와 치유, 중심을 파고드는 예술>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Felix Gonzales Torres 1957-1996)는 쿠바출신 이민자이며 동성애자이다. 미국사회에서 이민자이자 동성애자는 철저한 비주류의 영역에 있었고, 그는 자신의 사회적 타자로서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로 동시대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를 두고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가들의 예술가라고도 부른다. 그의 작품의 주요 동기인은 에이즈로 먼저 타계한 애인 로스(Ross)에 대한 그리움인데, 그가 있었던 자리, 그와 함께 했던 시간, 죽음에 의해 갈라진 안타까움이 그의 작품에서 고요한 먹먹함으로 자리하고 있다. 80년대, 90년대 초반까지 에이즈와 동성애는 사회적 혐오를 유발하는 악성 기제였다. 그들은 동성애자였고, 펠릭스 역시 에이즈로 로스의 뒤를 잇지만, 그가 로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사랑이었고, 그의 개인적 경험이었다. 이것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감동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접속코드가 된다.
당시는 에이즈환자와 손만 닿아도 옮는다고 여기던 때였다. 그러나 에이즈에 대한 공포가 심각한 와중에도, 그의 연인 로스가 죽을 때까지 그 곁에서 정성껏 간병한 사람이 있었다. 펠릭스는 가장 아름다운 손이라 하여 간병인의 손을 촬영한 작품(Untitled_For Jeff 1992)을 익명의 무수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공의 장소(지하철 및 야외 광고판)에 설치하였다. 에이즈에 대한 혐오적 시선이 공적인 장에서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으로 전이되도록 의도한 작업이다.

그리고 관객들의 참여에 의해 완성되는 그의 주요 작품들은 그의 정체성과 고민들에서 비롯된 의도를 오롯이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은 상당히 사회적이며 의미심장하기까지 하다. 79kg의 로스의 몸무게만큼 쌓아놓은 사탕더미, 그리고 자신의 몸무게를 덧대어 바닥에 펼쳐놓은 147kg의 사탕들. 사탕은 그들의 육체를 의미한다. 그의 대표작인 이 작업은 종국에는 준비된 사탕을 가져가는 것으로서 관람객의 참여를 전제로 한다.
펠릭스는 그의 작품 대부분을 무제untitled’로 하였고, 그 부제를 달았는데, 사탕시리즈(Untitled1991-1992)의 부제는 복수revenge’ 내지는 플라시보placebo’였다. 이는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그의 연인 로스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면서도 동시에 동성애에 대한 혐오나 에이즈에 대한 혐오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었다. 사탕을 집은 사람들의 행위, 그것을 먹는 행위 그것은 단순히, 연인의 죽음을 함께 애도한다는 차원을 넘어 혐오를 삼키는 것이자, 전염의 행위를 상징한다. 달콤한 사탕은 일종의 사랑의 맛이자, 탐닉의 코드가 되기도 한다. 그들의 사랑에 동참하는 관람객들의 행위.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겠는가. 그의 작업이미지는 때로는 대단히 먹먹한 풍경을 담는다. 포스터 작업이 그것인데, 이는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그저 연인을 잃은 그의 슬픔을 표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총기사망자에 대한 애도의 형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포스터들도 사람들이 직접 가져가는 행위를 통해 완성이 된다. 그것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던지 간에 이미 그의 먹먹함은 사람들에게 전이되어 그들 삶 자락에 놓여지는 것이다. 이렇게 그의 작업은 동성애와 에이즈에 대한 첨예한 인식의 한 복판에서 이를 정치적이고 선동적 구호로 표명하기 보다는 예술의 미적인 언어를 통해, 사람들 마음으로의 전염을 통해 사회의 중심부로 들어가는 파급력을 직시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름프로젝트_에이즈 추모퀼트> 에이즈 추모퀼트는 각각 3x6피트의 크기로 손바느질한 퀼트 조각들이며, 에이즈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 직접 만들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행사였다. 1987년 미 워싱턴의 녹지공원에 1,920장의 추모퀼트가 펼쳐졌고, 녹지공원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되었다. 당시 80년대 공화당 정부시절 에이즈에 대한 인식은 동성애자들에게 내려진 일종의 신의 형벌로서 혐오를 야기하는 방식으로 회자되었다. 동성애자는 철저히 주류사회에서 배척되었으며, 그들의 죽음은 애도할 필요도 없이 숨기고 부끄럽고 저주받은 죽음으로 취급해도 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와중에 동성애자 인권운동가에 의해서 기획된 <이름프로젝트>는 그저 가족이든 친구이든 연인이든 누군가가 진정으로 사랑한 이의 죽음으로 에이즈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전시하는 일주일 동안 약 50만명의 추모객들이 모이는 등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이 프로젝트는 동성애자 인권 및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를 목적한 사회운동으로 더욱 확대되었다. 이듬 해 20여개 도시를 순회하였고, 8,288장의 퀼트가 백악관 앞에 펼쳐졌다. 유족 및 유명인들이 마이크를 쥐고 희생자들을 호명하는, ‘이름부르기는 추모 행사의 중요한 일부로 역할하였다. 1992년 미국전역과 세계 27개국에서 에이즈추모 퀼트를 보내왔고,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자신의 취임에 맞추어 이름프로젝트를 공식 초대한다. 이는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동성애자 인권 및 에이즈에 대한 대책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빌 클린턴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 한 단면이었다. 이름프로젝트는 4만여장의 퀼트와 100만명이 넘는 추모객들을 마지막으로 1996년 막을 내린다. 그것은 수많은 이들이 참여하고 신의 형벌이 아닌 인간의 죽음으로써, 에이즈희생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 대응한 감동의 예술이었다.   
 
 
 
 

2016년 2월 1일 월요일

지리산프로젝트2015우주산책 기획의도

지리산프로젝트2015우주산책
 
희망의 존립근거, 우주산책
 
최윤정 지리산프로젝트 큐레이터
 
희망,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 ‘아직 의식되지 않은 것’, 그러나 언제고 이루어질 수 있음을 몸소 실천하며 의식하고자 하는 것. 그렇기에 희망은 본질적으로 과거의 시간이 아닌 미래의 시간으로 향한다. ‘더 나아짐’, ‘새로움에 대한 창조적 욕구와 역동성은 희망이 존립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현재의 성찰은 희망의 원리를 쫓기에.’
 
경남권 지리산프로젝트의 본부라고 볼 수 있는, 풍현마을/산청 성심원은 반세기 역사를 갖춘 한센인들의 삶을 그대로 품고 있는 마을이자, 프란치스꼬 수도회가 관리하는 복지시설이다. 지금의 아름다운 성심원 풍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호강, 성심교가 생기기 전까지 세상과 한센인들을 분리하는 일종의 자연 경계선이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고무보트에서 시작하여 철로 만든 배 하나에 의지하여 세상과 접촉하였다. 소록도와 달리 풍현마을은 애초부터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마을,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지니고 삶을 일구고자 하였던 그들의 희망이 빚어낸 마을공동체이다. 한센인 어르신들의 청년시절, 그들은 수도회와 함께 가정집을 건축하였고, 마을의 커뮤니티공간(대강당, 대성당) 등을 만들어가면서 마을의 형태를 구축했다. 근래 이 중 일부는 사용하지 않는 오랜 빈 공간으로 남아있었고, 이 공간들 중 일부는 <지리산프로젝트2014:우주예술집>을 통해 문화예술창작의 산실로 새롭게 거듭났다. 성심원에서 제공한 대강당과 구 가정사 건물은 예술가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창작을 하고, 지속적으로 프로젝트 구상을 할 수 있게끔 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우주산책, 산책의 본연은 우연한 만남과 그 속에서의 교감에 있다. 때로 그것은 의식의 향방과 실천을 유도하는 사유의 장을 제공해주기도 하고, 현실 일상과의 순간적인 괴리를 꾀하여 관조적인 심리상태를 이끌기도 한다. 이는 지리산둘레길이 그간 성찰의 길로서 제안되었던 바와, 지리산프로젝트가 또한 사람과 마을과 지역을 마주하며 고민해왔던, ‘우주예술개념구축에도 그 의미를 보태고 있다.
 
<지리산프로젝트2015:우주산책>은 전시 뿐 아니라, 특화프로그램 지프달모우주예술캠핑콘서트를 함께 개최함으로써 지리산을 경험하는 방식에 대한 연구, 둘레길 걷기, 자연에서의 캠핑, 어쿠스틱 콘서트 등을 함께 선보였다. 이에 참여예술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참여도 두드러졌으며, 일반인들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구축하는데 있어서도 뚜렷한 가능성들을 엿볼 수 있었다. 한편 전시는 각 권역별 거점 및 둘레길 일부에서 펼쳐졌는데, 경남권 전시의 테마는 <희망의 원리>이다. 이 전시에는 각 특화프로그램 활동과 예술가들의 창작활동, 그리고 성심원의 역사 및 마을 사람들의 활동들을 영상 도큐멘트를 통해 보여주었으며, 또한 우주/산책’, ‘희망’, ‘지리산’, ‘자연’, ‘한센인마을’, ‘둘레길에 대한 예술가들의 다채로운 시선들을 담은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구헌주가 선보인 2014년 성심원을 상징하는 철선과 범우주적 관점에서 생명의 위계란 가치없음을 주제로 한 자화상 그래피티 등은 그가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낯선 장소의 누군가와 소통하는 실험에서 구상되었다. 2015년 구헌주는 이로부터 더 나아가 성심원의 사물, 이곳을 산책하면서 주운 작은 돌덩어리들을 보고 우주의 운석들을 떠올렸다. 그리하여 이를 크게 확장하거나 반전한 이미지로 공중에 떠있는 듯한 우주돌을 그리고, 경호마을 둘레길 구간으로 이어지는 길에 위치한 긴 벽면에 맞추어, ‘지구풍경하늘과 산 그리고 강(4대강 녹조)을 표현하였다. 오치근은 딸과 함께 지리산둘레길을 걸으며 함께 그렸던 그림들을 2014년 하동 에코하우스에서 원화로 전시하였고, 이어 2015년에는 이 원화이미지와 지리산의 자연이 품고있을 법한 동화 속 이미지들을 가지고, 딱지를 연상케하는 스티커를 제작하여 전시장에 방문한 사람들 누구나 가져갈 수 있도록 하였다. 이대범2014년 낯선 환경에 처한 예술가의 입장에서 관계맺기를 주제로 하여 그곳에서 발견된 것들을 기록하고, 예술가의 옷과 한센인 어르신들의 옷가지를 엮은 발을 만들었다. 이것들은 하나같이 장소와 관계에 녹아드는 과정이 대단히 중요시 되었던 작업이었다. 2015년에는 1945년부터 1999년 즉 새천년이 오기 직전까지 주요 일간신문 1면에 실린 새해 첫 이미지들을 수집하여 상영하였다. 이는 막연히 희망 자체에 대한 것이기 보다, 시대별로 어떤 이미지를 새해, 희망적임의 대표표상으로 삼았는지 관찰할 수 있으며, 각 시대가 추구하는 가치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작업이었다. 이범용2014년 스튜디오에서 발견한 제비, 어린시절 보았지만 잊고 지냈던 신화와도 같은 존재를 통하여 그가 생각하는 자연의 이미지를 형상화하였다. 2015년 그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자기구도적인 관점에서 이 장소에서의 창작의 의미에 대해 스스로 묻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황금빛입니다는 그의 수행적 노동을 보여주는 평면작업과 후속작업에 임하는 태도와 소회를 담담한 필체로 적어낸 글로 구성된다. 후속작업으로 그는 성심원의 납골당과 한센인들이 생각하는 천국의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정용국은 한센인 어르신들의 구술사를 기반으로 했던 기념벽 작업 첫번째사람’(2014)이후, 2015년에는 둘레길 어천마을 구간에 두번째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직접 제작한 의자를 설치하였다. 한센인들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고자 하였던 첫번째 사람’, 그리고 성찰적인 자아 를 지칭하는 두번째사람을 통해서,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잠시나마 가던 걸음을 멈추고 의자에 앉아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풍광을 바라보며 산책의 의미를 사유할 것을 주문하였다. 2창수2014안녕’(둘레길 산청구간)에 이어 2015년 둘레길(하동 양이터재)에 작품을 선보였는데, 그는 누군가가 “God sent his son”이라고 낙서한 바위에, 잘못 불시착하여 사고를 당해 죽은 외계인의 슬픈 전설을 담았다. ‘우주사고는 하동 양이터재에 위치하며, 지리산둘레길 구간 중 다소 지루한 구간으로 일컫는 곳이기도 한데, 이곳에 그만의 진한 위트가 녹아들었다. 또한 이곳에 지리산을 찾은 명사들이 남긴 글귀들을 새겨넣은 성신석조각회의 돌조각작업이 함께 놓여져 있어, 지치는 발걸음 생각하면서 쉬어갈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허태원은 한센인 중증환자들이 요양하는 시설에 위치한, 중앙정원에 2014년부터 주민들과 함께 하는 장소특정적 꽃심기 정원의 정원을 조성하였다. 꽃을 심고 있는 작가의 활동을 보면서 주민들이 함께 돕고 참여하며 만든 정원이다. 두 개의 원은 하나의 원이 되고, 그 안에 놓인 꽃들은 심지어 작은 숲을 이루는 듯 하여 새로운 이야기가 꿈틀하고 생동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2014년 작업의 흔적으로 살아남은 식물들은 2015년 새로이 심겨진 식물들과 함께 어우러져 정원의 풍성함을 더할 수 있었다.
 
 
김신일마음을 형상으로 한 문자조각에 빛을 접목한 조형작업을 선보였다. 마음의 작용과 여전히 지리산에 서려있는 한국근현대사의 아픔이나 우리 사회에 상존하는 이념 갈등은 무관하지 않다는 입장에서, 그의 작업은 어지러움을 일으키는 마음의 작용으로서가 아닌, 순수한 고요함 마음 그 자체를 직관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황인모는 자연과 인간이 사는 마을 그리고 길을 주제로 하여 인간의 숨결이 깃든 풍광을 촬영한 산책연작을 보여주었다. 거대한 자연 풍광 속에 인공적인 도로의 한 단면, 흐르는 강 저편에 위치한 집, 산에 둘러싸인 경작지 등. 그 자연 속에 인간의 삶이 지속되어왔음을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나규환, 세월호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천일기도 장소가 마련된 성심원 은행나무 앞에,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을 담은 아버지의 눈물조각을 설치하였다. 아버지 그가 흘린 슬픔과 고통의 눈물은,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고 있는 그의 전신을 휘감은 파도가 되었다. 김경화와 소빈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예술창작을 통한 치유와 예술교육을 겸하여 주민참여의 작업들을 이끌어 내었는데, 김경화는 못 그릴수록 아름다운 그림, 기복신앙을 담고 있는 민화를 매개로 주민참여작업을 이끌었다. 여기서 나온 그림들은 우주공소망상자로 공동창작의 산물들은 작가의 손을 거쳐 설치작업으로 완성된다. 또한 야외 잔디밭(교육회관 앞)에 도시의 황량함을 상징하는 재료, 시멘트로 만들어진 고양이와 비둘기 일군들은 굿모닝이라는 제목으로 자연과 공생하듯 설치되었다. 소빈소풍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센인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노래교실을 운영하고, 한지로 보고 싶은 사람에 대한 인형을 만들면서, 그 인형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이것은 어르신들의 흥을 돋우면서 밝은 분위기를 내고, 이윽고 공감과 이해를 통해 마음치유를 꾀하고자 한 작업이었다. 한편 이광기는 예술가들이건 방문객들이건 일종의 힐링을 제공하고 새로운 창작을 도모할 수 있다는 이곳역시도 현실의 무게는 존재한다는 위트를 담아 카드결제일’, ‘타임등의 작품을 선보였다. 그리고 야외에는 축대에 의해 휘어져 자란 나무를 두고 설전을 벌였던 경험을 두고서, 그 과정에 대한 작가의 소회를 담아 작품 세상은 생각보다 이유가 많다를 축대에 새겨 넣었다.
예술가의 작업 외에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창작작업이 활발했던 것은 작년 활동으로부터 비롯된 공훈이라고 자부해본다. 정덕문(성심원 시설관리팀장)의 주도하에, 2015년 봄부터 마을입구 나무집 2층에는 미술교실이 운영되고 있다. 또한 주민들이 함께 나른 경호강의 돌들은 희망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의 희망의 돌탑으로 재탄생하였다.
모든 것을 막론하고 주민들의 자발적인 창작활동에서 비롯한 감동은 나에게는 잊지 못할 대사건이다. ‘예술은 사회를 어떻게 더 나은 가치로 이끌 수 있는가에 대한 나의 중심 화두를 그들을 통해 직접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에서 예술창작을 통해 새롭게 생동하는 기운을 엿볼 수 있었고, 그들의 생동하는 기운은 다시금 현장에 임하는 나에게 강한 질타와 자극을 주었다. 마주침과 충돌에서 촉발될 수 있는 상호 생산적인 자극’, 또한 예술가들의 적극적인 탐구에 의한 새로운 작업들의 탄생. 어쩌면 한때 예술가들이며 마을주민들을 수혜자로만 여겼던 나의 생각이 틀렸음도 간파하였다. 나는 이것을 희망의 원리라고 부른다. 마을주민들이 예술가들에게 자극받았던 때와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현장에 임하는 희망의 원리를 예술가들과 마을주민들의 활동에서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화두가 그리고 지리산프로젝트의 화두가 이후로도 현재의 깊은 성찰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이유, 희망은 그렇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