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내가 잠시 당신의 삶에 스쳐지나가도 되겠습니까?
몽골의 국기를 보면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잇는 무구의 형상과 음양의 조화에 대한 상징이 그려져있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과거 세계 종교들이 유입되었을 즈음에도 결국 몽골의 풍토에는 샤머니즘과 불교 등이 적합하여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이는 종교가 이원적 체제로서 단순히 유한함과 무한함만을 가르지 않고 하늘과 땅이 마주한 지평선을 일상에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삶의 방식을 지칭함을 보여준다. 바람도 물도 하늘도 땅도 그리고 초원에 함께 살아가는 동식물 모두 하나하나 의미를 지닌 신이자, 신의 자손이다.
사방에 지평선을 끼고 있는 초원을 다니다보면 그 거리조차 가늠하기 힘든 곳, 곳곳에 오색 천으로 장식된 돌탑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몽골에서는 이를 ‘어워’라고 부르는데, 우리의 서낭당과도 같은 곳이자 이정표 역할도 한다. 그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삶과 자손의 안녕을 기도하는 장소임은 물론, 낯선 자들에게는 그 땅을 지배하는 신령에게 ‘내가 이 땅을 지나가도 되겠습니까’ 공손히 허락을 구하는 장소이다. 곳곳에서 마주하는 ‘어워’들은 같은 모습이되 지역마다 고유한 차이를 띠기도 한다. 마을의 당산나무나 서낭당을 이제는 문화적 자원 발굴의 콘텐츠로 활용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는 달리, 몽골초원의 사람들에게 ‘어워’는 여전히 그들 삶과 연동 중이다. 돌탑을 구성하는 돌 무더기 뿐만 아니라, 짐승의 두개골, 종교적 장식품, 아끼는 물건들, 미처 다 녹지 않은 초, 사진 등이 ‘어워’ 주변을 장식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간절했을, 기도의 흔적들이다. 도시 주변, 혹은 명성이 있는 곳으로 갈수록 ‘어워’는 더욱 화려해진다. 행여나 장난삼아 재미삼아 오는, 무작위 다수의 사람들이 어지럽히는 기운에 따라, 신성한 ‘어워’ 주변이 악령으로 덮이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는 자연을 더럽히는 인간행동에 대한 경계이자,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무관하지 않고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또한 타인과 문화에 대한 존중을 일깨우는 의식들이 주조해낸 도덕적 원형으로서의 샤머니즘의 면모를 살필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영원의 시간, 신화가 되어버린 역사
역사가 신화가 될 수 있는 여러 조건이 있다. 일반적으로 조상 대대로 전해주는 옛 구전일 수도 있고, 사견이지만 현재와의 비교 속에서 너무나도 강렬했던 그 시대에 대한 아련한 동경도 한 축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것은 잊지 않기 위해서 의식을 무장하는 것과도 같다.
중국조차도 그 두려움에 씨를 말리려 하였던 대초원의 지배자 몽골인들, 그러나 그들의 현재는 세계 근현대사와 맞물려 강제되었던 이념과 현재 도상국으로서의 각종 개발진통, 자본주의의 유입으로 인한 정신적 황폐화를 또한 마주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역동적이기도 하지만, 도시, 도시민, 빈부격차의 장면이 한눈에 보이는 울란바토르의 도시전경은 다소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초원이 선사하는 이/국/적/인 거룩함이 몽골인들에게는 현재 어떤 의미로 역할하고 있을까? 아직까지는 다행히도 여전히 ‘일상’의 영역이지만, 계속해서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에서 그것은 모든 가치를 떠나 그저 ‘가난함’, ‘시대에 뒤떨어짐’으로 퇴색될 수도 있겠고.
그렇다면 나를 포함하여 다소 천박한 오리엔탈리즘적 감상과 환상을 충족시키려는 여행자에게는 대초원은 어떤 의미가 될까? 타문화에 대한 성찰적 기제가 부재했음을 깨닫게 하는 ‘한낱 혹은 한갓 (인간주제에)’의 부끄러움, 건방짐을 무참히 깨버리는 대자연의 스펙터클한 기후, 나와 그들의 일상에 대한 동등한 비교.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는 막연하게나마 대륙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바다가 없으되, 하늘과 마주한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이 있고, 행성의 일부 같은 사막과 작지만 거친 수풀로 뒤덮인 초원, 이러한 풍경이 선사하는 바는 먼 옛날 저 초원을 따라 실크로드가 생기고 서로 다른 문화, 이질적인 문화들이 결집한 국제적인 도시들이 생성되고 또한 이후 소멸되는 과정들을 상상하게 하였다. 반도의 땅, 또한 분단으로 인해 섬과도 다를 바 없는 한반도의 좁은 지형에 살면서, 나에게 중앙아시아는 사통팔달의 행로에서 일어났음직한 무수한 서사들에 대한 동경을 갖게 하여 문학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더욱이 좋은 신비적 장소가 되었던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초원 한 복판, 아련하게 전설의 증거들을 담은 유적지들을 탐사하면서 나의 ‘막연한 동경’의 이유를 헤아려 볼 수 있었다.
카라코롬의 에르덴주 사원 그리고 튀르크 유적지
우리의 여정에는 과거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튀르크(돌궐)제국의 유적지와 에르덴주의 불교 사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설레는 마음을 안고 도착했던 그곳들은 그야말로 과거의 환영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몇날 며칠이고 망부석처럼 지새면서 교감하고 싶은 심정을 자아내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그 첫 심경을 나는 잊지 못한다.
지금은 불교사원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과거 카라코롬은 국제도시의 명성답게 세계의 온갖 종교들이 창궐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몽골의 삶과 가장 닿아있는 불교와 토템사상을 기반으로 한 샤머니즘이 사장되지 않고 남아있다.
튀르크족은 북방민족 가운데 최초로 문자를 만들어 사용한 민족이다. 보통 돌궐족이라 표기하지만, ‘몽골’을 과거 중국에서 낮추어 ‘몽고’라고 불렀던 것과 마찬가지로 ‘돌궐’ 또한 중국에서 폄하하여 표기하였던 것이라 한다. 그래서 그들 표현인 ‘튀르크’로 표기하기로 한다. 튀르크족은 야만적인 북방오랑캐라며 그들을 낮추어 기록하였던 중국문헌의 내용들을 일축하면서, 국제적 도시이자 문명사회로서 기능하였던, 그들의 자존감을 표출하는 몇 기의 돌궐비문을 남겨놓았다. 어떤 비석은 벽으로 둘러 친 정방형 벌판에 손길이 닿지도 않았을법한 풀들과 함께 방치되듯 덩그러니 놓여있으되, 묘하게도 튀르크제국의 흥망성쇠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듯하여 내게는 진한 여운으로 남았다.
튀르크인의 시조에 대한 이야기인데, ‘낭생설화’라는 것이 있다. 참으로 흥미롭다. 먼 고대 튀르크인들은 주변의 공격을 받아 어린 사내아이 하나만 남겨두고 모두 죽는다. 이 아이는 인간의 아이를 궁휼히 여긴 늑대에 의해 양육되는데, 훗날 이 아이가 늑대와 결혼하여 열 명의 아들을 낳게 된다. 그 중 ‘아사나(늑대)’라는 이름을 지닌 막내아들, 그의 후손들이 돌궐제국의 칸들을 배출시킨 부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그러한 이야기이다. 이는 우리의 단군설화와도 같은 맥락으로서, 고대의 역사 및 토템사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초원의 늑대를 숭배하는 유목민족이라.
과거 몽골제국의 기마군대가 서구를 점령할 때, 서구사람들의 눈에는 다만 말들이 떼거지로 달려오고 있는데, 그 말들이 좀더 가까운 시야에 들어왔을 무렵, 활을 조준하는 무사들이 말의 허리에서 갑작스레 우뚝우뚝 솟으며 활시위를 당기는 장면을 보고 얼어버렸다는, 몽골 전사들의 그 용맹함에 가히 엄청난 공포를 느꼈다고 하는데, 이 또한 사견이지만 전쟁의 두려움을 넘어 그 자리에서 굳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것은 스펙터클한 군무에 가까웠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경외감과 숭고함과 공포의 세 축이 이 기마민족에 대한 유럽인들의 심경이지 않았을까?
몽골인들은 상대적으로 덩치가 크고, 우람한 편이다. 몽골 남성들의 고유 의상은 남성미를 확고히 살리는 차림이기도 하다. 입으면 어깨가 더욱 넓어보이며, 키는 더욱 훤칠해 보인다. 거기에 말을 타고 달리거나, 큰 짐이라도 이고 가는 모습을 보면 ‘아~ 대륙의 남자구나’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게다가 몽골어 자체는 발음이 독일의 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소리의 강약, 발음의 세기 정도가 상당히 강건하다. 몽골 여성은 어떠한가. 초원을 떠돌아야 하는 남성에 비해 몽골의 가족들을 지켜낸 것은 바로 몽골여성들이었다. 그리하여 몽골사회를 이야기할 때 모계사회적 특징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는 점. 문득 북방초원에서부터 공유되는 마고신화 등 ‘여성 창세기 신화’가 이러한 배경을 반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몽골을 다녀온 나에게 새로 붙여진 별명이 있다. ‘몽골유학생 캠퍼, 최큐’, 낯선 이들과 동행한 사막에서의 트래킹이며 호수에서의 캠핑, 그 와중에 우정도 발견하고 의리도 발견하고 친구도 생겼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몽골역사 및 유적, 문화에 대한 많은 공부를 선행하지 못한 바가 후회되기는 하였지만, 이번 여행 덕분으로 다시금 대학시절 읽었던 중앙아시아의 역사책을 다시 펼쳐들기 시작했고, 더불어 그들의 현재, 그리고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새로 생긴 별명이 보다 막역해지지 않겠는가.■
* 여행사 '몽골세븐데이즈'와 여행잡지 '트레비' 기획으로 참가한 몽골여행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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