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4일 월요일

PublicArt 12월 Review CHA, Jong-Rye


뿔과 주름, '이면'과의 소통을 여는 생명나무의 결  
<차종례 전>


글 ● 최윤정, 지리산프로젝트 큐레이터


특수한 사건 그리고 개별의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것들이 결합하여 일구어낸 거대한 휘몰이 속에는 원초적 생명에너지의 서사를 담은 듯한 형상들이 만판 펼쳐진다. 아래에서 솟아나는 형상이기도 하고 위에서 떨어져 파문을 만들어낸 듯한 파동의 형상이자 주름들이다. 비록 드러나 있지는 않되, 현상을 주조하고 있는 근원적인 힘, 에너지의 응축이 점으로부터 원뿔을 형성함으로서 외부로 도발할 수 있게끔 해온, 내면의 원천을 상상하도록 만드는 작품들이다. 합판을 덧대어 깎아내린 조형방법에 의거, 각 형상들은 평행으로 그어진 일정한 무늬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실재료의 물성에만 그치지 않고, 그것이 생성된 집요한 응축의 장면과 시간성의 단면으로 수렴된다. "우주는 농축된 에너지로 출발했고, 매 순간 스스로를 새롭게 재창조했다. 우주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을 변신하는 이 힘은 한계가 없어 보이며 실재에 뿌리박혀 있는 고갈되지 않는 다산성을 보여준다. 이 전체 그림을 관찰할 때 우리는 충만한 새로움을 창조하려는 존재의 집요함을 발견한다."(우주이야기, 토마스 베리 ․ 브라이언 스윔)        

작가는 자신에게 가장 익숙하고 따뜻한 질감의 재료를 가지고, '드러나기, 드러내기' 연작들을 구상하면서, 작품의 의도 및 내용에 대해 긴한 설명을 남기는 대신에 자신의 작품이 누군가에게는 상상적 세계를 확대할 수 있는 매개가 되었으면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히고 있다. 작가는 특유의 뿔형태의 도상은 솟아나는 듯한 형상으로, 작업해온 온형상들을 통해 기존에 있지 않았던 이형적 세계 내지는 생명에 대한 소우주를 떠올려 볼 수 있도록 하면서, 유기적 입체 특유의 아우라를 만들어내었다. 각기의 방향으로 솟아있는 나무의 (원)뿔들은 무한정하게 확산되는 듯한 한정되지 않은, 생명이 지닌 내적 에너지의 분출과 파동을 극적으로 끌어올린다. 오랜 이야기 속 신묘한 기운을 지닌 '뿔'의 신화에 대한 서사가 스미는 듯한 표면들이며, 심지어 단일 유기체로서의 원핵세포가 분열하여 증식하는 생명력의 흐름이 느껴지는 장면들이다. 모나게 혹은 둥글게 분출한 도상의 반복적 재현과 나무결을 포함한 파동의 구성방식은 마치 충분히 무질서한 가운데에서도 나름의 질서가 자생적으로 구축되고, 전체로서 하나가 거대한 유기적 생명의 기운을 만들어내어-자연의 소리에서 빚어지는 화음, 운동으로 생성되는 고리와 띠 그리고 항구적 순환성으로 연동되는 등- 해석의 층위를 더욱 다양하게 접근해볼 수 있도록 하였다.

더불어 파동의 도상들 즉 형태의 파동이든 소리의 파동이든, 사물의 세계에서 두개 이상의 파동이 만날 때 빚어지는 모습은 현상적으로 다양한 형태들을 통해 규격화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생명의 세계 안에서 이는 다만 어떤 만남으로 고착되거나 기억 속에 머무는 '상기'로서 감성적인 영향관계의 파문으로 일렁이는 바. 어쩌면 이 작품들은 특유의 도상과 형식들이 누군가와의 정서적인 파문 영향관계 속에서 '상기'의 방식으로 의미를 주조하고 재생산할 수 있게끔, 즉 '보는 자'가 의미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소통구를 배려한 셈이다.

과거 오랜 신화 속에서 짐승의 뿔은 신비로운 힘, 권위 그리고 질서를 떠올리게 하는 '생명나무'의 개념으로서, 고대 신라 금관조차도 사슴의 그것을 모방하여 고안된 것이라 하였다. 뿔은 여전히 유효할 만한 신화적 세계의 생명체 속에 원형적이고 우주적인 힘으로서 설정되어 있다.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이면'이란 그렇기에 현재하는-현상하는 총체로서의 차종례의 작품은 그것이 발생하게 한 내면구조- 작가 자신의 내적기운과 문맥 혹은 재료의 물성과 매개적 장비에 의거한 창작방식의 각 이유들을 포함하면서도 현실의 표면으로 드러나지는 않은 원초적인 에너지와 원형적 사고로서의 서사에 주목하게 하는, 합리적인 논구를 통해 설명될 수 없는 사물의 본성으로서 내적충동과 자연계의 영원하고 완전한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서사들에까지도 관조할 수 있도록 한다. 마치 조화로운 음들 사이의 수적인 비율체계를 고민함과 동시에 그 음들이 선사하는 '듣는 자'의 충동적 정서의 장면을 '이면'에 대한 이야기와 동일시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시방ART 11/12월호 기고문 : Come what may_지표, 큐레이터쉽






 Come what may; 지표, 큐레이터쉽

최윤정* ●지리산프로젝트 큐레이터



학습 및 입문시기 1년, 광주에서 만 3년, 대구에서 만 3년, 그리고 지금 지리산에서 새로운 1년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는 10년을 족히 내다보는 8년차 큐레이터로서 활동한 나의 이력은 내가 보아도 참으로 다채롭다. 물리적으로는 서울, 전라도(광주)와 경상도(대구)를 거치고, 활동상으로는 대안공간, 현장프로젝트 그리고 미술관에서의 업무를 축적해온 시간들이다.  
누군가 그랬다. ‘첫 시작을 무엇으로 했는지가 관건이다.’ 시작의 문맥이 현재의 활동상황들을 유추할 수 있게 하고 그만의 색깔을 만들어간다는 의미라고 이해한다. 이 때문인지 지나온 시간들과 현재 마주하는 시간 그리고 앞으로 대면해야 할 시간과 상황들에 대한 ‘반추와 예측’의 작용은 경험축적과 맞물려 구체적으로 나의 결을 만들어주고 있다.

계속된 환경적 변화와 적응문제에서 다행히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극심한 변화지점에 서있을 때 ‘나’라는 인간이 나 자체를 어떻게 객관화하고 있는지 수시로 점검해야한다고 강제하는 일인데, 그것은 스스로 괴롭힘을 선택하고 해법을 찾으며 변화적 위치에 직면한 상황에 대한 명분을 찾아가는 도정으로 이해하면 된다. 아마도 낯선 환경에 처하고 문제적 상황에 직면했을 때 제 위치를 제대로 잡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비롯된, 언제나 그랬듯 모든 일에 대한 선행작업이 된다. 내가 왜, 여기서, 지금 그것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는 이 과정 속에서 결정된다. 이 결정은 주변의 조언과 염려를 포함하면서도 결국은 내가 마주하고 내가 선택해야 하는 것이며, 결국은 ‘홀로-판단’하는 과정으로서, 그 모든 낯선 상황에 처해왔던 나에게는 늘 유효한, 존립근거의 토대가 되어 준, 생산적인 괴롭힘이다. 그것은 나에게 이 직업에 복무하는 자세와 역할에 대한 ‘명분’을 제공해왔다. 


이제 지리산에 놓여졌다. 

조금 편하게 이야기해볼까? 그 어느 산보다도 많은 매력을 가진 산이다. 근현대 한국역사의 단면으로 이야기 되었던 이 산은 그 속까지 들여다 보자면, 단순한 산이 아닌 ‘문화’이자 그 자체 인문적인 산이다. 신라 최치원의 흔적 및 그에 대한 설화1)가 지리산권 곳곳에 있으며, 남명 조식선생의 활동처이기도 하다. 오랜 상고시절부터 지식인은 물론이고, 신화 및 옛이야기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연구자들에게도 매력적인 장소임은 분명하다. 또한 지금의 ‘지리산둘레길’은 지리산권의 마을과 마을을 잇는 옛길을 현대인들의 자기반성적 성찰의 계기를 던져주는 철학적 사유의 길로서 제안된 곳이다. 이와 함께 지리산은 가치상실의 시대에 다시금 ‘생명과 평화’의 담론으로 우리 자신 그리고 주변과 타자에 대한 존중과 가치회복을 인식하는 장으로서 역할하면서, 멈춰있지 않고 지속적으로 시대에 유효한 반성적인 주제를 꾸준히 제시하고 있다. 2)

이와 같은 내용들을 인지하기 전까지 내가 아는 지리산은 고작 ‘지리산, 너 지리산이여’의 노래와 멜로디가 전부였다. 웅장하고 장엄하나 한이 서린 근현대사의 한 장면으로서의 남쪽에 위치한 산. 해서 대학생이 되면 반드시 등반해야 하는 산 정도라는 의식 외에, 나에게는 그저 막연하게 위치한 먼 장소일 뿐이었지만, 지금은 나의 일상이 펼쳐지는 장소가 되어있다. 고생스럽게 산 정상을 오르는 일들에 대해서 안타깝게도 나의 게으름과 미약한 발목은 단 한번도 성취감을 안겨준 적이 없었다. 말인즉 나는 등산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다. 내가 유일하게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다’뿐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세월이다.

오랜 인연 조언과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선배에게 이끌려, 보다 강하게 말하면 그야말로 ‘코가 꿰어’ 놀러온 것뿐이라고 착각한 장소다. 2014년 한해는 감사할 일들이 많아 보은으로 생각하며 한해를 보내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맡았다. 물론 그때까지도 아직은 ‘홀로-판단’을 배제한 체 시작한 바다. 그러나 날이 더해갈수록-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이곳은 나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는 곳이었다. 물론 나는 그것을 긍정적인 두려움이라 칭한다. 무수한 이야기들과 연구과제들이 이미 실천되고 있는 곳, 실천의 주체들인 이곳 사람들의 생활은 굳이 내 스스로 강제하지 않아도 이 프로젝트가 단순한 이벤트로서 아름다운 보은의 마음으로서만 접근할 수 없음을, 그 이상을 고민해야 한다는 당위와 두려움을 안겨준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는 강박과도 같았으며, 애초의 최윤정이라는 인간은 당연히 스스로를 괴롭히면서 위치를 잡아가는 인간형이므로 이 수순은 어찌보면 당연해보이기도 하지만, 그 두려움의 실체란 지리산권에 임하는 윤리적인 태도에까지 미치는 부담이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나의 자리

생각보다 알게 모르게 많은 훈련이 되어있었고 나름의 노하우들이 축적될 수 있었던 여덟 해이다. 커뮤니티에 대한 이해는 물론, 미술관계자가 아닌 사람들과 소통해야만 하는 과제 그리고 소통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등은 광주가 나에게 겪고 극복하라 요구하였던 과거의 시련에 맞닿아 있었고, 유휴공간에 대한 단순한 예술공간으로서의 조성이 아닌 ‘뮤지움’으로의 비전까지 고민하며 작가와 작품을 다루는 태도와 문맥은 큐레이터쉽으로서 대구가 나에게 투척해왔던 바다. 3)

성패와 상관없이, 참여작가(입주자)에 대해 자발적인 창작이 선사하는 고통을 끌어낼 수 있는 방식을 더욱 고민하고자 하였고, ‘군림자’, ‘선무당’으로서의 무책임한 강요이기보다는, 실현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조력하는 대등한 ‘논의자’로의 위치를 고수하고자 하였다. 창작의 분위기 및 작가들 간의 자연스러운 협업이 ‘궁합’ 상으로도 적절히 조화로운 편이었다.

전시는 입주작가 뿐만 아니라, 초대작가들을 두어, 주제에 대한 수식적 범위를 보다 넓히고자 하였다. 그리고 작품의 선정에서부터 운반 및 관리 등이 주먹구구가 아닌 시스템 상으로 정착시켜야 할, 뮤지움의 이상이 이에 깃들어야 함을 놓치지 않고자, 또한 그 규범을 지키고자 애먹는 시간들이었다. 왜냐하면 첫째 작품감상은 물론, 뮤지움이라는 환경이 문화적으로 익숙한 지역이 아니고, 둘째 그렇다면 작품의 의미, 창작의 고통 및 과정,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의 잉여가 아닌 인간본연의 생명활동으로서 창작을 수행하는, 창작에 대한 값진 의미를 그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특수한 장소와 상황에 놓여질 수 있음을 감안하여, 기획을 둘러싼 주변지형 문화와 사람들의 특색 등을 파악하는 일은 큐레이터가 우선적으로 프로그램 기획 이상으로 고려해야 할 지점으로 내게는 이에 대한 확고함이 있다. 다시금, 작가와 작품을 대하는 큐레이터의 태도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결국은 본보기가 된다. 여기서 나는 본보기의 핵심-큐레이터의 소임을 작가와 작품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등의 외적 행위에 두려는 바가 아니다. 큐레이터 개인의 내적 시선에서조차도-다시금 잉여가 아니라 생명활동으로서, 예술창작에 대한 확고한 시선을 관점화해야만 그것이 자연스럽게 외적 행위에 배어나온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바다. 우선은 ‘인지’이고 그 다음은 ‘신념’이며 ‘실천’은 ‘신념’의 확고함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태도는 그렇게 비추어진다.  

그렇기에 내가 지리산에 있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 어디에 있다는 사실도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내가 그곳에 왜 있고, 거기서 무엇을 하고, 그것을 왜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스스로 이유를 찾아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왜 ‘나’라는 사람이 그곳에 머물렀는지, 그에 대한 궤적이란 비단 활동적 결과 및 껍데기 안에서만 이야기될 수 없는 바. 안으로 향해있고, 자각을 통해 외화되는 것, 그것이 소명을 구체화하고, 막연한 두려움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용기와 진정성의 근간을 잡아주는 것은 아닐는지. 어쩌면 그것이 전부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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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 귀결은 ‘최치원은 지리산의 신선이 되었다’로 마무리됨
2)  심지어 지난 9월부터 산청의 성심원과 남원의 실상사를 중심으로 ‘세월호 천일기도단’이 마련되었다. 생명 존중 및 가치에 대한 시대적 모순을 그대로 안고 있는 ‘세월호 사건’을, 그 희생자들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더불어 지리산종교연대(불교,원불교,기독교,천주교) 역시 이와 함께하여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기도회를 각 종단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3)  지리산프로젝트는 사단법인 숲길의 주최로 지리산둘레길과 연관하여 지리산을 에워싼 5개 도시에서 펼쳐지는 예술프로젝트이다. 2014년 프로젝트는 우선 산청의 성심원과 남원의 실상사 그리고 하동의 삼화에코하우스 3개 도시에서 펼쳐졌고 2015년부터 5개 도시 확대를 준비하고 있다. 
   여기서 나의 파트는 산청의 성심원이다. 성심원은 작은형제회 프란치스꼬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한센인 복지시설’이며, 이미 하나의 마을로서 역할하고 있는 작지 않은 공동체이다. 한센인 어르신들의 수가 줄면서 비워진 공간과 또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대강당 등을 활용하여 예술인 창작스튜디오 및 전시장을 조성‧운영하고, 전시장은 향후 ‘지리산뮤지움’으로 등록할 것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공연, 전시, 학술행사 등을 조직하여 가치회복의 과제 및 지리산 생명평화의 철학적 담론을 구체화하는 예술프로그램을 성심원의 역사 및 커뮤니티 특성에 맞추어 기획 시행하고 있다.   
   

* 저자는 대구미술관 프레오픈 전시 ‘아트인대구’, 그리고 ‘대추리현장예술아카이브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시작하여, 광주의 첫 대안공간 매개공간미나리 큐레이터이자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대인예술시장프로젝트(첫해 조직팀,2009) 레지던스 팀장을 맡았다. 대구미술관 전시팀장(전시2팀)으로 3년간 근무 후 현재 지리산프로젝트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2014년 6월 16일 월요일

장병언 첫 개인전 평문 2014.6


소요逍遙하는 까닭

'장공, 생각을 움직이니 눈앞에 다가오는 형상을 마주할 수 있었더냐' 
최공, 2014년 6월 축사

글 ● 최윤정(지리산프로젝트 큐레이터/미술비평)


그의 자아는 옹고집이다. 아마도 이번 개인전에서 부각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은 동시대 젊은 예술가들의 행보 속에서, 그만의 특징으로 점유할 수 있는 바, 고전적 정신에 대한 동경이자 그것을 형상화하고자 준법을 연마하고 수행하는 과정을 작품을 통해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똑같게 모사하는 바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이를 현대미술논의에서 말하는 차용이라 하기에도 애매한 구석이 있다. 그는 중국 산수화 대가들의 주요 작품을 '스스로 모사한다고 말한다.(작가는 이렇게만 말한다.)' 여기까지 보자면, 장병언 작가의 작업과정을 상세히 모르는 상태에서 때로 누군가는 그의 작품을 오해하고 옛것을 따라했다는 형식에만 그쳐 고루하게 보는 등 판단적 우를 범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겠다. 

그의 작업이 가지는 참신함을 발견하려면, 우선 그가 말하는 '모사'의 의미에 접근하는 단초가 필요하고 그것은 그의 작업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모사' 자체로서의 진정성 그리고 또한 그것이 의미상 변경되고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바다. 옛사람으로 태어났다면 힘들게라도 무수한 과정을 겪으며 원본을 쫒아 곁에 두고 혹은 장시간 작업하는 모사의 방법을 쓸 수 있겠지만, 지금에서 찾고자 하는 원본이란 박물관에 미술관에 고이 모셔져 있기에 곁에 두고 작업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허나 차라리 단순한 형식 모사에서 작가의 정신과 태도에까지 확장되고 무엇인가를 덧붙여 표현할 수 있는 여지가 이 때문에 역으로 열려있다고 볼 수 있다. 모사하고자 하는 작품의 최상도의 이미지를 수소문하여 가장 뛰어난 화질로 뽑은 종이를 들고 그것을 원본삼아(?) '모사'한다. 그의 고전은 따라서 완전하지 않다. 그렇기에 도리어 그 준법을 더욱 부각하고자 혹은 스스로의 성향에 맞추어 작가 특유의 고집스러우면서도 자유로운 정신에 의거, '모사'를 꾀할 수 있었던 바다. 대가들의 준법을 모두 익히겠다는 각오로부터 꾸준하게 오랜 기간 동안 스스로 '모사'를 이야기 하면서. 작가는 여기에 고전을 마주하는 무게감과 긴장감을 순간적으로 녹여버리는 유머러스한 자신의 도상을 덧붙였다. 그것은 고전에 대한 작가의 태도적 오마주이자, 그 세계에서 노니는 자신의 모습이다. 작가는 평소 산을 좋아하여 마음이 동하면 열 일 제치고 떠날 수 있도록 문 곁에 항시 등산용 모든 장비가 탑재된 가방을 준비해둔다 한다. 그냥 떠난다. 그의 성향은 온전히 독자적인 행동방식에 기반한다. 따라서 그의 옹고집은 절대적 힘에 의해 자신을 다른 것으로 화하게끔 하는 것이 아닌 그저 순전한 자아로서의 작가로 정립하도록 하는, 수월한 재료와 반짝 아이디어로 충분히 무장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자꾸만 인간적인 태도적인 궁금증을 유발하는 또 다른 참신함을 낳는 것이다.  

인간이 지닌 본질적 성향이란 자연의 언어를 이해하고, 보다 다양한 것에서 기쁨을 느끼고자 하는, 이를 다양한 언어로 해석하거나 혹은 그 언어에 대답하고자 하는 모든 충동을 수반한다. 또한 모든 예술의 뿌리는 다양성 뒤에 숨겨진 거대한 통일성, 모든 존재자들의 근원과 피조물들 배후에 있는 창조자 혹은 에너지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세계의 시원에 관한 비밀을 밝히고자 하는 관심에서 비롯된다고 본다면,  그에게 이러한 관심은 고전 산수화가들의 준법과 철학을 온몸으로 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범관이 마치 비가 내리는 듯 점을 찍어, 산수를 유람하면서 직접 바라본 바들을 자신의 순전한 세계의 반영으로 표현하고자, 우점준을 사용했듯이 그리고 이당이 날카로운 것으로 찍어낸 듯한 기법으로 소부벽준을 활용하여 그만의 철학을 담은 산수를 표현했듯이, 또한 곽희가 자연을 소요하면서 자연을 총체적으로 담아내는 자기만의 시선을 리드미컬하게 연결한 삼원법으로 산수의 기를 보여주었듯이, 작가 장병언에게 고전 스승들이 전한 준법은 단순한 기법이라기 보다는 본인이 도달하고 싶은 작가로서의 이상향, 삶과 예술의 경지를 실험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학습도구였다. 또한 이 고전스승들은 속세의 경험을 단순히 은둔자이기 보다, 준법을 통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규율, 즉 실천적 규범으로서 이를 제시하였다. 그들의 산수화가, 보통 산수화에 대해 무지한 현대인이 오해하는, 속세를 벗어나 은둔자의 삶을 지향한 혹은 현실정치와 무관한 자율성만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그들의 산수화에는 속세의 거친 삶의 모습과 수행으로서 절대정신에 도달하고자 하는 삶 그리고 그 너머의 자연(신)의 본질과 원리에 도달하려는 세계가 담겨져 있다. 여기에는 합일의 경지에서 각자의 철학적 태도와 예술가로서의 특성적 면모도 함께 녹아있는 것이다. 다시금 산수화에 깃든 도교적인 이상향이란 별도의 것이 아니라, 그 구도와 준법에서 이미 현실을 동시에 반영하고자 하는 의지와 평행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바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곽희의 조춘도, 이당의 만학송풍도, 범관의 계산행려도, 안견의 몽유도원도 등을 모사한 <遊조춘도>, <遊만학송풍도>, <遊계산행려도>, <遊몽유도원도> 등을 선보인다. 이 작품제목들도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데 유머러스하면서도 중요한 지점이 된다. 말하자면 고전 스승의 그림들을 지속적으로 모사하면서 스스로의 준법들을 습하고 스승들이 자연과 세계를 소요하며 거두어낸 화폭에 스스로를 던져 본인이 그들의 작품에서 '소요해왔음 혹은 여전히도 유효함'을 보여준다. 그것을 그리며 익히며 행복을 느끼고 그들의 정신과 세계에 대한 철학을 체득하면서 깨닫는 그만의 감응적 세계. 한편, 시간이며 물리적 공간 어떤 것에도 걸림이 없는 무법자와 같은 개인성과 창작적 태도에서 장병언이라는 작가는 또한 자신의 속세적인 삶에서도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되 인간사회 자연의 규율에도 어긋나지 않는 아주 특이한 젊은 예술가이다. 저 고전 스승들이 다만 준법을 익히기 위한 도구적 스승들이 아니었음을 반증하는 부분이며, 또한 저 준법들이 기술로서의 화법이기 보다, 삶의 철학과 규율을 녹아낸 정신적 기법이라는 측면을 반증하는 부분이다. <끝>

  
후기:
작가와 나의 인연은 3년전 대구에서 시작되었다.  30대 중반의 전업작가 또래 작가들이 그 사이 개성 넘치는 그들만의 참신함들을 소개하고 있을 때, 장병언 작가는 그야말로 고전 산수화의 세계와 흠뻑 일체가 되었고 대학교육이 신통치 않음을 감히 '스스로' 깨닫고, 곧이어 '스스로' 스승을 정하여 그를 찾아 '사사받는' 형식을 과감히 '신선하게' 실천하고 있었다. 어떤 생각을 품고 살며, 그의 삶에는 어떤 층위들이 있는지 인간 자체가 궁금해지는, 신묘한 측면이 있는 작가이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참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