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16일 목요일

평론- 마문호 / ‘몸짓-표정’이 지닌 보편적인 ‘열망’

마문호 / ‘몸짓-표정’이 지닌 보편적인 ‘열망’


최윤정 ● 미학 • 미술비평


얼굴에 새겨진 주름은 그가 살아왔던 세월의 경험과 비례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주름은 그가 고통스런 삶을 살았건, 평온한 삶을 살았건 그가 밟아 온 자취들에 대한 표정이다. 이미 그 쓸모를 겪은 물건 역시도 그것이 사용되었던 흔적 하나하나를 주름으로 고스란히 남긴다. 그 주름은 세상살이의 흔적이자, 그 물건 혹은 그 사람의 평생을 빗대는 ‘은유’일지도 모른다. 은유는 그렇기에 분명 추상일 수 없다. 그것은 분명한 실체를 표면 안과 밖으로 가장 원초적으로 드러내는 수단이자 ‘속’이다. 설명이 소극적이고, 일방적인 전달과 상대의 무식을 전제로 한다면, 은유는 심적으로 개입하는, 이미 누구든지 인지할 수 있었던 ‘사실’에 가깝다. 원리적으로 그것이 이성의 가장 취약한 부분인 감성에 있다 할지라도, 그리하여 시적인 미화로 여겨진다 하여도, 은유는 차라리 이성의 한계를 끌어안으면서 이성의 계기를 확장하는 표현으로 보는 게 옳다. 작가 마문호의 형상은 그 ‘주름’이라는 은유를 ‘땀’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익명성’의 몸짓 형상으로 그려내면서 개별이 지닌 보편의 표정을 담아낸다. 그것이 그가 말하는 현실이다. 서사와 구상의 형식을 빌어 형상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가 형상으로서 재건하고자 하는 ‘현실’은 일차적인 비유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번 2008 개인전을 비롯하여 광주비엔날레 제안 ‘복덕방 프로젝트’ 참여작을 관통하는 그의 주제는 바로 ‘열망’이다. 개인이 지닌 열망, 예술가가 지닌 열망, 시장이라는 장소성이 지닌 열망, 시장사람들의 열망. 그가 말하고 싶은 열망은 단순한 바람의 차원이 아니라, 삶의 무수한 흔들림 속에서 겪는 상처를 봉합하고 치유하고자 하는 것 혹은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한 무의식이 지닌 우리네 열망이다.
예술가로서 그가 ‘민중미술’에서 ‘민주미술’을 외치기까지, 추상적인 형상과 원시적인 색면에서 차별적인 재료와 구상에 대한 ‘바느질 드로잉’을 행하기까지, 그의 사유는 예술과 현실적인 삶이 유착될 수 없다는 것에 놓여 있다. 그가 늘 외치는 명제는 예술은 허구요, 예술을 행하는 자에게 있어서 현실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데 결코 예술이 표명될 수 없음을, 또한 역으로 예술을 표명하는데 있어서 현실적 삶이 과연 유관할 수 있는가를 ‘대놓고’ 보이는 것이다. 간단하게 예술가에게 삶은 예술보다 우선시 될 수 없다. 이는 우선 리얼리즘 기반 속에서 예술이 삶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일종의 도구로 여겼던 것에 대한 비판이자, 더불어 여전히 그와 관련한 어떠한 실천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과연 그것이 진정 자신이 마주한 솔직한 현실이었는가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결국 예술은 현실적 삶보다 가치적으로 진정 현실에 대해 우위에 있다. 그렇기에 그에게 예술은 허구다. 그가 처한 현실은 보편적으로 예술의 자율성을 담보하기에는 거리가 먼, 오히려 예술행위를 저해하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이와 같이 다소 냉소적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작업관은 결국 예술가로서 자신과 자신의 환경을 인식하는 것에서 비롯된 바다.
과거 그의 작업은 인물을 묘사함으로써 거둬지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환경에서 그가 선택한 주제는 이제 현실적 삶의 양태로 그려지는 표정들이다. 그것은 풍경일 수도 있고 또한 살아가는 모습일 수도 있다. 그는 이를 ‘살이’라 표현한다. 이 ‘살이’는 자기 감정이 보편 속에서 드러나는 추상적인 ‘표정’이다. 이는 기존에 리얼리즘이 행했던 사회 참여적이어야 하고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야 했던 그야말로 협소한 구조에 대해서 그 의미 층위를 확장한 계기로 평가된다. 그렇기에 그것은 보다 솔직하다. 현실은 언제나 여기저기에 있었고, 지금도 그저 마주할 뿐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살이’이다.
여기서 그가 마주한 ‘현실’과 그가 선택한 주제는 단순히 의미로서만이 아니라 그가 선택한 재료에도 일관되게 고스란히 반영된다. 어찌 보면 그의 작품에 있어서 재료는 그의 명제를 타당하게 하는 가장 훌륭한 틀이다. 동시에 그의 작업에 대한 ‘알리바이’다. 기존에 유화를 통해 동일선 상에서 작업을 진행했던 그는, 이제는 이미 그 생을 다한 폐비닐 위에 바느질로 새기는 행위를 통해서 상처의 접합, 재생을 시도한다. 이는 동시에 쓰레기일 법한 재료들이 작품으로 그럴싸하게 보여 지게끔 하는 일종의 교란이기도 하다. 이는 형식을 통해서 꼬집어 보이는 예술의 허구이다. 낯익고 불편한 재료들을 통해서 권위적인 예술에 대해 입을 봉하라는 방식이다. 이 같은 요소는 간혹 미적으로 빠져들 수 있는 작품 감상을 의도적으로 저해하는 장치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그늘, 놀다/에서 그는 아무 손질도 하지 않은 폐타이어와 그가 즐겨듣는 록음악을 한편에 설치하여 다소 어수선한 전시장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였다.
그의 바느질 드로잉은 촘촘하게 잘 짜인 앞면과 달리 뒷면은 불완전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에게 있어 바느질이 무녀의 제의와 같이 삶의 상처를 봉합하고 치유하는 과정이라면, 그 뒷면은 외상의 흔적으로서의 은유이다. 끝마무리로서 길게 늘여진 실밥과, 앞면과는 달리 흐릿한 형상들, 구체적이지 않은 형상들은 자연히 삶 속에서 떠안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서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고 혹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무의식이 간직한 상처이다. 포대에서 감아올린 실마저, 실이 만들어낸 형상이 멀리서 희미한 주름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선택된 폐비닐의 색상조차도 그것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개인과 사회의 숨은 열망들을 두드린다. 그래서 이러한 형상의 이미지들은 다소 보편적이고 서사적이다.
한편 이와 더불어 작품에 사용되는 텍스트는 이미지들이 갖는 서사성을 뭉개는 역할을 한다. 말하자면 그가 사용하는 텍스트는 어떤 경우에서는 작품자체에 대한 의미라기보다는 하나의 도안이자 디자인이다. 그 의미에 현혹되어 그 자체 일차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이는 매우 곤란하다. /치워라, 그늘/에 새겨진 FTA와 그 주변에 새겨진 각종 형상들은 그야말로 FTA가 진행되건 아니건 간에 현실은 늘 동일했고 어떤 경우이건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저 무덤덤하게 귀찮다며 ‘치워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일등광주/는 그 의미와 더불어 문화적 범주가 지녀왔던 권위적인 총체성을 계속된 동어반복으로 오히려 일/등/광/주라는 기표 자체로 물화시켜 버린다. 오히려 자부심을 상징하는 거대 의미로 쓰인 텍스트가 불품 없어지는 순간이다. 이는 결국 일등광주라는 의미에 대한 조소이자 의미자체를 낯설게 하는 효과이다.
삶에 대한 은유, 상처와 봉합, 버려진 것과 재생, 예술과 현실, 실재와 허구에 대한 문제는 조각난 것들, 그것이 물건이건 혹은 사람이건 혹은 사회이건 간에 그것들이 지닌 ‘열망’ 속에 모아진다. 작품에서 ‘열망’은 몸짓 형상이 보이는 표정에 따라 또한 떠오른다. 물론 우리는 자신이 지닌 ‘열망’을 평생 모를 수도 있고,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 그 무엇도 진실이 아닐 수 있다. 그것은 파여서 보이는 주름이 아니라 떠오르는 표정이자, 순간에 발견되는 것일 수 있다. 예술로서 의미를 발견하고 동시에 이를 헛된 것으로서 부정하게끔 하면서 만들어 내는 일체감은 분명 그가 선택한 형식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그것은 예술가로서 자기 일상 속에서 우러나온 방법론이면서 동시에 그만의 적합한 예술이 되었다. 덧붙여 우리가 ‘열망’을 간직하건 아니건, 발견하건 못하건 간에 삶은 언제나 ‘열망’과 함께 하였고, 그것은 어쩌면 ‘일상’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Ma Mun-ho / A universal aspiration which a ‘gesture-look’ owns.


Choi Yoon Jung ● Aesthetics • Artcritic

People say, wrinkles in a face forms in proportion to experiences of one's time. So a wrinkle is a look that means a trace which one exists in a painful life or not. The things that breath its last, also remains on its own wrinkles as a trace that have been used. The wrinkle may be not only a trace of a way to live, but also a metaphor that is compared with things or one's whole life. So definitely a metaphor cannot be abstract. It is a means and 'the inner part' that exposes a clear substance inside and outside the surface. Assuming that an explanation is passive and a one-sided communication and also relies on the other's ignorance, a metaphor is close to 'a fact' intervening mentally, which everybody could have been aware. In principle, though it is located on a sensitivity as a weak part in rationality and though we regard it as a poetic beautification, it needs to understand that a metaphor extends the moment of rationality with drawing a limitation. The artist Ma Mun-ho's shape represents a metaphor 'wrinkle' through the form 'stitch'. Expressing gesture-shapes of 'anonymousness', he paints a universal look which individual has. It is the real for him. He presents his own shape with a narrative and concreteness but his own 'the real' which he rebuilds, gets over a superficial understanding. Including 2008 solo exhibition, participating artwork in Gwangju Biennale position paper 'bokdukbang project', his theme is the very an 'aspiration' that is taken by individuals, artists, and a site-specific of market, market people. His aspiration is not a simple desire, but that it seams hurts which one suffers in one's countless unrest, and recovers them. Moreover it is something to be in a unconsciousness that cannot be discovered.
Until He emphasizes the 'minju(democracy)-art' from 'minjung art' as an artist and changes abstract shapes and primitive colored scene into embroidery-drawing with the different materials and concreteness, he thinks that art cannot adhere to a real life. So his proposition is that art is just a fabrication, because art never profess that it can make an art creator's real life affluent and conversely it may be exposed 'without a hitch', whether art activity is connected with the real life or not. Shortly for artist, the real life cannot be prior to art. This is a criticism for what realism have considered art as an instrument reflecting human life. And also this is a reflection for a certain practice connecting with a sense of justice. As expected, it is about what the real is. At last, the art value is superior to the real. So to him, art is just a fabrication. His real life may be far from guaranteeing art autonomy, and it may prevent art activity. In this way, his outlook on artwork as a partly cynical artist has begun since he was aware of himself in the real.
In the past, his work was a look obtained that he described a figure. But Now the theme chosen from his environment, is a look drawn by an aspect of life. It may be a landscape or picture to make a living. For this, his expression is a 'living'. This 'living' means that it reveals one's own emotion as an abstract look in universality. It is appraised as a moment to extend the stratum of meaning against confined structures of the realistic requests that must be a social activity and must describe a concrete expression for society. For that reason, the notion of 'living' is franker than realism. Because the real always have been here and there and everyone only confront the real in their daily life. This is the very 'living'.
On the other hand, his 'the real' and the chosen theme are reflected in not only the meaning but also the material consistently. The material is the best frame that makes his proposition adequate, and have become an good 'alibi'. Having been taken the notion of 'living' into consideration, he had drawn on canvas with oil-painting. But now his canvas is changed into abandoned vinyl which have been used, he tries to return its life as seaming shapes on it. This is a sort of disturbance which the trash seems to be an artwork. Correctly to him, it is an art fabrication indicated by his own form. So this element is connected with an instrument that sometimes prevents the aesthetic feelings. Having installed a bald tire and rock music he likes-/Shadow, playing/, in some degree he leads an exhibit hall to be a noisy atmosphere.
His embroidery-drawing exposes an incompleteness of the backside as it is, contrary to the well organized front side. If the embroidery is a process to seam hurts and to recover them - such a shaman's rite, the back side is a metaphor as a trace to an external wound. In a substantial sense, the hanged ravelings as the last touches, and dim shapes contrary to the front side, unclear shapes are equal to the hurts which we cannot help taking all upon ourselves, and possessed by unconsciousness or we never want to remember. Even though the thread is drawn by a used sack and the abandoned vinyl-with its own color- chosen for seeming a dim wrinkle, acting in a body, the materials all touch the hidden aspiration of individual and society. So this images of his shapes are somewhat universal and narrative.
Together with this, on the other hand his text works upon crushing narratives in image. So to speak, the text doesn't say the meaning of artwork itself, but it is only a pattern and a design. It is difficult that we would understand the text as a superficial meaning. In /Get out of here, shadow/, FTA as a text has no connect with the real FTA, that is, whether the real FTA will go on or not, the real is always identified at all times. So as a meaning of living on, the real life just says like this, 'go away' with an annoyed look. And in /the first rank, Gwangju/, with its superficial meaning, through a steady tautology, the text put an authoritative totality which cultural category maintains, to shame. So a meaning of text only has been materialized as a signifier. Finally, this is a laugh for the meaning of 'the first rank, Gwangju', it makes an effect which the meaning itself is become unfamiliar.
A metaphor for life, the hurts and seaming them, the abandoned and revival, art and the real, reality and fabrication, whether it is things or human or society, they all come together in 'aspiration'. 'Aspiration' rises to the surface following a look which gesture-shape shows. Undoubtedly we cannot be aware of our own 'aspiration' or we can think that we know it absolutely. But both views may not be true. The wrinkle of life is not dug, but risen as a look. And it may discover in a moment after all. Coming from the repeating operation that finds meaning for art, or at the same time denying art as a unbelievable thing, a sense of unity is undoubtedly originated from the form which he choose. Springing up in his daily life, his method is his own art. In addition to keeping 'aspiration' in one’s heart or not, and discovering 'aspiration' or not, our lives always get together with aspiration. So to speak, I am supposed that 'aspiration' may be equal to one's everyday.
(translated by cHOiyoOnC)

2008년 10월 1일 수요일


송창 - 표면으로 나와 내면을 유희하는 풍경

최윤정 ● 미학‧미술비평


1.

/이른 새벽/, /아침/ /한낮/과 /오후/, 그를 발견한 풍경들, 또한 그를 따라 지나가는 주변의 자연 풍광들. 길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이리저리 공명하는 기체를 따라 가다가 또 가다가 멈춘 세상에는 늘 그곳에 있었다고 하는 늙은 거목이 서있다. 항상 그 자리에 정지되어있지만, 어느덧 시간은 거목을 중심으로 하여 지나간다. 시선으로 건드리고 또한 의식적으로 미화시키고 예찬하며 자칫 머뭇거릴 수 있는 작가의 발걸음을 그저 자연스럽게 지나가라고 말하는 거목이다.
그는 여행을 즐긴다 한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에는 길이 펼쳐져 있는데, 그것은 흐드러지게 핀 꽃과 풀과 물의 길이다. 한때 그에게 여행은 역사적 의식을 반영하는 현장을 발견하고 사생하는 의지였다. 그러나 이제 그가 바라보는 풍경들은 반드시 우리가 염두에 둘 수 있었던 서사적 장으로서가 아니라, 그 서사가 펼쳐지고 있었던 혹은 보편의 것이 아닌 개인의 기억이 펼쳐지는 아니면 그 무엇도 아닌 모든 것이 펼쳐지는 곳이다. 풍경에 대한 그의 입장이 이와 같이 전이되고 펼쳐질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분단현실이라는 민족의 문제와 역사가 우리가 접하고 있는 주변 환경 곳곳에 이끼처럼 스며들어 있다거나 그로 인해 단 한번도 무관한 적이 없었다는 반성적인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꿰뚫듯 응시해 탐구하고 찾아내야만 하는 진실들은 어찌 보면 계속해서 내 주변의 풍경들 속에 찾을 수 있거나 혹은 없을 수 있겠지만, 자연으로서는 항상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자면 자연과 사물의 물성이 역사적으로 대유되는 흔적들은 그리하여 그에게 다소 억지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를 가지고 그의 과거 작품에서 극명히 보여 왔던 역사의식이 희석되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언제나 배경이었고, 비유였던 풍경들이 이제야 비로소 그 자체로 주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분명 명확하다. 소재에 대한 해석과 의미부여, 풍경에 부여한 그의 목적성이 이제는 자아성찰의 계기와 여행, 풍광 자체로의 감응으로 전이되는 시점이고 그렇다 한다면, 이제야 비로소 그에게는 사생 길에 마주하던 ‘풍경’들을 그 자체로 대면해볼 필요도 있기 때문이다.


2.

그가 민중미술 작가로서 초기에 주목했던 ‘풍경’은 직접적인 역사적 장소로서였다. 임진강, 휴전선, 철원 노동당사 및 철책선 근방 등 구체적으로 지시되는 그의 풍경은 역사적 서사에 대한 비유적인 주제이자, 일종의 다큐멘트에 가깝다. 이후 그는 이러한 방향을 유지한 채로 장소만큼이나, 소재적인 접근으로 ‘풍경’에 대한 해석을 확대한다. 이때 주목할만한 소재가 바로 ‘소나무’ 였는데, 이는 장소가 그리고 장소성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는 소재가 기억하는 역사적인 사건에서 비롯한다. 작가는 그저 어린 시절 단순히 집 주변 환경으로만 알고 있었던 울창한 소나무숲이 알고 보니 이념적 대립 속에서 당시 그 동네에 살았던 사람들이 밤낮으로 불려나가 고초를 겪었던 사건의 현장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는 그가 분단현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에 대한 개념을 보다 외연적으로 확대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소재적으로 ‘소나무’는 그에게 어찌보면 ‘휴전선’을 대체하는 중요한 상징이 된다. 더불어 같은 시기 이러한 변화와 맞물려 그의 작업 형식도 큰 변화를 갖게 된다. 그는 회화라는 그의 손에 가장 익숙하였던 요소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재료와 매체에 대한 접근을 통해 형식적인 실험들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설치적인 조형요소,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 사진, 더불어 그가 선택한 입체적인 재료를 통해 질감을 강화시키고 이에 회화적인 분위기를 덧입히는 식이다. 소재적인 접근이 ‘소나무’라는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 전환되는 시점에서 새로운 형식들을 입히고 개발했던 것은 그야말로 역사적인 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로서 형식 실험을 통한 다양한 표현을 욕망했던 것에 따른 결과였다. 다소 격할 정도로 기울였던 이 같은 그의 노력이 작업적 경향에 있어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다음 작업 시기로 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 이유도 분명 여기에서 연유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다. 이 시기 회화 중에서 /기억하는 자의 곤혹스러움/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4m가 넘는 대형 화폭에 펼쳐진 이 작품에는 현재 한강과 그 주변 모습을 담은 풍경이 펼쳐져 있고, 이에 6‧25때 끊어졌던 제 1 한강교가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어두운 그림자처럼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현재의 강폭을 가로지르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그가 의도한 ‘소나무’의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그의 공간개념을 여실히 보여준다. 과거의 내용을 분위기로 드러내는 방식이기 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전혀 다른 시간의 기억을 공간 속에 접합한 방식이다. 이는 현재에서 ‘낯선 기억’이 ‘구체적이고 익숙한’ 기억의 현장과 삐걱대며 조우하는 현장이다. 여기서 마주할 수 있는 체험은 역사적인 기록도 아니요, 그저 사연 어린 슬픈 유령이 나를 응시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한편 최근작 /여명_수종사에서/는 해뜰 무렵 수종사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얕게 떠 있는 구름의 결, 새벽 녘 하나 둘씩 켜지는 불빛들은 역시 4m가 넘는 대형 화폭으로 이어진다. 새벽의 향기와 아직 해는 뜨지 않았으나, 잔 불빛들이 모여 곧바로 이어질 아침의 생동을 가늠케 하는 장면은 자연의 기운과 우리네 일상이 동시적인 시공간 안에서 어우러지고 있음을 또한 늘 그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새벽의 공기는 스며들어 잠을 깨우는 차가운 기운이고 어슴푸레하지만 분명 부드러운 푸르른 빛깔이다. 그것은 ‘구체적이고 익숙한’ 우리의 시간이자,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내 주변의 환경이다.
그가 마주하고 있는 ‘풍경’과, 마찬가지로 현재 그의 작업은 자연이 그러했듯 다시금 전형적인 회화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또한 주목할 것은 여기에는 역사적 주제를 말하는 장소, 역사적 서사를 기억하는 소재적 접근이 제거되고 배경적 역할로서만 충실하던 ‘풍경’이 그 자체로 주제로서 화면에 전면 부각되었다는 점이다. 현재 그의 작업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 회화 자체로서의 회화, 회화적 표현기법에 대한 진중한 고민, 드로잉 연구 등이다. 그에게 항상 주제를 환기시킬 수 있게 해오거나 의도가 강조되어 배경적 역할로만 충실했던 ‘풍경’은 이제 그가 작가로서 객관적인 자신에 대한 연구를 꾀할 수 있는 ‘자신에 대한’ 이입체가 된다. 그에게 항상 의도와 목적의 배경으로서 관심적인 상징이 되었던 풍경은 이제는 정작 무관심적이고 그 자체로 관조적인 시점 속에서 그려진다. 이러한 요소는 그의 기법적인 요소에 힘입어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3.

이번 작업을 포함하여 그의 회화를 논할 때 주목할 만한 키워드는 바로 ‘확산’이다. 유기적인 응집체가 하나하나 파열된 상태로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퍼져나가는 형국은 촉각과 시각으로서만 알 수 있었던 물성이 기체로 전환되어 후각으로까지 파장되는 순간으로 이어진다. 그는 의도적으로 이전 작업에 비해서도 더욱 형상을 무너뜨리고 있다. 형상은 서사에 가깝다. 일반적으로 ‘형상’이 강조되었을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은 주제를 표면적으로 벗겨놓거나, 극단적으로는 사실적인 표현에 집중하여 그 이면의 효과를 놓치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가 형상을 억제함으로서 얻은 효과는 구체적인 장소와 시각적인 외형을 촉각적이고 후각적인 ‘공기 흐름’으로 전이시켰다는 점과 이를 통해서 객관적 장소에 대해 주관적인 느낌을 강조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그는 이를 ‘냄새’라 표현한다. 이러한 ‘확산’은 화면의 테두리를 오히려 확장시키는 느낌을 일으키기도 한다. 퍼져나가는 냄새는 비단 캔버스 틀 속에 갇혀져 있을 것만 같지는 않다. 이러한 효과를 갖는 이유는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역동성에 연유하는데 이는 형상의 제거, 상황에 따른 질감 표현, 시공간을 고려한 화면 구성, 색 표현에 기인한 것이다. 이것들은 하나로 맞물려 있다. 예를 들어, /솔내음/에서 보자면 소나무일 법한 추상적인 형상 위로 강하게 어지러져 있는 두터운 마띠에르의 노란 작은 덩어리들이 무질서하게 팽창하며 시각적으로 후각적 심상을 유발시킨다. 그것은 송화가루의 날림이다. 한편 /이포나루/에서 작가는 역으로 강한 물살의 움직임을 보이기 위해 얇은 붓질을 시도하였다. 돌리고 던지고 흩뿌리면서 물살의 특징을 가미한 것이다. 이 작품은 화면의 좌측 상단에서 우측 하단으로 흐르는 대각선 구성이다. 대각선 구도가 갖는 역동성과 질감 조절을 통한 물살의 표현으로 말미암아 화면은 또한 주변으로 확장된다. 말하자면 그에게 /물안개/는 기체의 형상이기에 두텁고 거친 마띠에르를 통해 확산을 꾀한다. 더불어 /들불/은 무서울 정도로 번져가는 타오름의 역동성을 얇은 붓질로 휘둘러 버린다. 확산과 움직임은 그가 자신의 기법을 통해 성취한 ‘풍경’에 대한 고유한 기법이다. 기법적 장치를 통해 그의 작품은 일차적으로 감각적인 체험을 유도한다. 더불어 주제 면에서 이번 그의 풍경을 조망할 필요가 있다. 오솔길과 크게 확대한 자연의 사물들, 너른 들판에 펼쳐진 길로서만이 아닌 소복이 숲으로 쌓여 가지 사이로 짐짓 그 시간을 가늠할 수 있는 빛이 내리 쬐는 작은 오솔길-/11월/과 강한 색감으로 크게 확대하여 표현한 꽃들-/붉은 꽃/, /맨드라미/은 이제 그가 거대 서사적 지대뿐만 아니라 ‘산책’을 연상시키는 자기 사유의 장 역시도 한 주제로서 위치짓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나가면서 발견하는 자연의 산물들은 항상 전체의 일부로서 드러내던 기존의 방식에서, 보다 작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4.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_ 윤동주의 자화상 中에서

이후 그의 작업이 철저하게 자기 사유와 성찰을 주제로 하여 사색의 공간으로서 풍경을 담아낼 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항상 주요했던 풍경이 너른 들판과 거대한 강 지류에 대한 조망이었다면, 현재 그의 풍경은 작은 사물에 대한 관찰과 혼자서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며 무작정 떠오르는 단상들을 사색으로 엮어가는 단계도 엿보이기 때문이다. 사색을 유도하는 자연의 시간, /석양/과 /달빛/ 그리고 /이른 아침/은 그의 정신적 유희를 그대로 반영하는 작품들이다. 특히 /석양/에서는 확대된 사물들이 드러난다. 이는 결코 좁아지는 풍경이 아니다. 까치가 내려앉은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해질 무렵의 빛은 그것이 투과하는 대부분의 사물들의 실체를 현저한 대비로 강조하기도 한다. 도시에서 해질 무렵의 빌딩이 붉은 하늘과 대비되어 더 어둡게 표현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빛을 통한 이면의 진실은 해질 무렵 더욱 강조된다. 달빛을 경험해 본 순간에 사물이 적당히 감춰지면서 살짝 드러내 보여 지는 것도 마찬가지의 심상을 자아낸다. 이러한 심상들은 자연히 개별의 감상과 사유를 이끌어낼 수밖에 없다. 또한 그렇기에 더욱이 관찰하는 사물이 확대되는 착시를 경험하는 순간도 있다. 시간적인 흐름에 따라 느낄 수 있는 고유한 체험까지도 소급하는 ‘풍경’은 그렇기에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색으로까지 확장을 꾀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 그 속에서의 경험은 그야말로 개별적인 감정 이입체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자연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되는 것이다. 오히려 풍경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여 한편 이를 외적으로 소외시켜왔던 것에서 이제는 역으로 풍경에 자신을 대입해보는 즈음으로 그 입지를 전환한 것은 의미 부여에 대한 배제라기보다는 역으로 자연과 자신의 세계를 보다 긴밀하게 접합하여 확장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마땅할 것이다.
이제 일반 타당하고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 그것이 개별에게 수용되는 입장에서 또한 개별적 가치에 근거해서 자연이 그에게 다가온 것이라 말할 수 있다면 자연은 심상의 공간으로서 보다 구체적으로 그에게 세상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어쩌면 우리의 풍경은 늘 그러했던 방식의 또 다른 세상을 의미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인물보다 풍경이 와 닿았던 것은, 구체적인 사건보다 사건에 대한 기억이 더 중요했던 것은, 그리고 배경적 요소가 점점 표면으로 드러나게 되었던 것은 이념을 이념에 그치게 하지 않고 의지를 호기로 여기지 않으며 이제야 적정한 심적 거리를 통해 자연을 재 조망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작가로서 세상을 살아가고 또한 작업에 대한 태도를 다시금 점검하고 이후 단계를 가늠해보는 시기까지 그에게 풍경은 언제나 의미를 지닌 유기체였고, 어느덧 의식하지 않은 순간에 차츰차츰 이미 그의 세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Song Chang
- The landscape to get shown on the surface and to play his own inside

Choi Yoon Jung ● Aesthetics ‧ Art critic


1.

/early in the morning/, /morning/, /at noon/, /afternoon/ the landscape that found him, and scenery that near him passed by. He doesn't know where the road connects. He just goes along with the air floating here and there. He keeps going and going, and then in a place that he stop to let his eye's rest, the very big tree stands by him. It always may have been there before our awareness. It looks like stopping, but time passed through the old tree at all times. It whispers 'leave me intact so go your way' to the artist's step with touching by eyes, consciously idealizing nature and praising be to nature.
He enjoys traveling. So there are roads in his artworks, roads are routes for flowers in full bloom, and also the grass and water. Once his travel was a will that sketched and sought a historical context. Now his landscape is not only a historical narrative that one keep in mind, but also just place that may be universal or individual memories. And it may or may not be nothing(/everthing), landscape exists everywhere. On the other hand, the reason why he changed his own viewpoint of landscape, results from self-reflection. It is that historical narrative(called 'divided land' in korean actuality) can be found everywhere, like covered with moss. So historical narrative never can have no connection with our lives. It's very natural. Perhaps the truth that we must seek, may be found or it may not in our environment. But the truth as nature always exists there. From this point of view, the trace that liken property of nature and things to historical moment, may be unreasonable to him
But in my opinion, it cannot define his historical sense as an ambiguous attitude. It is very clear the reason why landscape as a background and a metaphor of a history. landscape has become a theme by itself. The focus of landscape have turned (from interpretation and significance about a subject matter and intention for nature) to nature itself. It means a self-reflective moment, a travel, an inspiration from a deep impression on scenery. For this reason, to him, It needs to stand face to face of landscape that meets on his way to sketch.


2.

As Minjung artist, the early days 'landscape' to attract his attention was directly historical site. Like Imjin-river, the armistice line, the civilian passage restriction line, the office of labor party in Cholwon and so on, his landscapes entered very concrete phase. This was not only a metaphor of historical context, but also close to a kind of documents. Then, kept entertaining that idea, he expanded an interpretation of landscape as an approachment to a subject matter. At this time the remarkable subject matter was a 'pine tree'. It originated from a historical affair as memories of place and site-specific subject matter. When he was a young boy, there was pine tree forest near his house. the forest is an environment just around him. But he realized that the densely wooded pine tree forest is the actual spot of ideological opposition. Inhabitants had suffered every day and night then. It provided a moment that he made an attempt to the extension of his thought about the spot shown divided-land. So 'pine tree' became an essential symbol that replaced 'the armistice line'. With this variation, his form of artwork also had full of variety at this period. He tried a formal experiment-not only painting as his accustomed form, but also approaching to various material and media. So to say, it is to try an installation-effect, to deal with documentary photograph, and to strengthen his matiere, to duplicate 'painting-atmosphere' with his selected three-dimensional material. The approach to a subject matter didn't only have made new form. It didn't only mean that it had been capable of the more effective expression for a historical theme, but he also had a keen desire for various expression by formal experiment as an artist. Somewhat of his excited effort might advance his work, for this reason, he could not help taking long time to begin a new creation. In this period, we need to remark a painting, /Embrrassment within living memory/ over 4m width. It was expressed han-river and landscapes around han-river. on this painting, Broken 'the first bridge of hangang' during the korean war(6‧25) was painted by silk-screen technique. It seems to be a dark shadow, reflected in those days and crossed the present han-river. Basically showing his ideas about space, this had something in common with 'pine tree'. It is not that he express the past as 'atmosphere'. Instead, he united memories of quite different time into space. This is the actual spot where 'an unfamiliar memory' came across 'a concrete familiar memory'. Getting experience from this work, are not historical document. Just I want to say the feeling is that I have met a ghost having much to regret.
On the other hand, in recent work /Dawn-Sujong temple/ is a panorama that he watched in sujong tample at dawn. The Silent clouds floats shallowly, the light gradually increases. They all set in 4m width painting. Before the dawn, the tiny lights are connected by vividness in the morning. This scene harmonize the vitality of nature with our daily life, and shows it always have existed. The air at dawn is cold vitality that awakened us from a sleep, and faint but absolutely soft and bluish. That's a 'concrete and familiar' time for us, the very environment comes across my mind.
Like the meaning of his landscape, now his work have returned to a typical painting. In this, remarkable point is that he has divided places and a subject matter from historical theme and affairs. So landscape, such as a background, stands out in bold relief as theme itself. Now his work is about nature as it is, painting as it is, serious consideration for painting technique, and research for drawing and so forth. Now Landscape which always called his attention to theme or took a background role inserting artist's intention, have turned to an empathy 'for himself' that seek an objective ego as an artist. And at one time, the landscape which was concerned with his purpose, but now it is unconcerned with his purpose and intention, so obviously drawn itself in a state of contemplation. This facts carry conviction under the influence of his painting-technique.


3.

Including this work, when we argue his painting, the remarkable keyword is the very 'diffusion'. Complete organism bursts into particle, and diffuses throughout all directs. Before then, we only have known a property of matter as the sense of touch and sight but by 'diffusion' changing gas, our senses are extended to the sense of smell. Intentionally he has broken his shapes-figure. A shape is close to a narrative. As a general rule, some dangers occurred when one lays a stress on shape. They are arisen from making theme naked on surface, extremely we can find concentrating only a reality of shape, so then cannot help losing the inside truth. Restraining shape, he get some effects. He has changed a concrete site and visual appearance into 'air-flow'. And having stressed subjective emotion for objective site, he have made an unique 'atmosphere'- his expression is "smell". Because of 'diffusion' effect, we can experience as the outline of canvas is prolonged. The diffusing smell may not be locked in a frame of canvas. Because of 'vitality' in his work, this is due to a removed shape, matiere on the lines of conditions, the composition of canvas allowing for time and space. These are harmonized well. For instance, in /smell of pine tree/, Expressed so thick on the abstract shape that seems to be pine tree, the yellow matiere expands so much confusedly, at the same time visually it comes about the sense of smell as a mental image. That is flight of pine pollen.
On the other hand, in /ipo ferry/, compared to this, he try to make a thin brush stroke because of showing the strong current of water. Throwing, spinning and sprinkling his brush, he adds the character for a strong current of water. And this work, he draws the diagonal line from the left top of canvas to the right lower end. The diagonal composition gives an energetic moment-vitality, and expression for the current is as a result of the control in matiere. From this, the canvas is also expanded around. That is, /rain-fog/ is the shape of gas, so its matiere is thick. And /pare and burn/ has a energetic shape spreading quickly. He twist his blush round one´s little finger. Diffusion and vitality as his own technique are as same as 'landscape' obtained by his own view. Through his technical equipment, first of all his work leads to sensory experience. And in a theme of his artwork, we need to take a view of his landscape. A lane and expanded things of nature, not only the road in a huge field, but also in /november/, a lane that is full of forest, that show us the sunlight among the branches informed the time. the very stong colored /a red flower/, /cockscomb/ are now shown that he placed his 'walk' as his own specualtion. Discoveries of nature on his way to walk attract his attention, in a different way comparing with the past viewpoint being as extremely small parts of totality called nature.


4.

"In a well, moonlight is bright, a cloud floats, the sky expands, the blue wind blows ,fall lies. And a man remains." _ In 'self-portrait', by Yoon Dong ju

After this work may be absorbed in his own thought and self-reflection, through a landscape dealing with a space for speculation. If his view was attached to a wide-yard and huge tributaries, presently observing small things and taking a walk, he weaves fragmentary thoughts flashed into his mind recklessly as a step to speculation in his landscape. The time of nature leads ones to speculate. /sunset/ /moonlight/ /early in the morning/ reflect his mental play. especially in /sunset/, expanded things reveal. This never means narrow landscape. Among the branches which magpies alight, the light of the setting sun emphasizes substances of things by a striking contrast. At sunset the contrast between the light of the setting sun and urban buildings helps the urban building getting dark. So at sunset, the hidden truth comes out by the light of nature. Equally by moonlight, confidentially veiled things reveal softly. It evokes one's a mental image. This mental images naturally cannot help but lead to individual impressions and thoughts.
Such being the case, we can experience an optical illusion as enlarged observing targets. Along the passage of time, Landscape that gathers one's own experience is not reduction but extension up to speculation. Certainly as a meditation for individual empathy. Experiences in time and space, provide us with more aggressive attitude to interprete nature. Landscape given historical meaning, suffered external alienation. Now he imports himself into landscape, but it isn't equal to remove the historical meanings, on the contrary he expands nature and his own world through closely connecting.
Now If we could say 'nature comes to him' -nature that based on individually accepted position or individual value opposed to general and reasonable value-, in the concrete, nature as mental images would give a chance to obtain more world to him. Our landscape also might have been an another world as it was. For him, The reason why landscape reaches his mind than figure, why memories of affairs are more important than concrete affairs, and why background gets shown on surface little by little is because he does not want that ideology stays just ideology, does not consider a will as a erroneous daring. By the reasonable psychical distance, He can take calmness to have a distant view of nature. He lives as an artist, and also inspects his attitude of work over and over, until he estimates the time of the next step. For him landscape has been always an organism, unnoticed It may have been his whole world.
(tranlated by cHoiyOO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