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명멸하지 않을 ‘강’의 메시지
최윤정 ● 미술비평 · 서울시 문화비축기지 전시기획담당주무관
애초 강은 표면은 잔잔하되, 그 속은 유유한 흐름이기보다 격하고 매섭다. 물질을 품고 시간을 품고 변화를 이끌고 생명을 순환시키는 운동성을 갖기에, 강은 그 생태로 인해 삶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 매개가 되거나, 켜켜이 이어온 삶에 대한 비유, 혹은 인간 역사의 징후를 이끄는 상징이 되어왔다. 자연의 경계선으로서 각각의 강줄기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지역 땅의 생김새에 따라 굽이굽이 제 속도를 만든다. 물리적 경계를 만들면서도 이내 이어져 그 경계를 흐린다. 죽음과 삶, 태동하고 소멸하는 역사, 이어지는 생명의 소리 그렇게 우리는 ‘강’의 시간을, ‘강’의 모습을 느끼고 공유해왔다.
강의 ‘흐름’은 사라지지 않을 기억에 잇고 닿는 것, 언제고 품었던 기억의 정황을 끄집어내어 우리로 하여금 다시 환기하도록 하는 사유의 흐름과도 같다. <강과 사람>은 17인의 작가들이 마주한 ‘강’의 이치와 그 본성에서 추출한 사람의 모습을 다룬다.
세상 낮은 곳으로 흐르는
흐름의 초입에 김성래의 강을 건너는 소녀가 있다. 잊혀져가는 익명의 무수한 희생자들을 배에 태우고, 익살스럽기도 하고 기괴하기도 한 생명들이, 강을 건너는 영혼들을 호위한다. 영생의 땅으로 향하는 죽은 자들을 애도하는 행렬, 일종의 씻김굿이자 반야용선이 떠오른다. 소녀로 상징되는 이 세계에서 고통받는 자들과 약자를 위한 연대의 몸짓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러나 공감의 정서를 간직한 생명체들과 함께 놓여 있다. 마치 이 전시의 향방을 예측하듯, 전시된 다른 모든 작품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축을 보여주는 듯하다. 남한강의 주변의 산세와 강의 흐름을 그린 조용상은 그 배경 곁에 지금의 시간, 사회의 변화를 염원하는, 익명의 무수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물결을 병치시켜 놓았다. 마치 잔잔한 물결 아래 거센 소용돌이처럼 움직임을 만들고자 하는 단 하나의 염원이 뿜어낸 풍경이다.
어느 것 하나 사연이 없을 리 만무한 세계의 구성체가 갖는 속성은 못을 박아 만든 이돈순의 풍경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듯 평온하기까지 한 풍경은 그러나 쇳조각을 긁는 듯한 감각과 강렬한 매스로 인하여 곳곳에 도처하는 비극적인 역사, 사건, 원한의 시원을 상기시킨다. 산업사회의 부산물인 캔조각을 꼴라주하여 죽음의 해골을 형상화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한 노동자의 모습(비정규직 노동자)을 표현한 나종희의 작품은 공산품 재료 특징과 더불어 일회용, 재활용의 가치로 하락된 인간의 모습을 비관한다. 박은태는 배경을 빼앗긴 소외되고 외로운 인간의 모습과, 겹쳐진 기억과도 같은 이미지로 낡고 버려진 기계를 등치시킨다. <늙은 기계 두 개의 시선>은 인간 소외와 사회적 조건에 대한 성찰, 노동과 삶의 의미를 되묻도록 추인하는 작업이었다. 박영균의 작업은 저항이 이뤄지는 현장의 구체적인 사건과 문제의식들이 그에게 접속되는 지점, 예술가의 창작산실이자 가장 개인적인 장소인 작업실로 견인되는 과정들을 잇는다. 상존하나 대립의 색채로 인지되는 빨강과 파랑이 뒤섞여 보라 빛을 만들어낸다. 생각과 마음의 갈등이 혼재되나 도리어 변증법적으로 변화를 이끄는 시작이자 염원을 만들어내는 빛이다. 기괴함과 유머러스함이 조합되어 마치 블랙코미디를 연상하게 하는 이흥덕의 작품은 그 특유의 만화적인 도상으로 현재의 세태를 보여준다. ‘불타는 집’ 연작은 세상이 굴러가는 이치, 사회적 구조를 풍자한다. 또한 ‘여인들’은 차별과 폭력을 상징하는 악어와 늑대의 우위에 선 행렬을 보여주고 있다.
원형을 쫓아, 생명을 순환하고
이주영의 작품에서 엉겅퀴는 강의 물살을 증거하듯 강한 생명력을 상징하고, 인간의 시간을 넘어 삶의 움직임과 변화들이 자리했을 땅에 굳건히 자리한 나무는 사슴의 뿔처럼, 혹은 무무巫舞의 형상으로 하늘을 향해 굳건한 줄기를 뻗어 올린다. 예술의 자격, 그 본질을 묻는 듯한 김보중의 작업은 결국 자연을 대상화하거나 흉내내지 않고, 원시자아이자 자연의 일부인 생명으로서 세계를 감각하는 에너지, 사색자, 행위자로서 인간을 보여준다. 나무와 짐승, 인간 모두 원시적인 색채로 부분도상 표현으로 공유하는 한타(한상훈)의 작업은 자연의 일부이자 모두가 같은 생명체로서 이 세계에서 위계없이 동등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생명의 원형적 에너지가 충만한 작업이다. ‘강’의 봄과 여름, 가을의 풍경을 보여준 류연복의 풍경은 ‘강’의 시간을 관조하며, 인간의 짧은 생로병사와 역사가 펼쳐지는 이 땅, 자연이 지닌 유구함을 강조하였다. 역사와 삶을 품어내는 장소, 현장으로서의 자연은 도리어 인간의 시간과 대비되어 세상을 바라보고 역사를 성찰하는 너른 품을 형상화한다. 김태헌은 남한강 유역을 유람하며 포착된 장면들과 상념들을 화첩에 담아낸다. 한편의 유람기, 그 속에는 유적지도 있고, 군대도 있고, 나무도 있고, 모텔도 있다. 이와 같은 이미지들과 함께 작가가 그곳에 머물며 느낀 생각, 기억들이 6미터 길이의 화첩에 빼곡히 담겼다. 그의 발길이 닿았던 장소마다, 그 속에서 떠올린 생각들이 마치 숨소리처럼 들리는 듯 하다. 아이들과 함께 완성한 서종훈의 ‘여강’은 4대강 사업으로 그 아름답던 모래톱을 잃은 강이다. 부감법의 형식으로 하늘에서 강의 전경을 내려다보는 시점에서 곳곳에 집과 물고기들을 그려놓았다. 강이 회복하기를 바라는 연꽃 한 떨기가 화사하지만 이내 처연하다.
여울을 거슬러, 잊혀지지 않을
여울은 지형으로 인해 유수가 빨라지는 강의 부분을 말하는데, 울퉁불퉁한 돌덩이로 이뤄져 있어 물이 소리내어 운다고 한다.(아다시피 연어가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거친 여울을 통과해야만 한다) ‘풍파 사나운 바다를 건너 /한 많은 남화태 징용왔네/ 아리랑 아리랑(...) /철막 장벽은 높아만가고/정겨운 고향집 막연하다/아리랑 아리랑(...)’
일제 군국주의자들은 사할린을 주요 전수물자 공급지로 삼아 조선의 청년들을 혹한의 땅에 가두고 강제노역을 시켰다. 해방 후 그들은 잊혀지다시피 하였고 고향에 돌아오지 못했다. 이해균은 사할린을 다녀와 경기일보에 칼럼을 수록했고, 그 인상적인 장면들을 회화로 남겼다.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이 그리워도 갈 수 없었고, 약소 민족으로서 감내해야만 했단 고통이 현재의 시간을 관통하여 전달된다. 이오연은 가족과 고향을 그리는 그들 기억 한 켠을 연작으로 담았고, 사할린 탄광에서 노역을 하고 있었을 노동자의 모습을 다루었다.
이 작업들을 보면서 민족이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 결코 지난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여전히 문화적 습성과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하고 있고, 또한 그저 과거의 아픈 역사로만 취급할 수 없는 이유는 생존자와 그 자손들이 분명 현실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끌려가 ‘분단’의 상황 속에서 국가는 결국 그들을 방치하고 외면해왔다. 마찬가지로 비전향 장기수의 문제도 같은 연장선에서 고려할 수 있다. 한반도의 분단문제를 꾸준히 작품으로 다뤄왔던 송창은 경향신문 사진기자의 <비전향장기수 19인의 초상>을 참조, 비전향 장기수들을 화폭에 담았다. 사상 선택의 강요를 부당하다 여기고 전향을 거부하며 수십년 옥살이를 해야만 했던 비전향 장기수들은 평생 ‘빨갱이’라는 편견으로 사회적 핍박과 차별의 고통을 받아왔다. 작가의 ‘안부를 묻다’ 연작은 고 서옥렬, 이광근, 허찬영, 류기진, 고 김동섭, 고 김동수의 기억과 증언을 토대로 그들의 삶을 어루만지는 작업이다. 그들의 표정과 주름은 꺾여버린 젊은 날의 시간에 대한 회한을 고스란히 증명한다. 분노와 회한, 서러움과 그리움이 응축되어 육화된 붓의 표현이 선연하다.
역사의 강
비전향 장기수에서 이어진 마음의 동요라는 것이 김호민의 작품에서 극대화된다. 그의 작업은 일종의 영령들을 기리는 위패와도 같았다. (*3.1운동이후 만주에서 조직된 무장독립운동단체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함께 군사를 양성하고 청산리대첩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되 소련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한 북로군정서. 그리고 연해주 인근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던 한창걸과 그의 군대.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시기 스탈린에 의해 한창걸은 수많은 인사들과 함께 숙청되었다고 한다.) 고향을 떠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워 온 의병대들. 분단 이후 사상문제로 제대로 평가조차 받지 못했으나 그 울림은 그들이 머물렀던 시간에만 멈춰있는 것이 아니다. 시대와 상황 그리고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고귀함, 의지, 호연지기에 대한 울림이 크다.
세상 낮은 곳으로 흐르고 생명과 의지의 원형을 순환시키며, 여울을 거슬러 결코 잊혀지지 않을 기억을 추출하는 강은 사람의 생사고해의 역사를 대변한다. 이 전시는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상황들이 연쇄적으로 이어져 있음을, 식민지 역사에서부터 분단의 현실까지 인과적으로 치닫는 모든 비극의 순간들을 다루고 있다. 더불어 사회의 구조적 모순 속에서 벌어지는 반목과 갈등에 대해 움트는 저항과 의지의 씨앗들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마치 이는 하나의 거대한 씻김굿과도 같은 전시였다. 단순한 애도와 공감을 넘어 흐르는 강으로부터 현재하는 우리의 삶을 제고하도록 하는 것이다. 강과 사람, 전체에 속박된 하나의 개별자로서 처할 수밖에 없는 굴레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자로서의 의지를 되묻는, 그러한 가슴의 울림이 작지 않아 버겁다. ●끝
주최 (사)경기민예총 주관 (사)경기민족미술인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