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터미널', 나는 '게스트하우스'를 꿈꾼다.
최윤정(대구미술관 큐레이터)
광주에서의 지난 3년간의 활동들은 일종의 소프트웨어를 실험해보고자 했던 시도였다고 믿고 있다. 물론 그 성공여부에 대해서는 확언할 수는 없지만, 덕분에 지역활동가 및 예술가들에게 실험 공간 내지는 새로운 스튜디오를 상상할 수 있도록 기여했던 부분도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2009년 대인시장 공방거리 조성사업으로 진행되었었던 '2009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는 다소 자폐적으로 창작활동을 펼칠 수 밖에 없었던 예술가들에게 '공동체적' 개념을 부가한 스튜디오로서 가치를 상실해가는 빈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사업이 끝난 이후에도 약 40여군데 스튜디오가 자생적으로 예술가들의 주도로 유지되어오고 있었다. 현재는 물론 그 수가 많이 줄었다고 듣고는 있지만, 젊은 활동가들과 예술가들이 여전히 대안공간 및 스튜디오 형태로 대인시장에 남아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끝까지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언제나 그들을 응원하고 있다.
재미난 소식이 들려온다. 광주국군병원을 예술공간으로 탈바꿈한다는 내용이다. 가슴이 설레였다. 기존의 뻔하디 뻔한 상상만 답습하지 않기를 진정으로 희망하면서, 나는 이와 유관하게 나름 주제적인 방향으로 고민해왔던 내용을 단편적으로나마 이 글을 통해서 밝히고자 한다.
'아트플랫폼'에서 '아트터미널'로
그 누가 이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정의했건, 나는 아트플랫폼은 현대 예술활동들이 펼쳐지는 하나의 거점으로서 소프트웨어가 강하게 발산되는 공간개념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기존의 지역 특성적으로 펼쳐지는 대안공간들의 활동이며, 새로이 생기는 복합문화공간에 대한 내용이 이에 포함되는 것인데, 여기에는 공간의 즉자적인 특성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이 주요했다. 여전히 유효하고 의미있는 가치로서 '아트플랫폼'은 개념적으로 특히 기획자들에게 태도적 개념으로 수용되어야 하고, 지역 안에서 이에 맞는 예술가들을 수용하여 창작주체로서 소신껏 자신을 발산하는, 바로 공간을 특화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광주는 충분하다. 쿤스트할레를 비롯해, 몇몇 대안공간들, 광주시립미술관의 창작스튜디오, 네버마인드, 광주극장 등 복합문화와 각 장르별 예술활동이 심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하드웨어는 충분하다. 더불어 곧이어 생기는 아시아문화전당까지라면 외부 시선에서 바라본 광주는 이미 현대적인 예향의 도시로서 '아트플랫폼'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문제는 예산과 전문적 인력, 특히 기획자들이 스스로 전문성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고 이를 소프트웨어 강화를 통해서 드러내 보이는 것. 이에 더하여 각 소프트웨어를 접속할 수 있는 매개와 네트워크의 긴요함을 기획의 비전과 태도와 맞물려 동등한 줄기로서 다양성을 수혈받는 '예향'이라는 나무를 키워내려는 관계자간 노력이다.
그렇다면 광주에 없는 것, 머물 곳이 없다. 쉬어가고 만나고 정보를 교환하고 그 속에서 번뜩이며 창작적 계기를 모색할 수 있는 '잠시 머물 곳'이 유연하지 않다. '플랫폼'은 출발지이자 도착지로 정지적 개념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행위의 마무리에 가깝다. 그러나 '터미널'은 행위의 연속을 지시한다. 여정의 과정 속에 놓여있고 떠남에 대한 일차적인 접속구로서 충분히 그 의미를 연상해볼 수 있다. 국제적으로 이미 광주는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단순히 예향으로서가 아닌 세계 미술의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명소로 자리했다. 그 덕 좀 보자. 광주에서 머무르며 이곳을 관찰하고 창작활동을 펼쳐보이고 싶다고 말하는 외지인, 외국인들을 수없이 접했다. 그들은 다만, 운이 좋다면 이벤트성으로 무수히 난립하는 광주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일부 참여할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지원의 타당함을 무마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활동이 질적으로 가치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한편 그들을 통해서 확장될 수 있는 네트워크와 정보교환의 계기는 기타 외 지역에 대한 예민함을 놓치지 않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항시 생각하였다. '아카이브의 구비문학화'라고 하면 이해가 좀 더 빠르지 않을까?
'터미널'을 고민하면서 더욱 실재적으로 나는 '게스트하우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있다. 누구든 원하면 머무르고 싶은 기간만큼 머무를 수 있다. 더불어 그들의 예술작업에 대한 질적인 부분에 대해서 머리를 싸매고 고통스러워할 필요도 없다. 또한 지원받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경우에서(개인적으로 스스로 원하여 자비로 방문하는 경우, 그들의 창작욕은 더욱 커지고 그들을 손님으로 맞는 주체 역시도 자존감을 유지하면서 관계의 합리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을 항시 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쉬운 창작이 난입되는 사례들을 볼 수 있었다. 돈을 들이면서도 만만해보이는 것, 요구는 당연하고 책무는 가벼워지는 이 모순적인 상황들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게스트하우스+모범적인 레지던스 프로그램+공간 대여(스튜디오, 연습실)등의 차원으로 운영비를 소진하지 않고도 수익금을 재투자하여 전문인력을 배치함으로써 이후 소프트웨어에 대한 비전까지도 놓지 않는 묘미를 상상해보자. 작년 겨울 우연히 지인의 추천으로 '타이페이 아티스트 빌리지'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일부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창작자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타지 및 해외에서 오는 예술관계자들에게 게스트하우스로서 사전예약을 통해 저렴한 숙박을 제공한다. 대만에 대해서 연구할 때, 그 지역의 작가들에 대해 리서치할 때, 선택적인 '머무름'은 대단히 합목적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더불어 그곳은 대만뿐만이 아니라, 아시아 및 유럽권 등 예술가, 큐레이터, 비평가, 기자단, 연구자 등 자연스런 정보교류 및 소통이 가능한 곳으로 '자율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광주를 떠나있는 이 시점에도 나는 광주에 대해 여전히 관심이 많으며, 애정 어린 객관자의 시선으로 광주를 관찰하고 있다. 더불어 주변에서 많은 질문들을 받는다. 그 중 가장 사적이고도 대표적인 내용은 '가면 어디를 가봐야 하지? 어디에 머물 수 있지?' 곧바로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떠오르는 탓이다. 광주에 와서 비엔날레를 보고 왜 잠은 부산 가서 자야하는지, 전시를 본 여운을 곧바로 남해바다로 흘려보내야 하는 이 비굴한 현실에 대해서, 물론 일상잡담이지만, 잡담에서 시작해서 근본을 추적해가는 심각한 논쟁도 벌여본 바 허다하다. 이는 단순히 잠자리 문제가 아니다. '머물기를 원하는 사람들, 머물 곳이 없더라'가 보다 핵심이다. 더불어 '광주예술계는 어떠한가? 현지에서 정보는 어디서 어떻게 구할 수 있는가?' 알고 싶은데, 개인적인 루트가 아니라면 '알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대전창작센터 인근에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생겼다고 한다. 역할은 잘 모르겠으나 오면 거기서 자란다. 대구에도 예술가가 만든 것은 아니지만, 예술가들을 우대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생겼다. 광주에서 손님들이 오면 특별예우에 할인도 해주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광주에도 물론 아트스페이스 미테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 물론 주로 미테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의 숙소로 기능하지만 때로는 예약도 가능한 시스템인 듯 하다. 일종의 터미널 개념으로서 게스트하우스들끼리 네트워크하여 정보 공유 및 운영 프로그램을 마련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이 경우는 더욱 말랑말랑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상만 해도 재미난 이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외국 지인에게서 서울 금천예술공장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렀던 기억을 전해들은 적이 있다. 크게 친절하지도 않았고, 짧은 여정이라 큰 감흥이 남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서울에 가면 안전하게 머물고 작가연구도 할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즐거운 내용이었다.
여러모로 공간운영에 대한 안정성과 지속성을 고려하자면, 기관개입은 필수라고 인정한다. 다만 문제는 인식의 합의와 창의적 사고에서 어긋나는 부분들이 많다는 것인데, 국군병원을 그냥 거대한 하드웨어만 첨가하는, 돈만 들인 허울로 만들지 않고, 초기 연구단계에서부터 뭔가 재미난 사건이 일어날 것 같은 아이디어들을 담아내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에서, '광주에는 없는 공간'을 나는 '터미널' 개념을 기점으로 한 코드생성으로 고려해보자 제안하는 것이다. 그리고 혹여나 시에서 운영하고자 하는 복합문화공간 내지는 창작스튜디오 조성이 목적이라면, 나는 차라리 광주시립미술관의 현재 양산동 및 팔각정 창작스튜디오가 보다 활성화되어 전문화된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전형을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대내외적으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 주장하고 싶다.
그 누구도 서로 모르고 다만 여행의 시작점에서 여정을 함께하는 '터미널'은 여행지 정보를 얻고 표를 사고 기차나 버스를 기다리는 설레임의 시작이다. 우후죽순 난립하며 의미도 인정받지 못하는 그야말로 '개나소나(?)' 레지던스/창작스튜디오'가 아닌 '오는 자 막지 않고 가는 자 붙잡지 않는' 자연스러운 네트워크의 현장, 게스트하우스를 형식으로 차용해보면 어떨까? 멀리서 '알 수 없는 선물 같은 컨텐츠'를 그득 머금고 오는 보물 같은 이들을 말 한마디 나눌 수 없는 모텔에 재우는 것도 손해라면 손해일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