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26일 금요일

홍순명 개인전 ⟪DMZ풍경⟫ 리뷰

홍순명 개인전 ⟪DMZ풍경⟫ 리뷰 

환상, 이윽고 의미가 된 풍경 : DMZ

  

최윤정 미술비평, 독립큐레이터

   휴전이라는 끝나지 않은 전쟁을 상징하는 DMZ, 군사적 긴장과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장이자, 세계 유일의 분단현실과 그로인한 현대사의 비극이 끊임없이 소환되는 장소이다. 하지만 비애의 역사를 품고 있으되, 그곳의 풍광은 그토록 숭고하고 아름답다 한다. 장소 자체가 평화를 희구하는 상징 내지는 슬로건이 되면서도 또한 지뢰밭은 공존하고, 인위적으로 비워지고 민간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한 탓에 천혜의 자연과 생태계는 자생적으로 복원되었다. 보자면 참으로 희한하고도 모순적인 곳이다. 거리상 접근성이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수월히 닿지 않는 것은 이미 분단현실로 인해 생겨난 각종 트라우마가 각자의 무의식 속에 새겨진 탓은 아닐는지. ‘있지만 정말 있을 것 같지 않은환상, 혹은 옛 설화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장소로서 DMZ는 그렇게 다가온다.  
 

전시전경 노블레스컬렉션
 
오랜 기간 사건의 중심을 포착한 보도사진으로부터 주변의 장면을 발췌하여 이면-서사의 가능성을 열어온 홍순명 작가는 사이드스케이프 연작 중 하나로 개인전 DMZ풍경(2018.12.27.-2019.1.24. 노블레스컬렉션)을 발표했다. 전시는 2018년 신작들을 중심으로 하여, 2011년 작품 일부도 함께 소개되었다. 그중 36개의 부분들(50x60.5)로 이뤄져 가로 7미터가 넘는 은 붉은 대기 속의 호수 전경을 다룬 것이다. 시공간이 모호하고 아스러진다. 여명 혹은 해질 무렵의 노을인지 알 수 없다. 36개의 부분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호수의 전경은 이내 곧 이야기를 발산하는 듯 동시에 전체가 부분으로 흩뿌려질 듯 기이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붉은 대기 속의 호수는 실재하는 장소로 보도사진을 재현한다.
 

전시전경 노블레스컬렉션
 이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에는 언덕의 능선 길, 경계를 가로지르는 장벽, 수직으로 피어오르는 연기, 공동경비구역에 놓인 특이한 조경의 나무, 숲 위에 떠 있는 듯 보이는 작은 군 경계 초소 등 DMZ 풍경의 주변부를 다룬 작품들이 자리한다. 이 작품들은 부분을 확대한 장면으로 풍경화의 전경-원경-후경 등 구성 논법은 무화되고 다채로운 시선의 방향과 구성을 도모하면서 이면의 이야기를 상상하게끔 부추긴다. 그로인해 그의 DMZ풍경은 마치 실재하는 허구를 보는 듯하다. DMZ는 그 자체로 충분히 사건이나 구체적인 서사를 머금고 있는 장소이지만, 발췌된-부분으로서 확대된 풍경은 심적 거리설정을 유도하여 해석에 대한 우회로를 만든다. 그것은 직접적인 서사 국면 너머에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전시전경 노블레스컬렉션
 
 
실행을 추동하는 계기, 완결된 작품이 나오기까지 작가가 견지했을 태도와 생각의 흐름이 궁금했다. 2011년 이래로 수년이 지나 DMZ를 다시 그리기 시작했을 때 그에게는 분명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그간 국내의 사건과 사고현장에 관한 내용은 물론, 아프리카의 다이아몬드광산, 르완다 학살, 시리아 난민의 현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작품에 담아왔다. 마침 시리아 사건과 장소를 다루었던 작품 '바다풍경-시리아난민'과 '17 각<17 17="" span="">형을 그리는 방법_스칼라 시카미니아스' 시리즈는 당시 의도치 않게 제주도의 예멘 난민 수용에 관한 첨예한 지점들이 생길 즈음 발표되었다. 전시 기자간담회 때 이와 관련해 쏟아지는 무수한 질의들, 당시 기억에 대해서 작가는 전시에 함께 참여했던 히와 케이(Hiwa K) 등 이미 난민의 문제를 온몸으로 겪어냈을 쿠르드족 출신 작가를 곁에 두고 그 질의들에 답변하는 일이 무척 난감하고 버겁고 힘겨웠던 경험이라 소회한다. 이 경험과 상황을 반추하면서, 작가는 가장 가까이에서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지점이자 ‘아무 사건도 없었던 듯’, ‘무엇인가 품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품고 있는 DMZ를 재차 인지하였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위험과 현실을 상징하는 장소이자, 자신의 파주 작업실과 맞닿아 있는 환경으로 지난 수십 년간 풍경 자체가 의미가 된 장소다. 거리상 무척 가깝지만 그에게는 체감에 있어 가장 낯설고 이상한 ‘주변의’ 풍경이었기에, 그렇게 DMZ 2011년에 이어 2018년을 관통하는 사이드스케이프 연작으로 다시 연결될 수 있었다.

Public Art 2019.1월호 / 최민화 <천개의 우회> 리뷰

효박淆薄한 이 세상, 民花
 
최윤정 독립큐레이터/미술비평
 
문득 최민화의 작품 <효박한 이 세상에 불고천명 하단말가 가련한 세상사람 경천순천 하였어라>(1989)를 보며 동학가사집인 용담유사권학가편에서 그 구절을 찾았다. 그의 전 작품을 꿰어내는 하나의 열쇳말 같았다.
 
원문)‘대저인간(大抵人間) 초목군생(草木群生) 사생재천(死生在天) 아닐런가. 불시풍우(不時風雨) 원망해도 임사호천(臨死呼天) 아닐런가. 삼황오제(三皇五帝) 성현들도 경천순천(敬天順天) 아닐런가. 효박淆薄한 이 세상에 불고천명(不顧天命) 하단말가
 

최민화 작가에 대해 각인된 첫 인상은 그가 열창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당시 그가 부른 노래는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이었다. 70년대 독재자를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라는 압력을 거절하고, 아름다운 대한민국 강산을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었다는 한 음악가의 저항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곡이다. 특유의 몸짓과 표정, 목소리가 생생하다. 이번 전시 천 개의 우회를 마주하면서, 내내 이 노래가 울리는 듯 했다.

대구미술관의 2전시실과 3전시실에 최민화의 작품 100여점이 놓여있었다. 70년대 초기작부터 현재 미 발표작까지도 이어진 대장정이다. 그의 대표작들로 손꼽는 <분홍>연작(1989-1999)을 비롯하여, <부랑>(1976-1988), <유월>(1992-1996), 그리고 <회색청춘>(2005-2006), <조선 상고사 메모>(2003- )<조선적인 너무나 조선적인>(2014- )으로 최민화 연작들이 총망라되었다. 6.25전쟁의 상흔 속에서 태어나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보폭을 나란히 했던, 최민화는 1980년 광주 오월 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사회적 현실에 주목하면서 민중미술의 길을 걷게 되었고, 1983민중은 꽃이다의 의미로 민화民花라는 아호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작업은 개인의 현실과 사회, 일상과 거대담론, 개별민족과 인류보편성을 교차하는 결합적 인과관계의 특징을 띈다. 그의 대표작인 <분홍>연작, 분홍은 백골단,최루탄/백색 파쇼들과 시위대/붉은 혁명군의 부딪힘을 상징하는 혼란과 혼재의 상황으로, 당대를 보여주는 표면이다. 세 명의 청년이 휴식하듯 갈대밭에 포즈를 취하고 있는 <붉은 갈대>(1993)는 실상 1980년대 광주에 진입한 계엄군을 망월동 언덕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장면이며, <두개의 무덤과 스무 개의 나>(1999)는 부모님의 무덤과 군대에서 의문사로 잃은 동생의 무덤을 전경에 두고 작가 자신의 여러 모습을 보여준 것으로, 두 작업 모두 사회적이고 폭력적인 거대담론이 개인의 일상적 리얼리티에 닿는 관계적 상황을 다룬 것이다. 6월 항쟁에 대한 작업으로 걸개그림 형식으로 구현한 <유월>연작에서는 최루탄 자욱하고 공권력의 탄압이 자명한 시위현장 한 복판을 그린 <분홍 아스팔트>(1992)를 비롯해 종로 5가 도로를 점령하고 누워 시위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파쇼에 누워I>(1992)를 통해 저항의 현장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현장의 긴박한 상황들 그리고 당대 탄압을 증거하는 작품들이다.
 
 
1976년 시작된 <부랑>은 소외된 민중의 삶과 고통을 다룬 작업과 함께 독재정권이라는 폭력적 현실 속에서 무기력한 자신, 청년의 모습, 소외된 자들의 모습을 다루었다. <회색청춘>연작은 50대가 된 그의 시선에서 사회의 근원적 문제들이 크게 바뀌지 않았음을,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을 그린다. 이 연작들은 젊은 청춘의 초상을 통해 1980년대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이라는 특수성을 넘어 근대적 인간조건에 대한 억압이라는 보편성으로확장된 의미를 만들어 온 과정이었다.
 
단군에서 백제까지의 역사를 재구성한 <조선 상고사 메모> 연작은 서구의 포스트모던을 광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예술계 세태를 비판하며, 사진과 서구의 영화 포스터 위에 유화를 덧입혀 신화적 도상을 재현하는 습작이었다. 이어 근작 <조선적인 너무도 조선적인>연작에서 작가는 우리의 고대설화를 중심으로 하되, 이분법적인 근대의 동서 개념이 아닌 고대의 동서 개념으로 유라시아를 인류사적으로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를 꾀하고 있다. 르네상스, 힌두, 무슬림 등 유라시아 권역에서 발견한 종교와 신화 속 도상들이 우리의 고대설화 속에서 재탄생한 장면들이다.

 
그가 시대의식을 감지하고 민중미술화가로 활동하기 이전에, 70년대 초반에 그린 그의 자화상이 인상적이었다. 예술지상주의와 예술가를 꿈꾸며 대학에 입학하였을 이 젊은 예술학도가, 무수한 고민들 속에서 사회구조를 비판하며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기까지, 3세계 민중미술의 전형을 공부해가면서 민족과 인류사의 보편적 여정으로 자신을 견인해가는 과정들을 상상해본다. 그의 작품들이 발언하는 작가의 시대정신 지표들이 선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