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3일 일요일

장소를 마주한, 예술가의 기록

* 본고는 문화공간 양 '2017 거로보관소'에 수록된 글입니다. 

장소를 마주한, 예술가의 기록 


최윤정 ● 독립큐레이터

시작하는 말

본고는 대구 중구 도원동에 위치한 성매매집결지 ‘자갈마당’을 기록하는 사업으로 추진되었던 <자갈마당_기억변신프로젝트2016>의 사례를 기반으로 하여, 예술가들의 창작과 기록에 대한 문제를 다뤄보고자 한다. 
주관단체인 대구여성인권센터는 성매매당사자 여성들의 구술작업을 시작하면서 자갈마당을 둘러싼 각종 자료들을 수집하고 이를 목록화·편집하여 <자갈마당 100년의 역사> 아카이브를 구축하였다. 예술가들은 전시 <자갈마당 시각예술아카이브_발화, 문장의 외부에 선 행위자들>을 통해 장소성에 대한 각자의 연구를 하나의 과정물로서 작업화하였다. 현재(2017.11월 기준)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장소에 대한 기록의 의미를 활동가의 측면에서 또한 예술가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도정에 놓여있으며, 서로의 입장에서 기록들을 어떤 방식으로 남겨야 하는지 또한 그것이 향후 장소와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는/닿아야 하는 영향관계에 대해서도 심화시키는 방안을 주 과제로 삼고 있다. 즉 한 번의 이벤트적 요소로 끝내기보다는 과정적으로 축적되는, 순차적인 단계가 필요하다는 공통의 의견이 있었고, 그것이 이 프로젝트가 지닌 진정성의 국면을 형성해간다는 점에 대해서는 서로간 이견이 없었다. 

프로젝트 안에서 예술가들의 활동에 대한 진행 과정을 간략히 요약하자면, 2016년 봄까지 작가구성을 마친 후(내가 결합한 시점은 2015년 겨울이었다), 2016년 여름 연구과정(워크숍, 답사 등 스터디 및 개별연구)을 거쳐 작업계획을 발표하게 된다. 작업계획은 결과물 자체이기 보다는 자갈마당에 대한 관점을 생성해가는 과정으로 설계되었으며, 11월에는 이를 토대로 한 전시로 작업들을 소개하였다. 그와 동시에 이 프로젝트의 맥락과 예술인 협업이 지닌 의의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가 진행되었다. 2017년은 2016년의 활동과 함께 2017년까지 이어진 후속작업들을 총망라한 출판물을 제작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출판물은 참여작가 중 사진작업을 하는 3인의 작가들의 시선에서 기록한 ‘자갈마당 사진집’과 참여예술인들의 활동을 맥락화한 ‘인터뷰집’으로 구성된다. 현재 자갈마당 인근에 현장상담소(대구여성인권센터 주관)가 개설되었고, 그 안에 자갈마당의 역사를 소개하는 상설전시관과 장소성(자갈마당, 역사, 인권, 여성)을 특화로 한 대안공간 ‘기억공간1906’이 조성되어있다. 이곳이 현재 근거지가 되어 2016년에 소개한 작품들은 물론 2017년에도 후속으로 창작된 작업들이 연속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현재 지난 9월을 시작으로 총 2차에 걸친 전시가 개최되었으며, 올해 마지막으로 열리는 3차 전시는 사진집에 대한 전시로서, 출판물 발간 일정에 맞추어 개최될 예정이다.       


기록 그리고 기획의 당위

2016년 처음 내가 마주한, 자갈마당이 위치한 도원동 일대는 고층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지금은 이미 다 지어져, 세대별 입주 중인 것으로 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성매매 집결지는 ‘유곽’이라는 이름으로 1876년 개항이후 일본인 거류지에서 시작하여 조선 전체로 확산된 공통의 역사를 갖는다. 따라서 전국의 성매매집결지들의 상황을 보자면, 그 태생은 물론이거니와 변화나 발전(?)과정에서도 서로 비슷한 추이를 보이고 있다. 최근 전국적으로 성매매집결지 폐쇄에 대한 지자체들의 논의가 한창이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피자면, ‘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의 발로’는 당위를 꾸며주는 하나의 수식일 뿐이고, 결국은 자본과 재개발이다. 그로인해 그 장소에서 벌어졌던 비인도적인 행태들이나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는 성찰되지 않고 있으며, 애초부터 없었던 곳인 양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 관련단체들이 우려하는 문제적 지점이다. 그간 약 20년 가까이 대구여성인권센터는 성매매집결지인 ‘자갈마당’에 대한 문제에 집중해왔고, 정책 제안 발언은 물론 기록물 자료수집 등 연구작업도 꾸준히 진행해왔다. 그들의 문제의식은 성매매집결지의 폐쇄는 마땅한 일이나, 당사자 여성들의 생존에 대한 아무런 구체적인 대책도 없이(타 집결지로의 유입), 또한 인권유린의 현장으로서 역사에 대한 성찰도 없이 ‘재개발’의 명목으로 마구잡이로 장소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것에 대한 우려에 있었다.

이에 몇 년 전부터 지역연구가들과 자갈마당이 사라지기 전에 그곳을 기록해야 한다는 논의들을 진행해왔고, <자갈마당_기억변신프로젝트2016>은 그 과정에서 방법론으로서 구상된 것이었다. 자갈마당이 사라지기 전에 그 과거와 현재를 기록하고 남겨야 한다는 간절함은 또한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확대해야 한다는 당위로 이어졌다. 장면을 포착하는 시선의 문제에서 출발하여 경직되지 않고 다양한 사유의 지점들을 열어두는, 강요하는 캠페인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스며들고 공진하는 활동으로서, 그렇게 이 프로젝트에 예술이 결합되었다. 처음 이 프로젝트에 대한 제안을 받았을 때, 몇 차례 거절을 하였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거운 주제도 주제이거니와 시민단체와의 협업에 대한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선의에 가려 예술가들의 창작이 도구로 전락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탈성매매당사자 여성들의 토크콘서트 관람을 계기로 프로젝트 합류의 명분을 찾은 후, 그때부터 나는 각자의 자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율함과 동시에 예술가들 역시도 이를 통해 본인의 창작작업이 확장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는 발판을 조성하는 일을 주 과제 중 하나로 삼게 되었다. 동시대 사회적 의제란 시민단체의 활동이나 예술가들의 창작모티브에 있어서 공통적일 수 있다. 또한 그간은 어느 한 쪽으로 쏠리는 것이 문제였으므로, 협업의 시스템을 실험하여 모범적인 선례를 구축하는 것도 기획자로서 기여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비교적 짧은 전시기간임에도 많은 호응이 있었다. 다수의 관람객들은 물론 이해당사자들(공무원, 정책관계자, 전국활동가 등)이 오갔으며, 주제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화제성을 띄면서 그간 사회란에만 수록되어 온 ‘자갈마당’ 관련 기사들은 일간지 문화란이나 칼럼등에 소개가 되었고 또한 예술잡지에도 소개되었다. 올해 연초에는 지자체에서 ‘자갈마당 폐쇄조례’가 통과되면서 성매매당사자 여성들에 대한 생계 및 자활을 돕기 위한 지원대책도 함께 마련되었다. 대구여성인권센터가 이를 실행할 주체가 되어, 만들어진 장소가 전시장도 함께 조성된 ‘현장상담소’이다.

이 프로젝트가 내부적으로 호응을 얻었던 이유 중 하나는 예술가와 활동가의 역할에 대해, 각서로의 자율성을 인정했다는 점에 있다. 예술가가 활동가가 될 수는 없다. 또한 활동가는 예술가처럼 해서는 안 된다. 한편 현장에 닿게 되는 접촉면도 예술가/활동가는 가능하지만 예술활동가/예술가는 가능하지 않은 경우들이 많았다. 각자가 ‘따로 또 같이’ 손이 닿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협력하며 협업한 지점이 이 프로젝트 시스템 상의 의의를 만들어주었다. 한편 일부에서 예술가가 현장에서 성매매당사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고 그들을 주체로 하는 작업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지적을 받기도 하였다. 그 지적은 물론 타당하다. 그러나 당사자들 접근 문제는 ‘낙인’이라는 폭력적 시선이 내재화된 그들의 두려움을 건드려야 하는 일이었고, 당사자들을 주체로 한다고 여기는 다수의 작업들은 보기에 ‘대상화’라는 윤리적 문제를 수반하거나 착한 공공미술, 캠페인같은 작업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큐레이터로서 나의 생각이었다. 나와 예술가들의 태도적 윤리성은 ‘잘 모르면서 아는 척은 하지말자’였다. 그리하여 협업의 형태에서 현장에서의 접근과 판단은 활동가들의 조언을 따르면서, 장면과 사유의 지점들을 발굴하고 찾아내는 몫은 우리에게 있음을 서로 주지하였다. 이것이 이 프로젝트 안에서 내가 생각하는 ‘자율성’이자 나의 태도적 기획윤리였다. 그리고 내용적으로는 예술가들이 이 주제를 자기 작업 영역으로 확장할 수 있는 계기에 주목하여 작업을 조율하였다. 사회적 의제에 작가들이 접근하는/실천하는 방법론에 대해 활동가적 당위에 얽매이기보다는, 철학의 시각적 대응물로서 미술에, 이미지생산자로서 예술가적 사유에 보다 집중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장소를 마주한 예술, 창작에서의 기록의 의미
(이수영, 정용국, 이범용을 중심으로)

자갈마당이 형성되었던 일제 강점기 시기, 이곳의 이름은 ‘야에가키초(팔중원정)였다. 이는 일본 [수진전]에 실린 신화 속에 나오는 지명으로, 천조대신(일본신화에 등장하는 태양신)에게 12명의 왕비가 있었는데, 초고대왕이 신궁에 쳐들어가서 여왕 히미코를 굴복시키고 천조대신의 왕비 8명을 후비로 삼아 그들을 가둔 곳이 이즈모의 ’야에가키‘라는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해방 이후 이곳은 ’도원동‘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도원동은 과거 복사꽃이 만발했던 동네 혹은 성매매 여성을 ‘도화’라 일컬어 즉 ‘몸 파는 여인들’이 모여사는 동네를 가리킨다고도 한다. 그러나 속칭 ‘자갈마당’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과거 대구천이 흐르는 저습지여서 그곳을 메우느라 자갈을 깔았던 것에서 유래한다. 유곽을 벗어나기 위해 밤에 몰래 도망치려해도 자갈 밟는 소리로 이내 들켜버렸다고 한다. 그것은 또한 포주들이 깔아놓은 자갈로 인한 것이었다. 아마도 그 자갈은 ‘빚’을 또한 상징하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도무지 자력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야에가키초’.  
“그 아비되는 자가 이십원을 받고 대구 유곽에 팔아먹은 것이었다. 그 소문이 퍼지자, 그 처녀 가족은 그 동리에서 못 살고 멀리 이사를 갔는데, 그 후로는 물론 피차에 한번 만나 보지도 못하였다(...) 처녀는 일본사람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었다. 궐녀는 이십원 몸값을 십년을 두고 갚았건만 그래도 빚이 육십원이나 남았는데, 몸에 몹쓸 병이 들어 나이 늙어져서 산 송장이 되니까, 주인되는 자가 특별히 빚을 탕감해주고 작년 가을에서야 놓아준 것이었다” _현진건 ‘고향’(1926)  

<자갈마당_기억변신프로젝트2016>에는 총 13인팀의 예술가들(김태권, 박진영, 전리해, 윤동희, 임은경, 이범용, 정용국, 정유진, 빈중심, 황인모, 오석근, 이수영, 사월의눈)이 참여하였다. 그 중 이수영, 정용국, 이범용을 중심으로 예술가들의 창작행위로서 ‘기록’의 의미를 다각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 작가 이수영의 경우 ‘스토리텔링 창작, 픽션의 수집물과 행위의 기록들’

자갈마당을 시각예술의 방법으로 ‘기록하는’ 방식에 있어서, 작가 이수영의 작업은 주목할 만하다. 활동가들과 예술가들이 자갈마당 및 그 인근 답사는 물론 각종 역사자료 및 현장사건에 대한 내용들을 함께 공부하는 워크숍 과정에서, 자갈마당이 고향이었던 한 일본인 오카다 다카유키의 이야기도 있었다.  

“오카다상은 식민자 3세이다. 그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1919년 즈음 대구에 정착했고 영화관을 운영하다가 후에 과수원을 하게 된다. 할머니는 현재의 팔중원정(야에가키초_자갈마당의 옛이름)에서 게이샤 유곽 ‘대강메’를 운영했다. 사창가의 게이샤집에서 태어난 그가 100년 가까이 변함없이 성매매가 이뤄지는 이곳을 보며 어떤 심정이었을까?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_권상구, 시간과 공간 연구소

오카다는 1934년에 야에가키초에서 태어났는데, 그가 태어나 살았던 집은 게이샤 유곽이었고, 그의 가족은 2층을 살림집으로 삼았다. 해방기 때 그의 가족은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일본으로 쫓겨난다. 그는 식민지 조선 ‘자갈마당’이 고향이었던 일본인, 70대의 노인이 되어 지난 2007년 고향인 대구, 자갈마당을 찾았다. 

작가 이수영은 이 일화에서 자갈마당의 100년 역사에 대한 작업의 단초를 찾았다. 보다 미시사적 접근으로 자갈마당을 에워싼 이야기는 성매매 뿐 아니라, 이곳이 고향이었던 포주집안의 한 일본인의 유년시절 기억으로부터 소환되는 것이다. 작가는 어떤 사연인지 알 수 없는 자갈마당을 떠도는 게이샤 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지어내었다. 스스로 게이샤 복장을 하고 정확히 밤 12시에 자갈마당 주변을 배회하는 퍼포먼스를 하였다. 이 작업은 퍼포먼스 영상에 등장하는 게이샤 귀신을 통해 사람들에게 그 사연을, 자갈마당의 역사를 상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작업이었다. 이와 동시에 그는 한 남성 배우를 섭외하여 자신이 직접 작성한 시나리오에 맞춰 그가 ‘오카다 다카유키’를 연기하게끔 하였다. 이는 실제 전시 오픈 당일, 이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오카다 다카유키가 일본에서 대구에 찾아와 전시를 관람한다는 설정이었다. 당시 관람객들은 그가 연극배우인지 모르고, 그가 전하는 자갈마당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자갈마당에서의 추억이며 에피소드를 묻는 질문에 그는 어떤 여인의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여인이 귀신이 되어 동네를 떠돌아다닌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는 말을 끝으로 퍼포먼스는 종료된다. 작가는 이를 작업의 물꼬를 트는 하나의 과정으로 삼고, 이 퍼포먼스를 시작으로 하여 게이샤 귀신의 정체를 밝히는 설정으로 자갈마당의 이야기들을 풀어가는 ‘포럼’을 연속적으로 만들어 갈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서 내용적으로 식민지 조선의 유곽지대가 고향이었던 일본인들에 대한 자료수집을 위해 그리고 오카다 다카유키를 직접 인터뷰하겠다는 각오로 참가지원을 통해 일본의 도쿄원더사이트(아티스트레지던시)에 국제레지던시 입주작가로 선정되어 3개월동안 작업을 펼칠 수 있었다. ‘오카다 다카유키’를 찾아나선 그의 여정을 내내  가로지르는 것은, 어쩌면 자갈마당에 대한 문맥에서 또한 잊혀진, 식민지 조선이 고향이었던 일본인을 통해 역사적 비애와 순환적인 구조를 들추고 인류학적인 지평에서 입체적으로 자갈마당을 조명하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물론 그는 ‘오카다 다카유키’를 만나지는 못했다. 아흔이 가까운 그의 생사는 물론이거니와, 흔적을 찾기에 3개월의 시간은 다소 짧았던 듯 하다. 그러나 작가는 그를 찾아나가는 추적과정들을 기록하고 발견된 자료들을 수집하는 등 결코 무의미하지 않은 연구기간을 가졌다. 한국에 돌아와 그는 집중된 고민들을 토대로 자갈마당을 떠도는 게이샤 귀신의 정체를 밝히는 픽션 형식의 포럼을 2017년 10월 말 수유공간너머에서 퍼포먼스로 펼쳐내었다.   









-작가 정용국의 경우 ‘기억감정의 구조들, 편집되어 재-기록된 구술’ 

작가 정용국은 대구여성인권센터의 ‘성매매경험당사자 여성들의 구술작업’에 주목하였다. 실제 구술내용은 당사자의 허락 없이는 외부에 공개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작가의 작업 및 연구의도를 공감한 후, 대구여성인권센터의 조율을 통해 한정된 5인의 구술자료가 그에게 제공되었다. 그가 이 구술작업들을 연구하면서 주목한 지점은 당사자 여성들의 말하기 방식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어떤 모호함’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보기에 그것은 외부와 단절된 채로, 자기 신체의 노동환경을 스스로가 제어할 수 없는 상황들을 반영하는 듯 했다. 보통 구술 자료들을 읽다보면 구체적인 정황이나 근거들에 대한 진술들을 찾을 수 있기에 의문을 푸는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를 기대했던 5인의 구술 작업 속에서는 그가 원했던 구체적인 내용들을 찾을 수 없을뿐더러 이게 뭘까 하는 궁금증만 오랜 시간 증폭되었고, 그로부터 그는 드러난 내용 이면에 말하기 방식과 단어의 표현 그리고 말의 간극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와 심리를 바라볼 수 있었다.   
시공간에 갇혀져 있고, 행위나 움직임까지 통제를 받는다. 자신을 바라보는 낙인 등 외부의 시선은 또한 스스로를 가두게 하는 심리적 감옥에 다름 아니다. 문득 그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 하였을 때 인간의 가장 원초적 욕구는 사랑하는 대상을 만지고 감각하고 교감하고 싶다는 마음일진데, 당사자 여성들에게 그 원초적 감각이 소거되었을지도 모를, 그렇기에 읽으면 읽을수록 말하기 방식 및 단어들에서 그들 삶의 이면을 회복해주고 싶은 마음이 다가왔다고 전했다. 단순히 기록으로서의 서사를 이해하는 측면이 아닌 그것이 곧바로 정서로 감각으로 직접 전해져오는 경험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 구술작업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말의 ‘간극’에 대해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그녀들의 모호한 말하기 방식을 더 극단화하여 이내 구술에서 구체적인 단어들을 지우고 지우는 작업들을 반복하였다. 그러자 보기에 전혀 알 수도 없는 대명사와 조사, 관계사 등만 나열된 것으로 보이는 문장들이 만들어졌다. 이 편집되어 재기록된 글은 도무지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글을 소리내어 읽는 순간, 소리로 전달되는 그 하나하나 모호한 단어들에서 이야기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실제 그 구술작업을 진행했던 한 활동가는 아무런 정보 없이 작가로부터 받은 편집된 문장들을 소리내어 읽다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것이 누구의 이야기인지 반 정도 읽어내리는 도중에 알아차렸다. 그 간극 속을 메우는 단상들이 머릿속에 차올라 곧바로 감정적 동요를 일으켰다. 나 역시 소리내어 읽어보았었다. 읽는 도중  장면들이 떠올라, 목뒤가 쭈삣 서는 듯한 기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5인의 구술작업은 감정을 배제한 제삼자가 덤덤히 읽어내리는 소리를 통해서 5개의 사운드 작업으로 완성되었다. 올해 그는 5개의 구술작업 중 한 탈성매매당사자 여성의 협조를 받아, 그가 재편집한 그녀의 이야기를 그녀의 목소리로 담아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실제 구술자료 연구를 통한 그의 작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는 2014년에 경남 산청 한센인마을인 성심원에서 ‘첫 번째 사람’이라는 작업을 진행한 바가 있었다. 구술자료들을 읽고 분석하는 연구과정에서 그는 사회적으로 잊혀지기를 강요해왔던 그들의 역사를 발견했다. 도리어 그들이 ‘나는’, ‘내가’ 등 자신을 강조하는 표현들이 유독 많았음에 주목하면서, 그것이 무엇이었을까를 계속 고민하였다. 이내 1인칭의 문장들(특히 들어주기를, 무엇인가 강조하는)을 뽑아 구술자료를 재기록하였다. 이 기록들은 너비 12미터에 높이 8미터의 벽면에 세로 쓰기 방식으로 빼곡히 채워졌다. 또한 형광페인트로 한 글자 한 글자 수행하듯이 흰 벽돌 벽면에 새겨진 글자는 공간에 설치된 블랙라이트의 조도가 서서히 밝아짐에 따라 점차 선명해지는, 선명도가 가장 높은 순간에 갑자기 형광등이 켜지면서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는, 은폐되고 차별받았던 시대의 폭력성을 긁어내듯이 보여주는 기념비적 작업이었다.  






- 작가 이범용의 경우, 장소에 습윤되어 성찰을 이끄는 자기진술들

작가 이범용은 장소를 구성하고 있는 문화와 사람들- 공동체적 공통감, 민속, 풍습, 그 안에서의 개별 삶의 양태-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여기서 장소의 객관적인 역사란 그가 사람들을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표지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말인 즉 그는 자신에게 낯선 장면들에 대해서는 온 몸을 습윤시켜 그로부터 자신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당위를 찾아가는 과정을 작업 이전에 필수적으로 행해왔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작업계획을 상의해야 하는 시기에, 그는 그 장소에 자신이 머물러 봐야겠다는 짧은 선언을 남겼다. 그가 선택한 곳은 자갈마당 인근 북성로 주변의 작은 쪽방 여관이었다. 이곳은 60대 이상 연령대가 높은 성매매당사자 여성들이 활동하는 지역으로, 자갈마당의 100년의 역사 속에서 부속물처럼 생긴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여관업과 성매매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그는 이곳에서 사람들의 삶을 마주하고 싶었다. 대화라도 나눌 수 있다면 직접 구술작업을 행해도 좋겠다는 것과 그 내용을 토대로 사생작업을 행해보고 싶다는, 도무지 어떤 과정물이, 결과물이 나올지 예측하기 힘들었다. 보호차원에서 몇 차례 말려보기도 했지만, 작가는 그렇게 허름한 쪽방에 약 보름간 기거하기 시작하였다. 매개나 대화의 채널을 만들기 위해 그는 스스로 군고구마 장수를 자처하여 매일 인근 큰 거리에 나가 일정한 시간동안 고구마를 팔고, 팔고남은 고구마는 여관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나중에는 그가 어디에서 고구마를 파는지 그 내용을 알고, 친절한 청년을 만나 수다를 나누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별의 별 에피소드가 많았다. 물론 여기까지는 무리없이 계획대로 잘 가는 듯 했다. 그러나 어느덧 상황은 급작스럽게 악화일로로 치닫게 되었다. 그가 애초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이것은 나에게는 대단히 흥미로운 지점이다. 자신이 지닌 편견과 마주한 것이다. 그들의 삶을 관찰하고자 했던 의도는 자기 내부를 바라보게 되는 성찰로 이어졌다. 쪽방의 빨간 등을 형광등으로 바꾸면 그냥 사람이 사는 오랜 시골 방같은 모습일 뿐이다. 다들 일상을 이야기하고 비오는 날에는 함께 전도 부쳐먹고, 밤늦게 들어오는 고구마 장수의 방 앞에 홍시를 놓아주는 동네 어른들이다. 그는 이 사실들, 그때의 감정들과 자신의 상황들을 글로 이미지로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신이 고구마장수가 아니라, 예술가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고백하기도 하였다. 그들은 실은 예측하고 있었다. 신학생 아니면 예술가, 결이 너무 다른 사람인지라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크게 놀라거나 화내는 반응도 없었고 무덤덤했다고 한다. 작가는 자신이 기거하던 쪽방에 새 이불과 등을 설치해주고, 자신이 사용했던 낡은 이불과 형광등(빨간등과 흰등이 함께 있는)을 교환하였다. 그가 수집한 자료들은 그가 자기의 편견과 싸운 현장에서의 인식지점들이 변화하도록 하는 매개로서 상징적이었다. 장소를 마주하며 도리어 자신과 대면한 사건, 그 사건들을 기록하고 장소에 대한 자기 편견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이불 등 행위의 수집물들을 ‘자기고백’의 증거들로 남긴 설치작업으로 이어졌다. 실제 이 작업은 관람객의 공감 및 반응이 대단히 높았다. 그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편견적 시선들은 어찌보면 우리 모두에게 내재해있는 무엇일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가는 말

현재도 업소들이 운영되고 있는 자갈마당과 직접적인 피부접촉이 용이하지 않다는 점은 ‘감각’의 수용을 전제로 하는 예술가들에게는 참으로 고난스러운 지점이었지만, 대구여성인권센터의 코디네이션을 통한 접근 등 일종의 ‘거리두기’를 통해 상황에 대해 차갑게 접근하는 방향은 도리어 특정집단 혹은 사회에 대한 예민한 독해지점을 발견하는데 유효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에 예술가들을 개별의 주된 시선이 향하는 지점들-생태, 사회, 구조 등-을 발견할 수 있는 ‘연구자’이자 ‘기록자’로서 본 과정들을 각자가 창작의 의제에 연결하며 이어나갔다고 볼 수도 있다. 그것은 작가들이 스스로 발견한 일종의 ‘문장들’에 대한 접근과정이었다. 

자갈마당에 대한 담론에 육체적인 형체를 부여하는 예술가들의 발화, 시각예술의 방법론을 통한 아카이브는 그렇기에 순전한 자료전의 형식과는 다른 문맥을 갖는다. 고민의 과정들이 담겨질 작품들은 비유하자면 완결된 문장이기보다 비문장이고, 서사 속에서 드문드문 나열된 단어들 혹은 음운일지도 모른다. 
“... 단어, 구문, 관용구의 단편들이 스쳐갔으며 아무런 문장도 구성되지 않았다....매우 문화적인 동시에 야만적인 그 같은 언어는 무엇보다도 어휘적이고 산발적이었다. 그런 언어가 뚜렷한 흐름과 명확한 불연속성을 통해 나의 내부에 구축되었다. 이 비문장은 문장에 도달할 수 없는 문장 이전에 존재했을 어떤 것이 결코 아니었다....문장의 외부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_롤랑 바르트 [텍스트의 즐거움] 


하나의 고민들이 응집된 각 덩어리로서 ‘비문장’인 작품들은 그렇기에 특수한 국면에서 형성된 창작물이자 그 자체 특징적이고 체화된 기록물이기도 하다. 문장의 목적적 시선에서 비롯된 선적인 경직성을 해방시킨 (문장의 외부에 선) 예술가들의 활동, 하나하나가 자갈마당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시각예술아카이브로서의 단계적인 지층을 만들어가는 작업인 것으로 나는 그렇게 여기고 있다. ● 끝

2017년 11월 13일 월요일

경남예술창작센터 10기 입주작가 한진 작업 비평

반응, 울림

최윤정 ● 독립큐레이터·미술비평


삶이 반응하는 지점들, 정온한 기억을 깨우치는 중추로서의 수동적인 감각들. 어느덧 아물거리는 기억들, 생의 반응들로서 순간적이고 격정적인 경험들이 묻혀있는 몸으로부터 기억이 감각이 움트는 바로 그 지점들, 일상적인 패턴들 속에서 시공간을 헤집어 호흡하는 몸의 집중을, 정신의 향방을 이끄는 그 무엇을 발견하는 일. 

마치 어두운 밤 가느다란 한 줄기의 빛이나 세상 전부의 소리와도 같은 작은 부석거림이 온 신체의 반응을 이끌어내듯이, 작가의 작업은 인지를 향한 혹은 인지의 상황에 대한 심리적인 소란을 불러일으키고도 고요하게 또는 파장처럼 지속적으로 울리는 허밍처럼 ‘들린다’. 기억의 질감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작업은, 재료의 용법에서도 이 감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문지르고 지우고 기억을 더듬어가며 즉흥적인 느낌을 표현하거나(연필을 가루로 만들어 문지르거나 떠오르는 단상들을 지우개로 지우면서 형상을 찾아가는 작업), 그의 유화에서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물성이 주는, 풀어져 균질화된 신경다발과도 같은 표면들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다. 
그에게는 애도해야 하는 많은 기억들이 잔상으로 온몸에 흩뿌려져 있다. 그것은 그리움이거나, 과거의 시간을 머금은 흔적들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사라지는 것은 없다. 그것은 한갓 관념으로 각각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세포에 저장된 기억들이다. 다만 일상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자연히 끄집어내려는 시도에서 작가의 작업은, 신체의 특정감각을 건드리는 지점들을 발굴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 그 지점들이 연결되는 선상에 작가 자신의 실존이 위치하는 상황들을, 습윤된 기억을 끌어내면서 자신의 감각체험들의 움직임에 호흡하는 것으로 마주하고 있다.   


작가가 자신의 기억이나 감각을 깨우는 시작은 ‘소리’와 ‘흔적’이다. 그는 기억을 소환하는 혹은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식에서 ‘소리(음, 목소리, 노이즈)’에 주목한다. 소리의 감각은 그 소리가 위치했을 법한 혹은 그 소리를 경험했을 법한 장소의 이미지와 결합되기도 한다,  장소는 수많은 문맥들을 가지고 있다. 그가 누군가와 나누었던 대화, 당시의 햇살과 온도, 그리고 당시의 기분. 모든 장소는 그렇기에 보기에 재현되는 대상이기 보다 상징적인 환경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가 이곳에 입주하면서 주목했던 경남권의 한 도시, 가까운 이가 과거에 살았건, 그의 과거 삶이 층간으로 자리할 그 장소를 좀 더 가까이에서 마주하고자 하였다. 그곳에서 감각한 모든 것들은 아마도 시간을 두고 자신의 정서를 담은 답가로 읊어질 것이다. 작가에게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낡은 벽’은 시간의 겹들이 만들어낸 오래된 이끼와 때, 뭉쳐진 먼지 등의 것들을 통해 시간의 흐름 내지는 어느 기억이었을지도 모르는 잊혀졌던 무엇을 일깨우는 정서적 장소가 되기도 한다. 낡은 벽의 표면을 다시금 문지르고 지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떠오르는 형상은 마치 잔상처럼 몸의 행위에 접속되고 이는 자기 신체의 반응들을, 그것이 감정이건 물리적 반응의 종류이건, 인지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이 과정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이면들을 가시화하는 것, 시각예술이 할 수 있는 본연의 철학적 국면이다. 인지하지 못했던 지점들이 예술가들의 수많은 해석을 통해서 발견될 수 있는데, 각자의 해석들 속에서 작가는 세상에 처한 자기에 대한 성찰적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순전히 자신의 감각을 통해서 구현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구축하는 표면들에 집중하고 있는 실천이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도정으로 이끄는 것이 아닐는지. 이러한 객관화 과정에서 그는 ‘인지하지 못했던 지점’을 발견하고 탐구하는 것에 몰입하는데, 이는 공간적 설치 과정에서도 흥미로운 지점을 보여준 바 있다. 지나가면 안 될 것 같이 좁은 통로, 그 통로를 마주하면서 갈등하는 관객. 일종의 몸짓을 요구하는 연극적인 요소들이 공간적 설치에서 적용된 바가 있었다. 그것은 움직임이라는 신체의 활동을 통해 무엇을 감각하게 할 것인지, 왠지 감각적으로 부조리한 상황들을 설정함으로써 불편한 요소들을 만들어내고 행위를 이끄는 것. 그 불편한 요소들에 또한 사람들을 대면하게 하는 것. 지난 그의 전시에서 자신의 작품을 공간에 설치하는 의도로 설정했던 바이기도 하다.   


인터뷰 중에 나는 그가 선호하는 음악을 물었다. 나 또한 작가의 일상적 감각에 접근해보고 싶은, 말하자면 접근을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 타인의 감각에 접속하는, 반응할 나의 특정감각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한 탓이다. 그가 몇몇 작품에 제목을 붙이는 방식 문득 작품을 보며 그가 생각하는 소리, 그가 또한 바라보는 것이 제목의 의미이기보다는 후음과도 같은 소리의 뉘앙스로 이뤄지다는 것. 그의 작업이 함의하는 소리를 상상하고 표면이 주는 시각성을 동시에 추적해나가는 것의 의미, 문득 이성의 뇌리에 멈춘 경직된 비평적 시선을 공감각적으로 풀어헤칠 수 있는 계기로, 그렇게 접근 중이다. ● 

경남예술창작센터 10기 입주작가 오지연 작업 비평


행위와 해체, 경계를 포괄하는 호흡 

최윤정 ● 독립큐레이터, 미술비평

작가의 작업은 긴 호흡을 필요로 한다. 한 작업의 완성태는 그 과정에서의 완성태이고 그 이후 이어지는 과정을 향한 토대가 된다. 그리고 이내 종국에는 파손 내지는 자기파괴의 상황으로 풀어헤쳐지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주로 부드럽고 유연한 소재에 관심이 있어 작업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장갑에 주목하게 되었고, 목장갑을 자르고 이어 붙여 다시금 조합해가면서 ‘감정세포’를 만들어왔다. 여기서 ‘감정세포’는 일종의 정서적 원형으로 상징되고, 물리적 원형의 유기체적 최소 단위의 형태를 상상하게 한다. 새로운 생을 탄생시키기 위한 죽음, 세포자살에 대한 이야기가 이에 덧입혀지는데, 이는 앞서 말한 ‘자기파괴’로서의 작품 해체행위를 의미하며, 다음의 생/창작을 위해 자발적인 죽음을 택하는 상황을 지시한다. 말하자면 작가의 전 작업들이 과정들을 통해 순환적이고 유기적으로 얽혀있음을 반증하는 상징적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나의 감정은 완성되지 않기에 나의 작품은 변모한다. 
 나의 감정은 변화하기에 나의 작품은 완성되지 않는다“ 






‘감정세포’는 그의 몸의 일부, 혹은 그의 행위에 동참하는 또 하나의 몸이자 개체이다. 그것이  중심에 놓이면서 작가는 자신이 관계맺는 환경과 또한 그 환경 안에 젖어들고 소멸하는 작업 을 통해서 죽음과 생성의 과정이 결국은 다르지 않은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보기에 생채기를 내는 듯한 작업은 무엇인가를 상기시키는 것과도 같은데, 여기서 ‘생채기’란 놓여져 있는 환경 자체일 수도 있고, 예리한 칼날의 쑤심과도 같은 고통의 순간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고난과 고통을 수반한다 할지라도, 어쩌면 상기하지 못했던 것들을 추출하게 하는 매개가 된다는 점에서 생채기에 대해 ‘평가적인’ 의미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마치 죽음과 생성이라는 것이 반대이건 혹은 같건 간에 의미적으로 대립되어 있기보다, 서로 맞붙어 서로의 의미를 구체적으로/한정적으로 부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어느 것에도 닿아있지 않은 것이 없다’는 메시지가 유효한 것이다.  

특히 그가 이번에 주목한 환경은 바로 창작센터 안에 있는 무덤가처럼 생긴 작은 인공 언덕이다. 그는 이 장소를 중심으로 지난 몇 개월간 과정적인 작업들을 수행해왔다. 

감정세포들이 이 작은 언덕의 능선을 타고 바닥 곳곳에 이어져 있으며, 이 작품을 관람하기 위해서 언덕에 오르면 좁다란 길을 따라 한 발 한 발 내디뎌야 한다. 걷다보면 길에 놓여져 있는 감정세포들이 밟히기도 한다. 살을 밟는 듯한, 생명에 생채기를 내는 듯한 불편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리고 작가는 한 달 간 하얀 면드레스를 언덕 아래 땅 속에 묻어놓았다. 한 달 동안 이 드레스는 흙의 생명과 호흡하고 삭기도 하는 자연의 해체 과정을 거쳤다. 흙물이 잔뜩 베이고 군데군데 찢기기도 한 형상이었다. 작가는 이를 다만 불편한 과정이 아니라, 자연이 되고 풍경이 되는 작업의 일환으로 여겼으며, 그간 자신에 의해 파기되고 해체되었던 작품들이 관계를 맺는, 즉 자연이 주체가 되어 자신의 작업을 해체하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이번 퍼포먼스 영상은 바로 땅 속에 묻어 자연의 해체를 유도했던 하얀 드레스를 입고 언덕 주변을 걷고 배회하고 그 위에 눕는 등의 행위들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하나의 정령처럼 언덕 주변에 사건을 만들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무용해 보이기까지 하는 제스추어, 이러한 몸의 표현은 작품과 작가 자신이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그리고 자신의 세계와 외부 세계가 정확히 분리될 수도 없음을, 경계를 경계로 여기지 않는 그가 추구하는 창작의 전제이자 태도였던 것이다. 바로 ‘어느 것에도 닿아있지 않은 것이 없었음’은 자신의 몸과 함께 변화하는 유기체들을 전제함으로써 보여주었고, 그의 작업은 그렇기에 행위는 물론이거니와 시간과 그 소요된 과정만큼의 진한 몰입을 전제로 한다. 몰입된 감정들이 힘겹게 느껴졌다. 환경 및 스스로의 몰입에 처한 감정선을 유지하고, 이를 표현하며 행위하고, 또한 해체하기까지 심지어 끊기거나 그치거나 완성될 수 없는 감정의 시간들을 이토록 감당하는 예술가의 모습이란. ●   

2017년 11월 6일 월요일

송주형 개인전 [ 노라 ] 평문, 아트포럼리 디포그배 전시지원

 플롯, 공동 삶에 균열을 내는 노림수 
 
 
 
최윤정 독립큐레이터·미술비평
 
 
마치 한편의 기승전결 구도를 지닌 드라마와도 같다. 이미 모두 알고 있는, 하지만 알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틀에 대해 다루는 자세. 작가는 공동 삶이라 여기는 것들이 어떤 구조 속에서 어떤 방식의 작동기제를 가지고 움직이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이에 대한 서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역사를 전공한 이력에서 비춰볼 수 있듯이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인문학적이고 분석적인 사유의 틀 속에서 끊임없이 비교하고 탐구하는 대상이 된다. 그 자신 역시도 이에 밀착해서 때로는 제삼자처럼 무관하게 거리를 띄우기도 하면서, 객관적으로 발견하고 수집한 재료들을 가지고 이번 개인전을 준비해왔다.
사회적 환경과 역사적 주제를 다루는 예술과 그 방법론은 그저 르포의 시선단계에 멈추길 거부한다. 가시성과 담론성의 형태는, 그가 생각하는 문제적 지점들을 표출하는 데 있어서,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감응으로 출발하여 그것이 냉철함으로 첨예화되는 사유의 단계들에 관여하고 있다. 어떤 재앙을 반영하는 형태이든지 예술의 외관이란 장면을 드러내거나 변형시키는 것에 복무하고 그것이 또한 거울이 되어 잔상으로 맺혀지고 스며들며 침투하는 과정 속에서 경험을 제공하는 장치로 기능하는 것인데, 특히나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그의 주된 과제 중 하나는 예술로서의 가시성을 다양하게 실험해보는 것이었다. 또한 그 안에 담론성의 구조를 보다 유기적으로 설계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그가 작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설계한 각 작품들이 함의하는 일종의 상황적인 지시_서사를 통해 전시를 이루는 모든 작품들은 유기적으로 얽혀진다. 이러한 방식은 내가 그의 작업을 바라보고 특징짓는 중요한 해석지점들이다.
 
음악, 공연 등 그가 예술프로젝트로 참여했던 분야들은 영상, 멜로디, 리듬, 연출 등이 중요한 작업이었다. 여기서 그가 작품으로서 구현하는 방식을 보자면, 흐름상의 스토리와 관람객이 호흡하는 환경 등이 명확하다. 이 측면에서 나는 인터뷰를 나누는 와중 작품만이 아니라, 작가의 특성과 기질 그리고 주요 관심사 등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아야 했다. 그 와중에 발견한, 그가 자신의 작업에서 찾고자 하는 절실한 지점 중 하나는, 전시와 시각예술의 구현방식이라는 형식적 측면과 시각예술 안에서 담론의 의미를 사색하는 것이었다. 이 말은 우리가 보통 말하는 담론의 역할과는 그 의미가 약간 다르다. 분명 그것은 그의 장점이지만, 그 스스로 단점이라 여길 수 있을지도 모르는 서사성에 좀더 주목하는 것이다. 때로는 무대설치처럼 때로는 상영의 형식으로서 일정한 플롯들을 녹여내는 방식, 물론 이번 전시에서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개개의 작품에 대한 주목과는 별개로, 그 흐름을 쫓을 필요가 있다.
 
, 말씀 드리지요. 당신은 저를 이해하지 못하고 계십니다. 저 역시 당신을 모르고 지내왔지요. 여태까지는... 제말 저의 말을 중단시키지 마세요. 끝까지 들어보세요(...)”
.....
그런 일은 당신한테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소.”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주인공인 노라의 상황들, 위의 극 속의 대화는 공동 삶들 속에서 당연히 여겨왔던 역할에 대해 주인공인 노라가 각성하는 장면을 암시하고 있다. 왠지 불편한 상황들이나 거부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 때야말로 자기 현재와 상황적 존재로서의 스스로를 즉각적이고 직관적으로 인지하게 되는, 경계에서 고민할 수 있도록 장치하는 유일무이한 계기일 지도 모른다. 각성은 불편함거부를 작동원리로 삼기 때문이다.
 
작가의 작업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판단을 보류한 공동 삶안에 주조되어 있는 은폐되고 잘못된 구조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전시를 이루는 각각의 작품들은 그의 노림수에 의해 다시금 잘 직조되어 있다. 그가 의도했건 아니건, 그가 내뱉듯 던져놓은 상황들에 대한 각성의 기제들이 관람자의 태도에 -과연 관람자는 주제에 편하게접근할 수 있는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탐구로서 일정한 흐름선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사적이라고 읽히는 이유이다.
 
 
전시에 소개되는 한편 한편의 애니메이션은 공동 삶의 상황들에 대한 형태를 보여준다. 이 모든 장면들은 도구화되고 인간성이 상실되는 현대산업사회에서 인간이 직면한 상황들에 대한 객관적인 상황이자 차가운 작업이다. 부모는 자식을 키우는 개인의 철학보다 자식을 위해 해줘야 하는, 외부의 시선이 스스로에게 욕망화 된, 자신의 능력을 넘어선 역할을 스스로에게 강요한다. 유모차에 실리는 물건들에 파묻혀 정작 자신과 아이는 없을 지도 모른다. 또한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지만, 폐타이어 같이 전성기에서 밀려난 탄력성을 잃었다고 여겨지는, 노인들의 일상이 한 켠에 펼쳐진다. 노인의 일상은 관성적으로 TV를 보는 것 외에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이 그다지 없다는 아주 우울한 장면이다. 버려져도 상관없을 고장난 부품처럼 그들이 이룩한 과거는 그들 삶에 영광과 주체로서의 자긍심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모두가 주류사회의 안녕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 삶에 종속되어 있다. 여기서 공동 삶은 국가와 민족과 세대의 가치를 오히려 각 존재들에게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그저 수용해야만 하는 수동적인 일상의 굴레일 뿐이다. 작가는 공동 삶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익숙하지만 왠지 불편하기 그지없는 구체적인 일상의 장면들을 내세웠다. 그리고 그 장면들이 펼쳐지는 외관의 상징으로 인형의 집과 수조를 고안한다. 이것은 일종의 각성의 기제에 대한 몰입된, 상징적 모티브가 된다. 역할극을 설정으로 하는, 아주 작은 플라스틱 인형집이다. 문득 방임적 자유와 관념적 이상의 추구는 초인의 영역에서만 가능하다는 듯이 공동 삶은 이를 가두어 두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결국은 부숴질 수 밖에 없을 것 같은 나약하고 작은 구조물 속에서 균열의 지점들을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유리 수조, 이 투명성은 마치 모두 들여다보이지만 암묵적으로 거부하지 않는 공동 삶이 주조해낸 전략과도 같다. 투명한 수조를 통해 그 안에 갇힌 생명은 그 수조 바깥으로 나오면 숨을 쉴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일상에서 안고 산다. 인형의 집과 수조,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지레 포기하는 비관과 균열이라는 파괴 그리고 동시에 창조의 가능성을 갖는 낙관이라는 혼용된 감정 속에서 우리의 신체는 이 혼란이 주는 감정에서 세상을 마주하게 되는, 자극을 이 작업들을 통해서 반응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는 이렇게 사회적 구조 공동 삶의 현실에 대한 상황들을 묘사했다. 그 상황을 진단하는 생각의 단계들은 그의 작업노트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채워지지 않고 늘어만 가는 기대는 욕심으로(...) 기대 충족에서 오는 행복을 넘어 허상을(...) 충돌하는 욕망은 타인의 가장 기본적인 기대마저 착취하기에 이른다
공동 삶에 대한 구조적 비판은 이에 당면한 개개인의 윤리구조, 욕망구조의 편협함을 드러내기에 이른다. 이 편협함은 다시 개인의 고통은 타인에게 또, 나아가(...) 변질된 욕심이 왜곡시킨 사회구조는 점점 고착화(...)”되는 공동 삶의 작동구조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타인의 욕심이 나의 삶을 과중시키고 또한 구조적 판단에 따른 나의 삶은 또 다른 타인의 삶을 과중시킨다. 이 비극의 순환고리는 일종의 인과적 굴레로 다시금 인형의 집과 수조 속에서 그리고 현실의 장면들 속에서 어떻게 내재화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나약하기 그지없는 욕망들, 그 구조가 직조되어 어쩌면 공동 삶은 극복할 수 없는 덫이자, 주류사회의 고도의 기획이 실현되는 장이다.
 
이 비극적인 구조들의 장이 이번 전시가 갖는 서사의 첫 번째 장면들이다. 두 번째 장면은 캔버스 작업에서 돌출된다. 각 캔버스는 구조적 한계성의 구체적인 허상들을 직접적으로 텍스트화하고 있다. 전형적인 글씨체와 입체로 표현된 작업은 작은 덩어리들이 덕지덕지 붙어 만들어진 실체없는 허상들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나 욕망구조의 편협함으로부터 발생한 자기합리화의 내용들, 문구 하나하나 속에서 곳곳에서 지속되어 왔던 편견과 차별, 구조를 용인하는 당위성, 다름에 대한 주류사회의 태도가 그 안에 직접적으로 나열되어 있다. 어찌보면 이 모든 이야기들의 출발점은 이 작업을 통해서 농축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식별과 평가의 규칙과 기준들로 특화되어, 또한 정신의 한 자락에 공고히 위치해 있던 내적 규범성이 고발당하고 풀어헤쳐지는 순간이다. 특히나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없을 지경으로 겹쳐진 풍경과도 같은 이 캔버스들은 각각이 알려진 것, 실행되지 않는 것, 실행될 수 없는 것, 의도되지 않은 것, 의도된 것 등의 모든 속성들을 펼쳐놓은 공동 삶의 덫인 인형의 집이 함의하고 있는 그 폭력성을 선언한 작업인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의 플롯은 공동 삶의 상황에 이질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배제되어 버린 수많은 기대와 다양성, 주체와 인간적임에 대한 술어들을 에둘러 모으는 방식이다. 술어는 기술되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무대장치처럼 작가는 온 감성으로 이에 대해 추모하고 애도하는 작업을 연계함으로써 이번 작업들을 마무리 한다. 단단한 직조들이 모두 하나의 실오라기로 풀어헤친 듯한 한지 설치작업에는 깜박이는 빛이 마치 버려진 것들에 대해 애도하고 공동 삶에 묻혀진 희생들을 어루만지는 일종의 깨우침의 장치이자 살아있음을 존재로 증명하는 상징으로 자리한다. 마치 그럼에도 불구하고견뎌내는 힘들에 대한 지지로서.
 

자신의 고유한 생각을 포착하여 외화하고, 자기 안에서 빼낸 진리들을 객관화하여 다시금 파악하는, 모든 경쟁으로부터 해방시킨 사유. 그것의 가능태는 어떻게 일구어낼 수 있을까. 문득 작가와의 인터뷰 후에 곱씹고 또한 곱씹었던 고민들이다. 알고는 있지만 개념을 만들지 않았던 무수한 장면들에 대해 우리가 무엇인가를 명명한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그 자격.
송주형의 작업은 표현적이지 않다. 그의 작업은 상황을 탐구하고 분석하고 맥락을 연구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 적합하다. 나는 오히려 그가 이에 더 몰입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우리가 공동 삶이라는 실체 속에 종속되어 존재적으로 자유롭지 않다면, 그 밖을 예측하고 내다보는 일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인형의 집에서 한갓 역할놀이를 부여받아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인형이 현실세계의 우리의 한계적 면모라면 특히나. 그렇기에 그 안에서 첨예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논리와 발굴한 것들에 대한 의견이 정당할 수 있음을 쫓아야 한다. 모두의 욕망 구조가 순환적일 뿐 아니라, 어느 시대고 공동 삶에 대한 구조는 존재해왔음을. 그것을 차갑게 비교하고 분석하는, 바로 역사 속의 장면들이 동시대적으로 중첩되는 장면이기에, 따라서 나는 그의 작업이 지금의 현실세태의 테두리라는 측면에 갇히지 않길 바란다. 그의 작업은 그가 발견한(발굴한) 조각-서사들을 나열한다. 그 위치와 상황에 배열함으로써 조각-서사들의 덩어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한편의 서사를 마치 퍼즐 맞추듯 꿰어가는 작업. 분명 익숙한 것과 익숙하지 않은 것, 실재하는 것을 드러내거나 혹은 상징으로서 약호화 하는 것 사이에서 경계를 지정하고 있는 작업은 아니다. 바로 그 불분명한 경계가 주는 혼란의 틈 사이로, 그의 플롯이 또 다른 서사들로 미끄러져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과 내일의 기대를 남기며, 언젠가 작가가 다음과 같이 부름에 첫 구절을 떼길 바란다.“//...”

김한나 [쇼룸;매일의조각] 평문


매일의 조각 ; 뾰족한 섬을 구축하는, 사유의 단초들
 
 
 
최윤정독립큐레이터미술비평
 
    
지난 개인전 [,, ]이 일상적 삶 속에서 뾰족하고 날카롭고 불안한 관계적 속성을 지시한 서사들을 조각의 형태로 옮기는 작업이었다면, 이번 개인전 [쇼룸;매일의 조각]은 그 서사들을 풀어헤치고 작가의 구체적인 일상과의 접점에 보다 주목하여, 자신의 은연한 습관에서 비롯된 패턴 속에서 창작의 의미를 짚어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작은 조각으로 표상된 이 하나하나의 정서적 형상들이 다시금 쪼개지고 응축되고 나열되는 과정을 통해서 시간적 흐름과 창작 행위가 서로 결합되는 지점들을 일상과의 접점의 구체적인 의미로 부가하는 작업인 것이다. 일종의 드로잉같달까. 이 드로잉과도 같은 조각들은 그의 습성 안에서 매일의 시간을 통해 수행적으로 주조된 덩어리들이다.
 
그의 습성이 흥미롭다. 그것은 지난 개인전 인터뷰에서는 미처 포착하지 못한 부분이기도 하였는데, 하루의 시간이 빼곡이 시간별로 분할되어 스스로 해내야 하는 계획들로 채워진 그의 스케줄러를 발견했고, 그것이 내게는 이번 그의 작업들을 해석하는 중요한 실마리로 작용하였다.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시간의 쓰임이란 상대적이고 습성화된 패턴 안에서 각자의 개별화된 특징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그의 매일의 (작은)조각이라는 표현을 매일의 생산과 창작에 대한 실천 행위를 담은 것으로, 어찌보면 넓은 덩어리로 뭉뚱그려 나는 그렇게 이해해왔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매일의 표현은 단위로서 시간이자, 이에 결합한 행위와 과정이 세밀하게 쪼개져 관리되는 작가의 습성을 설명하는 의미로서 보는 것이 적절함을 최근 다시금 깨달은 바다. 덕분에 시간이란 개념이 생각의 흐름을 연결시키기도 하고 또한 그 흐름을 파편화하기도 하는 관념인 것이자, 습성의 단위가 아닐까 하는 확신도 가져보게 되었다. 이 확신대로라면 작가의 매일의 조각은 그의 습성적 패턴으로서 시간과 행위의 결합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에 다름 아니다. 거리를 산책하기 전후, 밥을 먹기 전후, 잠을 자기 전후, 생계를 위한 일을 하기 전후, 잡다한 생각들을 나열하기 전후, 그 시간의 틈 사이로 그는 자신이 문득 꽂힌 정서적 형상들에 의거, 그렇게 매일의 조각들을 조물조물 만들어왔다.
 
  결국 작가가 몰입하고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에 대한 자신의 정서와 뉘앙스를 외화시키는 구도와 형상에 있었다.”_[, 의것] 평문의 일부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매일의 (작은)조각들을 통해 구성된다. 이 조각들은 작가의 사유와 세계를 구성하는 인식의 각 지점들을 포착하는 모나드와도 같다. 개개가 모나드로서 작은 조각들이면서 모듈화되어 만들어낸 볼륨들이 또한 인상적인 국면을 형성한다. 각각은 시간에 대한 관념과 행위의 이유를 뉘앙스로 담으며 작가가 몰입하고 있는 구도와 형상을 주조하는 방법론을 더욱 확장한 시도들이다. 핵심은 작은 조각들이고, 그것들이 모듈화되어 하나의 볼륨으로 구성되고 합쳐질 때 이 개개의 볼륨들은 시간과 행위의 결합 그리고 이에 대한 인식을 상징하는 구축적 사유의 베이스가 된다. 그리고 이들이 놓인 공간은 작가의 습성으로 축적된 요소들 즉 작가의 스케쥴러가 2차원 평면에서 3차원의 입체로 만들어지는, 나아가 시간의 개념이 깃든 4차원 물리적 세계의 시공간을 동적으로 시각화하는, 전체가 작가의 사유와 그의 흐름을 이해하는 하나의 미학적 볼륨으로서 쇼룸으로 완성된다. 그야말로 나의 세계는 이렇게 구축되고, 내 안으로 접근해보라는 당찬 선언에 마주한 듯한 기분이다.
다시금 지난 개인전 [, 의 것]이 일상적 관계 속에서 발견되는 형상을 발굴하고 그에 대한 정서적 서사들을 펼쳐보이는 시도였다면, 이번 [쇼룸;매일의조각]은 시간적 단위 틈새마다 놓여진, 예술가의 습성으로 화한 창작적 실천들의 원류를 결집하는 시도로도 해석해볼 수 있다.
그렇기에 그의 모듈화된 작업들은 개개의 볼륨이면서도 연결되는 구조로 공간 전체에 서사를 가미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업 면면을 살피자면, 우선 일종의 관조적 감상의 틀을 가장 노골적으로 지정하는 상징이기도 한, 캔버스를 가지고 작가는 구조물을 계획하였다. 그 안에 매일의 (작은) 조각들이 또한 놓여지고 쌓여지는 구성을 사유의 구조틀 안에서 실험한 작업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볼륨은 작가의 태도, 그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관계적 상황이나, 세상에 대한 보이지 않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생각들이 낳은 뾰족한 섬의 형상들이다. (*뾰족한 섬 : 이는 작가에 대한 나의 전반적인 인지를 담은 것으로서 그를 지칭할 때 처음 사용한 표현이기도 하다.) 이 뾰족한 것들이 불안하면서도 간신히 균형을 맞추고 있는 모습에서 묘한 긴장감이 감지되기도 한다. 창작의 태도적 접근 및 내용적 고민을 시각화한 작업으로 읽힌다. 또 다른 작업은 시간의 틈 내지는 무언가 실행하기 전후를 상기하는 듯한 (시공간의) 분할 내지는 바로 그 시점을 전개하는 듯한 파란 구획물들이다. 공간에 서사를 입히고 개입을 하기 위한 설치적 측면에서 고안된 요소로 해석된다. 그리고 누르면 튕겨갈 것만 같은 행위의 일부를 표현하는 듯한, 점점이 의미롭지 않을 것 같은-인식되지 않을 것 같은 날을 상징하는 듯한- 작은 조각들로 구성되어 도리어 일상의 긴장과 함께 리드미컬한 흐름들을 표현한 작업은 도리어 역설적이다.


이에 덧붙여 빼곡이 쪼개어져 기록된 자신의 스케줄러 구성에 대한 습성만큼이나, 작가에게는 생각의 흐름들을 기록해놓은 일상의 단상 및 작업노트 등 텍스트 기록의 양이 상당하다. 인터뷰 당시 이번 전시에서 소개할지 여부를 작가는 또한 고민하는 중이었는데, 이 텍스트들 역시도 어절단위로 지워지고 잇고 덧붙이는 방식을 통해서 마치 작은 조각처럼 작가의 발화적 특징 및 생각의 단면들을 구축하는 단위로 충분히 역할할 수 있다. 어쩌면 보다 내밀한 무엇인가를 직관적으로 차갑게 인지할 수 있도록 돕는 바로 그 지점에 텍스트 작업은 때로는 유용하다.
작가는 언제나 자신의 창작작업이 자기 일상과의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중요한 가치로 두었다. 생존에 기반한 현실적인 삶을 감내해야만 하는 장이기도 하고 예술가로서의 성장에 대한 기민한 전략들을 포함한 관계적인 환경으로서의 일상을 이름한다. 작가는 이번 개인전을 통해서 예술가로서 자신을 구성하는,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단위들에 대해 더욱 과감한 형태의 방법술로 고안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는 환경에 대해 표출되는 자기 정서의 원형을 발견하고 사물을 마주하는 태도로서 대상 자체의 형태적 속성에 감응함과 동시에 고유한 표현으로서 이에 자신이 반응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듯 보인다. 왠지 이 과정들이 일종의 자기영토를 구축하는 도정에 서있기도 하지만, 자기영토의 속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작가로 살기 위해서는 내가 관심있고 나의 흥미를 끄는 즐거운 것을 해야 하는 것 같다. 누구나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 끝에 그가 속삭이듯 무심코 던진 말이었다. 당시는 당연하게 들려서 한 귀로 흘린 말이기도 하였지만, 이 작업들을 관통하는 핵심에서 이 말이야말로 그의 사유와 창작의 줄기를 구성하는 모나드가 아니었을는지. 날카로운 물건이 살갗에 스치듯 차갑게 문득 내게 닿은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