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9일 목요일

기고문) 예술과 사회I. 삶의 현장, 그리고 예술


예술과 사회I. 삶의 현장, 그리고 예술
 
최윤정 큐레이터 ● 미학/미술비평
 
라는 사람이 그곳에 머물렀는지, 그에 대한 궤적이란 비단 활동적 결과 및 껍데기 안에서만 이야기될 수 없는 바. 안으로 향해있고, 자각을 통해 외화되는 것, 그것이 소명을 구체화하고, 막연한 두려움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용기와 진정성의 근간을 잡아주는 것은 아닐는지. 어쩌면 그것이 세상의 전부일 수도 있다.
 
언제든지 특수한 장소와 상황에 놓일 수 있음을 감안하여, 기획을 둘러싼 주변지형 문화와 사람들의 특색 등을 파악하는 일은 큐레이터가 우선적으로 프로그램 기획 이상으로 고려해야 할 지점으로 내게는 이에 대한 확고함이 있다. 실상 기획이건 창작의 진정성은 구체적인 관찰과 시선을 관점화해야만 자연스럽게 외적행위로 배어나오기 때문이고, 그것은 자연히 기획 내지는 창작의 태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주 드물다는 것이 난점이다. 발견되기 힘들다. 주변의 서사가 진정으로 잘 베어든 현장/공공예술프로젝트를 마주하기란 쉽지 않다. 창작과 협의의 과정은 물론이거니와, 시대와 상황 그리고 장소에 대한 문맥적 사유 없이 그 진정성은 보증할 수 없다. 모든 문맥적 사유의 핵심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의 삶이 있고 그 삶을 어떻게 인지하느냐의 문제의식이 함께 한다. 그리하여 예술은 인간의 자존감과 직결되기도 하고, 삶의 역능회복/치유 문제에 관여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예술창작은 우리 모두가 세상의 일부인 한, 단순한 잉여 활동이 아니라, 명백한 생명활동인 것으로 간주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그것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I am shooting back!” 슈팅백프로젝트(1989-)
 

워싱턴정부출입기자이자 종군사진기자로 알려진 짐 허바드(Jim Hubbard)는 워싱턴 인근 홈리스피플들을 주제로 사진을 찍었다. 이 무렵 노숙자를 수용하기 위한 시설인 캐피톨시티인(Capitol City Inn)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때 우연히 작은 갤러리처럼 꾸며놓은 공간을 보게 된다. 아이들이 찍은 사진과 그림들이 걸려있었고, 특히 그 곳에서 디온이라는 10살짜리 어린이가 직접 일회용 사진기로 촬영한 사진들을 보게 된다.
실상 캐피톨시티인은 워싱턴 DC의 일상과는 무관해 보이는 범죄와 가난이 만연한 일종의 게토화된 지역으로 분리된 노숙자시설이며, 이곳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범죄에 노출되어 있음은 물론, 총격으로 인하여 희생되기까지 하는 위험을 안고 지내야 했다. 우연히 사진촬영을 위하여 방문한 이곳에서 그 작은 공간은 짐 허바드에게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비극과 폭력은 수용소 아이들의 삶에서 하나의 일상이 되어 있다. 내가 이 아이들과 만났을 때 나는 이 아이들에게 정상적인 삶의 과정이 박탈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사진기자로서 타이-캄보디아의 국경근방, 혹은 북아일랜드와 레바논의 전쟁터에서 본 기아와 질병으로 허덕이는 아이들의 눈빛을 떠올렸다. ” 그는 이와 같은 고통 속에서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였다. 그의 방법은 아이들에게 사진기를 쥐어 주고 교육을 하는 것이었다. 자원봉사자 사진가들을 모집하고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캐피톨시티인이 있는 한 블록내에서만 촬영할 것, 그곳의 리얼리티를 기록할 것이라는 최소의 규칙을 제안하였다. ‘사진찍기의 창작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자기 삶의 모습을 피사체로서 객관화할 수 있는, 즉 자기 삶의 현실을 보다 냉철하게 마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큰 반향에 힘입어 이 프로젝트는 ‘Shooting back education and media center’로 조성되었으며 사진작가들의 자원봉사와 함께 6개의 타 수용소의 아이들에게도 확대되었다. 199053명의 홈리스 아이들이 직접 찍은 사진을 모은 전시회가 전국순회로 개최되었으며, 첫 시작을 함께 하였던 몇몇 아이들은 추후 작가로서 비디오제작 등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기도 하였다. 그 중 한 소년의 고백이다. “만일 내게 이 일(슈팅백프로젝트)이 없었다면 지금쯤 나는 길모퉁이에서 마약을 팔고 있거나 약간의 돈을 위해 누군가를 (총으로) 쏘았을 것이다
 
 
이 단어들은 파벨라의 가장 훌륭한 초상이다
-Amor(사랑), Beleza(아름다움), Firemeza(용기), Docura(다정함), Orgulho(자긍심)-
 

보아 미스뚜라(Boa Mistura)좋은 혼합/섞임의 의미를 지닌 스페인 그래피티팀으로서 예술, 건축, 그래픽 디자이너 등 5인의 인적구성으로 이루어진 팀이다. 2012년 그들은 브라질 정부에서도 관리하지 못하는 버려진 마을, 갱단이 지배하는 대표적인 파벨라(favela, 빈민지역)의 마을 브란질란지아에서 지내면서 마을꼭대기에서 마을 아래까지 이어내리는 회색빛의 칙칙하고 좁고 긴 골목에 주목하였다. 골목길은 마을사람들의 접점 역할을 하기도 하는 공동의 장소이기도 하고, 이곳에서 펼친 작품들은 주민들에게 골목의 빛(Luz Nas Vielas)’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이 작업은 세상의 가장 긍정적이고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단어, 기본적인 단어이지만 고단하고 지난한 삶 속에서 잊고 지냈던 가치를 조우할 수 있도록 하는 의도를 지녔다. 골목의 특정위치에서 단어를 마주할 수 있는 아나모픽기법(착시의 일종)을 활용한 작업으로, 마을 어린이들은 작가들과 함께 대상지인 5곳의 골목길을 함께 정돈하고 페인팅을 하면서 작품창작의 참여자로서 활동하였고, 이러한 활동은 자연히 작품과 장소에 대한 애착으로 연결된다. 장소에 대한 자긍심이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바다.
사랑, 아름다움, 용기, 다정함, 자긍심이러한 단어를 좁은 골목길에서 우연히 마주하면서 삶의 주체로서 자신을 바라보고 객관화하는 과정이 비록 짧은 순간이라도 펼쳐질 수 있는 아주 집중도 높은 골목길이다. 칙칙한 골목은 그리하여 치유의 골목이 된다. 상상해보라, 피폐하고 가녀린 삶 속에서 터덜터덜. 나를 소중히 여기지 못했던 일상 속에서 느닷없이 어쩌면 혼미하게 마주치는 아주 간단한 단어. 가슴 속이 저미는 순간의 감동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나를 자각하고 되찾는 여정으로서 골목길은 이제 음습하고 두려운 곳이 아니라 그들에게 빛의 길이 되어준 것이다.
 
들이 운다평택 대추리 현장예술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때 이미 한번 마을을 한번 빼앗겼던 평택 대추리 주민들은, 이후 2007년 다시 한번 미군기지 확장으로 마을을 빼앗겨야만 했다. 마을 철거 중에 또한 발생한 공권력에 의한 탄압들에 저항하던 주민들 곁으로 2003년부터 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마을에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예술의 사회적 참여에 대한 담론의 불씨를 일깨웠던 예술가들은 마을에 남은 사람들을 위한 치유적 성격의 작품들을 구상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으로 김지혜 작가는 대추리마을 심리적 기억지도주민 공공일기’, ‘대추리 유소년 축구단 노래 복원작업을 통해 주민들의 참여가 직결되는 프로세스를 연동하여 치유의 의미를 담아내었고, ‘황새울 사진관을 운영하며 대추리 마을 어르신들의 가족사진 및 초상을 치유적으로담아왔던 노순택(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은 활동기간 중 대추리를 배경으로 하여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얄읏한 공 시리즈를 완성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대추리 주민 모두가 사랑하였던 평화를 희구하는, 최평곤 작가의 파랑새1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대나무 조형으로 대추리를 상징하는 대표작으로 통한다. 이 외에도 사회참여적 성격을 지닌 많은 예술가와 작품들이 대추리를 무대로 소개되었고, 특히나 시각예술 뿐만 아니라 예술의 다양한 영역에 있는 인사들이 참여하면서 저항의 형태는 비닐하우스 콘서트(일명 비콘)’ 들이운다 문화제와 같이 문화예술축제의 장으로 연결시켜 당시 이나 마찬가지였던 대추리의 실상이 외부로 자연히 알려지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당시 주요언론은 늘 그렇듯이 모두 침묵하였기 때문이다. 시인과 시각예술인들이 조성해놓았던 벽화들이 무참히 철거되는 사건이 발생했었는데, 이는 곧이어 미술계에서도 핫이슈가 되어 야외 예술작품의 보존, 공권력에 의한 야만적인 행태를 규탄하는 담론생산으로도 연결되었다. 2007년에는 2003년에서 2006년간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대추리에서 활동하였던 기록들을 담아낸 영상물과 출판물로 이루어진 아카이브가 발표되었다
 

 
예술 그 자체는 현실세계에서 생각보다 거대한 권력을 갖지 않는다. 권력의 속성상 뭉치고 떼 짓는 요소가 예술창작에는 왠지 적합하지 않다. 해서 현실 정치 내지는 직접적인 발언으로서 반향은 크지 않더라도, 그것은 삶속으로 젖어드는 지극한 친화력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직관적인 깨달음 등 인식의 근원에 개입할 수 있는 감성을 촉발한다. 도리어 표피가 아닌 인간 깊숙한 내부로부터의 미세한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그렇다면 현실의 진정한 레지스탕스적 면모란 예술에 즉해 있는 것이 아닌가.
 
 
 
 
<저자소개>
저자는 홍익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미학을 전공하였다. 대구미술관 프레오픈 전시 아트인대구’, 그리고 대추리현장예술아카이브프로젝트코디네이터로 시작하여, 광주의 첫 대안공간 매개공간미나리 큐레이터이자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아시아문화특화지구사업 대인예술시장프로젝트’(첫해 조직팀,2009) 레지던스 팀장을 맡았다. 대구미술관에서 전시팀장으로 3년간 근무 후  현재 지리산프로젝트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