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2일 화요일

월간미술(2013.11) Review : 염성순, 감옥에서 보낸 한철展(2013.10.8-10.27)



그대가 선택한 고통의 궤적_ 염성순, ‘감옥에서 보낸 한철’展
(2013.10.8-10.27, Project Bgallery)
 

나는 본다. 한 여자를 39x 54.5 종이 펜 아크릴릭 2011

“그대 고통은 그대 오성(悟性)을 싸고 있는 껍질을 깨는 것. 마치 과일이 부숴져야만 그 핵이 태양을 볼 수 있듯이, 그대 역시 고통을 이해해야 하리라”(<예언자>, 칼릴지브란) 고통은 삶의 열락을 위한 키워드였다. 고통은 어떤 욕망이든지간에 나에 의해 선택된 그것이자 새로운 세계를 맞이하기 위한 파괴의 과정을 도모한다. 고로 그 근원은 ‘나’의 실체에 기인하고, 깊은 어둠에서도 빛의 작은 한 줄기를 발견하고자 하는 의지에 관련한다. ‘고통’이란 따라서 그냥 ‘고통스러운’의 의미이기 보다, ‘~에 대한 인지를 위해서’ 내지는 ‘~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에 닿아있다.
염성순 작가의 ‘감옥에서 보낸 한철’[랭보의 ‘지옥에서 보낸 한철’에서 따옴]은 크게 두 가지의 연작으로 소개된다.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서>, <여성시리즈>가 그것인데, 이 둘은 ‘감옥에서 보낸 한철’에 대한 내러티브를 구축하는 동시에, 현재를 통할하는 삶의 궤적을 보여준다.
그만한 솔직함이 있을까. “(...)화가들은 그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어서 그릴 것이다. 정반대의 화가종족들도 있을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내 납덩어리는 여전히 납덩어리인 채로 내 속에 남아있다”<‘작가의 노트’에서 발췌> 창작은 세계에 대한 욕망을 투척하고 이를 발산하는 과정에서 이뤄진다. 그러나 역으로 ‘발산’자체는 창작과 동일하지 않다. 그저 기계적인 ‘발산’도 가능한 것이므로, 다만 “납덩어리”가 예술가가 지녀야할 비극 내지는 소명이라면, 그것을 끄집어내기 위해 예술가는 스스로 고통을 선택해야 한다.
멀리서,혹은 가까이에서 (7) 78x54.5 종이 펜 아크릴릭 2011
그리하여 창작을 위한 발산의 공간이자 예술가로서 구체적인 삶이 펼쳐지는 물리적 장소 ‘아틀리에’가 작가에게는 ‘감옥’일 수 있고, 욕망을 구체적인 것으로 잉태하기 위한 ‘고통의 시간성’은 ‘한철’로 압축된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서>연작은 나의 바깥 세계가 지닌 욕망의 근거와 세계의 끈적한 욕망의 기운이 다시금 나에게로 회귀하는, 그것이 멀리서 혹은 가까이에서 인지하게 되는 무형의 흐름을 이야기 한다. 유기체적인 확산, 세포의 증식, 초고도 압축의 상황,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긴장감을 지닌 화면은 그 만으로 작가가 발산하고자 하는 그의 고통이다. <여성시리즈>는 그 안에서 ‘나는 본다, 한 아픈 여자를’, ‘나는 본다, 한 여신을’ 등으로 색감의 높은 밀도와 함께 여성성을 범주화한 타이틀을 사용하여 마치 시의 운율을 만들어내듯이 연속적이고 강렬한 심상을 뿜어낸다.
염성순 작가는 글쓰기와 작시(作詩)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언어가 논리적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문학이 되면 때로는 음률로 화하여 음악이 되기도 하고, 심상으로서 감각으로 전이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 때문에 그의 회화는 음률이자 심상을 도상화한 마치 한편의 문학작품과도 같다. ■ 최윤정 / 대구미술관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