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4일 수요일

월간미술 5월 Review : LEE Myung-Mi

이명미 : '넓은 들이여 내려앉을 마음 없이 우는 종다리' *


대구를 기반으로 70년대 대구현대미술제 운동의 주축으로 활동하였던 작가 이명미가 분도갤러리의 초대로 개인전 ‘Game’을 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약 20여점의 작품이 소개되었는데, 작가는 화려한 색채와 단순화시킨 도상들을 주요 조형어법으로 삼고, 초등학교 앞 작은 문구점에나 있을법한 장난감 피규어와 입체스티커를 특유의 재료로 활용하고 있었다.

처음 독해하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그녀의 작업에 대해 장난스럽고 한없이 밝고, 또한 질풍노도의 소녀가 겪는 감성을 담아낸 듯하다고 여길 법하다. 일차적인 독해로서 타당하다.

“젊은이의 감성으로 하루하루를 지내는데 어느덧 거울을 보면 한 노파가 서있더라.”(작가) 담담하지만 자조적인 회한이 묻어나온다 생각했다. 그러나 이내 “세월은 지나치지만 정신만큼은 젊어야 한다”(작가)며 우연한 자리에서 ‘스스로 철없음’에 대해 유머러스하게 논하는 작가를 보고 작가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묘한 해학성의 근거를 엿본 듯 했다. 세상을 살아가며 겪는 온갖 희로애락의 순간은 ‘사건’으로서 현재의 삶을 반추할 수 있는 고리가 된다. 다시 말해 감정을 수반하는 모든 사건은 개인에게 내면화되어 삶의 당위와 현재의 문맥을 주조해낸다.

멀찌감치 작품을 보면 그저 화려한 색채와 단순화된 여인의 조형이 있다.  <사랑해_캔버스 위에 아크릴, 혼합매체_194x130cm_2012>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세상이 온통 여러 번 덧칠이 된 핑크색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성의 한쪽 눈에는 눈동자 대신 ‘saw’(텍스트)라는 단어가 다른 한쪽은 ‘king’(텍스트)이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다. 또한 얼굴에는 하트무늬 스티커가 ‘사랑해’를 연발하며 사랑에 빠진 여성의 표정을 'very much'(텍스트) 만들어 내고 있다. 그저 터져나오는 심정을 주체하지 못하지만 무채색 스트로크로 무관심하게 그어진 여인의 눈코입이 역으로 이를 발산하지 못하는 듯한 갑갑함으로 장면을 마무리한다.
<떠나자_캔버스 위에 아크릴, 혼합매체_194x130cm_2012>는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차용한다. 입체스티커가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자 떠나자’의 노랫가사를 구성하고, 가장 간략한 형체로 비행기며 배며 자동차가 작품 하단에 배치되어 있다. 또한 만화캐릭터를 담은 입체 스티커들이 한 구석에서 마치 지점에 도달한 여행자인 양 스토리를 생산하고 있다. 햇살의 잔상과도 같은 다채로운 색의 점들이 자유로운 청춘의 심경을 사방팔방으로 흩뿌리며 만들어내는 장면은 대단히 감각적이며 유희적이다.
빈 의자가 무관심적으로 덩그러니 한 구석에 놓인 <너와같다면_캔버스 위에 아크릴, 혼합매체_200x200cm_2011>은 텍스트의 배치가 전면을 장악한다. 다양한 형태의 입체스티커가 점이 되어 하나의 글자를 생산한다. 각 스티커마다의 이미지와 조형성이 강한 탓에 어쩌면 입체스티커라는 하나의 (사건적)개체마다 의미나 심경이 별도로 표현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기능적인 표음문자가 하나하나 이어붙이는 작가의 행위에 의해 그 자체 심정적인 표의문자로 변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그저 조형성이라고만 여기더라도 이 또한 그저 스티커인 것만은 아니다. 가장 원시적인 형태와 색채감으로 충만한
<보고싶다_캔버스 위에 아크릴, 바느질_181.3 x 227.3_2012>는 추상적인 표면성을 보여준다. 텍스트들은 스미듯 색면 뒤에서 불룩 솟아오고, 도상이라기보다는 스트로크에 가까운 이미지들이 화면의 어지러움을 가중시킨다. ‘목련꽃그늘아래...편지읽노라...보고싶다..’

감각적 가시성은 참된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베일에 가깝다. 각종 모티브가 뒤범벅이 된 듯 온 감각을 자극하는 이명미의 작품들은 심리적 거리로서 통속성과 예술성의 경계를 지워버렸다. 한편 무심히 펼쳐내고 드러내놓고 있는 듯하면서도 세부를 직시하게 하고, 동시에 장면에 대해 집중하게 하는 내러티브적 이끌림이 놓여있다.


* 마츠오 바쇼오(1644-1694) 의 하이쿠 :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르고 잠시 나무에 앉았다가 다시금 하늘을 향해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지저귀는 봄날의 종달새를 노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