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2일 화요일

손영복 작가 비평글, 변형된 캔버스展 Wicked Canvas(2012.6.15~6.23)

손영복 작가 비평글, 변형된 캔버스展 Wicked Canvas(2012.6.15~6.23)

‘손’의 맛



글 ● 최윤정(미학/미술비평)



<그의 오마주> 손가락으로 부벼 바르는 흙덩어리는 유화의 터치감을 상기하고, 회화에 대한 호감은 지속적으로 덩어리에 색채를 입히는 시도로 이어진다. 명화의 대표적인 인물 도상들이 평면 밖으로 나와 그의 초기 입체회화가 구축된다. <소재발견> 공감이 용이한 일상적 단상들(단물/쓴물, 술마신 다음날 Moday Morning 등)을 주제로 자기 주변에 익숙하게 굴러다니는 사물들을 관찰·채집하고 형태 그대로 캐스팅한 조형물을 만들어 색으로 표면을 입힌다. <작업실 그리고 소재발견의 진화> 살아가는 접근방식 및 창작을 위한 환경적 요소의 변화는 그에게 덩어리와 색채, 평면에 대한 입장을 사회적 문맥과 잇게 하는 중요한 시점을 제공한다. 작가는 시장에 들어왔다. 시장에 들어와 스튜디오를 마련한 후 그는 적잖은 심리적 충돌을 겪고, 이에 따른 창작적 방법의 변화들을 무수히 겪었을 것으로 예상한다. 대부분의 자폐적인 작업실 환경은 집중과 예술가로서의 신비함 등을 그득 선사하기도 하지만, 작업에 대한 즉각적 평가나 생산적 참견을 통해서 단계적 사유를 꾀할 수 없는 불안함이 있다. 당연 사람들과 맞부딪히고 낯선 이들의 방문을 꺼리지 않아야 하는, 또한 ‘~으로 침투’해 간 조건으로 인해 ‘주민화되기’가 정착의 성공 요소로 판가름되는 그곳에서, 오히려 그는 자신의 사회적 활동 및 늘 지녀왔던 취향을 다시금 재발견하고 이를 창작의 모티브로서 심화시켜볼 수 있는 계기를 쥐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전환점을 마련해준 요건의 ‘제 1’은 꼬깃하게 접혀있던 인간 심리 일부를 편편이 펼쳐내게끔 역할하는, 즉 삶을 구체화시키는 어떤 장場, ‘장소’라고 나는 보고 있다. 거기서 대화하는 법을 배우고, 주변 상인이나 주민들과의 공감능력도 키워왔을 것이며, 6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문화적 스펙트럼을 자기 취향으로서 솔직히 발언하고 발산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데 있어 그만큼 애잔하고 순진한 땅도 없었을 것이다 - 혹자에게는 슬픔과 절망을 그리고 과거에 대한 영화와 미련 때문에 결국은 떠날 수 없는 땅이라면, 다른 혹자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이상으로 혁신을 모색할 수 있는 상상적 봉화대가 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손’의 맛> 그리하여 기능을 상실해가는 시장이 간직한 멜랑꼴리한 생애사와 이를 그대로 반영하는 시장에 놓인 오랜 건축물들은 그에게 사회적 시선을 결합한 상상적 사유의 초석이 되었다. 문 닫힌 상점 간판은 건물의 지난 기능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치적 명품의 도상들이나 현대의 공산품들은 건물의 형태가 되어 지금 우리를 패러디한다. 낡은 상가 건물이 층층이 쌓여진 형태의 고층 빌딩은 현대의 세련된 주상복합아파트에 대한 일종의 풍자이기도 하다. 이번 ‘Wicked canvas’展은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 더욱 심화된 작가의 조형어법을 구체화시킨다. 우선 오랜 건축물에 대한 탐구는 실제 매체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이어진다. 그가 가장 최근 선택한 매체인 시멘트는 물로서 잘 게이고 응집되면서도 올록볼록 특유의 거친 결을 만들어낸다. 이전 작업에 보이던 건물을 수식하던 간판이며, 도상들은 모두 소거되었다. 다만 건물의 단순한 형태와 각 단층 건물의 양식에서 느껴지는 시대성이 있고, 겹겹의 층으로 둔탁하게 쌓아올린 형태에서 기존의 비판적인 시각적 수식어구들이 모두 개념과 사유의 어구들로 화하여 머릿 속을 맴돈다.

한결같이 고수되었던 회화에 대한 오마주는 몇 가지 기법 도입 후 더욱 극을 발하면서 일편 스토리를 갖게 된다. 입체의 일부는 평면의 소실점을 담아내며, 그에 따라 형태가 변형되는데 이는 실재하고 기능하고 있는 우리의 일상물품과는 전연 다르다. 그것은 ‘입체도상’으로 읽어야 한다. 각이 진 모든 모서리를 검은 선으로 드로잉한다. 이는 빛의 반사와 그림자를 통해 자연히 나누어지는 입체감을 주는, 오히려 모서리를 따라, 빛의 면을 분절하여 색의 구분을 명확히 함으로써 평면적 효과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비단 모서리 뿐 아니라 빛이 스미지 않아 얼룩진 입체감을 주는 작은 홈이나 틈 하나하나에도 검은 테두리를 입혔기에, 입체적 물성으로 이룩한 모든 것은 ‘입체’ 혹은 ‘입체설치’이기보다, ‘평면’ 개념에 더욱 몰입한 형태가 되었다. 이것이 캔버스의 바깥으로 혹은 구겨진 캔버스에 놓인 ‘변형된’ 것으로 형상화되는 그의 조형어법이다. 세상에 대한 그리고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많아, 사귀게 된 지인으로부터 우연한 기회로 얻게 된 ‘생활의 발견’이라는 책을 가지고서, 마찬가지로 그는 시선의 일정한 방향(소실점)을 담아 새로운 조형으로 만들어내었다. ‘커피 한잔’ 조형과 함께 놓여 작가의 일상을 담백하게 설명하는 듯하다. “늘어지게 실컷 잠을 자고 난 뒤 아침에 눈을 뜨고 새벽의 공기를 들이마시면 폐가 부풀대로 부푼다. 그러면 이어 깊이 숨을 들이쉬고 싶어지고 가슴 근처의 피부와 근육에 유쾌한 운동 감각이 일어난다. 자아, 이젠 일도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드는 그러한 때..”(책 본문 중)
 상상하기에 입체와 평면, 색채에 집중하여 내적인 자기 취향과 외적인 역할-거주, 사회적 역할, 예술가적 태도 등-을 교차시키고 이를 심화시키는 작업이 지속될 것 같다. 왠지 때로는 극단적으로 모든 사물을 평면화시키는 대형작업에 도전해보지 않겠나 제안해보는 상상도 하는 것이, 직업인지라 작가의 작업적 변화를 지켜보고 연구하는 것만큼 만족스런 일도 없다. 특히나 애초의 시작이 회화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되었던 젊은 청년이 지닌 ‘순수한 가슴’에는, 자신과 자기 주변/처한 장소와 사회/예술가적 태도 사이에서 교집합을 발견해내고 생산적 프로세스를 구축해가면서, 일상적 가치에 대한 예술적 반성과 세련된 패러디를 키우는 진보가 싹트고 있다. 내게도 계기가 되었으니, 이제 그에게 그 정체를 물을 자격이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