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9일 수요일

월간미술 5월 전시리뷰_플라스틱데이즈

Review, '플라스틱데이즈', 포항시립미술관




최윤정 ● 대구미술관 큐레이터



상고에서부터 역사를 채취하고 실증하는 매개는 도구였고, 시대문맥을 상징해온 키워드는 도구를 구성하는 재료였다. 플라스틱은 단순히 ‘인공적인’, ‘소비적인’ 재료를 넘어서, 사회·문화적 형태를 포괄하는 우리 사회 이데올로기를 대변하고, 우리 신체 일부로서 인간을 압도하는 시대적 상징이 되었다. 인간이 주조한 모든 것들은 자연의 ‘오염’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인류역사에서 각 시대 도구물들이 차치해온 가치영역을 고려해본다면, 도기나 스틸에 대한 현 우리의 태도처럼, ‘플라스틱’ 역시도 회고적이면서 가치적인 상징이 부여되지 말란 법도 없다. 그것은 ‘실제의 삶의 빈곤, 굴종, 부정을 남김없이 노정하고 표출하는’, ‘인간과 인간간의 분리와 소외의 표현으로서’ 시대권력의 스펙터클을 구성한다.

<플라스틱 데이즈>는 예술창작에 소요되는 ‘플라스틱’이 지닌 재료적 특성에서 출발하여, 현대사회 가치적 문맥을 확장해 나아가는 시도이다. 또한 재료가 주는 일상적 친근함이 관람객들로 하여 작품에 마주하는 부담을 현저히 덜어주는데, 역설적으로 육중한 주제는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기도 한다. 각 작품의 경향들을 보자면, 현대 플라스틱 오브제의 색채감-빗자루나 테이프 등-을 활용한 작업(이기일, 김형관), 아크릴 착화감 등 플라스틱 속성-가벼움-을 심화한 작업(강덕봉, 유재홍), 재료의 상징적 의미차용과 시대문맥을 그린 작업(홍경택, 황인기, 변대용), 문화적 양식과 삶의 표현-인생의 질곡, 신화, 문화를 상징하는 장식문양, 시대풍경-(노상균, 김건주, 김현숙, 박상희, 두민, 심승욱)이 펼쳐진다. 그리고 구축적 구성과 기호의 트위스팅이 배합된 작업(신종식, 장준석, 김봉태, 이슬기, 한경우)이 함께 이목을 이끈다. 마지막 전시실에서 '북극곰! 귀엽다'며 연신 고함을 치는 어떤 아이가 주목한 작품, 그것은 어린이를 위한 공간에 있음직한 반짝이고 예쁜 파스텔톤의 조형물(변대용)이었다. 이는 재료에 대한 제문제와 사회적 이슈를 슬쩍 결합시키는 전략으로, 얼음이 갈라져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한 비참한 곰을 반들반들 아주 귀엽게도 묘사했다. 이번 <플라스틱데이즈>가 기획의 차별성을 구한다면 이에서 한 가지 줄기를 끄집어낼 필요가 있다. 다시금 친근한 매체란 도리어 은근한 소격효과를 불러오며, 극과 극은 통하는 법으로, 이 전시는 어느 때고 건드릴 수 있는 친근한 재료에 대한 ‘가벼운’ 태도와 우리가 밀착해있는 세상에 대한 무겁고 ‘불편한 진실’을 담은 내용들을 마주하게끔 이끈다.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 후보들이 해맞이 공원에 나들이 온 겸, 미술관을 찾는다한다. 취향에 있어 대중적인 부분도 중요하므로 <플라스틱 데이즈>는 이를 적절히 반영하였고, 한편 동시대 이슈와 제반 의미들을 재료적 상징을 통해 감각될 수 있도록 하는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