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27일 토요일

월간미술11월 Review : LEE Kyo-Jun


<이교준>, 리안갤러리, 2012.9.5~10.13

글 ● 최윤정/대구미술관 큐레이터

회화의 내러티브를 제거하고 대상을 인식하는 '선과 면'의 단위성에 근거하여 독자적인 예술의지를 표해 왔던 작가 이교준, 그의 이번 개인전에 발표된 작품들은 세 가지로 분류해볼 수 있다. 우선 각 부분은 그가 90년대부터 치열하게 고민해왔던 표현에 대한 의지와 문맥적으로 일맥상통하며, 그저 신작발표이기보다 관람자를 향해서 작가 이교준을 관통할 수 있도록, 기하학적으로 그의 예술세계를 압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그것들은 그의 현재에 나란히 보폭을 맞추면서도 이후 그의 평면과 입체가 어떤 입장과 방향으로 진전되어 갈지를 보여주는 지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의 전시작품 세 종류 중 한 측면은 색면과 색선으로 분할되고, 화면을 구성하는 여러 개의 사각 틀들이 그 배열방식에서 거두어낸, 시각적 착시로서 일종의 투시적인 운동성을 유발하고 있다. 이는 각 사각틀이 교차가 아닌 순차적으로 혹은 등차적으로 배열되면서 전면과 후면, 상하좌우의 가녀린 떨림을 감각하게끔 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측면은 차가운 금속소재의 매체를 캔버스나 밑색의 용도로 활용하여 모노톤의 색채와 경계긋기에 기인한 무채색의 선이 자아내는 소품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 측면은 입체물로서 사각의 일정한 틀 안에 면과 선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경계면-색면-을 강화함으로써 시야의 각도에 따라 분할된 형태를 달리 관찰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우선 금속소재를 사용한 소품은 작가 이교준이 지닌 오랜 고집의 역사에 대한 단초를 시각적으로 단호하게 보여주는 상징이자, 신작에 대한 '명제' 내지는 '공리'로서 역할하고 있었다. 작가 이교준을 독해하는, 그를 관통하는 '공리'를 함의하면서도, 그가 말하고자 한 '인식에 대한 제물음'을 통할하는 시작점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보다 시각적으로 교란하듯 긴장을 일으키는 근작들, 즉 현재의 작가를 증명하는 나머지 두 종류의 작업들은 공리에 따라 문맥적으로 정당하였고 또한 더 나아갈 수 있는 자기반성성까지도 획득해내었다.
인식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의 표현의지는 엄정히 그어진 선을 통해 경계를 설정해내고 그로부터 '면'을 발생시킨다. 이는 그 자체로 개체로서 '부분'이자 '단위형성' 단계와 동일하다. 우리는 이차원이든 삼차원이든 부피를 가진 사물들을 인식할 때 점,선,면의 기초단위 구성을 인식하며 그로부터 전체의 형태를 수용한다. 인간의 정신이 만들어낸 모든 문화적 요소들-그 무엇이든지 간에-에 대한 진실에 접근하고자 혹은 그로부터 각 개체가 자기인식을 꾀하며 자신에 대해 제삼자로 서는 일, 예술은 그 매개이자 진실에 접근하는 행위로서 세상에 대한 인식 자체를 내재한다. 작가 이교준에게서 그의 작업은 사물 자체를 인식하기 위한-형태적 본질을 포함하여- 일종의 방법론이자 제안이며, 또한 그만의 표현과 의지 자체로 인 것으로 여겨볼만하다.


2012년 9월 19일 수요일

김해문화의 전당 '미디어전' 연구평문

메신저
백남준 전자고속도로
: 한국의 초기 비디오아트





글 ● 최윤정(대구미술관 큐레이터)







1. 들어가며

한국의 미디어아트의 역사 속에서 그 시발점이 되었던 초기 비디오 아트는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예술의 장을 한층 광범위하게 넓히는 계기가 된다. 이에 비디오아트의 창시자인 백남준(1932-2006)과 그로부터 영향을 받아 국내에서 처음으로 비디오작업을 했던 박현기(1942-2000), 이후 과거와 현대가 지닌 한국사의 단면들을 특유의 설치작업으로 구현하였던 육태진(1961-2008)과 육근병(1957)의 작품은 한국의 초기 미디어아트의 수용과 향방에 대한 개념적인 시선을 마련할 수 있게 한다.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에 유목적 사유와 실천으로서 인류학적인 시선을 뚜렷이 구현하고 그저 기술 매체에 불과한 텔레비전을 문화사회사적인 접근을 통해 소통기구로서의 오브제로 자리하게 하였다. 박현기는 텔레비전이 비추는 오브제 가상을 도리어 동양적 세계관과 정신성을 드러내는 도구로 개입시켰고, 육태진은 반복되는 행위를 담은 영상으로 현대인의 삶의 단편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육근병은 세계를 담아내는, 우리의 육안을 상징하는 외눈박이 작업을 통해 응시를 통한 세상과의 연결을 상징하여 왔다.
이들이 담아내는 초기 작업 속에서는 미디어의 사용이 ‘메신저’로서 기능함과 더불어 심층적인 작가적 사유의 차별적인 부분을 모색할 수 있게 하였다. 초기 미디어 그것은 오히려 세상과 인간의 인식을 연결시키는, 가상과 실재가, 그리고 보여지는 것과 진리가 맞닿는 가교로서 설정되고 있다.
실제 백남준의 작업이 작품 자체로 한국에 소개된 이후, 비디오 아트의 개념이 정립되기도 전에 한국에는 그저 새로운 형식으로서의 수용에 급급하였다는 점도, 하나의 현상으로서 언급될 때가 있다. 마치 50~60년대 서구의 미니멀리즘에 대한 갑작스런 수용으로 단순히 형식적인 요소만을 반영했을 뿐이라는 비판을 떠올리게 하는 단면이다. 과연 어떤 필요에 의해서 그 형식이 혹은 매체가 효과적이었는지를 질문하기 전에, 그로부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한국의 미니멀리즘 역사와 과정을 본다면 그것이 단순한 수용에 그쳤다고 결론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하고 있다. 그 형식은 한국적 풍토를 기반으로 한 내용적인 요소들_문인적, 철학적 사유, 존재와 비존재에 대한 제문제 등 이에 적절한 구현 방식으로 유효할 수 있음을 도리어 증명해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비디오아트 역시 기계매체에 대한 수용을 넘어 그 시작에서 1세대들 각각이 자신의 차별적인 텍스트성 영역으로 논의를 발전시켜왔기에 도리어 그것이 한국의 미디어아트 역사를 이끄는 중요한 조짐이 되었다는 의견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예술가들에게 당대의 과학기술은 오브제적 확장으로서 그들의 기발한 아이디어 생성과 상상적 지평을 구체화할 수 있는 기제이며, 기존에 대해 보여지는 바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확장시키고, 또한 그 속에 보이지 않는 ‘무엇’에 대해 의심스런 틈새를 만들어 놓았다. 백남준으로부터 처음 명명된 비디오아트는 “텔레비전의 폭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야” 하는 임무를 띠었다. 이는 그가 해프닝을 통해 현실의 헤게모니를 좌초시키려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프로그래밍된 수동 개체인 텔레비전 그 뒤로 숨은 수많은 의도들과 그에 따라 은연중에 침투해오는 명령에 순응해나가면서 이를 다만 하나의 오락으로서만 관성적으로 수용하게끔 한 그 모든 것에 대해-스펙터클한 사회와 그 틈새에 대해 비판적 독해와 공격을 의도한 바이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매체를 형식적으로 도입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 탐구 및 개념적 차원으로 해당 오브제에 그리고 표현매체로서 그 효과에 더욱 주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2. 세계를 잇는 메신저로서의 샤먼

'샤먼의 궁극적인 목표는 초자연적 존재와 인간을 매개하는데 있다.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예술가들/학자들은 분명 세계인식에 대한 메신저로서 역할해 왔다. 고유한 정체성으로부터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연관을 발견하고 개념적인 사유에서 인지적 증폭을 통한 새로운 직관의 길을 열어주는 사람. 이들은 분명 세계를 통해 자기애와 자각을 꾀하고, 다시금 정신적으로 무장된 상태에서 세계로 향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세상에 처해짐이란 단순한 처함이 아니고 스스로가 선택한 처함이다. 더불어 자기 자각을 통해 행위의 필연성을 안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 우리가 요구하고 주목하는 예술가는 어쩌면 이러한 샤먼적 의의를 통해 우리의 세계를 확장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예술가로서 본질적으로 갖게 되는 자기 질문과 회의, 자신의 기억과 원형적인 사유를 통해 세상을 가로지르고 동시에 접합하는 행위자. '
샤먼은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메신저로서, 우주와 인간의 소통을 매개하고, 우주와 인간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역할자로서 설정된다. 모든 샤먼은 상징적인 미디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인공적인 것이건 혹은 자연적인 것이건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극복하게 하는 미디어이다. 그것들이 가리키는, 마술적 징후를 통해 작용하는 상징과 기호의 세계는 다시금 샤머니즘을 근간으로 둔 미디어적 세계라 말할 수 있다. 다시금 그것은 오늘날 기술매체로 넘쳐나는 미디어적 현상이 고대 샤머니즘의 세계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 측면을 제공한다. 이승과 저승 그리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현실과 가상을 왕래하며 두 공간을 잇고, 하늘과 땅과 인간이 서로 밀접한 관련 속에 있다는 신비한 체험을 제공해주는 것이 바로 샤먼의 역할이고, 샤먼은 일종의 카타르시스적인 의식을 통해 인간 삶의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고 신의 뜻을 전달하는 매개역할을 하기도 한다. 미디어는 그 자체로 예술적 지향과 의식의 도구 내지는 퍼포먼스이자 샤머니즘의 상징과 동일한 지점에 서있다.
백남준은 고대 한반도가 북방초원의 유목문화를 기반으로 한 기마민족이었음에 몰두하였다. 그리하여 동북아적 정체성과 철기시대 매개체로서의 문명적 진보가 그의 작품 심층에 크게 자리하고 있다. 또한 인류 샤머니즘의 기원을 동북아 내지는 시베리아에서 찾는 이론과 마찬가지로, 그의 창작 속에서는 꾸준히 황색DNA를 밝히고자 하는 노력들이 수반된다. 그의 오브제는 때로는 불교적이면서도 도교적이고, 샤머니즘적으로 표출되는데, 이는 기술적 매체와 서구 중심적 문화에 대한 그의 철학적 태도를 형성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는 또한 도리어 이를 이분화하지 않고 개척의 상징, 초원길의 모티브로서 ‘전자고속도로’를 제시하여 전 세계가 미디어에 의해 결합되고 소통되고 ‘달’에 의해 ‘전파되는’ 구상들을 실현해왔다. 여기서 중요한 매개인 ‘달’은 또한 단순한 매개로서 표출되지만은 않는다. 그것은 자연의 생명주기, 일종의 리듬이자 위성으로서 지점을 잇고 연결하는, 세계를 하나의 근원으로 모아주는 태초의 것이 된다.
백남준이 사료 및 인류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샤먼적 문맥을 형성할 수 있었다면, 육근병의 경우는 샤먼 자체의 구체적인 의식에 더욱 근접한다. 죽음을 상징하는 무덤에 인간의 눈 한 쪽을 담은 텔레비전이 설치되었다. 여기서 ‘눈’은 백남준의 ‘달’과도 같다. 그는 인간의 눈에서 우주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주라는 것은 자연적 요소에서 진리적 사유 등 모든 것을 꿰뚫는 심미안과 다르지 않다. 그 속에서는 부정된 것이며 이질적인 형국, 대립되는 것 모두다 하나의 점과도 같은 것으로서 우주의 정신 안에서 모두가 합치될 수 있고 가치를 획득할 수 있게 된다. 작가에게 무덤은 과거이자 죽음을 상징하지만 그것은 육체에 지나지 않고, 우주를 응시하는 눈은 강하게 주제화된다. 샤먼의 탄생과정 중 ‘상징적인 죽음’의 절차가 있다. 그것은 세속의 모든 선을 끊고 온전히 접신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는 초기과정이다. 이미 끝난 것-죽음, 과거의 역사로부터 지금의 현재와 우주와 스스로 자신이 무관하지 않음을, 또한 세계에 표명될 수 있는 지지대가 바로 과거에 있음을 육근병은 동양적 윤리관과 사유에 기대어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상징적인 죽음은 다시금 샤먼으로서의 부활의 계기로 전환된다. 이 과거의 무덤은 다시금 그의 작품에서 터널의 형태로 전이되는데, 시간성이 더해진 터널로서 이 오브제는 역사의 순환과 더불어 불교적인 윤회사상 속에 놓인 인간의 역사에 대해 사유할 수 있도록 한다. 환영적이고 마치 주술과도 같은 그의 비디오는 무속적이고 신비한 의식과 구체적인 삶속에 내재한 시간성이 결합하여 문화 ․ 역사적 시원을 떠올리게 한다. 깨어있는 눈, 세상에 대한 심미안에서 이어진 그의 작품은 신비함과 자연의 서사, 드라마틱하고 영적인 산물로서 원형상징적 요소를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

3. 세계를 비추는 거울

인간의 육욕이 고대 만다라의 형상과 결합된 박현기의 ‘만다라 시리즈’(1997)는 포르노비디오의 영상조각들과 시바의 여신이 동영상으로 혼재되어 있는 작품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형상 내지는 현대사회와 고대 만다라의 결합 안에서 지금 우리의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평가적 가치를 들이대지 않은 동양적 사유에서 비롯된, 현재를 발견하는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 작업이다. 그리고 ‘도시의 지하철 역에서’(1998)는 도시 속의 대표적인 장면, 밀집된 지하철 안에 사람들의 표정은 텍스트에 감추어져 있고, 텍스트를 구성하는 각각 글자는 지하철이 달리는 속도와 리듬에 맞춰 때로는 유영하듯이 혹은 예민하게 반응하며 긴장감 있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육태진의 비디오아트는 현대인의 익명성, 그리고 소비사회와 대중사회 속에서 같은 패턴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대표적이고 무기력한 행위(보행)를 반복적으로 영상에 담았다. 그는 고가구를 활용하여 그 속에 현대인의 삶을 삽입시킨다. 고스트퍼니처(1995)에서 인물은 끝없이 걷거나 혹은 끝없이 계단을 오르내리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그리고 작품의 주제에 상통하는 폐쇄적인 현실과 그에 따르는 정형성이 ‘서랍’이라는 네모진 박스 안에 인물의 움직임을 갑갑하게 가두어 놓는다. 고가구는 오랜 과거 혹은 이미 죽은지 오래된 오브제이다. 그 결합 속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인물의 반복된 보행장면은 그저 더욱 ‘환영’인 것으로 각인된다. 지극히 단순한 반복, 혼자 있음, 누군가의 혹은 나의 자화상, 익명성 등 이같은 내용은 고가구를 넘어 터널 구조의 공간설치작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루할 정도의 반복성은 마치 오랜 시간이 켜켜이 쌓여 응고되고 물질화된 이미지와 다를 바 없다.


4. 나가며

초기 비디오아트가 가능할 수 있었던 지점은 이견의 여지없이 기술매체의 수용과 사용에 있다. 그러나 초기 비디오아트에 대한 담론이 자생적으로 생산되지 못했던 환경에 대해서 비판하고 반성할 필요성은 충분하나, 도리어 예의 형성에 있어서 과연 ‘차별성 없는 전략’ 내지는 ‘기술을 위한 기술자체’로서만 과정이 소요된 것이 아님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본문에서 메신저로서의 경향을 2항와 3항으로 나누기는 하였으되, 네 작가의 작업 모두에서 보다 깊이 있게 접목해보고 싶은 부분은 무엇보다도 ‘메신저로서의 샤머니즘’에 대한 것이고 이는 초기 비디오아티스트 모두에게 해당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그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를 매개하고, 잇는 것이 예술의 본위라고 보았을 때, 특히나 비디오 아트는 그 자체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형상과 개념까지도 제시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은 실재하는 것에 대한 환영이며, 환영은 우리 인식의 틈새에서 노니는 직관성에 맞닿아 있다. 그것은 세계를 제시하는 메신저로서, 혹은 실체를 폭로하는 인식의 전환적 계기로서 역할하며, 또한 실재에서 목도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해, 그 이면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결과적으로 초기 비디오아트에는 그야말로 ‘한국 미디어아트’의 차별성을 주조할 수 있는 전위적 특징이 있다. 각 환영들이 담아내고 있는 서사를 고려한다면 초기 비디오 아트의 문맥을 유의미적으로 소급할 수 있는 지점들이 제각각 발화할 것이다.

2012년 7월 8일 일요일

Review. 노동식, 홍상식 2인전 ‘22세기’展

Review. 노동식, 홍상식 2인전 ‘22세기’展
오픈스페이스배 전시전경





욕망의 Doomsday



글 ● 최윤정(미학/미술비평)



한 사람에게 그것은 ‘핵폭발’의 형상이었고, 다른 한 사람에게 그것은 온 세상이 미친 듯 메카시즘을 부르짖는 이때, 그 반작용으로서 등장했던 이벤트로 나열된다. 22세기에 대한 두 작가의 관점은 대단히 뚜렷하면서도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작품의 재료가 지닌 특성 내지는 구상적 조형성이 이를 지지해주고 있고, 버섯구름이라는 명확한 구상과 ‘LEFT’라는 문자간 결합에서 우리는 두 예술가가 투척하는 바를 정확히 목도할 수 있다. 노동식 작가가 솜으로 만든 거대한 핵폭발의 구름은 ‘파괴와 자멸’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이 작품을 응시하고 있는, 빨대로 만들어낸 단 하나의 ‘눈’이 이에 대한 역사적 관찰자로서의 서사를 읊어낸다. 간간히 붉은 색 조명이 핵폭발의 징후를 내보이는 가운데, ‘하나의 눈’ 양 사이드를 채우고 있는 것은 올해를 비상하리만큼 달구었던 ‘청춘 콘서트’ 주인공들의 초상이다. ‘22세기’展은 두 작가의 관점을 통해서 담아낸 다음 세기에 관한 계시록이다.





#. 첫 계시록



일차적인 유사죽음을 유도했던 제국주의나 이념을 통한 인간성의 참담함을 담아냈던 냉전주의 등, 과거 확연했던 대립구도는 다시금 민주주의와 경제적 효율성에서 추출한 ‘악’을 경제적, 군사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양’의 것으로 이용하는 시대로 전이되고 있을 뿐이다. 무너져도 다시금 창궐하거나, 그러다 또 무너져도 다시금 꿈틀거리는 욕망. 이쯤 되면 이것은 본성이고 인간의 가장 진면목은 아닐 런지. 더군다나 인간은 그 욕망을 논리화하고 합리화하고 사유하기까지 한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것은 보호와 모종의 장막을 위한 공동이념을 허구로 만들어낸다. 국가와 민족의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때로는 물리적으로 상대의 폭력을 전제하며 자신의 폭력을 합리화하는 무기로 나타난다. 비로소 이 땅에 머무르게 되는 ‘충돌과 파괴’, 노동식 작가는 이를 ‘핵폭발’의 형상으로 제시하였다. 역시도 그가 바라보는 22세기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 이념이 조장한 실존의 관성물인 ‘핵’이다. 작가는 우리의 몸을 일차적으로 보호해주는 옷감과 이불의 재료가 되는 솜으로 핵폭발의 구조물을 만들어내었다. 우선 그의 전 작업에서도 익숙하게 사용해왔던 재료이자, 가벼움의 속성으로 공중에 떠오르는 형상을 가장 잘 구현하는데 이는 적합하다. 이번 작업에서는 또한 가장 온순하고 익숙한 재료가 22세기 디스토피아를 표현하는 파괴적 형상의 재료로 쓰였다는 점에서 새로운 문맥이 부가될 수 있으며, 솜 내부에 설치된 조명의 분위기가 재료의 속성과 합쳐져 이 조형물은 마치 긴급하고 심각한 사안을 풍자하는, 현대의 조악스런 팝적 요소도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로 인해 각 욕망 간 충돌로서 ‘핵폭발’은 22세기의 형상일 뿐이기 보다, 과거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에 비견한 역사와 지금 현재 일본 원전파괴와 관련한 생존의 위협, 오랜 시간 망각 속에 흐르다가 다시금 꿈틀거릴 무언가를 예고하는 듯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접합체였다. “..그대의 의상을 좀 더 적게 입고 그대의 살갗이 보다 많은 태양과 바람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생의 숨결이 햇빛에 있으며 생의 손길은 바람 속에 있다는” 단순한 진리로 살아갈 수 없겠는가에 대한 소박한 비애감이 진하게 묻어나는 작업이다.





#. 두 번째 계시록



좌우 계파에 관한 용어는 오랜 역사적 관점을 수반하여 구분할 수 있다. 극과 극이라는 대척점에서 사회에 대해 변치 않는 지극한 관점이 혁명적 계파 및 보수우익의 태도를 성립시켜 왔다. 기본 사회적 안정을 추구하기 위한 논리적 합의와는 거리가 먼, 이 경우 양자 모두 일종의 경고처럼 ‘대안의 대안에 대한 대안에 대한 대안에 대한...’ 얕은 깨달음과 우매함을 전사하며, 권력속성이 지닌 여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색안경이라 표현하였고, 스스로 중립적인 위치에 서서 그것이 진보적 시각이든 보수적 견해이든 결국은 각자의 주관에 따른 사회적 시선으로 읽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스펙터클의 대립물들 밑에 은폐되어 있는 것은 비참함의 통일성이다. 모든 선택의 가면들 아래에는 각기 형태는 다르지만 동일한 소외가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이같은 다양한 형태의 모든 소외는 억압당하고 있는 현실적 모순들 위에 세워져 있다. 스펙터클은 집중된 형태 또는 산재된 형태로 존재하는데, 이들 중 어느 형태를 취하느냐는 스펙타클 자신이 부정하거나 지지하는 비참함의 개별무대가 무엇을 요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두 형태 어느 쪽에서나, 스펙터클은 비참함의 평온한 한 복판에서 황폐함과 두려움에 둘러쌓여 있는 행복한 통합의 이미지에 불과하다.” 현대의 이데올로기는 스펙터클이자 ‘스펙터클적’이며 그것은 지금 우리의 현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속성이다.

빨대로 이뤄진 입체 전면에서 후면의 색빛이 반영됨은 좌우익의 구분 논리 자체에 대한 허구를 보여주려는 바다. 전면의 인물과 후면의 권력 속성을 상징하는 색상이 흘려 비친다. 이는 작가의 개별사고가 이미 현재 보수권력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은 견지하되, 그 이면에 있어서만큼 집단적 권력의 속성에 대한 경계태세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극명하게 문자로 표기된 LEFT는 보이는 시선에 따라 오히려 보일 듯 말 듯, 뭔가를 주장하는 듯 아닌 듯, 흐릿한 구조로서도 작가가 무엇에 대해 ‘대안의 대안에 대한 대안..’ 그 끊임없는 연쇄고리의 측면을 잠시라도 멈춰보려는 시도였을 수도 있다. 혹은 왠지 작업적 속성으로 인해 모호하게 떠오르는 그의 작품이 지닌 의미는 여전히 모든 것은 경계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면서, 중립적이고도 한편 비애적인 시선을 고수하고 있다. 동시에 그의 작품은 우리의 시선을, 22세기에 대한 음울한 디스토피아의 로맨틱한 서사에 근거한 판타지로부터, 탈출하게끔 하는 접속코드였다.







#. Epilogue



현대 군중의 상징이라 생각되는 네티즌들의 끄적거림을 관찰해보았다. 역시 군중은 비슷하다. 우주여행과 인간의 모습을 닮은 휴머노이드에 대한 기대가 만만치 않다. 물론 누구에게나 동일한 지점이 있다. 그래, 군중은 동일하다. 더불어 2101년에서 2200년까지 머잖은 미래이지만, 내 육신이 세상에 남아있을 리는 만무하기에, 그러나 내가 꾹 참았다가 10년 뒤라도 나의 자손을 갖게 되면, 나의 자손은 그 세상에 남아있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내 피를 이어받아 맹위를 떨치며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자신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으려나. 다르지 않구나. 한편 인간이 개인으로 있으면 위험에 대처하는 자세가 좀 더 예민해진다고 한다. 다만 군중에 속한 인간은 모든 위험에, 또한 모든 범죄에 무감각해지고 우매하게 행동한다. 특히나 현대의 조직사회를 보면 똑똑한 개인도 우매한 인간 군중의 흐름을 쫒는다. 때로는 그것이 위기에 출중한 개별 인간의 심리극으로 읽힐 수 있겠지만, 결국은 생존을 지향하기 위해서 상대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을 상실하고, 또한 나의 생존을 위해 연민의 감정마저도 끊어내도록 한다. 인간의 가치가 어디에 있으랴, 그래서 나는 아직 22세기에 대한 아무 입장도 취하지 못했다. 하지만 역사를 미래를 예견하는 눈은 아티스틱한 상상에서 가장 첨예하고 가장 불편할 수 있지 않겠는가. 같은 문제에 대해서 학문은 차가운 지성인 양 표면의 비애감에 젖어들지만, 예술은 감정선 바닥까지 올곧이 드러낸 비애를 그냥 표출하지 않던가. ● 끝

2012년 6월 12일 화요일

손영복 작가 비평글, 변형된 캔버스展 Wicked Canvas(2012.6.15~6.23)

손영복 작가 비평글, 변형된 캔버스展 Wicked Canvas(2012.6.15~6.23)

‘손’의 맛



글 ● 최윤정(미학/미술비평)



<그의 오마주> 손가락으로 부벼 바르는 흙덩어리는 유화의 터치감을 상기하고, 회화에 대한 호감은 지속적으로 덩어리에 색채를 입히는 시도로 이어진다. 명화의 대표적인 인물 도상들이 평면 밖으로 나와 그의 초기 입체회화가 구축된다. <소재발견> 공감이 용이한 일상적 단상들(단물/쓴물, 술마신 다음날 Moday Morning 등)을 주제로 자기 주변에 익숙하게 굴러다니는 사물들을 관찰·채집하고 형태 그대로 캐스팅한 조형물을 만들어 색으로 표면을 입힌다. <작업실 그리고 소재발견의 진화> 살아가는 접근방식 및 창작을 위한 환경적 요소의 변화는 그에게 덩어리와 색채, 평면에 대한 입장을 사회적 문맥과 잇게 하는 중요한 시점을 제공한다. 작가는 시장에 들어왔다. 시장에 들어와 스튜디오를 마련한 후 그는 적잖은 심리적 충돌을 겪고, 이에 따른 창작적 방법의 변화들을 무수히 겪었을 것으로 예상한다. 대부분의 자폐적인 작업실 환경은 집중과 예술가로서의 신비함 등을 그득 선사하기도 하지만, 작업에 대한 즉각적 평가나 생산적 참견을 통해서 단계적 사유를 꾀할 수 없는 불안함이 있다. 당연 사람들과 맞부딪히고 낯선 이들의 방문을 꺼리지 않아야 하는, 또한 ‘~으로 침투’해 간 조건으로 인해 ‘주민화되기’가 정착의 성공 요소로 판가름되는 그곳에서, 오히려 그는 자신의 사회적 활동 및 늘 지녀왔던 취향을 다시금 재발견하고 이를 창작의 모티브로서 심화시켜볼 수 있는 계기를 쥐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전환점을 마련해준 요건의 ‘제 1’은 꼬깃하게 접혀있던 인간 심리 일부를 편편이 펼쳐내게끔 역할하는, 즉 삶을 구체화시키는 어떤 장場, ‘장소’라고 나는 보고 있다. 거기서 대화하는 법을 배우고, 주변 상인이나 주민들과의 공감능력도 키워왔을 것이며, 6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문화적 스펙트럼을 자기 취향으로서 솔직히 발언하고 발산할 수 있는 장소를 찾는데 있어 그만큼 애잔하고 순진한 땅도 없었을 것이다 - 혹자에게는 슬픔과 절망을 그리고 과거에 대한 영화와 미련 때문에 결국은 떠날 수 없는 땅이라면, 다른 혹자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이상으로 혁신을 모색할 수 있는 상상적 봉화대가 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손’의 맛> 그리하여 기능을 상실해가는 시장이 간직한 멜랑꼴리한 생애사와 이를 그대로 반영하는 시장에 놓인 오랜 건축물들은 그에게 사회적 시선을 결합한 상상적 사유의 초석이 되었다. 문 닫힌 상점 간판은 건물의 지난 기능을 보여주고 있으며 사치적 명품의 도상들이나 현대의 공산품들은 건물의 형태가 되어 지금 우리를 패러디한다. 낡은 상가 건물이 층층이 쌓여진 형태의 고층 빌딩은 현대의 세련된 주상복합아파트에 대한 일종의 풍자이기도 하다. 이번 ‘Wicked canvas’展은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 더욱 심화된 작가의 조형어법을 구체화시킨다. 우선 오랜 건축물에 대한 탐구는 실제 매체에 대한 고민으로까지 이어진다. 그가 가장 최근 선택한 매체인 시멘트는 물로서 잘 게이고 응집되면서도 올록볼록 특유의 거친 결을 만들어낸다. 이전 작업에 보이던 건물을 수식하던 간판이며, 도상들은 모두 소거되었다. 다만 건물의 단순한 형태와 각 단층 건물의 양식에서 느껴지는 시대성이 있고, 겹겹의 층으로 둔탁하게 쌓아올린 형태에서 기존의 비판적인 시각적 수식어구들이 모두 개념과 사유의 어구들로 화하여 머릿 속을 맴돈다.

한결같이 고수되었던 회화에 대한 오마주는 몇 가지 기법 도입 후 더욱 극을 발하면서 일편 스토리를 갖게 된다. 입체의 일부는 평면의 소실점을 담아내며, 그에 따라 형태가 변형되는데 이는 실재하고 기능하고 있는 우리의 일상물품과는 전연 다르다. 그것은 ‘입체도상’으로 읽어야 한다. 각이 진 모든 모서리를 검은 선으로 드로잉한다. 이는 빛의 반사와 그림자를 통해 자연히 나누어지는 입체감을 주는, 오히려 모서리를 따라, 빛의 면을 분절하여 색의 구분을 명확히 함으로써 평면적 효과를 강화시키는 것이다. 비단 모서리 뿐 아니라 빛이 스미지 않아 얼룩진 입체감을 주는 작은 홈이나 틈 하나하나에도 검은 테두리를 입혔기에, 입체적 물성으로 이룩한 모든 것은 ‘입체’ 혹은 ‘입체설치’이기보다, ‘평면’ 개념에 더욱 몰입한 형태가 되었다. 이것이 캔버스의 바깥으로 혹은 구겨진 캔버스에 놓인 ‘변형된’ 것으로 형상화되는 그의 조형어법이다. 세상에 대한 그리고 사람에 대한 호기심도 많아, 사귀게 된 지인으로부터 우연한 기회로 얻게 된 ‘생활의 발견’이라는 책을 가지고서, 마찬가지로 그는 시선의 일정한 방향(소실점)을 담아 새로운 조형으로 만들어내었다. ‘커피 한잔’ 조형과 함께 놓여 작가의 일상을 담백하게 설명하는 듯하다. “늘어지게 실컷 잠을 자고 난 뒤 아침에 눈을 뜨고 새벽의 공기를 들이마시면 폐가 부풀대로 부푼다. 그러면 이어 깊이 숨을 들이쉬고 싶어지고 가슴 근처의 피부와 근육에 유쾌한 운동 감각이 일어난다. 자아, 이젠 일도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드는 그러한 때..”(책 본문 중)
 상상하기에 입체와 평면, 색채에 집중하여 내적인 자기 취향과 외적인 역할-거주, 사회적 역할, 예술가적 태도 등-을 교차시키고 이를 심화시키는 작업이 지속될 것 같다. 왠지 때로는 극단적으로 모든 사물을 평면화시키는 대형작업에 도전해보지 않겠나 제안해보는 상상도 하는 것이, 직업인지라 작가의 작업적 변화를 지켜보고 연구하는 것만큼 만족스런 일도 없다. 특히나 애초의 시작이 회화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되었던 젊은 청년이 지닌 ‘순수한 가슴’에는, 자신과 자기 주변/처한 장소와 사회/예술가적 태도 사이에서 교집합을 발견해내고 생산적 프로세스를 구축해가면서, 일상적 가치에 대한 예술적 반성과 세련된 패러디를 키우는 진보가 싹트고 있다. 내게도 계기가 되었으니, 이제 그에게 그 정체를 물을 자격이 있다. <끝>


2012년 5월 9일 수요일

월간미술 5월 전시리뷰_플라스틱데이즈

Review, '플라스틱데이즈', 포항시립미술관




최윤정 ● 대구미술관 큐레이터



상고에서부터 역사를 채취하고 실증하는 매개는 도구였고, 시대문맥을 상징해온 키워드는 도구를 구성하는 재료였다. 플라스틱은 단순히 ‘인공적인’, ‘소비적인’ 재료를 넘어서, 사회·문화적 형태를 포괄하는 우리 사회 이데올로기를 대변하고, 우리 신체 일부로서 인간을 압도하는 시대적 상징이 되었다. 인간이 주조한 모든 것들은 자연의 ‘오염’을 전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인류역사에서 각 시대 도구물들이 차치해온 가치영역을 고려해본다면, 도기나 스틸에 대한 현 우리의 태도처럼, ‘플라스틱’ 역시도 회고적이면서 가치적인 상징이 부여되지 말란 법도 없다. 그것은 ‘실제의 삶의 빈곤, 굴종, 부정을 남김없이 노정하고 표출하는’, ‘인간과 인간간의 분리와 소외의 표현으로서’ 시대권력의 스펙터클을 구성한다.

<플라스틱 데이즈>는 예술창작에 소요되는 ‘플라스틱’이 지닌 재료적 특성에서 출발하여, 현대사회 가치적 문맥을 확장해 나아가는 시도이다. 또한 재료가 주는 일상적 친근함이 관람객들로 하여 작품에 마주하는 부담을 현저히 덜어주는데, 역설적으로 육중한 주제는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기도 한다. 각 작품의 경향들을 보자면, 현대 플라스틱 오브제의 색채감-빗자루나 테이프 등-을 활용한 작업(이기일, 김형관), 아크릴 착화감 등 플라스틱 속성-가벼움-을 심화한 작업(강덕봉, 유재홍), 재료의 상징적 의미차용과 시대문맥을 그린 작업(홍경택, 황인기, 변대용), 문화적 양식과 삶의 표현-인생의 질곡, 신화, 문화를 상징하는 장식문양, 시대풍경-(노상균, 김건주, 김현숙, 박상희, 두민, 심승욱)이 펼쳐진다. 그리고 구축적 구성과 기호의 트위스팅이 배합된 작업(신종식, 장준석, 김봉태, 이슬기, 한경우)이 함께 이목을 이끈다. 마지막 전시실에서 '북극곰! 귀엽다'며 연신 고함을 치는 어떤 아이가 주목한 작품, 그것은 어린이를 위한 공간에 있음직한 반짝이고 예쁜 파스텔톤의 조형물(변대용)이었다. 이는 재료에 대한 제문제와 사회적 이슈를 슬쩍 결합시키는 전략으로, 얼음이 갈라져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한 비참한 곰을 반들반들 아주 귀엽게도 묘사했다. 이번 <플라스틱데이즈>가 기획의 차별성을 구한다면 이에서 한 가지 줄기를 끄집어낼 필요가 있다. 다시금 친근한 매체란 도리어 은근한 소격효과를 불러오며, 극과 극은 통하는 법으로, 이 전시는 어느 때고 건드릴 수 있는 친근한 재료에 대한 ‘가벼운’ 태도와 우리가 밀착해있는 세상에 대한 무겁고 ‘불편한 진실’을 담은 내용들을 마주하게끔 이끈다.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 후보들이 해맞이 공원에 나들이 온 겸, 미술관을 찾는다한다. 취향에 있어 대중적인 부분도 중요하므로 <플라스틱 데이즈>는 이를 적절히 반영하였고, 한편 동시대 이슈와 제반 의미들을 재료적 상징을 통해 감각될 수 있도록 하는 전시였다.

2012년 4월 11일 수요일

민성民性, 2012.3.6~2012.7.29, Daegu Art Museum

한국적 표현주의
Korean Archetype, 민성民性

최윤정 대구미술관 큐레이터








Intro

대구미술관의 철학적 지향성과 비전을 선보이는 주제전의 일환으로 마련된 ‘민성民性’은, 2011년 개관주제전 ‘기가차다’, ‘삶과 풍토’1)와 마찬가지로, 한국현대미술이 갖는 차별적인 지점을 연구하고 그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미학적 의의를 제시한다. ‘기가차다’는 한국현대미술의 향방을 고유의 정신사적인 측면과 연관시켜 제시하였고, ‘삶과 풍토’는 우리의 물리적·환경적 조건에서 비롯되는 삶의 특수성으로서 한국현대미술의 경향성을 선보였다. 이에 ‘민성’은 민족의 시원(始原)적인 요소, 원형(原形)적 측면에서 발현되는 한국인의 서정과 의지를 우리 미술의 원초적 서사로서 담아낸다.

‘민성’은 ‘한국적 표현주의’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이다. '한국적 표현주의'라 불릴만한 연구를 제시하는 기준은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하나는 작품 소재와 주제_기법과 형태_시대성과의 연관 등 작품을 둘러싼 외화(外華)적 측면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한 측면은 예술가의 내적인 창작인(創作因)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국성'의 단면을 표현론적 관점2)에 연결한 지점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4인의 작가-박생광(1904-1985), 서용선(1951), 김종학(1937), 황창배(1947-2001)의 경우, 그들의 세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화업이 한국미술에서 첨예한 대립각을 마주해야 했던 70, 80년대에 태동하거나 그 시기 진가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들을 묶을 수 있는 동시대성을 발견할 수 있으며, 또한 그들이 자기 발언으로서 택한 창작의 기법과 소재들이 시대적인 요청과 창작 모색과정에 있어 한민족의 잠재된 서정을 깨우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유사한 측면을 논해볼 수 있다. 그 속에는 개별의 삶이 겪는 열락이나 역경, 불현듯한 깨달음, 지적인 성찰 등 의식/무의식이 생산해내는 '생의 문제'가 또한 결부되어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요소들이 어떠한 과정과 방식으로 작품에 표현되어 전달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본 전시의 목적이다.
한국적 표현주의를 일컫는 조어(造語)로서의 민성, ‘민民’은 인간 생의 형태와 원초적 의지를 포괄하는 삶의 형形을 뜻하고 ‘성性’은 면면이 이어져오면서도 현재화되어 표현되는 우리의 ‘성정’이나 ‘기질’과도 같은 것이다. 이를 합친 ‘민성’은 일차적으로 '무의식이 작용하는 비합리적인 활동'으로서 내면에서 발현되는 ‘욕구․의지’에 우선 기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표현론 내지는 표현주의가 차지하는 수많은 가지들 중 하나의 영역에 통섭될 수 있는 요소가 되며, 또한 한국인/한국성이 공유하는 삶의 형形-문화적 원형과 역사에 대한 기억, 특유의 풍토에서 비롯되는 경험 등-으로 축적되어온, 우리 고유의 서정성을 함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서정성이란 (예술)의지와 (예술)충동을 추인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 기층의식이 주조해낸 '공감정서'가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 ‘민성’은 원형적 증거로서 신화나 설화와 같은 옛이야기, 영성(靈性)으로서 구체적인 삶에 직접적으로 배어있는 민속적 양식, 그리고 역사성과 기억감정을 민족적으로 공유하는 단면들을 다룬다. 그리고 세상과 대결하면서 결연히 생을 유지해온 민초적인 힘의 의지를 비유하는 개별 실존을 다룬다.
이에 따라 연구집으로서 본 도록에서는, 우리의 심층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구비문학, 특히 ‘설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민성’의 의미를 추적하고3), 개별의지이자 예술가의 내적인 창작 동인을 설명하는 표현주의적 관점의 미학4)을 함께 실었다. 마지막으로 ‘민성’의 기획에 대한 전 연구단계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꾀하기 위해 그 시작과 과정에서 소요된 이야기들을 인터뷰5)를 통해 담아내었다.

민성 작가 4인
1970년대와 1980년대 이탈리아 나폴리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신표현주의 경향인, ‘트랜스아방가르드’6)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역사나 철학, 문학과 신화 등으로부터 창작에 대한 영감을 얻고자 한 것은, 다시금 회화 자체의 표현성을 회복하고자 한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공감과 자부심을 기반으로 '자기다움'을 좇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자 함이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물론이거니와 전 세계를 휩쓸었던 모더니즘적 개념미술과 아르테포베라(Arte Povera)가 남긴 창작의 획일성은 도리어 자기 심층에서 울리는 소리를 더욱 그리워하고 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적 요인을 제공하였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민성 작가 4인은 시대적으로 한국의 70년대 모더니즘적 개념미술, 80년대 민중미술Minjung(民衆)Art이라는 양대 산맥과 나란한 행보를 보였다고 말할 수 없다. 단언하건데, 자기 내부로부터 충분히 발효되지 않은 형식을 무반성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단순한 트렌드적 차용일 뿐이지, 본연의 창작욕구에 대한 해답이 될 수는 없는 탓이다. 다시금, 선택의 여지가 없는 획일적 경향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때조차도, 그들은 당대 타락이라 규정지었던 구상적 회화를 버리지 않았고, 또한 사회혁명을 목표로 한 정치적 회화를 마주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스스로도 혼란한 시기, 그들은 도리어 '의지적 행보'를 선보인다. 자신이 해오던 바에서 시대를 읽고 자신에게 걸맞는 도상을 담아내었다. 그리고 직접적인 발화(發話)를 억제하면서도, 강렬하고 인상적인 색/구성을 통해 심층적 의식을 강화함으로써 우리 안에 응축된 ‘민성’을 끌어내고자 하였다. 박생광은 '민족성'과 ‘불교·무속’에 대한 재발견을 통해서, 서용선은 '역사적 서사'와 '현대사회'에 대한 냉엄한 시선 그리고 비정한 자기 초상을 통해서, 김종학은 '전통적 민예미'와 '그의 감정'을 자연에 이입하면서, 마지막으로 황창배는 '전통성'과 ‘현대성’을 쥐고서 형통한, 실험을 통해서 이와 같은 면모를 선보여 왔다.

박생광(1904-1985)채색화를 일본풍의 그림과 동일하게 인식했던 시기가 있다. 당시 동양화단은 사의寫意의 명제로서 자연과 문인적 화풍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며, 채색화보다도 수묵이나 수묵담채가 더 값어치 있게 인식되던 시기였다. 박생광이 일본에서 교육을 받아왔기에 그의 채색화는 곧바로 일본풍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하였고, 또한 한편 그는 일본화단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작품의 수준도 인정받았던 바, 이 같은 오명을 부지불식간에 소거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작가 박생광에게 이는 반드시 극복해야만 할 소명인 것으로 여겨졌다. 몇 시기의 창작 모색 단계7)에서 살피자면, 진주시절을 거쳐 상경하였던 1960년대는, 그가 '한국적인 회화'를 주창하면서, 민족적인 소재로부터 영감을 찾고자 애썼던 시기다. 그리고 1970년대에 이르러 박생광은 '고희'의 나이를 넘겨 드디어 '일본적인 채색화'의 수식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그가 한민족의 기층문화로서 맘속에 품었던 불교적 소재와 민속적인 내용들이 그만의 진채기법을 통해 생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기법은 '그냥' 형식으로서만 읽을 수 없다. 그가 민족적인 주제로서 천착한 요소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칼집이자 권법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박생광의 진채기법은 그 자체가 이미 그의 표현의지와 동일하며, 한국의 기층문화에서 면면이 이어져오는 전통회화-그것은 불화이기도 했고 무속화이기도 했다-로서 바로 그가 욕구한 '한국적인 회화'의 주춧돌이었다.
“따지고 보면 한국회화사의 주류는 결코 채색거부의 그림만도 아니었다. 심한 경우는 난하게 여겨질 정도로 색채들을 강렬하게 구사하곤 했다. 민족미술의 머리 부분을 글자 그대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고구려의 고분벽화를 우리는 잊을 수 없다. 그 무덤 속에 간직되어 있는 빼어난 채색화들은 한화(韓畵)의 원류로서 값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소중한 보배가 아닐 수 없다. 이의 전통은 고려시대 불교회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8) 그의 관심은 오랜 기간 불교에 있었다.9) 그는 또한 불교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실제로도 불화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예의 영향을 통해서 그가 만들어낸 진채기법이란 화선지 위에 주홍빛 아교채색으로 굵직굵직한 윤곽을 만들어내고→그 위에 주홍빛의 윤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교먹물을 흩뿌리며→ 그 다음 윤곽선 사이사이를 채색으로 메워가는 방식이었다. 진채기법은 색을 켜켜이 쌓아올리는 과정이자, 민화적인 다채로움을 고루 갖추고 있기에, 그의 조형세계가 우리 토착문화, 기층문화에서 비롯하는 원형적 요소와 밀착해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샤먼 김금화10)와의 만남에 대한 에피소드는 이를 더욱 보강하는데, 민속적인 주제는 물론이고 자신의 무속시리즈에 대한 영감까지 그로부터 구체화하면서 한국의 샤먼에 대해 관심을 갖고, 특히 중요한 굿이라면 행해지는 어디든 찾아가 그 장면을 스케치로 남기기도 하였다. 평생에 소원하던 인도성지순례(82)는 그의 전성기를 예고하는 듯한 영감을 그에게 안겨주었다. 이후 타계할 때까지 완숙기에 접어든 무속, 불교적 소재 외에도 한민족의 역사 속에 자리한 저항적 인물(전봉준)과 핍박의 상징(명성황후)으로 대표되는 '한'의 역사시리즈를 남기게 된다. “나의 작품을 유파적으로 분류하면 북종화에 속한다(사실적인 채색화). 그러나 文부(중국)의 북종화와는 달리 이번 인도여행에서 나의 작품세계는 더욱 더 力을 얻게 되었다. 인도의 신들, 예를 들면 피와 생명을 탐식하는 피의 여신! 그들의 칼라를 보고 더 힘을 얻었다. 한국의 불교! 무당의 그것처럼! 신의 영감을 또는 우리 고려불화의 그 증화적(繒畵的)인 생명력을 현대적인 나의 힘으로 작품화하는데 있다(1983)” 결국 그가 정립한 ‘그대로 화풍’은 민족적 감성이나 우리의 옛 것 그리고 기층문화에 대한 내적인 이끌림을 쥐고서, 한국인의 정신적인 미감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적층되어 온, 온전한 그의 힘이었다.

서용선(1951)“세월이 흐르면 인간의 뇌리에서 역사의 아픔은 지워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아픔을 낳게 한 인간의 부조리와 불합리한 행위는 진실 그 본연의 모습으로 남기 마련이다. 그것은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역사의 객관적인 사실로, 개인의 마음 속에 본능적인 감성의 느낌으로 자리 잡기 마련이다. 그동안 단종의 비극적인 죽음은 역사와 함께 의도적으로 은폐 혹은 왜곡되어왔다. 그 역사는 지금까지도 정치·사회·경제의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사건에 얽힌 피해자와 가해자, 나아가 그들의 자손들에게 여러 사회적·심리적 문제들을 파생시켜 왔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다”11) 아카데믹한 회화와의 결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서용선은 역사를 주제로 한 작품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그의 역사화는 70,80년대 시대상과 마주하여, 군부독재의 비합리적인 권력 쟁취와 그것이 우리 삶에 개입하는 모순성을 사유하면서 느낀, 작가의 도덕적인 회의감에서 비롯한다. 이것은 서용선이 왜 ‘계유정난과 단종폐위에 대한 역사화’를 긴 시간동안 그려왔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하는데, 그에게 단종폐위와 관련한 세조의 이야기는, 권력쟁취에 대한 명분과 폭압에 대한 당대 사회적 분위기를 비유하였다. “역사는 근대 시기 이래로 세계가 탈주술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전문성의 권위를 부여받고 국민국가의 공인을 받으며 서술역사로서 변모하였고, 이러한 공식역사가 사회를 주도해왔다. 역사는 집합기억들을 병합시켜 공식기억을 주조하거나 아니면 대항기억을 억압 혹은 주변화시켜 결국에는 망각의 늪으로 밀어넣기도 하는 권력의 역사였다.”12)
작가의 역사적 심안을 통해 드러나는 권력에 대한 이야기는 힘의 작용과 반작용이 만들어내는 팽팽한 긴장감을 상기시키듯 원색적인 색감과 필치로 화면 가득히 묘사된다. 그의 역사화는 그렇기에 사회상을 반영하는 역사적인 사건을 묘사하면서도, 그 역사에 얽혀있는 ‘인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80년대 현실참여적 회화가 지닌 이데올로기적 요소라든지, 사회주의 공산국가에서 선보이는 기록화와는 판이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는 역사화 작업과 동시대 세태 풍경을 지속적인 연작으로 선보여 왔다. 그리고 한민족의 ‘한’이 서린 한국전쟁시리즈나 설화시리즈가 또한 동일한 문맥에서 소개되어 왔다. 그가 역사 속에서 발굴한 주제들은 지금 현재에도 세계의 도시들 한 복판에 처해진 인간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13) 또한 그 비참한 역사를 되풀이해가는 과정은 그가 세태풍경에서 묘사한 의지가 없어 보이는 현대인들의 단상, 익명성과 군중의 우매함에 대한 날카로운 자성을 투척해온 것이다.
그는 과거 역사적 서사가 지니는 시간적 층위들을 한 화면에 중첩시킨다. 그리하여 역사적 기억을 깨우면서, 동시에 우리 기저에 있던 집단적 비애감들을 자극시킨다. 내부환경과 자극적인 외부환경에서 살아남고자 악착같이 자신을 유지하려 하거나 혹은 가혹하게 적응해야만 하는 상황들에 마주하는 것. 또한 그가 선사하는 인간/군상은 무의지적이며, 비극적이다. 사회에 대한 도덕적 회의감을 작품의 비애감으로 표출한 서용선은 자기초상에 있어 굴욕적으로 엎드린 형상이거나 혹은 비장하거나 몹시 화가 난 듯한 격한 표정을 분출하기도 한다.
주제에 대한 자료를 체득하고 관찰하는 과정에서, 그는 직접 답사를 하여 작업노트를 남긴다. 장소와 자신의 온도를 맞추어가면서 ‘그곳’이 함의하고 있는 서사와 사연들에 골몰하는 바를 기록하였고, 그로부터 생성된 감정들을 또한 스케치로 정리하였다.14) 그 과정에서 그는 “‘사건’보다도 그 사건 속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인간’의 ‘마음’에 매료되고 있었고(...) ‘사건’을 더듬어 가면서 그 ‘역사의 구조를 그리고, 그 점에서 노산군(단종)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그러나 실제 작품으로부터 내가 느끼는 것은 오히려 비극의 속에 놓여진 노산군(단종)의 ‘마음’인 것이다.”15) 시대정신은 물론이고, 인간에 관계한 다양한 층위들_현재화된 역사이자, 군중, 사람, 마음-을 쏟아 붓는 서용선에게는, 보편적인 도덕에 대한 성찰적 물음이 있고, 휴머니즘에 기반하여 역사적 비극을 공감화하면서 우리의 기억감정을 추출해내는 힘이 있다.

김종학(1937)
김종학의 화업은 젊은 시절 동료들과 더불어 서구 모더니즘을 수용한 악튀엘Actuel의 동인활동에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서구적 모델을 습득하고자 열심히 따랐지만, 그 이상의 내용적인 깊이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단순히 형식만을 좇는 동어반복에서 결국 그는 탈주를 희망하였다. 우선적으로 서구적 형식과 경향을 수용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그는 결국 창작과 창작에 대한 태도를 회의하고, 그로부터 비롯된 심한 내적 갈등을 겪게 되었다. 이는 예술가로서의 생生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또한 우연적으로 찾아온 개인적인 요소들로 인해 한 인간으로서 그가 겪은 심적인 고통은, 도리어 심연에 놓여 있던 그의 솔직함과 순수한 창작에의 의지를 움트게 하는 촉매였을 수도 있다. 살아내고자 찾아간 설악산은 이러한 그의 의지와 서정이 표현적으로 펼쳐질 수 있었던 자연의 화판이었다.
구상회화로의 변이16)에 있어서 그에게 ‘민예民藝적인 것’에 대한 서사는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작품이 순수한 자연을 그리고 있고, 그것이 그의 심정을 감정이입하는 매개로 지칭된다 할지라도, 그의 작품이 갖는 표현적인 측면은 작가의 민예미에 대한 심취와도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름없는 옛 장인이 선사하는 비례미와 조형적인 짜임새는 현대미술감각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다. 김종학은 이때 목기수집가가 되었다. 목기만큼이나 그는 전통 수예품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서, 화가로서의 색채감각에 대한 영감을 민화적인 요소에서 발견하기도 하였다. “전통시대에 밝은 색채감을 실현한 대표적 현물이 바로 베갯모, 주머니, 수저집 같은 우리 민예자수품의 수화(繡畵)였다. 수화의 바탕색인 적색, 흑색, 보라색, 청색 등은 김종학 그림의 바탕색으로 나타난다. 이 바탕색을 근거로 소망 또는 기복의 전래 상징이던 꽃과 새가 모티브로 등장한다 (...) 색깔의 배색에서도 우리가 전통적으로 원색의 진한 맛깔과 보색의 묘미를 능히 동원하고 구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김종학에게는 더없는 원군이 되었다. 청록빛 나무와 풀로 뒤덮힌 들판에 빨간 꽃이 등장하는 김종학의 그림에서 자주 만날 수 있듯이, 보색을 배색하면 선명한 인상을 준다. 눈 망막 색신경이 어떤 색의 자극을 받으면 보색관계의 상대 색에 대한 감수성을 높여주는 기능 때문이다.”17) 그뿐이 아니다. 그리하여 그의 화면은 색의 현란함과 균질화된 조형과 그로인한 평면성에서 거두어지는 ‘기운생동’의 화기가 만연하다. 이같은 기운생동의 표현은 비단 민예풍의 기법적 측면을 넘어서, 작가의 ‘살이’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세속과 떨어져 1970년대 후반 설악산으로 들어간 작가는 그저 봄에는 봄을 여름에는 여름을 가을에는 가을을 겨울에는 겨울을 그리고자 하는 자연인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것은 목가적인 자연회귀가 아닌, 그의 예술의지가 의욕하여 자기만의 화두를 쫓아 나선 고뇌의 도정이었다. “흰 눈이 내려서 그런지 그렇게 깜깜한 밤이 아니구나. 아빠는 지금 이 시간이 제일 행복하단다. 무엇을 창조한다는 것은 창조의 길을 가는 사람만이 갖는 특권이다. 물론 외롭고 고달프고 때로는 겁도 나지만, 오직 자기 홀로 서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아니 길이 없는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재미는, 다른 사람들은 모를거야”18) 그의 작품에는 들풀의 생명력과 꼬물거리는 넝쿨들의 향연, 자연이 선사하는 이름모를 색채들이 꽃을 통해 발화한다. 일필휘지 혹은 휘젓고 짓이긴, 무작위적인 그의 붓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그는 섬광처럼 스쳐가는 화재畵材를 뇌리에 입력하여 에스키스해 둔다. 그리고 불현 듯 캔버스에 옮기는 과정에서 그의 분방한 정서가 화면에 나타난다. 그의 잠재적 조형의식과 그가 좋아하는 한국적 원시성이라 할 수 있는 민예적 감흥이 녹아내려 천진난만하고 동심적인 환상으로 나아가는 사이, 그만의 독특한 천진고박天眞古한 세계가 무르익는다”19)

황창배(1947-2001)한국화단의 '실험정신'으로 논구되는 황창배는 80년대 중반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만들어 내는데20), 수묵과 담채를 이용한 ‘선염’과 뿌리기 행위를 통해서 그는 우연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들이 화면에 잔영처럼 떠오르게 하였다. 그리고 그 우연적인 이미지들 속에서 즉흥적으로 유추된 형상을 추출해낸다. 유추된 형상은 작가가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감성에 따라 나무가 되기도 하고, 여인(여신)이 되기도 하고 어머니의 자궁에서 쉬는 듯한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것은 때로는 기도하는 모습이기도 하며, 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형태이던지, 또한 중력이 없는 듯 부유하고 있거나, 어딘가에 서린 채로 그 존재를 반짝이는 자연의 영들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황창배는 일반이 가져봄직한 작품 주제나 형식에 대한 철두철미한 서사를 준비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기대고 있었던 바는, 원초적인 표현의지와 추상적인 잔영으로 차오른 이미지들이 선사한 상상력이다. 우리의 눈과 의식이 무관심적으로 스치는 수많은 이미지들과 의미들에 대해서 한번쯤 의구심을 품어 본다면, 우리 눈이 눈에 보이는 데로만 사물을 인지하기보다 상황과 심리, 관심에 따라 의지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해볼 수 있다. 황창배의 '설화시리즈(일명 숨은그림찾기)', ‘색면추상 시리즈’는 이에 대한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는 아마도 "모든 예술 실천 분야에서 한국성(Koreaness)을 구하"려는 그의 강건한 의식과 "이에 경시되고 있던 민화가 독창성과 혼으로 넘치고 있음을 깨닫는"21) 과정에서 한국인의 집단적 무의식의 원형으로 상징되는 설화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켜 그의 표현적인 감성에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동양화와 서양화 구분이 무색함을, 표현할 수 있는 범주에 대한 불합리한 ‘한정’으로 여기는 것 이상으로, "양차대전 사이 36년 동안 일본의 한국통치 때 부과된 예술학교 학과과정의 잔재인 동양화와 서양화 간의 부조리한 분리를 거부하는"22) 의지적 시선을 우리는 그의 작업에서 읽을 수 있다. 주제에 대한 목표나 지향점이 없다는 것은 그렇기에 단순한 자유분방함이 아니다. ‘무미無美’가 미가 아닌 것이 아니라 미의 ‘보이지 않는 진리’를 천명하는 것처럼, 작품 내용에 즉한 설명 외에도 그가 창작에 임한 ‘무법無法’의 태도와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주제의식으로서 동시대성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당대 평단에서는 그의 즉흥적이고 뛰어난 감각이 조선시대 민화가 지닌 ‘순수하고 기교 없는’ 정신을 현대적으로 해석해냈다고 평가하였다.23) 황창배는 형식에서만이 아니라, '주제가 있거나 혹은 없거나(untitled)', 설명적 의도 혹은 모던적 세련미와 관계한 기존 주제의식이 전제하고 있는 기준들을 전복시키고, 전통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현대적 가치를 기준으로 제시하는 획기적인 발상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과정은 ‘설화시리즈’나 ‘색면추상’에서만이 아니라 그의 전 작업을 통할하여 우리가 왜 그를 ‘파격과 일탈의 화가’라고 부르는지 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Outro

독한 삶이 던지는 필연적인 과정에서 우리는 그것이 묻는 질문에 연속적으로 답하는 형식으로 현재를 살아간다. 그때그때의 의지와 판단은 현재를 놓고 과거의 기억으로 회귀하거나, 판단의 합리화를 위하여 미래를 끌어들이기도 한다. 우리가 세계에 처해있는 모습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 가지 시간을 의식 속에서 조합하면서, 이에 대해 회귀하거나 혹은 성찰하려는 되새김질뿐이다. 그것은 참으로 공평하다. 그 어느 것도 확답할 수 없으며, 그 어떤 판단도 확신할 수 없는 근본적인 비극성을 모두에게 전제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기억과 구전되는 이야기에서 우리는 마찬가지로 보편적이면서도 공감적인 형태의 감성인 비극성을 발견한다. 아마도 더욱 극적으로,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고리를 지닌 사람들. 그들이 삶의 답을 구하고자 수행하는 여정 속에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이에 관계하며 자신의 가치를 정립해가는 과정이 담겨있다. 이는 흡사 민성작가 4인이 창작 전 단계에서 고뇌하였던 외화적인 요인들을 비유하는 듯도 하다. 그들 모두에게 일치하는 하나의 표식으로서, 망각을 발견으로 암담함을 개척으로 승화시키는 ‘의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의지란 다양한 양태로 生생/세계에 빛을 추동하게끔 하는 동력인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성을 통틀어 자기 존립 근거를 조직하려는 원초적인 힘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술가에게 의지란 예술가의 존립근거를 조직하려는 원초적인 힘이고, 예술가의 존립근거란 생이 근원적으로 던지는 비극성에서 출발하여 예술 표현과 창작에 대한 동시대성을 자체적으로 구축하는 도정에 놓여진다. 박생광과 서용선, 김종학과 황창배의 동시대성은 ‘한국적인’의 시대적 요청과 ‘표현’이라는 개별 의지로 거두어낸 ‘민성’ 속에서 그 의의를 다시금 재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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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가차다’(Qi is full 2011.5.26-)는 1·2전시실을 통해 ‘의를 그리다(Drawing Yi)’, ‘적을 보다(Seeing ji)’ 두 섹션으로 구성된 대구미술관의 첫 주제전으로서 인문학적 지향성과 정신사적 문맥이라는 사변적 측면에서 한국의 현대미술이 지닌 철학을 논하였고, ‘삶과 풍토’(Life, Nature, Human 2011.10.-2)는 1·2전시실을 통해 ‘삶’, ‘풍토’의 섹션으로 나뉘어, 토양과 삶의 형태를 비추는 물리적 측면에서 현대미술의 창작론을 보여주었다.

2) "한국적 표현주의라 할 만한 이들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표현적 감각, 그리고 그 밑바탕에 깔린 작업의식은 예술이 근원적으로 갖는 어떤 잠재성이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무엇이 이런 양식으로 나아가게 했는가라는 점이다. 미술에 관한 어떤 논리나 조류보다 내면의 심적인 동기가 문제이다." 김수현「한국 표현주의 화가의 창작미학」, 본 도록에 수록

3) 「민성은 어디에 있는가? 설화가 말하는 민 혹은 인간의 얼굴」, 조현설, 본 도록에 수록

4) 「한국 표현주의 화가의 창작미학」, 김수현, 본 도록에 수록

5) Interview, 피디어스 김용대님과의 대담, 본 도록에 수록

6) 아킬레 보니토 올리바(Achille Bonito Oliva)에 의해 명명된 ‘트랜스아방가르드 Transavantgarde’의 대표적인 작가는 산드로키아(Sandro Chia), 엔초쿠키(Enzo Cucchi), 프란체스코 클레멘트(Francesco Clemente) 밈모 팔라디노(Mimmo Paladino) 등이다. 이들의 작업은 강렬한 색채와 신비한 분위기, 신화, 타 문화의 영향을 통한 상상적 이미지, 전통적인 도상 차용 등의 특징을 보이고, 20세기초 표현주의와 전통적 구상회화를 절충한 형식적 특징을 띤다.

7) 최병식은 박생광의 회화시기를 5단계로 나누어 보고 있다. 제 1기(1920-1945)는 학습시기, 일본유학 및 활동시기, 제 2기(1945-1974)는 모색시기, 모국으로의 귀국과 고향 진주에서의 활동, 67년 상경 후 한국적인 회화의 필요성을 주창하였고 이때 한국의 문양, 문창살, 단청 등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제 3기(1974-1977)는 2기의 작업을 심화해가면서 일본화풍을 정리하는 시기였고, ‘그대로풍’이 정립되고 그 만의 진채기법이 전개되는 제 4기(1977-1982)를 맞이한다. 이때 불교적 성향, 무속적 소재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으며, 인도성지순례 및 프랑스 여행을 통해 창작적 정열을 다시금 가다듬게 된다, 이후 타계 전까지 약 3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그대로풍’은 절정기(제5기, 1982-1985)를 맞이하는데 무속, 불교시리즈는 물론 대형작업인 역사인물시리즈가 이때 소개된다.

8) ‘민족미술의 한 양상과 진로문제-박생광의 경우를 중심으로’의 3부, 미술비평가 윤범모, 1997
“고도의 세련된 미의식과 제작기술은 조선시대 내불외유(內佛外儒) 시대가 되면서 퇴색되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하지만 귀족예술이 아닌 민중의 그림으로 몇몇 십왕도(十王図)나 감로탱화(甘露탱화)같은 곳에서 명맥을 엿볼 수 있다. 이밖에 초상화나 속화(俗畵)같은 이른바 민화(民畵)같은 재미있는 장르 속에서 채색화의 찬란한 전통을 쉽게 확인할 수가 있다.”

9) ‘그대로 박생광 화백의 삶과 예술에 대한 회상’, 유홍준
“그러나 내가 아는 한 박생광 화백은 결코 불교에 심취한 분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우리 고유의 전통과 역사에 심취해있었다. 그것은 그가 역사화를 즐겨 그리고 십장생, 조선여인, 무당, 장승 등을 많이 그린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박생광에게 불교란 우리 역사의 일부로 인식되었을 뿐이다. 넓게는 동양의 사상으로서 불교였다.”

10) 중요무형문화재 제 82-나호 서해안 배연신굿 대동굿 무녀 분야 기능보유자

11) 14p 시선의 정치_서용선의 작품세계, 정영목, 학고재, 2011

12) p.176 철학, 문화콘텐츠를 말하다, 박상환, 도서출판 상,2011

13) 이인범, 일상적 ‘삶’으로 귀환하는 예술, 월간미술 2002년 6월 “1960,70년대 초를 방황했던 청년기, 작가수업, 1980년 서울의 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권력투쟁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희생자에 대한 개인적 혹은 공동체적 기억과 삶 체험들은 서용선의 다양한 작업의 밑바닥을 가로지른다. 그러나 그의 세상 체험이 그렇듯 그가 그려내고자 했던 ‘삶’ 역시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기 보다는 그것은 행복한 삶을 불가능하게 하고 저지하고 짓누르는 삶의 폭력성 또는 비극성이었다.”

14) “스케치를 다른 대작으로 옮길 때에 중요한 것은 있는 모습의 형상을 본뜬다기보다 직접 현장에서의 기록이 담긴 선을 다시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죠. 스케치의 재현이라기보다 하나하나 감성의 요소를 중시 여긴다고 할까요”, 김윤정, ‘이미지가 시야에 사로잡히다’ 미술세계, 2003년 7월

15) [사람이 사람으로 돌아갈 때_서용선의 시도], 치바 시게오(미술평론가), 2008

16) “김종학의 회화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 1960-78년에는 서구 모더니즘의 수용과 실험기이자, 그에 대대 회의를 갖는 시기이다. 1979-86년 사이는 변화의 모색기이다. 설악을 만나고 자연과 전통미에 회귀한 김종학 화풍의 형성기이다. 설악에 정착한 1987년부터 현재까지는 김종학 회화예술의 성숙기라 할 수 있겠다. 2006년부터는 상상화의 새 전개를 보이는 듯 하다” <봄에는 봄을 그리다>, 이태호

17) 김형국,「그림으로 환생한 민예품 사랑_김종학 화백의 경우」, 『김종학 회고전』, 국립현대미술관, 2011

18) 김종학, 딸에게 보낸 편지에서 발췌

19) 송영방,「김종학의 풍모와 그의 그림을 말한다」,『김종학, 김종학이 그린 설악의 사계』, 열화당, 2004

20) 황창배의 작품창작 추이는 다음 세단계로 나뉜다. 1980년대 '설화시리즈' 민화와 설화적 내용을 담았고,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색면추상시리즈' 색면의 강조를 통한 추상표현주의적 평면작업을 거쳐 1990년대 중반 이후 평면의 역동적인 표현과 그 형식의 자유로움이 그대로 묻어난, 그야말로 '무법無法의 완성' 시기이다.

21) 홍가이,「황창배 개인전 서문」, 1993, Boston FineArt Gallery
"이렇게 무엇이 독특하게 한국적인가를 찾는 과정에서 그는 영감의 기원을 중국에 두고서 공식적으로 인가된 정통 동양화의 전통을 따를 뿐인 동양화 유파와 결별을 고하였다(...) 모든 민화에 극명히 깃든 혼은 한국의 지배계급이 억압하려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서민의 심장과 영혼의 어두운 구석에서 타오르던 바로 이 대담하고 독창적인 혼이었다."

22) 홍가이, 위와 같은 글

23) "서민들의 삶의 양태가 축약되어 있는 민화야말로 한국이라는 지역성을 그림에 연결시켜 볼 수 있는 참다운 민족적 양식이라고 믿고 민화를 단순히 형식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민화가 지향하는 순수하고 기교가 없는 천진난만함에서 오는 정서나 감동을 보여주려 하였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불노초나 선인의 이미지, 그리고 남녀의 열락의 풍경은 모두 민화에 그 맥락이 닿아있다. 특히 유동하는 수묵과 색채의 얽힘과 녹아흐름은 민화의 현대적 변주를 다양하게 하고 있다." 최광진「황창배:새로운 한국화에의 집념」, 1994, 삼성미술관 도록

2012년 2월 11일 토요일

2011.12.6~2012.4.1, Daegu Art Museum

김수자의 <바늘여인>, 성소적 의식



최윤정 큐레이터, 대구미술관



I. 들어가며



이번 기획은 포섭되어 있던 고정관념을 유지하기보다, 벗어나고 빗겨가는 관점에서 새로운 배치를 진입시키는 실험으로 마련되었다. 애초 '예비수장고', 창고의 시각적 구조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룸은 '지하_빛의 차단', '날 것 그대로 노출된 콘크리트' 벽면과, '길의 속성_통로와 교차로'를 잇는 형식을 띤다. 첫 번째 <메이드인대구>1)가 전시공간으로서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면, 이번 전시는 공간자체가 지닌 특성을 기획으로 연결해보는 시도이다.
프로젝트룸은 애초 18개의 기둥만이 덩그러니 천장과 바닥을 잇고 있는 형태였다. 전시장으로서 기운을 심고자 각 기둥을 잇는 벽채를 완성하고 6개의 기둥을 인공적으로 더해 '통로_길', '교차로_중심'의 형태를 기본 골조로 한 공간조성이 진행되었다. 이 기본 형태는 전시공간으로서의 역할을 기초적으로 수행하면서도, 간접적인 빛이 전혀 들지 않기에 조명의 효과와 빛의 조도를 활용한 설치작품 및 연출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게 한다. '교차로_중심' 방향에서 보이는 각 면은 기본 너비가 6m가 넘는다. 이것은 또한 여러 각도에서 공간연출의 규준을 힘있게 제공하면서도, 공연과 퍼포먼스 그리고 필름 등 실험적이고 장르 통섭적인 기획을 모색할 수 있도록 돕는다.
따라서 프로젝트룸의 기획은 공간의 특성적인 형태와 더불어, 지역미술의 실험성을 발굴하고, 젊은 예술을 수용하며, 공간해석을 통한 다양한 장르를 연구의 핵으로 삼아 '무차별적인'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번 전시는 밀도 있는 공간해석 및 작품소개를 위해 초기부터 하나의 작품으로 구상된 '영상 시리즈'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구출신으로 세계 무대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는 작가 김수자(1957)를 초대하였고, 그가 프로젝트로서 선보여 왔던 영상작품들을 스터디하면서 그만의 색을 보이면서도 프로젝트룸 해석의 방향성과 유연하게 합치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첫 시작은 프로젝트룸의 '교차로형(십자형) 구조'에 대한 독해였으며, 지속되었던 논의 속에서, '통로형 구조'의 변형체로서 '대칭적인 미로' 구조를 상상하게 되었다. 하나의 프로젝트로 기획된 각 영상들은 기존 설치방식에 따라 구성되기보다, 의도한 동선 안에 위치한, 다양한 스크린 속에 놓여진다. 작품과 공간이 마치 하나의 설치작으로 일체화되어 공간의 의미가 보다 적극적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이번 기획에서 본 연구관점에 대한 핵심과 사유의 기준을 마련한 작품은 그녀의 대표작 <바늘여인>(2005)으로 이 작품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과 가난, 국제적 고립과 내전의 상징적인 현장을 무대로 한다.
6점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슬로우모션을 통해 시간을 연장하고 실제 인물 사이즈를 구현한 형태로 본래 하나의 벽면에 나란히 놓였다. 작가의 몸은, 시간의 축으로서 관객과 세상 간 매개로 작용하고 보는 이는 작가의 몸을 빌어 시간적 간극을 인지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는 각 도시별 지니는 갈등적 요소가 이러한 인지과정을 통해 유화되어 심리적으로 자연스럽게 풀어지게 하고 그 근간에 남게 되는 인류의 보편성과 본질의 문제를 성찰하게끔 유도한 것이다.
본 전시는 가능한 이를 놓치지 않고, 공간해석이 오히려 작품의 의미를 체험의 국면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그래서 공간이 지닌 '길' 구조가 감상의 물리적 거리를 설정하는 일차적인 역할을 하게 하고, 한 작품과 다음 작품을 이으며 걷는, 일종의 수행적 산책이 동선을 통해 유도된다. 이는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사색을 위한 심리적 거리distance를 과정적으로 의도한 것이며, 관찰과 몰입 그리고 작가의 몸을 매개로 인식할 수 있는 특유의 인지적 체험을 3종류의 여섯 화면을 통해서 보다 극적으로 이끌기 위함이다. 따라서 동선의 마지막에 놓인 작품까지 감상하고 난 뒤라면, 관객은 관람자 이상으로 전시자체에 '참여'한 주체이자, 작품에 대한 고유한 사색의 궤적을 가질 수 있다.
본 연구단계에서 필진의 구성 또한 본 기획의 핵심을 형성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한다. 우선 체계적 사유의 기획으로 김수자의 전 작업을 문맥화2)하고, 작가의 작업을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노마디즘'에 대해, 이에 적절한 적용과 해석3)을 꾀해본다. 그리고 '원형적' 사유에 대한 단초로서 성찰과 기억에 대한 관점4)을 보이고, 문화적 원형에 있어 동아시아의 샤먼사상과 유불도사상을 비교분석한 논문5)을 참조로 수록함으로써, 다각적으로 작가와 작품이 지닌 의의를 인문학적 시선으로 유도하기로 한다.

II. Connecting



보편적 공간에서 '대칭과 미혹의 공간‘으로




건축개념에서 널리 사용되는 '보편적인 공간universal space'은 이번 프로젝트 기획의 방향과 기준을 고민하는 시발점이 된다. 이는 어떠한 용도에도 적용할 수 있는, 공간의 단순성과 가변성이 공간 자체를 다양하게 시각화하는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게끔 하는 부분에서, 공간의 형식을 변형시킬 수 있는 의식적 기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는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던 구조, 자칫 '통로_길'구조가 '한정적'으로 작용할지도 모를 우려에서, 그 이상의 것 '미로구조'를 상상할 수 있게 하였다.6) 역으로 기본 골조가 지닌 탄탄함과 완고함 속에서 도리어 '보편적 공간'으로의 변모를 고려하고 '통로_길'의 의미를 '미로'로 과감히 변형함으로써, 고유의 인터페이스를 확장하고 진전시킨 것이다. 여기서 '미로구조'는 일반이 떠올리듯 '미궁', '길찾기'를 도모했다기보다, 형태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대칭성'의 양상과 '궤적'의 흐름으로서 동선연출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 각 퍼포먼스 영상이 막다른 골목마다 제각기 2.4m, 3.9m, 6.8m에 이르는 3종의 스크린에 대칭적으로 놓이고, 이번 전시작품이 또한 뿜어내는 분위기로 인해 관람자는 마치 영상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혹은 화면 속 작가와 한 방향을 바라보면서 그와 동일시되는, 미혹적인 착각을 추체험할 수도 있다. 이는 공간의 미로구조와 영상작품이 만들어내는 교묘한 일체 속에서 '미로'가 수행하는 역할들을 침투시켜보는 것이다.


바늘여인, 심정心情과 무화無化로서의 원형적 의식


바느질 행위와 천 작업, 보따리 작업을 통해 세상 속에 자신을 내던지며 유전적인 문화적 기억들을, 내적필연성으로부터 비롯된 성찰적 흐름으로 보여 왔던 작가 김수자는 이제는 자신과 사물을 포함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매진하면서 본연에 대한 자각과 세상 보편적 가치에 대한 사유를 행위화한다. 이때 매개체로서 작가의 '몸'은 관점과 관계에 대한 소실점이자, 수행의 형식을 시각화하는 공진을 이끌어낸다.
<바늘여인>(2005)은 네팔 파탄, 쿠바 하바나, 이스라엘 예루살렘, 예멘 사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중부아프리카 차드의 자메나를 배경으로 한다. <바늘여인>(1999-2001)은 군중들이 집결해있는 주요 메트로폴리스에서 작가가 '바늘'로서 자신의 '몸'을 인식하고 또한 스스로 '바늘여인'으로 명명하는 일종의 성소적 의식이었다. 이에 <바늘여인>(2005)은 세계의 이권과 분쟁, 해결되지 않는 모순적인 대립을 상징하는 장소에 접근하여 '관계'에 대한 문제제기를 보다 비교문화학적, 사회학적, 인문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더해준다.
차드(자메나)는 주체적․자율적인 사회성장 과정을 겪지 못했던 구조에서 30년 이상 이슬람계와 기독교로 나뉘어진 중앙정부의 내전으로 고통을 겪어온 국가이고, 네팔(파탄)은 문화적인 성소임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지도층의 사상적 갈등과 권력내분으로 인해 내전의 불안을 항시 떠안고 있는 곳이다. 예멘(사나)은 이슬람 근본주의(북예멘)와 분리주의(남예멘)의 첨예한 대립의 현장이며, 가난과 폭력으로 점철되는 도시 리오데자네이로(브라질)는 갱의 제국으로 불린 지 오래다. 그리고 불통과 이슬람 사회와의 극도의 대립을 보여주는 예루살렘(이스라엘), 포스트식민주의 이후 이데올로기와 그로부터 미국에 의해 주도된 국제사회 고립을 상징하는 쿠바(하바나). 이들은 여전히도 굳건한 제국주의적 폭력들이 부추겨왔던 화해할 수 없는 사회구조적 모순과 종교․사상적 차이를 차별적 입장으로 수용하여 영속적 반목의 긴장을 안고 있는 세상의 '모든 가난'이 만연한 실상들이다.
이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은 '심정적'이다. 그가 고통을 받아들이는 행위는 적대적, 이데올로기적 범주를 벗어나 고통에 처한 현실에 뛰어들어 고통을 증명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황자체에 대한 극적인 순간이나, 혹은 저널리즘과 같은 관점이 재현되지 않는다. 작가는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펼쳐지는 그 현장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할 뿐이다. 마치 '유사죽음'과도 같은 현실 속에서 피폐해진 일상 안에서도, '살이'를 지속하는 사람들과, 인류를 위한 기념비와도 같이 ‘자신’을 매개로 하여 펼친 행위 자체는 그 어떤 이분화된 가치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이 모두를 다만 포옹하려는 바다. 이것은 광주학살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작업 (1995), 코소보 내전의 희생자들에게 헌정하는(1999),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희생된 흑인들의 이름을 기록설치한 (2002)에서 그가 의도하였던 핵심들을 관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곳'과 '그 자신'을 잇는 행위 속에서 그 곳이 지닌 기억들에 심정적으로 겨누는 것. 감싸 안는 행위, 화해의 희구, 그리고 영적인 치료를 통한 치유로 인간적 가치를 재생시키는 바.
떠남과 머무름의 형식들을 보여 왔던 기존 작업들은 작가가 자신의 문화적 기억들을 세상에 '처해짐'을 통해 성찰을 행하는 과정이었고, 이를 상징하는 보따리는 어느새 작가의 작품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노마디즘'이라는 수식어의 모체가 되었다. 그로부터 <바늘여인>(2005)은 "낯선 삶, 낯선 세계, 낯선 타자들을 향해 언제나 자신을 열어두고 그 낯선 존재들을 통해[...]자신 안에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내"7)고 있으며, 불안과 불신의 도시에 다가간 행위에 내재하는 목적들이란 노마디즘의 상식적 기제가 던지는 관계성의 근원을 구체화한다. 더불어 그 해석이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내는 타자성에서 비롯되어 주체를 규정해가는 과정에까지 연관된다면, 노마디즘은 작가의 태도적 측면에서 상술될 필요가 있다. 그 태도란 매개자로서 혹은 일종의 메신저로서 세상과 마주하며 스스로를 규정해가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

더불어 작가의 태도적 문맥을 관통하는 '바늘'은 자아의 소멸을 꾀하고 더욱 극적으로 타자와의 일체감을 만들어내는 상징이 된다.
"바늘은 천을 꿰매는 자신의 매개역할을 하고 나면, 실자국만 남기고 자기 자신은 그 장소에서 사라집니다[...]저의 몸을 관객이 더 이상 의식하지 않게 되는 순간, 관객이 내 몸을 입고 그 자리에 서게 되는 것 역시 바늘의 속성과 다르지 않지요"_김수자
의인화된 바늘 즉 작가의 '몸'은 매개일 뿐, 의도하는 바 지워지는 대상이다. 이 경우 매개라는 것이 현상에 의지하는 존재적 한계를 함의하고 있고 그렇기에 그 자체만으로서는 아무런 필연성도 본질도 근거도 없어 보일 수 있겠지만8), 그것이 창작에서 태도적으로 문맥화된 요소라면, 우리는 여기서 지워지는 대상으로서 '작가의 몸'을 단순한 사라짐으로 읽을 수 없다. 그것은 '역할의 마무리'가 아닌 ‘역할의 이행’ 도정에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란, 생명이 그 주어진 육체나 사회나 민족의 질서 속에 놓이면서 발하는 목소리, 존재하는 의식의 '순수 결정'이 어떤 형태를 취한 것이다.9)




그의 작업은 자신과 사물 간, 자신과 세계 간 즉 자기로부터 비롯된 '선zen'적인 깨달음에서 시작하여 그로부터 특수한 상황들 속에 자신을 내던져온 행위이다. 개체는 '공동존재'에 처해있는 자신을 인식함으로써 존재적 의미를 습득한다. 그렇기에 바늘여인 퍼포먼스는 일종의 세상 속에 처한 자기 명명의식과도 상통한다. 이 명명의식은 모든 가능성 속에서 한 가지 가능성을 선별하고 배치하는 필연적인 계기로서 상황을 인식하고 동시에 상황을 인식시키는 행위이며, 상처내기와 치유의 성질을 갖는 '바늘'의 속성으로 자기 역할의 당위를 밝혀내는 상징장치이다. 이것은 태도를 규정하는 의식의 이면을 고려하게 한다.
다시금 '관계'의 범주는 자신과 사물(바느질행위, 보따리), 인간과 인간<바늘여인>, 몸과 자연, 자연의 근원<지수화풍>으로까지 소급해간다. 이때 작가의 '의식'은 이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는 처음과 끝이고, '몸'은 처음과 끝 속에 항시 세계에 대한 바로미터로서 역할하는 '매개항'이 된다. 작가의 질문은 자신에 대한 인식에서 세계, 세계의 요소를 추적해 가는데, 이 과정은 "끝없이 도전하는 평면 앞에서, 자기존재의 모순 앞에서, 또한 독창성originality에 대한 강한 욕구 앞에서 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어떤 방법론을 찾"는10) 절박한 자기구원의 요청에서 필연적으로 조우한 일종의 '접신체험'으로 비유된다. 이 양상은 "이불을 꿰매는 일상적인 행위 속에서 나의 사고와, 감수성과 행위 이 모두가 일치하는 은밀하고도 놀라운 일체감을 체험했으며, 묻어두었던 그 숱한 기억들과 아픔, 삶의 애정까지도 그 안에 내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11) 초기 작업들과 <바늘여인> 첫 작업 단계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12) 또한 '바느질행위', '감싸는 행위(보따리)'의 현전을 거쳐 떠도는 행위로서 수행한, 전 작업의 시작점이다.
작업의 시작점이 되는 이러한 체험에서, 그에게는 절박함이 있었다. 모든 절박함은 상징적인 죽음으로도 치환된다. 적어도 살려는 의지가 인간의 본성이라면 그것이 욕망하는 바, 결핍과 불안을 치유하여 살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것은 고통을 안기는 일상과 현실을 넘어선, 삶의 의지가 기댈 수 있는 정신적인 근원을 본성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에게 정신적인 근원이란 신화적인 영감, 비일상화가 비추는 현실의 증거를 상기하게 하는 '문화원형'인 것으로 우리는 우리의 사고를 소급해볼 수도 있다. 작품의 오브제는 때로는 작가의 행위 이면에 놓인 ‘무엇’을, 즉 범주를 형성하는 문화적 기억이거나 혹은 보편이 납득할 수 있는 인류문화의 원형을 발언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물론 환경적 지리나 종種 혹은 세대와 같이 조건 지어진 특수성이 자리하지만, 그 특수성 안에서도 지성과 감성이 낳은 신화와 종교, 학문 그리고 사회형성, 갈등과 화해에 대한 전승되고 습득되어온 공통항들이 유전적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작가가 자연의 요소에까지 '관계'의 의미를 확장해 온 과정은, 바로 그 '공통항'에 존재하는 본성 혹은 순수 결정으로서 '살려는 의지'를 끄집어내기 위함이고, 그렇기에 분명 이 과정을 전제하는 의식은 문화기억에 대한 '원형적사고'와 '기억에 대한 성찰'들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고뇌와 상징적인 죽음이 갖는 절박함에는 '부활'의 계기가 더불어 필요하다. 이에 하나의 통과의례로서 '접신체험' 내지는 신묘한 '도의 깨달음'은 그 본연에 샤먼적인 요소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이탈함separation으로써 우리가 곧 알게 되겠지만, 비극적인 위대함과 아름다움에 모자라지 않게 깃들여 있는 정신의 위기spiritual crisis로써 자신의 새롭고 참된 삶을 시작"13)하는 자, 샤먼은 병을 치료하기도 하고 고행자로서의 행적을 남기기도 한다. 더불어 "영혼의 안내자, 사제, 신비가 노릇을 하는가 하면 시인 노릇"14)도 한다. 여기에 궁극적인 목표는 초자연적 존재와 인간을 매개하는데 있다.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예술가들/학자들은 분명 세계인식에 대한 메신저로서 역할해왔다. 고유한 정체성으로부터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연관을 발견하고 개념적인 사유에서 인지적 증폭을 통한 새로운 직관의 길을 열어주는 사람. 이들은 분명 세계를 통해 자기애와 자각을 꾀하고, 다시금 정신적으로 무장된 상태에서 세계로 향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세상에 처해짐이란 단순한 처함이 아니고 스스로가 선택한 처함이다. 더불어 자기 자각을 통해 행위의 필연성을 안고 있는 사람이다. 지금 우리가 요구하고 주목하는 예술가는 어쩌면 이러한 샤먼적 의의를 통해 우리의 세계를 확장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예술가로서 본질적으로 갖게 되는 자기 질문과 회의, 자신의 기억과 원형적인 사유를 통해 세상을 가로지르고 동시에 접합하는 행위자. 이것이 바로 같은 노정路程에 선, 작가 김수자에게서 우리가 샤먼적인 요소를 언급하는 수식이어야 한다.
작가는 항시 무채색의 옷을 입고 있다. 무채색은 무정부주의자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동양에서 말하는 모든 색의 근원으로 일컫는 현색玄色을 떠올리게 한다. 음양오행의 기반으로부터 초월적인 세계의 법칙을 매개한 샤먼의 역할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세계관에서 정신사적으로 내재되어 온 색채관은 '청, 적, 황, 백, 흑'의 오방정색五方正色으로 구성된다. 오방정색은 작가가 기존 작업에 주요했던 이불보나 보따리 페브릭들이 지닌 색채이기도 하며, 이 페브릭들은 전통적으로 우리의 생로병사와 함께 해왔던 '원형성'을 상징하는 오브제들이다. 작가의 오브제가 단순한 레디메이드ready-made가 아닌, 레디유즈드ready-used로서의 문화적 코드로 읽히는 이유는 바로 이에 준한다.15) 그런데 이 색채들이 하나로 모인 것이 바로 현색玄色이며, 현색은 "분별 이전의 혼돈의 세계"16)이자 '모든 색의 근원'으로 통한다. 그것은 도道의 동일한 이름이며 작가의 몸을 에워싼wrapping 채로 '모든 가난'을 마주하게 하는 또 다른 몸이기도 하다.17)




III. 나오며




"예술이란 물 자체, 즉 파악할 수 없는 것을 생산해야 한다. 하지만 예술은 사물을 자명한 것(감정적으로 동조할 수 있는 것)으로도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도 서술해서는 안 되며, 파악될 수는 있지만 아직 파악되지 못한 것으로 서술해야 한다."18)
<바늘여인>(2005)의 비디오에서, 작가는 자신을 노출시킴과 동시에 우리를 함께 노출시킨다. 이것은 작가를 관찰하면서 밀집한 무리들 속으로, 사람들의 행위를 시각적으로 새기면서 스스럼없이 동화되는 탓이다. 우리는 여기서 "세상 속에 펼쳐져 있는 그들이 지닌 개체성, 그들 존재"가 '관계' 속에서 일으키는 삶의 "스파크에 대한 단서"에 다가서는 각자의 사연에 대해 궁금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 연민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이것은 또한 우리에게 "타인의 삶이 펼쳐지는, 타지의 국가들에 실재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얼마나 이해를 하고 있는가"19)를 심정적으로 일으킴으로써, 단순히 세계 속에 다양한 경험체로서, 인류를 노출하고 있는 것만이 아닌 희생적 사건의 경험자들을 통해 관찰자로서, 그 속에 개별존재자로서, 우리 자신이 처한 무관심적 요소에 대해서도 노출하도록 혹은 사유하게끔 여지를 남긴다. 이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작가는 또한 화면에서 그가 "존재함is"에 대해 "나르시즘적 방식으로 집중될" 지도 모를 시선을 "피하고자"20) 관찰의 공간을 한정하고 이를 화면으로 연출하였다.
<바늘여인>(2005)은 본연의 인간성을 희구하고 문화적 차이를 포용하는 제의를, 서사를 제거한 극도의 단순한 행위로서 비출 뿐이다. 이는 마치 정제되지 않은 의식의 편린인 관념이 끼치는 작용과 유사하다. 그로부터 출발하여 우리는 동시대 인류가 껴안은 불편한 ‘일부’를 맞이하기 위한 인간의 윤리적 심리를, 시공간의 축을 투영한 작가의 몸을 통해서, 촉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이 먼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통을 우리 눈앞에 가져온다는 걸 알았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타인의 고통이 자신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21) 형국에서 그 다음 어떠한 방식으로 세상과 마주보며 자신을 구축해가는지, 작가의 '몸'은 일종의 타인을 사유로 이끄는 안테나이자 상처의 현장을 감싸 안는 성소적 매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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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구미술관 개관특별전3, 2011년 8월 10일~11월 20일

2) [김수자, 수직과 수평 체계 위에서의 사유], 2010, 서영희(홍익대학교 교수) : 본 글은 『미술평단』100호(미술평론가협회, 2011.3월 발간, pp53-64)에 수록된 내용을 편집한 원고이다.

3) [노마디즘:유목적인 삶과 예술의 성분들], 2011, 이진경(실명 박태호,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4) [문화기억과 문화원형 그리고 소통], 2011, 박상환(성균관대학교 교수) : 본 글은 「문화콘텐츠와 인문학의 소통가능성」,『인문과학』41호(성대 인문과학연구소, 2008)의 내용을 수정 발전시킨 것이다.

5) [동양문화 원형으로서의 샤머니즘], 2010, 양회석(전남대학교 교수)

6) "홈패인 공간은 영토화되고 지층화된 공간으로, 정주적 특성을 지니며, 고정되고 닫힌 경로를 따라 운동이 전개되는 한편, 생성(-되기)대신 진전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의미한다[...]매끈한 공간의 선이 방향적이며, 열려있다면, 홈패인 공간의 선은 차원적이며, 닫혀있다[...]반면에 매끈한 공간은 유목적, 이주적 공간으로, 속도와 운동, 생성의 공간이며, 선이 수치나 계량적 결정인이 아니라 벡터와 방향인으로, 점이 선과 궤적에 종속된다[...]정해진 방향과 경로가 없으며, 패치워크와 같이 중심이 없어 무정형으로 무한대로 연결 확장될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한다" [건축과 시간속의 운동], 2009, Spacetime, 김원갑

7) [노마디즘:유목적인 삶과 예술의 성분들]에서 이진경은 단순히 이동의 궤적으로 노마디즘을 오해하기보다, 기존 주어진 배치에 이질적인 것이 범람하듯 스며들고, 이를 통해 '탈영토화'로서 삶이 재배치되는 면모를 보이는 관점이나 행위들이 보다 그 진위에 가깝다는 관점을 피력하고 있다.

8) p.125「자유와 비극_사르트르의 인간존재론」, 신오현, 문학과 지성사
"의식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자와 관계함으로써 즉 존재자를 어떤 존재자로 규정함으로써 비로소 존재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의 존재는 항상 스스로 존재하는 자로부터 빌어온 것이요, 그러하 한에서 항상 빌어온 존재를 자기의 존재와 동일시하기를 거부한다"

9) p.219「문학에 있어 전통계승의 문제」, 김윤식,《세대》, 1973

10) 1988년 개인전 작가노트 중에서

11) 위와 상동

12) "바늘여인(도쿄,1999), 그것은 본 시리즈의 첫 퍼포먼스였습니다. 적절한 때와 장소를 찾아 촬영팀과 도시를 걷고 있었죠.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나를 스쳐가는 시부야에서 난 (내 의지 밖으로) 멈춰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군중의 에너지들을 느끼면서 나는 내 몸에 초점을 맞추고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내 중심과 강하게 연결되는 느깜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나는 군중들과 나 사이 분리되어 구분되는 바를 깨달았습니다. 마치 섬광과도 같이 '도'를 깨닫는 순간과도 같았고, 그곳에 멈춰선 채 나는 카메라를 등지고 퍼포먼스를 촬영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Interview중 발췌, Olivia Maria Rubio, 2006

13) p.32「샤마니즘」, 미르치아 엘리아데, 이윤기 역, 까치글방

14) p.23 위와 상동

15) 첨언하자면, 그것이 단순한 '레디메이드'로서의 사물이기보다 한국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즉 문화적 기억을 공유하는 '레디유즈드'로서의 유산이기에 또한 그로부터 문화적 자각에 대한, 혹은 거리두기에 관련한, 온 '성찰'적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16) 현색(玄色)은 오방정색을 포괄하는 궁극적으로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 천지인일체(天地人一體)'를 상징한다. [한국인의 색채의식 연구], 박명원 <동양예술4호> p.297

17) "바늘여인 퍼포먼스 비디오에서 저의 몸을 관객이 더 이상 의식하지 않게 되는 순간, 관객이 내 몸을 뚫고 내가 보는 세상을 보게 되지요. 즉 내 몸이 관객들의 자기 성찰을 위한 미디엄이 되는 것이지요[...]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굴절없이 있는 그대로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고, 또한 철저하게 나 자신으로부터의 질문을 통해 진화해온 선문답 같은 작업이니까요. 동시에 내 몸이 시공간의 축(Axis) 역할을 하여 인류의 모습을 성찰하는 바로미터가 되었으면 해요. 군중 속에서 세상의 모든 사람을 만나 그들을 포옹하고 싶어요. 오늘을 살아가는 인류에 대한 연민이라고나 할까요" _ 김수자

18) [새로운 예술을 찾아서], 1998, 베르톨트 브레히트, 김창주 편역, 새길

19) [KimSooJa: Less is More], 2006, Olivia Maria Rubio

20) [Experiencing A Vacuum], 2005, Emanuela De Cecco

21) p.150「타인의 고통」, 2008, 수잔 손택, 이재원 역,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