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16일 수요일

이은정 작가 비평

글|최윤정_미술비평/미학



'화면 속 시각적인 것이 엷은 붓질로 인해 묘한 잔영을 일으킨다. 잔상 혹은 잔영, 눈에 보이는 명확함이라기 보다는 심리적이고 기억감정을 구체화하는 형상, 작가 이은정의 작업은 그리하여 흡사 환영과도 같다. 그러나 망막에 결코 맺히지 않았었을 법한, 곧바로 형식 자체에서 물리적 감각체험을 끌어내는 이 이미지는, 도리어 내적으로 명확해지며 역으로 시각을 자극한다.'

I.

그녀가 일필의 가는 선에 주목하고 이로써 머리칼, 피부의 표면 등을 근 10여 년간 연구하고 표현해왔던 전작에서부터 보자면 지금의 ‘흐릿한 초상’ 연작은 의도적으로 숨겼으되, 그 이면의 주제를 정직하게 공개하고 있다. 한편 이전 작업은 작품에 드러나는 얼굴의 '결'과 머리칼 한올 한올을 세밀한 붓질로 표현하며, '이형사신'의 정신성을 기반으로 한 고도의 관찰력과 집중을 요한 작업이었다. 자신이 천착하고 있는 소재와 주제에 대해 고집스러울 정도로 반복하고 훈련하고 실천해온 작가 이은정은 이와 관련한 상당한 작업량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 미루어 보더라도 예의 작업에 대한 신실한 태도를 가늠케 하는 사람이다.


최근작에서 나는 작가의 말대로 그녀가 여성이고, 결혼을 해서 아이도 있고, 그러다 보니 여성과 모계에 관심이 가고, 그 한 결과로 작품의 내용이 ‘모계’, ‘지폐 속 여인들’, ‘종부이야기’로 이어진 것 같다는 '뉘앙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여기서 '뉘앙스'라 표현한 것은 작가가 확실히 그것을 고집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이다. 비록 일순간이라 해도 내 시선에서 작가 이은정은 이와 왠지 절실히 밀착되어 있다거나 대단히 유관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자신이 고안한 작품형식과 여기에 보다 어울리는 내용적 관심사를 효과적으로 잘 조합했다.


II.

그녀의 작품을 바라볼 때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일정 '거리'를 두어야 이미지가 제대로 보인다는 점은 대단히 흥미롭다. 자세히 보고자 가까이 다가가면 연한 펄코팅에 반사하는 빛만 보일 뿐이고, 대형화폭에 새겨진 이미지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감상자의 발이 점점 작품에서 멀어져야만 한다. 말하자면 작품자체가 시선의 일정한 거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시선의 일정한 거리는 또한 작가가 주제로서 다루는 대상에 대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태도와도 닮아있다. 그녀의 ‘종부이야기’는 심층 자료연구를 토대로 한다. 일차적으로 전국의 종부들을 열심히 발품 팔아 찾아다니며 인터뷰 자료를 수집하는데, 여기서 작가는 그들의 삶에 대한 태도 혹은 여성으로서의 삶을 동일시하거나 오마주를 띤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순수 관찰자로서 그들의 보이지 않던, 주목 받지 못했던 행위를 재조명하기 위해서 접근하는 식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작업에 아카이브적 특성이 가미되어 있음을 중요하게 보고있다. 이는 작가가 고유하게 설정한 '흐릿한 초상'의 일환으로 진행된 일련의 작업들이 형식적 동일성 내지는 유사성을 띠고 있다 해도, 주제적인 차별성에서 한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주제를 이끌기 위한 면밀한 연구와 조사는 그것이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었는가에 대한 검토와 반성를 수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초상화에 대해 말해보자. 보통 초상화는 그 대상자의 사회적 위치와 분위기, 당대의 주요한 교훈을 우의적으로 표현하면서 그 자체 문맥적인 요소를 획득했기에 역사적으로 혹은 예술적으로 의미있는 반향을 가진다고 본다. 그러나 초상화는 일차적으로 어떠한 의미이든지 개인에 대해서 마주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는 개인의 특성과 분위기를 단호히 표현하며 오히려 그/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환영을 가져오게 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종부이야기'에서는 절대 개인이 강조되지 않는다. 나는 여기에서 작가 이은정의 작품을 마주할 감상자가 앞서 말한 '시선적인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바와 마찬가지로, 의미적으로 '심리적인 거리두기'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거론하고자 한다. 초상화의 인물(개인)과 서로 응시하는 요소라기 보다는, 오히려 연작 시리즈에 참여하고 있는 전체 흐릿한 초상들이 한 공간 안에서 공명을 일으키고 이 분위기에 감상자가 압도되는 형국이 야기되는 것이다. 흐릿하기에 대상의 구체적인 형이 부각되지 않는다는 것, 그로인해 '거리두기'의 행위가 겹쳐지고, 이로써 물리적인 '감각체험'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잊혀져가는 것과 가려져 있던 것이 또한 표현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감춰지는 탓에 의도했던 혹은 아니건 오히려 작가 이은정의 작품 자체에서 발하는 소명은 더욱 명확해진다. 형식은 그 자체가 내용이 되었다.


III.

이은정의 작업은 보통 상처와 자존, 자신의 일상과 내면, 여성으로서의 삶과 정서에 대한 자기 고백 등으로 풀리는 태반의 여성작가들의 일반적인 양태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대단히 계획적이며, 과학적이며, 연구적이며, 대상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전 작업 중 내가 특히 주목하는 바는 ‘겹친여백’ 시리즈이다. 동양의 정신적 여백 사상을 주름으로 무늬로 표현하여 물리적인 공간감을 실재화하였으며, 겹친여백 자체는 기존의 정신성의 확산 내지는 파장이라는 전통적 여백 느낌에서 입체, 공간감, 시각적인 착시 등의 요소를 끌어오고 있다. 마치 관찰자, 연구자의 태도를 함의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 것이다. 내용상에서 비슷한 문맥을 보이는 ‘모계’시리즈의 경우는 그녀가 시어머니를 토해 모계를 정리하여 초상작업을 한 것이었다. 그때의 연작과 '종부이야기' 연작은 자칫 내용적 맥락이 유사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도 있겠지만, 전혀 다르다. '흐릿한 초상' 시리즈는 그녀가 10년간 해온 작업과 형식적인 결별을 맺는 지점이다. 물론 작업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아카이빙 및 연구조사는 일견 방법적으로 유사하다. 그러나 '흐릿한 초상-종부이야기' 시리즈는 '모계'연작보다 심리적 거리감이 한층 강화된다. '모계'연작에 표현된 인물이 개개인의 계보가 드러나며 관계적 선형을 구성하는 시점이라면, '종부이야기'는 그녀가 택한 혹은 개발한 작품형식을 보다 긍정적으로 완성해줄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이다.


IV. 인터뷰

내가 느낀 작가 이은정은 따뜻하지만 고집스럽고 또한 세심하지만 그다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자신이 어떻게 비춰질까 혹은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가 분명 작가로서는 신경이 쓰일 테지만, 내 느낌으로 그녀는 근본적으로 긴장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와의 만남 그리고 첫 인상, 죽 이어진 그 내면의 인상에 대해서 이같이 말하는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최근 그녀의 작업 ‘흐릿한 초상’의 과정에 대한 단초를 일부 여기서 발견했다고 보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한다는 것을 참으로 힘들다, 그러나 가능하지도 않겠는가. 작가 이은정을 마주하고 문득 든 생각이다.■

2009년 12월 7일 월요일

작가 이창수 비평

확대된 영역 실험 : 투시적 접근을 통한 회화적 한계 벗어나기



최윤정|미학·미술비평

현재 그의 작업은 레이어를 이용하여 본격적으로 3차원적 형식을 구현하면서 근본적으로 회화 장르에 대해 그가 추구하거나 고민해왔던 지점을 첨예화한다. 이전 작업에서 작가로서 그가 내용적・형식적 모티브로 '시간성'에 대한 관심에 보다 천착했었다고 본다면, 현재는 이에 대한 무게중심이 회화의 근본 형식에 대한 주된 고민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그의 작업과 유사한 방식에서 레이어 효과를 작업적 모티브로 활용하는 기존 작업들은, 주로 공기원근법적인 요소와 맞닿아 이로써 그 깊이감이나 관조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동시에 형식적으로 회화와 입체의 경계를 탈피하고자 애쓰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편이다. 그러나 이창수의 작업은 원근법적인 요소로서 레이어의 겹침 효과를 이용하기 보다는 파편적인 평면들의 연속, 위치적으로 계산된 이미지들의 순서, 레이어와 레이어 간 간격에서 비롯되어 다각도에서 발견할 수 있는 평면 이미지, 그리고 그것이 회화임을 강조하는 둣한 색면 표현 등에서 레이어를 활용한 기존 작업들과는 분명 주목하는 지점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는 '회화'임을 그치는 것이 아니라, '회화'의 테두리를 빗겨가지 않는 전략에서 평면 형식에 대해 그가 견지하고 있는 근본적인 고민을 거론하고자 하는 것이다.


소재적으로 주변 배경을 제거하고 생물을 포함한 단일한 일부가 작품에 표현된다. 이 경우 관조로서의 방식이 아닌, 관찰로서 소재에 대해 접근하는 경우로 간주할 수 있는데, 실제 각 레이어는 사물의 전체가 아닌 부분들을 순차적으로 묘사한다. 순차적인 묘사는 이미지를 쪼개는 방식, 각 구성위치, 쪼개어 놓은 부분들이 전체로 통일되어 보여지는 효과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계산에 입각한 흔적이다.

한편 레이어로 구분된 각 이미지들의 부분 컷은 각각이 두께감있는 색면 표현으로 이루어지기에, 정면에서 보자면 하나의 평면 회화로서 고스란히 그 특성은 유지된다. 그러나 분명 레이어 겹침에서 효과를 취하는 작업임이 중요할 때는 이를 기존 회화를 감상하는 시점과 달리 접근할 필요가 있다. 즉 시점을 빗겨보면, 간접적으로 빛이 부딪히고 반사되며 시지각적으로 인지되는 이미지가 각각이 굴절률을 표하는 유리를 통하기에, 이는 일견 '착시'로서 평면들의 연속이 입체적 조형성을 획득하거나, 그리하여 관찰하는 각도마다 '다른' 전체-이미지로 통합되기도 하고 이내 사라지기도 하는 등 시각적 효과를 거두어낸다. 이는 이미 기존 회화의 형식적 요소를 벗어난 지점이다. 또한 '투시'로서 합성되는 전체이미지는 어떤 각도에서든 동일한 이미지를 제공하지 않기에, 기본적으로 그의 작업이 이미지의 굴절과 왜곡을 염두에 둔 결과로서 보여지기 때문에, '투시'는 이번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투명한 유리라 하더라도 약간의 푸르스름한 색비침으로 인해서 우연적으로 공기원근법적인 효과가 보이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의 계획은 이를 크게 부각시키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이와는 무관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의 작품을 감상하다가 매너리즘 시기 방법적으로 고안된 왜곡상을 말하던 '아나모포시스(anarmorphosis)'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것은 일종의 판타지적인 눈속임을 위한 과학-놀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작가 이창수가 자기 회화의 지형을 3차원적으로 확대하여 투명한 유리를 화면 및 레이어로 활용하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투시를 가능하게 하였던 부분, 왜곡을 전제로 하는 '투시' 자체에 비율과 형식을 맞추어 이미지를 세단하였다는 것은 관점을 위한 철저한 실험이기 때문이다.


미술사에서 매너리즘 시기는 예술적 재현을 위한 모든 과학적인 지식과 비례에 대한 온 지식이 만개했던 때였기 때문에, 당대 예술가들에게 그 시기는 더이상 지식적으로 확장하고 접근할 수 있는 여지가 상당히 애매했던 때이기도 했다. 유사하게도 현재 무한 반복되고 있는 회화적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이미지 자체만으로 신선하다 할 수 없는 한계적 요소를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이러한 한계를 설치적인 접근으로 해소하고자 한다거나, 타 형식으로 전향을 꾀하는 데 반해, 작가 이창수는 우선 태도적으로 그것이 회화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회화이길 절대 포기하지 않으면서 회화의 형식과 인식에 대한 한계를 실험적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아나모포시스'는 당대 지녔던 형식을 완전히 새로움으로 극복하고자 한 시도는 아니었다. 다만 이미지를 왜곡하는 형식을 적극 도입하여 작가의 주관 내지는 터부시되는 것들을 더욱 적극 표현하고자 했던 내용을 위한 하나의 형식 실험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작가 이창수의 작업에서도 일부 유사한 의미를 추출해보자면, 우리는 그의 작품에서 정면이라고 생각하는 하나의 면이 그 소재를 쪼개어 객관적으로 묘사한 정물 형식을 갖추고 있고, 또 다른 면은 소재의 이면적 내용이나, 작가의 주관적인 상상의 영역으로 전혀 다른 풍경을 제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대나무의 또렷한 형상이 이면에는 속이 허하게 비어있는 형국이라던지, 마치 유리 수조 안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는 듯 보이는 장면 이면에는 물 속에서만 살아야 하는 물고기의 비애가 저 하늘 위 스카이 다이빙을 꿈꾸고 있는 듯한 풍경과 자연히 이어지며 그로부터 해학적 감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차가운 폭포수에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 남성이 그려진 장면의 이면에는 도저히 벗겨낼 수 없는 그의 욕정을 말하듯 용광로 속 나체 여인이 마주하고 있다.


이면의 내용들은 도덕적인 주관의 관념이건, 순수한 상상의 영역이건 실재적인 묘사 이면에서-묘사로서의 사실성, 합리적인 계산 등으로 점철되는 앞면과는 달리- 작품이 지닌 과중한 부담을 줄이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단순한 형식실험에 그칠 수 있었던 위험에서 내용적으로 긴장완화를 시키며 이후 감상의 단계를 고려할 수 있게끔 열어둔 것이라고 판단한다. 여기서 떠올리는 것은 바로 '유머'이다. 정신적인 집중과 긴장의 상태가 어느 순간 어떤 표현방식으로 인해 우연히 풀리는 상황들이 존재하며, 이 상황들로 인해 집중의 에너지는 경제적으로 남는 잉여의 에너지로 전이된다. 이 상태에서 발산되는 감정들(잉여의 에너지)은 '쾌'를 가져온다는 것. 그렇다면 '유머' 내지 '유머러스한 태도'는 예술작품, 혹은 예술의 태도에 대한 제문제 등에 심리적인 과정에서 전제해야 할 하나의 가치로서 자리할 이유가 충분하다. 작가 이창수의 작품은 이를 좀더 수월하게 구분지어 준다. 두터운 질감의 이미지 표현과 단순 묘사로서 정물로서만 보일 수 있는 부분 그리고 입체적 접근으로서 과학적인 태도가 지닐 수 있는 무거운 위험이, 일종의 '유머'로 인해 긴장을 완화하며, 삶을 조근히 사고하는 감상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이전 작업1)에서 그가 주관적으로 설정한 '시간을 기록하는 방식'과 이번 작업에서 회화의 형식에 대한 확장으로서 실험을 꾀하고 내용적으로 사물 묘사의 이면을 작은 서사로 던지는 방식은 일정 유사점이 있다. 이 방식들은 분명 작업 '형식'에 대한 일정 실험을 전제로 하는데, 그에게 주제는 형식 실험과 대단히 밀착해있어 보인다. '시간성'과 '뚜렷한 감각적 체험', '입체성'과 '양면회화' 등, 순서는 그가 고민하는 형식과 밀착한 소스를 발견하고, 발견된 소스와 연관한 내용을 전개하는 식이다. 글쎄, 이번 작업의 경우는 그 목적은 보다 뚜렷해보인다. 작가는 현재의 작업이 아직 실험기로서 일련의 완성태를 갖추고 있다고 보고 있지 않다. 그는 시각적인 관찰과 직접적인 체험에 대해서 늘 중요시해왔으며, 그 일환으로 감상자에게 그것이 지닌 양태를 수용하길 강요하기 보다는 작품 자체를 스스로 관찰하고자 애쓰지 않으면 제대로 볼 수 없게끔 하였다. 실은 이 부분은 아마도 이후 그의 작품과 작업관을 살피는 데 있어서 긍정적 고정관념 내지는 하나의 편견으로 자리하여, 계속해서 그를 예의 주시할 만한 기준이 되리라고 본다. ■



1) "감각을 통해 기억된 시간(...) 나는 시간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표현하는 중이다" '7가지 시간 찾는 방법'에서 그는 파동과 나이테, 주관과 속도, 그림자와 잔상, 박제 등의 상황을 구분하였다. 이는 구체적으로 그가 대상을 묘사하는 방식이 우리가 지니고 있는 사물에 대한 감정-기억 내지는 감각-기억 등 분절적으로 저장된 의식을 자극하여, 그가 설정한 시간성에 대한 관념에 접근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의 작품에서 '시간'은 파이고 스며들고 흩뿌리는 표현행위가 거둔 오감적 효과에 순차적으로 대응하면서, 주제로서 자연 노출된다.





Experiment for an expanded sphere : To escape the limit of painting, through an approach of 'seeing through'



Choi YoonJung | Aesthetics·Artcritic



His recent work is represented by using layers and a three-dimensional effect. Making his topic acute, artist Lee ChangSu researches into a painting itself. In previous work, he was all attention to the concept of 'timeness' as a motif of its form and substance. But now the core of importance moves to the original form of painting itself. Generally other artists's similar works are represented by aerial perspective to express contemplating substances and feeling the depth of a canvas. they also make their efforts to escape the limits between planes(of painting) and formative arts. But Lee ChangSu's work is emphasized by some technique-succession of fragmental planes, calculated order of images, plane images found by a gap between layer and layer, and color expression on glass-canvas. This doesn't mean to stop being painting, but keeping characteristic boundaries of painting, just search an original form of painting itself.

In materials including living things, His work is mainly described as a single part/thing. In this case, this is not for contemplation. Because each layer is described by fragmental part in order. The whole effects occur from dividing images or combining images. we can regard the whole effects as traces made by a result of his own detailed calculation.

On the other hand, each part of fragmental images is accomplished by thick color expression. So in the front side of his work, we can find that it has its own character as a painting. Especially the remarkable point is to pile layers, so if we observe his work, we must seek the other method to access his work. Because the image appears in reflection of light through glass. If observer changes his/her visual point, an optical illusion occurs. So the succession of planes obtains a kind of formative arts, combines into 'different' whole-image or disappears. This is now the spot that overcomes the form of existing paintings. And the whole-image, combined by 'Seeing through', doesn't offer the same images. Because I think his work is a result of refraction and distortion of image, so 'seeing through' is the most important keyword in my critic.


Glass exposes some bluish-color, no matter how transparent it is. Accidentally, it sometimes occurs aerial perspective effects. But in his plan, it doesn't bring this situation into relief, just seems to have no connect. While watching his work, It reminds me of 'anarmorphosis' that means devised distortion of images during mannerism. Just as 'anarmorphosis', that is a sort of scientific play for fantastic hoodwink, expanding his painting to a three dimensional form and uses transparent glass as a canvas, artist Lee ChangSu makes various views from different angles. 'Seeing through' supposes distortion of images. Fitting into proportion and form, he cuts images. This is a thorough experiment for a view-point.


In Art history, mannerism was the bloom of almost science and knowledge about a proportion for artistic representation. Artists of those days would maintain an uncertain attitude to research the related knowledge. In the same way, nowadays in a flood of painting-images that seem to the very tautology. I can't feel fresh in many cases. Recognizing the limits, for solving this problem, so many artists seem to try an installation-approach or to turn from their own formal method to another. However artist Lee ChangSu emphasizes it must be a painting in his attitude. This means that he never abandon the meaning of painting, rather expands the capability of form and acknowledge. 'Anarmophosis' was not the try of overturning artistic forms of those days. This is an experiment of a form for substances that express artist's subject and taboo. In the same manner we can find similar meaning in artist Lee ChangSu's work. Dividing image, the one side that we think the front side looks like a still life painting. And the other side presents quite different scenery to us, the scenery is made by artist's own subjectivity. For example, the form of bamboo is vivid in the front side, but its inside is just empty in the other side. A swimming fish in a water tank describes in front, but in the back skydiver flies in the sky as if a fish dreams. From this, a sense of humor occurs. There is a man who builds up his moral character, in the other side a woman exists in a blast furnace as if it shows his irresistible desire.


Behind the actual descriptions, The substances of the other side are organized by subjective ideas or pure imaginations - different from the front side that expresses rational calculation and reality. So its function is to reduce a heavy burden that his work owns. Shown only simple experiment of a form, the danger is indebted to substances of the other side for relieving the tension and making us to look at the next sensible observation. From here, 'humor' occurs in our mind. A condition of mental concentration and tension, by a certain moments or expression, is transfered from that to a condition of relax. So the concentrated energy becomes the economic surplus, in this situation a certain emotion radiates. The very 'pleasure', this is 'humor'. In that case 'humor' and 'humorous attitude' always have existed in artistic values impressed on artworks and artistic attitudes. Possessing 'humor', his work leads us to an emotional moment about self-reflection including one's lives to us.


His previous work1) 'the method of recording time' is established subjectively and his recent work is about an experiment for expanding forms of his painting and describing the other side as a small narrative. Both his previous/recent works have some similarities partly. These methods and his primary subject are associated with an experiment of forms. 'Timeness' and 'sensitive experiences', 'a three dimensional form' and 'two-faces painting' and so on. The procedure is to find sources for forms that he have thought, and then develops contents relating to the found sources.

Well, the purpose of this recent work is very clear. Artist Lee ChangSu doesn't think that this work is perfect. He just says that this is on an experimental stage. He always regards the visual observations and direct experiences as the most important viewpoint. For this reason he don't force people to listen to him, he make people watch his works with attention. This is about the attitude of people(called 'observer'), he thinks they must also have an effort to watch his artworks, If they don't do that, cannot obtain anything. Actually, this will be a criterion that I research Lee ChangSu's woks and attitude as an artist and sense of values. This is like an affirmative stereotyped idea or prejudice for him.■

"

1) The time, remembered by one's sense(...) I'm expressing 'time' as various methods" In 'the 7 ways that we find time', artist Lee ChangSu had classified the situation into waves, the annual rings, a subjective gaze & speed, shadows, afterimages. This means his own descriptions for some select objects stimulates one's fragmentary memories as complex emotions and senses about the objects. So observer can approaches his idea for timeness. In his work, 'time' represents the shape of digging, soaking, sprinkling. And corresponding to each sensory effects held by his expressive act in order, time exposes itself properly.

< translated by choiyoon>

2009년 9월 6일 일요일

연구 II

Hive_이은정, 이소

공부하기

작업실이 생겼다.
최윤정 이제 좀 공부할 때가 되었다.

1. 작가/작품연구 _ New Face 위주로 발굴 연구/크리틱 자료 생성
2. 철학_칸트와 스피노자를 다시한번 읽어볼 때가 된 듯하다.
3. 사회철학_자율주의



연구I

진수영, 장호현, 정혜원, 흑표범, 박민지, 박자현, 윤지선, 윤향로





2009년 7월 12일 일요일

예술경영웹진_칼럼기고(2009.5.14)

No. 28 (2009.5.14)


[칼럼] 반성의 망,
현장예술활동


최윤정 _ 매개공간 미나里 큐레이터


지난 2008년 광주비엔날레의 ‘복덕방프로젝트’ 이후,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현장예술활동 맥락에서 광주 미술계가 얻은 소기의 성과는 대단했다. 우선 지역 미술인들이 자부심을 느낌과 동시에 참여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 그리고 지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이들이 도모한 기획이라는 것 등 지역이 지닌 저력과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였다.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에 대해 보자면, 작년 ‘복덕방 프로젝트’부터 호흡을 맞춰왔던 스태프진이 서서히 안정된 체계를 잡아가고 있고 현장이다 보니 작가들과 시민,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나타날 수 있었던 미묘한 불협화음조차도 그 대처하는 방식에 있어서 분명 세련미를 갖추어가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무래도 다소 이 역설적인 표현인 ‘세련미’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장에서의 원활한 활동이란 비단 기획팀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합의과정과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사업적인 부문, 사무적인 태도를 벗어나 인간적이고 자연스런 교류를 통한 상호 이해가 필요하다. 이 모든 점을 감안하였을 때, 이에 가장 훌륭한 매개로서 ‘무등산 막걸리’에 그 영광을 돌리고 싶다.
그러나 아무리 ‘세련미’를 발휘해도 채워질 수 없는 요소들이 있다. 그것은 어찌 보면 이 프로젝트 지원구조, 즉 국비 지원의 한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회계 시스템 자체가 현금사용을 금지하고 신용카드로서 진행되는 점에서 이는 재래시장과 어울리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실제 사업자등록을 하고 카드 결제가 가능한 점포는 몇 되지 않는다. 이미 시장 상인들은 이 프로젝트가 국비를 지원받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장사를 하시는 분들로서 기대하는 바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은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시장 안에서 소비자로서 기능하는 것, 또 한 가지는 이 프로젝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시장을 방문하고 더불어 자연스럽게 장을 봐 갈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는 않다. 대인시장은 애초부터 상권을 잃어가고 있었고 또한 상품종류가 다양하지 않으며 한편으로 주변 다른 재래시장에 비해 물건 가격이 비싸다는 인식이 있어왔다. 시장 내부에서도 자구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성과를 마냥 기대하기는 힘들다. 시장 내의 빈 점포들을 중심으로 하여 예술 활동을 펼친다고 했을 때, 시장상인들이 이례적으로 아무런 텃세 없이 적극적으로 지지해줄 수 있었던 이유는 빈 점포가 채워지는 것에 대한 호응도 있었겠지만, 한편 이러한 기대감이 끼치는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인식과 더불어 프로젝트팀은 이번 프로젝트가 일상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자 시장이라는 공간에서 진행되는 예술 활동이라는 점, 현장과의 대화를 꾀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수반해야 한다는 의식을 공고히 지니고 있다. 더불어 국비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만큼, 사회 환원적인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는 부분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그로부터 나름 다른 방식으로 시장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가능한 아이디어를 생성하고 이를 시에 제안서를 내고 한참 협의를 꾀하고 있는 중이다. 더불어 참여하는 예술가들과의 이야깃거리를 거론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일반 레지던스 프로그램과는 달리 작가들이 한 구역에 밀집해 있지 않고 시장 곳곳에 마련된 작업실에 퍼져 있기에 관리에서 다소 힘에 부치는 측면이 있다. 다행히 이 부분은 격주마다 진행되는 '모작' 프로그램을 통해서('모작'은 작가의 프리젠테이션과 더불어 반상회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협의점을 마련해가고 있고, 또한 이는 중요한 소식을 전달하는 공식적인 창구로서 기능적인 부분이 생성되고 있다. 더불어 각종 건의 사항 및 논란들에 대해 서로 토론하며 방법을 함께 모색하고 있다. 이에 자연스럽게 공동체적인 의식도 생기고, 서로에 대한 유대감도 가족적인 분위기에 준하여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는 시점이다.그들 자체가 장소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시장에 들어왔고, 모두가 개별적인 자아가 강함에도 불구하고 시장 사람들에게 녹아들고자 많은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언제나 감사할 따름이다. 10인 남짓한 프로젝트 기획팀은 항상 점심밥을 같이 만들어 먹는다. 처음에는 비용때문이었지만 현재는 그것이 유대감 강화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보는 편이다. 이에 최근에는 작가 공용주방에서 매일 점심을 준비하고 작가분들도 함께 식사를 하면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나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주고받기까지 한다. 여기에는 소위 뒷담화라 불리는 ‘남걱정’도 유머러스하게 포함된다. 모두 현장에서 벌어지는 우연적인 사건들을 겪기에 그것이 다소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고 싸움까지도 불사했던 심각한 상황이었다 할지라도, 재미있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두들 서로 공유하게 되는 일종의 모험담처럼 되어간다. 웃으며 이야기 나누고 서로 놀리고 삐지다가 언제 그랬냐는 등 금방 풀리는 것이다.
배우는 바가 크다. 더불어 현장에 대한 애착도 강해진다. 이것은 일로서만 쌓을 수 있는 애착이 아닌 것임은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혹자가 말하듯 '머리에서 가슴으로' 기획의 일머리를 바꿔나가는 것, 현장은 이를 몸소 체험하게 해주었다.



--------------------------------------------------
필자소개 최윤정은 비평도 쓰고, 기획도 하는 사람이다. 홍익대 국문학과와 서울대 대학원 미학과를 졸업했다. 대추리 현장예술 아카이브 프로젝트(2007), 대구시립미술관의 프리오프닝 전시 ‘아트인대구’(2007), 2008년 광주비엔날레 ‘복덕방 프로젝트’의 전시 코디네이터로 활동했으며 현재 미나里의 큐레이터로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프로그램 팀장을 맡고 있다.

BleuDot Asia 2009 Plan

블루닷 아시아 2009 기획의도


최윤정 큐레이터
Choi yoonJung ● BluDot Asia 2009 Curator


The ambition of BlueDot Asia 2009 : Create the wholesome Bluechip!

‘소더비’는 세계 미술시장의 권력과 권위를 상징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더불어 곳곳에 파생되어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블루칩’은 현대적인 작가와 상품성을 보증하는 일종의 백지수표로 자리 잡았다. 어떻게 하면 ‘블루칩’ 반열에 들 수 있으며, ‘소더비’ 무대에 나서볼 수 있는 것일까? 이 생각은 단지 목적적일 뿐인가, 아님 그 자체로 목적이 되었는가.
신선한 발음의 블루칩은 그로 명명된 예술가의 권위를 위한 고유어가 되었다. 그래서 더 이상 신선하지 않다. 또한 그렇다고 수치상 ‘젊은 나이’의 작가가 결합했다는 이유로 신선하다 항변한다면 그 또한 블루칩을 개념적으로 정의하는 요지는 아닌 것 같다.
‘블루칩’의 재정립, 블루닷아시아2009의 주요 목적 중 하나이다. 그것은 세대를 구분하지 않고, 섹터화된 정서와 구역을 지양하는 속에서 반성적인 ‘정체성’을 통해 구현해내는 것이다. 그 속에서 진정성을 갖추고, ‘세계-예술’과 동일한 특질이 아닌 등/위/의 특질로서 각 ‘구역’의 저력을 생성해내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적 개념과 더불어 이를 개념화하기 위한 질적인 문맥을 관통하는 구는 바로 ‘다질성(多質性)에 근거한 파(波)’1)이다. 그것은 ‘섞이면서 미끄러지고, 확산되면서 규정되지 않은 장을 생성하는 힘’이다. 그래서 블루닷아시아2009는 단순히 유행적인 것, 세계적이고 중앙에 집중되어 있던-마치 암세포처럼- 요소들을 개념적으로 지양하고자 한다. 무한한 내재성의 망 속에서 존재하고 있던 각 저력들이 드러나는 현장으로서 ‘블루닷아시아’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더불어 아트페어가 작가들을 상업적으로 구조화시키고, 그들의 창작 작업을 몰락시킬 수 있는 일부의 여지들을 그 단점으로 아슬아슬하게 안아왔다면, 오히려 역구조로 새로운 창작을 선보이고 도모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바를 전시개념의 강화와 진솔함의 깊이를 통해 실재화하는 것이다. 이는 실질적으로 예술가들을 대상화시키지 않고, 보다 그들을 드러내면서 지속적으로 프로모션하는 노력들이 사명감으로 수반되어야만 ‘블루닷아시아’가 성장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블루닷 아시아 2009_미학적 철학적 개념의 강화

블루닷아시아2009의 첫 문을 여는 전시, '커튼콜' : 자취를 발견하다'(1F)에서는 미술계 기성작가들의 탄탄하고 완성도 높은 작업들이 소개된다. 약 40인의 국내외 작가(한국, 중국, 인도, 태국, 인도네시아, 일본, 터키)가 참여하며,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사유와 함께 우리 삶에 대한 ‘자취’, ‘흔적’, ‘재발견’의 개념을 지니고 총 3막으로 구성된다. 1막 시작도 끝도 없는 간주곡, 2막_ 역설 : 생의 모호한 연속성, 3막 : 과장된 이야기_ 실재하는 동화는 참여작가들의 작품 의미와 더불어 그것이 지니는 형식적 특성들을 토대로 하여 구분되었다. 그리하여 "하나의 점이 선을 이루고 결을 이루고 면을 이루듯이 끝과 끝의 경계가 없는 것, 점의 흔적으로서 나의 세계를 발견하는 바로 그것"2)으로서 내용이 구성된다.
‘작은 나라, 갑작스런 밀도의 아름다움’(2F)은 '다양성'과 '지역성'이라는 말 대신에 등위의 '질'개념으로서 '다질성(多質性)'을 직접적으로 시각화하는 전시로서, 5개 대안공간이 참여한다. 광주(매개공간 미나里), 대전(반지하), 부산(오픈스페이스 배), 서울(대안공간 풀), 청주(HIVE)는 작가발굴 및 의미 있는 전시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공간이자, 'local'이라는 확고한 정체성을 안고, 열띤 활동을 펼치는 곳들이다. 이에 5개 공간의 활동을 소개하고, 더불어 5개의 기획전을 통해서 각 공간의 특색을 시각적으로 대변하는 40여 인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프로젝트 전시 : 시도'는 블루닷 아시아 2009의 감초 역할을 할 젊고 신선한 요소, 아트마켓 등의 이벤트를 강화한다. 1부는 국내외 젊은 작가들이 참여하는 '라이징스타 스페셜'이고, 2부는 아트마켓 컨셉으로 진행되는, 무명씨 전 '심리적 주목 99인의 100만원'과 스트리트 아트와 상품의 접목을 시도한 'Street Culture the Focus' 로 구성된다.

블루닷아시아 2009는 분명 젊은 아트페어이다. 이전 형식을 지양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형식을 개발하며, 작가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도 '작품성'과 더불어 '태도'에 대한 비평적인 시선을 분명 견지한다. 여기에는 세대 구분 없이 모두가 주인공이 된다. 젊은 아트페어란 비단 그것이 갖는 철학적 지평에서 논해져야 한다. 또한 작품성과 상업성 그 어느 한 곳에 기울어지지 않는 것은 이것이 분명 '기획전'이라는 특성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것이든 기획전의 묘미를 말할 때, 기획자로서 전시 개념 구성에서 정작 중요하게 살펴야 하는 것은 기획 이전에 감상자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감상자가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감상자는 자신에 대한 감상자가 되며, 예술가는 자신의 창작물을 감상자에게 줌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미처 자기 안에서 볼 수 없었을 지도 모르는 것을 알아차리게 도울 수 있다. 감상자가 작품 자체의 의미를 자기 안에서 인정하는 일은 바로 진실과 대면하는 순간이다.'3)


--------------------------------------------
1)들뢰즈와 가타리는 『천개의 고원』에서 '리좀(Rhizome)'을 빌어 고유의 철학적 사유를 드러낼 때, 그 하나의 원리로서 '다질성(多質性)'을 말했다. 나무가 중심을 전제하며 항상 계보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리좀은 땅밑줄기로서 각각의 모든 줄기가 다른 모든 줄기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자, 중심도 없고 주변도 없는 다양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이는 또한 블루닷 아시아 2009를 관통하는 기획의 핵심이기도 하다.
2)1층 전시 2막과 3막 사이, 전시 내용 중에서 발췌
3)"... 독자는 독서하는 순간 자기 자신에 대한 고유한 독자가 된다. 작가의 작품은 일종의 광학기구에 불과하다. 작가는 이 기구를 독자에게 줌으로써, 이 책이 없었다면 아마도 자기 자신 안에서 볼 수 없었을 것을, 알아볼 수 있도록 돕는다. 독자가 책이 말하는 것을 자기 자신 안에서 인정하는 일은 바로 진실과 대면하는 것이다..." _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http://www.bluedot.asia/




BlueDot Asia 2009 Plan

Choi yoonJung ● BluDot Asia 2009 Curator



The Ambition of BlueDot Asia 2009 : Create the Wholesome Bluechip!

Today ‘Sotheby' is a symbol of the power and the authority in the international market for art. Another widespread word 'Bluechip' is used in the market of art as an expression that refers to contemporary artists who guarantee the marketability of their works. How does an artist become a 'bluechip', or hold the stage of 'Sotheby'? Is this a question of a additional purpose or of the ultimate purpose of artists?

'Bluechip', once sounding fresh, has become a proper name for the authority of an artist who has been named it. However this word does not sound fresh anymore. If someone insists that it is still fresh because many 'young' artists win this title, he fails to grasp the conceptual definition of 'bluechip.'

Redefinition of 'bluechip' is one of the main purposes of BlueDot Asia 2009. It is achieved through reflecting 'identity' regardless of generations, without partitioning regions and their sentiment. In this process, it comes to find its genuine property and generate the potential energy of each 'region' not with a same feature as but with an equivalent quality to 'international art'.

With this attitude, 'the wave based on the heterogeneity(or multi-quality)'1) is the phrase that conceptualizes BlueDot Asia 2009 in the qualitative context. It is 'the power that generates the field blending, sliding, spreading and indefinable.' So BlueDot Asia 2009 conceptually denies cancerous elements, trendy, international and centralized. The identity of 'BlueDot Asia' is the field revealing the potential energy that has existed in the network of the unlimited immanence.

Art fairs have been criticized for having artists commercially structuralized and ruining their creativity. However 'BlueDot Asia' is differentiated by giving a chance to show creative works of artists, encouraging their creativity, intensifying the concept of exhibition, and deepening the candidness. We think BlueDot Asia can grow only when we take it our mission to make the artists public and continuously promote them without objectifying them.

BlueDot Asia 2009_Intensifying Aesthetic and Philosophical Concept

On the first floor of the exhibition of BlueDot Asia 2009, 'Curtain Call : Finding Trace', highly complete and excellent works of established artists are introduced. This exhibition, in which about 40 artists from various Asian countries (Korea, China, India, Thailand, Indonesia, Japan, Turkey) participate, is composed of three acts that literarily and philosophically express the concept of 'finding traces of our life.' Three acts, Act I, An Interlude no beginning and no end, Act II, Paradox: a vague continuity of life, Act III, Exaggerated story_A real fairy tale, are composed of the works of art classified according to their meaning and formal characteristics. Finally, it comes to mean 'the thing with no boundary from end to end as dot becomes line, texture, and then surface, and finding my world as trace of dot.'2)

'A Small Country: The beauty of a sudden density' (2F) is an exhibition that directly visualizes 'multi-quality', a concept of equal quality, instead of 'multiplicity' and 'locality', in which 5 alternative spaces, Ganju(Memispace), Daejeon(Banjiha), Busan(Openspace Bae), Seoul(alternative space Pool), Cheongju(HIVE), participate. They have been working actively with the firm identity 'local', while finding capable artists and planning significant exhibition. Here, we introduce the activity of these five spaces through 5 group exhibitions and works of 40 artists who visually represent the characteristics of each space.

'Project Exhibition: An attempt' (3F) intensifies events, such as the young and fresh elements, the art market and so on. Section I is 'Rising Sart Special' in which domestic and foreign young artists participate, and Section II is composed of anonymous exhibition ''Psychological attention : 1,000,000 won of 99 members' with the concept of art market and 'Street Culture the Focus' combining street art and goods.
Certainly BlueDot Asia 2009 is a young art fair. We deny old formats, keep developing new ones, and, moreover, don't forget to hold critical perspective on the artistic value of works and attitude. In this art fair, everyone becomes a hero regardless of age. The young art fair should be discussed on its philosophical ground. It inclines to neither artistic value nor marketability of the works of art because of its feature of curatorial exhibition. When I should mention a beauty of curatorial exhibition, it is important for me, as a curator, to hold the following attitude in spectator's shoes. 'On facing a work of art, a spectator becomes a spectator of herself. And an artist can help a spectator notice what is inside of herself who might not see it without the creature of the artist. When a spectator finds the meaning of the work inside of herself, she faces the truth.'3)

-----------------------------------------------------------
1) Deleuze and Guattari mentioned 'heterogeneity' as a principle in Mille Plateaux when they express their own philosophical thought with the borrowing concept 'Rhizome.' While a tree presupposes the center and is always hierarchically structured, a rhizome is a horizontal stem of a plant whose each stem is connected with every other stem and becomes a symbol of a manifold with neigher center nor peripheral. This concept represents a central plan of BlueDot Asia 2009.
2) Quoted from the text between Act I and Act II on the first floor.
3)'... On reading, a reader becomes a reader of himself. A work of the writer is a sort of optical instrument. The writer, giving this instrument to a reader, help him notice what is inside of himself who might not notice it without the book. When a reader acknowledges what the book puts within himself, he faces the truth...' Marcel Proust

2009년 3월 31일 화요일

`광주 미술의 젊은 시선’ _광주드림 공동기획

`광주 미술의 젊은 시선’ 공동 기획에 부쳐
젊은 그대들이여 잠깨어~오라 광주가 들썩이게
광주드림
기사 게재일 : 2009-03-25



“저 푸른 벌판으로 달려가자. 젊음의 태양을 마시자.
보석처럼 찬란한 무지개가 살고 있는 저 언덕너머. 내일의 희망이 우리를 부른다[...]”
_문득 어린 시절 뜻도 모르고 불렀던 김수철의 노래 中에서

최윤정 ● 매개공간 미나里 큐레이터

광주드림과의 이번 기획은 매개공간 미나里(이하 ‘매미’)가 설정하고 있는,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 및 그 역할에서 중차대하게 바라보고 있는 일이다. 매미에서 진행하고 있는 예술인 아카이브가 포트폴리오 뿐만 아니라, 보다 차별적이고 창의적으로 예술가에 대한 면밀한 접근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예술인에 대한 인터뷰(연구) 및 그로부터 생성된 각종 자료들로부터 기인할 바가 클 것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광주드림이 지역작가들에 대한 정기적인 인터뷰를 진행하고 이를 문화란에서 다뤄보고자 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 자리에서 공동기획으로 내용을 만들어보자 의기투합하였던 것은, 이는 적어도 관성적인 ‘소개란’ 이라든지 같은 급으로 ‘스타만들기’에 무게 중심을 두기보다는, 대중으로 접근되는 ‘예술향유층 확대’와 ‘예술창작활동에 대한 독려’를 그 기본 골조로 하기 때문이었고, 또한 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작가를 다뤄보고 더불어 인간적인 접근 역시도 시도할 수 있는 ‘인터뷰’라는 형식이 그에 적절하다는 판단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더 나아가 이는 그 컨셉에서 광주 미술계 새로운 세대나 경향을 분석하고 분류하는 등 새로운 세대를 위한 광주 미술사 초안 기록에 있어서도 중요한 재료로 역할할 것이다.
매개공간 미나里는 예술가를 만나고 관련한 프로그램을 계발하며 또한 진행함으로써 예술에 접근하는 방식을 가시화 해내는 공간이다. 그러기 위해서 프로그래머는 대상(자)에 대한 재빠른 파악과 이해, 긴밀한 접촉, 적극적인 대시를 잘 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 대상(자)를 우선적으로 의식적으로라도 고려하지 않는다면, 또한 진행 전체를 바라보지 못한다면 그/그녀는 순식간에 대상화되어버리고 그저 시간이 우선시되어 머리로만 진정성을 나불대는-물론 그나마 진정성을 외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보는 편이지만- 부적절한 상황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말은 비록 ‘아니’라 할지언정, 과연 그 가슴은 ‘답답하다’ 지저귀고 있고, 유수처럼 흐르는 말을 하고 있는 주체는 결국 그 말의 주체가 되지 못한다. 새삼스레 이 같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전체를 관망하고 틀을 규정지어야 하는 큐레이터로서 역할하지 않고, 본인이 직접 진행을 맡는 구조를 되살렸을 때, 이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큐레이터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고, 공동기획 전반을 살피면서 또한 더불어 진행할 토크쇼(공동기획에 해당하는 토크쇼 분량에 맞춤) 내용에 대한 논의를 함께 거친 후, ‘인터뷰어’(광주드림 문화부 기자 이광재)를 토크쇼 진행자로서 세울 예정이다. 이는 전체를 관망하면서, 진행자가 수시로 던지는 보다 직접적인 질문들,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핵심사항들, 우연히 발견될 수 있는 정말 의외의 것들을 기록하고 관찰함으로써 ‘~만 말’토크를 단순 이벤트성 기획이 아닌, 질적으로 계속해서 거듭나는 공간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주 짙게 개입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공동기획의 방향과 실행이 그 목적을 상실하지 않고 꾸준히 진행된다면, 주변 상황으로 인해 자신의 마음이나 환경이 자초한 음지 아닌 음지에서 활동했던 예술가들이 하나 둘씩 자극을 받아 다른 예술가의 창작에 관심을 보이면서, 자기 창작활동에 있어서도 보다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리라고 본다. 직접적으로 바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한동안 광주가 이 공동기획으로 인해 뜨겁게 수군거리기도 하고 들썩이기도 하였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리고 또한 이 공동기획이 자신의 꿈과 함께 정말 자고 있을지 모를 ‘젊은 그대’들에게, 그대들의 젊음은 ‘사랑스럽고 태양같다’며 ‘잠깨어~오라’ 하는 뜨겁고 달콤한 대시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

2009년 3월 11일 수요일

START!! 대인예술시장 레지던스 프로그램

대인예술시장 프로젝트의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할 입주자가 모두 선정되었고,
3월 9일은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각 작업실 및 공동시설들을 둘러보고 프로젝트에 대해 전반적으로 소개하는 자리로 이어졌다. 그 가운데 나도 있었다.


반응과 반작용, 수긍과 긍정 사이에서

입주자들의 면면을 관찰하면서 설레기도 하고 참으로 묘한 경험을 하였다.
그것은 나의 모든 감각과 체험이 일년전 한 기억으로 연동되는 시점이었다.
내가 처음 광주에 왔을때, 나는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갈망하고 있던 것을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그렇게 발견했을때 그날 난 전혀 잠을 이룰 수도, 자고 싶지도 않았다. 운명까지 운운하는 것은 다소 유치하기는 하지만, 땀 한줄기가 뒷목을 타고 내려와 귀중하지 않은 맥락의 과도한 고민이 자연스레 주변으로 발산되었던 그러한 차원의 경험. 그것은 이후 내 마음 그릇의 크기로 인하여 버티기 힘들었을 지도 모를 많은 일들을 끌어안으려 애를 쓴다거나 혹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벗겨내 버리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것은 항상 내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이번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면서 내가 그러했듯,
일년 전 당시 공간을 소개하면서 나의 반응을 살피시던 선생님의 유독 긴장되어 보였던 표정이 떠오른다.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 표정의 이유를 좀 알 것 같다. 나는 그저 행복했으므로 긴장된 표정을 당연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 그저 행복했던 마음은 다소의 우려나 육체적으로 겪는 고초로 인한 정체모를 마음이 되었다가도, 일반적으로 부정적일 수 있는 그 정체모를 마음이 한편으론 오히려 막연히 행복했던 기분을 들뜨지 않게끔 강제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던 것 같다. 그 선생님의 긴장된 표정, 그것이 언제쯤 풀리셨을까? 풀리기는 한 것일까?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살짝 그 마음이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아무래도 책임의 무게로부터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나도 책임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입주자들의 상반된 반응을 살피며

우선 예쁘게 잘 다듬어져 있는 것보다는 일부러 날 것을 보여주자 하였다.
날 것을 보고 입주자들이 어떤 고심을 하게 될 것인지, 숨기지 말고 보여주자 하였다.
그것이 나는 다소 우려가 되기도 하였지만, 우리 프로젝트는 애초 겉멋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 역시 그러자고 수긍하였다.

그 예전 나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은 그들의 반응 속에서 나는 정말 긴장하고 있었고 솔직히 말하건데, 살짝 겁도 났다. 그러나 물론 아/주 살짝이다.
결국 날 것을 보고 수긍하지 못한 자는 정중히 작별인사를 했고, 애매한 반응을 보인 자는 그래도 한번 해보자 의기를 다졌고, 날 것이 좋아 신난다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어느 반응 하나하나 평가적으로 다뤄질 수는 없다. 그러나 모호하게 한 가지 아쉬운 마음이 한켠에 들었다.
지금이 무슨 개척시대도 아니지만, 이미 그 모든 것이 가능하고 할 수 있는 하드웨어가 갖춰진 세상에서, 그것이 정말 당연한 세상에서 우리는 그 역의 방법으로 그것이 지닐 수 있는 고유한 가치를 찾고자 애를 쓰고 있다. 일반의 시선에서 그것은 어떻게 보일까? 다만 이것은 각자가 선택한 방법론이자, 그저 생활의 방식으로 채택한 것이지, 고귀한 노스텔지어의 꿈을 향한 돈키호테의 놀음 정도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자연스러운 또 하나의 방식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난 개인적으로 억울한게 참 많은 모양이다. 난 허파에 바람들어간 적도 없고, 간이 부어있지도 않다. 허황된 꿈, 그런 꿈을 기대할 수는 있는 것인지 이에 관해 나는 항시 부정적이다.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 사이에서 그 누구라도 그러하듯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가져야만 하는 그러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는 한 사람일 뿐이다. 삼각형이라는 것은 나름의 어떠한 균형을 전제했을때 가능하다. 이에는 직각삼각형도 있고, 정삼각형도 있고... 그저 난 나에게 '좋은 것'에 약간의 비중을 더욱 두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약간의 푸념이 필요하다.


자기 희생과 극도의 자아도취 사이에서

무언가 차려진 상에 수저를 놓기보다, 없는 상부터 만들어가는 것은 당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자신이 갖는 애정도와 만족감이 자기 수저에만 그치지 않고, 수저가 올라오기까지 그 모든 전과정을 경험하고 만들어가는 것에서 파생되는 그 모든 감각과 사고를 수반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서 이는 그만큼의 자기 희생을 수반할 수밖에 없으므로, 우리에게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자기 희생을 감내하고 얻은 일은 그만큼 자신의 속을 단단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아직 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젊어서 고생 사서도 한다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이해가 안되는 말이라고 주장한지가 몇년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문제는 '자기 희생' 그 정체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이다. 단순한 정의감, 사회적 책무, 남들의 평가... 어설픈 나이에 지금 현재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나에게 가능한 자기희생이란 나의 '자존감'이 중심이 되어 그것이 '그러한 바'라고 판단하는 것들을 행했을때 의미를 갖는 것일 게다. 내가 말하는 '자존감'이란 내가 나로서 살고 싶은 마음, 자기 성찰적이고 반성적인 지점을 제공할 수 있는 여력, 내 존재에 해가 되는 것을 본능적으로 꺼리는 것등을 포함한다. 결국 모든 것은 나다. 필요 이상으로 사회적일 필요도 없고, 필요이상으로 사회를 꺼려할 필요도 없다. 생각도 없는 사물에 대해 자기 잘못을 전가해버리는 몹쓸 짓들, 결국 그 모든 잘못과 고민과 해악은 나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항상 자기 자존감과 자아도취 사이를 헷갈리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다. 그것은 바로 나다.

지하철 2호선에서 3호선을 갈아타는 사이 정면 벽에 쓰여있는 시구를 보고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나의 천적은 나였던 거다 -시인 조병화"


문득 일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갑작스레 떠오른 생각들이다.
그 일년동안 난 참으로 많은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참 재미있다. 어떤 사건이나 일을 계기로 과거를 떠올리고 전혀 다른 시간에서 이를 곰곰히 정리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 그러나 한편으로 그래서 더더욱 아쉽다. 왜 진작에 알지 못하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