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7월 15일 화요일

아트인시티2008, 3차 세미나 발제문

루트로서의 공공미술, 참여에 대한 재성찰

글 ● 최윤정


의미규정- ‘공공’은 구체적인 표현이어야 한다.

공공미술 활동은 예술가로 하여금 실제 작업실 및 전시장을 벗어나 외부에서 예술활동을 펼칠 수 있는 한 장을 이끈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활동 범위로서 ‘공공’의 규준과 개념적으로 ‘공공’에 대한 의미에 대해 명확한 규준이 무엇일까 고민해보게 된다.
개념적인 측면에 맞물려 논해보자면, 과연 공공미술을 추진하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해 고려할 필요가 있다. 총체적으로 예술계의 구성인자와 향유층 및 재정적인 요건들과 맞물려, 그것이 혹여나 사회 복지 차원의 투자이든 예술활동에 대한 지지이든 그 비용적 루트가 국가로부터 혹은 기업으로부터 즉 제도이자 권력으로부터 받는 한, 유감스럽게도 공공미술의 주체는 활동가와 예술가-혹은 주민까지 포함하자면-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히 순진한 것이다.
1년 단위의 성과로서 우리는 공공미술의 효과와 예술가의 사회참여를 논할 수 없다. 소외지역들을 찾아 전국적으로 골고루 공공미술 사업을 진행한다할 때, 공공미술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지 않은 지역의 경우 공공미술에 대한 공유된 인식기반 없이 사업기간에 쫓겨 대충 진행되는 사례도 분명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권의 재정에 기반함에도 불구하고 대안적인 미술활동, 공공미술에 대한 타당성과 뚜렷한 목적성을 주장할 수 있으려면 ‘공공’이나 ‘지역 형평성’에 대한 다른 시각들을 모색할 필요가 있겠다 싶다. 이것은 반드시 그럴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서이다,
필자가 초반부터 공공미술에 대해 다소 냉소적 규정을 하게 되는 이유는 그것이 갖는 의의에 동참할 수 없다는 의미는 분명 아니다. 공공미술 논의가 진행된 이래로, 정치적인 입장 및 개인적인 성향을 미루어 보면, 공공미술 활동이야 말로 예술을 통한 사회주의의 실현에 가깝지 않을까하는 생각들을 해본 적이 있다.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예술가는 작업실에 처박혀 있지 않고, 세상으로 나와 곧바로 사람들을 마주한다. 예쁘게 전시장을 꾸며놓고 사람들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작업과정을 날 것으로 드러내면서 고스란히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예술, 그것은 돈이 없어도 우아하게 치장하지 않아도 향유할 수 있는 그 무엇이 된다. 하다못해 부담갖지 않고 그냥 지나쳐도 된다. 그렇기에 소외지역을 찾아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술과 일상이 숨을 나눌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공공미술 활동 전 과정들을 나는 분명 동의한다. 그러나 결국 ‘공공’은 ‘제도’를 수반한다. 공공미술 역시 그 지원의 핵이나 선정규준 등에서 이를 도외시할 수는 없다.
이 같은 생각들이 강렬한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제도로서 공공미술을 장려하고 이를 진행하게끔 국가에서 돕는 것은 비단 이에 끊임없이 문제 제기해온 활동가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훌륭하고 적합한’ 기획을 실현할 수 있게끔 돕는 것, ‘가난한’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게끔 장려하고, 사회적 불평등의 문제를 예술의 문제로 끌어오는 것, 또한 비슷한 문제로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작업실 혹은 생활공간을 주는 창작스튜디오 등 이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예술계의 상황들이 계속해서 작업하기 좋은 환경들을 이끌어주고 있음을 반증한다. 그러나 실상 여기서 놓치고 있는 바는 제도나 권력이 장려하는 것 속에서 정작 그 수혜를 받게 되는 사람들의 태도는 오히려 제도나 권력이 꿈꾸는 것만도 못하게 흐르는 경우가 있다. 공모전이 주된 경력이 될 수 없는 현실에서 공공미술의 의의에 동의하거나 깨닫기도 전에 작업은 마무리가 되고, 정작 훨씬 좋은 작업실을 가진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굵직한 경력으로 제공되는 창작스튜디오 등 이 모든 상황들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와 비판이 오가지 않는다면, 오히려 활동가들은 제도와 권력의 태도보다 뒤쳐질 것이다.
언제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진정성을 확고히 담은 개별의 ‘태도’이다. 그럴듯하게 포장할 필요 없이 차라리 자신이 지니고 있는 방향과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다. 솔직하지 못한 태도는 제대로 평가받아야 하는 잘못에 대한 ‘합리화’라는 빌미와 계몽적인 생각을 개입시키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공공미술이라면 더욱 경계할 필요가 있다. 예술에 대한 의지나 공유된 인식기반이 없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작가의 자발성 & 기획에 대한 모색

현실적으로 제도나 권력이 마련한 틀 속에서 공공미술 활동이 어떤 의의를 갖추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우선적인 ‘자발성’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말하자면 사업공고가 나면 내용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의미 있는 생산지점에 있는 독자적인 시각으로 일종의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공공미술에 있어서 작업적인 부분의 한 의의가 ‘과정’이라면 짧은 사업 기간 속에서 이를 소화하기는 힘들다. 또한 ‘과정’이 중요시된다면 사후 관리 및 지속성의 측면에 대해서 미리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겉보기에 성공적으로 진행된 사례라 하더라도 실상 현장 관리 차원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반짝하고 버려두는 것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의 모습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간과 비용적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에 대해 감수하거나 부끄러워 할 수 있는 지점까지 발견할 심적 여지를 갖느냐 갖지 않느냐의 문제는 사업의 성과를 판가름하는 진면목으로 자리잡아야 한다.
작가의 자발성은 공공미술에 대한 개별적이고 개념적인 인식 기반을 수반한 상태에서 끌어지는 것이며, 기획 역시도 이에 대한 청사진과 그 반향들을 고려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그것은 일회성이어서는 안 되며 비록 현실적으로 물리적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을 지언 정, 인식적으로는 국부적이고 지속적인 담론작업 및 이에 확산을 통해 사업에 대한 타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기획’으로 공공미술 사업이 집중되는 현시점에서 ‘공공’의 의미는 참여자와 일꾼들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소외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하고자 한다. 말하자면 의미는 좋으나 계속해서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공공미술 기획에 대한 태도와 도덕성이 투철하지 않은 경우 그나마 민주적이어야 하는 활동 자체가 대개는 ‘코디네이터’ 혹은 ‘참여작가’라는 명시 하나로 ‘착취’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결국 기획자의 이름 하나로 프로젝트가 판가름되는 상황들은 분명 뼈저리게 고민하고 이에 대한 개선의 여지를 솔직하게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루트의 발견_참여자와 ‘공공’에 대한 의미 재성찰

‘사회적 기업’ 사업은 분명 지역의 예술활동을 장려하고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일조한 측면들이 있다. 이를 통해서 문화적 의지를 가진 젊은이들이 인건비 혹은 작업비 조로 생활에 큰 무리가 가지 않게끔 활동할 수 있는 여지 역시 충분히 마련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실상 사회적 기업이라는 것은 또 다른 조직체를 구성하는 것이기에 하다못해 분배문제에 있어 전적으로 기획자에게 맡기기 보다는 ‘기업’이라고 했을 때는 분명 전문인을 투입하는 것이 적절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여지없이 여기서도 ‘착취’문제는 고스란히 드러났다. 오히려 문화예술기획인이 되고 싶어하던 젊은이들에게 그것은 상처로 자리하거나 혹은 문화예술계에 대한 혐오를 낳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는 여지는 실상 안하느니 못하다라는 불신을 가져왔을 뿐이다. 제도 속에서 공공미술의 문제도 실상 이러한 제반상황에 대한 고려를 피할 길은 없다. 이 논의는 분명 관련 전문인이 투입되어야 한다 혹은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라 기획자의 책임문제가 더 확장될 수밖에 없기에 기획자 선정문제 혹은 기획과정에 있어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지점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 말이다.
공공미술은 작가들로 하여금 작업만이 아닌 그 너머의 것과 활동 측면에서 기획의 몫을 고민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작업실과 전시장의 테두리를 넘어서서, 작업할 수 있는 환경 여건이 외부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게끔 한 것이다. 그렇기에 형식적으로 이러한 청사진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젝트들이 여러 지역에 할당되고 진행되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더불어 그 무엇보다도 여기서는 앞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함께 수반되고 논의되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한다는 의지가 우선된다.

광주비엔날레 소식지 기고문

예술에 대한 대안적-매개적 역할을 자임하는 공간_매개공간 미나里를 소개합니다

The Mission of ‘Minari’

글 ● 최윤정

‘매개공간 미나里(이하 매미)’는 지난 2008년 5월 25일 대인시장 맞은 편 한 낡은 창고에서 개관을 하였다. 매미는 2년여 시간 동안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완성되었는데, 창고의 기본 골조를 살린 상태에서 개축하는 과정을 비롯하여 그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문제로 긴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지만, 전적으로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지역 미술인들이 자발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토대를 갖추었기에 나름 탄탄한 의식적 기반이 쌓여온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예술인들의 노동력 그것은 흙바닥에 슬레이트만 남아있던 공간을 현재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게 한 원천으로서 그 힘의 내부에는 지역 미술계 쇄신에 대한 그들의 바람과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이 집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논의 초기에서부터 이 같은 대안적인 공간에 대한 요구는 보다 긍정적인 의미로, 지역예술이 활성화될 수 있는 여지가 작금의 지역예술인들 사이의 벽들이 허물어지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일차적으로 담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군다나 사심이 개입할 수 없는 공간이자 ‘사랑방’ 개념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왔고, 현재는 이에서 더 구체적으로 예술인들의 작업에 일조할 수 있는 질적으로 만족스런 프로그램을 위한 기획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가 한창이다. 그리하여 기획의 자율성은 첫 개관전부터 기존의 형식을 ‘아이디어’로 정의해볼 수 있는 새로운 방식들을 찾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를 구하고자 하는 내부 세미나와 운영위원들의 활발한 모임은 대단히 빈번히 진행되었으며, 이것이 공간의 진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근간으로 지금까지도 역할하고 있다. 매미가 계속해서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게끔, 생겨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고민하고 공유해야 한다는 원칙은 매미의 뿌리가 지역예술의 ‘자생성’을 토대로 하고 있음을 전적으로 반영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자생성’에 대한 요구는 또한 그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운영에 있어서의 논점들을 구하는데 한 뿌리가 되어, 지역의 많은 예술인들이 혹은 예술관계자들이 공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이끌 수 있는 부분으로 ‘후원’체제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적 요소를 모색하는 데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실질적인 자구책이자 동시에 ‘매미’가 애초에 목적해오던 ‘사랑방’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하는 채찍질로서도 충분히 의의가 있다. 더불어 매미가 예술계에 잔잔하고 즐거운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공간이고자 하는 목표에서 많은 분들이 지지해준다면 그것만큼 매미의 진정성을 유지시킬 수 있는 힘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공간은 단순히 실험적 작업을 독려하고 새로운 전시를 시도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기존의 대안적인 공간의 역할에서, 한층 더 나아가 ‘매개적인’ 역할로서 새로운 문화예술공간을 지향한다. 각 장르간 예술, 예술과 생활의 접점, 현장예술과 전시장, 담론과 예술행위 사이에 대한 조화를 꾀하고자 하는 임무를 보자면, 매미의 역할은 ‘대안공간’이라는 용어의 무게를 벗고 그 개념을 안은 채로 ‘매개하는’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리라고 본다.

MIssion.. very possible!!

매미에 오면 새로운 대담형태의 ‘~만 말’ 토크쇼를 관람할 수 있다. 이는 이슈가 되는 주제나 혹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무겁지 않은 형식으로 끌어내어 보는 자리이다. 매미 공간 안에 조명과 빔프로젝터로 꾸며진 작은 잔잔한 무대에서는 다소 시끄러운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이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에 대한 용이한 접근을 모색해보는 시도이다.
지역에서 행하지 않았던 가능한 형식의 전시들을 지속적으로 계발하고 구성하고 있다. 이는 단지 ‘보여주기’를 넘어서 보여주기까지의 과정들을 문맥으로 잡는 전시형태를 구현하는 것이다. 과정들을 선보일 수 있는 전시는 분기별로 나누어 내용을 쌓는 호흡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미나리는 미술 대안공간을 넘어서서, 다양한 장르를 매개하고 소개한다. 지역의 예술활동이나 어떤 비젼을 제시할 수 있는 형태의 프로그램이 구현될 것이다. 음악인의 잼콘서트나, 타 장르간 소통을 주제로 하는 형식의 매개프로그램들이 구성되고 있으며, 이는 주제적으로 또한 형식적으로 새로운 계발을 꾀해보는 실험프로그램으로서 ‘워크숍’에서 시작하여, ‘협업결과물’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과정들을 선보인다.
매주 마지막 주 주말에는 ‘매미(買美)시장’이 진행된다. 매미시장 그 모태는 ‘아트마켓’의 형식에서 출발하지만, 매미에서 진행되는 아트마켓은 일종의 ‘아트 퍼포먼스’로 볼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야외에서 열리는 프로그램 연장선으로 ‘아트쇼’ 프로그램들이 대폭 추가되었다. 금번 7월 26일(토)에 열리는 매미시장은 앞서 2차례 진행된 매미시장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여름밤&다문화&예술&놀이’ 맥락에서 이뤄진다. 또한 공간 안에서는 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업을 PR하고 직거래를 통해 새로운 교환과정을 매개하는 전시가 동시에 펼쳐질 예정이다. 더불어 진작부터 계획 중이었던 ‘예술인 포트폴리오 아카이브’ 설비가 이 시기를 시작점으로 구축될 예정이다.

2008년 7월 9일 수요일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기고글


매미와 함께 ‘Let's play!’

최 윤 정 ● 매개공간 미나里 큐레이터


‘논다’를 청유형으로 바꾼 ‘놀자’, 것도 ‘우리 모두 함께’ 즐겁게 ‘놉시다’. 매개공간 미나리를 소개하는 데 있어서 ‘놀자’라는 표현만큼 쉽게 읽히고 잘 어울리는 것도 없겠다 싶다.
공간을 방문한 많은 분들이 오만가지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면 ‘기대에 넘친’, ‘정말 뭔가를 모르는’, 혹은 ‘의구심을 잔뜩 안은’ 표정들을 지니고 공간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는 한다. 그 수많은 표정들을 지니고 질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묻는 말은 이렇다. “매개공간 미나里가 뭐여요?” 그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뭐하는 곳이에요?” 그나마 공간에 대한 성격을 가시적으로나마 전시공간이라고 판단하신 분들께서는 더 나아가 “제가 조만간 전시할 공간을 찾는데...”등으로 다음 의견들을 묻고는 한다. ‘공간을 대여해주는 것이냐’, ‘공짜로 전시할 수 있는 곳이냐’ 등등. 여하간 그 어느 질문을 듣더라도 답변은 결국 공간이 생겨난 배경에서부터 그래서 이 공간이 자임하고자 하는 부분들을 설파한 후, 관련 프로그램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마무리될 수밖에 없다.
‘매개공간 미나里’는 축약하여 공식적으로는 ‘매미’, 영문으로는 발음대로 ‘Memispace’로 불린다. 보통 익숙함에서 오는 편안함과 유성음의 발음이 긴한 산뜻함을 주는 관계로 ‘미나리’로도 많이 불리고 있다. 매개공간은 기존의 대안공간이 미술관 및 화랑에서 전시할 수 없었던 작가들에게 공간을 제공해주는 의미를 넘어서서, 미술만이 아닌 공연 및 타예술 장르를 접목시키고 예술인들 사이의 교류를 꾀하려는 의미에서 지어진 명칭이다. 또한 장소적으로 재래시장 쪽에 위치하게끔 한 이유 역시도 매개공간의 역할이 생활과 예술이 보다 친밀해질 수 있게끔 서로 연결하고자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또한 여기서 ‘里’는 곳곳에 매미의 바람처럼 많은 문화적 공간과 인프라가, 또한 향유자들이 늘어 예술로 행복해지는 장소, 지점, 곳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나름의 공간 주소임을 함축한다.
‘놀자’는 너무 가벼운 단어로 오인 받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우리가 얼마나 ‘못’ 놀고 사는가를 언제나 다시금 돌이켜 보게끔 한다. 어디 그 뿐인가. 아마도 이 표현 속에는 ‘제발 같이’ 혹은 ‘가능한 부디 같이’라는 의미로 현 지역의 예술계에 정작 필요한 호소도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이를 매개공간 미나里가 대외적으로 제안하고자 하는 문맥들을 전부 포함하는 단어로 우기려는 이상, 다음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이 매미 공간을 소개하는 데에 유효할 것이다.


매미가 ‘함께 놀자’ 하는 이유가 뭘까?

5월 25일 개관한 이래, 매미 프로그램 진행의 빈도수는 꽤 높은 편이었다. 작가들의 자발적인 공간해석을 주제로 하여 1부의 영역표시전과 총 3부 형식으로 마련한 릴레이전은 다소 빠른 호흡으로 열흘마다 교체되면서 현재까지 공간을 채워왔다. 그리고 예술인들 사이의 담화를 위한 ‘만말토크쇼’가 주제를 바꿔가면서 현재까지 총 3회가 진행되어왔다. 그리고 물적교환의 장소로서의 재래시장이라기보다는 감정의 교류, 정보교환의 장소로서의 맥락을 강조하며 지역예술계에 즐거운 바람을 불어넣어보자 기획된 ‘매미시장’이 현재까지 2회 진행되었다. 개관전이 종료되는 7월3일을 기점으로 하여 매미는 현재까지 진행된 각 프로그램들을 평가하면서 부분 수정 보완의 절차를 거쳐 보다 탄탄한 프로그램 일정을 잡을 예정이다.
개관한지 한 달을 조금 넘은 이때에 왜 이렇게까지 숨 가쁘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실상 매미식구들에게도 하나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강박관념으로 인한 것인지, 혹은 사명감인지, 그 어느 경우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는 분명히 곱씹어볼 차례인 것이다.
이곳은 지역 안에서 대안적인 공간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해온 지역 예술인들이 힘을 합쳐 꾸려진 자생적인 공간인 것만큼은 분명 확실하다. 현재까지도 그 일원들이 운영위원으로 역할하면서 계속해서 공간의 정체성과 건강함을 담보할 수 있는 조건으로 ‘자생성’을 꼽고 있다. 아마도 공간 운영위원의 모임 회수가 대단히 빈번한 것은 이제 생겨났고 건강하게 자라야 할 매미가 계속해서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게끔 여러 문제들을 고민하고 공유해야 한다는 인식적 합의가 있으므로 가능할 것이다. 논의 초기에서부터 이 같은 대안적인 공간의 필요성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지역예술이 보다 활성화될 수 있는 여지가 작금의 지역예술인들 사이의 벽들을 허무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군다나 사심이 개입할 수 없는 공간이자 ‘사랑방’ 개념으로 논의가 진행되어왔고, 현재는 이를 안고 구체적으로는 예술인들의 작업에도 일조할 수 있는 질적으로 만족스런 프로그램들을 기획하는 공간으로 보다 구체적인 실행방안에 들어선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역할할 수 있는 몇 가지들을 실행하고 수정하면서 완성시켜가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고, 더불어 행여나 기획에 파묻혀 이 공간이 지닌 애초의 바람이었던 ‘사랑방’ 역할을 놓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자 그 무엇보다 중요한 공간의 한 기준이 된다.


뭐하고 놀지?

500명 가까이 되는 분들이 다녀가신 첫 번째 매미시장에서 그 뒷정리는 보통일이 아니었다. 쓰레기를 치우고 정리하는 가운데, 한 동네 어르신이 봉지를 들고 쓰레기 줍는 것을 도와주신 일에서 감동을 받은 바 있다. 그리고는 그 한 분이 여러 분들로 확산될 수 있게끔 그들에게 다가가는 프로그램 계발에도 게을리 하지 말자는 결의도 매미의 한 축이 되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공간에 들르시지는 않았지만, 매미가 다양한 형식으로 공간의 정체성을 대변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꾸준히 긴 호흡으로 펼쳐보이는 장소라는 것이 많은 이들에게 인식되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생산되는 많은 것들은 고스란히 참여자들과 더 나아가 지역 예술계가 건강하게 설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밑거름으로 역할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간 내에서 이뤄지는 기획 프로그램들 외에 매미시장은 하나의 거대한 퍼포먼스로 한달에 한번씩 진행되는 행사로 지속시켜갈 예정이다.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꾸려지면서 이에 동조하는 많은 분들이 또한 직접 좌판을 열고 참여할 수 있는 아트마켓 부분, 더불어 앞으로 전문성을 가지면서 예술인들이 자신의 작업을 알릴 수 있는 자리도 될 수 있고 소박한 잔치의 모양을 갖추어 흥겹게 놀 수 있는 자리도 될 수 있으며, 더운 날 그나마 선선한 밤에 작가들의 슬라이드 쇼나 영화제 등을 경험할 수 있는 무대 프로그램은 적어도 매달 바람 쐬고 싶을 때, 삶에 다른 활력을 주고 싶을 때 그 누구나 부담스럽지 않게 들러 즐길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야외에서 작가들의 작품을 구경하고 또한 즐거운 마음으로 구입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은 이들에게는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매미 공간 내부는 창고로 쓰여졌던 과거 기억들을 군데군데 담아놓은 장소이다. 기존의 화이트 큐브가 아닌, 그렇기에 그 누구나 재밌다고 여겨질 수 있는 매미공간은 또한 기존에 무거우나 형식적이고 가벼운 얘기들만이 속출했던 모습을 벗어나 가벼운 형식 안에서 깊고 솔직한 얘기가 오갈 수 있게끔 하는 프로그램 계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것이 ‘만말토크쇼’이건, 각 주제를 잡은 ‘교육워크숍’이건 이를 관람하고 비판적으로 조언해줄 수 있는 창구는 그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다. 매미의 운영방식과 더불어 자율적인 기획들이 애초부터 이러한 맥락들을 짚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번 매미는 그 누구에게라도 ‘우리 함께 놀자’고 손을 내밀 것이다. 그 손을 ‘좀 잡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좀 전 다소 강한 단어로 언급한 ‘강박관념’이나 ‘사명감’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분명 형태상 초조한 마음이지만, 더불어 동시에 친구를 사귀고자 할 때의 마음가짐과 근원적으로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